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十二章 (133/254)

고비 사막은 태반이 암석으로 되어있다.

그러다 보니 황량해 보여도, 크고 작은 암석으로 가득해서 숨어 있을 곳이 제법 된다.

무림맹은 구석 곳곳에 숨어서 혈교도가 오기를 기다렸다.

일각 후 혈교도의 함성이 들려왔다.

“와아아아아!”

“정파의 피를 제물로!”

“제물로!”

오천에 이르는 혈교도의 함성이었다.

그러나 전부가 혈교도는 아니었다.

삼 할 정도는 강시였다.

“전군, 경계!”

우일문이 제갈삭에게 전해 듣고 검을 높이 올렸다.

쿠구구!

혈교의 군세가 멈추지 않고 전력으로 달렸다.

제정신이 아닌 그들은 오로지 적의 목숨을 취하여 피를 보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참고로, 혈교는 피를 숭배하는 집단 같은 게 아니다.

확실히 초기에는 그런 류의 사교도이기는 했다.

그러나 도중에 혈도나 혈맥, 등의 피와 연관된 걸 집착하다 그에 걸맞은 마공이 완성됐다.

그런 쪽으로 연구가 진행되다 보니 혈교의 마공은 피와 연관됐고, 시각이나 후각으로 피를 접하면 마성을 제어하지 못하는 등의 특징도 생겼다.

“크아아악!”

“꺼져! 저건 내 거야!”

“으히히!”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보다 귀찮은 게 없다.

동귀어진의 기세로 오니 부담스러웠다.

그 와중에 공수를 교환할 때에는 나름대로 생각하면서 싸운다는 것이 특히나 더 짜증 났다.

“나무아미타불.”

광기와 금속의 마찰음이 뒤섞인 전장 속에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염불이 들렸다.

소리가 몹시 맑았다.

청명음의 근원지는 눈썹이 특히 굵고 진한 중년의 승려였는데, 그 무공이 보통이 아니었다.

눈을 껌뻑이면 그 신형이 순식간에 아홉 개로 나뉘었는데, 각각 상이한 초식을 펼쳤다.

공통점이라면 장법을 운용했다는 것이고, 그 위력이나 속도가 초절정의 수준이라는 것이었다.

“커억!”

“빌어먹을 땡중아……”

“크아악!”

승려의 손바닥에 부딪치면 피를 흩뿌리며 튕겨 나가거나, 혹은 그 자리예서 픽픽 쓰러져 갔다.

“일장항마(一掌降魔)!”

“홍진이다!”

소림사에선 대표로 홍고와 홍진이 왔다.

홍진은 홍고의 사제였는데, 소림사의 장법을 여럿 대성한 고수로서 그 역시 천하백대고수에 이름을 올렸다.

소림사의 절기인 연대구품(蓮臺九品)을 대성한 천재이기도 했다.

홍고가 별동대로 차출되면서 그 사제인 홍진이 소림의 지휘를 물려받았다.

“어찌 사욕과 쾌락을 위해서 사람을 해하는가

그동안의 행적이 천인공노하니 , 백성들의 평화를 위해서라도 내 오늘 살계를 어겨야겠구나.”

홍진을 필두로 소림의 무승들이 활약했다.

“꺼져라, 이 땡중들아!”

“으으으.”

혈교도는 승려들을 보고 기분 나쁜 듯 슬슬 피하거나, 혹은 살의를 참지 못하고 폭발시켰다.

마도인이 싫어하는 걸 넘어서 혐오하는 것 중 그 첫째는 두말할 것도 없이 소림사의 승려들이다.

정파 무공은 정순하며 그 순도는 단연 소림사가 최고이다.

항마의 성질이 몹시 강해 천적이나 다름없었다.

눈을 속이는 환술이나 사술 같은 것은 물론이고, 내력끼리 부딪칠 때마다 혈맥과 기맥이 아파 왔다.

무림맹은 소림사를 비롯한 주요 전력을 앞세워 전진했다.

“캬하하하, 비켜라! 비켜라!”

그때 , 쇠를 긁는 것처럼 듣기 싫은 목소리가 울렸다.

좌중의 시선이 목소리의 주인에게 돌아갔다.

“커허억!”

무당파의 도사가 피를 울컥 토했다.

몸이 공중에 떠올라 있었는데, 등 뒤로 손이 뚫고 나왔다.

“혈조귀(血順鬼)께서 나가신다!”

”혈조귀!”

누군가가 놀란 듯 그 이름을 외쳤다.

혈교에는 다른 곳에 비해 무인이 그다지 많진 않다.

대부분 그 구성원은 주술사나 강시술사다.

그러나 무인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그중에서도 무림에 악명을 떨치는 자들이 있다.

그중 대마두로 알려진 마인이 혈조귀다.

“당장 그 더러운 손을 빼지 못하겠느냐.”

쐐액!

위엄 어린 목소리와 동시에 검의 궤적이 그어졌다.

정확히 등 뒤를 뚫고 나온 손가락을 노렸다.

“어이쿠야!”

혈조귀가 손을 황급히 빼곤 조소를 흘렸다.

“크흐흐, 무당이절인가. 피 맛이 영 좋지 않지만 그래도 이 혈조귀님 상대로는……”

혈조귀는 그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눈앞에 검광이 번쩍이면서, 목을 노리고 찌르기가 들어왔다.

그것도 검극에는 강기가 실려있는 게 보였다.

일반인이라면 순간 경직할지 몰라도 혈조귀 정도 되는 고수는 아니다. 경직은커녕 반격에 나섰다.

언제 손을 출수한지도 모른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본능이 먼저 막으라고 외쳤다.

왼손이 아래에서 위로 솟구쳤는데 손등 위로 세 갈래로 나누어진 철조(鐵順)가 달려 있었다.

‘ 어리석긴!’

근처의 무당파 도사가 그걸 보고 비웃었다.

무당이절의 검, 그것도 화경의 증거인 검강이다.

만년한철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이상 못 막는다.

확실히 철조는 만년한철이 아니었다.

그러나 핏빛으로 물들어진 아지랑이가 나타났다가 굳혀졌다.

“조강!”

운학이 눈살을 찌푸렸다.

극마(極魔)……

마도에서 화경을 부르는 경지이다.

“어디, 실력 좀 볼까?”

혈조귀가 히죽 웃었다.

오른손의 오지(五指)는 짐승의 것처럼 날카로웠는데, 이쪽에도 조강이 실렸다.

그 뒤로 혈조귀가 이끄는 무력 부대가 덮쳐 왔다.

크읏!

한편, 종남파와 공동파 역시 고전하는 중이었다.

“발 밑을 조심하시오!”

은하노사가 경고하며 엄지와 중지를 튕겼다.

파바밧!

손가락을 튕기자 가느다란 빛줄기가 쇄도했다.

은하노사의 장기인 은하적성지다.

얼핏 보면 침을 날리는 것처럼 보이나 전혀 아니다.

하나하나가 강기의 반절이나 되는 위력을 지녔다.

빛줄기가 쏟아질 때마다 지반이 뒤집히고 그 안에 숨어 있던 언마의 피가 뿜어져 나왔다.

가끔씩 모래가 흩어지면서 그 밑에 구멍이 난 암석 같은 것도 보였다.

“어딜!”

은하노사가 눈썹을 사납게 치켜떴다.

미세하긴 하지만 지맥의 움직임이 잡힌다.

근처의 언마가 도망치는 게 느껴졌다.

“놓치지 않겠다!”

몸을 날려 바람에 맡겼다.

한 손은 뒷짐을 쥐었는데 , 달리는 것이 아니라 꼭 산책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속도는 보통이 아니었는데, 뛸 때마다 지면 위를 떠오른 채로 직진해 나는 것 같았다.

‘은하유영비 (銀河遊影飛) 인가.’

지일광이 은하노사의 신묘한 움직임을 보고 작게 감탄했다.

쿠와앙!

한눈을 팔고 있을 때가 아니다.

땅이 솟구치면서 언마가 뛰쳐나왔는데, 빙글빙글 회전하고 있었다.

춤을 추거나, 재주를 부리는 게 아니다.

그 회전력이 비정상적으로 발달한 손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사형!’

지일광이 분노로 가득 찬 눈을 매섭게 뜨며, 허리춤의 검을 출수했다.

들은 바에 의하면 공동파의 사형제들이 이 언마인가 뭔가 하는 마인들에게 목숨을 잃었다고 들었다.

사형인 지운보는 아니나 공동파의 제자들이 언마에게 제법 피해를 입긴 해서, 자연스레 복수심이 끓어올랐다.

“죽어라!”

지일광의 검과 언마의 발톱이 부딪쳤다.

공동의 상승 무공인 칠살검(七殺劍)이 펼쳐졌다.

칠살검은 내가중수법의 검법이다.

검에 실린 내기는 하나이나, 부딪친 순간 일곱 줄기로 나뉜다.

적의 내부로 파고든 큰 줄기는 일곱 곳에 상처를 주고, 내력이 심후하지 않다면 막기는 불가능하다.

“크헤엑!”

언마가 피를 흩뿌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한 놈도, 빠짐없이, 죽여 주겠다.”

지일광의 섬뜩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혈교의 공세는 맹렬했다.

그러나 무림맹은 그 기세에 아랑곳하지 않고 격전을 치르며 막아 냈다.

그저 막아 낸 것만이 아니다.

조금씩 길을 열었다.

“지금입니다!”

제갈수란이 손끝으로 적진을 가리켰다.

“가자아!”

암천의 계획 아래, 영웅과 마두가 모였다.

채애앵!

금속음이 길게 늘어진다.

불꽃이 튀고 피가 흩뿌려졌다.

피부를 가르고 그 안의 살과 뼈도 베었다.

무림맹이 길을 열어 주었다.

별동대는 그 틈으로 파고들었다.

전장의 최전인 만큼 참으로 복잡했다.

“매화정검!”

“주서천이다!”

“영웅의 피가 어떤지 맛 좀 봐야겠다!”

핏빛으로 일링이는 안광이 이쪽으로 향했다.

‘많이도 유명해졌군.’

혈교도 몇몇이 알아봤다.

정신이 엇나간 그들조차 알아채는 걸 보면, 확실히 이름이 높아진 모양이었다.

그사이 혈교도와 강시 무리가 덮쳐왔다.

그 숫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백여 명의 별동대가 쏟아지려는 공세에 맞춰 선수를 쳤다.

“후웁!”

홍고가 제자리에서 일권을 내질렀다.

그 주먹은 먼 거리에서 몸을 이제 막 날린 혈교도를 후려쳤다.

퍼억!

시원한 격타음.

혈교도가 눈을 부릅뜨면서 뒤로 날아갔다.

입에선 피가 뿜어져 나왔다.

‘역시, 백보신권’

백보 내외로 닿는다는 주먹.

이 권법만으로 훗날 신권이라 불리게 된다.

그만큼 대단한 무공이었다.

홍고는 제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 것 같았지만, 별동대의 움직임을 조금씩 따라가며 적을 처치했다.

내공을 최대한 절제하면서 괜한 소비를 막고, 혈마에게 도달하기 전까진 힘을 아끼며 혈교도와 싸웠다.

“크으윽!”

“아악!”

홍고의 활약은 남들보다 눈에 띄었다.

남다른 불력(佛力)을 지녔고, 항마력(降魔力)까지 비범했다.

한편, 그 외의 무인들도 범상치 않은 실력을 지녔다.

혈마의 발을 묶어야 하는 만큼 평균이 높았다.

그중에서도 역시 인룡, 호덕창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오뢰정인(五雷頂印)!’

빠직, 빠지직!

손가락 끝에 극양의 기운이 집중되어 시퍼런 빛줄기를 토해 냈다.

우레를 손가락에 감은 것처럼 보였다.

종남파의 절기로서, 정파에서도 보기 드문 극강이자 극패의 무공으로 그 위력이 몹시 대단하다.

호덕창에게 뭣 모르고 접근한 혈교도는 오뢰정인에 맞아, 피부와 내장까지 새카맣게 타버리며 즉사했다.

“죽어랏!”

“인룡의 목은 내 것이다!”

오룡삼봉의 이름도 매화정검만큼이나 높았다.

혈교도가 우르르 몰려와 호덕창을 노렸다.

그러나 최고의 후기지수 이름이 어디 안 가듯,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빛줄기가 번쩍일 때마다 끔찍한 고통과 더불어 비명이 절로 터져 나왔다.

“죽어랏!”

그사이에 혈교도가 접근해오며 상념을 깨뜨렸다.

‘아차, 이럴 때가 아니구나.’

인룡의 무공을 보느라 잠시나마 정신이 팔렸다.

주서천은 격전 와중에 한눈을 판 걸 반성하며, 목을 노리려던 박도를 검으로 올려쳐 튕겨 냈다.

채앵!

혈교도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지만, 입가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쐐액!

무엇을 노리나 싶었더니 강시였다.

혈교도의 등 뒤에서 강시가 튀어나와 팔을 쭉 뻗었다.

“흠!”

혈교도 치곤 제법 괜찮은 작전이었다.

손목을 튕겨 검을 돌릴까 했지만, 그러면 늦을 것 같았다.

작정한 공격이라 그런지 이것까지 계산한 모양.

그래서 손에 쥐고 있던 검을 놓고 몸을 빙글 돌렸다.

팟!

강시의 손이 애꿎은 허공을 찔렀다.

혈교도가 경악 어린 표정을 지었다.

검수, 그것도 명예를 중시하는 정파인이 검을 버렸으니 당연했다.

“둘.”

주서천이 돌면서 다리를 휘둘렀다.

곡선을 그려 내는 돌려 차기가 강시의 팔을 후려쳤다.

우드득!

강시의 단단한 육체도 화경의 고수의 공력을 실은 돌려 차기에는 버티지 못했다.

금강강시 혹은 활강시라면 사정이 또 다를지 모르겠지만 일반적인 사강시, 그것도 사음장으로 부활해 내구성도 떨어진 상태로는 버틸 재간이 없다.

뼈가 부러진 것을 넘어, 살까지 후두둑 뜯겨지면서 덜렁거렸다.

팔이 토막 나기 직전이었다.

주서천은 그 팔이 떨어지기도 전에, 헌신짝처럼 버려진 검을 발끝으로 차올려 공중에서 낚아챘다.

“안 돼!”

혈교도가 질겁하면서 박도를 재차 휘두르려 했지만, 그 전에 빛줄기가 지나가 목을 뎅겅 잘랐다.

“최대한 많이 죽이십시오!”

최후 목표는 혈마다.

그가 등장하기 전까진 전열에서 최대한 날뛰어둬야 했다.

“후우……”

내공을 응축한다.

무릎을 구부렸다.

대퇴근이 수축된다.

숨을 멈추며 힘을 주니 왕(王) 자가 새겨진 복근의 형상이 더더욱 뚜렷해졌다.

“주 공자!”

제갈수란이 멈춰 선 주서천을 향해 경고했다.

그의 앞에 족히 삼십이 되는 혈교도와 강시가 몰려들었다.

‘매화노방(梅花路傍).’

이십사수매화검법, 일초가 펼쳐졌다.

‘매화접무(梅花蝶舞).’

무릎을 피면서 튀어 나간다.

움직임은 폭발적이었으나 휘두르기 시작한 검은 달랐다.

마치 나비가 너울거리듯, 적들 사이에서 춤을 췄다.

스스슷!

휘둘러진 검이 피부를 얇게 갈랐다.

아무 곳이나 벤 게 아니다.

정확히 동맥을 노렸다.

그다음 삼초식으로 이어지자 어딘가 모르게 요염한 기운을 토해 냈다.

매화토염(梅花吐絶)이다.

눈을 현혹하듯 요염하게 일렁이던 기운에서 매화가 피어나오더니, 그 기세가 날카로워졌다.

“크헤헤헤!”

이성을 잃은 혈교도가 주서천을 향해 몸을 날렸다.

주서천은 검을 위에서 아래로 휘둘렀다.

검신을 반사하는 빛줄기가 번쩍이자, 광기 어린 웃음을 흘리며 오던 혈교도가 나무토막처럼 세로로 갈라졌다.

매개이도(梅開利導)에서 매화낙섬(梅花落進)이 물 흐르듯 이어졌다.

“죽어랏!”

“혈교의 마공을 보여 주마!”

“화산의 애송이!”

제일 앞장선 혈교도가 세로로 갈라졌지만, 그 누구도 겁먹은 눈치가 아니었다.

주서천은 그 패기에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놀라지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우습게 보지도 않았다.

그저 묵묵하게 다음 초식을 이었다.

‘매화낙락(梅花落落).’

파바바밧!

육초식을 잇는다.

오초식인 매화낙섬과 같이 검기로 된 빛줄기가 떨어지고, 또 떨어졌다.

칠초인 매화빈분(梅花顔粉)까지 이어지니 시야가 가려져 어지러울 정도로 늘었다.

“크아악!”

“아악!”

“개, 개자…… 끄아악!”

그저 눈이 즐거운 묘기가 아니다.

어지럽게 늘어진 검줄기는 곧 적을 피로 적시며 비가 됐다.

“피!”

운 좋게 살아남은 이들은 혈교의 마공 탓인지 그 마성이 한층 더 깊어졌다.

입에선 군침이 흘러나왔다.

뇌의 주름이 줄었다가 늘어난다.

허연 뇌수가 조금이지만 붉어졌다.

팔초식인 매화혈우(梅花血雨)가 끝났으니, 그다음은 매화구변(梅花九變)이다.

검 끝이 미세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제어하지 못하는 힘이나, 소비된 내력으로 인한 떨림이 아니다.

변검이자 환검의 시작이다.

“커헉!”

“컥!”

여기저기서 비명이 고막을 때렸다.

눈앞에 혈교도 아홉 명이 피를 흩뿌리면서 쓰러지는 것이 보였다.

분명 하나의 초식에 불과한데, 어째서인지 그 안에 여러 번의 변화가 있었다.

“흥!”

그래도 잡어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십사수매화검법을 지금까지 어떻게든 막아 낸 자가 존재했다.

얼굴이 무척이나 험상궂은 혈교도였다.

손에 몸집에 걸맞은 칼을 쥐고, 사람 귀로 묶은 목걸이를 착용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화산파의 이십사수매화검법도 이 이수마(耳收魔) 앞에선 무용지물이로구나!”

“이수마!”

주변의 정파인들이 놀란 듯 숨을 흡 하고 멈췄다.

격전 중임에도 잠시 고개를 돌려 돌아볼 정도였다.

이수마는 악명이 자자한 혈교의 고수였다.

극마에 이르는 경지이며, 천하백대고수에도 이름을 올렸다.

별호처럼 사람의 귀를 잘라 모았는데, 귀를 잘라 죽기 전까지 피를 흘리는 모습 보는 걸 즐긴다고 한다.

“으하하!”

이수마의 도에서 핏빛으로 일렁이는 강기가 치솟았다.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공력을 머금었다.

“매화만개(梅花滿開).”

주서천이 십초식의 이름으로 답했다.

초식의 이름을 듣고 피하기에는 늦었다.

이미 이수마의 주변에 잔류한 검기가 한가득 피어올랐다.

이수마는 비릿하게 웃으며 호신강기를 펼쳤다.

불길할 정도로 붉은색의 막이었다.

매화만개가 막혔으나, 동요하지 않았다.

대신 그다음 초식을 이어서공격을 퍼부었다.

매화인동(梅花忍冬), 매화점개(梅花潮開), 매화점점(梅花潮潮), 매화난만(梅花炯漫).

차례대로 십일초부터 십오초이다.

잠시 침묵을 하던 매화가 다시 피어오르기 시작하더니, 번지고 번져서 흐드러졌다.

“어딜!”

이수마가 어림없다는 듯, 호신강기를 거두어 칼을 크게 휘둘렀다.

핏빛으로 응집된 검풍이 날아갔다.

꽃이 핀 매화, 검기가 검풍에 흩어졌다.

그러나 사라지진 않고 공중에 어지러이 날렸다.

”끙!”

이수마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이미 환검에 눈이 현혹된 것인지, 검기인지 매화인지도 구분이 되지 않았다.

“허어……”

“이게 무슨……”

그건 별동대나 주변의 혈교도도 마찬가지였다.

강시를 제외하곤 다들 하나같이 넋을 잃은 얼굴이었다.

“이십사수매화검법이 원래 이런 것이었나……?”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주변을 가득 채울 정도의 매화를 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상승의 검법을 이리도 쉽게 응용하여 무식할 정도의 내공을 쏟는 사람은 몇 없다.

“젠장!”

이수마가 짜증을 냈다.

그다음 어찌 될지 알고 있어서였다.

예상대로 어지러이 날린 매화가 떨어졌다.

 마치 비가 내리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낙매분분(落梅粉粉), 낙매성우(落梅成雨), 매영조하(梅影造河)!’

십오초와 십육초는 잘 끝났다.

십칠 초식을 이어서 펼쳐졌다.

환검이 아닌 산검(散劍)이었다.

나눠진 매화가 한데 모였다.

그 그림자가 강을 만들 정도였다.

푸우욱!

한꺼번에 복수의 급소를 공격해 왔다.

그 공력이 대단하여 전부 막질 못하고, 결국 어깨를 허용했다.

“미, 미친놈!”

이수마의 입에서 질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일격 하나하나에 강기에 이르는 공력을 실었다.

검에 강기를 두른 채 이런 걸 날리다니, 미친놈이다.

내공이 남아날 리가 없다.

그게 정상이다.

그런데 그 한계를 훤히 넘어선 공격이 연달아서 날아온다.

욕이 저절로 나왔다.

“뭐하고 있어!”

“죽엿!”

이수마가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소리를 질렀다.

구멍이 난 어깨를 붙잡고 처절하게 외쳤다.

그 외침에 주변에 대기 중이던 무리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달려왔다.

각자 검기를 둘러 공격해 왔다.

“위험해요!”

제갈수란이 깜짝 놀라 경고했다.

얼른 도우라고 간접적인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괜한 걱정이었다.

주서천의 검이 다시 휘둘러진다.

몇 번째인지도 모른다.

눈부신 빠르기의 검이 주변의 공격을 쳐 냈다.

이십사수매화검법에서 몇 없는 수비 검식, 매인설한(梅忍雪寒)이었다.

‘매향성류(梅香成流).’

드디어 오의의 영역에 든다.

실전에 쓰는 건 또 거의 처음이었다.

‘매화 향……!’

노심초사하던 제갈수란이 멈칫했다.

코끝에서 맡아지는 매화 향이 혈 향을 가리고, 전장에 퍼졌다.

‘물결(梅香成流)을 이룬 매화 향이 뼈에 스미고(梅香浚骨), 나비를 취하게 하며(梅香醉蝶), 푸른 대나무에서 노니는구나(梅遊靑竹).’

십구부터 이십이 초식. 매화만리향(梅花萬里香).

웅얼거리듯 읊조린 순간, 매화 향이 주변을 뒤덮었다.

이수마의 몸이 여러 갈래로 나뉘었을 뿐만 아니라, 주변이 쑥대밭이 됐다.

일백여 명의 혈교도와 강시가 줄이 끊어진 인형처럼 쓰러져 갔다.

그 중앙에는 주서천이 홀로 서 있었다.

‘그리고, 나 자신.’

화산파의 제자는 검수요, 또 하나의 검이다.

이십삼초인 매화만리향에 자신을 더하면 이십사.

이십사수매화검법(二十四手梅花劍法).

그 아름다움에, 무인들은 무심코 넋을 잃었다.

치열하게 이뤄지는 전선을 제외하곤 그의 주변은 완벽 이상으로 펼쳐진 화산의 절기에 경악했다.

어떤 이는 매화 향을 음미하듯, 눈까지 감고 가만히 서 있었다.

그 정도로 방금 주서천이 보여준 검무는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그 충격 속에서 혈마가 반응을 보였다.

“주서천, 주서천인가! 듣던 대로 굉장하구나!”

혈마가 평소답지 않게 흥분한 듯 연신 감탄을 지어냈다.

눈을 대신하는 붉은 안광이 욕심으로 번졌다.

‘좋구나, 좋아!’

무림맹의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혈마가 경계하지 않고 관심을 보였다.

“클클클.”

혈마의 입에서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족히 백오십에 가까운 혈교도와 강시가 눈 깜짝할 사이에 당했고, 정예인 이수마도 목숨을 잃었다.

그러나 분개하기는커녕, 사음장을 신난 듯이 흔들었다.

“혈마가……”

제갈수란이 눈을 가늘게 떴다.

주서천이 보여준 검무에 그녀 역시 놀랐지만, 그것도 잠시.

금세 침착해졌다.

자고로 모사, 그리고 군사란 냉정해야 한다.

설사 눈앞에 용이 나타나도 평정심을 가져야 했다.

병사가 당황하면 혼자 죽지만, 지휘관이 당황하면 모두가 죽는다.

펄럭!

제갈수란이 무림맹의 깃발을 들었다.

매화 향을 머금은 바람에 깃발이 나부꼈다.

무림맹의 표식을 알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렇다고 소속감이나 자부심을 표하는 것도 아니었다.

뒤편에서 이쪽을 주시하고 있는 제갈삭과 대기하는 검선에게 혈마가 움직였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였다.

별동대원들도 깃발을 보고 싸움에 임하기 전에 제갈수란이 한 말을 떠올렸다.

‘최초의 깃발이 머리 위로 올라오면 그건 곧 혈마가 근처에 나타났다는 뜻이에요. 그러니 여러분께서는 전력을 다해 합공하여 혈마의 발을 묶으셔야 합니다.’

전장에선 외치지 않으면 명령이나 작전 전달이 어렵다.문제는 그렇게 하면 적에게도 들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사전에 이야기를 해두지 않으면 차질을 빚는다.

“다들 정신 단단히 차리셔야 합니다.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주서천도 제갈수란의 말을 떠올리면서 말했다.

“……”

다시 시선을 돌리려고 했는데, 홍고가 조금 멍해 보였다.

“백보권승……?”

“음, 죄송하오. 주 시주의 무공이 워낙 대단하여…… 잠시 넋을 잃었소.”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만, 나중에 듣겠습니다.”

“그러지.”

홍고가 긴장한 듯 염주 알을 꽈악 쥐었다.

주서천은 별동대 중 부상자 몇몇은 후위로 보내고, 앞으로 전진했다.

그숫자가 약 칠십이었다.

나름 정예인데도 벌써 삼십이 당했다.

최전에 있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별동대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이십사수에 현혹되었던 아군과 적들도 정신을 차리고 전투를 속행했다.

그리고 그사이 별동대는 오십 보 앞으로 나아갔다.

지나간 길에는 피가 고이고 시체가 쌓였다.

고생한 끝에 혈마 앞까지 당도할 수 있었다.

“흘흘흘, 명문 정파의 후기지수들이 아닌가. 누가 대문파의 제자들 아니랄까 봐, 품고 있는 것이 보통이 아니로구나. 이렇게나 탐스러운 것들이 나타나다니, 중원을 침공한 것이 참으로 다행이었도다.”

혈마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오른쪽 입술부터 왼쪽 뺨까지 피부 가죽이 전부 뜯어진 탓에, 그 웃음이 몹시 흉악하게 도드라졌다.

“소림사의 중이 끼어 있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나, 그 밖에 괜찮은 것이 많으니 내 화는 내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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