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三章 (136/254)

우일문도 매한가지였다.

머리카락이나 수염은 산발처럼 늘어졌고, 옷자락도 몇 군데 찢겨져 엉망이었다.

쫙 핀 어깨도 늘어졌다.

“실로…… 무서운 자이로구나.”

조금만 늦었어도 당했다.

특히나 마지막에 피로 이루어진 사람이 나타났을 땐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한 사람도 힘든데, 넷이 더 늘어 다섯이 되었을 땐 소름이 다 끼쳤다.

“마지막에 네 도움이 없었으면 나 역시 위험했을 게다.

고맙구나.”

우일문은 주서천을 예상하에 두지 않았다.

노렸던 건 동시다발적으로 펼치는 이기어검이었다.

그리고 중요한 순간에 주서천이 나타나 힘을 보탰다.

“아닙니다…… 후우우!”

주서천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내쉬었다.

숨을 고르자 그래도 좀 낫다.

“그보다, 이 일이 끝나면 내 너에게 긴히 좀 물어봐야 할 것이 있다. 무슨 말인지 알 게다.”

“예.”

‘큰일 났군.’

주서천이 곤란한 듯 뒤통수를 긁적였다.

자하신공이야 어떻게 둘러서 설명하였지만, 자하검결은 불가능하다.

자하신공의 묘리를 깨우친다고 해도, 자하검결이라는 독보적인 초식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제오식 중 제사식까지 완벽히 펼쳤다.

의심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혈마를 무사히 죽일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푸욱!

“커허억!”

우일문이 눈을 부릅떴다.

“이, 게…… 대체, 무슨……”

우일문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그 시선 끝에 향하고 있는 건, 흉부에 구멍을 내고 튀어나온 팔의 형체를 지닌 피의 집합체였다.

주서천은 너무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우일문은 머리를 천천히 돌렸다.

뒤를 보았으나, 아무도 없었다.

그저 하나로 뭉쳐진 피밖에 없었다.

“안…… 돼……!”

노쇠한 목소리로 외치는 우일문.

그 몸이 느릿하게 뒤로 쓰러진다.

손을 뻗어 쓰러져 가는 몸을 잡기도 전에,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관이 일어나 문을 열고 우일문을 삼켰다.

“장문인!”

주서천이 다급한 목소리를 내며 관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그 전에 관이 열리면서 모습을 감추었던 우일문이 튕겨 오르듯 몸을 일으켰다.

“장문인! 장문인!”

“허어…… 어찌할꼬.”

우일문의 놀랐던 표정이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

주서천이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목소리가……?’

듣기만 해도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목소리였다.

쇠를 긁는 것 같고, 가래가 심히 들끓는 것 같았다.

“말도…… 안 돼……!”

주서천이 설마 하는 표정으로 경악했다.

그리고 그 설마는 현실이 된다.

우일문이 순식간에 썩어 가기 시작했다.

마치 사람이 아니라 오래된 시체와 같았다.

오른쪽 뺨부터 시작해, 왼쪽 얼굴 전체의 피부 가죽이 뜯겨진다.

눈에선 피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그리고 눈의 안압이 올라가더니만, 결국 눈알이 쑥 빠졌다.

마치 누군가에게 파인 것처럼 안이 비어 있었다.

“상천십좌라 할지라도, 천명이 별로 남아 있지 않은 육체 따위 그가치가 떨어지거늘……”

번쩍!

시커멓게 파여 있는 눈구멍에서 혈광이 번뜩였다.

“흘흘흘. 이젠 코 밑의 피부 가죽과 근육이 전부 떨어졌으니, 웃는지도 알아볼 수 없겠구나.”

눈부실 정도로 새하얗던 수염이 후두둑 떨어졌다.

머리카락도 바람에 흩날려 사라진다.

주서천은 차마 그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그래서, 네놈은 자하신공을 검선에게 전수받은 건가, 아니면 그 경지에 이룩해서 얻었나?”

우일문, 아니 혈마가 물었다.

주서천은 말문이 턱 막혔다.

망치로 뒤통수를 후려 맞은 표정이었다.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광경에 말이 나오지 않았다.

“장, 문인……?”

“검선의 정체성을 정(精)에 두고 있다면 틀린 말은 아니지. 이 육신의 것은 화산의 장문인이다.”

혈마가 가슴을 툭툭 두드리면서 웃음소리를 냈다.

하악(下額)의 피부가 뜯겨 표정은 알 수 없었다.

“하나, 기(氣)와 신(神)은 검선이 아닌, 이 혈마이니 괜한 사람을 투영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

주서천이 입을 다물었다.

물고기처럼 헤엄치던 동공도 제자리를 되찾았다.

‘장문인께서…… 돌아가셨다.’

당황과 곤혹이 물 밀려 들어오듯 쏟아졌지만, 감정의 급류에 휩쓸리지 않도록 마음을 강하게 먹었다.

주먹을 꽉 쥐자 손톱이 살을 파고들었고, 이가 입술을 깨물며 피를 냈다.

머릿속으로 온갖 의문이 솟아났다.

‘장문인께선 정말로 돌아가신 것인가?

혹시, 혈마에게 일시적으로 몸을 빼앗긴 것은 아닌가?

저 등 뒤의 관은 도대체 무엇일까?’

질문이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그러나 그럴 때가 아니었다.

상황은 심각했다.

“도망치십시오!”

주서천이 혈마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외쳤다.

“……”

제갈수란이 숨을 멈췄다.

그녀 역시 방금 전 일어난 일에 충격을 받은 듯 싶었으나, 냉정하고 침착한 성격답게 빠르게 안정을 찾았다.

몸을 바꾼다, 아니 빼앗는 건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었다.

무림 역사를 뒤집어 봐도 유례없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현실과 워낙 동떨어진 일이 벌어져서 그런지, 머리가 상황을 따라가는 데 시간이 제법 걸렸다.

제갈수란 역시 머릿속을 뒤집어 보면서 의문을 해소하려 했으나, 그럴 때가 아니라는 것도 인식했다.

상황 판단은 신속했다.

“뒤로 물러나도록 하죠.”

“모사미봉!”

홍고가 반발했다.

“아뇨. 이것이 최선이에요.”

제갈수란이 손을 들어 홍고의 다음말을 제지했다.

“어찌 된 연유인지는 모르겠으나, 혈마는 지금 주 공자 외에는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그러니, 조금이라도 틈이 나는 사이에 물러나서 최대한 빠르게 도움을 청하는 편이 나아요.”

북풍한설이 불 듯, 차가운 목소리로 간략히 설명했다.

“…… 무운을 빌겠어요, 주 공자.”

제갈수란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등을 돌리곤, 무림맹의 깃발을 높이 들어 좌우로 흔들었다.

‘퇴각이다!’

별동대원들이 움직였다.

‘그래, 차라리 없는 게 나아.’

주서천이 눈동자만 굴려 힐끗 살펴봤다.

제갈수란이 별동대를 물리는 걸 보니 마음이 놓였다.

차라리 혼자라면 마음 편히 도망이라도 칠 수 있다.

혈마를 앞에 두고 누굴 지키며 싸울 순 없었다.

인룡에 이어 검선까지 목숨을 잃게 되어, 향후 정파 무림맹의 미래가 불분명해졌다.

주요 전력이 될 사람들을 이런 곳에서 또다시 어이없게 잃을 수는 없었다.

‘소령을 데려올 걸 그랬나……’

주서천의 가슴이 천천히 오르락내리락했다.

정혈대전에 참전하기 전, 소령은 떨어뜨렸다.

적군은 문제없으나, 아군의 경우 눈치를 채면 골치 아플 것 같아서였다.

명문 정파의 대표들이 모인 곳에서 근처에 자객이 숨어 있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안 봐도 뻔하다.

안 들키면 상관없다지만, 아무리 유령이라 해도 화경의 고수들이 모인 자리에선 숨길 수 없다.

그것도 전쟁을 앞에 두어 잔뜩 예민해진 상태인지라, 괜히 소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서 놓고 왔다.

그래서 아예 배제하고 전장에 임했는데, 지금은 후회됐다.

“무얼 그리 고심하나?”

찰랑.

혈마가 손을 뻗자, 구덩이처럼 움푹 파인 곳에 덩그러니 놓인 사음장이 날아와 잡혔다.

‘……본래의 육체는 죽은 건가?’

본래 혈마의 육신이었던 건 시신으로 보기도 힘들었다.

몸에 열 자루의 검이 박혀 있고, 연이은 공격에 만신창이인 모습이었다.

특이하게도 그만한 상처인데도 피한 방울 홀리지 않았으며, 호덕창처럼 수분이 전부 빨린 것처럼 바싹 메말라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와 같았다.

“그쪽에서 이쪽으로 옮겨 와, 검선의 늙은 몸을 차지한 것뿐이다.”

그러나 그 의문은 허무하게도 혈마를 통해 풀렸다.

혈마는 무엇이 그리 재미있는지 낮은 웃음소리를 흘리면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노인처럼 말했다.

“이 등 뒤에 있는 것은 흑관(黑核)이라 하여, 진 나라 당시에 만들어진 법보다. 산 사람을 집어넣으면, 정기신 중 신, 마음과 의지를 분리하는 신묘한 능력을 지니고 있지. 참으로 대단하지 않은가?”

관에 들어가고, 문이 열리자 우일문이 아닌 혈마로 변하지 않았었나.

딱 봐도 법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사음장만으로도 놀라울 지경인데, 이러한 기보까지 소유하고 있었다니…… 참으로 대단한 자들이야.”

혈마가 흑관을 툭툭 두드렸다.

안이 비어 있는지 소리가 울렸다.

“암천회인가?”

주서천이 예상했다는 어조로 물었다.

“그래.”

혈마가 머리를 위아래로 흔든 뒤, 사음장을 들어 주서천을 가리켰다.

“자고로 가는 것이 있으면 오는 것도 있어야 하는 법.

나 역시 네놈에게 듣고 싶은 것이 있다.”

“자하신공에 대해서 인가?”

“흘흘흘, 아쉽구나. 오답은 아니나 정답도 아니다.

정확히는 현경에 오른 것인지 궁금하구나.”

‘내 경지에 왜 이렇게 집착하는 거지?’

과거로 돌려보면 전부터 꾸준히 궁금해하고 물어봤다.

심지어 우일문과 일각을 다툴 때도 그랬다.

주서천이 잠시 입을 다물고 있자, 혈마가 사음장을 흔들어 소리를 내 시선을 끌었다.

“사람을 앞에 두고 생각에 잠기면 쓰나. 보아하니 내 질문의 의도를 알고 싶는 눈치인데, 얼마든지 물어봐도 좋다. 내 특별히 솔직하게 전부 답하지.”

또 왜 이렇게 친절한지도 알 수없었다.

“무인이라면 응당 알고 있겠지만, 현경과 화경의 차이는 천지 차이다. 강시로 제조하는 데 재료도 시간도, 노력도, 술법도 전부 다르지. 만약, 허튼 실수라도 해서 귀한 시신을 소비하면 큰일이지 않겠는가.”

‘확실히……’

현경에 대해 자세히 아는 것은 아니나 육체의 구성이 재차 바뀐다고 한다. 몸의 성질 또한 변한다.

강시술사 입장에선 이러한 정보는중요하리라.

“무엇보다, 현경이라 하면 이 노쇠한 몸을 버리고 그 몸으로 갈아타야하니 나에겐 무척 중대한 사안이라 신경을 쓸 수밖에!”

‘도대체…… 뭘 준거냐. 암천회.’

주서천이 신음을 삼키며 손에 힘을 주었다.

‘저런 건 전생에 존재하지 않았다.’

아까부터 옛 기억을 되새겨 봤지만 나타나지 않았다.

정혈대전에서 관에 관한 건 아무것도 없었다.

혈마의 척살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중요한 것이 빠질 리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역사가 바뀌어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하다.’

어디로 갈지 모르는 미래인지는 알았지만, 정말로 여러 가지가 바뀌었다.

“굳이, 묻지 않아도 알 텐데?”

좀 더 시간을 끌면 좋겠지만, 그러다 괜한 화를 부르면 곤란하다.

그래서 적당한 때를 잡아 답했다.

“흠, 그런가. 긴가민가했지만 결국은 그 위의 단계의 성취를 이룬 것은 아니로구나.”

솔직히, 혈마의 물음은 그다지 의미가 없었다.

거짓이나 허세를 고할 수도 없다.

어차피 현경에 오른 상천십좌의 눈은 피할 수 없어서다.

아무리 화경의 극상승에 자리해 있다고 해도 어떻게 숨길 수 있는 게 아니다.

자하신공의 성취 역시 십성을 넘게 됐으니 특유의 은신성도 사라졌다.

유령신공으로도 못 숨긴다.

“하면 장문제자도 아닌 자가 자하신공을 전수받았다는 것인데…… 그게 가능한 말이란 건가?”

혈마는 듣고도 믿지 못하는 눈초리였다.

정파, 그것도 대문파의 규율이나 관습은 엄격하다.

그렇게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다.

그게 장문인에게만 전해지는 일대신공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아무리 영웅이라 불리며 추앙을 받고, 그에 걸맞은 실적을 세웠다고 해도 불가능하다.

“아니지, 아니야. 아니야.”

혈마가 고개를 흔들었다.

“정말로 그러하다면, 이 잔류사념(殘留死念)은 무엇에 그리 놀라고 의문을 품었으며 , 신경 쓴단 말인가?”

뚜벅뚜벅.

혈마가 오른발과 왼발을 교대로 내디딘다.

“매화정검, 주서천.”

혈마의 목소리가 진중하게 가라앉았다.

웃음기를 머금은 것처럼 보이던 안광도 으스스하게 변했다.

“그들이 이 흑관을 넘기면서 주서천을 필시 죽이라고 말했을 때, 의문을 품었다. 비록 정파의 영웅이나 무림맹주나 검선도 아닌, 고작 약관에 이르는 애송이를 죽이라는 것인가?”

최초에 봤을 때 놀라긴 했다.

고금을 뒤져 봐도 약관에 화경의 성취를 이루고, 단기간에 천하백대고수에 이름을 올린 자는 없다시 피하다.

지금의 무림에서도 그 나이에 그 정도 성취를 이룬 자는 전무했다.

확실히 이대로 두었다간 정파를 제외하곤 어떤 세력이건 간에 최대의 난적으로 성장하리라.

“천기, 그 머리가 비상한 자가 흑관처럼 과한 힘을 함부로 줄 리가 없다. 수지 타산이 맞지 않아.”

혈마는 결코 바보가 아니다. 오히려 머리가 비상하다.

마도인답지 않게 광기에 사로잡혀 있지 않다.

그 역시 본래 이성적이진 못했다.

도리어 혈교 내에서 누구보다 더 마성이 짙은 대마두였다.

그러나 극에 이르는 벽을 허물고, 그다음으로 넘어가자 주체할 수 없던 마성을 제어할 수 있게 됐다.

그 이후로 여러 욕구를 참아 내고,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해졌을 뿐만 아니라 오성 또한 늘어났다.

“차도살인지계로 무림 세력 간에 싸움을 붙여 약화하려는 속셈이라면 그 균형을 잘 맞춰야 하지.”

사파가 약화되었으니, 정파가 약해질 차례다.

그래서 혈교에게 사음장을 주고 등을 떠밀었다.

혈마는 그 속셈을 잘 알고 있었다.

딱히 손해 보는 것은 아닌지라 알고도 움직여 주었다.

암천회가 훗날 허튼짓을 한다 해도 늘어난 힘으로 압살하면 그만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암천회가 바라는 최적의 결과란, 양측이 막대한 피해를 입고 소강하는 것. 아마 손을 써서 이 나를 죽일 생각이었는지도 모르지. 그러나 흑관이 주어지면 그들 입장에선 골치 아픈 일로 끝나지 않는다.”

부담, 아니 그 이상이 된다.

하물며 죽을수록 늘어나는 사자의 군단이 아닌가.

“그렇다면……”

팟!

혈마가 잔상을 남기면서 고속으로 이동했다.

“주서천이라는 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부웅.

혈마가 주먹을 내질렀다. 강하고 빨랐다.

대기가 둘로 갈라지면서, 태산이 떠오르는 권격이 날아왔다.

“흡!”

주서천이 숨을 들이쉬며 몸을 옆으로 틀었다.

다행히도 주먹이 가슴에 맞지 않고 지나갔다.

“음!”

혈마가 마음에 안 드는 듯, 사음장을 휘둘렀다.

퍼억!

“컥!”

주서천이 제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사음장이 내려앉은 어깨뼈가 부서진듯, 극심한 고통이 느껴졌다.

“자, 정체가 무엇이기에 이 나를 이토록 궁금하게 만드는 것이지?”

“나는……”

어깨가 떨렸다.

고통이나 겁먹어서가 아니다.

굽혀진 무릎과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양 어깨에 힘을 팍 주고 사음장을 위로 밀어냈다.

아픔이 느껴졌으나 개의치 않았다.

“화산파의 사대제자.”

주서천이 고개를 들었다.

그 눈은 어떤 때보다 더 타오르고 있었다.

“주서천이다.”

제갈수란은 다급해졌다.

마음 같아선 별동대를 내버려 두고 냅다 달려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다.

그러나 지휘관으로서 그럴 수는 없는 일.

안전하게 주변을 정리하면서 후퇴해, 본대로 돌아갔다.

‘은하노사는…… 안 돼.’

아무리 온화한 은하노사라 해도, 종남의 기대주였던 호덕창이 죽은 것을 알면 이성을 잃을지 모른다.

그러느니 차라리 본대의 지휘를 부탁하는 게 나았다.

“일검칠살과 무당이절을 불러오겠습니다. 백보권승께선 일장항마의 도움을 부탁드릴게요.”

전력이 필요하긴 하나, 지휘관을 빼는 것에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모사께선 합공하여 혈마를 칠 생각입니까?”

“네. 아무리 사람 같지 않은 혈마라 할지라도, 검선과 전면전을 했으니 지쳐 있을 거예요.”

감정예 치우쳐서 내린 결론이 아니다.

논리적인 사고력으로 철저하게 계산해서 냈다.

설사 혈마를 어떻게 해볼 수 없어도, 치명상을 입히거나 주서천을 구출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주 공자는 이런 곳에서 죽을 분이 아니야.’

머릿속으로 짧지만 그와 함께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에겐 빚도 있으니까.’

세가에서 핍박과 무시를 받던 동생의 벗이 되어 주었다.

오라비도 어찌할 줄 모르던 그를 구원해 줬다.

‘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주 공자.’

뼈가 욱신거렸다.

근섬유가 찢어진 듯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몸에 자그마한 구멍이 났다.

죽을 것 같이 아팠지만, 그래도 죽진 않았다.

남아 있는 힘을 어떻게든 쥐어짜내면서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흠!”

악몽이었다.

비록 몸뿐이지만, 사문의 장문인과 생사를 건 싸움을 할 줄 몰랐다.

‘유은비도!’

매화 자수가 그려진 소매가 부풀어 올랐다.

그 안에서 비수가 튀어나와 혈마의 목젖을 노렸다.

“암기?”

혈마의 목소리에서 어이없음이 느껴졌다.

대문파의 제자, 그것도 정파의 영웅이란 자가 수준급의 암기술을 펼쳤으니 황당해하는 건 당연했다.

고개만 까딱여 암기를 피해 내는 혈마지만, 그 앞으로 화산의 검이 속공으로 이어진다.

“같잖구나.”

혈마가 코웃음을 치면서 사음장으로 받아쳤다.

째앵!

검과 석장이 찌르르 울렸다.

마찰음이 길게 늘어졌다.

‘해볼 만하다.’

주서천이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상황이 그렇게까지 암담하지는 않았다.

혈마도 몸 상태가 멀쩡한 건 아니었다.

최초의 권격이 빗나간 건 방심해서가 아니었다.

우일문과의 격전으로 지쳐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아무리 절대고수의 경지에 올라와있다고 한들, 그만한 내력을 소모한 뒤에 멀쩡할 리 없었다.

무엇보다 타인의 몸이 아니지 않은가.

신장이나 근육.

반응 속도도 다르니 본연의 실력을 내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됐다.

‘큭!’

그러나 몸이 정상이 아닌 건 그도 마찬가지였다.

별동대가 움직이면서 조금도 쉬지 않았다.

도리어 누구보다 앞장서서 많은 적들과 싸웠다.

설상가상, 혈마의 공격으로 사지에 구멍이 났었고, 마르지 않는 우물 같던 내공도 제법 많이 소모됐다.

‘포기하지 마.’

그러나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었다.

이를 악물고, 의지를 굳히며 애검을 휘두른다.

휘리릭!

복잡한 묘리를 머금은 검초는 아니었다.

위에서 아래로 선을 긋는 직선 베기였다.

그러나 단조로운 만큼, 힘과 속력이 더해졌다.

순수한 폭력이 머리를 쪼갤 기세로 떨어졌다.

채애앵!

그러나 너무나도 손쉽게 막혔다.

왼손에 쥔 사음장을 머리 위로 올려 검을 막아 내곤, 오른손에 힘을 팍 주며 앞으로 쭉 내밀었다.

얼마 없는 피부 위에 힘줄이 돋았고, 보이지 않는 중압감이 다가와 위축시키려 한다.

퍼억!

혈마의 손바닥이 주서천의 복부에 맞았다.

그러나 주서천이 피를 흩뿌리며 나가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손바닥에 복부를 맞은 것처럼 보였지만, 무언가에 막힌 것처럼 미세한 거리를 두고 멈춰 섰다.

‘아직도 이 정도의 내공이 남은 건가?’

혈마가 속으로 놀라운 목소리를 냈다.

눈이 파이지 않았더라면, 필시 커졌으리라.

‘포기하지 마!’

병장기를 두 손이 아닌 한 손으로 쥔 건 주서천도 마찬가지였다.

왼손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혈마!’

상완근이 울긋불긋해졌다.

왼팔에 퍼런 핏줄이 툭 튀어나왔다.

단전에서 홀러나온 힘이 공력이 된다.

그리고 마치 팔에 공명하듯, 동일한 방향의 눈동자에서 옅은 녹색의 빛이 뿜어져 나왔다.

‘녹안만독공!’

부웅.

허리가 살짝 돌아갔다.

그 회전력을 고스란히 왼팔에 담았다.

대기가 짓뭉개지더니, 둘로 갈라졌다.

이윽고, 주먹이 혈마의 뺨에 꽂힌다.

빠아아악!

피부가 짓뭉개졌다.

머리가 옆으로 휙 돌아갔다.

접촉면을 통해 침투한 독기가 몸을 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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