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교의 준동에 중원 무림이 요동쳤다.
“다행이로군.”
사도천주는 안도했다.
세력이 반으로 줄은 지금, 혹시나 정파나 마도이세가 공격해 오면 어쩌나 노심초사했다.
그러나 천만다행으로 가만히 놔둬도 알아서 싸웠다.
“어부지리로다.”
정작 싸우는 건 정파와 마도이세였는데, 이득을 보는 건 사도천이었다.
정혈대전이 일어나더니만, 혈교의 군세가 패퇴한 동시에 상천십좌가 상천팔좌로 줄었다.
혈마와 검선이 동귀어진했다는 소식에 사도천주는 집무실에서 쾌재를 터뜨리며 좋아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교까지 중원을 침공한다고 들으니 웃음이 끊이지를 않았다.
“하늘이 사도천을 돕는군.”
멍청한 아들의 실수 탓에 거의 모든 걸 잃을 뻔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오늘 같은 호사가 생겼다.
“손자병법에선 모든 것은 전쟁만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더니만 그 말 그대로다.”
싸우지 않고 이기라는 말로, 전쟁외의 수단으로 해결하라는 뜻이었다.
오늘만큼 긍정한 적이 없었다.
실제로 무림을 나눈 세력 그 어느 곳과도 싸우지 않고 승리했다.
정파건 마교건 승패 여부에 상관없이 큰 피해를 입을 테니, 그 전에 힘을 축적해 두면 그만이었다.
사도천주는 반으로 나뉜 사도천을 느긋하면서도 확실하게 회복하면서 전란을 살폈다.
“일 만의 마교도가 청해를 목표로 전진하고, 무림맹의 주요 세력도 청해로 몰려드는구나.
암, 그래야지. 무리했다가 마교의 침공을 막아 내지 않으면 큰일이니까.
이 황금 같은 기회에 땅 하나 먹지 못하는 게 좀 아쉽지만…… 뭐, 상관없다.”
마교의 침공을 막으려고 정파 대부분이 움직였다.
다만 사도천의 뒤통수를 신경 쓰는건지 최소한의 수비 병력은 주둔시키고 갔다.
물론 마음만 먹으면 귀주라거나 그 외의 땅을 빼앗을 수는 있었다.
그러나 그럴 가치가 별로 없었다.
차라리 재정비를 하며 힘을 키웠다가, 정마대전 이후 총전력으로 이기는 것이 나았다.
“한데, 남양호법은 뭐지?”
사도천주도 남양호법의 행적을 이해하지 못했다.
정작 마교는 정마대전의 준비를 앞에 두고 바쁠 터인데, 사대호법이란 자가 홀로 먼 산서까지 왔다.
아니, 원래 산서에 숨어 있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왜 산서에 있었는지가 궁금했다.
무엇보다 싸우지 않겠다는 등의 헛소문이 신경 쓰였다.
한편, 무림맹도 이 남양호법의 움직임에 집중한다.
“남양호법의 등장은 수상한 점이 한둘이 아닙니다만, 좋은 기회입니다.”
제갈상이 남궁위무을 찾아가 말했다.
“정마대전을 코앞에 둔 상황입니다.
소림사가 있어 사로잡는 것은 불가능해도, 사살하는 것만으로도 이득입니다.
아군의 사기를 최대로 끌어 올릴 수 있습니다.”
마교도야 교주가 아닌 이상 누가 죽어도 별 상관하지 않아 사기가 그대로겠지만 무림맹은 다르다.
시작도 전에 적의 사대호법, 수뇌를 처리했다는 게 알려지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두말할 것 없다.
“듣자 하니 신승께서 나서신다고했는데, 굳이 무림맹의 지원이 필요하겠나?”
소림사는 원수인 방불통의 복수를 전적으로 맡겨 달라 요청했다.
정마대전에 필요한 전력을 전부 빼는 것도 아니고, 은원 관계를 중시하는 무림 특성상 존중하기로 했다.
마침 산서는 하남의 코앞에 있으니 문제없었다.
“말씀하신 대로 소림사가 대대적으로 나설 테니, 저희의 지원은 그리많이 필요 없습니다.
검룡과 독룡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아!”
남궁위무가 탄성을 내질렀다.
“독룡이 정파의 영웅과 등을 맞대고 대마두의 토벌에 힘 씀으로써 지금 집중된 의심을 풀게 할 생각인가?”
“그렇습니다. 독룡을 향한 의심이 이 이상 깊어진다면, 그도 흑영부로서 활동하는 데 지장이 생깁니다.”
“과연, 상책이로다.”
남양호법, 방불통.
사십 년 전에 철권마라 불려진 대마두의 척살행이 정해졌다.
목적지는 최후의 목격지인 산서였다.
무림맹은 마교의 침공에 집중하느라 최소한의 지원만 보냈다.
산서나 하북, 요녕과 산동 등 동북부 지방의 중소 문파에게 서신을 보내두었다.
그 외의 세력은 전부 청해로 보내졌다.
“방불통이라……”
주서천이 합비를 떠나면서 중얼거렸다.
“사십 년 전의 활동을 끝으로 중원에는 나타나지 않았던 모양이에요.”
낙소월이 옆에서 살짝 웃으면서 설명했다.
말을 끝내곤 시선을 마주치며 ‘어때요? 잘 알아 왔죠?’ 하고 조금 건방진 듯 살짝 웃는 게 귀여웠다.
어떻게 알아 왔냐고 물어보자 개방도에게 물어보니 간이고 쓸개도 뭐고 넘길 기세로 가르쳐 줬다고 한다.
‘무섭구나, 섬서제일미녀!’
홀린 듯이 대답하는 개방도가 머릿속을 지나갔다.
‘모르는 이름은 아닌데……’
소림사의 원수인 데다가 사대호법이다 보니 악명도 높을 수밖에 없었다.
전생에서도 역시 대마두에 속했다.
다만, 그 행적에 관해서는 잘 모른다.
혜자 배분과 동시대에 활동한 노(老)마두가 아닌가.
어림잡아도 일흔 살. 알 리가 없다.
이 경우도 최소로 잡은 것이니 더 될지도 모른다.
원래의 역사대로라면 마도전쟁 중이거나 혹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으리라.
당연한 이야기지만, 뜬금없이 산서 부근에 홀로 나타나 정파의 포위를 받았던 역사는 없었다.
이런 특이한 경우가 있었다면 모를 리 없다.
‘정말로 어째서 혼자 나타난 거지?’
중원 침공이 코앞인데 혼자 정파세력 영역권에서 돌아다니는 것이 이해가 안 갔다.
‘이래서 이 미친놈들이 싫다니까.’
미래에 대한 지식이 조금도 통하지 않는다.
역사가 과거대로 흘러갔더라면 조금이라도 그 앞을 예견할 수 있지만, 완전히 달라진 지금은 아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정신 이상자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내다볼 수가 없다.
“노마두 덕에 간만에 이렇게 바람도 쐬고 좋은 것 같습니다.”
당명인이 태평한 소리를 했다.
그러나 뭐라 할 수는 없었다.
그가 가문을 위해 어떤 희생을 감수하는지를 떠올리면 그저 안타까웠다.
“……”
당혜는 그런 오라비를 복잡한 심경으로 쳐다봤다.
합비를 떠나기 전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당가에게 더 이상 자존심 따위는 존재하지 않아.
남아 있는 이들은 현실에 체념한 패배자 밖에 없어.’
반어적이었다.
무림 세력에서 자존심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당가가 더 이상 자존심이 남아 있지 않다니.
아니, 어쩌면 그렇기에 자존심이 강한 걸지도.
정파의 위선자들을 대신해 필요악을 자처하며, 희생하는 만큼 보상받고 싶어 하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당혜는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에게선 무언가의 의지가 느껴졌다.
그녀의 눈에는 언제나 독기가 흘러넘쳤다.
그 독기가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주서천은 그 대신, 당혜에게 그녀가 품은 마음을 당가의 사람도 알고 있냐고 물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
당혜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였다.
어쩌면 당혜는 생각보다 독한 사람은 아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권세를 위해 자유를 빼앗고 희생을 강요하는 가문.
그게 잘못된 것을 알고, 혐오하면서도 정작, 희생하는 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는건, 여태껏 해온 것이 무의미하고 잘못됐다고 말하는 것과 같으니까.’
전생의 당혜는 어떤 최후를 맞이했을까?
당가의 운명에 끝까지 저항했을까.
혹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을까.
그런 의문이 들었다.
산서에는 남으로 하남, 동으로 하북, 서로 섬서, 위로는 몽골족이 있다.
항산이 이 산서에 있어, 정파는 항산파나 하북팽가의 사람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렇다고 온전히 정파의 세력권이라 부르기에는 힘들었다.
북방의 오랑캐를 코앞에 둬서 그런지 관군의 영향력이 워낙 강해 무림문파의 활동은 제한되어 있었다.
도적들이 얼씬도 하지 않는 건 물론이고, 호전적인 무인들조차 괜한 사고를 치지 않으려 조심조심했다.
지방이라면 모를까, 몽골족과의 싸움이 심심찮게 일어나는 최북부 지방인지라 관군이 예민했다.
그리고 그런 곳에서 대마두의 척살이 진행됐다.
관군도 소문을 대충 들었으나, 백성들이 두려워하는 마두를 알아서 처리해 주겠다 해서 가만히 있었다.
무엇보다 그 소림사가 나섰다고 하지 않았나.
알아서 하겠거니 하고 넘어갔다.
산서, 태원(太原) 지부.
“뭐요?”
태원 지부장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는 개방도가 전해 준 소식을 재확인하듯 되물었다.
“다시 한번 말해 보시오.”
“홍현(興縣) 부근에서, 마교의 부대가 발견됐습니다.
규모는 약 오십여 명 정도. 그것도 하나같이 절정에 이르는 정예들이라 합니다.”
“지금 그게 뭔 개소리요!”
태원 지부장의 얼굴이 흙빛으로 물들었다.
“청해로 향해야 했을 놈들이 왜 여기에 있어!”
마교의 고수들이 나타났다.
그것도 오십여 명이다.
이 정도 숫자라면 산서는 순식간에 쑥대밭이 된다.
산서는 사실상 중원의 전선과는 제일 멀다.
관군의 영향력이 큰 만큼, 어차피 싸움도 잘 일어나지 않으니 무림 지방 중에서도 최후방이었다.
제대로 된 전력이었을 리도 만무하고, 주변의 지역에 있는 정파의 전력은 일찍이 청해로 떠났다.
‘설마 양동 작전?’
불길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나 태원 지부장은 곧바로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부정했다.
‘아무리 정신 나간 마교도라 해도, 북경을 코앞에 두고 몽골족이 위에 있어 민감한 산서를 통해 습격해 올 리 없다.’
의문은 더 있었다.
‘무엇보다 고수라 해도 오십여 명 밖에 되지 않은 숫자로 뭘 할 수 있겠냐. 양동 작전 같은 건 아니다.’
머리를 굴려 봤지만 이렇다 할 답은 나오지 않았다.
‘방불통과 합류하려는 건가?’
철권마 혹은 남양호법 방불통.
마교의 사대호법이 혼자 나타난 것에는 이유가 있으리라.
오십여 명의 마교의 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우연치고는 너무나도 공교로웠다.
알 수 없는 무언가의 사정이 엮여 있을 것이라 생각됐다.
“전서구, 아니 전서응을 보내야겠다!”
태원 지부장이 다급하게 외쳤다.
삐익!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 발목에 서신이 묶인 매가 광활한 창궁을 날아 어떤 사람에게 도착했다.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는군.”
주서천이 눈살을 찌푸렸다.
“도대체 무슨 일 일까요?”
낙소월도 생각에 잠겼다.
“양동 작전이라 하기에는 그 수가 적다.”
몽각이 이상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동감이야. 방불통은 도대체 뭐지?”
담향도 머리를 이리저리 굴리며 의아해했다.
정찰치고는 방불통은 너무나도 거물이다.
사대호법이 혼자 나타난 것이 이해가 안 갔다.
그러한 상황에서 마교의 부대가 등장했다.
몽각이 말 한 대로 양동 작전이라 생각하기에는 적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것 같아요.
아무래도 속도를 올려야 할 것 같아요.”
주서천 일행은 안휘에서 출발했다보니, 보다 가까운 하남에서 출발한 소림사보다는 늦었다.
그러나 인원이 적어서 움직임이 보다 빨랐다.
내공의 소모가 제법 크겠지만,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일행은 경공을 극성으로 펼쳐 태원으로 향했다.
‘혹시……’
주서천은 속으로 한 가지 가능성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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