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九章 (142/254)

이튿날.

독룡, 당명인에 대해 아는 것이 적었다.

현 상황에서 의심을 받고 있는 이상, 그걸 알고 경계할 터.

조금이라도 경계심을 풀려면 적어도 대화가 성립될 수 있도록 공통 주제를 찾는 게 우선이었다.

자칫 잘못해서 싫어할 만한 주제라도 고르면 큰일이니,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그래서 당명인에 대해 알아보려 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주변을 조사해도 이렇다 할 정보가 없었다.

‘흑영부에 들어간 탓인가, 현생에서도 전생에서도 이렇다 할 정보가 없구나.’

당명인은 전란의 시대의 희생양이었다.

이렇다 할 활약이 없었다 보니 전생에서도 기억이 몇 없었다.

설사 활약을 했다 해도, 흑영부 소속으로서 가려졌을지도 모른다.

알고 있는 것이라곤 일찍이 당가에서 인재로서 두각을 드러냈고, 약관이 되자마자 오룡삼봉이 된 것.

그리고 무림맹에 부름을 받아 독원으로 파견된 정도였다.

“당명인……”

“오라비가 일하는 곳에 서서, 사모하는 사람을 부르는 것처럼 중얼거리는 것은 참아 줬으면 하네요.”

무림맹의 부름에1 오늘 막 도착한 당혜였다.

“오, 독봉 소저 아닙니까.”

주서천이 당혜를 반겼다.

“오룡삼봉이 된 검룡, 주서천입니다.”

주서천이 장난을 섞어 인사했지만, 당혜는 눈길 하나 주지 않았다.

어딘가 모르게 착잡함이 묻어나는 그 눈동자에는 독원의 간판이 비쳤다.

주서천은 그 등을 지켜보다 예전 일을 떠올렸다.

최근은 아니지만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다.

과거에 당혜와 동행하여 무림맹에 방문했을 때, 그때도 그녀는 독원 앞에 서서 가만히 바라봤었다.

그 모습을 보고 궁금했었으나, 무언가 사정이 있는 듯 싶어 당시에 묻지 않고 지나간 기억이 떠올랐다.

“흑영부에 대해서 들었다며?”

당혜의 물음에 주서천이 놀랐다.

“……조금, 이야기해 줄게.”

당혜는 발걸음을 옆으로 돌렸다.

주서천이 그 뒤를 따랐다.

독원의 건물 외곽을 따라서 뒤쪽으로 도니 대나무 숲이 나왔다.

건물로 들어가지 않고 죽림에 들어섰다.

“흑영부와 밀접한 사람은 누구라고 생각해?”

높디높은 대나무 탓에 햇빛이 잘들어오지 않아 어둡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전부 같아, 안내하는 사람이 없다면 길을 잃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혜는 걷다가 어떤 지점에서 멈춰서더니, 발밑의 수풀을 헤치고 무언가를 잡아당겼다.

“무림칠장로? 군사나 부군사? 아니면 무림맹주?”

드르륵. 철컥.

땅이 열렸다.

말 그대로 지반이 뒤집혔다.

정확히 말해서 수풀에 숨겨져 있던 비밀스러운 문이었다.

“아니.”

문을 통해 계단을 내려갔다.

몇 걸음 내려오자 위에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앞이 어두컴컴해졌지만 금세 밝아졌다.

벽 일부분이 열리면서 야명주가 나타났다.

당혜는 익숙한 듯 야명주를 잡곤, 앞을 밝히며 걸어갔다.

이 자리에 제갈승계가 있었다면, 눈을 반짝이면서 좋아했을지도 모르겠다.

“사천당가의 적통(嫡統).”

당혜의 목소리는 어딘가 모르게 어두웠다.

“당혜. 혹시, 너도……”

“입조심해. 그딴 취급 받고 싶지 않으니까.”

당혜가 잔뜩 날이 선 목소리로 극렬하게 반응했다.

등 밖에 보이지 않아서 얼굴은 알 수 없었으나, 아마 잔뜩 일그러져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가의 적통이라면 싫어도 알게 되니까.

그뿐이야.”

제갈상이 당혜를 부른 것에는 또 다른 이유가 숨겨져 있지 않을까.

“……그딴, 패배자들과는 달라.”

당혜가 주먹을 꽉 쥐었다.

손가락에 착용한 그 반지가 야명주에 반사되어 그녀의 감정처럼 격렬하게 빛났다.

“당신이 보기에는 무림맹을 구성하는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중, 영향력이 낮은 곳이 어디라고 생각해?”

“그건……”

“오랫동안 절대고수를 배출하지 못해, 쇠락의 길을 걷게 되는 아미파? 중원과는 거리가 먼 곤륜파?

힘이 아닌 지략을 내세우는 제갈세가? 틀려. 당가야.”

무림 세력의 영향력은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

이를 결정짓는 것이 바로 상천십좌, 현경에 이르는 절대고수들이다.

특히나 소림사와 무당파는 이 절대고수의 배출이 끊임없이 이어져 각각 북두와 남존이라 불리게 됐다.

“정파라 할지라도, 결국은 무림.

힘이 없다면 도태되어 어떠한 말을 하건 영향을 주지 못하고, 결국은 무시당하는 걸 당신도 알고 있을 거야.

정파의 위선자들은 아니라곤 하지만 순 거짓말.

그게 현실이야.”

당가에서도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괴물들을 종종 배출하곤 했다.

그러나 그 숫자가 다른 곳에 비해 적다.

그 간격 또한 긴 편에 속했다.

정파 내에서 안 그래도 독을 다룬다며 얕잡아 보는 이들이 잔뜩이니, 상황은 더더욱 안 좋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멸시 어린 시선은 사라지기는커녕 깊어졌다.

절대고수의 배출도 없었으니 당연했다.

“오대세가에서 빠질 정도로 세가 약해지자, 당가는 절대고수의 배출을 체념하고 어떠한 결정을 내려.”

“설마……”

기나긴 복도 끝에서 끔찍한 비명이 들려왔다.

그뿐만 아니라, 피와 시체 썩는 냄새까지 맡아졌다.

복도를 지나자 수백 명을 수용할 공간이 나왔다.

그 중앙에는 분명 서른이 되지 않았음에도, 거의 마흔이 되어 보이는 수척한 얼굴의 사내가 있었다.

그를 보자 당가의 현 가주, 중년임에도 노년의 모습을 한 당유기가 떠올랐다.

“암살, 납치, 협박, 고문, 독살, 그 외에도 약에 취하게 만들어 정신을미치게 한다거나…… 정파의 위선자들이 손도 대기 싫어하는 일을 대신 도맡아 해결해 권세를 유지하는 거야.”

흑영부는 그동안 당가의 적통이 맡아왔다.

그리고 그건 대부분 가주나 소가주가 됐다.

무림맹의 어둠, 기밀 중에서도 최고에 속하는 수준이니 당연히 그 누군가도 권력자가 될 수밖에 없다.

현 가주 당유기도, 그리고 그 전가주도 그래 왔다.

후에 가주가 될 소가주, 당명인도 그랬다.

“어서 오시오.”

당명인이 어딘가 모르게 피곤에 찌든 얼굴로 주서천과 당혜를 맞이했다.

“너도 오랜만이구나.”

당명인은 주서천에게 포권으로 공손히 인사한 다음, 당혜에게 살짝 웃어 주었다.

그러나 그 웃음이 어딘가 모르게 인형 같아서, 과연 피를 나눈 남매가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왜 정문을 남겨 두고 후문을 통해 들어왔느냐?”

“죄송해요. 정문을 두드려도 대답이 없기에……”

“아아, 미안하다. 요즘 혈교도의 고문이라거나 다들 이리저리 바쁘다 보니 못 들었나 보다.”

당명인이 뒷머리를 긁직였다.

“아 참, 매화정검…… 아니, 검룡대협. 후문에 대해서는 비밀에 부쳐주십시오.

검룡께서는 맹주님이 흑영부에 대해 대강 설명하였다고 하니 상관없습니다만, 흑영부는 장로들에게조차 정보가 제한된 곳입니다.”

“당연합니다. 명심하겠습니다.”

당혜는 흑영부 소속은 아니나, 당가의 적통으로서 당명인이 잘못되면 그 일을 대신 맡아야 한다.

비록 현직에 있진 않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흑영부의 기밀이냐 여러가지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끄아아! 살려 줘! 살려 줘어어!”

그다음 말을 이으려고 했는데, 뇌옥에 갇힌 누군가가 비명을 터뜨렸다.

주서천은 무심코 비명의 근원지를 찾았다가 눈살을 찌푸렸다.

‘심하군.’

가죽은 전부 벗겨진 건 기본이고 그 외에 고문의 흔적들로 가득했다.

전생에서 전란, 그 지옥을 경험하지 않았더라면 진작에 토악질을 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실례했습니다. 이런 걸 보여주고 싶지 않았는데…… 정보를 캐내는 데 정신이 팔려 정문으로 방문한 걸 눈치채지 못했군요. 일단 올라가시지요.”

당명인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 주서천과 당혜를 데리고 다른 문을 통해 올라갔다.

지옥이 현세에 펼쳐진 지하와 다르게, 독원의 원래 건물은 비교적 멀쩡했다.

독원이다 보니 여기저기서 독기가 새어 나오긴 했지만, 영향을 그다지 받지 않아 별 상관없었다.

그 외에는 약의 제조실이나 보관실이 많은 것 외에는 특별히 이상한 곳은 없었다.

주서천은 당명인이 대접한 차를 마신 뒤, 남궁위무와 제갈상에게 들은 것을 고스란히 전했다.

당명인도 들은 것이 있었는지 별다른 물음을 하지 않은 채 머리를 끄덕였고, 밖에 나가자고 제안했다.

“저야 이곳이 편합니다만, 사람들 눈에 보여야 한다면 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 있어 봤자 별 소용이 없지요.

혜야, 너도 괜찮다면 함께해 주겠니?”

“네, 오라버니.”

당혜는 당명인이 앞에 있자 몰라보도록 얌전해졌다.

평소의 그 독설이 온데간데없어 눈을 의심케 했다.

“헉, 검룡과 독봉이잖아!”

산책하러 정원에 나오자 금방 주목을 받았다.

어딜 가도 주목을 받는 미모를 지녔고, 외부 행사에도 잘 참가하는 독봉이 있으니 당연했다.

주서천은 외부에 얼굴을 잘 비추지 않았으나 최근의 전쟁 때문에 알아보는 사람이 제법 있었다.

무엇보다 다른 곳도 아니고 정파의 중심지, 무림맹의 본부인 합비가 아닌가.

“하! 선남선녀야, 선남선녀!”

“듣자 하니 검룡과 독봉이 그렇고그런 사이라며?”

워낙 유명하다 보니 온갖 소문이 감돌았다.

그중에서도 검룡과 독봉에 대한 말이 많았다.

비록 지금에 와서는 아무도 입에 담지 않지만, 과거에는 봉추라 불리기도 했다.

그리고 그 봉추의 주인공이 주서천과 당혜다.

엮이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하다.

“응? 그런데 옆에 있는 사람은 누구지?”

“처음 보는데……”

단둘이 있었다면 온갖 추문이 돌았을지 모르겠지만, 당명인이 껴 있어 관심이 돌아갔다.

“헛 독룡이시잖아? 웬일이지?”

“독룡께서 밖에 나오시다니……”

당명인은 오룡삼봉, 독룡임에도 불구하고 얼굴이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흑영부라서 외부로 잘 나가지 않아서도 있지만, 그 스스로가 밖에 나가는 걸 선호하지 않아서 그랬다.

그래도 아예 나가지 않는 건 아니고, 독원을 출입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알아보는 사람도 있었다.

“오룡삼봉 중 셋이나 보게 되다니……”

예전에는 오룡삼봉은 정파의 후기지수로서 친목 도모를 위해 정기적인 교류회까지 열었다.

그러나 이번의 오룡삼봉은 조금 달랐다.

독봉은 성격이 지랄 맞아 오룡삼봉과 잘 어울리지 않았고, 독룡이야 아예 사람 자체를 만나지 않았다.

지룡은 일찍이 무림맹 부군사로서 교육을 받으며 이곳저곳을 돌다 보니 만나 보기가 힘들었다.

얼마 전에 전사하여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 인룡 역시 사교적인 성격과는 거리가 멀었다.

여덟 명 중에서 네 명.

반절이나 빠지기도 했고 최근에는 강호사가 시끄럽다 보니 친목 교류가 전무했다.

“뭣? 검룡과 독룡이 만나?”

한편, 이 소식을 듣게 된 무림맹의 수뇌부들은 대뜸 눈살부터 찌푸리며 복잡한 심경을 보였다.

얼마 전 벌어진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정파의 영웅과 지낸다 하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흑영부나 당가에 좋지 않은 감정을 품은 자들은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달려가 훼방을 놓고 싶었다.

그러나 세 사람 다 후기지수이기도 하고, 주변의 시선이 워낙 많이 몰린 탓에 함부로 그럴 수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혹시, 저희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겠죠?”

“그럴 리가! 그러면 누가 그런 짓을 저지른단 말입니까! 정황상 독원소속, 당명인 외에는 없습니다!”

“하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영웅인 주서천이 함께하고 있지 않은지요. 듣자 하니 그도 독룡이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지 알고 있던 눈치던데……”

정파의 영웅의 이름은 제법 무겁다.

만약, 당명인이 벗이고 그 벗을 변호해 주는 입장이라면 영웅과 정면으로 부딪치게 되는 것이 된다.

당대 최고의 인기를 가진 영웅과 반목하면 무림맹에서의 입지도 좋지 않아지리라.

항산파처럼 화산파가 뭐만 하면 입에 거품을 물고 달려드는 원한이 있지 않은 이상은 말이다.

주서천이 무림맹에 온 이후로, 당명인과 자주 어울린다는 소문이 돌자 내부에서도 재고를 해 봐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나왔다.

놀랍게도, 영웅과 어울린다는 것만으로 의심이 차츰 옅어지고 있었다.

무림맹에서도 영웅의 인기와 그 힘이 어떤지 체감할 수 있었다.

한편, 주서천은 당명인과 어울리는 것 외에도 남궁위무와 제갈상이 부탁한 대로 무림인 앞에 섰다.

“강호의 동도들이여, 부디 들어 주십시오.

아실 분들은 아시겠지만, 중원 밖 신강에서 불온한 세력의 움직임이 잡히고 있습니다. 그 세력이란, 마교입니다.”

마교의 준동에 대응하기 위한 준비였다.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전쟁이 또다시 일어날 겁니다.”

사람들은 전쟁이란 말에 불안과 불만을 보였다.

전쟁의 상처가 다 아물기도 전에, 또다시 전쟁이라니.

이제 끝났다고 안도한 게 물거품이 됐다.

불만을 품은 몇몇 사람들은 그렇게 싸움이 좋냐면서, 대놓고 소리치기도 했다.

“저 역시 싸우고 싶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피 흘리는 모습을 보는 것도 싫고, 슬픔이나 고통으로 인한 아픔도 겪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도망칠 수는 없습니다.

승복할 수는 없습니다. 마인들은 위험합니다.

그들은 누군가의 연인을, 딸을 범할 것입니다.

겨울을 버티기 위해 쌓아둔 식량을 약탈할 것이고, 유린할 겁니다.”

마교는 악마다. 그러니 선동 따위가 아니다.

머릿속이 마성으로 물든 그들은 광인이다.

“그렇기에 맞서 싸워야 합니다. 아니, 지켜야 합니다.

술 한 잔 기울일 벗을, 달콤한 속삭임을 나눌 연인을, 그리고 누구보다 사랑하는 자식들을 마인들의 손아귀에서 지켜야 합니다.”

주서천은 혀에 기름칠을 한 것처럼 연설했다.

그 말은 백성과 시인들에 의해 무림 전역으로 퍼졌다.

“그러나 힘이 부족합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돈과 사람이 부족합니다.”

돌려 말할 필요는 없었다.

사람의 마음을 돌리고, 지원을 받으려면 보다 확실해야 한다.

전쟁에서 두루뭉술한 발언은 누군가를 어이없이 죽게 만드는 원인이 된다.

“아시다시피, 무림맹은 얼마 전 혈교의 광인들에게서 가족과 재산을 지키느라 피해를 입었습니다.

애석하게도 그 상처를 다 치유하기도 전에 마교가 중원을 침공하려 합니다.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화산오장로 시절, 책을 많이 읽어서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게 많아 말이 나오는 데 막힘은 없었다.

“조금, 조금이라도 괜찮습니다.

그것만으로도 크나큰 도움이 됩니다.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주서천이 허리를 숙였다.

“사람들은 저를 보고 영웅이라 부릅니다.

하지만, 영웅은 저만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주서천을 동경하며, 그 뒤를 쫓았다.

주서천은 사람들을 동경하며, 그 뒤를 쫓았다.

“누군가를 돕고 싶다고 생각하고, 약간의 용기를 더해 한 걸음 내디딜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영웅입니다.”

그 말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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