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八章 (129/254)

이제 막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들어갈 무렵.

혈교가 중원 무림을 습격했다.

오천이나 되는 병력은 무슨 사술을 부린 것인지, 예상보다 일찍 옥문관을 통과해 중원에 들어섰다.

명사산의 월아천문을 비롯하여 감숙의 정파들이 어떻게든 막아 보려 했으나 처참하게 실패한다.

놀랍게도 후위나 중앙에 있어야 할 혈교주가 최전선에 앞서서 지휘하며 정파인들을 학살했다.

그리고 생존자에게서 몇 가지 믿을 수 없는 소식을 듣게 된다.

“혈교도는 죽어도 죽지 않는다더군.”

“혈교주의 사술이 요사스럽다곤 들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네.”

“어떻게 된 영문인진 몰라도 바로 강시로 부활한다고……”

원래 주술의 원류는 남만에서 왔다.

그러나 본토인 남만조차도 한 수 접어 주는 독자적인 주술이 있는데 바로 강시술이었다.

마교도 능숙하나 혈교는 특히나 강시술이 대단했다.

그중에서도 혈마의 강시술은 정점에 속했다.

하나 아무리 그래도, 죽자마자 곧바로 강시가 되는 건 도저히 상식선에서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사람이란 건 미증유인 것에 공포를 느끼는 법.

그것도 삶과 죽음을 초월한 무엇인가에 더더욱.

“혈교도에 당한다면 구천을 떠돈다고 하더군.”

“무림맹이 명사산에서 별 힘도 내지 못하고 도망을 쳤다며? 도대체 뭐하는 것인지!”

“아주 입만 산 놈들이야!”

사람들의 불안은 망상으로 퍼져 온갖 괴소문이 돌기도 했다.

또한, 명사산의 도주 소식이 알려지게 되면서 무림맹을 비롯한 정파는 명예에 큰 타격을 입었다.

조금이라도 버렸으면 모를까, 제대로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후퇴하지 않았는가.

심지어 월아천문은 하나같이 전부 미쳐 버려서 피아를 구분하지 못하고 날뛰고 있다는 소문이 들렸다.

그리고 며칠 뒤.

두려울 것이 없는 오천에 이르는 혈교도는 별다른 장애물 없이 돈황(敦燈)에서 진군했다.

난주까지는 드넓은 평지로 이어진 하서주랑(河西走廊)이 있기에 진군 속도는 결코 느리지 않았다.

사막을 횡단하는 건 제법 힘든 일이겠지만, 이상하게도 혈교도는 지친 기색 없이 전진했다.

그 결과 얼마 지나지 않아 난주 인근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쯤에 유효풍이 급히 요청한 화산파와 종남파, 공동파의 정예가 도착하게 된다.

너무냐도 늦은 도움이었다.

최전선이었던 명사산으로 파견한 무림맹 난주 지부의 무사들과 감숙의 중소 문파는 대부분이 전멸했다.

결국은 늦게 도착한 이들과 감숙의 공동파가 협력하여 혈교의 선발대를 막아야 했다.

“검선을 비롯한 여러 병력이 추후에 도착한다고 하니, 우린 그 전까지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

아무리 구파일방 중에서 삼파의 정예 고수들이 있다곤 하지만, 그중에서 혈마를 이길 자는 없었다.

무림맹은 고민한 끝에 상천십좌 중에서도 가까이에 있는 검선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하나 장문인이 전선에 나서는 건 쉬운 일이 아닌지라, 기나긴 회의 끝에 후발대 합류가 결정되었다.

문제는 최소 삼 일은 걸리는지라, 과연 그동안 혈교의 군세를 상천십좌 없이 막을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후우우……”

감숙, 난주.

주서천은 실눈을 뜬 채, 황량한 지평선과 모래바람이 가득한 사막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과연 버틸 수 있을까?’

혈마의 무서움은 주서천이 잘 알고 있다.

과거, 전란의 시대에 혈교의 침공에 맞선 적이 있었다.

그때의 악몽이 떠오르자 기분이 나빠졌다.

‘싸우면 싸울수록 늘어나는 괴물들!’

혈교의 진정한 무서움은 두려움을 모르는 광기와 한계를 모르는 수였다.

죽여도, 죽여도 그들은 줄기는커녕 늘어난다.

더더욱 충격인 건, 그 적들 중에는 생전에 등을 맞대고 함께 싸우던 아군이 섞여 있다는 것이었다.

일인군단, 혈마!

혈마가 괜히 앞장을 서는 게 아니다.

조금이라도 신선한 시체를 얻어 강시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혈마는 상천십좌이나, 사실 무인이라기보다는 주술사에 가깝다.

그렇다보니 등장 전에는 저평가됐다.

무인이 아닌 주술사니 별것 아닐 것이라고.

그러나 그 착각과 방심은 후회로 돌아왔다.

피로 물든 그 손에 목숨을 잃은 무인만 해도 네 자릿수에 이르렀으며, 사후 그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무림인들이 정녕 두려워하는 건, 사후에 혈교의 편에 서서 가족과 친우의 목숨을 앗아 가려는 것이었다.

‘혼자선 무리다.’

지금까지 해 왔던 것과는 전술을 달리해야 했다.

주서천도 화산파를 출발하면서 금의검문 등 도움이 되어 줄 수 있는 곳으로 서신을 보내 지원을 요청했다.

전쟁은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후발대가 도착하기 전까진 어떻게든 힘을 합해 막아야만 했다.

난주 무림맹 막사.

아무래도 무림 간의 전쟁인지라 난주 한가운데에서 싸울 수는 없다.

그 대신 조금 떨어진 곳에 막사를 세우고, 진지로 삼았다.

사막 한가운데 무림맹 깃발이 펄럭였다.

지휘 막사 내에는 무림맹에 소속된 정파의 주요 인사들이 자리 잡은 채 대화를 이어 갔다.

“혈교의 군세는 전혀 줄지 않았소만, 다행히 늘지도 않았소. 오천 그대로요.”

무림맹 난주 지부장, 두종이 말했다.

공동파의 이름 높은 고수, 복마검 지운보가 말했다.

“혈교도가 그리 적을 리 없는데……”

화산파의 고수, 십사검협 구풍이 눈살을 찌푸렸다.

혈교가 대대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적은 별로 없지만, 언제나 병력의 수는 항시 많았다.

대부분 팔천에서 일만 이상.

그런데 전력을 쏟아야 할 중원 침공에 반절밖에 오지 않았으니 의문이었다.

혹시 무언가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됐다.

“늘건 적건 상관없소. 숫자에 상관없이 전부 죽여 버리면 그만이오.”

공동파의 고수, 복마일검(伏魔一劍) 지운보가 서슬 퍼렇게 눈을 빛냈다.

“맞는 말씀입니다.”

항산파의 늙은 비구니가 지운보의 말에 동의했다.

절매검변(絶梅劍變), 수경이다.

“흠……”

마지막으로 종남파 장문인의 사제이자 최고수인 은하노사(銀河老師)가 생각에 잠긴 듯 침음을 흘렸다.

지금 난주에는 이름만 들어도 알 고수들이 모여 있다.

다급한 지원에 정예를 먼저 보냈으니 당연하다.

대부분이 각 문파에서 내로라하는 고수들이며, 무림에서도 적지 않은 명성을 지녔다.

“방금 막 들어온 정찰에 의하면, 약 하루 정도 거리에 있다고 하오.”

난주처럼 사막에서 살아온 탓인지, 구릿빛으로 그을린 중년의 사내 두종이 현 상황을 설명했다.

“차라리 잘됐군! 나흘 동안 기다릴 필요도 없소. 혈교의 무리에게 본때를 보여 줘야 하오.”

지운보가 살의로 번들거리는 눈빛을 뿜어 댔다.

복마라는 이름에 걸맞게, 지운보는 마도이세의 무리에 대한 이야기만 들으면 치를 떨며 싫어했다.

정파 대부분이 마도인들을 싫어하나, 공동파는 곤륜파처럼 마도이세와 특히 접점이 많은 문파였다.

“섣불리 나섰다간 큰일입니다.”

좌중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다.

“흥! 영웅이라고 하더니만 순 거짓말이었구나. 혈교도에게 겁이라도 먹은 게냐, 매화정검?”

수경이 코웃음을 치며 이죽거렸다.

이 자리에 참석한 이들은 대부분이 최소 삼십 대나 사십 대의 중년이었으며, 노인도 껴 있었다.

연령은 곧 그동안 쌓은 내공과 경험을 뜻하니, 정예 대부분이 나이가 많은 자들인 건 당연했다.

그러나 한 사람, 어울리지 않는 젊은이가 있었는데 바로 주서천이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주서천이 자리에 있는 것을 왈가왈부하지 않았다.

무림이 인정하는 천하백대고수이며, 또한 사기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정파의 영웅이기 때문이다.

“모욕적인 언사는 자제해 주십시오, 절매변검.”

구풍이 수경의 무례에 눈살을 찌푸렸다.

“사실을 말했을 뿐이랍니다, 십사검협.”

화산파와 항산파는 예로부터 사이가 좋지 않아서 그런지 , 이렇게 만났다 하면 서로 말다툼을 했다.

‘어휴, 골치야.’

중재자인 두종만 골치 아픈 상황이었다.

화산파와 항산파의 골은 생각 이상으로 깊다.

어떻게 할 수 있는 수준도 아니라서 더 문제였다.

오악검파가 지원을 온다고 해서 항산파만 아니기를 빌었는데, 보기 좋게 빗나갔다.

“매화정검의 말대로일세. 선발대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수비이지 공격이 아닐세. 그리고 물러나자는 것도 아니지 않나.”

은하노사가 도와주자 두종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혈교의 군세는 아직 오천 밖에 없소. 만약, 나머지 오천을 기다리기 위한 작전이라면 어떻게 할 생각이오?”

지운보가 반발에 나섰다.

“어쩌면, 지금 눈앞의 군세는 오합지졸 밖에 없을지 모르오. 만약 그런거라면 일망타진할 수 있는 천재일우가 아니겠소?”

“복마검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무엇보다, 지금 난주에 있는 부대는 그 수가 적으나, 모두 정예들이지 않습니까?”

수경이 지운보의 의견에 힘을 불어넣었다.

“아니오. 그것이야말로 혈마가 원하는 바입니다.”

주서천이 지운보와 수경의 의견을 전면 부정했다.

“함정이라도 상관없다. 어차피 혈교도 따위, 두려워할 것도 없다. 전부 박살 내면 그만이다.”

‘답이 없군.’

하마터면 ‘닥쳐, 이 생각 없는 놈아!’ 라고 외칠 뻔했다.

그 정도로 막무가내 심보가 따로 없었다.

공동파가 마도인들에게 적대심을 지니고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물불 안 가릴 줄은 몰랐다.

“진정하게나. 보아하니 매화정검에게 무언가 생각이 있는 것 같은데, 그걸 듣고 정해도 늦지 않네.”

은하노사가 지운보를 진정시키려는 듯 설득했다.

주서천은 은하노사에게 눈짓으로 감사의 인사를 보낸 다음, 좌중의 이목이 집중되자 입을 열었다.

“최근, 혈교의 군세에 관한 소문은 알고 계십니까?”

“혈교도와의 전장에서 목숨을 잃게 되면 그 자리에서 강시로 부활한다는 것 말이냐.”

구풍의 대답에 주서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겁먹은 사람들의 망상에 불과하겠지요.”

“그래, 강시란 건 그리 쉽게 만들 수 없는 것 아니지 않느냐.”

구풍이 탐탁지 않아 하면서도 수경의 지적에 동의했다.

“맞습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강시란 정(精)에서 신(神)이 사라지고, 잔류한 기(氣)를 통해 움직이는 시신을 말합니다.”

정이란 육체이다.

신이란 곧 마음과 정신, 아울러 의식이다.

죽음이란 건 곧 신을 잃는 것과 같다.

그러나 기는 수명을 다하지 않는 이상, 당분간 남아 있다.

다만, 육신에서 생명력이 사라지고 죽음만이 남은 탓에 그 형질이 사기(死氣)로 바뀌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 시신이 부패하면서 사기가 빠져나가 마지막엔 사라지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강시술은 이 잔류한 기를 빠져나가지 않도록 고정한 뒤, 조종해 움직이는 것이다.

참고로 죽은지 얼마 되지 않으면 의식의 찌꺼기, 사념이 잔류하게 되는데, 이것 역시 육신에 고정할 수 있다면 흔히들 말하는 ‘활강시’가 되어 생전의 무공까지 펼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 과정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강시술사가 시신을 따로 옮겨, 온갖 시술을 한 뒤에 제조해야 하지요. 그러면 강시는 움직일 수 있게 됩니다.”

‘서천이가 주술에 관해 언제 저렇게 공부했지?’

구풍이 주서천의 지식을 듣고 놀라워했다.

화산파도 일단은 도가 문파이나, 대부분의 공부는 검에 집중되어 있다.

강호에선 화산파를 보고 종종 ‘검에만 성욕을 느끼는 변태들.’ 이라고 부를 정도였다.

어쨌거나, 이렇다 보니 도사들임에도 도술에는 거의 문외한이었다.

“실력 있는 강시술사라 할지라도 빨라도 일주일, 혹은 이 주일 정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 과정을 순식간에 단축할 수 있는 것이 존재합니다.”

“그게 무엇인가?”

“법보, 사음장(死陰杖).”

법보!

생각지도 못한 물건의 등장에 주변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으음, 법보인가……”

법보란 건 신비로운 힘을 발휘하는 도구이다.

그러나 무림인, 정확히 말해선 자기 단련 공부의 극의인 무공을 중시하는 무인들은 별 관심이 없다.

애초에 법보란 것이 잘 발견되지 않는 희귀한 물건이다.

쓸려고 해도 소유한 자가 무척 적다.

무엇보다 손에 쥐고 있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니 차라리 무공을 수련하는 것이 낫다는 사람이 많았다.

있으면 좋은데, 없으면 그만이라는 느낌의 취급이었다.

“으으음! 사음장이란 말인가……!”

은하노사가 알고 있는 듯, 침음을 흘렸다.

“알고 있습니까?”

두종이 은하노사에게 물었다.

“전해져 내려오는 것에 의하면, 주변의 사기와 음기를 자유로이 다루게 할 수 있는 석장이라 들었네.”

“역시 알고 계시군요.”

주서천이 은하노사의 답에 박수를 쳤다.

암천회에게서 혈마에게 전해진 석장을 한 법보.

그게 바로 사음장이었다.

“정말로 생각지도 못했군. 확실히 그것이라면 그 자리에서 강시로 만드는 것도 가능하네.”

사음장은 사기가 빠져나가는 걸 방지해 주고, 육신에 고정한 다음 움직일 수 있도록 조정하는 과정을 생략한다.

즉석으로 강시화하는 게 가능하다는 의미다.

물론 누구나 쓸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사음장은 어지간한 강자가 아니라면 쓸 수 없다.

고도의 기감이나 조정 능력이 요구되는 데다가, 내기도 적지 않게 소모된다.

무공 혹은 주술의 경지도 높아야 했다.

물론, 그것들 전부 혈마에겐 전혀 상관없는 조건이었다.

“그렇다면, 네놈의 말대로라면 우리는 강시를 위한 먹이에 불과하니 싸우지 않는 편이 좋다는 건가?”

지운보가 불쾌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만, 비슷한 상황입니다. 최대한 싸우지 않는 편이 현명합니다.”

주서천은 돌리지 않고 직설적으로 답했다.

“아군은 싸우면 전력의 손실을 입습니다. 그러나 혈교는 다릅니다. 설사 많이 잃는다 해도, 우리를 통해 손실된 병력을 채우면 되니 결국 더하기 빼기이지요. 그러나 안 그래도 숫자가 적은 저희는 잃는 것밖에 없습니다.”

주서천이 지금 상황을 알기 쉽도록 설명했다.

“불행 중 다행인 건, 사음장으로 부활된 강시는 일반적인 강시에 비해 몸집이 단단하지 않다는 겁니다. 급조된 만큼 내구성이 조금 떨어지는 것이 다행이지요. 무리하지 않고 막는다면 걱정 없을 겁니다.”

“도저히 못 듣겠군!”

쾅!

지운보가 주먹으로 탁자 위를 내리 꽂자, 그대로 박살이 났다.

“혈교도가 코앞에 있는데 나서지 않고 수비하라는 것도 열불이 나는데, 되도록 싸우지 말라고?”

지운보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복마의 이름을 둔 사람으로서 그걸 용납할 것 같으냐, 이 겁쟁이 놈아! 부끄러운 줄 알아라!”

“이보게, 진정하게나.”

은하노사가 지운보를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정파의 영웅이 아니라, 정파의 겁쟁이였군! 그리고, 강시가 일반적인 것들보다 약하면 오합지졸이니 박살내면 그만이지 않나! 술사인 혈마를 죽여 버린 뒤, 그 사음장인가 뭔가 하는 법보를 빼앗으면 된다!”

“그게 가능하다면 이런 말도 안 했습니다. 그 군세를 돌파해 혈마를 죽이는 건 불가능합니다.”

“화산의 애송아, 아주 겁을 잔뜩 먹었구나. 부끄러운 줄 알아라! 됐소, 더 이상 대화를 나눌 것도 없소!”

지운보는 혐오 어린 눈으로 주서천을 노려본 뒤, 지휘 막사 바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 겁을 많이 먹었으면 숨든 도망치든 알아서 하시오! 나 복마검, 그리고 공동파가 혈마를 직접 쳐 죽여 주지!”

‘실패했다.’

역사가 과거와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혈마의 위험성을 잘 설명하며 어떻게든 진정시키고 설득해 보려 했으나 결국 무의미하게 끝났다.

주서천은 혀를 차면서 속으로 상황을 정리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라는 건, 정파가 과거처럼 약화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정혈대전의 시기는 원래 한참 뒤의 일이다.

칠검전쟁이 일 년간 지속된 후, 곧바로 정사대전이 벌어져 십 년 동안 끝없이 싸운다.

그 와중에 마도이세인 마교와 혈교는 혈근경이라는 대마두의 비급을 빼앗기 위한 마도전쟁을 벌였다.

십 년이나 계속된 전란 탓으로 무림 세력이 전체적으로 약해짐과 동시에 암천회가 나타났다.

이쯤 되면 무림 세력들이 정신 차리고 힘을 합해 암천회의 암수를 막으려 했겠지만, 현실은 암울했다.

암천회가 수십 년 동안 심어 둔 첩자의 방해 공작과 선동을 이용해 힘을 합할 수 없도록 했다.

그중에는 혈교에게 법보라거나 여러 것을 알게 모르게 지원을 해서 야욕을 끌어낸 것도 존재했다.

혈교는 힘을 손에 넣자마자 암천회에게 등을 떠밀려 무림을 침공했고, 그 위세는 보통이 아니었다.

당시 정파 무림은 정사대전으로 인하여 세력이 부족했던 탓에, 혈교의 침공을 막아내는 게 힘들었다.

참고로 이때도 마교나 혈교에 대한 원한이 깊었던 공동파가 눈이 돌아 무리하다 피해를 입었다.

전력의 손실은 곧 패배로 이어졌으며, 순식간에 군세를 불린 혈교의 무리는 악몽 그 자체였다.

‘그 끔찍한 광경을 다시 볼 순 없다.’

주서천이 치가 떨리는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동문의 사형제들이 강시로 부활하거나 혹은 괴이한 주술이나 사술로 아군을 괴롭혔다.

밤에 두 발을 뻗고 잔 적이 손에 꼽으며, 심할 땐 시체들 사이에서 식사하거나 밤을 지새워야만 했다.

‘공동파도 공동파지만, 무슨 말만 하면 눈을 부라리며 반대하는 항산파도 문제로구나.’

화산파, 종남파, 공동파, 항산파.

다행히도 종남파는 우호적이나, 공동파와 항산파는 전혀 아니었다.

우호는커녕 아군끼리 적대 중이다.

오늘 준비를 끝내고 당장 내일 혈교의 군세와 붙는다고 하는데, 그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항산파는 그렇다 쳐도 공동파의 정예들이 전멸이라도 한다면 향후 공동파가 어찌 움직일지는 뻔했다.

죽이지 못해 안달 난 마도인들에게 죽었다는 게 알려지면 복수에 미쳐 날뛸 것이 훤히 보였다.

만약 그리된다면 향후 암천회와의 싸움에도 문제가 되고, 무엇보다 혈교의 군세가 강해지리라.

‘내 팔자야……’

이튿날.

감숙의 정파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도시와는 조금 떨어진 고비 사막이었다.

높고 낮은 암석들이 주변에 널려 있는 게 특징이었다.

바위의 그늘이 없었다면 일찍이 익어서 싸우기도 전에 지쳐 있을지도 모른다.

드넓은 그늘 아래로 수백 명이 대기하고 있었고, 암석의 위에는 정찰 무사들이 주변을 슥 둘러봤다.

무림맹 소속 천 명, 감숙 이곳저곳에서 끌어모은 중소 문파가 천 명, 주요 문파가 천삼백 명이었다.

화산파, 종남파, 항산파가 각각 백 명씩 삼백 명이었고, 공동파 혼자만 무려 천이었다.

근거지가 감숙이란 걸 생각하면 이상하지 않다.

고수들 외에도 일반 제자들까지 동원했다.

합해서 삼천삼백여 명으로 혈교의 군세에 비해서 작았으나 그 누구도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정파는 무림의 세력 중에서 숫자로는 제일 적으나, 그 대신 무위가 평균적으로 높은 편이었다.

“아!”

약 오 장 높이의 암석 위에서 주변을 둘러보던 정찰 무사의 입에서 놀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혈교의 군세가 보입니다!”

그의 목소리를 시작으로 휴식 중이던 무사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들의 눈이 전부 가늘어졌다.

우르르르!

지평선 너머로 먼지구름을 일으키는 군세가 보였다.

아직 싸우기도 전인데 달리고 있었다.

오천이나 되는 병력이 동시에 움직이다 보니 내는 소리나 먼지가 보통이 아니었다.

사막 위를 달리다 보니 발걸음에서 나는 먼지는 폭풍이 되었다.

“제물이 보인다!”

“천하를 피로 물들여라!”

“황하를 무림인들의 피로 가득 채우자!”

혈교도는 두려움은커녕 마치 일부러 전장을 찾아다니는 것처럼, 눈을 번들거리면서 빠르게 다가왔다.

그 기세가 몹시 대단하여 중소 문파의 하수들은 주춤하면서 다가가기를 꺼려 했다.

“흥! 순 겁쟁이밖에 없구나!”

지운보가 콧방귀를 꼈다.

“복마의 이름을 천하에 알리도록 하자!”

와아!

공동파의 제자들이 최전선에 서서 용맹을 뽐냈다.

두두두두.

오천 대 삼천삼백.

정혈대전의 첫 번째 격돌이 일어났다.

모래바람 사이를 뚫고 온 혈교의 군세는 암석 지대에 들어선 뒤, 돌조각을 튀기면서 정파와 충돌했다.

“크아아악!”

“아악!”

“죽어라!”

채채채챙!

검이 피부와 살을 가르고 피를 흩뿌린다.

금속끼리 격렬히 부딪치면서 불꽃이 튀고 마찰음을 냈다.

정파인과 마도인이 서로 뒤섞여 살의와 증오로 가득한 목소리를 내질렀다.

“탕마검진(蕩魔劍陳)을 펼쳐라!”

타인의 입장에서 지운보의 성격은 몹시 피곤하다.

마도인이 눈앞에 있다면 물불 안 가리는 데다가, 모욕적인 언사도 서슴지 않는다.

구파일방의 권위를 악용하며 , 권세가 약한 자를 얕보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러나 그 실력은 거짓이 아니라 진짜다.

공동파에서 손꼽히는 실력자이며 천하백대고수에도 이름을 올렸다.

개개인 무력뿐만 아니라 지휘도 능숙하여, 문파 내에서도 그를 따르는 자가 수두룩했다.

공동파의 제자들은 마치 한마음이라도 된 것처럼 지운보의 명령에 맞춰서 혈교에 대항했다.

“하아앗!”

공동파는 혈교도를 당장이라도 찢어 죽일 기세로 맹렬하게 몰아붙이는 듯했지만, 실상은 좀 달랐다.

수련할수록 이성이 마비되고 포악한 본능을 끄집어내는 마공이란 건, 대부분 공격에 집중되어 있다.

머리가 맛이 가버려서 목숨을 상정 하에 둔 것도 아닌지라 대부분이 동귀어진의 수법이었다.

그러나 공동파는 목숨이 아까운 줄은 알기에, 최대한 목숨을 보존하는 수비의 방향으로 발달했다.

체력과 지구력을 최소화하고, 막거나 피하는 것 위주로 싸우다가 빈틈을 노려서 공격했다.

“복마검대!”

공동파의 정예.

그것도 마도인을 상대로 특화된 정예 부대였다.

그숫자가 정확히 백 명이었다.

“복마삼십육검(伏魔三十六劍)의 힘을 보여줘라!”

마를 굴복시키는 삼십육 개의 검초식이 펼쳐졌다.

혈교도는 공동의 절기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아악!”

“크하악!”

“컥!”

공동파와 마도와의 악연의 첫 시작은 별거 없었다.

복마라는 이름의 시작은 본래 정말 마를 굴복시키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저 붙은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후의 세대가 ‘마를 굴복시켜야 한다.’ 라는 이상한 해석을 내놓았다.

이후 강호행에 나서면 복마라는 이름에 걸맞으려고 남들과 앞다퉈 마두를 토벌하는 데 앞장섰다.

정파인이나 일반 백성들은 그런 공동파의 활약에 칭찬을 보냈고, 복마라는 건 공동파를 대표하는 이름이 됐다.

문제는, 힘을 자랑하기 좋아하는 마도인들이 제 이름을 높이기 위해 공동파를 노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시작은 경미하였으나, 그 끝은 심각했다.

이름만 높이기 위한 싸움은 시간이 흘러 복수라는 이름의 원한이 생기고,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활강시다!”

한참을 싸우던 와중이었다.

누군가의 비명이 터지면서, 혈교도 사이에서 눈에 띄는 강시가 나타났다.

일반적인 강시들처럼 피부색은 창백한데, 움직임이 조금 달랐다.

뻣뻣하지 않고 몹시 자유로웠다.

그 외에도 검기까지 형성하며 무공 초식을 펼쳤는데, 보아하니 활강시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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