소설리스트

第八章 (153/254)

청백도법을 대성하면 청백색의 도강을 뿜는다.

‘제, 제기랄 성가신 일에 휘말렸다.’

김팔이 눈깔을 데구루루 굴렸다.

동업자에게 타 지역으로 꺼지라고 으름장을 놓으려고 했는데, 전혀 상관없는 고수가 나타났다.

그것도 선비 문파의 전인이 칠십년 만에 왜 하필 지금 나타난 건지 모르겠다.

꺼지라고 욕하고 싶었다.

그러나 목이 베일 수는 없기에, 김팔은 일단 허장성세를 내보였다.

“청백도! 술 마시는 걸 방해한 건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소! 그러니 이만 정리하는 게 어떻겠소?”

“헛소리. 그리 쉽게 넘어갈 일이라면 안 일어났다.”

청백도도 나름대로 참다가 못 참아서 칼을 뽑았다.

“사내대장부가 칼을 뽑으면 무, 아니 목이라도 자르라 했다. 적어도목숨으로 책임져라.”

“목이 아니라 무요. 그리고 이 김팔은 사도의 영웅 궁귀검수의 동생이라는 걸 알고 있소?”

“글쎄, 너 같은 동생 둔 적 없다니까.”

주서천이 김팔의 거짓말을 걸고 넘어졌다.

“닥쳐라! 이 가짜 놈! 눈치가 있다면 나서지 마!”

김팔은 주서천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아니, 그러고 보니 전부 다 이놈 탓이잖아?’

가짜 궁귀검수를 바라보는 시선에 살의가 담겼다.

김팔은 무언가 떠올린 듯 주서천에게 삿대질했다.

“이게 전부 다 이놈 탓이오! 이놈의 목을 치시오!”

“그놈도 치고 네놈도 칠 테니 걱정마라. 이 청백도, 적어도 사람을 저승길 보낼 때 혼자 보내지 않는다.

그것이 강호의 의리가 아니겠는가.”

‘그딴 의리 필요 없어!’

김팔이 반사적으로 욕하려다가 말았다.

“자아, 그러니 사이좋게 저승길로……”

짜악!

위층 계단에서부터 박수 소리가 났다.

일대의 소음이 전부 집어 삼켜졌다.

숨소리조차도 나지 않았다.

‘이, 이게 무슨?’

김팔은 몸을 꼼짝도 하지 못했다.

피는 물론이고 의리도 존재하지 않는 동생들도 돌처럼 굳어 버렸다.

눈동자를 굴려 상황을 파악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했다.

“으윽……”

누군가가 고통스러운 신음을 냈다.

청백도였다.

청백도가 경련을 일으킨 개처럼 몸을 떨어 댔다.

콧구멍에선 검붉은 핏줄기가 주르륵 흘렀다.

‘서, 설마……’

김팔이 속으로 공포에 떨었다.

방금 전의 손뼉 소리.

그리고 소리가 끝나자 하나같이 마비 독에 중독된 것처럼 굳어 버렸다.

혹시 하는 마음으로 진기를 끌어올렸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적과의 공력 대결에서 패배한 느낌이었다.

이러한 효과를 낼 수 있는 건 중원에서도 몇 없다.

그것도 등왕각에서 펼쳐졌다면 십중팔구 소음문의 선선박(神仙拍)이 틀림없다.

“감히 어떤 잡것들이 소란을 피우느냐.”

덜덜덜.

김팔은 옴짝달싹하지 못했지만, 공포감에 짓눌려 마음속으로 떨고 있었다.

당장 도망치고 싶었다.

차라리 정마대전이나 정사대전 한가운데 떨어지는 것이 더 살 확률이높다고 표현해도 좋았다.

‘소류금!’

새카만 밤하늘을 연상시키는 머리카락은 등허리까지 내려오고, 서리가 쌓일 정도로 긴 속눈썹 아래 눈매는 유려하면서도 색기가 흘러넘쳤다.

두툼한 입술은 반들거리고, 피부는또 어찌나 새하얗던지 북해의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절세의 미인 소류금을 부르는 또다른 표현이었다.

다만 중성적으로 생겨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가 없었다.

목소리 역시 성별의 구분이 확실치 않았다.

남자던 여자던 간에 한눈에 반할 미색이나, 그 누구도 감히 소류금 앞에서 음욕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현 무림의 절대고수였으니까.

무림인들을 그 혹은 그녀를 보고 음신이라 칭한다.

“이이익!”

청백도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충혈된 눈은 핏줄이 터졌고, 코에선 피가 쏟아졌다.

“그걸 버텨내다니 칭찬해 주겠지만, 거기까지다.”

소류금이 김팔을 보고 검지와 중지를 뻗자, 검집에서 검이 청명한 음을 내면서 빠져나왔다.

팅 티잉.

검집에서 빠져나온 음이 조금씩 바뀐다.

매끄럽게 빠져나온 소리가 튕기듯이 변화해 일정한 파동을 만들어 청백도의 고막을 쑤시고 들어갔다.

커헉!

청백도가 몸을 흠칫 멈추더니, 이윽고 모공이란 모공에서 피를 쏟아내며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화경의 고수가 별 대응도 하지 못하고 죽다니!’

소류금은 연주 도중 방해를 받는 걸 지극히 싫어한다.

그래서 등왕각을 개건할 때도 장인들을 불러들여 방음시설에 특히 신경 쓰도록 말해두었다.

평소에 얼큰하게 취한 노랫소리나, 혹은 말소리는 전혀 문제없었다.

소리를 차단하면 들리지 않는다.

하나 아래층에서 공력을 담아 난리를 피울 경우는 좀 다르다.

미약하게나마 진동음이 들렸다.

오늘 역시 그 진동음이 들렸다.

칠현금(七鉉琴)을 연주할 생각으로 부풀어 올랐던 기분을 잡쳤다.

아무리 상천칠좌의 영역이라 해도 사파에 워낙 성격이 거친 자들이라 이런 사고가 종종 일어났다.

소류금은 연주를 망친 놈들을 어떻게 죽여야 할지 고민했다.

“과연, 철음진파(鐵音張波).”

“……!”

소류금의 고개가 번개같이 돌아갔다.

“상천칠좌를 뵙게 되어 영광이오.”

주서천이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이럴 수가……”

“말을 했어?”

뒷정리를 하려 집결한 소음문도들이 경악했다.

대경함 속에서 불신이 묻어났다.

‘문주님의 신선박에서 자유로워 지다니!’

신선박은 일종의 포박공이다.

몸을 묶는 건 물론이고, 심하면 혼절시키거나 내상을 입히기까지 했다.

방금 전의 청백도조차 신음을 흘리거나 몸을 떠는 게 한계였거늘,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움직였다.

대성하면 신선조차 빠져나올 수 없다는 음공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소류금은 그제야 주서천을 머리에 인식할 수 있었다.

“……?”

소류금이 고운 이마를 찌푸렸다.

눈살을 찌푸리는 모습조차 아름답다는 쓸데없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간의 고요가 이어졌다.

그리고 묘한 침묵을 먼저 깨뜨린 건 음신이었다.

짜아악!

소류금이 다시 손바닥을 부딪쳐 소리를 냈다.

구경꾼들에게는 그저 손바닥을 부딪치는 걸로 보이겠지만, 주서천의 시각에서는 달리 보였다.

음공이란 소리를 매개로 하는 것.

즉, 살결이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검이고 칼이고 창이다.

검병은 검에 공력을 싣고, 도병은 칼에 공력을 싣는다.

그리고 음인은 소리에 공력을 실었다.

다만 음속(音速)이다 보니 인식하기가 힘들다.

사용자가 상천칠좌인 현경의 고수이니 더더욱 그렇다.

발음체에서 배출된 진동이 파도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 파도는 소류금의 내력으로 조정됐다.

사방으로 퍼진 발음체에서부터 나온 공기의 진동, 곧 음파는 적의 몸을 훑는다.

그저 닿는 것만이 아니라, 공력이 이상 현상을 일으켜서 청각을 공격했다.

소리의 전달이 공격으로 변하고 내부의 장기부터 시작해 기맥이나 혈맥까지 묶는다.

그게 신선박이다.

그러나 주서천은 음파가 닿자마자 반응했다.

의식이 아닌 무의식의 영역이었다.

동수인 만큼 반응 속도 또한 소류금의 신선박에 대응할 수 있었다.

근원인 자하신공에서부터 흘러나온 진기가 몸을 보호하듯 둘러싸고, 음파를 받아들이되 공력은 없앴다.

요약하자면 내력의 대결.

그 질이나 양도 음신과 비교해 문제가 되지 않으니 멀쩡하게 버텼다.

“음신의 신선박을 봐서 영광이오.”

“말도 안 돼!”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특히나 소음문도들의 충격이 컸다.

여태껏 봐 왔던 것 중에서 이보다 더한 일은 없었다.

천하에 내로라하는 백대고수들조차 신선박에는 별달리 저항하지 못했다.

오직 음신의 허가가 있어야 입을 열 수 있었다.

그 불문율이 깨졌다.

소음문도의 상식이 깨졌다.

‘뭐, 뭐야?’

옆에서 눈을 멀뚱멀뚱 뜨고 있는 김팔도 놀랐다.

동업자라 생각한 멍청이가 음신의 신선박에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으니 황당해하는 건 매한가지였다.

머릿속으로 혹시나 하는 가정이 스쳐 지나갔다.

김팔은 속으로 그 가정이 맞지 않기를 빌었다.

“예사로운 놈이 아니로구나.”

소류금의 표정이 굳었다.

강자를 만난 호승심 따위는 없었다.

신선박이 통하지 않아 자존심이 상했다.

“좋다. 어디 이것도 막나 봐야겠다.”

소류금이 다시 검지와 중지를 까닥였다.

휘리릭!

어중간하게 빠져나온 김팔의 철검이 날았다.

공중에 떠오른 검은 주서천이 아닌 소류금에게 날아왔다.

소류금은 오른발을 축으로 삼아 빙글 돌아, 날아온 검을 낚아채고는 특이하게 잡았다.

왼손으로는 손잡이를 잡고 오른손으로는 검신의 위쪽을 매만졌다.

“피해라! 문주님의 철음진파다!”

소음문도들이 무언가 눈치채고 몸을 날렸다.

‘안 돼! 나도 구해 줘!’

김팔이 애달픈 목소리로 소리 지르려 했으나, 아직도 신선박의 영향이 남아 있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주서천이 바로 옆에 있어서 그런지 낯빛이 파리해졌다.

째앵!

소류금이 검신을 쥔 손가락을 구부렸다가 튕겼다.

손가락에 후려 맞은 검신이 파르르 울렸다.

확대해서 본다면 충격에 몸을 떠는 걸로 보인다.

웅웅웅.

검신이 춤추듯 흔들리며 파동을 토해 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리의 파동, 음파가 무수히 형성됐다.

철음진파.

튕겨 내서 만들어낸 쇳소리를 이용해 무수한 음파를 만들어 발산하는 소음문의 절기였다.

콰아아아.

음공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순수하게 소리만으로 뇌나 사람의 감각 기관을 망가뜨리거나 속이는 것, 그리고 지금처럼 소리의 진동과 내포된 공력을 이용해서 물리력인 파괴를 가하는 것.

소류금의 철음진파는 보통의 위력이 아니었다.

발산된 음파는 등왕각의 바닥을 쓸어 내며 쏟아졌다.

심지어 그 진동의 크기가 얼마나 컸는지 김팔의 검이 박살 나 수십조각으로 나뉘어져 뒤를 이었다.

콰아아앙!

철음진파가 정면을 덮쳤다.

음신이 진심을 다해 공격한 만큼 그 피해는 컸다.

항상 얼굴을 비칠 정도로 깨끗하게 닦인 바닥은 처참하게 뜯겨져 나갔고, 대리석으로 된 벽에 구멍이 뚫렸다.

음파가 지나간 기둥은 바짝 갉아져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고, 석회로 된 먼지가 피어올랐다.

“히이이익!”

김팔과 달리 운이 조금 좋았던 여덟 의형제들은 그 충격 덕에 신선박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았다.

시냇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는데, 김팔의 의형제들의 바짓가랑이가 전부 누렇게 젖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들을 보고 뭐라하지 못했다.

그저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경이로운 표정을 지었다.

누가 이것을 보고 음공이라 하겠는가.

사람의 한계를 넘어선 신위에 그저 눈만 껌뻑였다.

“흥.”

소류금이 거추장스럽다는 소매를 툭툭 털었다.

주변이 석회 가루로 가득인데, 어떤 재주를 부렸는지 몰라도 혼자만 소매 외에는 깨끗했다.

“밖에 시신이 멀쩡하다면 가져오고, 그게 아니면 적당히 품을 뒤져 신분을 알아 와라. 그리고 일 층은 당분간 닫고 보수 공사에 임하도록 하여라.”

소류금이 볼일 다 봤다는 듯 등을 돌렸다.

넋 나간 채로 가만히 서 있던 소음문도들은 문주의 명에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명에 따르려 했다.

그러나……

“콜록, 콜록. 거참, 이야기 좀 합시다.”

소류금의 발걸음이 우뚝 멈추었다.

그 얼굴에는 처음으로 놀라운 감정이 묻어나기 시작했다.

“도,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방금 저자 음신의 철음진파에 당하지 않았나?”

반대 방향, 조금 거리가 떨어진 곳에서 그 광경을 구경 중이던 무림인들이 비명을 지르듯 경악했다.

하나같이 입을 모아 불가능한 일이라며 경악했다.

몇몇은 꿈이라며 부정했다.

누구는 소매로 눈을 비볐다.

벽의 잔해.

석회로 된 가루가 사라지면서 나타난 것은 몸을 웅크린 김팔을 뒤로 둔 주서천이었다.

‘후, 정말로 무시무시하군.’

말은 농을 던지듯 했지만, 실상은 좀 달랐다.

나름대로 위험하기는 했다.

음신의 진심이 담긴 철음진파를 피부를 느끼자마자 호신강기를 펼쳤다.

당연하지만 들키지 않도록 무형의 강기를 썼다.

그래서 남들의 눈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처럼 보였다.

‘인피면구는 멀쩡한가?’

시험 삼아 뺨이나 턱을 매만져 봤지만 괜찮았다.

하오문의 장인이 정말 장인은 장인인가보다.

물론 호신강기로 막지 않았다면 절대 못 숨겼다.

“누구냐.”

소류금이 공간을 접듯이 이동했다.

“도대체 뭐하는 놈이냐.”

소류금의 경계 어린 눈길이 주서천에게로 향했다.

‘하수가 아니다.’

소류금은 연주를 방해받은 것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흥분해 있었다.

그래서 주서천을 잘 살피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머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눈동자가 바쁘게 움직였다.

‘현경이라고?’

직접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삼십 대로 보이지만 딱히 상관없다.

무인의 노화는 원래 늦고, 화경과 환골탈태를 거듭하면 젊어 보인다.

삼십 대 초반으로 보이니 그 속내는 오십이나 육십 정도는 될 터.

그러나 지금 문제가 되는 건 정체였다.

명루인 등왕각에 와서 괜히 제 힘만 믿고 패악질을 부리러 온 잡놈들과는 달랐다.

저 무위는 진짜다.

지금 당장 중원 무림을 뒤져 봐도 자신의 철음진파를 막아낼 사람은 몇 없다.

화경의 고수도 불가능하지는 않다.

특히나 어릴 적부터 영약을 밥 먹듯이 먹었으면 가능하다.

다만 소비되는 내공의 양이 장난이 아니다.

저리 아무렇지 않게, 지치지 않고 깨끗이 막을 수는 없다.

무엇보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법.

소류금의 머릿속이 경종을 울렸다.

“궁귀검수.”

주서천이 짧게 답했다.

“아니, 하지만……”

구경꾼들이 서로 숙덕였다.

‘왜 안 믿지?’

주서천이 의아해했다.

이 정도 무공을 보여 줬으면 믿을 만도 한데, 주변인들의 표정이 여전히 미묘했다.

“등에 활이 없는데?”

“아.”

주서천이 아차 하고 이마를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사파에서 활동한 궁귀검수는 언제나 활과 검을 교대로 사용했다.

손에서 떨어뜨린 적이 없었다.

괜히 별호가 궁귀검수가 아니었다.

활과 검은 상징성이었다.

주서천도 어색한지 입을 꾹 다물었다가, 외쳤다.

“화, 활 좀 빌려주실 분!”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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