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六章 (151/254)


찰싹! 찰싹! 찰싹! 찰싹!

찰싹! 찰싹! 찰싹! 찰싹!


“썅!”


주서천이 눈물을 흘리며 눈을 번쩍떴다.


“소령아 나 정신 차렸……”


짜악!


“쌰앙!”


멀쩡히 살아 있다.



“썅.”


아직도 얼얼한 뺨을 문지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류에 떠밀려서 온 것은 분명한데,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겠다.


‘어디 보자……’


일단 몸부터 멀쩡한지 확인해 봤다.

구멍이 뚫렸던 심장 부근부터 확인해 봤다.


“휴우.”


안도의 한숨이 흘러 나왔다.

옷은 멀쩡하지 않지만, 몸은 괜찮다.

바람이 휑휑 불고 지나갔던 구멍은 없었다.

조각난 심장도 멀쩡하게 뛰었고, 피와 살도 다치기 전으로 돌아왔다.

심상구현, 회귀가 제대로 발동했다.


“끔찍한 악몽인 줄 알았는데, 빌어먹을 현실이구나.”


당한 걸 생각하니 열불이 터졌다.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신권이라 불릴 홍고가 끝내 미쳐버려 파계를 저질렀고, 스승을 살해했다.

그를 벌하려던 찰나, 뒤에서부터 당명인이 나타나더니 배신했다.


“천추!”


으드득!

그동안 최대의 적을 믿고 동행한 과거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너무 멍청해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이렇게 당한 건 또 거의 처음인가.’


잡다한 실수나 패배는 있었지만, 이 정도로 컸던 적은 없었다.

최초의 실패인데 그게 치명적이었다.


“이 능력이 없었다면 죽었을 거야……”


심장이 찢어지고 가슴에 구명이 생겼을 때 꺼져 가는 의식을 겨우 바로 잡으며 회귀를 사용했다.

두 번째라서 잘 될지 몰랐는데, 무사히 성공했다.


‘도대체 무슨 독을 쓴 거지?’


당명인의 뒤통수에 정신이 나간 것이 크기도 했지만, 무형지독을 어떻게 해독할 수가 없었다.

곧바로 회귀를 사용해 볼까 싶었으나, 이 역시 마음대로 되지가 않았다.

아무래도 중독된 순간 뇌나 정신에까지 문제가 생긴 듯 싶었다.

당시에 사고조차 제대로 돌아가지가 않아서 무척 곤란했다.


‘이 경지까지 왔는데도 제대로 회복하지도 못하다니…… 이 세상 독을 끌어모으기라도 한…… 아니, 불가능한 건 아닌가.’


독지는 물론이고 남만까지 제집처럼 돌아다니던 도감부장이 떠올랐다.


“소령. 내가 의식을 잃은 지 얼마나 됐지?”


팔 번쩍 형(刑)에 처한 소령에게 물었다.


“사흘.”


소령이 팔을 든 채로 무감정하게 답했다.


“사흘씩이나? 그리고 팔 내려도 좋아.”


하루 이틀 정도 된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오래됐다.

심상이 불안정하게 구현돼서 그런 듯했다.


“일단은 몸부터 확인하고 주변을 둘러봐야겠다.”


소령에게 호법을 부탁하고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소주천으로 훑어봤는데 딱히 문제는 없었다.

정말로 다치기 전으로 돌아갔는데, 그 시기가 한참 싸우던 와중이어서 그런지 내공을 소모한 상태였다.

어차피 내공이야 무식하게 많으니 상관없다.

운기를 끝내고 반사적으로 검을 찾아봤지만, 나오지 않았다.

혹시 하는마음으로 옷을 뒤적거렸으나 전낭은 물론이고 비상약과 영약도 없어졌다.

돈이나 비상약은 별다른 타격이 없었으나, 영약을 잃은 것이 조금 컸다.


‘후우, 정말로 여러 가지를 잃었구나.’


신권, 홍고.

정파의 구심점이 되는 사람을 뽑으라 한다면 신권을 빼놓을 수가 없다.

그만큼 중요한 사람이었다.

천기의 계략에 패배한 사실보다 더 타격이 컸다.

당명인의 배신조차도 덜 충격적이었다.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진작 신경 썼어야 한다.’


성격적으로 문제가 있었다는 걸 모르지는 않았다.

다만 이렇게까지 막장으로 치달을지 몰랐다.

게다가 신승이라는 스승도 있지 않았는가.

문제가 생겨도 바로잡아 줄거라 굳게 믿었다.

무엇보다 향후 무림사에 영향을 끼칠 인물이라 괜히 잘못 참견해서 잘못될 것을 두려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상황을 봐 가면서해야 했다.

알고 있는 역사와는 이미 너무나도 멀어졌다.


‘암천회와 결탁했느냐, 홍고.’


언제부터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중요하고 또 충격적인 건 그가 최소한 암천회와 손을 잡은 것이었다.

아직까지 확신은 아니다.

그러나 정황상 그럴 확률이 높았다.

당시 당명인과 자신을 신경 쓰지 않았으니까.


‘반성하자.’


마음이 불편하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자기혐오까지 늘어났다.

자책감도 상당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절망해 있을 수는 없다.’


적은 그 무시무시한 암천회다.

전력을 다해도 부족한데, 조금이라도 틈이 생겼다간 모든 걸 빼앗기고 만다.

그렇기에 멈춰 있을 수는 없었다.


‘포기하지 마. 앉아 있지 마. 한숨 쉴 시간에 머리를 굴려라. 그렇지 않으면 더 많은 사람이 죽는다.’


주서천의 눈이 차가워졌다.

‘암천회 다음으로 너희가 위기가 된 이상, 가만두지는 않을 것이다.’


마음속으로 다시 한번 다짐했다.


‘방심하지 마라. 조금만 실수해도이 꼴이다.

주서천, 이 멍청한 놈아. 반성해라. 머저리 같은 놈.’



* * *



산동, 금의상단.


“아이고, 아이고!”


화려한 건물에서 누군가의 곡소리가 났다.

돼지 멱 따는 소리와 흡사했다.


“아이고, 이렇게 가시면 어찌합니까! 대협!”


이의채는 진심으로 슬프듯이 엉엉 울었다.

그 울음소리가 장원 밖까지 빠져나갔다.


“이 근처에서 잔치라도 열리나? 돼지 잡는 소리가 들리는데.”

“쉿! 말조심하게. 금의상단주의 목소리일세.”

“허억, 큰일 날 뻔했군. 그런데 왜 우는 거지?”

“금의상단주가 검룡과 그럭저럭 친분이 있지 않았나.”

“허, 내 그동안 금의상단주를 잘못봤던 모양일세.

돈 외에는 피도 눈물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저리 남의 죽음에 구슬프게 우니 말이야.”

“무림의 영웅께서 허무하게 떠나지 않았나. 아무래도 상단주가 나름대로 무림의 미래를 걱정했나 보군.”


바닥을 기던 금의상단주에 대한 평가가 조금 나아졌다.


“으휴, 내 딸이 다 생각나는군.”

“왜 자네 딸이 생각나?

혹시 이의채 저놈이랑 목소리가 닮은 건 아니겠지?”

“딸내미가 검룡을 무척 좋아했네.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처음에는 믿지 않더니, 얼마 전부터 툭하면 울면서 밥까지 안 먹기 시작했어.”

“쯧쯧쯧.”


검룡의 소식이 알려지고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락내리락했다.

중원 무림에 있어서 그의 죽음은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애도의 물결이 여기저기서 퍼졌다.

그만큼 영웅의 빈자리는 컸다.

아니, 정확히 말해선 주서천의 빈자리였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고 하지 않았는가.

사후에 그 이름은 더 빛났다.

많은 이들은 정파의 희망을 잃었다면서 슬퍼했다.

몇몇의 극성적인 사람들은 반쯤 미쳐서 날뛰기도 했다.

정파 무림의 사기도 전과 달리 많이 떨어졌다.

불행 중 다행인 건 마교를 향한 적의가 늘었다.


“아이고~ 아이고~!”

“뭐가 이리 시끄러워!”


누군가가 문을 발로 차며 뛰쳐나왔다.


‘어떤 미친 새끼야?’


조용히 할 일을 하던 하인들이 깜짝 놀랐다.

지금 우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저러는가.

누구보다 상왕에 가깝다는 대상인 이의채였다.

그런 사람에게 시끄럽다고 소리치다니.

미친놈이 아닌 이상 저리 말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혹시라도 불똥이 튈까 봐 걱정된 하인들은 이 미친놈을 잡아서 자신의 주인 앞에 대령하려 했다.


“헛, 승계 도련님!”

그러나 별종이긴 해도 미친놈은 아니었다.

금의상단을 창단하는 데 도움이 된 투자자.

내부에서 상단주만큼 영향력을 끼치는 제갈승계였다.

그러나 평소에는 별채에 틀어박혀 잘 나오지 않아 얼굴을 보기가 정말 힘들다.

상단에 고용된 사람들 중 반 이상이 제갈승계를 한 번도 본 적 없었다.

그래도 워낙 잘생긴 덕에 얼굴을 몰라도 보자마자 알아볼 수 있었다.


“누구야? 누가 이렇게 돼지처럼 울어?”

“그, 그게…… 상단주님이십니다.”


근처의 하녀가 쭈뼛거리며 답했다.

조심스레 답하면서도 눈으로는 제갈승계의 얼굴을 쫓기 바빴다.

제갈승계는 공부 도중에 방해를 받은 것이 짜증 났는지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그는 마당을 성큼성큼 걸어가 이의채의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만세!’

‘제발 저 곡소리 좀 어떻게 해 주십시오!’


내심 듣기 괴로웠던 사람들이 속으로 응원했다.


“상단주.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리우십니까?”


제갈승계가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이의채에게 다가갔다.


“학 천상천하 유아독존 천뇌제갈이신 제갈승계 님 아니십니까. 어서오십시오.”


이의채가 허리를 숙이며 손바닥을 비볐다.


“……”


여전히 차마 말이 안 나오는 아부였다.


“금의상단주 얼마나 잃으셨습니까?”

“예? 얼마나 잃었다니요?”

“작년처럼 바지에 구멍 난 줄 모르고 전낭 잃어버리셔서 대성통곡한거 아니십니까?”


이의채는 돈이면 환장하는 인간이다.

전충(錢蟲)이라는 별호까지 있을 정도다.

하지만 수전노는 아니다.

더 큰 이익을 얻기 위해서라면 손해도 감수하는 사람이었다.

돈의 소비를 두려워하면 돈을 벌수 없다는 게 평소 그만의 지론이었다.

실제로 당장 손해가 있다 할지라도, 후에는 더 큰 이득이 되어 돌아온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 이의채도 죽도록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게 있었는데 바로 의미 없는 손해였다.

특히나 실수로 돈을 잃어버리거나, 아니면 투자한 사람이 자살하거나 무림의 일에 휘말려 풍비박산 나면 하루 종일 안타까워하거나 종종 우는 일도 있었다.


“그런 게 아닙니다, 소협. 전 그저 지금의 절 만들어 주신 사람을 잃어 슬픔에 잠겨 있을 뿐이지요.”

 “저, 혹시…… 부모님이……?”

 

제갈승계가 미안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럴 리가요.

절 낳아 주신 부모님께서는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면 누가……?”

“저 런, 아직 소식을 듣지 못하셨습니까?”


이의채가 제갈승계를 보고 안타까워했다.


“소식이라니요?”

“하기야, 소협께서는 공부에 임하시느라 별채에서 잘 나오시지 않으셨으니 모를 만도 합니다.

진정하시고 잘 들어 주십시오.”


이의채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주서천 대협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예?”


제갈승계는 두 귀를 의심했다.


“저도 믿기지 않았습니다만, 여러 곳에서 정보를 사서 확인한 결과 정말인 모양입니다.”

“그게 뭔 헛소리십니까? 형님이 죽어요?”


제갈승계가 황당무계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유감이지만 사실입니다, 소협.”


이의채가 소매로 눈물을 닦았다.


“그게 무슨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입니까?”


제갈승계가 피식 웃었다.


“그 괴물 아니 형님이 죽으신 거라면 제 손에 장을 지지겠습니다.”

“소협…… 손을 지질 준비를 할까요?”


이의채가 안타까워했다.


“절 깜짝 놀라게 하려는 건지, 아니면 형님께서 작전을 세우려고 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안 믿습니다.”

“흑흑흑.”

‘역시 현실을 부정하시는구나.’


이의채도 처음에는 믿지 않아 여러 방면으로 알아봤지만 소용없었다.

주서천은 죽었다. 그게 현실이다.


“제갈 소협, 아니 대협께서 마음의 정리가 되면 절 찾아오십시오. 긴히 말씀드릴 일이 있습니다.”

“왜 갑자기 어색하게 대협이에요?”

“그야 주서 뭐시기 소협의 지분을 분배해야 하지 않습니까. 원래 세상살이가 잔혹한 법이죠.

산 사람은 죽은 사람 몫만큼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어디 보자……”


이의채가 소매로 눈물을 닦고 주판을 두드렸다.


툭툭.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계산하느라 좀 바빠서요.”


툭툭.


“대협, 대협께서 어떤 마음인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고인에게 예의가 아니긴 하지만, 이럴 때야말로 정신 똑바로 차리고 지분을 확실히 해야지요.

주…… 뭐더라. 여하튼 주 뭐시기 그 친구도 선계에서 그리 말하고 있어요.”

“난 그런 말 안 했는데.”

“분명 그랬…… 응?”


나?

이의채가 주판을 거두고 고개를 들었다.

분명 앞에 한 사람만 있었는데 둘로 나뉘었다.

제갈승계가 신묘한 진법으로 분신술이라도 썼나 싶었는데, 진법의 진도 모르는 걸 떠올렸다.

무엇보다 분신술치고는 생김새가 달랐다.

그래도 낯익은 얼굴이었다.


“으악!”


이의채가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귀신이다! 귀신이야!”

“아니요. 난 주 뭐시기요.”


주서천이 이의채의 엉덩이를 발로 후려 찼다.


“악!”


이의채가 엉덩이를 붙잡고 방방 뛰었다.

그러나 아픔보다 눈앞의 충격이 더 컸다.

금의상단주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껌뻑이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무릎 꿇고 머리를 바닥에 찧었다.


쿵!


“이 소상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내 죽음을?”

“에헤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대협께서 오실 줄 알고 농을 던져 봤습니다요.”


이의채의 눈매가 초승달처럼 휘었다.

손은 파리처럼 신나게 비벼 댔다.


“어휴.”


주서천이 고개를 좌우로 절레절레 흔들었다.


“일단 제가 여기에 있는 것은 비밀입니다. 그러니 이름을 부르는 건 조심하십시오. 승계도 마찬가지다.”

“암요! 당연합니다. 특히 이 집무실은 남들이 듣지 않도록 손 써 두었으니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다행입니다. 그러면 저희 대화 좀할까요?”

“예! 어서 여기 상석에 앉으시지요.

차라도 대령할까요?”

“그럽시다.

일단 상단의 제 지분을 분리하는 이야기부터 하죠.”

“하하하! 정말 재밌다! 너무 재밌는 농담이시다!”


이의채가 무릎을 탁 치며 웃었다.

이마에 흐르는 땀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장난은 여기까지만 하고,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하죠.”


주변에 누가 없는지 확인해 봤다.

전에 이의채에게 호위 겸 심부름꾼으로 붙여 준 유령들밖에 없었다.


“어디까지 알고 계십니까?”

“대협께서 서패호법과 풍마대주에게 합공을 당해 치명상을 입고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는 정도입니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닌데, 그렇다고 완전히 맞는 말도 아닙니다. 뭐, 절벽 아래로 떨어진 건 맞습니다.”

“엥?”


제갈승계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의아해했다.


“정말로 뭔가 큰일을 당하셨던 겁니까?”

“…… 아무래도 넌 아무것도 모르는모양이구나.”


주서천이 어이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흘렸다.


“상단주께서는 승계를 위해 무림에 알려진 대로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그러지요.”


이의채가 흔쾌하게 승낙하며 입을 열었다.


“허어!”


제갈승계가 소문을 전해 듣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설마하니 공방(工房)에 틀어박혀 있는 동안 그런 일이 있었을 줄이야……”


공방이란 기관의 연구나 제작을 위해 금의상단 산서 지부의 별채 지하에 만든 공간을 뜻한다.

한번 집중하면 주변을 신경 쓰지 않게 되다 보니 누가 불러도 대답하지 않아 외부와 단절하게 된다.

도중에 방해받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정말로 급한 일이 아니라면 찾아오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렇다 보니 무림의 사건을 듣지 못했다.


“작업에 정신 팔린 건 이해하지만, 그래도 정말 큰일이 날지도 모르니 유의해라.”

“끄응. 그러하겠습니다.”


제갈승계가 머쓱한 듯 뒷목을 매만졌다.


“그래서, 사실은 어찌 된 겁니까?”


제갈승계와 이의채가 주서천을 쳐다봤다.


“이제부터 할 이야기는 기밀을 특히 신경 써야 한다.”


주서천은 몇 차례나 경고하고, 진실을 알렸다.

신승이 제자에게 살해당한 걸 듣자 그 얼굴은 경악으로 물들었고, 천추의 정체가 알려지자 굳었다.

길면서도 짧은 이야기가 끝나자 두 사람은 침음을 흘리며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소령 덕에 구사일생한 주서천은 일단 몸을 숨겨 상황을 지켜볼 수 있는 곳을 찾아 곧바로 달려왔다.

바로 이곳, 산동의 금의상단이었다.


“이 땡중과 독지렁이 새끼! 감히 그딴 짓을 저지르다니!”


이의채가 씩씩거리면서 욕설을 퍼부었다.


“막장이로군요.”


제갈승계는 화 대신 어이없어하며 소감을 냈다.


“그래.”


홍고가 패륜을 저지르고, 무림맹의 그림자인 당명인은 배신했다.

그것도 암천회의 간부였다.

이 여러 일들이 전부 전장을 앞에 둔 상황에서 터졌다.


“상단주. 현 무림의 상황을 가르쳐 주시겠습니까?”


곧바로 산동까지 달려오느라 주변 파악을 못 했다.


“우선…… 홍고. 그 땡중이 소림사의 방장으로 추대됐습니다.”


이의채가 주서천의 눈치를 봤다.


“예상한 일이군요. 당명인은?”

“독지렁이는 문제의 사태의 목격자로서 보고를 위해 지금 합비에 있습니다.”


홍고는 어쩔 수 없이 소림사에 돌아가야 했다.

그래서 대신 당명인이 주요 참고인으로서 귀환했다.

이 소문의 시작은 당명인의 목격담으로부터 시작됐다.


“대협의 사문인 화산파는…… 발칵 뒤집혔습니다.”

“어떤 의미입니까?”

“분노입니다.”


화산파는 전 장문인과 영웅을 마도인에게 잃었다.

당연히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곤륜파나 공동파 이상으로 마도에 대한 깊은 증오심이 생겼다.


“화산파의 전력 칠 할 이상이 청해로 향했습니다.”

“……후우.”


예상은 했으나 우려하던 일이 터졌다.

좋지 않았다.

정말 매우 좋지 않았다.

분노로 이성을 잃으면 판단이 흐려지고, 실수로 번진다.

어쩌면 많은 피해를 입을지도 모른다.


“참고로 소림사도 며칠 전에 방장으로서 인수인계가 끝나고 전력을 이끌고 청해로 떠났습니다.”

“지금쯤 천기가 암천회주와 축배를 들고 있겠군.”


청해는 너무 멀다.

최소한의 병력을 남겼어야 한다.

그런데 화산파도 소림사도 거의 전부 끌고 갔다.

수비가 약하다.

이러면 후에 중부에 무슨 일이 터진다면 제대로 방어할 수 없다.


“그러면 중앙이 비게 되니 큰일이지 않습니까.

일단 화를 잠재우기 위해 형님이 살아 계시다는 걸 알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서천이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어째서입니까?”

“전화위복이다.”


도사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암천회의 수사망에 잡히지 않는다는 건 맹점이야.

기회를 틈타 밝혀지지 않은 칠성사를 찾는다.”


요광, 개양, 옥형. 마지막으로 암천회주.

아직 이 네 명의 행방이 묘연하다.

여전히 꼭꼭 숨어 있겠지만, 정마대전에 정신이 팔려 있을 때 틈이 생길 테니 이를 노리면 좋았다.


“그리고 사도천을 끌어들인다.”

“사도천이요?”

“그래.”


정파대전이 종전(終戰)된다면, 누군가 움직인다.

정파나 마교가 약세화됐으니 사도천이 제일 먼저 이를 드러내겠지만, 그보다 빠른 세력이 있다.


“암천회가 움직일 거야.”


원래의 역사대로라면 암천회는 정사대전과 마도전쟁이 끝난 후에 드러난다.

즉, 사대 세력이 전부 힘을 잃거나 약화된 이후였다.


“정파의 힘만으로는 부족해. 사파의 협력이 필요하다.”


전생에서도 정사는 서로 싸우다 지친 나머지 손을 잡고 공공의 적을 물리치기로 약조했다.

불가능하지는 않은 일이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사도천주의 마음을 움직여야 했다.


“첫째, 배신과 기습에 대비해서 칠성사의 수뇌를 찾을 것. 둘째, 사도천의 협력을 얻을 것.”


주서천이 제갈승계와 이의채를 바라봤다.


“마지막으로…… 암천회와의 전쟁을 준비할 것.”


제갈승계와 이의채가 서로를 마주봤다.


“으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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