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으윽!”
여기저기서 신음이 튀어나왔다.
상천십좌끼리의 생사결이다.
평생은 물론이고 후대까지 자랑할 수 있는 구경거리였다.
어쩌면 보는 것만으로 깨달음을 얻을지 모른다.
그 정도로 높은 수준의 대결이었다.
하나 그런 여유를 부릴 수가 없었다.
주변의 적들 탓이 아니다.
대기까지 떨려 오는 충격파 때문이었다.
화경과 화경의 고수의 공력이 격돌해도 내력이 약한 자는 내상을 입을 수 있다.
상천십좌면 두말할 것도 없다.
이류나 일류는 물론이고, 절정에 이르는 고수들도 눈살을 찌푸렸다.
그사이에 우일문이 혈마에게 근접한다.
우일문은 손을 쭉 뻗었다.
공중에 떠 있던 검이 날아와 잡혔다.
쐐애액!
자하검결의 제일식과 제이식이 동시에 펼쳐진다.
무섭게 회전하면서 앞으로 쏘아지는 검 주서천이었다면 자색으로 빛났겠지만, 우일문은 아니었다.
무형강기의 영향 탓인지 주변의 대기만 진동할 뿐, 무색이었다.
평소의 화려함은 없었다.
쏘아진 검이 부챗살처럼 펴진다.
수십 개로 나누어진 검이 한꺼번에 쏘아졌다.
“헛!”
혈마의 몸이 활처럼 휘어 탄력을 만들어 냈다.
그리고 그 힘을 이용해 몸을 튕겨 순식간에 움직였다.
경신법이 최고 상승에 올라야 운용할 수 있는 궁신탄영(弓身彈影)이었다.
콰아아앙!
방금 전까지 혈마가 있던 자리에 제이식, 화우선형의 공세가 폭포처럼 쏟아졌다.
상상 이상의 위력이다.
위력도, 속도도, 하나하나가 보통이 아니었다.
화경의 고수의 전력이 담겨 있었다.
그걸 아무렇지 않게 내고 있으니, 그야말로 경천동지(驚天動地)였다.
“자하검결을 보니 생각난 것인데, 저놈은 무엇인가?
규율을 중시하는 도사가 깰 리도 없고……”
촤르륵!
사음장이 주렁주렁 달린 고리를 흔들면서 쭉 뻗어 간다.
정확히 우일문의 척추를 노렸다.
부웅!
그러나 애꿎은 허공을 찔렀다.
우일문은 뒤에 눈이 달린 것도 아닌데, 잔상을 남기며 사라졌다.
마찬가지로 신법의 경지가 최고 상승에 오르면 사용할 수 있는 이형환위(移形換位)였다.
궁신탄영과 이형환위!
범인이 결코 흉내낼 수 없는 경신법을 아무렇지 않게 쓰고 있다.
보는 이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수준이 너무 높아 눈으로 따라갈 수도 없었다.
삼류의 눈으로 보면 뭐가 일어나는지도 모른다.
“혈교주가 이리도 호기심이 많을 줄은 몰랐네.”
우일문이 흰 수염을 휘날리면서 화산의 절기를 펼쳤다.
혈 향에 묻혔던 매화 향이 다시금 짙어졌다.
이십사수매화검법.
화산의 장문인답게, 그리고 검선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검술의 수준이 달랐다.
주서천도 주서천이지만 우일문의 손에서 펼쳐지자 위력이 확연히 변했다.
굳이 비유하자면 어린아이와 어른이 똑같은 걸 다른 힘으로 펼치는 것과 같았다.
파바밧!
매화의 꽃잎이 떨어지면서 너울거린다.
그 사이로 검 줄기가 번쩍이면서 수십 개의 검초가 쏟아졌다.
화려하고 빠르기만 한 것이 아니다.
여러 묘리가 뒤섞여 있을 뿐만 아니라 위력도 품고 있다.
혈마도 비처럼 쏟아지는 검격을 보곤 감탄했다.
한가하게 놀라고 있지만 않고, 사음장을 연달아 내질러 막아 냈다.
채채챙!
검선과 혈마가 마주 본 채로 공방을 수백 번씩 교환했다.
어찌나 빠른지 시야에 잡히는 건 잔상뿐이었다.
쿵! 쿠웅!
한 번 격돌할 때마다 굉음과 폭음이 터졌다.
고비 사막의 지반에 균열이 가고, 암석이 부서졌다.
무언가 터질 때마다 바닥의 모래가 소용돌이쳤다가 흩어지는 걸 반복했다.
도저히 사람끼리의 싸움으로 보이지 않는다.
설화 속의 신선이나 요괴가 떠올랐다.
주변인들은 싸우는 것도 잊은 채, 그저 충격파에 내상을 입지 않도록 조심하며 지켜만 보았다.
“괜찮으세요?”
그사이에 제갈수란이 주서천에게 다가가 물었다.
“모사께선 전장에서 눈을 떨어뜨릴 수 없지 않습니까.
전 괜찮으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주서천이 아무렇지 않은 듯이 웃었다.
“……”
제갈수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소매 안에서 손바닥만한 직사각형의 비단을 꺼냈다.
“제갈 소저.”
“……”
가만히 있으세요.”
피를 닦기에는 재질이 너무 좋아 거절하려 했지만, 제갈수란이 의견을 무시하고 상처 부위를 닦았다.
“……?”
제갈수란의 눈에 이채가 어렸다.
분명 쏘아 낸 혈구가 팔과 다리를 꿰뚫었다.
어깨에 구멍까지 난 걸 보았다. 크기가 제법 컸었다.
그런데 피를 닦아내 보니 그렇게까지 심한 정도는 아니었다.
자그마한 구멍 정도였다.
또 언제 맥을 짚어 지혈을 해 두었는지, 피가 멈췄다.
“정말로 별거 아닙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요.”
제갈수란이 금창약을 꺼내 발랐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세세하게 바르진 못했지만 그래도 안 바르는 것보다는 나았다.
‘구희의 신단인가. 확실히 대단하긴 대단하군.’
주서천이 상처 부위를 힐끗 살펴보며 속으로 감탄했다.
제갈수란의 기분 탓이나 착각 따위가 아니었다.
혈마의 지법에는 실제로 치명상을 입었다.
생명의 위독함은 없었으나, 사지를 움직일 수 없게 됐다.
그러나 그 순간 얼마 전에 얻은 능력이 발동했다.
구희의 선단, 고속치유 능력이었다.
출혈이 났으나 금세 멈췄고, 끊기거나 잘린 근섬유들도 다시 미세하게 붙었다.
안의 살도 자라났다.
‘이 정도면 하루면 완치할 수 있겠다.’
내력의 소모만 없었다면 좀 더 빨랐을지 모른다.
그러나 전투로 상당히 소비해서 그런지 치유가 느렸다.
운기조식이라도 취하면서 휴식하면 금세 재생될지 모르겠지만, 아쉽게도 그럴 때가 아니었다.
‘구희의 혈족이라면 이 능력을 배로 발휘할 수 있다는데, 어쩌면 정말 불사가 됐을지도 모르겠구나.’
구요, 아울러 구희의 부족이 왜 선단에 그리 집착하고 목숨을 걸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고맙습니다.”
주서천이 제갈수란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일어났다.
상처 부위가 욱신거렸지만 참을 만했다.
툭.
팔소매가 당겨졌다.
시선을 돌리니 제갈수란이 소매 끝을 살짝 잡은 채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 몸으로는…… 위험해요.”
그저 일어난 것뿐인 건데도 의도를 눈치챘다.
과연 제갈세가의 천재 다웠다.
“알고 있습니다.”
상천십좌 혈마. 그 이름이 생각보다 무거웠다.
전생의 기억과 경험을 지녀도 이길 수가 없었다.
몸이 도저히 따라가질 못했다.
농락당한 기분이었다.
만약, 검선이 오지 않았다면 죽었을 게 분명했다.
그건 확신이었다.
그 정도로 무식한 강함을 지녔다.
하지만……
“그렇다고 물러날 수는 없습니다.”
만약, 검선이 이기지 못하고 진다면?
상상도 하고 싶지 않다.
어떻게든 도망쳐서 목숨을 부지한다 해도, 오천의 전력은 전멸할 게 분명했다.
그 피해가 어떤 영향을 부를지 소름이 다 끼쳤다.
천기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짜증이 났다.
“억지를 부리는 것은 아닙니다. 제갈 소저께서도 보셨겠지만, 전 장문인과 같은 자하신공을 익혔습니다.”
제갈수란만이 아니다.
이 자리에 있던 모두가 자색의 강기를 똑똑히 봤다.
상천십좌끼리의 생사결에 더한 충격을 받고 잠시 잊고 있는 것뿐이었다.
“동일한 무공으로 협공하는 것이니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한 수라도 더할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합니다.
장문인이시라면 반드시 승리하실 수 있을 겁니다.”
고수와 고수.
그것도 모든 사항이 비슷하다면 한순간의 실수나 방심으로 결과가 난다.
한 수가 늦춰진다거나 혹은 실수는 곧 죽음으로 이어진다.
주서천은 그걸 노렸다.
“……”
제갈수란도 제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눈동자는 평소처럼 흔들림없었다.
고요한 호수처럼 반짝였다.
표정에도 별 변화가 없다.
무서움도, 불안도, 걱정도 묻어나지 않았다.
속내를 전혀 볼 수 없었다.
대신 그 눈에는 주서천의 등이 비춰졌다.
잠시 간의 침묵.
그리고 제갈수란이 어렵게 말을 꺼낸다.
“보조…… 할게요.”
장수가 출정(出征)한다.
그렇다면모사가 할 일은 하나뿐이다.
장수에 맞춰 묘책을 세우고, 움직인다.
모사미봉. 그저 미모만 뛰어난 봉황이 아니다.
“예!”
주서천이 어깨를 빙글빙글 돌리며 웃었다.
별동대를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오천이나 되는 전력이 어찌 싸우는지는 상관없다.
싸움이 끝난 후를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그야, 무림 최고의 모사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러니,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다.’
화화산의 장문인, 우일문은 검으로 일좌를 얻었다.
그에 견줄 정도의 검수는 검성, 남궁위무 정도 밖에 없다.
머리 위에서 검격이 빗발쳤다.
혈마는 주변의 시체에서 혈류를 끌어모아 손가락을 튕겨 쏘아 냈다.
파바바밧!
공중에서 자선과 혈선이 어우러지며 신묘한 광경을 자아내지만, 한가하게 구경할 정도는 되지 못한다.
하수들은 내상을 입지 않도록 버티는 데 집중했고, 그사이 혈마는 우일문에게 바싹 접근했다.
강기의 덩어리를 쏘아 내는 것도 나쁘진 않다.
하지만 기혈마공은 접근했을 때 진정한 위력을 발휘한다.
정확히 말하면 살과 살의 접촉이었다.
호덕창처럼 혈류를 조작해 역류하여 숨통을 끊는 것이 최고다.
흩어진 피 안개 속에서 혈마의 팔이 번개같이 튀어나왔다.
그 손끝이 우일문의 소매를 아슬아슬 스쳤다.
휘릭!
혈마가 허리를 반쯤 돌렸다.
그 반동으로 반대쪽 손바닥을 앞으로 쭉 내밀어 공격을 연달아 했다.
쐐액!
그저 손바닥을 내미는 것으로 보이지만 착각이다.
보이진 않으나 장강이 실렸다.
만약, 무형강기가 아니었더라면 불길한 핏빛을 머금은 장력이 날아가는 걸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대답해 주지 않는 건가?”
“남의 사문의 제자에 뭐 그리 관심이 많은가.”
우일문은 검을 세로로 세워 장력을 받아쳤다.
검선과 혈마 사이에서 공력이 부딪쳐 폭발을 일으켰다.
콰드득!
검풍과 장풍이 만들어졌다.
그 여파가 지금까지 보여준 것과 다를 것없이 강맹하다.
우일문과 혈마가 뒤쪽으로 주르륵 밀려났다.
지면 위에 발자국이 길게 남는다.
‘과연, 마공인가. 그 위력이 보통이 아니로다.’
여유를 부리듯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상황이 그다지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검이 살짝 떨며 울음소리를 낸다.
우일문은 검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주름살 가득한 미간을 찌푸렸다.
‘도대체 몇 종류의 무공을 익힌 것인가!’
지금까지 보여 준 것만 해도 지법과 권법 그리고 장법까지 있다.
세가지를 주류 무공처럼 사용했다.
보통의 경우엔 주류가 아니라면 그 위력이 약하겠지만, 마공 특성상 강해 상천십좌의 최소는 됐다.
검에 치중된 우일문에 비견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무공의 종류가 많으니 상황별 대응이 뛰어났다.
이대로 가다간 승부가 나지 않을 것을 느낀 우일문은 비장의 수로 단숨에 끝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과연, 명불허전이로다!’
혈마 역시 속으론 적잖이 놀랐다.
그 역시 상천십좌와 직접 부딪친 적은 처음이었다.
눈이 파여 있고, 얼굴 가죽의 반이나 뜯어져 있지 않았다면 놀라운 감정이 그대로 묻어났으리라.
탈마의 경지에 오른 이후 고전을 겪은 적이 없었다.
검선과 혈마 사이의 눈빛이 불꽃을 튀겼다.
정도와 마도를 떠나 호적수라는 것을 무언으로 인정했다.
“하앗!”
우일문이 검을 쭉 뻗었다.
자하겸결, 제일식이다.
쿠르릉!
벽력이 고막을 때린다.
이어서 위이잉, 하고 자색의 강기가 맹렬하게 회전하다가 앞으로 쏘아졌다.
‘또?’
혈마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무색이 아닌 자색이야, 아까부터 무형과 유형의 강기를 교대하면서 섞어서 쓰고 있으니 상관없었다.
의심이 가는 것은 초식에 있었다.
동수, 그것도 한 수만으로 결과가 정해지는 고수의 싸움에선 눈에 뻔히 보이는 초식은 좋지 않다.
물론 능력이 부족해 막지 못하거나 피할 수 없다면야 상관없다. 도리어 확실하다면 그 편이 낫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위험하다.
오히려 적이 공수를 간파하고 수를 읽어 반격을 가할지도 모른다.
우일문이 그런 기본적인 것을 모를 리가 없다.
그렇기에 의심이 갔다.
그리고 그 이름 모를 불길함과 의심은 결과적으로 위기를 벗어날 수 있게 해 줬다.
‘과연!’
무언가 눈치챈 듯, 재빨리 몸을 옆으로 옮기는 혈마.
그 옆으론 자하개벽이 스치고 지나갔다.
콰앙!
“크아악!”
비명의 주인은 혈마가 아니었다.
그 뒤편에서 얼쩡거리던 혈교도였다.
피해 낸 검초의 희생양이 됐다.
번쩍!
그리고 유성처럼 궤적을 남겨 낸 꼬리 부근에서 새하얀 빛이 뿜어져나와 곧장 혈마의 등을 노렸다.
혈마는 기다렸다는 듯, 제자리에서 반 바퀴 돌면서 사음장을 꽉 쥐고 휘둘렀다.
채애앵!
등을 노린 건 우일문의 검이었다.
“이기어검(以氣販劍)!”
검수란 검을 손과 같이 써야 하며, 떨어뜨려선 아니 되지만 검선에게는통용되지 않는 말이 었다.
우일문은 일평생을 검에 쏟았다.
정신을 차렸을 땐 검과 하나가 되는 경지를 이루었다.
그래서 얻게 된 것이 바로 이 이기어검.
굳이 손에 두지 않아도 눈에 닿는 곳이라면 의념만으로도 움직일 수 있게 됐다.
“핫!”
우일문이 손목을 틀었다.
사음장에 막혀 힘 대결을 하고 있던 검이 휘리릭 회전하면서 혈마의 목을 노리듯 수평을 그었다.
혈마가 뒤로 누우며 검을 피해 내곤, 허리를 돌려 그 회전력을 삼아 사음장을 돌려 바람을 만들었다.
검이 주춤거렸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혈마의 품에 파고들어 이십사수매화검법을 펼쳤다.
“과연, 소문은 들었으나 참으로 대단하군!”
혈마가 짐짓 감탄했다.
“이것이 우일문의 현(顯)이로구나!”
입가의 뜯겨진 피부 가죽 사이로 바람 소리가 났다.
“오냐!”
혈마가 진각을 밟았다.
쿠우웅!
그러나 그 위력이 평범함과는 다르다.
지반이 뒤집히고, 암석이 부서졌으며, 핏줄기가 치솟았다.
어지럽게 떨어져 내리던 매화가 늘어나려던 순간, 혈마가 사음장을 휘둘러 날려 버리곤 사라졌다.
정확히는 사라지게 보일 정도로 빠르게 움칙였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렸다!”
쇠를 긁는 목소리가 들끓었다.
마치, 구천을 떠도는 악귀가 나타난 것은 아닌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시커먼 눈구멍 사이에 점을 찍은 혈광이 짙어진다.지나간 자리엔 안광이 길게 늘어지면서 남았다.
“이것이, 나의, 현이로다!”
푸화악!
옷자락 사이에서 피가 터지듯이 뿜어져 나왔다.
마치 살아 있다는 듯이 움직이는 것이 몹시 섬뜩했고, 피부 가죽까지 뜯고 나와 폭포처럼 솟았다.
일순간 해바라기처럼 활짝 핀 핏줄기가 일렁이더니 혈마의 몸을 집어삼켰다가 놓아주었다.
“허어……!”
우일문이 눈앞의 광경에 숨을 멈췄다.
환술에 걸린 것인지, 혈마의 사방으로 핏줄기가 뱀처럼 구불거리다가 위로 치솟아 사람처럼 변했다.
오직 피로 이루어진 괴생물체는 사람으로서 이질감과 거부감을 느끼게 했다.
“이 손 안에 기혈이 있으며, 또한 사람을 구성하는 피는 곧 이 몸이시니 경외해 받들라!”
혈마에게서 최초로 광기가 묻어났다.
그리고 발산하는 그 기세는 오천의 혈교도가 하나가 된 것처럼 압도적이어서 몸이 절로 굳어질 정도였다.
“카하하하하!”
사람도, 짐승의 것도 아닌 웃음소리.
우일문은 땀을 삐질 흘리면서 대응에 나섰다.
쐐애앳!
아무리 빠르다고는 해도, 전속력으로 쏘아지는 검보단 빠르진 않았다.
빛이라는 시각적인 정보를 뇌가 인식할 때쯤, 검은 먼 발치까지 이동해 혈마의 뒷목을 노렸다.
쿠와앙!
혈마의 후위를 지키던 혈인(血人)이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 날아오던 검을 막으려 했다.
푸확!
그러나 너무나도 쉽게 돌파당하고 말았다.
혈인이 피로 되돌아가면서 사방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할 일은 다 했다.
약간이지만 검의 속도를 낮췄다.
혈마가 우일문의 코앞까지 근접했다.
좌륵!
사음장의 고리가 울린다.
혈마의광 소가 터졌다.
그리고 일촉즉발의 순간 우일문도 눈을 빛냈다.
“옳거니!”
파바바바밧!
우일문의 의념이 여러 갈래로 나뉘었다.
언젠가부터 연결되어 었던 철검들이 위로 솟구쳤다.
무려 열 자루에 이르는 검들이 한꺼번에 쏘아지면서 우일문의 앞, 혈마의 머리 위에서 떨어졌다.
“하아아아아아압!”
누군가가 소리쳤다.
세월이 깃든 목소리는 아니다.
혈마는 우측의 혈인을 통해 시야를 넓혔다.
그 눈에 보이는 건 화살처럼 쏘아져 오는 주서천이었다.
‘자하검결!’
주서천은 검에 모든 걸 집중시켰다.
의지, 내공. 그리고 혼과 검을 담았다.
‘자하개벽!’
회전하는 검이 쏘아지고,
‘화우선형!’
검이 부챗살처럼 펴지면서 수십 개로 나누어져,
‘적하매장!’
위로 솟구치면서 다시 한데 모였다가 폭포처럼 쏟아진다.
‘교탈조화!’
쿠구구구!
하늘이, 땅이 흔들렸다.
고비 사막이 평화가 깨진 것에 분노하듯 울어댔다.
머리 위엔 열 자루의 검이 떨어져 어깻죽지부터 시작해 등, 척추, 허리까지 꽂혀 몸을 고정시켰다.
그다음으론 강기의 폭포가 혈인들을 짓뭉개고, 박살 내면서 지면을 두드렸다.
화약을 모아 한꺼번에 터뜨린 것처럼 굉음이 났고, 소란이 끝나기도 전에 마치 공처럼 땅을 튕기면서 공중으로 떠올라 검편을 위쪽으로 쏟아 냈다.
푸부북!
매화 향이 혈 향을 지워 낸다.
핏빛이 말끔히 사라졌다.
시야를 가린 피 안개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혈마의 몸뚱아리는 만신창이가 됐다.
다리에서부터 가랑이까지 자그마한 구멍들이 무수히 남았다.
몸을 두르고 있는 피들도 힘없이 일렁이고, 얼마 남지 않은 피부 가죽도 뜯겨져 안의 뼈가 전부 보였다.
끝까지 놓지 않았던 관도 아래로 내팽개쳤다.
“……”
생명의 원천으로 느껴졌던 그 안광조차 껌뻑, 껌뻑이더니만 이윽고 불씨를 잃고 사라져 버렸다.
숨도, 맥박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아, 하아, 하악……”
주서천이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온몸은 땀으로 범벅이었고, 검을 쥔 손은 사시나무처럼 떨려 왔다.
방금 전 일격에 정말 모든 걸 쏟아 냈다.
단전을 깨끗이 비우는 느낌으로 내공을 있는 대로 끌어 올렸다.
이렇게나 지치는 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너무 간만이라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다.
“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