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하하!”
천기가 무릎을 탁 치면서 웃었다.
외팔이라는 걸 증명하듯, 빈 소매가 웃음소리에 맞춰 움직였다.
“누가 정파 아니랄까 봐 참으로 위선이구나!”
천기가 천하를 내려다보며 비웃음을 흘렸다.
“노자가 말하길, 부유병자부상지기(夫唯兵者不祥之器) 물혹악지(物或惡之) 고유도자부처(故有道者不處)라 하였다.”
무기라는 것은 상서롭지 못한 기구다.
자연(物)은 그래서 이를 미워한다.
그러므로 도를 깨달은 사람은 이것을 쓰지 않는다.
“도가의 창시자가 그리 말했거늘, 정작 그 의지를 이은 것들이 무기를 쥘 사람과 돈이 부족해 도움을 요청하는구나! 이를 보고 위선이라 하지, 뭘 보고 위선이라 하겠느냐! 주서천!”
천기가 분노로 뒤섞인 외침을 토해냈다.
“뭐가 옳다느니, 뭐가 글렀더냐! 영웅이여!
결국, 정사건 마도건 간에 똑같지 않은가!”
영웅의 연설에 돈과 사람이 움직였다.
누군가를 돕고 싶다고, 약간의 용기만 더하면 영웅이란 말에 돈과 사람이 무림맹으로 모였다.
주서천의 재산, 금의상단의 돈도 제법 움직였다.
그 외에도 주서천에게 크고 작은 도움을 받은 사람들도 조금씩이나마 보탰다.
한 사람, 한 사람은 작을지 몰라도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니 그 금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은거한 기인이나 고수들도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뒤, 마교가 대대적으로 움직인다.
그 숫자가 무려 일 만에 이르렀고, 중원 침공을 위해서 첫째 격전지인 청해로 향한다.
“칠검전쟁 사도천의 내란, 정혈대전…… 그리고 정마대전까지. 전부 십 년 안팎으로 일어났구나.”
호사가들은 수군거리며 이리 말했다.
“그야말로 전란(戰亂)의 시대로다!”
탓탓탓!
누군가가 수풀을 헤치고 달렸다.
그 속도는 몹시 빨라, 사람이 아닌 짐승인가 싶었다.
“저기다!”
그러나 짐승이 아니었다. 사람이었다.
달은 물론이고 별빛 하나 새어 나오지 않는 한밤중.
일련의 무리가 횃불을 들고 주변을 밝힌다.
마치 도깨비불처럼 일렁이는 횃불.
그 불은 차츰 수십을 넘어 백여 개로 늘어나 빛이 됐다.
“커, 허억!”
당장이라도 멈춰 서고 싶었다.
그러나 그리 되면 어찌 될지 잘 알고 있기에 심장이 아프도록 뛰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좁혀진 포위망에 둘러싸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도망쳐도 소용없다! 남양호법, 방불통!”
남양호법!
중원, 아니 전 무림에서 그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천하백대고수라서가 아니라 마교에서 교주와 부교주 다음가는 권력자, 사대호법이기 때문이었다.
그 손에 죽은 정사의 무인들은 수도 없이 많으며, 무림인들이라면 치를 떠는 대마두였다.
“신강에서 청해로 향하고 있을 네놈이 어째서 이곳에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살아 돌아갈 생각은 말라.”
추격자의 우두머리의 손에 쥔 칼이 횃불의 불빛에 반사되어 섬뜩하게 빛났다.
“기, 기다려라!”
방불통이 큼지막한 손바닥을 쫙 펼쳐 제지했다.
“대화, 대화를 하자!”
“하?”
추격자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방불통을 포위한 무림맹의 무사들도 황당하다는 얼굴이었다.
“마도인, 그것도 사대호법이 대화를 하자고?”
마교의 교리는 첫째도 힘이요, 둘째도 힘 그리고 셋째도 힘이다.
형태가 어떻건 간에 무력이란 것이 진리이자 모든 것으로 숭배되는 정신 나간 사상을 지니고 있다.
힘만 있다면 어떠한 행위던 용서받는다.
얼마나 정신 나갔냐 하면, 살인이건 강간이건 심지어 인체 실험이나 대학살도 이 논리로 용서를 받았다.
누군가 이를 문제 삼으면 ‘약자 주제에 뭔 헛소리냐.’ 라면서 도리어 비웃는 경우가 허다했다.
즉, 의견이나 사상이 어떤지 중요하지 않다.
하나부터 열까지 힘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마인들을 마주했을 때 ‘대화로 풀어 보자.’ 라 하면 백이면 백 ‘네가 날 힘으로 제압하면 대화를 하겠다!’ 라고 얼토당토 않은 말을 하면서 덤벼든다.
머리에 뇌는 있는 것인지 의심이갈 정도의 광인이, 침착한 어조로 대화하자 말하니 어이없을 수밖에.
“아, 그래. 힘으로 어떻게 해볼 수 없으니 약자란 걸 인정한 것이냐? 과연, 마교도 답구나.”
추격자가 헛웃음을 흘리며 수긍했다.
“그런 게 아니다! 나는 싸우고 싶지 않다!
누굴 죽이고 싶지 않단 말이다!”
“……미치기라도 한 건가? 아니, 두 번 미친 건가?”
마교도는 기본적으로 미친놈이다.
그런데 그 미친놈이 또 미친 소리를 했다.
이해가 안 갔다.
싸움이라면 눈이 뒤집혀서 힘의 대결로 모든 걸 증명하려는 마교도가 싸우고 싶지 않다니.
“정말이란 말이다! 그 증거로 반격하되, 누구를 죽이지 않지 않았느냐! 내 말이 틀린가?”
“헛소리!”
추격자가 코웃음을 쳤다.
“실력이 부족하여 죽이지 못한 걸 일부러라는 듯이 떠들다니, 이제 보니 자존심 때문이로구나!”
“기, 기다려! 내 말을 들어라!”
“죽여라!”
달빛은커녕 별빛 하나 없는 시커먼 암흑 속.
병장기가 부딪치는 소리가 쉴 새 없이 울렸다.
숭산, 소림사.
“방불통?”
소림사 방장, 신승 혜만대사가 움찔 떨었다.
“마교의 사대호법, 그 대마두가……”
계율원주, 혜정의 목소리는 노기로 가득 차 있었다.
혜정만이 아니다. 유독 혜자 배분들의 반응이 심했다.
“나무아미타불……”
노승들은 화를 가라앉히기 위해 염불을 외웠다.
“그 원수를 가만히 둘 수 없습니다.”
홍고가 서슬 어린 눈빛을 뿜어내며 말했다.
“그러나 조금 신경 쓰이는 것이 있습니다.”
지객당주, 홍수가 무언가 걸리는 듯이 말했다.
“경 쓰이는 것?”
“예. 방불통 그자가 이상 행동을 한다 합니다.”
“마교도야 원래 이상하지 않은가. 그들은 미쳐 있네.”
힘을 추구한 끝에 이성을 버린 마라들이다.
그 누구도 정상인이 없다.
굳이 비교적 정상적인 사람을 꼽으라면 마공의 부작용에서 벗어난 상천십좌인 탈마지경의 천마뿐이다.
“그게 …… 추격자들의 말에 의하면 손속에 살의를 두지 않고 있다고……”
“허?”
뭐가 이상하냐고 했던 승려도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걸로 끝이 아닙니다. 듣자 하니, 싸움을 원하지 않는다면서 반격하지 않고 도망만 친답니다.”
“무엇인가 잘못 알고 있는 게 아닌가?”
“정말입니다. 실제로 추격자 중에서 부상자가 있었으나, 사상자는 하나도 없었다 합니다.”
자고로 죽이는 것보다 죽이지 않고 싸우는 것이 더욱 어려운 법이다.
아무리 천하백대고수라 해도, 백여 명 이상의 추격자들에게 쫓기는 와중에 그런 여유는 없었다.
아니, 그 전에 그 대마두가 손속에 사정을 두었다는 것이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누군가가 정보에 장난이라도 한게 아닌가.”
“맞네. 사십 년 전에 그자가 한 짓이 기억나지 않나.”
노승들이 방불통의 이름에 분노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는데, 과거의 한 사건 때문이었다.
‘철권학살.’
사십 년 전, 소림의 세대 교체가 이뤄지기 전.
혜자 배분이 아직 강호에서 왕성하게 활동 중일 때다.
어느 날, 괴인이 중원에 나타났다.
“맷집 좀 되는 놈들 있으면 나와봐라. 수련 좀 해야겠구나.”
괴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철권마(鐵拳魔)라 불렸다.
철권마는 어떠한 무공을 익혔는데, 이 무공은 연공할수록 육체가 단단해져 금강불괴에 이른다고 한다.
효능만 들어 보자면 외공이나, 피부만이 아니라 내장까지 단단해져 후에는 내가중수법까지 버틴다 한다.
어찌 보면 절세의 신공이겠으나, 수련하면 수련할수록 포악해지는 특성을 지닌 마공이었다.
더더욱 무시무시한 건, 여타 외공과 같이 부딪치면서 연마하되 그 대상이 돌이나 바위, 나무 등 단단한 물체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마공이 마교의 호교백팔공인 철혼기공(鐵魂氣功)이라는 게 밝혀졌다.
그 후 마인을 토벌하기 위해 정파인들이 몰려들었으나, 대부분이 몇 수 버티지 못하고 죽어 버렸다.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사망자가 대거 속출하자 마인은 마두로 격상됐고, 보다 못한 대문파가 나섰다.
소림사는 그 대문파의 선두에 서게 됐다.
이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철권마의 토벌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 잘난 마두도 죽을 거라 믿었다.
하나 그건 크나큰 착각이었다.
자신만만한 대문파의 자제들이었으나 그 누구도 철권마에게 치명상을 입히지 못하고 전멸한 것이었다.
소림사의 피해가 특히 더 컸고, 당시 배분이 바로 혜자 배였다.
사망자 중에는 혜만의 사제도 있었다.
당연히 정파 무림은 복수심에 불타올랐으며, 소림사에서는 나한까지 내보내 철권마를 쫓았다.
하나 이를 눈치챈 철권마는 일찍이 도망쳤고, 이를 갈던 정파인들은 닭쫓던 개 신세가 됐다.
몇 년 뒤, 방불통이라는 마도의 고수가 남양호법에 오르는데 그 정체가 철권마라는 사실이 알려진다.
“……”
혜만이 생각에 잠겼다.
‘해소야……’
눈을 감으니 사십 년 전에 잃은 사제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일을 떠올리니 가슴이 죄여 오듯 아파 왔다.
누구보다 성실했으며, 심성이 선한 아이였다.
강호행 중 누군가 굶주린 자가 있다면 경비를 털어서라도 배를 채워주려고 했다.
불의에 고통받는 사람이 있으면 누구보다 먼저 한걸음에 달려가 도우려 했다.
그런 아이가 철권마의 마수에 목숨을 잃었을 때 얼마나 슬퍼했는가.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소림의 원수를 직접 잡아 한을 되갚아 줘야 합니다.”
홍고가 눈에 불을 켜면서 나섰다.
아무리 마두라고 한들, 저리 흥분하며 ‘우리 손으로 족쳐야 합니다.’ 라 말하는 건 승려로서 잘못됐다.
혜만 역시 평소라면 그런 홍고를 꾸짖었겠지만, 방불통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이번만큼은 넘어갔다.
그 외의 노승들도 매한가지였다.
그들의 눈도 사십 년 전의 원한으로 고요하게 타오르고 있었다.
소림사 방장이 결정을 내렸다.
“산서에 있다 하였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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