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四章 (149/254)

‘화산에는 괴물이 있다.’

천재가 아니다.

상식을 넘어선 괴물이었다.

이십사수매화검법의 매화만리향을 보았을 때의 일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코끝에 매화 향이 남아 있다.

그 짙은 매향에 취할 뻔했지만, 등골이 오싹해지는 경각심이 홍고의 정신을 깨우쳤다.

“이대로 뒀다간…… 소림은 도태됩니다.”

태산북두 천년소림의 역사도 끝이다.

그 불안은 주서천과 혈마의 결전으로 극의에 닿았다.

홍고는 중원에서 주서천의 무위에 대해 진실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기뻐할 수 없었다.

감탄은 하되 반기지 않았다.

도리어 초조해져 불안에 떨었다.

“……”

주서천은 홍고와 마주 보고 대화는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의 입을 통해서 진심을 확인하게 됐다.

그리고 충격에 빠졌다.

‘나 때문이라고?’

역사가 미래와 달라진 건 진작 알았지만, 설마하니 이렇게까지 일그러질 줄은 몰랐다.

알고 있는 미래에도 신승과 신권이 방식의 차이로 종종 말다툼을 했다 하지만 토론의 수준 정도였다.

결코 이렇게 감정적으로 번지지는 않았다.

어쩌면 이 일로 그는 방장이 될 수 없을지 모르고, 심상에 문제가 생겨 현경에 오르지 못할 수도 있다.

최악의 가능성이 현실이 됐다.

‘고쳐야 한다!’

잘못을 저질렀으니 어떻게든 수정해 봐야했다.

충격적이긴 하지만 좌절에 빠지지 않았다.

그럴 시간에 다른 수 하나라도 떠올리는 게 나았다.

“네가 정녕 그리 나온다면, 나도 어쩔 수 없구나.”

혜만이 오른손만 들어 반장했다.

“절 힘으로 제압하시려는 겁니까?”

“아니.”

혜만은 그 대신 눈을 감았다.

오른손으로는 손목에 감은 염주를 쥐곤 염불을 작게 외웠다.

“정녕 네 뜻을 이뤄야겠다면, 이노승을 죽이고 가거라.

방 시주께서는 제 뒤에서 벗어나지 마시오.”

“어차피 물러설 곳도 없소.”

뒤로는 절벽이 펼쳐져 있었다.

척봐도 위태로웠다.

까마득한 높이 아래로는 바위를 깎아내는 거센 물줄기가 사나운 짐승처럼 울음을 토해 내고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절벽 탓에 그 아래는 한낮인데도 무저갱처럼 시커먼 암흑으로 가려져 있었다.

“사부님……”

홍고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주먹을 어찌나 세게 쥐었는지 손톱이 파고들어 핏줄기가 흘러나왔다.

“다들 진정하십시오. 너무 흥분하셨습니다.”

주서천은 어떻게든 말리기 위해서 설득에 나섰다.

“주 시주께서는 상관하지 마시오!”

“이런 상황에서 어찌 상관하지 말라는 겁니까!”

주서천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 시간에도 전장에서 수많은 이들이 죽어 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지 않나!”

홍고가 몸을 돌려 주서천을 바라보았다.

“그깟 복수가 중요해? 그게 그리 중요해서 수십 명의 승려들을 죽게 만들고 있냐고!”

주서천은 홍고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원수를 어떻게 구워 삶을지는 알아서 해!

하지만, 지금 이 시간에도 죽어 가고 있는 사람부터 구하라고! 사형제잖아! 가족이잖아!”

“……”

혜만도 홍고도 몸을 흠칫 떨었다.

잠시간의 침묵.

그리고 홍고가 입을 열었다.

“……그래 그대의 말대로다. 화산의 영웅이여.”

홍고의 눈빛이 변했다.

승려치곤 너무나도 급진적이고, 성정이 과한 백보권승은 몸을 원래의 위치로 되돌려 앞으로 향했다.

스승은 제자가 오는 걸 막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다.

“소림을 위해서, 결말을 맺어야 할 듯 싶습니다.”

쐐액!

홍고가 말이 끝나자마자 주먹을 휘둘렀다.

방불통으로 향하는 길, 그 앞에는 혜만이 있었다.

신승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권풍이 쏟아졌음에도 석상처럼 그 자리에 있었다.

툭.

훗날 신권이라 불릴 주먹이 코앞에서 멈췄다.

“어째서 막으시지 않았습니까?”

홍고가 물었다.

“어떠한 적의도 실려 있지 않았기 때문이란다.”

혜만이 감았던 눈을 살며시 뜨며 답했다.

그 입꼬리가 조금씩 올라가고 있었다.

“그리 슬퍼하지 말려무나. 홍고야.”

앞날을 내다보는 듯한 눈동자에 비치고 있는 건, 굳게 다문 입 옆으로 흐르는 눈물이었다.

“언제나 너를 사랑하고 있단다.”

“알고 있습니다.”

“너를 미워하지 않았다는 걸 기억해다오.”

“알고…… 있습니다.”

“걱정이로…… 구나……”

“편히 주무십시오, 사부님.”

퍼억.

“안 돼!”

주서천이 온갖 감정이 뒤섞인 고함을 내질렀다.

“쿨럭!”

혜만이 피를 울컥 토해 내더니,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명치 부근에서부터 복부에 구멍이 생겼다.

눈에 맺힌 빛도 서서히 꺼져 갔다.

그 뒤로는 매미처럼 붙어 있던 방불통도 있었다.

소림 방장 혜만.

활불이라 일컬어지며 수많은 무인들에게 존경을 받은 승려는 천천히, 느릿하게 뒤로 쓰러졌다.

손목에 쥔 염주는 과한 힘이 들어갔는지 끊어졌고, 딸린 염주 알들이 비산했다.

혜만은 절벽 너머로 사라지기 직전까지도 걱정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풍덩.

자그마하게 들려오는 물소리.

절벽 아래와는 달리 그 위는 정적으로 가득찼다.

신권, 아니 홍고는 등만 보인 채 침묵을 지켰다.

“이…… 미친…… 놈아!”

주서천이 분노로 가득한 욕설을 내뱉었다.

“미친놈! 미친놈! 이 미친놈!”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욕만 나왔다.

제자가 스승을 죽였다.

그것도 불학을 공부하는 승려다.

승려가 스승을 제 손으로 죽였다.

입적한 뒤로도 여러 무림인들에게 존경받는 위인, 신승이 힘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제자에게 죽었다.

“검룡 대협! 도대체 무슨 일이오!”

뒤편에서 누군가가 소란을 듣고 찾아왔다.

나이에 맞지 않은 노안, 독룡 당명인이었다.

“백보권승, 홍고는 더 이상 승려가 아니오!”

웅웅웅.

주서천이 쥔 검이 분노에 떨 듯 울어 댔다.

“복수에 눈이 멀어, 미쳐 버려, 지 스승을 살해한 파계승입니다! 저자를 상대할 테니 지원을 요청하십시오!”

“……”

“어서……?”

주서천이 말을 하다 말았다.

“이상하군.”

당명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천독지체라는 걸 감안했는데도 무형지독(無形至毒)의 중독이 늦는군. 그래, 설마하니 만독지체인가?”

뻐끔뻐끔.

주서천이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목소리를 내려 했다가 몸 내부에 생긴 문제를 치유하려고 그만뒀다.

“만나서 반갑네.”

당명인이 담담하게 말했다.

“천추(天樞)라 하네.”

머리가 새하얗게 질렸다가, 다시 되돌아왔다.

온갖 의문들이 떠오르며 꼬리를 물었다.

‘왜?’

절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당명인은 흑영부다.

흑영부에 대해 아는 사람은 적지만, 알 사람들에게는 최우선으로 의심받는다.

그리 눈에 띄는 사람을 천추로 삼았을 리 없다.

조금만 의심받아도 행동에 제한이 생긴다.

그리고 바보도 아니고 천기 정도 되는 사람이 이렇게 뻔히 들킬 계획을 세우겠는가.

그러니 시선을 돌리기 위한 눈속임이라고 생각했다.

추측이 아닌 확신이었다.

남궁위무와 제갈상도 그리 생각했다.

“천기의 전달일세.”

당명인은 웃지도 화내지도 않았다.

처음 봤을 때부터 조금 지친 얼굴로 무감정한 목소리를 냈다.

“책략에 있어, 적이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을 때보다 쉬운 것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랬다.”

“……!”

허를 찔렀다.

천기에게 수를 읽혀 버렸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금방 들킬 일을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확신 탓에 패배해 버렸다.

“참으로 무서운 자야.”

당면인이 느긋한 발걸음으로 가까이 왔다.

몸을 움직이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어떤 독에 중독되었는지는 몰라도 해독이 쉽지가 않았다.

녹안만독공의 구결을 떠올리며 운기 했으나 해독이 중독을 따라가지를 못했다.

“천하를 손바닥 위에 올려 두고 장기를 두는 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졌다.

“이해 못 할 정도의 철저함 또한 무서운 점이지.”

항상 경계했는데도 졌다.

“나 같으면, 십이 시진 동안 감시하면서 회에 대해 어찌 알았는지 정보의 출처를 토해 내도록 했을 걸세.”

최초의 패배였으나, 그 패배가 너무나도 컸다.

“하지만 너무 위험하다며 반대하더군.”

당명인은 성난 소처럼 거세게 날뛰는 심장의 위를 손가락으로 살며시 짚었다.

“솔직히, 욕심이 없는 건 아닐세.”

천독지체의 몸이 흔한 건 아니니까.

“무엇보다 회를 생각해 보면 자네를 죽이는 것보단 생포해 두는 것이 이득이야.”

암천회에 대해서 많은 걸 알고 있다.

어디부터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그러나 뭘 알 건, 알지 말아야 할 걸 알고 있었다.

“또한 그동안 세워 온 대계의 실패의 원인이 누구에게 있는지 생각해보면 참으로 대단한 자야.

그 누구보다 증오할 터인데, 공과 사는 구별해야 한다면서 위험하니 사살하라니.”

당명인이 가슴 위를 짚은 손을 밀어냈다.

치이익.

손가락 끝에서 극독의 기가 흘러나오는 듯했다.

아무런 빛깔도 없었고, 냄새도 없었지만 독이 분명했다.

손가락이 닿은 천이 파도처럼 울렁이더니, 불에 탄 재처럼 흩어졌다.

그뿐만이 아니다.

천 아래의 피부도 잿빛으로 변하면서 이윽고 썩기 시작했다.

흉부를 보호하는 갈비가 얼마 지나지 않아 나타났고, 뼈 역시 흩어지면서 끝내 심장까지 보였다.

“말이 길어져서 미안하네. 그리고……”

푸욱.

당명인이 오른팔을 쭉 뻗었다.

손끝이 심장을 짓뭉개면서 등 뒤로 튀어나왔다.

“잘 가게나.”

“크……히억……!”

주서천은 깊은 숨을 토해 내며, 뒤로 쓰러졌다.

‘천기……’

천추의 뒷모습에 얼굴도 모르는 암천의 지혜가 보였다.

꺼져 가는 의식 속에서 그가 웃는 게 떠올랐다.

“자, 그러면 목을……”

심장이 조각났는데도 목을 잘라 확인하려 한다.

그 철저함은 무시무시할 정도였다.

당명인이 주서천이 쥔 검을 대신 집었다.

그 와중에 지문이 남지 않도록 소매로 잡는 걸 잊지 않았다.

모든 게 끝나려는 순간.

파바밧!

뒤에서부터 그림자가 덮쳐 왔다.

당명인이 놀라 후위를 향해 태아를 휘둘렀으나, 애꿎은 허공만을 갈랐다.

“이런!”

아차 싶어서 허리를 원래 위치로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지면에 누워 있던 주서천이 없었다.

눈을 돌려 보니 어깨에 둘러멘 여인이 보였다.

“ ……누구지?”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여인이었다.

무감정하면서도 남자의 시선을 이끄는 미녀였다.

다만 정파의 여인은 아닌지 옷차림이 무척 엄했다.

흑의를 입었으나 천의 면적이 몹시 좁았다.

피부 위로는 불길한 빛을 은은히 내뿜는 문신이 보였다.

기괴한 도형이나 혹은 고문자가 섞여 있어서 무척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다.

“마교……?”

겉만 보면 마도의 주술을 사용하는 듯했다.

실제로 그 기색이 비슷했다.

“……”

탓!

하지만 그 의문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정체를 가늠기도 전에 그녀가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급히 따라가 보니, 수면 아래로 떨어져 사라지는 걸 볼 수 있었다.

“왜 막지 않았…… 됐다.”

당명인은 홍고에게 뭐라 말을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태산을 담을 것처럼 보였던 그 등이 작아 보였다.

‘번뇌에 사로잡혀 미친 게냐, 홍고여.

혹은 주화입마에 빠져 심마라도 생긴 것이냐.’

소림의 기대주, 백보권승이 언제 이리 미쳤는지는 알 수 없었다.

화산파나 주서천에 대한 질투인지, 아니면 스승과의 반목이 계속되면서 정신이 나간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그래도 소림의 유일한 기둥이자, 지 스승을 스스로 무너뜨리다니.’

상천팔좌의 빈자리는 누가 채운단 말인가.

무엇보다 신승은 늙었다.

굳이 살해하지 않아도, 방장의 자리는 거저 얻을 예정이지 않았는가.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무엇이 그리 소중해서 스승을 죽였느냐.

소림의 명예와 힘이 중요했었나, 쇠락과 도태가 두려웠나.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해서 그런……

그야말로 파계승이로다.’

당명인은 고개를 절례절레 흔들었다.

‘더 이상 중으로 보기도 힘들군.

저자야말로 불교에서 마라라 불리는 것이 아니겠는가.’

순수한 혐오를 담은 눈길로 홍고를 쳐다봤다가, 주서천이 떨어진 절벽을 살폈다.

‘심장을 조각냈다.

혹여나 심장의 위치가 다를지 몰라 가슴을 열어 직접 확인해 구멍을 냈다.

게다가 무형지독까지 중독됐으니, 화타가 살아 돌아와도 살리지 못하겠지.’

비록 누군가가 데려가긴 했지만, 저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이 주변의 물살은 강하고 빠른 데다가 지형 역시 좋지 않아 몸 성히 떨어져도 살아남기가 힘들다.

적림십팔채의 수적들조차도 얼씬하지 않는 곳이다.

“슬슬 가세나.”

당명인이 홍고를 불렀다.

“소림 방장.”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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