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七章 (128/254)

말이 모래 구름을 일으키며 달리다 멈췄다.

“그, 급보! 급보입니……다…… 커흑!”

전령의 몸은 검상으로 가득했다.

피로 목욕을 한 듯, 온몸이 붉게 칠해졌다.

“무슨 일이냐!”

월아천문주, 유효풍이 의원과 함께 급히 달려왔다.

의원은 전령을 보자마자 가망이 없다는 듯, 머리를 좌우로 절레절레 흔들었다.

유효풍은 의원의 반응을 확인한 다음, 전령을 끌어안아 진기를 불어넣고 수통을 꺼내 물을 먹였다.

“정신 차려라! 네 임무가 무엇인지 떠올려라! 무슨 일이 있었느냐!”

“혀, 혈교…… 쿨럭……!”

전령이 눈을 부릅뜨며 피를 울컥 토했다.

“이천여 명이…… 옥문관…… 을…… 넘었……”

그다음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그러나 어떤 걸 전하려고 했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수고했다.”

유효풍이 전령의 눈을 감겨 주곤 침음을 흘렸다.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반 정도가 옥문관을 넘었다니……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옥문관은 중원과 새외의 국경선이다.

그 관리는 당연히 무림이 아닌, 관부가 맡는다.

그렇다 보니 무림인은 물론이고 제정신이라곤 한 명도 없는 광인 집단, 마도이세도 함부로 넘진 못한다.

그래서 침공을 하려면 돌아가서 밀입국을 한다거나, 혹은 병력을 세세하게 쪼개 조금씩 넘을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하면 당연히 시간이 상당히 소모된다.

이천이나 되는 숫자만 해도 일주일 이상이 걸리는데, 관부의 경우 상부의 회의, 승낙이 필요해서였다.

혹시라도 무림인이 아니라, 국가를 침공할 수 있기에 아무리 무림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 해도 검토가 필요했다.

병력이 오천이나 되면 더더욱 당연하다.

즉, 아무리 짧게 잡아도 보름은 걸리는 일이 고작 일주일로 줄었으니 이상하게 여기는 게 당연했다.

‘큰일이다.’

유효풍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정파 무림은 이계 막 병력을 모아 파견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빨라도 명사산에 오려면 시간이 걸린다.

만약, 예상보다 빨리 혈교의 군세가 침략해 온다면 이를 막을 방법은 거의 전무했다.

“공동파에게 급보로 병력을 요청해라! 어서!”

감숙은 변방인 만큼 문파가 그다지 많지 않다.

불행 중 다행 인 건 구파일방 중 공동파가 있다는 것이었다.

“곤륜에서는 어떤 답장이 왔지?”

명사산의 바로 아래가 청해다.

그리고 청해에는 곤륜파가 있다.

그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곤륜파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마교를 견제하느라 도울 수 없답니다!”

“제기랄! 섬서의 화산파와 종남파에라도 연락해!”

유효풍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섬서, 화산파.

주서천의 처우로 한참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혈교의 준동에 관한 소식이 갑작스레 찾아왔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자하신공의 안건은 중지됐다.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무림맹의 동원령에 비하면 우선 사항이 낮을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화산은 감숙을 지척에 두고 있으니, 여타 정파들에 비해서 상황이 급박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화산파는 부랴부랴 전쟁의 준비에 들어갔다.

외부에 나가 있는 제자들을 불러들였다.

그리고 준비를 하던 와중이었다.

얼마 전, 감숙의 난주 지부에서 다급하게 지원을 요청해 왔다.

“혈교의 병력이 벌써 반이나 넘어왔다고?”

“도대체 무슨 사술을 부린 거지?”

화산파 역시 사정을 듣고 적잖게 당황했다.

혈교의 침공은 이상하지 않다.

그러나 병력 이동이 상상 이상으로 빨라 당황했다.

“아무래도 관리에게 뇌물이라도 넣은 것 같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한두 명도 아니고 수천이냐 되는 숫자인데 그게 가능한가?”

영진이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흥! 아니면 혈교도 놈들이 사술이라도 부린 게 분명하오!”

이유가 어떻건 간에 서둘러야 할 이유가 늘었다.

“아무래도 매화검수가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심옥련이 고심한 끝에 의견을 제시했다.

다른 화산오장로도 동의했다.

화산의 정예이자 최고수 부대이기도 한 매화검수를 움직이려면 그 수장인 위지결의 승낙이 필요하다.

그러나 위지결은 예검수를 검수로 길러 내기 위해 폐관 수련 중이다.

그 기한이 아직 끝나지 않아 불러선 아니 되지만, 사안이 사안인지라 어쩔 수 없었다.

‘암천회!’

주서천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전생의 기억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과거, 전란의 시대에도 혈교는 암천회에 의해 움직였다.

암천회는 혈교에 참입하여 그들에게 주술에 도움이 되는 법보나 마공 등을 선사하며 귓가에 속삭였다.

“이 힘만 있다면 너희가 원하는 것을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 그들을 제물로 삼아 혈교 천하를 열어라.”

혈교는 마공이건 주술이건 간에 사람의 피나 살, 정기 등의 대가가 필수로 요구된다.

그 양이 워낙 많아 친자식을 제물로 삼는 등 천륜을 무시한 일도 버젓이 일어났다.

이렇다 보니 틈만 나면 중원을 노렸고, 암천회가 도움을 주며 등을 밀어준 덕에 침공할 수 있었다.

원래라면 한참 뒤에 일어날 일이지만, 미래의 변화로 인해 그 시기가 앞당겨진 모양이었다.

‘남만에서 그 지랄 떤 게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혈교를 움직여? 이 지긋지긋한 놈들!’

주서천이 치가 떨리는지 속으로 욕설을 날렸다.

‘조금만 쉬면 안 되냐? 어떻게 일 년도 되지 않아 이런 일들의 준비를 끝내고 실행하냐.’

엄밀히 말하자면 단기간 동안 전부 준비한 건 아니다.

공작 자체는 자신이 태어나기 전부터 했다.

다만, 전생과는 달리 이 모든 일들이 연달아 이어지니 짜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어휴, 내 팔자야!”

그동안 게으름 따위는 피우지 않았다.

차후에 일어날 일들을 막기 위해서 바쁘게 움직였다.

자만 따위는 하지 않았다.

항상 경각심을 세우고 발에 불이 나도록 뛰었다.

사도천이나 마도이세가 적이었다면 진작 끝났을 일이다.

암천회가 없었다면 말이다.

“천기야, 천기야. 내 눈앞에만 나타나다오. 네 뺨이 남아나지 않도록 때려 주마!”

감숙의 공동파, 섬서의 화산파, 종남파.

구파일방 중 삼파는 월아천문의 다급한 요청에, 일단 급한 대로 각자 소수 정예들을 보냈다.

다들 최대한 빨리 움직였으나 안타깝게도 명사산이 워낙 변방에 있는 탓에 며칠 이상이 걸렸다.

그리고 그 시간은 혈교가 날뛰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명사산 인근.

“아아악!”

초승달 모양새를 한 신비의 샘, 월아천.

사막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초목들이 어우러진 풍경이 사람의 비명과 피로 물들었다.

나름대로 중규모 정도 되는 월아천문이었으나, 혈교도의 습격에는 꼼짝도 하지 못했다.

주변의 중소 문파와 난주 지부에서 보내온 무림맹 무사들이 함께했으나, 혈교도의 숫자가 많았다.

“크하하하!”

“죽엇!”

“본 교의 제물이 되어라!”

불타오르는 핏빛 안광, 입가에 맺힌 광기 어린 웃음은 보는 사람을 소름 끼치게 했다.

옥문관을 먼저 넘어온 선발대, 이천의 혈교도는 대기하고 있던 정파인을 보자마자 덤벼들었다.

아직 싸울 준비를 다 끝내지 못한 이들은 당황하여 후퇴, 명사산 앞까지 퇴보하였다.

“비켜라, 이 미친놈들아!”

유효풍이 사자후를 터뜨리며 전방에서 활약했다.

삼십오 근 정도의 무게가 나가는 언월도를 제 손처럼 자유롭게 휘둘렀는데, 위력이 보통이 아니었다.

서걱.

“크아악!”

언월도가 수평으로 초승달을 그려내면, 그 앞에 있던 혈교도의 몸이 둘로 갈라지며 피를 흩뿌렸다.

“으하하하!”

“죽어랏!”

웬만한 이들이라면 질겁했겠지만, 혈교도는 달랐다.

그들은 피를 보면 도리어 흥분에 찬 목소리를 냈다.

“미친놈들!”

유효풍이 질린 듯이 소리치며 혈교도를 막아 냈다.

“겁먹기는커녕, 어째 공세가 더더욱……!”

그 외에도 정파인들의 겁먹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죽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덤벼오는 건 상상 이상으로 무서웠으며, 절로 뒷걸음질 치게 만들었다.

“물러나지 마! 정신 차려라!”

유효풍이 소리를 버럭버럭 지르며 대항했다.

“이제 곧 지원이 올 것이니, 조금만 더 버텨 내라!”

사기에 힘을 불어 넣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

그러냐 그 거짓말이 무색하게, 유효풍도 흠칫 놀랄 광경이 눈앞에서 펼쳐졌다.

“이게 대체 뭔……!”

그어어어.

삼도천에서 흘러나오는 사자(死者)의 목소리.

그리고 그 울음소리는 이승 위로 튀어나왔다.

몸이 둘로 분리된 혈교도가 시작이었다.

상체만 남은 몸뚱어리를 이끌고 기어 오며, 근처에 있는 무림인의 다리를 붙잡고 걸어 넘어졌다.

“으악!”

“이, 이게 뭐야!”

콰드득.

눈에 생기라곤 하나도 없었다.

동공은 잿빛으로 물들었고, 흰자위에 녹아들었다.

어째서인지 움직이지 않아야 할 죽은 자가, 몸을 움직이면서 산 자의 몸뚱어리를 물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이윽고 주변에서 염불 소리가 들렸다.

소림사의 지원이 온 것이라면 좋겠지만, 겁먹은 누군가가 무심코 외운염불이었다.

애석하게도 그 염불은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떠한 도움도 되지 못했다.

“강시……?”

유효풍이 넋 나간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니, 정말로 강시인가?’

어딘가 모르게 뻣뻣하고, 느릿느릿하다.

움직임이 굼뜬 것도 그렇고, 시체가 움직이는 걸 보면 강시인 것 같으면서도 알고 있는 것과 달랐다.

‘아무런 사전 준비도 없이 곧바로 일어나는 게, 가능한 일인가?’

강시란 의외로 시간과 노력 등이 상당히 드는 주술이다.

설사 그게 최하급의 사강시라 해도 마찬가지다.

유효풍은 강시에 대해서 자세히 아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죽은 후 곧바로 일어날 수 없다는 건 안다.

“흐음, 묘하게 느릿느릿하다고 생각했네만 천하백대고수가 막고 있었나.”

“……”

유효풍이 홈칫 놀라며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이, 이 사기(死氣)란 무엇이라 말인가!’

강시로 추정되는 것들에게서도 요사스러운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러나 지금 느껴지는 것은 수준이 달랐다.

무언가가 등줄기를 슥 훑고 지나갔다.

등골이 오싹해지고 식은땀이 폭포 쏟아지듯 흘러내렸다.

입술은 바싹바싹 마르고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다.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떨려 오는 눈동자에 비춰지고 있는 건, 육 척가량의 석장(錫杖)을 든 괴인이었다.

“과연 , 중원 무림. 새외에선 쓸 만한 시신을 찾으려면 꽤나 고생해야 했는데 여기엔 아주 넘쳐 나는구나.”

“네, 네놈은 설마……”

유효풍은 하마터 면 손에 쥔 언월도를 놓칠 뻔했다.

괴인은 생전 본 적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낯빛은 하얗다 못해 창백했으며, 피부 곳곳의 살점과 가죽이 뜯겨 있었다.

오른쪽 입술부터 시작해 왼쪽 뺨을 전체로 가죽이 찢겨 있어, 그 안의 살점이 훤히 보였다.

한데 살점도 군데군데 없어 뼈가 드러났다.

깊게 파인 눈두덩이의 경우도 정상이 아니었다.

마치 눈알이 파인 것처럼 그 내부가 텅 빈 시커먼 공간이었고, 검붉은 안광이 눈동자를 대신했다.

등 뒤에는 한 사람이 들어갈 만한 핏빛으로 칠한 관을 메고 있어, 결코 잊을 수 없는 인상을 지녔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무림, 아니 천하를 뒤져도 한 명 밖에 없다.

“혈마!”

상천십좌(上天十座) 혈교주(血敎主). 혈마(血魔).

‘마, 말도 안 돼!’

딱딱딱!

누군가가 턱뼈를 부딪치면서 덜덜 떨었다.

“혀, 혈마?”

상천십좌라는 이름은 무겁다.

무림인들의 정점, 사람의 한계를 넘어선 열 명의 힘은 절대적이었다.

일당백 아니 일당천 이상의 힘을 낸다.

경지를 도저히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다.

“도, 도망쳐!”

“저런 걸 어떻게 이기라는 거야!”

결국, 안 그래도 사기가 바닥까지 떨어진 정파의 무리 중에서 도주하는 이들이 속속 나타났다.

눈앞의 비현실적인 광경도 무서운데 절대고수인 혈마까지 등장했다.

설사 천하백대고수, 유효풍이 이끌고 있다곤 해도 전력 차가 심하게 나니 버텨낼 재간이 없다.

“이곳은 내가 맡겠다! 다들 도망쳐라!”

유효풍은 지휘관으로서 올바른 판단을 내렸다.

혈마는 어떻게 당해 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고, 수적인 차이로도 아군이 심히 밀리고 있는 와중이었다.

원래는 지원이 오기 전에 버텨내는 것이었으나, 혈마가 모습을 드러낸 이상 그건 무리다.

“도망쳐!”

어찌할지 몰라 주춤거리던 정파인들 역시, 유효풍의 명령을 듣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등을 돌렸다.

“문주님!”

“도와 드리겠습니다!”

중소 문파나 무림맹 소속 무사들은 대부분이 도망쳤다.

그러나 월아천문의 문도들은 도망치지 않았다.

“뭐, 뭐하는 게냐!”

유효풍이 소리를 버럭 지르며 화를 냈으나, 그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저희의 고향은 이곳, 월아천입니다.”

“고향을 두고 어딜 도망간다는 말입니까?”

“비겁자가 되기는 싫습니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면 더 좋지 않습니까.”

비록 피는 이어지지 않았으나, 그 이상의 연으로 이어진 문도들이었다.

그들은 허세라도 부리듯, 입꼬리를 올려 씩 웃었다.

그 웃음을 보니 가슴이 뭉클거렸다.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다!’

유효풍이 입술을 질끈 깨물며 정신을 차렸다.

떨려 오던 가슴과 다리는 멈추었고, 그 대신 가슴 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치솟아 올랐다.

“월아천문의 자랑스러운 영웅들이여! 들어라!”

유효풍이 언월도를 위로 세웠다.

초승달처럼 휘어진 칼날 위로 푸르스름한 강기가 주변을 밝혔다.

“비록 우리들이 여기에서 숨을 거둔다 해도, 그 이름은 명예롭게 빛날 것이다! 우린 무의미하지 않다!”

“와아아아아!”

“가자아!”

유효풍이 환하게 웃었다.

월아천문도는 눈앞에 있는 사람을 죽였다.

도망치는 적이 있다면 그 등 뒤를 언월도로 두 동강 냈다.

적이 앞서 간다면, 그들이 도망친 정파인들을 추격하지 못하도록 집요하게 따라가 죽였다.

때로는 서로의 등을 맞대고, 적을 죽였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하게 언월도를 휘둘렀다.

“으아아악!”

“유효풍이 미쳤다!”

“월아천문이 정파를 배신했다!”

“다, 단체로 미쳤어! 아, 안 돼! 살려…… 끄아악!”

시산혈해( 尸山血海).

시체가 산처럼 쌓이고, 피가 바다처럼 흘렀다.

유효풍은 눈앞에 광경을 보고 안심했다.

적어도, 월아천문의 희생은 무의미하지 않았다고.

그렇게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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