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十一章 (132/254)

제갈상 대신 반백의 머리를 뒤로 넘긴 중년인이 답했다.

남궁위무나 제갈중호 다음으로 연배가 높았다.

무당파의 구궁도검(九宮道劍) 공추(空魏) 장로였다.

“과연 , 무당파입니다.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공추 장로님.”

제갈상이 포권으로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검선께선 어디 쯤에 계시다던가?”

남궁위무가 제갈상에게 물었다.

“난주에서 이틀 거리에 있답니다.”

“나흘에서 이틀이 된 건가. 다행이로군.

부디 도착한 뒤에 혈교가 움직여야 할 텐데……”

“검선께서 이끄는 섬서의 화산파 외에도 종남파와 사천의 당가, 하남의 소림사, 호북의 무당파와 제갈세가가 도합 오천이 됩니다. 수의 차이도 무림맹이 유리하고, 상천십좌인 검선 우일문 진인께서도 계시니 분명 확실한 승리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그랬으면 좋겠군.”

남궁위무가 수심에 잠긴 얼굴로 중얼거렸다.

짚이는 게 한둘이 아니로구나.

혈교가 옥문관을 순식간에 넘은 것도 아직 해명되지 않았다.

‘혹, 그 암천회란 것들에게 놀아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틀 뒤 무림맹 후발대는 별 문제 없이 난주에 도착한다.

그리고 혈교 역시 마치 기다렸다는 듯, 후발대가 도착하자마자 군세를 움직였다.

‘좋지 않다.’

주서천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동안 혈교는 얌전히 있다가, 후발대가 도착하니 곧장 움직였다.

재정비의 경우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어째서 그동안 가만히 있던 건지 신경이 쓰였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생각하고 말고 할 것도 없네.”

학사풍에 염소 수염을 한 중년인이 답했다.

“강시의 제조 중 우리가 도착하였으니, 부랴부랴 너스레를 떠는 것이아니겠는가.”

고력염사(投膳腐士) 제갈삭.

제갈세가의 천재인 삼남매의 숙부이자, 현 가주의 친동생으로서 주서천도 연화각 시절에 만났었다.

세월이 흘러서 그런지 전에 봤을 때보다 주름이 더 늘었다.

“혈마는 머리가 근육으로 가득 차 있는 자가 아닙니다.”

“어허, 아무리 그래도 비약이 심하지 않나.”

제갈삭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이맛살을 찌푸렸다.

후발대에서 지략을 담당하고 있는 만큼, 자기 만의 영역에 주서천이 끼어든 게 못마땅한 눈치였다.

“숙부. 조카가 잠시 말을 올려도괜찮을까요?”

제갈삭의 옆 묘령의 미녀, 제갈수란이 물었다.

“킁, 지금 어른들이…… 아니다, 됐다. 말해 보거라.”

평소 같으면 어디 감히 어른들 대화에 끼어드냐고 쓴소리를 했겠지만, 주서천이 있어 그러지도 못했다.

“숙부의 말씀에도 일리가 있으나, 그래도 그는 전선에서 보고 들은 것이 있으니 약간의 이야기 정도는 귀담는 건 어떤지요. 손자께서도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장수이며, 싸움의 작전을 이끌어 가는 장수의 전법이 승리냐 패망이냐를 결정짓는 첫 번째 요인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모사미봉의 말대로요, 고력염사. 혹은 선발대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다고 하는 건 아니겠지요?”

은하노사가 은근한 압박을 주었다.

“끄응!”

제갈삭이 석연치 않아 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듯 목에 세운 핏대를 가리듯 고개를 숙였다.

주서천은 은하노사에게 눈짓으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

‘괜찮네. 얼마 전에 도와준 보답일 뿐일세.’

언마의 습격이나 무리한 돌격을 경고해 준 것만으로도 많은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그에 비하면 이 정도는 보답에 드는 축도 아니다.

“좋다, 네 생각을 말해 보거라.”

우일문도 부드러운 눈길로 주서천을 쳐다봤다.

괜히 나섰다간 동문의 제자라고 편들어주는 게 아니냐는 소문이 돌까 봐 일부러 아무 말 안 했다.

“기용전야(其用戰也) 승구(勝久) 즉둔병좌예(則純兵桂說).”

“그 싸움을 함에 있어서 승리가 오래 걸리면, 곧 병(兵)이 둔해져서 날카로움이 꺾인다. 손자병법의 작전 편이로군요.”

주서천이 운을 떼자 제갈수란이 설명을 붙였다.

“맞습니다. 군사의 피로와 병비의 소모를 지적하는 것이지요. 완전히 같진 않지만 지금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혈교가 그동안 꼼짝도 하지 않다가, 우리가 오자마자 반응한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가? 동문서답이로군.”

제갈삭이 주서천의 말을 걸고 넘어졌다.

“혈교와 전력의 차가 균등한 상황에서 부딪친다면 무림맹의 필패입니다. 그들이 저희의 시신을 강시로 일으켜서 병력을 보충하기 때문이지요.

싸움이 장기화될수록 상황은 심각해질 겁니다.”

“……일부러 보충할 병력의 인원을 기다리고 있다는 겐가?”

제갈삭은 고지식하고 고집도 센 인물이었으나, 그래도 바보는 아니었다.

“어떤 함정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니 조심하고, 또 경계해야 합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사형처럼 당한다는 겐가?”

누군가가 주서천의 말을 도중에 끊고 들어왔다.

좌중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다.

무인치곤 깡마른 체구의 오십 대 도인이었다.

“그런 뜻은 없었습니다.”

주서천이 예를 다해 도인에게 인사했다.

‘일검칠살(一劍七殺) 지일광!’

전생에서도 그리고 현생에서도 유명한 자이다.

지금은 아직 화경을 막 앞둔 초절정 고수에 불과하나, 훗날 전란에서 마도와의 싸움에서 크게 활약.

후에 천하백대고수 중에서도 상위에 이름을 올리며, 암천회와의 전쟁에서도 끝까지 남은 영웅이다.

숨을 거두기 전까지 검을 휘둘러 적을 죽이고 아군을 구했다는 일화가 기억났다.

“이보게나, 일검칠살. 기분은 이해하나 진정하게. 괜히 죄도 없는 아이에게 화를 풀다니, 나이 먹고 그게 무슨 추태인가.”

‘무당이절(武當二絶) 운학(雲鶴)!’

천하백대고수이자 화경에 오른 도인.

남존이라 일컬어지는 무당파에서도 손꼽히는 고수다.

현 장문인과 동일한 학 자 배로 이대제자다.

또한 무당파의 삼대 신공 중 난해하기로 소문난 양의신공을 구성까지 성취한 천재로도 알려져 있다.

화산파의 연화각처럼 기재와 천재만 모인다는 무룡관 출신으로, 어린시절부터 기대주로 자라 왔다.

비록 상천십좌에 들지는 못했으나, 불혹(不惑: 40세)에 화경에 올라 명성을 떨쳤다.

어릴 적부터 영약 등 여러 지원을 받은 덕에 일 갑자가 넘는 내력을 지녀 양의신공을 무리 없이 펼칠 수 있는 데다가, 양의검법(兩儀劍法)과 양의권법(兩儀拳法)을 수준급으로 펼치는 괴물이다.

‘과연, 정혈대전. 혈마가 나타나니까 문파에서 내로라하는 고수들을 보내는구나.’

일검칠살과 무당이절.

현대에서도 미래에서도 이름이 난 고수들이다.

전생에서는 이름만 들어 보고 그저 활약만 들었던 영웅들이었는데, 같은 자리에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참고로, 지금은 일검칠살의 무위가 부족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음을 얻고 같은 선상에 놓인다.

“……자네 말대로일세. 잠시 이성을 잃고 추태를 보였네. 매화정검에게 내 사과하지.”

지일광이 운학의 말에 진정한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휴, 그래도 지일광은 말이 통하는 상대구나.’

적어도 지운보처럼 복마에 눈이 돌아가진 않았다.

운학이 없었더라면 또 틀어졌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건 잘 직시하고 있었다.

“괜찮습니다. 이해합니다.”

주서천은 훗날 영웅 중에 이름을 남길 일검칠살과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크흠! 잘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모습이 보기 좋으나, 아무래도 그건 나중으로 미뤄야 할 것 같소.”

제갈삭이 헛기침을 하며 분위기를 전환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겐가?”

“전술이라고 말하기에도 부끄럽습니다만, 하나 밖에 없습니다.”

일차, 이차 격돌이 발생하지 않도록 다음을 전면전으로 하여 끝내는 것 밖에 없다.

또한 그렇다고 섣부른 판단을 내려 생각없이 진군하는 것도 금물이었다.

얼마 전의 언마대처럼 또 무슨 수가 숨어 있을지 모르니 이에 대비해야 했다.

“요컨대, 전면전을 하되 신속하게 움직여 적장의 목을 쳐서 끝내라가 아닌가? 그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네. 뭘 그리 대단하다는 듯이 말하는 건지……”

제갈삭이 흥, 하고 석연치 않은 듯 구시렁거렸다.

군사로서의 역할을 빼앗긴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치였다.

그래도 주서천이 소속된 화산파의 장문인이자 상천십좌가 눈앞에 있어서 그런지 큰 소리는 안 쳤다.

“……별동대를 편성해야겠군.”

제갈삭이 염소수염을 살짝 잡아당기며 중얼거렸다.

‘다행이다.’

혹시나 계속해서 반대하면 어쩌나 싶어 걱정했다.

전쟁이 일어나면 군사권은 제갈세가가 갖는다.

그게 현 가주의 친동생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다.

총지휘를 지녔다고 해도 자리에 군사가 있다면 마음대로는 할 수 없었다.

그게 무림의 관례다.

그만큼 제갈세가가 역사 속에서 지략으로 활약했고, 이를 무시했다가 큰 사달이 난 적도 있어서다.

그래도 자존심만 앞세우면서 터무니없는 헛소리를 내지는 않아서 다행이었다.

“검선께선 나서지 않고 계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자하신공이 눈에 띄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상천십좌 정도 되는 분께서 움직이면 혈마가 눈치채 도망 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최대한 짧은 거리에 위치해 있고, 별동대가 발을 묶고 있기까지 기다렸다가 싸우는 것이 상책(上策)입니다.”

“그 외에는 또 없는가?”

“혈마의 목숨을 취할 수 있는 건 검선 밖에 없으시니, 여기에만 전력을 기울여 주십시오.그리고 무엇보다 신속한 움직임이 중요합니다. 혈마가 군세의 뒤로 도망친다면, 전투가 장기화되어 여러모로 복잡해집니다.”

제갈삭도 사음장의 효능을 떠올렸는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면 우리는 뭘 해야 하오?”

지일광이 묻자, 제갈삭이 생각에 잠긴 듯 잠시 말이 없다가 입을 열었다.

“첫째로 검선께서 혈마로 이어질 길을 만들어야 하고, 둘째로는 혹시모를 위협에 대응해야 하오.”

둘째를 이야기할 때는 눈동자를 굴려 주서천을 힐끗 쳐다봤다.

”셋째는?”

“혈마 이외의 모든 것을 신경 써주시오. 각자 최소 팔백에서 천은 지휘하게 될 테고, 전황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으니 이를 명심하셔야 하외다.”

“이보시오, 고력염사. 하면, 검선이 도착하기 전까지 혈마를 맡는 건 누구에게 맡길 생각이오?”

“그건……”

제갈삭의 시선이 한쪽을 향했다.

“진심입니까?”

구풍이 적잖게 당황하며 물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시선의 끝에는 주서천이 있었다.

“숙부의 판단은 옳습니다.”

제갈수란이 흔들림 없는 얼굴로 말했다.

“혈마가 경계하여 물러나지 않도록 방심을 불러야 한다면, 나이가 어린 이들로 구성하는 편이 좋습니다.

또한, 발을 묶을 수 있도록 혈마의 앞에서도 죽지 않아야 할 실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면…… 제갈수란이 뒷말을 흐리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천천히 뜨면서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말했다.

저희 후기지수 밖에 없습니다.”

감숙에 모인 무림맹 전력은 다섯으로 나뉜다.

화산파, 소림사, 무당파, 공동파, 무림맹.

이렇게 다섯이 각각 천여 명의 전력을 지녔다.

제갈세가의 경우는 백 명이 있으나, 대부분이 군사진의 호위 무사라 그렇게 큰 전력은 되지 않았다.

전선에 나서지도 않고 중앙이나 후위 혹은 전령의 역할이기에 사실상 제대로 된 전력은 오천이었다.

그리고 이 외에 혈마의 발을 묶기 위한 별동대가 편성됐다.

별동대장은 주서천이었으며, 전황에 따른 전략이나 모략 등을 위해 제갈수란이 모사로 참가했다.

당연하지만, 그녀가 참가하겠다고 하자 세가 사람들은 맹렬하게 반대했다.

“제정신이냐? 네가 어딜 가겠다고 말을 한 건지 알고는 있느냐?”

제갈삭이 썩 좋지 않은 낯빛으로 따지듯 물었다.

“현 무림에서 열 명 밖에 없는 절대자, 혈마가 있는 곳이다. 그것도 혈교도 무리를 뚫고 지냐가야 하는 일이거늘, 거기가 어디라고 가느냐?”

“숙부께선 제 별호가 모사미봉이란 걸 잊으신 건가요.

무공이야 제 한 몸 지킬 정도는 되니 걱정하지 마세요.”

오룡삼봉에 이름을 올리는 건 지략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무공이 필수적으로 들어가야 한다.

물론 제갈수란은 그중에서도 무공으로는 최약체이긴 하나 그래도 일류 수준 정도는 된다.

“혈교도의 고수들이야 어차피 동행하는 별동대가 맡을 예정이니 그 점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적진 한가운데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길을 뚫는 것도 사실상 별동대가 아닌 그 외의 아군이다.

주변의 보호도 받을 예정이니 괜찮았다.

“도리어 중간에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져,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걷잡을 수 없게 되는 걸요.”

공적인 자리가 아니라서 말투가 조금 부드러웠다.

“네가 꼭 갈 필요는……”

“괜한 객기를 부리는 게 아니에요. 다른 사람을 보내면 그만큼 반응의 속도나, 계책이 좁아진다는 점, 알고 계시잖아요? 부탁드릴게요. 제 목숨 챙기자고 자칫 잘못해서 피해를 크게 하고 싶진 않은 걸요.”

제갈수란은 비록 세가의 도움을 받긴 했으나, 강호 경험이 제법 풍부하다.

거친 생활도 많이 해 봤다.

오늘만큼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위험천만한 사지를 돌아다닌 적도 있었다.

강호 초출이었던 귀주 때만 해도 그랬다.

“끄응!”

결국, 설득 끝에 제갈삭이 백기를 들었다.

대신 주서천을 찾아가 제갈수란을 꼭 지켜 달라고, 그렇지 않으면 책임을 물을 것이라며 엄포를 놓았다.

그리고 주서천은 본격적인 작전에 앞서, 별동대에 합류한 후기지수 중 생각지도 못한 인물과 만난다.

“당신은……”

“나무아미타불. 오랜만에 뵙소, 주시주.”

“백보권승이 아니십니까.”

주서천이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신승의 제자이자 다음 대 방장, 훗날의 신권인 홍고였다.

정예를 보낸다고는 했지만, 설마하니 그게 홍고일 줄이야.

소림사에서 도 손꼽히는 무재로 확실히 정예의 고수지만, 자리가 자리다 보니 올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그때는 신세를 졌소이다.”

“아닙니다. 신세라니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한때는 원한을 샀지만, 신승이 중재해 준 덕에 별 문제 없이 악감정을 해소할 수 있었다.

“전의 일로 소승의 부족함을 깨우치고, 반성하였소.

그 덕에 무공에서도 미약하게나마 성취가 있었지요.

주 시주에겐 정말 여러모로 은혜를 입었나이다.”

“성취 말입니까? 그것참 정파의 홍복이로군요.”

주서천이 포권으로 인사하며 진심으로 기뻐했다.

후에 암천회주에게 치명상을 입힐 한 사람이 강해진다는 것은 환영하는 바이다.

“그나저나, 별동대에는 무슨 일이십니까?”

“그야 별동대원으로 편성되어 그런 것 아니겠소?”

“으음? 백보권승께서 말입니까?”

주서천이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번의 별동대는 후기지수만으로 채워지기로 했다.

홍고는 후기지수치곤 연륜도, 경험도 많았다.

“이 중이 눈치 없이 끼어들어서 죄송하오. 다만, 아무래도 후기지수만 보낼 수는 없어서 항마의 불력을 지닌 소승도 참여하기로 했소이다.”

“과연 , 그렇군요. 그렇다면야 저희야 환영이지요.”

무공에 나름대로 자신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혈마 앞에 서야 한다는 건 제법 부담스럽다.

백보권승 정도 되는 고수가 합류한다면 그 부담이 줄어드리라.

항마의 힘을 지닌 걸 생각해 보면 혈마가 경계할지도 모르나 한 명 정도는 괜찮을 듯 싶었다.

물론, 무작정 의견을 내민 게 아니고 나름대로 검토한 결과였다.

“그러면 백보권승이 오신 김에, 짧게나마 별동대원들을 소개시켜 드려야겠군요.”

제갈수란은 별동대가 만들어지자마자 그 구성원들의 얼굴과 이름, 신분과 무위를 전부 외웠다.

괜히 천재가 아니기도 하지만, 제갈삭과 도맡아서 편성을 직접 했으니 아는 건 당연했다.

“그러면 부탁드리겠소, 모사미봉.”

홍고는 제갈수란을 처음 보는 듯하지만, 그녀의 눈부신 미색에 넋을 잃거나 하지는 않았다.

연령도 연령이지만, 무공만큼 불학의 공부가 깊으니 이성적인 관심은 하나도 두지 않았다.

별동대에 편성되어 제갈수란을 보자마자 침을 질질 흘리는 남정네들과는 상반되는 모습이었다.

“……마지막으로, 종남파의 인룡(印龍)인 호덕창 소협입니다.”

“아까부터 낯이 익다 했더니만, 인룡께서 여기에 계셨구려.”

홍고가 마지막 이름을 들었을 때 감탄을 흘렸다.

주서천도 호덕창을 보았을 때 제법 놀랐다.

일찍이 종남의 오뢰인을 대성하고, 절기인 오뢰정인(五雷頂印)까지 유례없는 속도로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그 역시 훗날 이름 석 자를 역사에 남긴다.

‘천재란 것들이 뭐 이리도 많은지!’

희소식이긴 했지만, 새삼 이 시대에 천재나 영웅이 비정상적으로 많았다는 걸 실감했다.

하기야, 전란이 막 시작된 시절부터 우후죽순 나타났으니 지금 있어도 이상한 건 아니다.

여기서 이삼십 년만 지나면 정말 미친 듯이 많다.

그러나 나쁜 것만은 아니다.

조금 뛰어난 것에 불과한 범재 입장에서 기재와 천재가 많은 건 절망을 주었으나, 그들 덕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 감사함을 현대에서도 잊지 않았다.

만약 기재와 천재들이 없었더라면 무림은 일찍이 암천회에게 지배됐을 테니까.

“무림 후학이 선배님을 뵙습니다.”

호덕창은 과묵한 사내였는데, 팽가의 핏줄과 비견될 정도로의 장대한 기골을 지녔다.

키가 크기도 하지만 그만큼 몸집이 커서 마치 산과 같았다.

말도 없어서 고요한 산 같다는 인상이었다.

“나무아미타불. 혈교가 중원을 침공한 건 안타까운 일이나, 정파의 후기지수 분들을 뵙게 되어 기쁘기 그지없소. 이 연이……”

홍고의 칭찬이 가미된 인사는 이어지지 못했다.

“혈교가 코앞까지 왔다!”

혈교의 군세가 모래 구름을 뚫고 나타났다.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