쐐애액!
금으로 물든 도신이 대기를 갈랐다.
시커먼 색이 아닌,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금색의 도강이 빛났다.
혜만과 홍고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금도마의 도강은 방불통의 머리를 쪼개기 위해 수직선을 그었다.
“어허!”
혜만은 도중의 말을 끊고 어림없다는 듯 몸을 돌려 응수에 나셨다.
그의 눈이 가기도 전에, 손이 출수하여 금도마의 도신을 부드럽게 후려쳤다.
콰앙!
그러나 그 위력은 전혀 부드럽지 않았다.
그 강맹함이 몸에 전해져 기맥과 혈맥이 움츠러들고 떨렸다.
금도마는 침음을 내뱉으며, 혜만을 보았는데 그의 모습이 무척이나 이질적이었다.
가슴 앞으로 합장을 하고 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팔이 여러 개인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이 팔로 각각 홍고와 금도마를 막고 있었다.
“천수구공(千手救功)!”
금도마가 침음 섞인 고함을 내질렀다.
불교의 보살, 관세음보살에게는 중생의 모든 것을 듣고 보며 보살피기 위해 천 개의 손과 눈이 있다 한다.
그래서 천수천안(千手千眼)관세음보살이라고도 불렸는데, 천수구공의 근원은 이 전수이다.
소림사의 여타 수공들과 비교해도 손에 꼽히는 절공으로서 선천나한십팔수, 나한십팔수, 달마십 팔수와도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절세의 수공(手功)이었다.
성취가 높아질수록 일수에 여러 움직임을 동시에 할 수 있어, 정말로 천 개의 손을 쓰는 건 아니나 그만큼 여러 손을 한꺼번에 쓰는 것처럼 보인다.
“스승과 제자의 대화에 껴들 생각없다! 방해하지 않을 테니 뒤에 그놈 넘기고 꺼져라!”
금양도가 하단전의 마기를 폭발시키자 대기가 들끓었다.
피부로 확 와 닿는 열기였다.
‘과연 금양파홍도법!’
혜만이 짐짓 감탄했다.
금양파홍도법은 이름에 걸맞게 양공(陽功)에 분류됐는데, 단순히 열화공이 아닌 파괴에 중점을 두었다.
부딪치면 그 부위가 붉게 달아오르다가 철이건 살이건 간에 박살이 나는 특징을 지녔다.
위력도 위력이지만 열기까지 내포해 싸우기가 무척 까다롭다.
째애앵!
그러나 자랑하는 금양파홍도법도 혜만에게는 별로 통하지 않았다.
자랑하는 열기조차 주변이 퍼지지 못했다.
마치 혜만에게 보이지 않는 손이나 막이 있는 것처럼, 열기가 하나도 새어 가지 않게 막아 냈다.
휘두른 칼이야 두말할 것도 없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로군!”
금도마가 혀를 차며 외쳤다.
방금 전에 칼만 휘두른 게 아니었다.
도강이 부딪친 순간 열기를 뽑아내고 넓게 퍼뜨렸다.
아무리 천수구공이라 해도 보이지 않는 열기를 어찌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 낸 공격법이었다.
그러나 이게 웬일.
그 약간의 열기조차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하여 말끔하게 사라졌다.
혜만은 물론이고 홍고나 방불통에게도 닿지 못했다.
“부처님의 손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네.”
심상구현 무형수(無形手).
혜만이 관세음보살처럼 사람을 보살피고, 좀 더 돕기 위한 마음을 쌓아 가며 만들어 낸 마음이다.
화경의 벽을 넘어 현경이 되는 순간 그 마음은 현실이 되어 물리 법칙을 뛰어넘었다.
의지만으로 보이지 않는 손을 만들어 내는 능력.
단숨에 여럿을 쓸 수는 없고, 발현되는 시간도 순간적이라는 제약이 있지만, 그래도 강력했다.
“신승, 이 늙은 중이……!”
금도마는 연달아 공격이 실패하자 열이 받는 듯 들끓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도움이 되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중간에 낀 방불통이 사과했다.
오랫동안 추격당해서 그런지 몸이 엉망이었다.
내공도 대부분 소진해 눈앞의 고수들이 공격해 오면 어찌해 볼 수가 없었다.
“괜찮…… 홍고야!”
혜만이 또다시 몸을 틀었다.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백보신권의 권격이 방불통의 흉부에 꽂혔으리라.
“지금 여기서 철권마를 놓치면, 세간에서 저희 소림을 어찌 바라볼지 생각은 해 보셨습니까!”
홍고가 울분을 터뜨리듯 외쳤다.
“소림이 낳았던 치욕이자 숙원이었던 혈승의 일을 해결하지 못해 남에게 맡겼으며, 사십 년 전의 학살을저지른 원수조차 놓아주는 꼴이 되는 겁니다!”
강호는 은원 관계로 돌아간다.
정파도 사파도 마도도 그리고 속하지 않은 이들도 이를 중시한다.
이 사상과 사회는 태초에서부터 내려왔다.
앞으로도 이어질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후대는 이리 평가하리라.
“소림이 힘이 부족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고!
예전만 못하다고 말입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무림은 결국 힘의 세계다.
은원을 해결해 내지 못하면 그건 힘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라고 우습계 볼지도 모른다.
물론 자비를 베풀어 용서함에 따라 존경을 받을지도 모르겠지만 홍고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소림이 우습게 보이는 게 싫었다.
약하다고 평가되는 게 화가 났다.
명예가 실추되는 게 화가 났다.
방불통은 어차피 대마두다.
죽인다 할지라도 그 누구도 비난하지 않는다.
아니, 도리어 ‘마교도는 믿을 수 없으며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니 당연한 처사다.’ 라고 말하리라.
“그게 잘못된 겁니까?”
감정의 폭풍이 느껴졌다.
“사십 년 전의 학살을 일으킨 대마두를 믿을 수 없는 게! 사형제들의 복수를 하는 것이! 힘이 부족하다며 비웃음 당할 일이 싫은 게!”
마치, 상처받은 야수가 포효하는 것 같았다.
“정녕 그리도 잘못된 일이란 말입니까!”
“풍마대주!”
금도마의 입가에 사악한 웃음이 번졌다.
“신승을 친다!”
서패호법의 외침에 풍마대주가 날아왔다.
“어딜!”
풍마대주를 상대하던 풍진이 그 뒤를 따르려 했으나, 눈치 빠른 풍마대원 몇몇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
금도마는 풍마대주를 보고 다음 명령을 내렸다.
“백보권승을 내버려 둔다!”
의아한 명령이었지만, 깊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한가한 상황도 아니고, 마교에서 상관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백보권승!”
금도마가 홍고의 격앙된 감정에 환영했다.
“방해하지 않을 테니, 네가 할 일을 해라!”
교주의 명은 남양호법의 사살이다.
목적만 같다면 숙적인 소림의 승려라도 상관없었다.
소림은 몰라도 마교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면 그 어떠한 수단이라도 신경 쓰지 않는다.
“철권마의 목숨을 끊어라!”
일부러 자극하기 위해 옛 별호로 불렀다.
과연 효과가 있는지 홍고는 보법을 절정으로 펼쳐 신승의 사정권에서 벗어나려 했다.
스승은 제자가 무슨 짓을 저지를 지 알고 있었기에 막아 내려 했지만, 마도의 고수들이 그 앞을 막았다.
“안 돼! 도망치시오!”
혜만의 다급한 목소리가 전장에 울렸지만, 사람들의 비명이나 쇠끼리 부딪치는 금속음에 묻혔다.
그래도 방불통은 용케 말소리를 들었는지, 등을 휙 돌려 언덕 너머의 숲을 향해 뛰었다.
“철, 권, 마!”
홍고가 한 자 한 자 끊어 소리 치며 주먹을 날렸다.
백 걸음 안팎의 사정권을 지닌 백보신권의 권격이 대기에 구멍을 내고 날아갔지만, 맞추지 못했다.
그래도 방불통이 아직 도망칠 여력은 있는지, 요리조리 움직이면서 도주했다.
“놓치지 않는다!”
펑! 펑펑!
주먹을 연달아 뻗자 공기 터지는 소리가 쏟아졌다.
그러나 어떠한 공격도 성공하지 못했다.
혜만이 권로를 읽고 무형수를 움직여 막아낸 탓이었다.
“괴물 같은 늙은이!”
금도마가 혀를 내두르며 질린 기색을 내보였다.
서패호법도 풍마대주도 극마의 고수다.
좌우로 도강과 검강이 동시에 공격하는 중인데도, 전부 막아 내며 떨어져 있는 방불통까지 보호했다.
“비켜라!”
신승의 수공이 마두를 덮친다.
위력도 위력이지만 법력이 내포되어 있어 일격 하나하나가 치명적이었다.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않는다면 피를 토하며 쓰러질 모습이 그려졌다.
그러나 금도마도 풍마대주도 실력이 낮지는 않다.
그 마교에서도 상위에 속하며, 온갖 경험을 겪고 살아 남아 이 자리까지 올라왔다.
비록 혜만을 완벽히 잡아 두지는 못했으나, 합공하여 어떻게든 붙잡아 보려고 집요하게 괴롭혔다.
방불통을 홍고가 쫓고, 홍고를 혜만이 쫓았으며, 혜만을 금도마와 풍마대주가 쫓았다.
꼬리를 물고 무는 관계가 끝나지 않았다.
‘신승은 제자가 다치지 않는 선에서 남양호법을 지키려 하고 있다. 그에 비해 백보권승은 전력으로 어떻게든 죽이려 하니, 죽을 맛일 수밖에. 아무리 상천팔좌의 절대고수라 할지라도 쉽지는 않을 게다.’
심지어 극마의 고수가 붙어서 공격한다.
마음만 먹는다면 떨쳐내는 것도 어렵지 않지만, 그렇게 되면 방불통이 죽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조금씩 무리에서 떨어지며 숲 속으로 향했다.
“큰일이다……”
홍진의 얼굴이 굳었다.
눈에서 초조한 기색이 묻어났다.
방장과 다음 대 방장이 사라졌다.
상천팔좌인 신승이니 걱정은 없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제지간의 마찰이 신경 쓰였다.
‘저대로 뒀다간 두 분 다 치명상을 입으실지도 모른다.’
사람이란 실수하는 동물이다.
저리 의견이 맞지 않는 상태에서 무리라도 했다간 괜한 사고가 벌어질 수 있었다.
일반 제자도 아니고 방장과 방장이 될 사람이니 그 걱정은 더더욱 컸다.
마음 같아선 당장 쫓아가 돕고 싶었지만 풍마대가 예상보다 강맹했다.
마교의 정예다운 실력이다.
설마하니 십팔나한을 데려왔는데도 쉬이 이기지 못할 줄은 몰랐다.
‘저들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나?’
홍진은 눈동자를 굴려, 산서의 중소 문파 연합을 살폈다.
그들은 눈만 멀뚱멀뚱 뜬 채 구경 중이었다.
사실 저리 있는 것도 홍고가 사전에 으름장을 내놓은 탓도 있었다.
“진 사제. 소승은 더 이상 누군가의 손을 빌려 소림의 한을 풀고 싶지 않네. 부디 이해해 주게나.”
홍고는 소림의 일이니 끼어들 필요없다 했다.
산서 연합도 무림에서 은원 관계가 어떤 건지 잘 알고 있기에, 불쾌해하지 않고 그리하겠다고 답했다.
무엇보다 그 북두소림이 아닌가.
상천팔좌까지 있으니 별일 있겠냐는 생각도 있어 나서지 않았다.
도와 달라 하고 싶어도 홍고가 말한 것이 있으니 체면 때문에라도 손을 빌릴 수가 없었다.
‘죽어랏!’
‘헛!’
홍진은 헛바람을 들이켜며 후회했다.
‘한눈을 팔아 버리다니, 어리석구나!’
마교도라고 은연 중에 무시한 게 잘못이었다.
그 자만심은 순간의 실수로 이어졌다.
풍마대의 칼이 바람을 가르고 목을 노리는 순간이었다.
눈부신 빛으로 된 수직선이 둘이나 나타났다.
서걱!
“어?”
홍진의 목을 노린 풍마대원이 얼빠진 소리를 냈다.
믿을 수 없다는 눈빛에 황당함이 뒤섞였다.
“팔이……”
팔이 깨끗하게 양단됐다.
어찌나 깔끔하게 잘렸는지 절단면이 매끄러울 정도였다.
챙그랑!
공중으로 떠올랐던 팔이 빙글빙글 돌면서 아래로 떨어졌다.
손에 쥐고 있던 칼도 지면에 부딪쳤다.
풍마대원이 비명을 흘리기도 전, 옆에서 누군가가 끼어들었다.
약관의 청년 도사였다.
바람에 너울거리는 소매 안, 매화가 돋보였다.
화산파의 도사는 날렵한 움직임을 보여 다리를 직각으로 쭉 세워, 화려한 옆차기를 선사했다.
퍼어어억!
화려하기만 한 게 아니다.
그 위력도 경이적이었다.
우드득.
발이 닿는 순간, 갈비뼈가 부러진다.
하나둘이 아니다.
충격파 하나만으로 갈비가 전부 나갔다.
그리고 물리 법칙에 걸맞게, 그 힘을 고스란히 받아 낸 풍마대원의 몸은 멀찍이 날아갔다.
휘이잉!
화살처럼 쏘아져 버린 풍마대원의 몸뚱어리.
그 몸은 바닥을 몇 차례 튕기더니만, 큰 바위에 처박혔다.
콰앙!
마치 화약을 터뜨린 듯한 굉음이었다.
그 소리에 다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허어.”
누군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숨을 내뱉었다.
발차기에 맞아 날아간 풍마대원은 무려 오 장 바깥의 큰 바위에 박혀, 곤죽이 됐다.
우르르!
사람이 박힌 자국이 고스란히 남은 바위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균열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검룡 시주!”
홍진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기뻐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속으로는 누가 도와주기를 바랐다.
그런데 최대로 도움이 될 사람이 날아와 억지로 끼어들어 도와줬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무슨 일입니까?”
주서천이 설명을 바라는 눈빛으로물었다.
홍진은 잠시 주저하다가, 걱정을 이기지 못하고 비교적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다.
‘이런.’
주서천이 눈살을 찌푸렸다.
상황이 생각보다 좋지 않았다.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다.
홍고의 행동이 이상한 건 아니었다.
미래를 생각해 보면 반대로 지금까지 용케 참아 냈다.
아직은 한창 혈기가 넘칠 때니 이해됐다.
‘말려야 한다.’
만약, 혜만과 홍고의 사이가 크게 뒤틀려 방장의 자리가 다른 이에게 돌아가기라도 한다면 곤란하다.
지금의 홍고에게는 확실히 문제가 있다.
미래에도 이 성격 탓에 정파인들과 마찰이 잦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림인들은 홍고의 방장으로서의 업적을 인정하며 또 존경했다.
사문을 아끼는 마음이 과하지만 그 덕에 후계 양성을 성공해 이후 소림의 전력을 크게 증가시킨다.
무엇보다 훗날 암천회주와의 결전에서 치명상을 남기는 인물이 되니 꼭 필요했다.
“조금 있으면 매화검수 삼 인과 독룡과 독봉이 올 것이니, 지원을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 참 다행이구려.”
“그러니 저쪽은 맡겨만 주십시오. 이쪽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주서천은 홍진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몸을 날렸다.
“허, 허억!”
남양호법 혹은 철권마.
방불통은 폐가 찢어지도록 달렸다.
등 뒤에서부터 느껴지는 살의는 웬만한 마도인보다 진득했다.
“철, 권, 마!”
콰드득!
족히 이백여 년 이상은 뿌리를 내린 거목의 몸체가 부서졌다.
사내 대여섯 명은 둘러야 감쌀 수 있는 두께의 나무이거늘, 가지가 아닌 몸 한가운데가 뜯겨져 나갔다.
끼이익.
아무리 뿌리가 깊다 해도 기둥이 박살 났으니 지탱할 여력이 없다.
앞으로 천천히 쓰러졌다.
“제기랄!”
방불통이 오른편으로 몸을 날렸다.
그래도 한때는 마교의 사대호법이었던 자가 흙바닥을 구르는 모습은 흔히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쿠웅!
몸을 날려 공처럼 구른 덕에 등 위로 나무가 쓰러지는 꼴은 면했다.
방불통은 안도하며 다시 달리려 했다.
퍽!
“커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