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十二章 (145/254)

청해에 정파와 마교의 전력이 집결하는 동안, 산서에서도 적으나, 다수의 정파 세력이 모였다.

산서의 항산파, 하북팽가. 그리고 소림사였다.

“마교도다!”

산서, 태원 근방.

소림사의 무승이 언덕 너머의 검은 무리를 보고 소리쳤다.

항마의 기운이 꿈틀거린다.

하복부가 욱씬거렸다.

생리적으로 거부감이 드는 이들이 눈앞에 나타났다.

“……나무아미타불.”

혜만이 불호를 외며 눈을 가늘게 떴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고.”

이틀 전 낮, 태원 지부장에게 전서응을 받았다.

그리고 그 전서를 통해 마교의 무력 부대가 인근에서 목격됐다는 걸 알자마자 발걸음을 서둘렀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신승 역시 의문이었으나, 호기심은 잠시 접어 두기로 했다.

만약 그 마인들이 방불통과 합류하기라도 한다면 여러모로 곤란해진다.

상천팔좌인 신승이 있으니 패하진 않겠으나, 자칫 잘못하면 혼란을 틈타 도망칠지도 모르는 일.

무엇보다 남양호법과 마교의 부대가 합류해 전력이 강해지면 괜한 피해를 입을 수도 있었다.

“굳이 걱정하실 필요가 뭐가 있습니까. 괜찮습니다.”

홍고는 이상해 하기는커녕, 도리어 잘 됐다면서 호전적인 모습을 보였다.

적을 앞에 두고 겁을 먹는 것보다는 낫지만, 살의로 번뜩이는 눈빛이 도저히 승려로 보이지가 않았다.

주의를 주려고 했으나, 앞서 얼마 전에 합류한 항산파의 비구니가 소리쳤다.

“남양호법이다!”

“……!”

혜만의 고개가 번개같이 돌아갔다.

‘방불통!’

세월이 흘러 주름이 늘어났으나, 생김새는 그대로였다.

사십 년이 흘렀음에도 단번에 알아봤다.

동시에 차디찬 시체가 된 사제, 혜소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 늙은 중도 못났구나, 못났어……”

혜만이 씁쓸하게 웃었다.

지금 이 자리에 온 것도 복수심에이끌려 왔다.

마음이 시커멓게 물든 기분이었다.

부처께서 자비와 용서를 베풀라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이것은 진에인가. 아니면 우치인가.

심상구현을 이루어 현경에 올랐음에도 아직 모르는 것이 있었다.

‘갈길이 멀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악하고 포악한 마교도여!”

홍고가 마교의 무리들을 향해 외쳤다.

사자후를 터뜨린 것도 아닌데 성량이 무척 컸다.

“그리고 사십 년 전 무고한 이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한 대마두……”

“도와주시오!”

홍고가 누군가의 도움 요청에 끊겼다.

그러나 그 도움을 요청한 사람이 누구인지 보고 정파인들은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그 신승조차도 놀란 나머지 불호를 외우면서 귀와 눈을 의심했다.

“날 좀 도와주시오!”

그도 그럴 것이 도움을 청한 이는 거의 이 주 동안 추격한 대마두, 소림의 원수 방불통이었다.

그 충격이 얼마나 대단했냐면 이제 막 몸을 날리려던 무인들이 몸이 굳어 꼼짝도 하지 못했다.

방불통은 마교의 무리와 합류하기는커녕 등을 돌려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이쪽으로 냅다 달려왔다.

그리고 그의 뒤편에서, 마교의 무리가 충격적인 발언을 내뱉는다.

“배교자를 척살해라!”

배교자(背敎子). 그제야 의문이 풀렸다.

정마대전이 막 시작할 무렵에 사대호법이나 되는 대마두가 어째서 이 먼 산서까지 온 것인지.

또한 오십여 명이라는 적은 숫자로 이뤄진 부대의 정체와 목적 역시 알게 됐다.

‘사대호법이나 되는 마두가 교를 배신했다고?’

머리를 굴려 봤지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 짧은 시간 동안 몇 번이나 생각했지만 알 수 없었다.

마인에 대한 상식이 뒤집어졌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겐가!’

화혜만이 놀란 목소리를 속으로 삼키며 시선을 돌렸다.

방불통을 배교자라 외친 마교의 무리였다.

“막아라!”

홍고가 오십여 명의 마교도를 보고 외쳤다.

사십 년 전의 원수를 빼앗길 수는 없었다.

파바밧!

소림사에서 무승들이 무시무시한 기세로 뛰쳐나가 마교의 무리 앞을 막아섰다.

“소림사의 땡중이로구나!”

마교도가 벌겋게 뜬 눈으로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 손의 칼이 섬뜩하게 빛나며 수직선을 그었다.

무승은 눈앞에 덮쳐 오는 칼을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 피해낸 뒤, 굳은 살이 박힌 손바닥을 쭉 뻗었다.

퍼어억!

“커헉!”

마교도가 피를 울컥 토해 내며 뒤로 날아갔다.

손에 쥐고 있던 칼이허공에서 빙글 돌아 땅에 꽂혔다.

“큿!”

“제기랄!”

뒤늦게 도착한 마교도들도 고전을 겪었다.

갑자기 튀어나온 무승들과 손을 섞었지만 승부가 나지 않았다.

어떻게든 앞을 돌파하려 했지만, 그러지 못하고 뒤로 물러났다.

“그만!”

오십여 명 중의 마인들 중, 척 봐도 우두머리로 보이는 남자가 소리쳤다.

그 외침에 다들 물러났다.

“일장항마!”

우두머리의 눈썹이 사납게 치켜 올라갔다.

“마성에 물든 자 치고는 눈썰미가 좋구려.”

일장항마, 홍진이 매섭게 뜬 눈으로 우두머리의 기세를 살폈다.

‘보통이 아니로다.’

비록 대충 훑어보았으나, 그래도 무위의 수준을 가늠할 수가 없다.

이름 있는 마두들이 떠올랐다.

“나한전주까지 나오다니, 소림도 작정한 건가.”

우두머리가 오른손을 쥔 도를 들었다.

도신에 햇빛에 번쩍였는데, 그 색이 금색이었다.

홍진은 도신에 흐르는 금색의 아지랑이를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서패호법, 금도마(金刀魔)!”

천하백대고수. 마교의 사대호법인 대마두다.

중원에서 도기가 금색으로 물드는 무공은 몇 없다.

그중에서도 마교에선 하나뿐이다.

마교의 호교백팔공 중 금양파홍도법(金陽破紅刀法)이 틀림없다.

“쯧.”

금도마가 혀를 쳤다.

깊게 파인 눈두덩에서 흘러나오는 건 경계의 빛이었다.

“신승이 움직인 것만으로도 부담스럽거늘, 십팔나한까지 대동한 겐가. 교주께서 움직인 것도 아닌데, 어찌 소 잡는 칼을 닭에 쓰려 하느냐.”

금도마의 얼굴은 걸레짝처럼 일그러졌다.

소림의 무승만 해도 무려 백여 명.

대부분이 절정의 고수인 것도 부담스러운데, 십팔나한이 전부 왔다.

나한전주인 일장항마 홍진과 그 사형인 백보권승 홍고.

그리고 소림방장 상천팔좌 선승이 나타났다.

누가 본다면 무림 공적이 나타난 줄 안다.

물론 방불통이 소림 공적이니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혜만이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며 앞으로 나섰다.

소림사와 마교는 잠시 대치한 채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마교의 사대호법이 둘이나 나타나다니, 범상치 않은 일이로구나. 무승들은 주변을 경계하도록 하라.”

마교의 사대호법이라면 거물이다.

그중 둘이 신강과는 먼 산서 땅에서 나타났다.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려 하고 있다. 불안했다.

“소림의 땡중들아. 괜한 헛짓하지 말고 꺼져라.

우리들이 볼일이 있는 건 거기 있는 배교자다.”

금도마가 칼끝으로 방불통을 가리켰다.

혜만은 말없이 염주 알을 굴렸다.

혜소의 얼굴이 떠올랐으나, 그 복수심은 잠시 접어 두기로 했다.

서패호법 금도마가 오십의 마인들을 데려온 것에는 복잡한 사정이 있을 거라 생각됐다.

“헛소리!”

홍고가 사자후를 터뜨렸다.

그 목소리가 주변에 앵앵 울렸다.

마인들이 미간을 찌푸리며 욕을 내뱉었다.

항마가 깃든 그 목소리가 고막을 파고들어, 몸 전체에 스며들었다.

정파인들에게는 청명한 목소리였으나, 마인들에게는 벌레가 몸속으로 들어오는 느낌이었다.

“지금 그걸 믿으라고 하는 말이오? 아니, 설사 정말이라 할지라도 저 원수를 놓아줄 수는 없소!”

소림의 노승, 혜법이 노기 어린 목소리로 외쳤다.

그 역시 사십 년 전 학살로 사형을 잃었다.

혜자 배는 방불통과의 악연이 깊다.

그렇다 보니 산서행에 지원한 승려들은 대부분이 나이가 지긋했다.

그 외의 무승들은 정마대전을 위해 청해로갔다.

“후우……”

금도마가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괜찮다면, 사정을 좀 들어 봐도 괜찮겠소?”

혜만이 중간에 껴 있는 방불통에게 물었다.

“대마두 따위에게 무슨 사정이 있겠습니까.

사부님, 들어볼 가치도 없습니다.”

홍고의 말대로입니다, 방장 사형.”

홍고와 혜법이 반대했다.

“이해를 하지 못하는 건 아니나, 다들 과한 분노에 휩싸여 있다. 조금은 진정할 필요가 있겠구나.”

혜만이 달래듯이 말했다.

다들 필요 이상으로 흥분했다.

원수가 앞에 있어 감정적이게 된건 이해하지만, 승려로서 보일 모습은 아니다. 살기가 과하다.

고승의 법력이 통하였는지 무승들의 눈에 실려 있던 험한 기세가 조금은 줄어들었다.

‘그래, 분노에 휩싸여 있을 때가 아니로다.’

사십 년 전 기억이 아른거렸으나, 말끔히 지워 냈다.

사형으로서 분노에 몸을 맡겨도, 소림의 방장으로서는 냉정해야 했다. 공과 사는 구별해야 한다.

아무리 원수가 눈앞에 있다 할지라도 승려로서, 그리고 지도자로서 흥분할 수는 없었다.

“고맙소, 신승.”

방불통이 허리를 숙여 공손히 감사인사 했다.

마교의 사대호법이 소림의 신승에게 저리 공손한 태도로 인사하다니. 무림사를 뒤져 봐도 전무하다.

“사십 년 전의 일은 입이 찢어져도 할 말이 없소.

내 그 일은 뼈저리게 후회하고, 반성하고 있소.”

방불통의 눈빛은 한없이 진지했다.

비꼬거나 이죽거리는 태도는 한 줌도 보이지 않았다.

“마교는, 잘못됐소.”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말이었다.

방불통은 평생 동안 살아온 삶과 이념을 부정했다.

“여태껏 나 역시 약자는 먹히고 강자는 먹어 치운다는 걸 당연히 여겼소.”

약육강식(弱肉强食).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거요.

인륜에 어긋난 짓을 저질렀음에도 힘이 진리인 것처럼, 면죄부로 쓰다니. 그딴 게 허용될 리 없지 않은가.”

마교의 사대호법은 침음을 흘리며 잘못을 뉘우쳤다.

“어째서 그대들이 마교라 부르는지, 이제야 알 것 같소.

무림맹에 투항하여 참회하기 위해 본 교, 아니 마교를 뛰쳐나와 이곳 중원까지 왔소이다.

이젠 그 누구도 죽이고 싶지 않소이다.”

삶의 애환이 담긴 주름살 위로 눈물이 떨어졌다.

“극마에 이른 지 어언 이십여 년.

그 위를 노리려다, 이 힘이 어디에서 시작된 건지, 얼마나 추악한 건지 엿보다가 깨닫게 됐소이다.”

방불통은 선승과 마주 보며 애원하듯 호소했다.

“지금 내 행동이 얼마나 뻔뻔한 것인지는 알고 있소이다. 그러나 참회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오.

사대호법으로서 마교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도움이 된다면, 전부 알려드리리라. 용서가 될지 모르겠으나, 부디 이 노마의 잘못을 받아 주시오.”

혜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눈을 감았다.

철권마가 과거에 저지른 행동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

수련이라는 명목하에 사람의 목숨을 빼앗았다.

그때 일을 떠올리면 치가 떨린다.

당시에 사제의 몸을 붙들고, 절규하며 복수를 다짐했다.

그리고 사십 년이 흐른 지금, 정마대전이라는 중대한 사태를 앞에 두고도 복수를 위해 이곳까지 왔다.

“방장 사형.”

“잘못을 저지르고 뉘우치지 않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잘못을 사과하고 용서를 비는데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도 잘못이다.”

“사부님!”

“잘못을 뉘우치는 것은 훌륭한 일이며, 잘못을 비는 자를 용서해 주는 것은 더욱 훌륭한 일이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았느냐.”

잡아함경(雜阿含經)에 기록된 가르침이다.

“남양호법 아니 방불통 공.”

혜만이 방불통을 향해 합장했다.

“이 노승은 그대를 용서하겠소.

그러나 소림이 전부 용서를 한 건 아니오.

그러니 다른 이들에게도 찾아가 용서를 구하도록 하십시오.”

“선승……!”

방불통이 눈시울을 붉혔다.

“허어!”

“방장 사형!”

“나무아미타불……”

소림사에서 여러 가지 반응이 튀어나왔다.

불만의 목소리부터 시작해서 놀라움이나 체념 혹은 분노가 있었다.

어떠한 이는 그저 염불 소리만 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방불통을 잡아죽일 생각이었는데, 소림의 방장이 저리 나오니 주저함이 생겼다.

현 방장이자 신승의 영향력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번뇌, 번뇌로다……”

부처의 가르침대로라면 자비를 베풀어야 하지만, 사십 년 전의 원한이 원한이다 보니 쉽게 그럴 수 없다.

“소림의 땡중들 아니랄까 봐 말은 더럽게도 많구나!

실컷 떠들어라!”

금도마가 공간을 접듯이 이동했다.

도신을 감싼 도기는 중첩되면서 굳더니, 강기를 만들어 냈다.

금빛으로 휘황찬란한 도강은 대기를 둘로 갈라 방불통의 머리를 쪼갤기세로 떨어져 내렸다.

“어허!”

혜만의 신형이 사라졌다가 나타났다.

째앵!

금도마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그 손에 꽉 쥔 칼이 목표를 공격하지 못하고 도중에 막혔다.

그의 시선이 향하고 있는 곳에는 방불통 앞에 선 신승, 혜만이었다.

‘사대호법의 배교?’

한편, 주서천도 놀라운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일행은 경공술을 극성으로 펼쳐 달려 온 덕분에, 소림사를 뒤따라와 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해괴한 일이 벌어졌다.

마교의 부대가 방불통과 합류할 줄 알았는데, 그러기는커녕 죽이려 든다.

목표였던 대마두도 이해할 수 없었던 건 마찬가지였다.

다른 곳도 아니고 소림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내 살다 살다 마교도, 그것도 사대호법이 소림의 승려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걸 볼 줄은 몰랐다.”

몽각이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다들 놀라는 것도 이상한 건 아니다.

마교에서는 힘이 곧 진리다.

힘만 있다면 황제만큼은 아니어도 왕처럼 군림할 수 있다.

마음에 드는 남자건 여자건 간에 맘껏 범할 수 있고, 재산을 빼앗는 것도 묵인된다. 살인도 포함된다.

누가 봐도 잘못되고 미친 사상이지만, 마교 내에선 이를 지적해 봤자 비웃음당할 뿐이었다.

마성에 물들어 사람으로서의 도덕심을 버린 마인들 입장에선 무릉도원이나 마찬가지인 사회였다.

교주에게 송곳니를 드러내 패배하고 도망쳐도, 겁쟁이나 약자로 불리지 배교자로는 안 불린다.

첩자의 경우는 배교한 게 아니니 그리 불리지 않았다.

마교도면서 배교자가 되는 경우는 없다시피 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마교도가 개심해서 배교할 테니 받아 달라 한들 이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한데 누구보다 마교의 사상에 감화되고 온갖 권세를 부리고 있는 사대호법이 배교했다니 놀랄 수밖에.

“일단, 지금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닌 것 같아요.”

낙소월이 손가락으로 한 지점을 가리켰다.

“……!”

“저리 두었다간 소림사가 뒤통수를 맞겠구나.

도와줘야겠다.”

일행이 뛰어들었다.

“와아아!”

“죽여랏!”

서패호법, 금도마를 시작으로 마교도가 움직였다.

“조심하시오! 저들은 마교의 풍마대(風魔隊)요!”

방불통이 경고했다.

풍마대라면 악명이 자자한 마교의 추격 부대다.

추격 부대답게 경신술이 교 내부에서도 손꼽히며, 개개인의 무위 또한 최소 절정 수준이다.

특히 대주의 경우 화경, 극마지경의 초고수였다.

아무래도 배교자가 사대호법인 만큼, 마교에서도 확실히 끝내기 위해 큰 마음 먹고 보낸 모양이었다.

“방장 사형을 도와라!”

혜만 다음으로 소림의 어른인 혜법이 외쳤다.

그 외침에 십팔나한들을 선두로 소림의 무승들이 오십에 이르는 풍마대와 격돌했다.

“크읏!”

“악!”

“어딜!”

눈이 따라가지 못하는 격전이었다.

머리카락이 절로 쭈뼛 설 정도의 살의의 폭풍이 몰아쳤다.

그 누구도 한 치의 양보가 없었다.

소림사도 오늘 예정이었던 복수를 끝내기 위해서 실력자들을 데려왔고, 마교 역시 마찬가지였다.

서로의 수준이 비슷해 승부가 쉽게 나지 않았다.

항산파와 산서의 중소 문파 연합원들도 도왔으나, 그리 큰 힘이 되어주지는 못했다.

중소 문파 연합의 경우 괜히 훼방을 놓을 것 같아 접근 자체를 잘 못했고, 항산파는 인원이 몇 없었다.

원래부터 이 대마두의 척살을 소림사가 대대적으로 맡겠다고 해서 그런지 구 할이 소림사였다.

한편 격전이 치러지는 정중앙을 살펴보는 이들이 있었다.

척 봐도 불길함이 느껴지는 적들이었다.

그 인원이 무려 백에 이르렀는데 정중앙의 풍마대원들 만큼은 아니어도 범상치 않은 기세를 풍겼다.

그들은 소리나 기척을 내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조심스레 전진했다.

“컥!”

그러나 누군가가 거품을 물며 몸을 뒤틀기 시작해 얼마 가지도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야만 했다.

“독이다!”

“누구냐!”

어떤 독인지는 모르나 중독됐다.

발각된 것이나 마찬가지니 더 이상 숨는 것은 의미가 없다.

급습을 노렸는데 도로 아미타불이 됐다.

지금까지의 노력을 아까워하면서도 주변을 급히 둘러봤다.

“반갑다, 풍은대(風隱隊).”

적은 숨기는커녕 여기 있다고 광고하듯 나타났다.

“……”

풍은대주는 두 가지 의미로 놀랐다.

하나는 교내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부대의 이름이 밝혀진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적의 정체였다.

“검룡, 주서천!”

정파의 영웅에 관한 소문은 중원 밖 새외까지 널리 알려졌다.

몇 년 전, 혈근경을 두고 일어난 칠검전쟁이 너무나도 어이없게 정리되어 알려진 탓도 있었다.

“교에서도 아는 자가 몇 없는 풍은대에 대해 알다니…… 정파에서 심어 둔 첩자가 깊숙히 침투했구나.”

풍은대주가 눈을 가늘게 뜨며 중얼거렸다.

‘그럴 리가.’

풍은대에 대해서 알려지는 건 좀 더 나중이다.

그들에 대해 알고 있는 건 전생에서 싸워 본 적 있어서였다.

풍마대가 폭풍이라면, 풍은대는 폭풍 속에 숨어든 보이지 않는 칼날이었다.

그들은 일부러 초장부터 거리를 둔 채 은둔해 있다가, 급습을 통해 적들의 뒤통수를 쳤다.

폭풍에 눈을 빼앗긴 이들은 이를 눈치채지 못하고, 이유도 모른 채 죽는다.

낙소월이 발견해 줘서 뒤늦게 눈치챌 수 있었다.

“아흔넷, 아흔다섯…… 아흔다섯.”

독으로 다섯 명을 저승으로 보낸 당혜가 풍은대가 몇 명인지 세어 본다. 백 명이었으니 숫자는 맞았다.

그에 비해 풍은대와 대치하고 있는 일행은 몹시 적었다.

“하하하하!”

풍은대주가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정파의 후기지수들이 오만하다곤 들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설마 고작 여섯 명으로 풍은대와 싸우겠다는 게냐?”

‘아니, 일곱이다.’

그임자 속에 소령이 숨어 있다.

그러나 굳이 그걸 알려 줄 필요는 없었다.

물론 여섯이나 일곱 명이나 적은 건 매한가지다.

설사 알려 줬다고 해도 조롱 섞인 반응은 별반 다를 것 없었으리라.

“일류에서 절정 정도로구나. 저 대주란 자는 초절정인 듯 싶으니, 주의해야 한다.”

몽각이 검을 돌려 잡고 경고했다.

“삼재검진을 준비해라.”

담향은 일행 중에서 검진의 지휘에 능숙하다.

몽각과 낙소월은 호흡을 맞춰 준비했다.

“으으음. 정말로 도움을 청하지 않아도 괜찮겠습니까?”

독룡, 당명인이 되물었다.

아무리 실력에 자신이 있다고 한들 백여 명의 마인들은 부담스럽다.

정확히는 아흔하고도 다섯 명.

이들과 정면으로 부딪쳤다간 큰 부상을 입을지도 모른다.

또한 풍마대 역시 코앞에 있으니, 그들과 싸울 생각을 한다면 소비될 힘이 걱정됐다.

“풍은대도 풍은대지만, 풍마대는 마교의 정예입니다.

소림사에선 도와줄 겨를도 없을 거고, 그 외의 분들에게는 미안한 말이나 껴든다면 움직이는 데 불편할 겁니다.”

 주서천 정도 되는 경지에 오르면 복잡한 전장 속에서도 아군을 요리조리 피해 적만 공격할 수 있다.

그러나 굳이 그럴 필요를 못 느꼈다.

툭 까놓고 말해서 방해가 된다.

차라리 혼자 싸우는 게 편했다.

‘자아, 그럼. 이 힘이 얼마나 되는지 볼까?’

현경에 오른 뒤 홀로 검을 휘둘러 수련은 해 봤어도, 혈마 외의 타인에게 힘을 시험해 본 적이 없었다.

지금의 무위를 시험해 보기에 딱 좋았다.

“미리 말하마.”

주서천이 몸을 풀 듯 발목을 빙글빙글 돌렸다.

“나는 강하다.”

“미친놈!”

풍은대주가 코웃음 쳤다.

“운 좋게 어부지리로 혈마를 죽인 것에 불과하거늘, 그걸 자기 힘인 것처럼 착각하는구나!”

검선에게 치명상을 입은 혈마가 주서천의 손에 의해 죽은 건 무림에서 모두가 아는 일화다.

풍은대주 역시 그리 생각했다.

천하백대고수에 드는 화경이라는 건 인정하나, 그것뿐이다.

그래 봤자 이제 막 약관을 넘어선 애송이일 뿐.

저리 오만에 잠겨 있으니 눈감고 싸워도 이긴다.

“좋다! 그리 뒈지고 싶다면 소원대로 해 주마!”

풍은대주의 입가가 씰룩였다.

마성이 짙은 안광이 시커멓게 불타올랐다.

평소에는 들키지 않도록 숨까지 죽이고 있으나, 정면으로 싸울 때는 마교도답게 포악한 모습을 보였다.

“주서……”

퍼억!

풍은대주가 말을 잇지 못했다.

무언가 번쩍이더니만, 자색의 선이 긴 궤적을 남기고 그의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 대신 뒤편에 서 있던 풍은대원의 고개가 뒤로 젖혔다.

돌팔매질에 당한 것처럼, 머리가 수박처럼 깨졌다.

육신도 뒤로 벌러덩 쓰러졌다.

“천……?”

풍은대주가 끊었던 이름을 이었다.

‘방금, 무엇이 지나간 거지?’

분명히 자색이 번쩍이는 건 보았다.

그러나 그다음 어떤 일이 벌어진 지 알 수가 없었다.

정신이 돌아왔을 때는 빛줄기가 뺨을 스치고 지나가 뒤에서 대기 중이던 수하의 머리를 박살 냈다.

황급히 앞을 살펴보니 엄지와 중지를 말고 있는 화산의 괴물이 있었다.

손가락 끝에 자색의 아지랑이가 일렁이는 것을 보고 어떤 수를 쓴지 알 수 있었다.

“자하지!”

화산파의 상승 지공, 그중에서도 장문인에게만 허락된 자하신공에 포함되는 무공이었다.

“소문은 익히 들었으나 정말일 줄이야……”

풍은대주 대신 당명인이 말했다.

화산의 전대 장문인, 검선 우일문 진인이 우화등선을 앞에 두어 자하신공을 전수했다 들었다.

화산오장로를 비롯하여 검룡 주서천이 그 힘을 대신 이어받았다 들었는데 정말이었다.

“누가 누구에게 대단하다고 말하는지 모르겠네요.”

낙소월이 질린 듯이 말했다.

정작 화산파 제자들도 놀라움을 숨기지 못했다.

자하지가 극상의 지공이란 건 익히 들어 안다.

역시나, 하고 수긍이 가는 위력이었다.

그러나 그 기반이 난해하기로 소문난 자하신공인 만큼 이렇게 직접 응용하는 건 어려웠다.

실제로 화산오장로 역시 전수받았다 하지만 제대로 된 위력을 내기는커녕 펼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괜히 그를 보고 유례없는 대천재라거나 혹은 괴물이라 부르는 게 아니었다.

“전 장문인께서 자하지로 저 정도의 위력을 내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고 하셨거늘……”

몽각도 머리를 좌우로 절레절레 흔들었다.

“놀라는 것도 적당히 해라. 서천이에게 전부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매화검수의 힘을 보여 주자.”

매화검수로 이뤄진 삼재검진이 움직였다.

검진은 누구나 알고 있는 기초적인 합격진, 삼재검진이나 그 구성원들이 손쉬운 대상이 아니었다.

화산의 최정예가 아니던가.

개개인의 무력도 무력이지만 호흡 역시 완벽히 맞춰 마치 한사람 같았다.

“으아아악!”

“커헉!”

매화가 흔들릴 때마다 피 안개가 흩뿌려졌다.

풍은대는 마성을 뽐내며 고작 셋밖에 되지 않은 검수들을 죽이려고 덤벼들었지만, 도리어 당해 버렸다.

그사이 독룡과 독봉, 당가의 남매가 각자 소매에서 암기와 독을 흩뿌리며 주변을 집어삼켰다.

“뭐, 뭐야! 누군가가 숨어 있다!”

“커헉!”

풍은대원 몇몇이 독인들은 근접전이 취약하다는 걸 알고 접근했으나, 다가가지도 못하고 죽었다.

풍은대조차 간파하지 못하는 고도의 은신술을 숨 쉬듯이 응용할 수 있는 자객, 유령곡의 소령이었다.

소령은 주로 당혜와 당명인 주변을 돌면서 위험할 만한 싹을 짓밟았다.

“검룡과 동행하시는 분이 어떤 기인이신지는 모르겠으나, 그 실력이 보통이 아니로구나.”

당명인의 입에서 감탄사를 흘렸다.

주서천은 사전에 소령에 대해 소개했다.

당연히 정체에 관해선 사실을 철저히 숨겼다.

강호에서 우연찮게 만난 기인인데 위기에서 구명하여 그 보답으로 호위를 맡은 거라 설명은 해 뒀다.

누가 들어도 수상쩍었으나, 사정을 아는 당혜와 낙소월이 옆에서 거들어 줘서 어찌어찌 넘어갔다.

참고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소녀라는 걸 모른다.

‘말도 안 돼!’

풍은대주가 속으로 경악했다.

아무리 오룡삼봉이나 매화검수라지만 이렇게까지 압도적일 줄은 상상하지 못한 눈치였다.

하나 이렇게까지 활약할 수 있던 것도 주서천이 대다수의 풍은대원을 상대했기에 가능했다.

‘과연. 이것이 답습의 힘이로구나!’

한편, 주서천도 경천동지할 위력을 보고 놀랐다.

심상구현은 답습과 회귀.

그중 답습이란 이름 그대로, 배워오던 것을 또다시 행하여 무공의 성취를 높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습득의 속도가 몰라보도록 빨라졌다.

세간에선 고금 제일의 대천재라 알려졌지만 그건 틀리다.

어디까지나 전의 성취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화산 외의 무공들은 대부분 기존의 깨달음이 있어서 그럭저럭 빠르게 올릴 수 있었다.

그게 비밀이다.

만중검이 특히 그랬고, 일월신궁은 좀 늦었다.

즉, 새로운 부류를 배우려면 재능이 평범하니 습득 시간도 오래 걸리고, 그 수준도 낮았다.

하지만 이 답습을 손에 넣은 뒤로는 달라졌다.

반복 학습을 거듭할수록 정말 대천재의 효능을 냈다.

그래서 거의 다섯 달 가까이 정휘련을 가르치면서 스스로의 단련도 열심히 해 여러 가지를 습득해 뒀다.

중도만공으로 습득한 무공의 경우 전부 오성을 이뤘다.

선행백변 역시대성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발전을 이룬 건, 자하신공과 자하검결이었다.

검선 우일문과 동일하게 대성을 이뤘다.

“오거라, 풍은대! 이번에는 이쪽이 괴롭혀 주마!”

아흔다섯 대 일곱. 싸움이라는 개념이 아니다.

성립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다수가 긴장했고, 소수가 여유를 부렸다.

이상한 광경이었다.

마교도는 포악하고 호전적이다.

이렇다 보니 언제나 선공을 취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선공은 정파의 도사, 검수가 취했다.

“후웁!”

숨을 들이쉬자 근육이 오그라진다.

그 육신이 활등처럼 굽어졌다.

전체적으로 수축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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