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六章 (127/254)

며칠 뒤, 화산파 수뇌는 발칵 뒤집혔다.

“아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요?”

조무양이 목소리를 높였다.

“으음.”

학송도 신음을 흘리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영진과 심옥련의 반용도 별반 다를 것 없었다.

일대신공, 자하신공의 수련자가 등장했다.

소식 자체는 나쁘지 않다. 도리어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계승자’.

현 장문인인 검선 우일문의 제자일 경우에 한한다.

그게 아닐 경우, 상황은 생각보다 복잡해진다.

지금이 그랬다.

“장문인께선 그 아이를 언제 제자로 두신 겁니까?”

공사에는 누구보다 확실한 심옥련이 따지듯 물었다.

“제자로 둔 게 아니요.”

“죄송하오나, 장문인. 이 장로는 그게 무슨 말인지 영 이해가 안 가는 구려.”

나머지 장로들이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우일문은 장로들이 최대한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했다.

그러나 현경에 대해서 알고 있는 우일문과는 다르게, 화산오장로들은 그리 쉽게 수긍하지 못했다.

“설사 그 말이 맞는다고 해도, 다음이 문제입니다. 주서천 그 아이를 차기 장문인으로 생각해야 합니까?”

심옥련이 현재 최대 문제점을 지적했다.

장문인의 자격 요건 중에서 첫 번째로 요구되는 것이 자하신공이다.

다르게 말하면, 자하신공의 수련자가 곧 차기 장문인으로 추대된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주서천은 차기 화산파의 장문인인가?

사람됨은 문제가 없다.

무공의 자질 여부야 두말할 것도 없고, 인성이나 평가도 세간에서 무척 좋았다.

게다가 화산파를 당대 전성기로 끌어올린 장본인이 아닌가.

추대받기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하지만 다른 문제가 정말로 컸다.

“장문인께선 제자를 두시지 않았습니까.”

그렇다. 그게 문제였다.

자하신공은 난해하다.

십수 년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그래서 진작 제자를 들여 열심히 가르쳤다.

차기에 장문인으로 추대될 제자가 기존에 있는 상황이었고, 또 그 말을 번복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정파에서 관례라는 건 생각 이상으로 중요하다.

이 약속을 깨게 된다면 훗날 좋지 않은 상황이 벌어져 이 일을 들먹이면서 잘못될지도 몰랐다.

“일단, 후계의 문제는 걱정할 필요없을 거요. 주서천, 그 아이가 장문인의 자리에는 어떠한 욕심도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소.”

“그게 문제가 아니란 걸 장문인께서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설사 그 아이가 장문인의 자리에 욕심이 없다 할지라도, 장문제자인 정휘련은 어떻게 해야 한답니까?”

심옥련이 날카롭게 지적했다.

정휘련. 우일문이 늦게 들인 제자다.

연령적으로는 사대제자. 그중에서도 막내인데, 현 장문인의 제자이다 보니 항렬은 삼대제자였다.

“주서천은 뛰어나도 너무 뛰어납니다. 무력만으로도 본 문의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데다가, 수많은 이들의 존경까지 받는 와중에 자하신공까지 전수받았다는 것이 알려진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심 장로의 말대로, 그 아이가 중압감을 못 이겨 낼 가능성이 크다오.”

학송이 심옥련의 말을 보충했다.

전수를 받지 않고 스스로 깨우쳤다고 해도, 워낙 터무니없는 말이라 안 믿을 게 뻔했다.

사람들은 분명 ‘아, 주서천이 너무 뛰어나다 보니 검선이 무공을 전수하고 장문인으로 만드려나 보다.’ 라고 생각할 것이 분명한 일이었다.

우일문도 이를 모르는 건 아니다.

그렇기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그 낯빛은 몹시 어두웠다.

“정휘련은 어립니다. 질투라는 감정을 조절하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나이 다 먹은 노인네도 어찌하지 못하는 감정인데, 그런 어린아이가 해낼 리가 있나.”

영진도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 중얼거렸다.

“너무 위험합니다.”

명수악이 잔뜩 날이 선 목소리로 경고했다.

“전부 맞는 말이오.”

우일문이 축 늘어진 목소리로 말했다.

“위험합니다.”

심옥련이 눈을 매섭게 뜬 채로 이야기를 계속했다.

“주서천, 그 아이는 교우 관계가 좁지만 사대제자들이 알게 모르게 그를 동경하여 따르고 있습니다.”

정파의 영웅이다.

처음엔 질투 어린 목소리도 많았지만, 그 실적이 워낙 대단하다 보니 존경의 대상이 됐다.

“앞으로 화산을 이끌 젊은이들이 차기 장문인이 아닌 주서천을 따르게 되면 그건 큰 문제입니다. 최악, 저희의 사후 화산이 둘로 갈라질 수도 있지요.”

“서천이는 장문인에 뜻이 없으니……”

“뜻이 없던 말건 상관없습니다. 주변의 추대 문제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휘련이 어찌 될 것 같습니까?”

정통성이 인정되는 후계자, 정휘련.

본인 입장에선 주서천은 눈엣가시 이상이었다.

“장문인. 혹시 제자의 앞에서 주서천에 대해 이야기한 적 있습니까?”

“말이야 꺼내 본 적 있소만……”

우일문이 말꼬리를 흐리며 눈을 감았다.

“……이름을 듣자마자 몸을 부들부들 떨더군.”

“허어!”

화산오장로들이 혀를 차며 머리를 숙였다.

‘이름만 들어도 치가 다 떨릴 정도란 말인가?’

정휘련이 주서천을 보고 죽이겠다면 어쩌지?’

‘큰일이야. 화산의 미래가 걱정이로다!’

앞으로의 미래가 걱정됐다.

“정휘련이 주서천을 만나는 걸 저지해야 합니다.”

주서천은 얼음처럼 굳었다.

제일 만나고 싶지 않은 인물이 앞에 서 있었다.

‘정휘련 장문인……!’

그에 대한 건 잘 모른다.

차기 장문인, 정휘련.

그러나 중년이 되기도 전에 전란에 휘말려 안타깝게 목숨을 잃게 된다.

알고 있는 건 동년배의 남자라는 것 정도다.

“주서천……”

정휘련이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만난 건 우연에 불과했다.

상궁 회의의 결과를 기다리면서 몸이라도 풀어 볼 겸 연무장에 나왔다.

그러나 예상하지 못한 선객이 있었고, 어딘가 모르게 낯익은 얼굴이다 싶더니만 정휘련이란 걸 깨달았다.

전생에서 몇 번 본 적이 있어 떠올릴 수 있었다.

‘망했다. 분명 날 싫어할 거다.’

주서천도 정휘련과 얽혀 있는 복잡한 문제를 모르는 건 아니다.

다만 그동안 암천회라거나 여러 가지 일이 있다 보니 여태껏 밀어 두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문제를 깜빡 잊고 있었다가, 자하신공의 일로 떠올리게 되면서 어쩌나 하고 고민했다.

“주서처어어언!”

주서천이 바짝 긴장했다.

자리를 피할까 싶어 몸을 돌리려고 했다.

그러나 그 순간.

“사혀어엉!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정휘련이 구십 도로 허리를 숙였다.

주서천이 멍한 표정을 지었고, 정휘련이 허리를 곧게 세우면서 눈을 반짝이면서 감탄했다.

“캬아! 진짜 실물이잖아!”

그는 감동한 듯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곤 갑작스레 입고 있는 도복 상의를 벗어 보였다.

“여기에 검으로 성함 좀 써 주셨으면 합니다!”

매화정검, 주서천.

화산파의 제자라면 누구나 다 아는 이름이다.

예닐곱 살조차도 무공의 초식은 몰라도 주서천은 안다.

장문제자인 정휘련도 마찬가지였다.

어릴 적부터 주서천의 이름을 질릴 정도로 들으며 자라 왔다.

정파의 영웅!

무림에서 그의 활약을 모르는 자는 없다.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자기 일처럼 기뻐하기도 했다.

정휘련은 보통의 소년, 소녀들처럼 영웅을 선망하고, 동경하게 됐다.

존경하는 사람은 대스승, 우일문.

동경의 대상은 영웅, 주서천.

그 이름을 들으면 가슴이 떨려 오고, 콧대가 세워지며, 누군가 욕하면 괜스레 짜증과 화가 솟구쳤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그 동경의 대상을 직접 보니 상상 이상으로 감동이었다.

“흑흑, 감사합니다. 가보로 간직하겠습니다. 사형.”

정휘련이 주서천이라는 석 자가 새겨진 상의를 소중하게 안으며 감동한 듯 눈물을 찔끔 흘렸다.

“아, 아니……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보다, 전 사형이 아니라, 사질입니다.”

주서천이 적지 않게 당혹스러워했다.

입문 시기가 늦다고는 하지만, 장문인의 제자인 만큼 항렬로는 삼대제자라 사숙에 속한다.

“규율 탓에 사형을 사형이라 부르지 못하다니……!”

정휘련이 진심으로 안타까운 듯 슬퍼했다.

‘정휘련 장문인이 이런 사람이었나?’

어딘가 모르게 머리 한구석이 고장난 것 같았다.

“장문인이 될 사람이 모범이 되지 않으면 문제지요. 알겠습니다. 고통스럽지만 사질로 부르겠습니다.”

정휘련이 결심한 듯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나 주서천 사질은 제 마음속의 영원한 사형으로 여길 테니, 이를 잊지 말아 주십시오.”

‘진심인가?’

혹시나 무슨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됐을 정도로, 정휘련의 행동은 특이했다.

“주서천 사질, 만나 뵙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악수 좀 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사숙, 말을 편히 해 주십시오.”

주서천이 곤란한 듯이 말하면서도 손을 건냈다.

정휘련은 주서천의 손을 꽈악 붙잡곤, 위아래로 격렬하게 흔들면서 거절했다.

“그것만큼은 봐주십시오. 사질께선 존경을 받아야 할 사람입니다. 그보다 손을 잡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평생 동안 안 씻을게요.”

‘황당하군.’

이 상황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혹시 정휘련이 ‘방심하게 해 두고, 나중을 기약해 죽여 버리겠다.’ 라는 의도는 아닌지 등의 의심을 하게 될 정도였다.

“저, 저, 저! 호, 혹시! 커흐흠, 괜찮다면 한 수 배울 수 있겠습니까? 영웅이신 주서천 사질께서 바쁜 건 알고 있지만, 제 소원 중 하나입니다!”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만……”

“야호!”

정휘련이 팔을 힘껏 들며 만세 삼창을 불렀다.

“그러면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뭣이?”

상궁 인근의 연무장에서 문제의 사람이 검을 부딪치며 비무 중이라는 소식이 장로들의 귀에 알려졌다.

혹시 사달이 일어나는 건 아닐까 싶어, 화산오장로들은 걱정 어린 얼굴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필이면 절대로 만나게 하지 말아야 할 두 사람이 비무를 하고 있을 줄이야 상상도 하지 못했다.

좀 더 조심했어야 한다며 후회하면서도, 최악의 상황을 방지하려고 발걸음에 속도를 박찼다.

그러나 연무장에 도착한 화산의 수뇌들이 본 건 살벌한 비무가 아니라 환하게 웃는 정휘련이었다.

“이야, 완전히 졌습니다. 역시 대단하십니다. 정말 잘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영광이었습니다!”

정휘련이 포권을 취하며 감사 인사를 했다.

“그, 그렇게까지 감사하게 여길 필요는 없습니다.”

주서천 본인도 어안이 벙벙한지 말까지 더듬었다.

정휘련의 검술은 차기 장문인답게 보통이 아니었다.

애초에 자하신공을 전수받으려면 어지간한 재능으로는 부족하다.

사실상, 내외의 평가에선 주서천을 제외하곤 천재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에 속했다.

아직 열다섯 살밖에 되지 않았거늘, 이십사수매화검법의 반절을 펼칠 수 있다는 게 그 증거였다.

주서천이야 전생이라는 기억과 깨달음이 있어서 손쉽게 자기 것으로 만들었지만. 정휘련은 순수한 재능이었다.

듣자 하니 노력도 성실히 하는 듯했다.

직접 검을 맞대 보니 어떤지 알았다.

이대로만 크면 서른 즈음에는 화경에 오를지 모른다.

내공이야 사문에서 지원이 나올 테니 걱정할 것 없었다.

‘끄응, 이런 사람이 적의가 아닌 호의를 주는 건 고맙긴 한데…… 마음이 영 편치 않군.’

분명 좋은 일이다.

화산파 내부에서 괜한 경계심을 받는 것보다는 나았다.

장문제자라면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일이 워낙 잘 풀리다 보니 마음의 찝찝함을 버릴 수가 없었다.

정말 아무런 의도가 없는지 고민하려던 때 정휘련은 방청객이 온 걸 보곤 급히 포권으로 인사했다.

“장문제자, 정휘련이 사부님과 화산의 어르신들을 뵙습니다.”

“사대제자, 주서천이 화산의 어르신들을 뵙습니다.”

주서천도 잠시 간의 상념을 옆으로 치우고 인사했다.

“흠흠, 괜히 방해한 건 아닌가 싶구나.”

우일문이 멋찍은 듯이 긴 수염을 쓸며 답했다.

“아닙니다. 이제 막 끝난 참이었습니다. 주서천 사질에게 몇 수 배운 참이었습니다. 이를 참조하여 제자, 더 정진하도록 하겠습니다.”

정휘련이 자랑스럽다는 듯이 가슴을 쫙 펴고 답했다.

“으응?”

학송이 상황이 이해가 안 가는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 외의 장로들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다만 한 사람, 우일문만이 달랐다.

“허허허!”

우일문이 유쾌하듯이 웃어 댔다.

무척이나 기분 좋은 목소리였다.

“……?”

정휘련이 이해가 안 가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주변인들의 반응도 매한가지였다.

우일문이 무슨 이유로 저리 웃는지 궁금해했다.

우일문은 주변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실컷 웃다가, 어느 순간 뚝 끊곤 정휘련을 불렀다.

“휘련아.”

“예, 사부님.”

“매화정검, 주서천에 대해서 어찌 생각하느냐?”

“자, 장문인.”

학송이 눈에 띄게 당황했다.

장본인인 주서천도 적잖게 당황하는 눈치였다.

“영웅이며, 동경의 대상입니다! 또한, 존경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정휘련은 주변의 반응이 뭐라 하건 신경 쓰지 않고, 눈을 반짝이면서 즉답했다.

“어릴 적에 기연이 닿아 나이에 맞지 않은 내공을 손에 넣었습니다만, 초식을 다루는 데 미숙하여 내화외빈이라는 조롱이 담긴 별호로 불렸습니다.”

그리운 별호였다.

“하나 주변의 모욕 어린 말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끝없이 노력하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뒤늦게 재능을 개화하고, 천재가 되었음에도 자랑하지 않는 겸손함의 미덕을 지녔으며 계속해서 무학만을 추구하였습니다. 강호에 출두했을 때는 협과 의를……”

정휘련은 기다렸다는 듯이 주서천의 과거를 줄줄이 읊었다.

그 내용이 자세해 소름이 다 끼칠 정도였다.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았으나, 주서천 사질은 화산의 자랑입니다. 한 시대를 함께해 영광입니다.”

그의 웃음은 순수한 어린아이처럼 밝았다.

‘장문제자가 주서천을 이리 생각하고 있을 줄이야.’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어린 시절의 잠깐의 동경일 수도 있다.’

화산오장로는 하나같이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과연, 정말로 대단하구나.”

“그렇습니다! 아, 그렇다고 해도 제일 존경하고 있는 분은 사부님입니다! 헤헤!”

혹시라도 스승의 기분이 상할까 봐 눈치를 봤다.

“정말로 고맙구나.”

우일문의 부드러운 눈길이 정휘련으로 향했다.

“휘련아, 너는 이 사부의 물음에 솔직하게 답해야 할 것이다.”

“물론입니다.”

“너의 동경의 대상은 몇 살 차이도 나지 않는데도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심지어 무공의 성취 또한 보통이 아니지. 너는 그런 서천이를 시기하지 않느냐?”

“장문인……!”

우일문이 대놓고 묻자 화산오장로들이 당황했다.

“시기라뇨!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정휘련도 당황한 듯, 손사레를 치며 격하게 부정했다.

“확실히, 어릴 땐 잠깐 그리 생각했던 적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대단한 건 대단한 것이고, 이를 본받아야 하지 시기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허어!’

주서천도 가만히 듣다가 감탄을 흘렸다.

‘솔직히 말해라, 너 이 회 차지?’

고작 열다섯이다.

이제 막 성년이 된 자치고는 생각의 깊이가 보통이 아니었다.

“흐음.”

우일문이 생각에 잠긴 듯, 실눈을 뜨고 수염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입을 열었다.

“만약, 차기의 장문인이 네가 아닌 서천이가 더 적합하다 한다면 어찌할 것이냐?”

“장문인!”

참다못한 심옥련이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안 그래도 향후 화산의 미래가 걱정되어 조심할 지경이었는데, 아예 불을 붙이는 행위를 해 버렸다.

“그것참 괜찮은 생각이군요!”

그러나, 정휘련의 반응은 이 자리에 있는 모두를 벙찌게 만들었다.

“차라리 차기 장문인 자리를 주서천 사질에게 주는 건 어떻습니까? 화산을 전성기로 만든 건 사질이 아닙니까. 이런 경우는 전례가 없긴 하지만 주서천 사질의 명성이라면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겁니다. 장문제자인 제가 문제가 될 데지만 그건 걱정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정휘련이 엄지를 척 들며 간이고 쓸개고 뭐건 간에 줄 기세로 눈을 반짝였다.

“참 나.”

“하.”

주서천, 그리고 장로진만 어이가 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흘렸다.

정말 이런 반응이 나올 줄은 몰랐다.

그것도 고민 없이 죽답을 내놓은 게 신기했다.

“하하하하!”

우일문이 또 재미있다는 듯이 웃어댔다.

“그는 장문인에 뜻이 없다고 장담했으니, 그럴 필요는 없구나. 다음 대 장문인은 너니 걱정할 건 없다.”

“그렇습니까? 그것참 아쉽군요.”

정휘련이 정말로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하지만, 만약 네가 장문인에 뜻이 없다면 상황은 심각해진다. 너는 이를 명심하고 자각해야 한다.”

우일문은 정휘련이 장문인 자리를 가볍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따끔하게 지적했다.

“물론, 알고 있습니 다. 차기 의 장문인은 제가 될 것이니 그 점은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방금 전에 넌 장문인 자리를 서천이에게 넘긴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건 주서천 사질일 경우입니다. 그 외에는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부님의 진전을 이어받을 생각이니, 그 점은 걱정하지 말고 맡겨 주십시오.”

정휘련이 자신감 가득한 목소리로 답했다.

“허허, 정말로 당돌하구나.”

장문인에 관심이 없는 것도 아니다.

나이에 맞지 않은 재능과 오성까지 지녔다.

주서천이 만나 본 사람 중에서 이렇게까지 기이한 사람은 또 없다고 봐야했다.

“크, 큰일입니다!”

그때였다.

하나같이 다들 정휘련에게 정신이 쏙 빠져 있을 때, 저 멀리서 다급한 외침이 들려오며 한 제자가 빠르게 다가왔다.

“무슨 일이냐?”

심옥련이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상궁은 아무나 올 수 있지 않다. 허가가 있어야 한다.

회의 중이면 더더욱 그렇다.

어떠한 소식도 없이 올라온 것이라면, 그 사안이 보통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혀, 혈교입니다! 혈교가……!”

시간을 되돌려, 감숙의 옥문관(玉門關).

국경의 관문임과 동시에 서역 지방과의 연결 통로인 곳이다.

인근에는 길이나 꽃 따위는 없으며 , 암석으로 이루어진 고비 사막이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이 옥문관을 넘는 것은 출새(出塞)라 하여, 중원과 새외(塞外)의 경계선에 속했다.

“뭐라고!”

월아천문의 문주, 유효풍이 목소리를 높였다.

명사산(鳴沙山).

옥문관을 북서쪽으로 약 이백오십 리 거리를 두고 있으며, 뾰족하게 솟아 있는 모래산이다.

월아천문은 명사산 안에는 월아천이라는 녹주(綠洲 : 오아시스)에 자리 잡은 명문지파 중 한 곳이었다.

구파일방이라거나 오대세가 정도는 아니나, 나름대로 명망 높으며 문주인 유효풍은 천하백대고수다.

“혈교의 군세가 옥문관 앞까지 왔다니……”

유효풍의 안색이 흙빛으로 물들었다.

그 표정은 심히 좋지 않았다.

방금 전, 혈교의 군세가 확인됐다는 첩보가 들어왔다.

한데 그 숫자가 보통이 아니 라는 모양이었다.

대충 세어 봐도 오천 이상.

무서운 건 그 뒤로 계속해서 병력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었다.

“끄응. 담리백의 반란으로 사도천이 약해진 탓인가. 삼대 세력의 균형에 변화가 생기니, 기어코 이런 문제가 생기는구나.”

정파, 사파, 그리고 마도이세.

그동안, 무림의 평화는 삼대 세력이 엇비슷한 덕에 유지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정파가 사파와 싸우기라도 한다면 승패의 유무 상관없이 세력이 약해지게 된다.

그러면 남아 있는 마도이세의 세력이 자동으로 우세해져, 정사대전의 승자를 먹어 치운다.

다른 곳 역시 마찬가지기에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나 담리백의 반란이 모든 걸 뒤집어 버렸다.

사도팔문은 내전으로 인해 반절이 날아가 버렸고, 그 전력은 상당히 감소됐다.

혈교가 중원을 침공하려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무림맹과 공동파로 급히 서신을 보내라.”

전서응이 감숙의 무림맹 난주 지부, 공동파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무림 전체로 퍼졌다.

혈교의 준동!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평화가 깨졌다.

이번 일에 비교하면 칠검전쟁은 어린아이 장난 수준이었다.

어쩌면 대학살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에, 무림은 숨죽이며 혈교의 움직임에 집중했다.

합비, 무림맹.

“끄응. 결국 이런 일이 벌어지는군.”

남궁위무가 눈살을 찌푸리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예상을 아예 못 한 건 아니다.

사도천의 세력이 약화되면서 얼추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드디어 지긋지긋한 혈교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 줄 수 있겠군!”

팽군평이 기다렸다는 듯이 히죽 웃었다.

“전쟁이 그리 좋냐?”

황견이 혀를 차며 고까운 듯이 쳐다봤다.

“흥, 팽가는 혈교 놈들 따위 두려워하지 않는다.”

팽군평이 콧방귀를 꼈다.

“마교의 움직임은 없는가?”

남궁위무가 제갈중호에게 물었다.

“아직은 없네.”

“흠, 신경이 쓰이는군.”

마교와 혈교는 마도이세라 하여 묶어 불리긴 하지만 사실 그렇게까지 친한 관계인 건 아니다.

때때로 힘이 부족할 때 서로 협력하긴 하나, 그 외의 경우에는 사실 그리 교류하진 않는다.

종교가 응당 그렇듯, 교파가 서로 다르다 보니 싸우는 경우도 제법 많았다.

그래도 일단 성향은 비슷하니 중원보다는 사이가 좀 나은 편에 속했다.

마교가 혈교를 꼭 따라갈 연유는 없으나, 그래도 중원 침공 정도면 협력하는 데 충분하다.

한데 소식이 들려오지 않다 보니, 뒤에서 무언가 하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들었다.

“황 장로. 마교의 동향 파악에도 힘써 주시오.”

“그리하겠소.”

“일단, 정혈대전의 준비에 들어가겠소.”

정혈대전(正血大戰)!

옥문관에 오천 이상의 병력이 모이고 있다. 이견은 없었다.

무림맹은 소식을 들은 당일 날, 주요 인사들에게 서신을 보내 병력을 파견하라는 동원령을 선포했다.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는 사전에 들은 정보가 있었기에, 군말하지 않고 전쟁의 준비에 서둘렀다.

정파의 중소 문파 역시 드디어 올 것이 왔다면서, 없는 문도들을 쥐어짜 내며 신음을 흘렸다.

돈 냄새! 전쟁은 돈이 된다.

상인들이 금세 돈 냄새를 맡으며 움직였다.

그중에는 단연 금의상단도 있었다.

최근에 대상인의 반열에 오른 이의채는 눈을 반짝이면서 바삐 움직였다.

돈의 흐름은 귀신같이 안다.

무림인 , 상인, 일반 백성 등.

심지어 관부까지 촉각을 세울 정도로 소문이 퍼졌다.

“우리는 움직이지 않는다.”

사도천은 최소한의 대비만 하고 기다리기로 했다.

어차피 혈교의 목표는 안 봐도 훤하다.

약소화된 사도천이야 언제든지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해 후순위로 나뒀을 터.

거리상으로도 정파가 지척에 있으니 걱정할 건 없다.

혈교보단 반란의 피해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했다.

암천회.

“드디어……”

천기의 안광에서 예리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이 날만을 기다려 왔다.”

그동안의 나날은 숨이 가쁠 정도로 바빴다.

최근 연달은 실패에 이가 갈리고, 살이 떨렸다.

매화정점과 궁귀검수의 첫 자만 들어도 짜증이 나고 화를 참을 수 없었다.

복수의 때를 기다리며 인내심을 키우던 나날.

이번에는 결코 실패하지 않기 위해 대계를 준비했다.

그리고 오늘날, 누구의 방해도 없이 준비된 것을 끝냈다.

천문학적인 돈과 사람이 소모됐다.

다행히도 투자한 만큼의 가치를 낼 수 있었다.

“암천이 도래하기 전, 중원은 피로 물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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