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권-第一章 (146/254)

파앙!

굽어진 등이 확 펴졌다.

오그라진 근육이 쫙 풀렸다.

순간순간에서 나온 탄력을 이용해 튀어 나갔다.

“궁신탄영!”

누군가의 놀란 목소리. 경악성.

주변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하는 게 피부 위로 느껴졌다.

튕겨져 나간 몸은 적과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힌다.

동시에 손에 쥔 검도 화려하게 휘둘렸다.

스걱!

하늘과 땅을 나누듯 수평으로 그어지는 선.

검이 지나간 곳은 정말로 갈라진 것처럼 둘로 나뉘었다.

푸화악!

“어어?”

풍은대원 넷은 어리둥절했다.

시야가 제멋대로 빙글 돌아갔다.

무슨 일이 벌어진지 몰라 파악하려 했으나, 무심코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안 돼!” “내 몸!”

상반신과 하반신이 나뉘었다.

한일 자로 그어진 선 하나에 절정에 이르는 고수 넷이 순식간에 당했다.

“이러면 여자랑 할 수 없잖아!”

뇌가 하반신에 달려 있기라도 한걸까.

죽음을 바로 앞에 둔 풍은대원의 절규 어린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간이 느긋하게 흘러갔다.

주변인들이 헛바람을 들이 켰다.

그들은 멈춘 것처럼 꼼짝도 못 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시각을 비롯한 감각이 머리를 따라가지 못한다.

어째서 몸이 둘로 나누어진지는 알겠는데, 비유가 아니라 정말 눈을 껌뻑하자 벌어졌다.

족히 몇 장 밖에 있었던 정파의 영웅이란 놈이 몸을 튕기곤 이동해와서 동료를 동강 내 버렸다.

귀신에라도 홀린 기분이었다.

그사이 주서천이 가볍게 착지했다.

공중에 떠 있던 발바닥이 땅을 밟는다.

그리고 자세를 바로잡기도 전, 반대쪽 발을 내디뎠다.

이번 걸음에 내공이 용천혈로 향해 축적됐다.

쿠아앙!

다음 행동으로 이어지자 용천혈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일정량의 내공을 한꺼번에 분출해 지면을 찼다.

겨우 아래로 떨어졌던 몸이 다시 떠오른다.

심지어 폭발력을 이용해 그 속도가 배는 늘어났다.

“허엇!” “흡!”

풍은대원들이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가만히 있다간 목숨이 위험한걸 알고 급하게 퇴보했다.

순간을 잘 맞춘 덕분일까.

주서천이 재차 휘두른 검신이 아슬아슬하

게 옷깃을 스치고 지나갔다.

다섯 명이나 되는 풍은대원들의 입가에서 미소가 번졌다. 당할 뻔했지만 당하지는 않았다.

이제 보니 별로 대단하진 않았다.

확실히 빠르긴 해도 피할 만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그리 생각했다.

퓻!

“어?”

회피를 무사히 성공했다고 생각한 풍은대원의 입에서 얼빠진 소리가 나왔다.

분명히 피했다. 옷깃만 스친 것을 느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갈라진 배 사이로 내장이 쏟아졌다.

장기가 길게 늘어지며 앞으로 튀어나왔다.

“아홉.”

사신이 부르는 숫자는 현실이 됐다.

아까 전 넷에 추가된 다섯까지 아홉. 그들은 죽게 되는 연유도 이해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죽었다.

얼어붙었던 시간이 원래대로 돌아간다. 침묵은 없었다.

그 대신 경악어린 외침만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냐!”

풍은대주가 혼란에 잠긴 목소리로 외쳤다.

그 목소리는 미지의 광경을 목격해 동요로 가득 찼다.

“이 정도인가.”

주서천이 검 끝으로 바닥을 툭 쳐서 묻은 피를 털어 낸다.

무심한 목소리는 풍은대주와 상반된다.

‘정말로 수준이 다르구나.’

주서천도 새삼 신기한 듯 놀라워했다.

풍은대 탓이 아니다. 스스로의 무공이었다.

초절정과 화경의 벽 역시 그 차이가 크지만, 화경과 현경의 차이는 그 수준을 달리했다.

육체가 두뇌에서 내린 명령을 수행하는 시간은 빠른 게 아니라, 없다시피 했다. 무의식 수준이었다.

굳이 집중, 아니 생각하지 않아도 몸이 움직였다.

생각이라는 과정을 생략한 반응 속도다.

혈마 때도 경험했지만 다시 훑어보니 입이 절로 벌어졌다.

적은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느리게 움직였다.

절정의 수준인데도 멈춘 것 같았다.

무엇보다 무형강기가 정말로 쓸 만하다.

강기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이리 위력적일지는 몰랐다.

하수가 아니라 동수에게 쓰는 경우를 상상하니 괜찮은 무기가 된다.

그만큼 내공의 소모도 배는 들지만 별로 상관없었다.

주서천에게 있어선 전혀 신경 쓸 게 아니었다.

“……!”

풍은대주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무심코 떨리던 팔과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서였다.

찰나라는 순간에 벌어진 일들이 충격적이었다.

본능이 위험하다고 경종을 울린다.

머리카락이 쭈뼛 섰다.

무언가가 등골을 훑고 지나가 오싹해졌다.

‘정말로 저자가 나와 같은 경지란 말인가?’

풍은대주는 기밀 부대 특성상 알려져 있지 않으나, 천하백대고수에 능히 이름을 올릴 수 있는 강자다.

정사로 치자면 화경. 즉, 극마지경에 있다.

주서천이 설사 화경에서도 최상승에 있다 해도 전혀 겁낼 것 없었다.

마공은 여러 부작용이 있는 대신 평균을 웃도는 힘을 준다.

동수라 해도 마공이 보다 강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눈은 주서천의 움직임을 좇아가지도 못하고 있었다.

화산의 무공 중 극쾌의 성질은 없다.

‘하면, 저놈이 극마를 넘어섰다는말인가?

아니! 그럴 리가 없다! 그건 불가능하다!’

사람은 상식에서 너무 벗어난 광경을 보게 되면 직접 보고도 믿지 않는 동물이다. 풍은대주도 그랬다.

“합격진을 펼쳐라!”

풍은대주가 불안한 생각을 떨쳐내듯 소리친다.

“죽여!”

대주의 명이 떨어지자 대원들이 달려들었다.

그 수만 해도 무려 서른이었는데, 그들은 각기 다른 방향에서 달려와 빠져나갈 공간을 막아 냈다.

주서천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 있기만 했고, 그사이 풍은대원들이 시커멓고 불길한 아지랑이를 내뿜었다.

형상화한 기의 자락을 보는 이의 기분이 저절로 나빠지는 걸 보면 마공 특유의 마기(魔氣)가 분명했다.

마인들의 몸에서 뿜어진 마기는 이윽고 바람이 되어 대기의 압력을 변화시켰다.

콰드드득!

 바닥에 쌓인 자갈과 모래가 바람에 휘말리더니, 나선형으로 돌며 쳐 올라가 바람의 벽을 형성했다.

“마교의 진법이군.”

희귀한 광경이다. 마교도에게 협력이란 건 잘 없다.

한번 싸움에 임하면 혈교도만큼은 아니지만 흥분이 이성을 삼킨다.

그렇다 보니 진법처럼 서로 호흡을 맞추고 여러모로 신경 쓰이는 수법은 잘 쓰지 못했다.

섭혼술 등의 주술로 세뇌를 하지 않는다면 모를까, 이 정도 수준의 합격진을 하려면 고생 꽤나 해야 한다.

“크하하핫!”

풍은대원들이 정중앙에 서 있는 주서천을 비웃었다.

“피할 수 없는 걸 느끼고 살기를 포기했구나!”

아무리 고수라 해도 합격진에 제대로 걸려들었다.

서른 명에게 포위됐으니 빠져나갈 곳도 없다.

심지어 그들이 만들어낸 시커먼 바람의 벽도 거대했다.

풍은대원들은 비웃음을 지우지 못했다.

마성으로 들끓는 그 눈은 환희로 빛났다.

“아니.”

주서천이 감회가 새롭다는 듯 바람의 벽을 살폈다.

“이게 이리도 작았었나 생각했을 뿐이다.”

“미친놈!”

마교도만큼 미친놈이다.

너무 겁먹은 나머지 정신이 나갔다고 생각했다.

풍은대주도 그리 생각했다.

밖에서봐도 빠져나갈 구석이 보이지 않는다.

죽음의 진법에 걸려들었다.

생문이 있다 할지라도, 그곳을 찾아 나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만신창이가 될 모습을 떠올렸다.

“죽어라!”

콰드드드드득!

시커먼 바람의 기세가 더더욱 격렬해지더니, 그리던 원이 점차 좁아져 적을 완전하게 집어삼켰다.

“마무리!”

“알고 있소, 대주!”

서른이나 되는 마인들이 검을 쥐지 않은 팔을 휘둘렀다.

소매가 펄럭이더니 그 안에서 단검이 나왔다.

일직선으로 쭉 뻗어진 단검은 적의 숨통을 확실히 끊기 위해 시커먼 바람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풍은대의 자랑인 풍비인진(風秘刃陣)!

풍비인진은 이름 그대로 칼날 폭풍을 만들어 내는 합격진이었다.

멋모르는 자가 본다면 기후 현상을 일으키는 것 같지만 실상은 다르다.

그 원리는 검풍의 집합체였다.

검기를 뽑아내 뭉쳐서 바람을 만들어 내고, 풍압을 넓게 쏟아 냈다가 일정한 영역 안을 회전시킨다.

그러면 시커먼 바람이 되며 적을 압박한다.

걸려든 자는 주변에서 좁혀 오는 검풍을 보고 어찌할지 고민하는데 이와 같은 행동이 도리어 잘못됐다.

시간이 지나 공간이 좁혀질수록 회전하는 검풍이 중첩되고, 위력이 상승해 위험해지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처음에 서로 뭉치지 않고 넓게 펼쳐졌을 때 억지로라도 무리해서 돌파해야 생존 가능성이 높다.

이를 모르고 가만히 있다간 결국 마지막에 검풍에 둘러싸여 버리고, 최후에는 단검까지 날아와 맞는다.

바람만으로도 위협적인데 마지막에는 그 바람 속에 숨겨진 칼날이 나타나 숨통을 끊는 합격진이었다.

“크하하하! 쉽구나! 쉬워!”

“뭐가 검룡이냐! 뭐가 매화정검이냐!”

“정파의 영웅이 이리도 약할 줄이야!”

마인들의 웃음소리가 바람에 실려 넓게 퍼졌다.

초장에 압도당해 얼었던 게 부끄러웠다.

“하하!”

풍은대주도 괜히 겁먹었다면서 웃었다.

방금 전까지 불안해하고 걱정했던 게 머저리같이 느껴졌다.

역시나 정파의 애송이. 입만 산 놈이었다.

바람이 걷혀 어떻게 난도질 됐을까 기대됐다.

그러나 풍은대주는 기대 대신 기시감을 느꼈다.

파바바밧!

바람이 걷히나 싶더니만 아까처럼 빛줄기가 안에서부터 쏟아져 나온다.

마치 유성비가 내리는 듯했다.

한일자로 그어진 궤적은 깔끔하게 쭉 뻗어져 냐와, 풍비은진을 펼쳤던 수하들에게 닿았다.

푹! 푹푹푹!

“꺽!”

“윽!”

서른에 이르는 외마디 비명.

그들은 부릅뜬 눈으로 자신들에게 벌어진 일들을 믿지 못했다.

이마 혹은 목, 또는 심장이 있는 곳 위.

방금 전에 던졌던 단검들이 돌아와 꽂혀 있었다.

“……!”

풍은대주는 너무 놀라 말을 잇지 못했다.

걷혀진 바람 속에서 나타난 건 옷깃 하나 베이지 않고 아까 본 그대로의 모습을 한 주서천이었다.

그는 어깨 위에 올라온 먼지를 아무렇지 않게 툭툭 쳐내곤, 피식 웃었다.

“생각보다 별거 아니군.”

풍비인진을 경험해 본 적은 없지만 본 적은 있었다.

이 합격진에 목숨을 잃은 정파인들은 적지 않다.

풍마대를 보면 풍은대의 존재를 잊지 말아야 하며, 풍은대가 있다면 풍비인진을 유의하라는 말이 있다.

일반적인 무인이라면 걸려들지 않는 것이 제일이고, 화경 정도 되는 고수는 대응법만 알면 충분하다.

검풍이야 좁혀지는 순간에 맞춰 호신강기를 펼쳐 전방위로 막아 내면 된다.

그리고 곧바로 날아올 바람 속의 숨은 칼날.

단검을 주의하면 완벽하게 막아 낼 수 있다.

물론 말이야 쉽지 위험하긴 하다.

검풍이 좁혀 오는 순간을 맞추지 않아 호신강기를 미리 펼치면 내공의 소비가 극심하고, 늦게 펼치면 그대로 당해 문제다.

그리고 성공해도 호신강기를 펼치고 난 뒤에는 보통 힘에 부쳐 단검에 당해 버린다.

어릴 적부터 영약을 수없이 처먹어 내공의 바닥이 잘 보이지 않아야 가능한 무식한 수법이었다.

“삼십구. 이제 몇 명 남았니?”

주서천이 섬뜩하게 웃었다.

“날아다니네요.”

낙소월이 시선을 슬쩍 돌렸다가 감탄했다.

“한눈팔지 마.”

담향이 낙소월을 지적하면서 머리를 옆으로 젖혔다.

목 옆으로 적의 검이 아슬아슬하게 지나갔다.

“제대로 보고 있는 걸요.”

낙소월이 왼발을 축으로 삼아 빙글 돌았다.

회전력을 실어 쭉 뻗은 검이 담향에게 검초를 날린 적의 옆구리부터 파고들어 갈비뼈를 지나 심장을 찔렀다.

“이, 이년들이!”

풍은대원들이 화가 났다.

무시당해서가 아니었다.

여태껏 어떠한 공격도 맞추지 못해서였다.

이십여 명 정도가 여섯 명을 둘러싸서 맹공세를 퍼부었다.

그러나 상처 하나 남기지 못했다.

매화검수의 삼재검진은 강했다.

난공불락의 성처럼 수비는 굳건했으며, 몇 명이 덤벼들건 어이없을 정도로 막혔다.

그리고 공격을 회수하기도 전에 다른 방향에서 들어오는 공격은 빠르고 강맹했다.

막을 수가 없었다.

이십사수매화검법.

화산의 최상승 무공이자 절기는 사실 개개인이 쓰는 것보다는 이렇게 여럿이 쓰는 게 위력이 더 크다.

이십사수는 각각 폭검이나 산검, 환검 등으로 나누어져 있고 대기와 공격, 수비 역시 따로 있다.

세 명이 각각 공격이나 수비에 걸맞은 초식을 맡고, 중앙이 되는 한 사람이 공수를 전환하면 알맞다.

공격도 수비도 완벽한 합격진이 완성됐다.

“크악!”

“뭐, 뭔 계집이 공력이 이리도……”

풍은대는 처음에 낙소월을 보고 우습게 봤다.

매화검수라 할지라도 나이가 어렸고, 또한 여자다 보니 별로 대단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주의하기는커녕 낙소월의 아름다움을 자기들이 먼저 탐하겠다며 바짓가랑이를 주무르며 조롱했다.

그러나 정작 부딪치니 상황이 달라졌다.

낙소월과 검을 맞댄 이들은 하나같이 경악하며 비명을 질렀다.

‘사형이 건네주신 영약 덕이야.’

낙소월이 살짝 웃었다.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검을 휘두르는 모습은 보는 이가 홀릴 정도로 아름다웠다.

다수와 싸울 경우, 압도적인 힘을 지니고 있지 않은 이상 장기화로 이어져 지구력이 요구된다.

이 지구력이란 즉 내공이다.

그렇다 보니 보통의 경우 내기를 필요한 정도만 조각내 담고, 목이나 심장처럼 일격에 목숨을 끊는 순간에만 힘을 실었다.

그러나 낙소월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폐관 수련에 들어가기 전, 주서천이 건네준 소환단과 매화검수에게 주어지는 영약 덕에 내공 증진을 이루었다.

그녀 역시 주서천 정도는 아니나 웬만한 중년의 무인들만큼의 내공량 이상을 지녔다.

풍은대원 여럿이 전력을 다해 덤벼들었지만, 그 공격을 아무렇지 않게 튕겨 내거나 막아 냈다.

가끔씩 힘을 줘서 공격하면 적들은

무지막지한 공력을 버티지 못하고 수비가 꿰뚫렸다.

‘폐관 수련 때도 느꼈지만……’

‘매화검수 역대 최고의 천재일지도 모르겠구나.’

화산에서 날고 기는 기재들 중에서도 천재라 불렸던 몽각과 담향조차도 그녀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

심지어 매화검장, 위지결도 낙소월의 실력을 확인하자 눈빛이 변해 그녀를 집중적으로 가르쳤다.

한때 주서천을 매화검수로 만들지 못해 무척 아쉬워 했는데, 낙소월이 들어오자마자 그 미련을 버렸다.

배우는 자세부터 시작해 개개인의 재능이나 신체 능력, 반사 신경, 무공에 대한 이해도, 습득 속도 등 전부 따져 봐도 완벽하지 않은 게 없었다.

“크으읏!”

“이 새끼들아! 뭣들하고 있어! 빨리 안 도와줘?”

고전하던 끝내 지원을 불렀다.

“크아아악!”

그러나 도와줄 대원이 없었다.

당가의 남매를 상대하게 된 풍은대원 역시 고전하는 건 매한가지였다.

독룡과 독봉!

아무리 정파의 후기지수라 하지만, 독공이라는 한계가 있으니 여럿이서 근접하면 끝일 거라 여겼다.

확실히 상식적인 판단이다. 그러나 옳지는 않았다.

당명인과 당혜는 일반적인 독인이 아니었다.

“적련독장!”

적련독장은 장법.

그것도 거리를 두고 장풍을 쏘는 방식이 아니라, 직접 가격해야 하는 수를 써야 했다.

그 말은 근접전 역시 나름 자신있다는 뜻이었다.

“대단하구나.”

당명인이 당혜의 일장을 보고 놀랐다.

“네 무명(武名)을 익히 들었긴 했지만, 설마하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 오라비는 네가 자랑스럽다.”

“……아니요. 별거 아니에요.”

당혜는 미묘한 반응을 보였다.

낙소월이 주서천의 칭찬에 떨떠름해하는 것과 비슷한 경위였다.

당명인은 이미 어렸을 적부터 두각을 보였고, 성년이 지났을 무렵부터 흑영부에 들어가 활동했다.

그가 세운 공적은 대부분 기밀이라 전부는 듣지 못했으나, 그 일부분을 들어 보면 누구나 놀란다.

당가의 권세는 더러운 일을 맡게 되면서 나오기도 하지만, 당명인이 맡게 된 이후로는 더더욱 강해졌다.

“컥!”

“도, 독룡이 이리도……”

실제로 당혜도 대단했지만, 당명인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었다.

당명인은 장법이나 권각술을 쓰지는 못했지만, 그의 용독술은 천하에 손꼽히는 수준의 독공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해선 장법이냐 권각술을 굳이 배울 필요성을 못 느꼈다.

발밑을 폭발시키듯이, 화살처럼 쏘아져 나간 마도의 고수들조차 당명인에게 닿지는 못한다.

그 증거로 풍은대원이 순식간에 덮쳐 끝내려고 했는데 당명인의 근처에도 가 보지도 못하고 쓰러졌다.

독에 내성이 있건 없건, 버틸 수 있는 내공이 있건 없건 전혀 상관없었다.

당명인이 주변에 살포한 연기나 아지랑이 같은 것에 닿기만 하면 죽거나 마비됐다.

용독술이란 독공의 기본이요, 일종의 제어술이다.

그리고 이를 연마할 경우 체내에 독기를 쌓아 두는 것은 물론이고 자유자재로 외부로 뿜을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체내의 진기를 독기로 변형하여 독연(毒煙)을 만들어내 지금처럼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었다.

시각이 닿는 곳은 물론이고 사방팔방으로 두르면 고수라 할지라도 섣부르게 접근하지 못한다.

“그러면 멀리서 처리하면 그마……켁!”

“크악!”

당명인은 당가의 적통답게 암기도 출중했다.

당가에서도 다루기 까다롭다는 추혼비접(追魂飛蝶)조차 그 손에 쥐어지면 장난감이나 마찬가지였다.

오룡삼봉 중 독룡이라는 칭호는 더러운 일을 도맡아 얻은 게 아니다. 순수한 실력으로 인정받았다.

‘이렇게나, 강하신데……’

새삼 무림의 독에 대한 취급이 원망스러웠다.

세간에서의 평가조차도 과소평가된 듯했다.

후기지수의 수준은 일찍이 넘었거늘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는 사실이 싫었다.

그 분노를 토해 내듯, 풍은대원의 목숨을 앗아 갔다.

이십여 명 정도의 풍은대원들은 별다른 힘도 내지 못하고, 당가의 남매에게 무참히 살해 당했다.

“켁!”

“큭!”

“어디냐! 누가 숨어 있다!”

그 사이에서 소령이 활약했다.

그녀의 먹잇감이 된 이들은 어떻게 죽는지도 모르고 죽었다.

거의 오십에 가까운 인원이 고작 여섯 명에게 농락당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이, 이럴 리가…… 없다……”

풍은대주가 주변에서 들려오는 비명에 굳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도 쉬이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악몽이라면 얼른 깨고 싶었다.

혹시 마성이 과하게 잠식되어 환상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웃기지 마!”

풍은대주가 바람이 됐다.

풍은대의 이름에 걸맞게 그 움직임은 은밀했다.

“다 보인다.”

그러나 그 은밀함도 고수의 앞에선 무용지물이다.

활성화된 감각이 풍은대주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포착했다.

풍은대의 마공 특징은 바람에 의한 눈속임이다.

일단 눈을 뜨기도 힘든 돌풍을 만들어 낸 다음, 그 안에 녹아들어 순식간에 접근해 공격해 온다.

풍마대와 바늘과 실처럼 따라다니는 것도 제일 효율적이라서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풍마대도 없을뿐더러, 그 상대는 밝혀지지는 않았으나 현경의 절대고수였다.

“죽여 주마!”

풍은대주의 분노가 극에 치닫자, 마성이 반응했다.

“쯧쯧.”

그 모습을 본 주서천이 혀를 찼다.

풍은대가 일반적인 마인들과 다르며 무기로 쓸 수 있는 건 이성의 제어와 침착함이다.

그런데 이를 포기한다면, 풍은대가 아닌 그저 그런 마인에 불과했다.

그 증거로 굳이 고수가 아니라 해도, 살의가 워낙 진득해 바람 속에 숨건 말건 훤히 보였다.

“십일.”

풍은대주라는 돌풍에 숨겨 진 칼날이 열 명이었다.

아무래도 남겨진 대원들을 박박 긁은 듯, 그 이상의 존재감은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간다.”

주서천이 친절하게 알려 주며 진각을 밟았다.

콰아앙!

발바닥이 지반을 무너뜨리고 깊숙히 들어간다.

용천혈에서 뿜어진 무시무시한 공력이 땅을 흔든다.

반경 오 장 내의 지반이 반구형으로 움푹 가라앉았다.

위에서 보면 거미줄처럼 땅이 쩍쩍 갈라졌다.

“헛!”

침착함을 버리고 멧돼지처럼 돌격을 택한 풍은대원들은 지반이 갑자기 꺼지자 균형을 잡지 못했다.

마교의 보법 대부분은 최고 속도의 돌격에 맞춰진, 정말 무식하게 그지없는 방식이다.

그러니 이렇게 갑작스레 지형이 바뀌거나 한다면 반작용에 의해서 몸의 균형을 잡지 못했다.

극마지경의 풍은대주는 무공이 뛰어나 금세 바로잡았지만, 그 외의 열 명은 그러하지 못했다.

물론 무공을 막 배우기 시작한 초보도 아니니 넘어지거나 하지 않았지만, 작은 틈은 치명적이었다.

“차라리 분노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했다.”

주서천의 신형이 흐릿해졌다.

그가 서 있던 곳에 남겨진 잔상이 사라질 때쯤, 본체는 풍은대주의 우측으로 이동해 검을 휘둘렀다.

“……크으윽!”

그래도 극마지경 어디 안 간다.

풍은대주의 몸은 급습에 곧장 반응했다.

목을 노리고 날아온 검이었으나, 마기로 된 강기의 검을 세워 막아냈다.

콰앙!

원래라면 째앵 하고 마찰음이 났어야 한다.

한데 마치 화약을 터뜨린 것처럼 굉음이 터졌다.

“카학!”

풍은대주가 피를 울컥 토해 냈다.

검을 어떻게든 막아 내긴 했는데, 내장이 뒤집어졌다.

단순한 휘두르기를 막은 건데 그 충격이 심했다.

‘서, 설마……’

풍은대주의 부릅떠진 눈에는 불신과 경악이 묻어났다.

검이 부딪치려는 순간, 주서천의 검에는 아무것도 실려 있지 않다는 걸 보았다.

아마 급하게 검을 쏘아내느라 강기를 낼 수 없었을거라 추측했다.

하지만 풍은대주는 다르게 내상을 조금 입는 대신, 마공의 운기 속도를 이용해 빠르게 강기를 형성했다.

그래서 강기를 쳐 낸 충격으로 주서천이 내상을 입거나 혹은 뒤로 떨어져 나갈 거라 생각했다.

하나 예상은 빗나갔다.

주서천은 내상을 입지도, 물러나지도 않았다.

도리어 검을 밀어냈다.

분명 검신에 아무것도 실려 있지 않은 걸 봤다.

잘못 볼 일은 없다.

자하신공처럼 화려한 특징을 지닌 무공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면 나오는 답은 하나뿐이다.

그런데 그 추측이 터무니없었다.

“무형 강기라고……?”

“그래.”

의문에 풀어 주듯 친절하게 답했다.

풍은대주는 그 말조차 부정하려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검이 흉부를 파고들어 등 뒤로 나왔다.

절대고수, 상천팔좌의 무위는 진짜배기다.

사람의 한계를 넘어서 신위(神威)라 일컬어질 정도다.

소림방장 신승 혜만은 그 상천팔좌다.

젊었을 적에도 대단했지만 노년이 되어선 범접할 수 없게 됐다.

서패호법이나 풍마대가 아무리 대단하다 할지라도, 신승 앞에선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

특히나 상성 면으로 좋지 않으니 더더욱 그랬다.

원래라면 진작 승부가 났어야 할 상황이었다.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게냐……”

혜만이 신음을 흘렸다.

“홍고야.”

어떠한 번뇌에도 흔들리지 않는 동공은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떨려 왔다.

“사부님.”

홍고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답했다.

“사부님의 의견에 불응한 이 못난 제자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홍고의 주먹은 혜만의 손길에 막혀 있었다.

그 주먹이 향하는 곳은 소림의 원수, 방불통이었다.

시간을 돌려 약 일각 전.

산서의 정파 연합이 바라보는 앞에서 소림사와 풍마대의 격돌이 있었다.

한 치의 앞도 내다볼 수 없으며 어디가 위이고 아래인지 분간할 수 없는 전장이었다.

정파는 평소에 마교를 우습게 보았으나, 그 힘이 비슷하면 비슷했지 결코 아래는 아니었다.

십팔나한을 비롯한 소림의 무승들이 있었으나 쉬이 이기지 못하고 막상막하로 공수를 교환했다.

상성만 보자면 소림사가 마교보다 우위지만, 풍마대는 초정예를 데려왔는지 잘만 버텼다.

실제로 서패호법 금도마 외에도 풍마대주나 혹은 이름만 들어도 알 마두들이 제법 있었다.

하기야, 마교와 깊숙이 관여된 남양호법이란 자가 정파에 투항해 협력했다고 하니 추격자를 아무나 보낼 수는 없었다.

정마대전을 앞에 두고 이 정도나 되는 전력을 뺀 걸 보면 마음을 독하게 먹은 모양이었다.

금도마는 격전이 시작되자마자 갖은 수를 동원해 방불통의 목숨을 끊으려 했다.

그러나 혜만이 공세를 연달아 막아내는 탓에 척살을 쉬이 성공해 낼 수가 없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혜만이 방불통을 지키느라 반격을 해도 그다지 치명적이지는 않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방불통의 목숨을 끝내 취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해 초조해졌다.

그러나 이게 웬일.

어떻게 된 영문인지 홍고가 갑작스레 끼어들더니만 방불통에게 일권을 내질렀다.

“무슨 짓이냐고 물었다!”

혜만이 노기가 뒤섞인 고함을 내질렀다.

“소림을 위한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사부님.”

홍고의 눈빛에 굳건한 의지가 돋보였다.

그 신념은 어떠한 것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사부님께서는 용서하셨을지 몰라도, 소림은 아니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홍고가 막혀 버린 우권 대신 좌권을 날렸다.

혜만이 방불통에게 근접하는 걸 막고 있어 거리가 있었지만, 백보신권에게 거리는 제약이 되지 않았다.

권기나 권풍을 쏘아 낸 것도 아닌데, 강기를 실은 주먹이 대기를 짓누르고 날아가 원수를 노렸다.

파바밧!

하나 그 주먹이 다 나아가기도 전, 혜만이 손을 번개같이 출수해 막아 냈다.

그 손은 금도마의 도신처럼 금색으로 번쩍였는데, 움직임은 날아오르는 용과 같았다.

팔을 쭉 뻗었음에도 손목에 걸린 염주는 신기하게도 흔들리지 않았고, 굳은살이 가득한 노승의 손은 제자가 뻗은 주먹을 감싸 안아 그 손목을 잡았다.

소림의 몇 없는 상승의 금나수인금룡십이해(金龍十二解)였다.

“그 말씀대로, 소림은 사십 년 전의 철권마를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홍고는 소림에 관련된 일로는 물러서지 않았다.

과거에도 그랬으며 현재에도 그랬고, 미래에도 변하지 않는다. 특히나 은원 관계의 면에선 엄했다.

“철권마가 잘못을 뉘우친다 할지 몰라도, 그 악행이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홍고는 사십 년 전 학살의 당사자는 아니다.

관계되는 사람도 사숙이 되는 혜소 정도다.

그렇다고 분노가 없는 건 아니었다.

누구보다 소림을 사랑하는 입장에서는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소림사라서 그 정도의 피해에도 휘청이는 일은 없었지만, 그때 일로 소림사의 무명에는 흠집이 생겼다.

‘소림의 무승들이 철권마 한 명에게 당했다며?’

‘북두소림이란 말도 옛말인가.’

‘쯧쯧.’

‘철권마가 무승들을 대상으로 마공의 수련을 잘 끝냈다며 조롱했다던데?’

‘쉿! 조용하게! 안 그래도 그 일로소림이 예민하니.’

‘뭐, 어떤가? 어차피 자비를 베풀어야 할 중이 아닌가.’

이 일로 소림의 권위가 떨어진 건 사실이었다.

홍고는 그렇기에 더더욱 용서할 수가 없었다.

“화를 누그러뜨려야 한다. 너는 지금 분노에 휩싸여 사리의 분별을 하지 못하고 있느니라.”

‘주 시주와의 대결로 성정이 줄었나 싶더니만……’

제자가 지닌 몇 가지 단점은 큰 문제였다.

주서천의 협력을 받아 다행히도 소림 외의 배움을 아래로 두는 오만함을 버리는 데 성공했다.

사문에 대한 자부심은 좋으나 그게 워낙 심해서 결례를 저지르지 않을까 항상 노심초사했었다.

개개인이라면 모를까 소림을 이끌 방장으로서는 치명적이었기에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해결됐다.

그러나 여전히 소림에 관련된 일에는 민감했다.

피해가 될 것에는 특히 적의를 보였는데 그 점이 이번에도 고스란히 나타났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당장 홍고만이 아니라 혈기가 조금이라도 남은 젊은 측에도 빈번이 발생했는지라 그게 잘못됐다고 대놓고 말하지는 못했다.

그 마음이 또한 소림을 위한 생각에서부터 나온 것이 아닌가. 다른거지 틀린 건 아니었다.

“네 말에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그의 처우에 관해선 너 혼자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

정 결정하고 싶다면, 소림으로 데려가는 게 맞다.”

“정말로 잘못을 뉘우치고 있다는 걸 어찌 믿으란 말입니까. 만약 이 위기를 탈피하기 위한 거짓말이라면, 더 많은 비극을 부를 뿐입니다.

하물며 저들은 필요에 의하면 무슨 짓도 저지르는 마인이지 않습니까!”

틀리진 않다.

마공에 마성이 따르는 건 절대적이다.

극마에 이른다고 해도 제어할 수 있는 것이지,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었다.

역사가 그래 왔고, 실제로 마음이 약해 용서했다가 속아 넘어가 피해를 입은 일이 무수히 많았다.

“너도 나도 부처님이 아니다. 그의 의중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있는 사람은 장본인뿐.

그러니 소림으로 데려가 서로의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짜내 평화적인 방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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