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이 들썩였다.
정마대전을 앞에 둔 중원에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상천팔좌가 아니라 상천칠좌라니!”
신승의 입적.
아니, 정확히는 살해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객잔에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는 신강이나 청해의 사정보다, 소림의 신승으로 가득했다.
“신승께서 그만 마교의 함정에 당하고 말았네.”
“술은 내가 살 테니 얼른 좀 말해보게나!”
“마교의 남양호법, 대마두 방불통이 그동안의 악행을 반성한다면서 중원에 온 건 알고 있나?”
“알고는 있네만, 그게 정말이었나?
마교에서 배교자를 처형하려고 서패호법과 풍마대를 보냈다고는 들었지만…… 그, 대마두가 아닌가.
믿음이 가야지.”
“그 말대로일세. 순 거짓말이었더군.
서패호법과 풍마대는 함정을 취한 초석에 불과했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소림의 전(前) 방장, 신승께서는 당시 고심한 끝에 용서를 구하는 방불통에게 자비를 베풀기로 했네.”
“방금 거짓말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래! 거짓말이었어! 신승께서 선의의 마음으로 보호하자, 그 대마두가 기다렸다는 듯이 뒤를 쳤지!”
“에이잇, 이런 개자식이 있나!”
신승에 관한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분노했다.
소립의 방장이었던 그는 누구보다 구휼에 힘써 왔다.
과거에도 죄를 저지른 사람을 용서하고, 도리어 불법을 전도하며 자비를 베풀기도 해 존경을 받았다.
무공도 무공이지만 행동 덕에 신승이라 불렸다.
비록 소림이 최근 약세라 하지만, 그래도 중원인 중에서 신승을 우습게 보거나 하는 사람은 없었다.
불도(佛徒)는 대마두를 끝까지 보살피려 했던 신승의 최후를 듣고 눈물을 흘리며 그를 칭송했다.
반면 방불통의 악명은 끝없이 늘어나, 마교의 교주에 견줄 정도까지됐다.
만약, 그 대마두가 스승을 잃은 슬픔에 분노한 제자의 주먹에 죽지 않았다면 다들 분개했으리라.
“허어, 화산의 장문인께서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거늘…… 흉사가 끊이질 않는구나.”
“소림은 후계야 정해져 있으니 걱정할 것 없네.
그것보다 정말로 문제는 화산파지.”
“정파. 아니 무림의 영웅이 그리 가버릴 줄이야!”
화산파에 복이 너무 컸기 때문일까, 그 이상으로 좋지 않은 일이 연달아 터졌다.
그중에서도 최악은 단연 정파 무림의 미래를 짊어졌다고 평가되는 주서천의 생사불명 소식이었다.
“정말로 그 주서천이 죽었다는 건가?”
“믿기지 않지만 사실일세. 신승께서 돌아가신 그 자리에 있었다 하더군. 서패호법과 풍마대주에게 합공을 당해 치명상을 입고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더군.”
“허어! 서패호법과 풍마대주라면 마교의 탈마, 천하백대고수들이 아닌가. 그들에게 치명상을 입은 게 사실이라면, 사실상 생사불명이 아니라 죽은 거잖나.”
“그렇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야.”
“이대로 가다간 중원 무림에 마도의 깃발이 꽂히는 것이 아닌가? 큰일이군. 짐을 싸야겠어.”
“앞으로의 일이 걱정이야……”
사도천.
“하하하!”
사도천주가 무릎을 탁 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술을 가져와라! 내 오늘 연회를 열어야겠구나!”
선승과 검룡의 사망 소식이 무림 전역에 퍼졌다.
당연히 사도천에게도 잘 전해졌다.
“하늘이 사도천의 반절을 가져갔지만 모든 걸 주려는구나!”
암천회의 내막을 모르는 사도천주는 이번 사태로 가장 이득을 본 건 사파라고 굳게 믿었다.
“그렇지 않아도 화산파 그놈들이 잘나가는 게 꼴 보기 싫었는데, 아주 잘 됐구나.
정파의 영웅까지 잃었으니 그들에게 향한 민심 또한 되돌아올 것이다.
사람이란 당장 이익이 되지 않는다면 눈을 돌리니까.”
사도천주의 말대로였다.
요 몇 년 동안 화산파의 문은 방문객들로 줄을 이었으나 이제는 아니었다.
반 이상이 사라졌다.
심지어 제물을 다시 돌려 달라는 사람까지 속출하고 있었다.
“흠.”
사도천주는 실컷 웃다가, 무언가 떠올린 듯 웃음을 멈췄다.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
쉬운 건 둘째치고 몇 가지가 수상쩍었다.
‘남양호법의 참회가 거짓말이었다는 건 이상하지 않지만, 뭐만 하면 힘이다 뭐다 하는 그 무식한 놈들이 이 정도나 되는 계책을 냈을 리는 없다.’
마교의 ‘힘’ 이라는 개념에는 물론 지략도 들어간다.
힘이란 건 물리적인 근력이 아닌 능력이다.
다만 이 능력이란 게 오성을 망가뜨리고 마성이 생기는 부작용을 지닌 마공이 대부분이었다.
아닌 사람도 있긴 한데 대부분 조롱받다가 죽는다.
이런 현실 탓에 나서기보다는 숨어 지냈다.
‘무엇보다 아무리 방심했다곤 하지만, 진의 여부도 알 수 없는 마도인에게 당했다는 것이 신경 쓰인다.’
괜한 걱정일지 모르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하오문에게 의뢰할 준비를 해라.”
합비, 무림맹.
“……”
남궁위무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하늘에 먹구름이 끼었다. 약간의 빛도 보지 못했다.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사도천이 많은 걸 얻었다면, 무림맹은 많은 걸 잃었다.
무림맹 회의실의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수뇌부 전부 얼굴에 침통함이 묻어났다.
이제 곧 마교의 침공이 시작되는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재앙이었다.
“상황이 좋지 않소.”
얼마 전에 부족한 재정을 재우려고 주서천의 도움을 받았다.
그런 그를 전장에 보낸 것도 무림맹이다.
세간에선 은혜를 원수로 갚았다는 말도 나오고 있었다.
“황 장로. 수색은 어찌 됐소?”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거지들은 물론이고 산서 정파인들의 손까지 빌렸지만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돌아가신 선승과 그 개자식도 감감무소식이요.”
개자식이란 대마두 방불통을 말했다.
“나무아미타불……”
경인사태가 안타까운 듯 염불을 외웠다.
‘서천아……’
남궁위무가 한숨을 토해 냈다.
“드디어.”
암천회주의 목소리에 만족감이 묻어났다.
“그 성가신 놈이 죽었구나.”
주서천.
이름만 들어도 화가 끓었다.
온갖 훼방을 놓던 놈의 사망 소식이 알려지자 입가에 웃음이 맺혔다.
“천기여. 수고했다.”
“아닙니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천기가 머리를 조아리며 답했다.
“역시 암천의 두뇌로다.”
암천회주의 목소리에는 만족감이 잔뜩 묻어났다.
천기는 마치 앞날을 보고 있듯이 계획을 수립했다.
처음 들었을 때는 과연 그게 가능한가 의구심을 품었다.
천추를 대범하게 노출시켜 움직였고, 홍고에게 접근해 감언이설로 속여 협력 관계를 맺도록 했다.
“일단 그 사람이 의심을 거두고 다른 곳에 시선을 돌린다면 속이는거야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신승의 제자의 경우에는 워낙 괄괄한 성격이고 사문의 명예에 눈이 먼 탓에 움직이는 건 어렵지 않았습니다.”
말이야 쉽지 그리 간단한 게 아니었다.
만약 실패라도 한다면 잃는 것이 너무 컸다.
특히 독룡에게 향한 의심이 확신이 되어 버리면, 정파 측의 행동에 제한이 크게 생긴다.
“다만 시체를 발견하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됐다. 천추의 무형지독에 당하기도 했고, 심장까지 꼼꼼히 확인해 조각낸 다음 구멍을 냈다 했으니 신선이라도 살아 돌아오지는 못할 것이다.
네 신중함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신경 써야 할 일이 남아 있으니 이에 집중하도록 하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요광에게는 말해 줄 테니, 옥형과 개양에게 계획에 차질이 없도록 움직이도록 하라 전해라.”
난적을 처치한 암천회가 접었던 날개를 펼쳤다.
“……”
천기는 머리를 숙여 수긍하면서도 생각에 잠겼다.
‘그래,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살아돌아올 리 없다.
하물며 고작 화경이 아니던가. 과한 걱정이다.’
중원 무림을 발칵 뒤집은 소문은 새외까지도 퍼졌다.
최근 주요 부족을 밀어낸 남만이 시끄러웠다.
“뭣이오?”
최근 남만의 호족 세력과 싸워 차근차근 영토를 넓혀 가는 청화의 토호, 여리가 목소리를 높였다.
“영웅께서 돌아가셨다고?”
“그러네.”
완채의 얼굴도 좋지만은 않았다.
청화 지방은 주요 부족을 토벌한 덕에 많은 성장을 이루었다.
주서천 도움 덕이었다.
중원만큼은 아니지만, 남만 역시 은원 관계를 꽤나 중요시한다.
여리 역시 은혜를 잊지 않는다.
“떠나시기 전에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청하라고 그리 말했건만……”
여리가 진심으로 안타까운 듯 중얼거렸다.
“복수는 가능하겠는가?”
“불가하네. 흉수가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기도 하고, 사살을 명한 마교는 신강을 근거지로 두고 있어.
운남이나 광서 정도라면 어떻게든 몰래 병력을 파견이라도 할 수 있겠지만, 그 위는 무리일세.”
“끄응.”
여리도 억지를 부릴 게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일정 이상의 사병을 움직인다면 그건 더 이상 복수가 아니라, 중원의 침공이 된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그런 분을 데려가다니!”
여리는 답답한지 가슴을 두드리며 소리 질렀다.
“아무런 도움도 드리지 못하는 이런 상황이 원망스럽구나! 이 일을 기억하여, 내 기필코 언젠가는 대월의 이름을 내세워 독립하리라!”
서장, 랍살(拉薩). 서북부의 마부르 산.
해면으로부터 칠 하고도 반 리(里)위의 고원에는 당나라 시절 창건된 거대한 궁전이 세워져 있다.
포달랍궁.
바위산 위로 솟아오른 궁전은 보는 이가 절로 감탄하게 만들었다.
백색과 홍색의 조화로 이뤄진 외벽을 보면 그 어떠한 적도 침입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높이도 높이지만 동서의 폭도 길어, 마치 산 위에 누운 용과 같은 기세였다.
담장이 세워진 외곽은 비탈진 경사로를 따라서 만들었는데 그 통로를 따라가 보니 노승이 앉아 있었다.
누른 빛깔의 법복과 모자를 쓴 게 특징이라면 특징이었다.
라마교의 주요 종파는 영마파, 갈거파, 살가파다.
종객파 역시 영마파, 일명 홍교(紅敎)에서 공부하였으나, 라마교의 부패를 보고 개탄하여 나오게 된다.
이후 홍교를 비롯한 삼대 종파의 교의를 부정하고 지적하며, 승려들의 부패함을 고치려 종파를 세운다.
그 이름이 바로 거루파이며 계율을 중시하고 청정함을 강조했다.
삼대 종파는 거루파를 보고 얼마가지 않아 사라질 거라 생각했으나 전혀 아니었다.
서장인들은 원나라 때부터 썩기 시작한 라마교의 패악에 지쳤던 모양인지,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았다.
“마교, 마교라……”
그 거루파의 수장, 종객파는 얼마전 중원에서 들려온 소식을 듣고 생각에 잠겼다.
“허허허! 그리 허무하게 가시면 어떻게 합니까.
적어도 언제 도와줘야 하는지, 말씀은 하셔야지요.”
종객파는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듯이 중얼거렸다.
운남.
정파 무림이 마교의 침공 준비로 한창 바쁘지만, 점창파는 속해 있지 않았다.
정사대전이 터지면 청해의 곤륜파나 하북의 팽가 등이 수비 임무로 움직이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다.
“그럴 리 없다.”
점창칠공자, 단하성이 부정했다.
“주 대협께서 고작 마두에게 합공받은 걸로 돌아가셨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
헛소문이다.”
비록 두 번뿐이지만, 그 무공은 진짜배기였다.
“맞는 말씀이십니다.”
“그 괴…… 아니, 주서천 대협이시지 않습니까.”
“천마라면 모를까, 고작 사대호법의 합공이지 않았습니까. 죽었다 깨어나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단하성을 따르는 사형제들 역시 부정했다.
위로하려는 목적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특히나 남만에서 대사제라거나 그 외의 사람 같지 않은 괴물들과의 격전을 목격한 이들은 더욱 그랬다.
“사기를 떨어뜨리려고 헛소문을 퍼뜨려 선동하는구나. 말 같지도 않은소리로 현혹하다니! 어림없다!”
단하성이 코웃음을 치며 무시 했다.
그러나 입에 맺힌 웃음은 시간이 지나자 사라졌다.
화산파는 둘째 치고 무림맹에서 어떠한 공표도 없었다.
마치 사기가 떨어질까 봐 숨기는 느낌이었다.
점창파, 아니 점창칠공자처럼 믿지 않는 사람들도 다수 있었지만 그들의 안색 역시 어두워졌다.
만약 정말로 선동을 목적으로 한 헛소문이라면, 침묵이 아닌 부정을 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정정 답변을 해주지 않았다.
하남, 정주.
하남은 소림사가 위치해 있는 만큼 시끄러웠다.
다만 이 일로 치안이 안 좋아지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신승을 잃은 소림사가 눈이 돌아가 아수라처럼 타오르고 있는 탓에 죄인들은 숨죽이며 살았다.
흑도 세력의 대표 하오문 역시 마찬가지였다.
죄를 저지르고 도피해오는 이들이 많으니 특히 그랬다.
하오문주, 강능초는 집무실에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주서천……”
하오문의 활동에 문제가 생간 것보다는 정파의 영웅의 죽음이 더 신경쓰였다.
강능초는 주서천의 여러 신분을 아는 소수다.
한때 도움을 받았으며, 또한 협력을 위해 손을 잡은 이가 죽었다 하니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이곳저곳에서 그를 수소문하는 의뢰가 들어와서 신경을 안쓸래야 안 쓸 수 없었다.
‘빚지는 성격은 아니다.’
얼마나 도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노력은 해 볼 생각이었다.
화산파나 금의상단 동 그와 관련된 사항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면서 하오문도를 불렀다.
청해호(靑海湖).
중원 최대의 염호(鹽湖)로서 북동쪽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지금 이 근방은 무림의 전선으로 지정됐다.
서(西)로는 곤륜 산맥을 비롯한 여러 험한 산맥이 뻗어 있는 탓에, 싸우는 데 적합하지가 않았다.
곤륜파의 도사들이야 제집처럼 돌아다닐 수 있으나 그 외의 정파 무림인들에게는 좋지 않았다.
동으로는 성도인 서녕(西寧)도 있으니 장기화를 대비한 보급이 가능하다.
주위는 산으로 둘러싸인 도시라, 위기 시에 이 길을 통해서 도망칠 수도 있었다.
웅성웅성.
“오늘 저녁은 무엇인지 궁금하군.”
“전선에서 뭘 바라나. 오늘 점심에 나온 똥국만 아니면 되네.”
“어젯밤에 경계 근무 서다가 본 건데, 명문 지파 놈들은 잘만 먹더군.”
“하하, 이 사람아. 그건 명문 지파얘기고.
중소 문파 출신 주제에 꿈도 꾸지 말게나.
노오오오력이 부족한 건데 어쩔 수 없지.”
“에이잇, 더러운 세상!”
워낙 사람이 많다 보니 시끌벅적했다.
평소에 얼굴도 보기 힘들다는 유명인들이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니는 걸 보면서 입을 떡 벌리곤 했다.
“헉! 창룡이다!”
오룡삼봉, 창룡(蒼龍) 남궁선유.
남궁세가주의 적자로서 현 무림맹주인 검성 남궁위무의 손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조금 있으면 이십 대 후반에 들어서지만 나이에 맞지 않는 성취를 이루었다.
“꺄아아악!”
“어머, 어머. 소문대로 잘생겼네.”
“이쪽 본 거 아니야?”
무가의 여식들이 남궁선유를 보고 꺄르르 웃었다.
창룡은 무공도 무공이지만 외모 역시 출중했다.
훤칠한 신장에 옷 위로도 잘 보이는 단련된 근육을 지녀 멀리서 봐도 무심코 감탄하게 된다.
얼굴 역시 잘생겼다.
굵직하게 뻗은 눈썹은 용미(龍眉)를 떠올리게 했고, 눈매는 강직하고 선했다.
이목구비는 오밀조밀하게 잘 잡혀있고, 각진 턱 선은 뚜렷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어디 가는 거지?”
“……어?”
창룡의 발걸음을 따라가던 사람들이 멈춰 섰다.
그들의 시선 끝에는 차가운 걸 넘어서 인형처럼 인간미가 느껴지지 않는 봉황, 모사 제갈수란이 있었다.
“모사. 날이 어두워집니다. 슬슬 들어가시지요.”
“……”
남궁선유의 부름에 제갈수란이 몸을 살짝 돌렸다.
“허억!”
“험!”
구경꾼들 중 사내들이 넋 나간 표정을 지었다.
지평선 너머로 사라져 가는 석양빛을 등에 진 모사미봉의 모습은 이야기 속에 나오는 선녀와 같았다.
제갈수란은 주변의 소란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눈썹을 미미하게 찌푸렸다가 다시 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 등을 돌렸다.
“혹시, 아직도 검룡의 생사가 신경쓰이시는 거요?”
남궁선유가 제갈수란만 들을 수 있도록 작게 물었다.
움찔.
제갈수란이 미세한 반응을 보였다.
“역시나……”
남궁선유가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청해에 정파가 집결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신승과 검룡의 생사불명 소식이 전해졌다.
아니, 말이 생사불명이지 사망 소식이었다.
전쟁을 앞둔 전선이다 보니 소문에 더 민감하다.
아직까지도 그 화제로 떠들썩했다.
당시 전투 편성을 위해 회의 도중이었는데 당시 그 냉정 침착의 모사가 말을 잃고 충격에 잠겼었다.
그 이후로도 제갈수란은 이렇게 가끔씩 생각에 잠긴 듯,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럴 때일수록 정신 차리셔야 하오, 제갈 소저.
검룡이 어찌 됐는지는 모사인 소저께서 더 잘 알고 계시지 않소.”
“……네.”
제갈수란이 말을 하다 말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정말로 유감이오, 제갈 소저. 나역시 오룡삼봉으로서 그를 만나 보고 싶었소. 고인의 명복을 비오.”
남궁선유가 합장 대신 포권으로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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