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불통은 등에서 극심한 통증을 느끼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척추부터 시작해 배까지 아팠다.
이제 막 다리의 기맥으로부터 내공을 운용하려 했는데 도중에 공격을 받아 극심한 내상을 입었다.
정선이 잠시 아찔해져 하마터면 쓰러질 뻔했다.
“이, 이런!”
방불통이 근처의 나뭇가지를 들어 지팡이 삼아 겨우 일어났다.
힘이 없어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그 얼굴은 백지장처럼 창백했고, 아무렇게나 자란 수염은 계속해서 흔들렸다.
“끝이다!”
그사이에 추격해 온 홍고가 멀리서부터 백보신권의 절초를 날렸다.
쿠와아앙!
백 보 바깥에서 권격이 날아왔다.
주먹을 감싼 건 강기요, 그 뒤로 나오는 건 기의 폭풍이었다.
주변의 나무는 권압에 못 이겨 마치 궁신탄영을 하는 것처럼 굽어 버렸다.
나뭇가지는 폭풍에 춤추듯이 움직이더니, 그 위에 달려 있던 잎들을 전부 토해 냈다.
“웅크리시오!”
일촉즉발의 순간.
선승의 외침이 들렸다.
방불통은 혜만의 말대로 따라 머리를 팔로 감싸 안아 웅크렸다.
백보신권의 절초가 방불통을 후려치려는 순간 무형수가 나타나 그 주먹을 받아 냈다.
남들의 눈으로 본다면 권강이 갑자기 대기의 벽에 막혀 사라진 것처럼보이리라.
“사부님.”
홍고는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자칫 잘못 보면 오해를 받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아니, 이미 제자로서 우(愚)를 범했다.
하지만 소림을 생각하는 그 마음과 의지가 등을 떠민다.
물러나지 않게 만들었다.
스승에게 무슨 짓이냐고 비난받을지언정 포기할 수는 없었다.
홍고는 앞으로의 평가가 더 중요했다.
“화는…… 화를 낳을 뿐이니라. 너 역시 부처님이 자비를 베풀라는 말의 뜻을 알고 있지 않느냐.”
혜만은 슬픈 듯이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모를 리 없다.
누구보다 소림을 사랑하여 밤낮을 공부하고 수련했던 홍고였다.
장서각주가 읽은 서적이나 불경의 수만큼 알고 있었다.
“하지만 때로는 불법을 지켜야 할때가 있지 않습니까.
때로는 팔부신중(八部神衆) 제석천(帝釋天)이 불법의 호법신이 되어 아수라의 군대를 정벌한 것처럼 전쟁을 해야 할때도 있습니다.”
홍보의 고집은 꺾일 생각이 없었다.
그 신념은 천년소림처럼 굳건했다.
“신승, 방해다!”
풍마대주의 외침이, 마공이 대기를 찢어발긴다.
공기를 집어삼키고, 대기압이 뒤틀리고, 날씨를 뒤바꾸었다.
검의 주변에 바람이 나타나 몰아쳤다.
호교팔백공 중 풍마공(風魔功)!
누가 본다면 바람이 저절로 분 것 같지만 다르다.
검에 실린 기에 바람을 뒤섞은 뒤, 폭발적인 힘을 이용해 폭풍처럼 만들어내 주변을 갈기갈기 찢는다.
풍은대가 이 자리에 있었더라면 그 힘이 몇 배나 늘어났겠지만, 없는 걸 찾을 수 없으니 별수 없었다.
“죽……”
어라, 라는 뒷말은 공허하게 퍼졌다.
그 대신 이어진 건 무언가 박살나는 소리였다.
콰앙!
풍마대주의 몸이 무너졌다.
손에 쥔 검이 스르륵 풀렸다.
그가 눈을 까뒤집었다.
누군가의 손이 머리를 짓눌렀다.
손바닥에서부터 흘러나온 막강한 공력이 정수리부터 시작해 뇌를 곤죽으로 만들고 기맥을 타고 온몸에 닿았다.
“케헥!”
몸이 비명을 내지른다. 독기라고 외친다.
그리고 독기에 포함된 건 수수께끼의 무거움이었다.
풍마대주는 뭘 하지도 못한 채, 누군가에게 머리가 짓눌려 몸을 지면에 처박았다.
“그대는……”
혜만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주 시주!”
홍진이 가르쳐 준 곳으로 전력을 다해 달려왔다.
청각을 활성화하고 집중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갈 수 있었다.
마침 순간에 맞춰 잘 도착했다.
“이게 뭔……?”
금도마가 눈앞의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절정의 순간, 누군가 갑자기 나타나더니 풍마대주의 머리를 짓눌러 땅에 처박았다.
머리가 땅 밑에 빨려 들어간 것처럼 박혀 있어서 생사를 확인할 수 없었다.
돌에 맞은 개구리처럼 팔다리를 움찔거리기는 한데, 머리가 박힌 곳에서 피가 철철 흐르는 걸 보면 아무래도 살아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풍마대주가……”
“풍마대주였어?”
홍진에게 풍마대주도 있다는 걸 듣기는 했는데, 이 사람일 줄은 몰랐다.
일단 급해 보여서 날아오자마자 땅에 처박고 시작했다.
“기습에 성공해서 다행이군.”
주서천이 발로 풍마대주의 뒤통수를 짓눌렀다.
쿠웅!
물론 그냥 밟은 건 아니다.
천근추의 묘리를 잔뜩 담아서 힘껏 짓눌렀다.
그 중거로 땅이 흔들리더니, 움푹 가라앉았다.
특히나 머리가 박힌 부분이 심했다.
충격에 의해 지반이 뒤집혔는데, 그 탓에 돌무더기가 풍마대주를 어깨까지 집어삼켜 버렸다.
호흡과 맥박이 멈춘 것까지 확인하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풍마대주라면 천하백대고수.
괜히 살아나기라도 해서 방해한다면 어떤 방해가 될지 모른다.
“주 시주, 주 시주라면…… 검룡, 주서천!”
금도마의 목소리가 저절로 높아졌다.
현 무림에서 검룡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정사마 할 것 없이 연령과 남녀 불문, 모두가 안다.
그 이름을 모른다면 무림인, 아니 중원인이 아니라는 말도 있을 정도다.
실제로 중원인은 물론이고 새외에까지 알려졌다.
‘생각보다 상황이 안 좋다.’
혜만과 홍고가 대치한 걸 보고 아연실색했다.
하나 분위기가 험해 보여도 최악의 사태는 면했다.
“정말이지 온갖 훼방을 하는구나!”
금도마의 도신이 환하게 빛났다.
“설마하니 소림의 땡중에게 모든 걸 맡길 줄이야!”
금도마가 칼을 크게 휘둘렀다.
도신에 실린 강기가 여전히 휘황찬란한 색을 내뱉으며 주서천을 노렸다.
주서천은 신행백변으로 녹안만독공과 만중검의 응용을 관두고, 허리만 틀어서 검을 들어 방어했다.
째애앵!
검강과 도강이 부딪쳤다.
다른 이들과 달리 그 충격이 보다 컸다.
금양파홍도법으로 인해 도신에서 극도의 열기가 뿜어져 나왔는데, 피부가 익을 정도로 뜨거웠다.
‘역시나 금양파홍도법. 명불허전이로구나!’
마교의 무공은 일반적인 무공보다 파괴적인 측면에서 뛰어나다.
원래라면 한서불침의 육체에 현경에 올랐으니 피해를 입지 않을 텐데, 금도마의 열기는 달랐다.
금도마 본인이 극마의 고수이기도 하고 마공의 특징까지 합해 자칫 잘못하면 내외상을 입을지 모른다.
그 증거로 명검의 반열에 드는 태아의 검신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좋지 않은 반응이었다.
“소문대로 내공만은 괴물이로구나!”
금도마도 주서천 못지 않게 대경했다.
마교는 교리가 교리다 보니, 고수가 되면 그 앞길은 더더욱 편해진다.
예를 들어 영약 같은 경우도 누구에게 빼앗거나 혹은 호법의 권세를이용해 독차지할 수도 있었다.
금도마 역시 영약을 밥 먹듯이 먹은 건 아니지만, 육체가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한계까지 복용했다.
극마 정도에 오니 내공은 잘 끊이지 않았다.
연령도 제법 있다보니 그 양이 상당했다.
그러나 화산의 제자와 검을 맞대보니 우물 안의 개구리란 걸 깨달았다. 부딪치는 공력이 적지 않다.
“많이 듣는다.”
주서천이 대답하는 동시에 검을 튕겨내 뒤로 물러났다.
‘접촉하면 좋지 않다.’
태아의 상태가 썩 좋지만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혈마와의 결전이라거나 여러 가지 싸움으로 무리를 많이 시켰다.
금양파홍도법과 부딪치니 부담이 심했다.
강기로 감싸 안아 봤지만 별반 다를 것 없었다.
“자하신공.”
금도마가 가늘게 뜬 눈으로 주서천의 검을 살폈다.
검신을 두르고 있는 강기는 자색이었다.
“도대체 마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거냐?”
주서천은 금도마의 움직임을 견제하며 물었다.
‘이해가 안 가.’
전생에서 남양호법은 대마두로서 삶을 마감했다.
시기가 언제인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래도 십 년 안팎이다. 마도전쟁이 끝날 무렵이다.
누구보다 마도인으로서 살아온 대마두가 뜬금없이 개심했다면서 배교자가 된 건 이상했다.
서패호법이나 풍마대, 풍은대는 상관없었다.
남양호법이 정보를 풀면 끝이 없을 테니 확실하게 죽여야 했다.
정예를 보내는 건 당연한 행동이었다.
“네놈에게 대답할 생각 따위는 없다. 그나저나 잘됐구나.”
금도마의 눈동자가 불타올랐다.
남만의 대사제가 떠오르는 안광이었다.
대신 그 색이 녹색이 아니라 붉은색이었다.
그것도 소름 끼치고 기분 나쁜 빛이다.
“본 교와는 혈근경의 일로 빛이 있었지?”
금도마가 웃음을 흘리며 사라졌다.
정말로 사라진 건 아니다.
안 보일만큼 빠르게 움직였다.
심지어 이동도 그저 움직인 것만이 아니었다.
금양파홍도법을 운용했는지, 주변의 대기가 열기로 일그러졌다.
마치 불덩어리가 날아오는 듯했다.
“현 무림에서 제일 잘나신 영웅 나으리가 아니신가!
마도의 힘을 보여주도록 하마!”
“실컷 봤다.”
왼발을 내디디고 오른팔을 움직였다.
무형의 강기가 밀집되어 검신을 둘러쌌다.
어떠한 초식도 포함되지 않은 검.
그러나 단순한 만큼 신속하고 강맹했다.
적이 본다면 그저 최속으로 휘두른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받아친다면 큰코 다친다.
무형검강이었다.
부웅.
“허?”
그러나 다친 건 주서천이었다.
입바깥으로 놀란 목소리가 나왔다.
금도마의 움직임은 확실히 포착했다.
속도나 방향, 발걸음까지 확인하고 예견된 장소로 검을 휘둘렀다.
그런데 검이 지나가니 그 몸이 안개처럼 흩어졌다.
“크하하핫!”
그 대신 바로 옆에서 나타났다.
조소가 뒤섞인 도강이 참수를 위해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리그어졌다.
휙!
하지만 빗나간 건 금도마도 마찬가지였다.
그리 자신 있게 초식을 날렸으나 옷 끝도 건드리지 못했다.
“흥!”
금도마는 하단에서 상단으로 다시 올렸다.
부웅, 하고 무거운 소리가 났다.
일그러진 대기도 흔들렸다.
심지어 눈까지 괴롭히는 금빛도 연달아 빛났다.
시선을 끌려는 수라면 이보다 좋은건 없다.
아까부터 눈을 괴롭히는 것이 무척 거슬렸다.
“아!”
머릿속에서 어떤 기억이 떠올랐다.
‘어디!’
시험 삼아 다시 검을 휘둘러 봤다.
그러나 이번에도 애꿎은 허공만 베었다.
금도마가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맞추지 못한 자신을 비웃듯이 음산한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과연!”
무형검강을 거두며 방법을 바꿨다.
그 대신 검신이 자색으로 물들었다.
마치 금색의 빛에 대응하듯, 화려하진 않지만 은은한 빛이 나왔다.
‘화우선형!’
제일식을 쏘아 내고 제이식으로 잇는다.
부채꼴 모양으로 펴진 자색의 파장이 주변을 뒤덮었다.
“큿!”
금도마의 입에서 침음이 흘러나왔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게 보였다.
다만 여기에서 일차적인 변화가 있었다.
방금 전까지 앞에 있었는데,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너무 빨라서 못 본 게 아니라 원래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신루(屋樓)로군!”
금도마가 듣자마자 얼굴을 구겼다.
대놓고 써진 표정을 보고 확신할 수 있었다.
신루란, 기온 차의 변화가 극심해지고 대기가 불안정해지면 환상을 만들어 내는 현상이다.
전부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그 원인은 기온의 차와 빛이라 두고 있다.
특히 사막에서 자주 발생하는 현상이라 감숙의 고비 사막 때 여러 번 본 적 있었다.
눈부신 황금의 광채와 극도의 열기를 생각해 보면 딱 알맞은 수법이었다.
신루를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다면공격이 빗나간 것도 이해가 간다.
그래서 일부러 자하신공으로 기를 잔뜩 분출해 주변의 열기를 엉망으로 해 놓았다.
빛과 열기를 지워 낼 수 있다면 금양파홍도법의 비밀, 신루의 환도(幻刀) 역시 파해할 수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알았단 말이냐?’
금양파홍도법의 비밀, 신루의 환도는 수련자 외에는 모른다.
그것도 극마가 조건이었다.
대부분이 환도가 아닌 패도(悼刀)에 머물러 끝났다.
하물며 수련자도 잘 모르는 것을 ㅔ이제 막 싸운 정파의 애송이가 한눈에 알아봤으니 황당할 수밖에.
“명불허전이라 하지 않았나.”
주서천이 금도마의 마음을 읽은 것처럼 답했다.
전생에서 정마대전에 대한 기록도 읽었다.
당연히 사대호법 정도 되는 주요 인물에 대해 있었다.
읽은 지는 오래되어 신루의 환도에 대해서는 바로 기억해 낼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직접 보니 떠올랐다.
“후웁!”
황금의 광채가 아닌, 자줏빛의 광채가 대신 덮었다.
열기 역시 기의 파도에 밀려 사라졌다.
대기층의 기온이 곧바로 돌아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환영은 사라졌다.
대신 약 사 척 정도의 거리에 금도마가 나타났다.
“썅!”
금도마가 적지 않게 당황했는지, 욕설을 내뱉었다.
‘사대호법이 이리도 허술했나.’
주서천이 피식 웃으면서 금도마에게 접근했다.
허술한 게 아니다. 적이 너무나도 나빴다.
금양파홍도법의 비밀이자 약점이 알려져 있었고,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화경을 넘어선 절대고수였다.
금도마가 어떻게든 반격하려고 패도를 휘둘러 도격을 날렸으나 검격에 부딪쳐 전부 사라졌다.
주서천은 금도마의 쓸데없는 짓을막기 위해 칼을 쥔 오른팔을 잘랐다.
서걱!
“아악!”
금도마가 팔을 붙잡고 비명을 내지른다.
웬만한 무인들도 어쩔 줄 몰라 하는 대마두를 너무나도 손쉽게 제압해, 남은 팔과 다리를 부러뜨렸다.
“자, 말해 봐라. 도대체 뭐가 숨겨져 있는 거지?”
못 움직이게 한 다음, 입 안에 천조각을 넣기 전 물었다.
“크, 큭……”
금도마가 입꼬리를 비틀며 웃었다.
눈매 또한 기분 나쁘게 휘었다.
“너희…… 정파인은…… 항상 그런 식이지……”
팔을 잃고, 나머지 팔다리가 부러졌는데도 잘만 말했다.
“마도인이…… 반성, 하고…… 개심한 것을 믿지 않아…… 무슨 말을 했건, 조금도…… 믿지 않는다.
흐흐흐…… 어차피 어떤 말을 하건 소용없겠지.
너희가 원하는 대답이 아닐 테니까……”
금도마가 큭큭 하고 웃었다.
주서천은 어쩔 수 없이 금도마의 수혈을 짚었다.
“한숨 푹 자라, 서패호법.”
묻고 싶은 게 많았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마교의 사대호법보다는 소림이 신경 쓰였다.
“그러니 제발 별일 없어라!”
괜한 불안감에 입으로 옮겼다.
그사이에 또 이동한 모양이었다.
수풀을 통해서 기척이 느껴지는 곳으로 움직였다.
벼랑 끝까지 물린 방불통과 그 앞에 서서 보호하려는 듯 앞을 막아선 소림의 방장이 서 있었다.
그리고 그 제자가 대면한 채로 이를 갈고 있었다.
“지금 막 서패호법을 처리하고 왔습니다.
백보권승께서는 진정하십시오.”
주서천은 홍고의 등을 보고 조심스레 말을 건냈다.
“소림의 사정이니 끼어들지 말아주시오!”
홍고가 고개만 살짝 돌리고 경고했다.
번뜩 뜬 눈에는 불도를 걷는 사람과 거리가 먼 살의가 보였다.
“만약, 또다시 방해한다면……”
‘큰일 났다.’
아무래도 혈근경 때의 한이 완전하게 해소되지 못한 듯했다.
상황이 생각보다 안 좋았다.
말리면 철천지원수가 될 분위기였다.
“네가 정말 내 제자가 맞느냐?”
제자의 눈을 본 스승이 물었다.
탓하는 어조가 아니었다. 의심도 아니었다.
신승의 눈에는 걱정과 슬픔이 묻어났다.
“홍고야…… 무엇이냐. 무엇이 널그리 몰아 넣었느냐?”
“무엇이 그리 몰아 넣었냐고?”
홍고는 그 말을 천천히 곱씹었다.
“아무도 절 몰아넣지 않았습니다, 사부님.”
훗날 신권이라 불릴 절대고수가 답했다.
그 목소리는 북풍한설이 부는 것처럼 차가웠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을 뿐 입니다.”
사십 년 전의 복수. 그리고 미래를 위한 전진이었다.
“불법을 소림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과한 수도 얼마든지 쓰겠습니다. 후에 불초 제자가 끼친 무례는 얼마든지 벌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앞에서 비켜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아니, 그럴 수는 없다.”
무형수를 거둔 혜만이 합장했다.
늙은 중의 몸은 빈틈투성이였다.
“부처님께서 ‘성내지 말라. 누가 너에게 성내어도 성냄으로 갚지 말라.’ 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느냐.
또한 ‘누가 와서 그대의 팔을 자르더라도 원망하지 말라. 치료를 해 주어도 반가운 마음을 내지 말라.’ 고도 하셨다.”
잡아함경의 가르침이다.
“복수심과 증오심으로는 화해가 될 수 없음을 말씀하신 것임을 너역시 알고 있지 않느냐.”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진실된 사람에게나 통용되는 말입니다.
필요하면 얼마든지 거짓을 고하는 자의 말인데, 어찌 믿으란 말입니까?”
마치 윤회처럼 말이 돌고 있었다.
스승은 원수의 반성을 받아들이고 자비를 베풀라 하지만, 제자는 그 반성에 진의가 있는지 의심했다.
그러니 일단 소림으로 데려가 판단하라고 했지만, 이 역시 함정일지 모른다며 거부한다.
‘이를 어찌할꼬……’
신승은 애가 탔다.
여기에서 양보할 수는 없었다.
말싸움이나 방식의 차이라면 물러날 수 있다.
그러나 방불통의 경우는 달랐다.
과거의 죄를 뉘우치는 사람을 돌보지 않고 목숨을 빼앗는 것과 같다.
무엇보다 지금 여기에서 수용하게 된다면, 소림은 앞으로 수라도의 길을 걸으리라.
“만약, 만약의 일입니다.”
홍고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무림은 지금 소림이 복수를 위해 움직인 걸 알고 있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으나, 이대로 놓아주고, 누군가에게 철권마가 죽는다면 소림을 이제 어찌 보겠습니까?”
“그 또한 명예욕이 아니겠느냐. 탐욕을 버리거라.
탐욕은 진에와 우치를 비롯한 번뇌를 부른다.”
“정말로 답답하십니다!”
홍고가 가슴을 두드리며 성냈다.
“그러면 소림이 욕먹는 걸 가만히지켜보고 있으란 겁니까? 쇠락해 가는 걸 보고만 있으라니요!”
소림을 낮잡아 보는 것이 싫었다.
무시하는 걸 보고 싶지가 않았다.
실제로 세간에선 예전보다 못하다는 평을 듣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열불이 터졌다.
“방장이선 사부님께서도 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요즘에는 북두에 소림 대신 화산이 들어가야 하지 않냐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현 무림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는 건 화산파다.
비록 얼마 전에 장문인을 잃어 최대의 위기에 빠졌으나, 검룡의 적절한 지혜 덕에 벗어날 수 있었다.
그 전에는 상천십좌와 더불어 정파의 최고 영웅을 배출한 덕에 제자가 되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심지어 어떻게든 연을 만들어 보려고 재물을 바리바리 싸 들고 와서 창고가 터질 지경이었다.
손님이 오면 대접해야 하기에 그만큼 돈이 소비됐지만, 그걸 감안해도 돈은 충분히 남았다.
화산파는 남은 돈으로 구휼을 시작했다.
명색의 도가 문파이니 돈이 남는다고 사치를 부릴 수는 없었다.
그래서 후계 양성, 수련동이나 거처의 수리, 약품 등 필요 비용을 제외하곤 백성을 도왔다.
화산파의 이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중원 전역에 퍼지면서 무림인 할 것 없이 사람들에게 칭송받았다.
위인의 배출부터 시작해 매화검수를 비롯한 정예를 길러 내고 약자를 도우니 열광할 수밖에 없다.
그에 비해 소림은 이렇다 할 실적없이 떨어지는 중이라 그 입지가 조금씩 작아지고 있었다.
“만약, 이대로 소림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면…… 화산에 밀려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될 겁니다.”
머릿속으로 정혈대전의 일이 떠올랐다.
“아둔한 녀석!”
혜만이 홍고에게 소리쳤다.
“화산의 검이 드높아지고, 보다 많은 사람을 도와 구할 수 있다면 그건 무림의 홍복이지, 나쁜 것이 아니다. 남을 질시하는 것은 좋지 않느니라.”
질투.
그 말이 어떠한 검보다 날카롭고 뼈아팠다.
홍고는 등 뒤에서 바라볼 화산의 영웅이 고비 사막에서 어떤 활약을 했는지 떠올리며 이를 깨물었다.
‘그래. 질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개개인의 질투는 아니었다.
홍고는 소림을 사랑했다.
태산북두라 일컬어지며 존경을 받는 소림을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했다.
주서천이 반야신공을 돌려주려고 소림에 와서 비무를 했을 때 홍고는 소림이 제일이란 마음을 버렸을까?
아니다.
승복했으나 그 마음을 전부 버리지는 않았다.
스승 앞에서 아닌 척 했던 것뿐이었다.
“소승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보다 완벽한 소림을 만들기 위해서 수련하고 또 수련했다.
노력한 덕분일까 제법 큰 성취가 있었다.
화경을 넘어서 다음 경지의 계단이 보이기 시작했다.
비록 개인으로서는 패배했으나 이를 반면교사 삼아 노력한다면 최후에는 소림이 웃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약 반년 전, 정혈대전 때의 일로 그 생각이 송두리째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