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맹 회의가 열렸다.
안건은 둘. 그중 첫째는 단연 화인의원의 의뢰였다.
무림맹 장로들에게조차도 비밀인 것이 조금 불만이긴 했으나, 사정을 알고 문제 삼지는 않았다.
그러나 정말로 문제가 된 건 다음의 안건이었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군.”
취봉개, 황견이 눈살을 찌푸린 채로 말했다.
무림의 양대 정보 세력 중 하나인 개방도 알지 못하는 암중 세력이 존재한다는 걸 쉬이 믿을 수가 없었다.
“그 정보가 신빈성 있다고 생각하오?”
“나무아미타불. 그 출처가 매화정검이 아닙니까.”
소림사에서 파견된 장로, 방주와 같은 혜 자배 항렬인 혜노가 손목에 감은 염주 알을 굴리면서 말했다.
주서천은 숙원을 풀 마지막 기회를 불사론 장본인이지만, 동시에 반야신공을 되찾아 준 은인이었다.
소림 내에서도 그에 관한 취급은 다양했지만, 혜노의 경우는 주서천을 소림의 은인으로 대했다.
“끙, 나 역시 그놈이 신뢰가 가는 인물이란 건 알고는 있소. 그러나 그 정보가 만약 조금이라도 잘못된 것이고 오해라면, 그들을 조사하다가 애꿎은 인력과 시간만 소모할 수 있다는 거요.”
아무래도 정보를 다루는 입장인지라 의심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틀린 말은 아닐세.”
군사, 제갈중호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한 사람의 말을 믿고 움직이기에는 사안이 무겁다.
이야기책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 그리고 음모론자나 좋아할 만한 사안이라 말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저 운이 좀 좋아 공적이 부풀려진 애송이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황 장로의 말대로요.”
하북팽가의 장로, 팽군평이 황견의 말에 동의했다.
“어쭈 네가 웬일이냐?”
황견이 신기한 듯 팽군평을 쳐다봤다.
평소에 견원지간이다 보니 항상 반대되는 의견을 내곤 했다.
“아니지, 이제야 머리 좀 쓰게 된건가? 껄껄껄.”
“입 닥쳐라, 거지. 더 이상 모욕한다면 내 칼로 네 머리를 잘라 아래로 떨어뜨리겠다.”
팽군평이 황견의 비웃음에 낮게 으르릉 거렸다.
“자자, 두 장로분들께선 진정해 주시지요.”
제갈상이 쓴웃음을 흘리며 말리는데 힘썼다.
“확실히, 황 장로님의 말씀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암천회에 대한 건 매화정검 한 사람에게서만 흘러나온 것이 아닙니다.”
“또 누군가가 이들에 대해 말한 겐가?”
“당가의 독봉과 당염 장로. 그리고 점창칠공자인 단하성과 신의입니다.”
“흐……”
생각보다 힘 있는 이들의 이름이 나왔다.
후기지수이자 가주의 여식인 독봉이야 두말할 것도 없고, 장로뿐만 아니라 점창칠공자도 의견을 더했다.
무엇보다 신경 쓰이는 건 신의이다.
화인의원은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에 필적할 만한 세력이다.
의술도 의술이지만 그냥 넘어갈 수 없는 건 신의에게 진 빚이다.
다들 하나같이 무인이다 보니 의원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고, 영약이나 내단 관련 등으로 도움을 받은 적도 몇 차례 있었다.
무림이란 곳은 크고 작은 은원 관계로 되어 있다.
그만큼 응원을 중시하다 보니 무시할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이 안건에 대해선 좀 더 이야기를 나눠야 할 것 같습니다.”
“동감일세.”
회의의 시간이 좀 더 늘어났다.
한편 무림맹이 몇 날 며칠 동안 바쁘게 지내는 동안 수색대는 그동안의 고생을 풀 듯 휴식을 취했다.
무림맹주와 부군사가 여러 편의를 봐준 덕에 신선 못지않은 생활을 하는 중이었다.
보기 힘든 먹거리를 제공받거나, 시녀들이 시중을 들어 줘서 좋았다.
그만큼 신의의 구출 임무가 중요했다는 의미였다.
“안녕하십니까, 저희는 안휘 상단의……”
합비 인근에서 활동 중인 정도 문파인……”
안정을 위해 접근이 제한되어 있긴 했으나, 수색대원이 외부로 나오면 시선이 곧장 쏠렸다.
그도 그럴 것이 화인의원과 무림맹주가 직접적으로 기밀에 붙인 임무를 수행하여 완수한 정예가 아닌가.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대부분이 어떻게든 연을 이어 보려고 선물을 들고 왔을 뿐만 아니라 한 번이라도 얼굴을 비치려고 필사적이었다.
‘이제 보니 점창파와 사천의 당가였잖아?’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라니, 배경도 두말할 필요 없는 데다가 능력까지 출중하다면 ……’
‘조금이라도 환심을 끌어도 대박이다.’
‘무림맹이 이러라고 있는 곳 아니겠어?’
정파의 중심, 무림맹. 유명한 정파인이 다들 모이는 곳이다 보니 화교의 장으로 불리기도 했다.
사람들은 각자의 이익을 품고 주변을 알짱거리면서 만나 볼 기회를 노렸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제일 만나고 싶은 사람은 당연하게도 정파의 영웅, 매화정검이었다.
“얼굴을 못 뵈어도 상관없습니다. 이 선물이라도 전해 주십시오.”
“매화정검이 무림맹에 와 있다고?”
“뭐하고 있어! 빨리 가자!”
정파의 영웅이라 칭해지는 대협이다.
어떻게든 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꺄악, 대협!”
“주서천 대협이 그렇게 잘생기셨다며?”
“그분의 넓은 가슴에 안겨 보고 싶어. 잘 단련된 그 근육은 분명 튼튼하겠지?”
“아버지가 주 대협을 만나기 전까진 집으로 돌아올 생각하지 말라더라. 어떻게 하지?”
주서천은 명실공히 중원 최고의 신랑감이다.
무공이면 무공, 배경이면 배경.
생김새도 절세미남 정도는 아니지만 결코 나쁜 편이 아니다.
성격이야 정파의 영웅이자 대협으로 알려져 있으니 두말할 것도 없으며, 비록 신분이 도사이나 화산파의 고위 직책에 앉아 있는 게 아니라 혼례도 가능했다.
아무리 세력이 작은 곳이라도 주서천만 잡으면 가문의 영광은 따 놓은 당상이었다.
그러나 정작 그 본인은 볼 수 없었다.
“대협께서는 수련에 들어가셔서 뵐 수 없습니다.”
“바쁘신 분이라서 저희도 며칠 동안 못 뵈었습니다.”
신분이 높건 낮건 간에 누구도 볼 수 없었다.
몇몇 지체 높은 이는 건방지다며 길길이 날뛰었으나, 주서천이 ‘깨달음을 얻을 것 같다.’ 라는 말을 남기고 무림맹에 마련된 지하 연무장에 틀어박히자 어쩔 수 없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
빛 한 줌 들어오지 않는 연무장.
문이라곤 계단에 연결된 하나 밖에 없었고, 바람 소리 하나 없었다.
직사각형으로 된 대리석 바닥 위, 그 정중앙에 주서천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그의 눈앞에 놓여 있는 건 타오를 듯이 붉은빛을 띠는 단약, 구희의 신단이었다.
‘이 앞은 미지의 영역이다.’
전생과 현생을 포함해 도달한 영역은 어디까지나 ‘화경’이다.
삶을 마감하기 전에 화경에 겨우 올랐고, 두 번째 삶에선 약속된 기연을 이용해 끝자락에 도착했다.
그리고 불로불사의 효능을 지녔다는 구희의 신단을 복용하면 어떤 게 기다릴지는 주서천도 모른다.
‘이 앞을 넘으면 무엇이 있지?’
두근두근.
모험을 한다는 생각에 왠지 모를 고양감이 솟는다.
자고로 무인이라면, 벽을 넘어서 다음 경지에 오르는 걸 목표로 하는 법. 가슴이 벌써부터 떨려 왔다.
‘진정하자. 괜히 초 칠라.’
그러나 이런 마음으로는 깨달음을 승화시킬 수 없다.
실패라도 부른다면 그야말로 최악의 결과다.
언제나 다음 경지로 넘어가려는 ‘도전’은 위험하다.
자칫 잘못하면 주화입마에 빠질 수도 있는 탓이다.
특히, 구희의 신단처럼 어마어마한 영기를 내포한 것을 흡수하는 중이라면 역류할 위험이 높았다.
주서천은 자하신공으로 내기를 순환해 들뜬 마음을 진정시킨 뒤, 구희의 신단을 들었다.
‘생명의 원천으로도 불리는 극양(極陽)의 신단’
자고로 영약이란 그 성질을 조금이라도 알고 복용해야 한다.
극으로 치닫는 것은 특히 더 조심해야 한다.
만약 극양의 신단을 아무런 지식없이 복용할 경우 신체의 음양의 균형이 무너져 주화입마에 빠진다.
지하 연무장에 들어오기 전, 신의와 나눈 대화가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신단의 배합을 보면 극양의 성질을 지닌 게 분명하네.
그러니 양기에 특화된 내공심법으로 운기하거나 혹은 그에 상반되는 극옴(極陰)의 약을 함께 복용해야 하네만…… 이걸로도 해결할 수 있을 걸세.”
신의가 손가락 두 마디만 한 병을 건냈다.
‘공청석유!’
한 방울이라도 마시면 일반인은 무병장수하고, 무림인이라면 일 갑자에 이르는 내공을 얻는다는 영약.
그 기록이 워낙 오래되고 더 이상 볼 수 없어 전설로 취급됐지만, 도감부장을 통해 신의에게 전달됐다.
“공청석유가 극음의 약이었습니까?”
“아니네. 그 대신, 공청석유는 천지 간의 조화가 서린 동굴에서 고인 만큼 ‘조화’라는 힘을 지녔네.”
“그 말씀은……”
“극양의 약인 구희의 신단을 복용한다 해도, 그 힘이 문제없이 조화롭게 흡수되도록 도와준다는 걸세.”
괜히 전설의 영약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 혹시 해서 말하지만 이 공청석유를 ‘조화’의 목적으로 사용한다면 내공은 얻을 수 없을 걸세.”
“아쉽군요.”
사람의 욕심이란 끝도 없는 법.
본연의 내공의 양이 일찍이 상식에서 벗어난 수준이고, 구희의 신단을 복용할 예정인데도 무언가를 더 원하는 주서천이다.
“금으로 오십 냥일세.”
“예?”
동전 천 문이 일 관이다.
그리고 일 관이 곧 은자 일 냥인데, 쌀이 두 석이 된다.
그 은자가 열 냥이 있어야 금으로 한 냥.
오십 냥이나 되면 그 가치는 어마어마하다.
“그런 표정으로 쳐다보지 말게나. 혹시 이 늙은이가 자선이라도 할 줄 알았나? 구희의 신단이야 원래부터 그 암천회인가 뭔가 하는 놈이 가져갈 것이었지만, 이 공청석유는 그놈에게 정당하게 받은 걸세.”
신의가 손바닥을 내밀며 음흉하게 웃었다.
“신의께선 돈으로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이라고 들었습니다.”
“그야, 그리 말하지 않으면 온갖 귀찮은 것들이 엮이는데 어찌하겠는가? 그리고 의학이란 게 생각보다 돈이 정말로 많이 들어서 말일세. 이해해 주게나.”
과장이 아니다.
기존에 있는 것은 그렇다 쳐도, 발달을 위한 연구의 영역이 되면 드는 돈이 적지 않다.
특히 새로운 약의 제조라거나 불치병의 치료 등에는 지속적으로 천문학적인 돈이 소비된다.
화인의원의 진료비가 괜히 일반 백성들이 꿈에도 못 꿀 정도로 비싼 게 아니었다.
“……금의전장의 전표입니다.”
“금의전장은 신뢰할 만한 곳이지. 고맙네.”
극음의 영약을 구하러 다니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쉬운 것이 아니라서 편한 법을 택했다.
무엇보다 제대로 된 균형을 이룰 수 있을지도 의문이니, 돈을 좀 써도 신의의 보증을 고르는 게 나았다.
평소에는 금은커녕 개인 자산이 아닌 무림맹 등에서 지급되는 돈을 사용했는데 단번에 이리 나가다니.
공청석유는 부르는 게 값이라 어떻게 홍정할 수도 없었다.
한 방울이 일 갑자에 가까우면, 그 가치는 두말할 것도 없다.
금자 오십 냥이면 싼값일 수도 있었다.
‘괴팍한 영감탱이, 아니기만 해 봐라.’
신의에 대한 악감정을 옆으로 밀어낸 다음, 구희의 신단을 들어 입 안에 털어 넣었다.
꿀꺽.
우유빛 액체 한 방울을 맛을 보기도 전에 집어삼키고, 병을 멀리 치워 낸 뒤 운기조식에 들어갔다.
‘온다!’
먹자마자 곧장 반응이 왔다.
괜히 신단이 아니었다.
부글부글.
‘크흣!’
식도가 무언가에 쓸린 것처 럼 뜨거웠다.
그 뜨거움은 순식간에 퍼지더니 몸 구석구석을 헤집었다.
속이 용암처럼 끓는다.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다.
등 뒤로 식은땀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극양기(極陽氣)가 심장에서부터 시작하여 신체의 중심부로 횡격막을 뚫고 내려가 소장을 돌았다.
두 갈래로 갈라진 수소음심경(手少陰心經) 중 하나는 심장에서 목을 끼고 올라가 눈으로 이어졌고, 또 다른 하나는 심장에서 폐로 빠져나가 겨드랑이 밑의 극천혈(極泉穴)을 지나 팔의 뒤 안쪽과 손목관절, 새끼손가락 안쪽을 거쳐 손톱 밑에서 끝났다.
그리고 다시 새끼손가락에서 시작되어 손의 뒤쪽 아랫부분을 지나 손목의 척골(尺骨)을 걸쳐 신경구와 상박 바깥쪽 뒤쪽 아랫부분 등을 지나쳤다.
이후 견갑골(肩胛骨)을 돌아, 대추혈(大椎穴)에 가서 엇바뀐 다음 쇄골상와(鎖骨上腐)로 향한다.
여기서도 둘로 나누어지는데 , 하나는 가슴속의 심장에 연계되어 횡격막을 지나 소장에 속했다.
다른 가지는 목과 뺨을 지나 눈초리에 오르는데, 여기서도 또 다른 가지를 쳤다.
방향을 틀지 않고 나아가던 것은 귓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최후의 가지는 관골(顧骨) 부위로 내려와 눈구석에서 방광경(勝腕經)에 연계되어 끝났다.
이러한 통로를 수태양소장경 (手太陽小腸經)이라 한다.
수소음심경과 수태양소장경은 십이정경(十二正經)에 속하며 신체의 오행 중 화(火)에 해당하였다.
극양기는 마치 짝을 찾듯, 신체에서 양기와 관련된 곳에 관심을 보이며 찔렀다.
십이정경 외에도 담, 소장, 위, 대장, 방광, 삼초.
즉, 육부(六開)를 건드렸다.
‘뜨거워!’
혈도에 한계를 넘어선 극양기가 주입되자 몸 이곳저곳이 비명을 지르며 문제를 일으켰다.
한서불침 이후 처음으로 고통스러울 정도의 뜨거움을 느꼈고, 그 외에도 이것저것 반응을 보였다.
낯빛은 붉어지고, 눈은 충혈되었다가 노래졌다.
목은 아파 오고 명치 밑이 특히 아팠다.
혀는 메마른 사막처럼 쩍쩍 갈라졌고, 턱 아래가 심히 부어올랐다.
‘크아아아악!’
약은 잘못 쓰면 독이 되는 법이다.
지금이 그랬다.
구희의 신단이라는 희대의 영약을 먹었으나 내포된 양기의 양 탓에 여기저기서 이상 현상이 벌어졌다.
이 여러 일들이 워낙 순식간에 벌어지다 보니 어찌할 틈도 없어서 마구잡이로 날뛰었다.
‘정신 차려!’
입을 조금이라도 열었다간 그걸로 끝이다.
호흡이 잘못되어 육부가 파열됨과 동시에 단전도 망가진다.
화경이라고 해도 주화입마에서 자유로운 건 아니다.
도리어 그 반동이 보다 컸다.
‘와라! 공청석유!’
사람의 몸을 색으로 볼 수 있다면, 아마 자신의 신체는 분명 붉은색으로 물들었으리라.
그리고 그 시뻘건 불길을 꿰뚫고 내려오는 건, 음양의 조화를 이루고 있는 우유빛의 선이었다.
‘끄으으윽!’
구희의 신단과 공청석유.
하나같이 무림에 나오면 피바람을 부를 영약을 하나도 아닌 둘을 삼켰으니, 그 양이 실로 막대했다.
콰과과과과!
자하신공, 중도만공, 만중검, 일월신궁 등 지금까지 내기를 자유롭게 다루었던 심법들이 소용이 없었다.
극양기와 조화기(調和氣)를 다루려고 해도, 그 기세가 질풍노도와 같아 잡고 있을 수가 없었다.
‘신의! 도대체 뭘 만들어 낸 거요!’
한 방울만으로도 일 갑자나 되는 양을 지닌 공청석유도 보통이 아니지만, 구희의 신단도 무지막지했다.
‘구희의 후예란 게 정말이었단 말인가?’
화경의 고수조차 감히 잡아 둘 수 없는 막대한 기운.
육십 년 내공이라거나 수치를 셀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야말로 신의 영역에 이른 연단술이었다.
무림의 영약과 내단의 소재를 전부 알고 있다는 암천회의 도감부장이 괜히 남만까지 온 게 아니었다.
구희 부족의 연단술은 상상 이상이었으며, 온갖 희귀한 재료와 신의의 기술까지 합해 극의를 이뤘다.
‘무리다.’
의식이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
어떻게든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어떻게 이겨 낼 수가 없었다.
‘이딴 걸 버텨 내라고?’
울컥!
도저히 사람이 할 짓이 아니었다.
이러한 고통은 난생처음이었다.
환골탈태보다 더한 고통이었다.
얼굴 위로 핏줄이 도드라지고, 시뻘게진 얼굴은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기세였다.
그래도, 공청석유의 조화의 기운 덕인지 육신이 용케 터지지 않고 조금씩 온몸으로 흡수되고 있었다.
‘웃기지 마!’
그 속도가 늦어도 너무 늦다.
이렇게 끔찍한 고통을 인내하는 건 더 이상 무리였다.
한 시진은커녕 일각, 아니 그 이하의 시간도 힘들었다.
아아악!
결국 꿈인지도 현실인지도 모를 정도로 의식이 멀어진 순간, 입에서 비명이 흘러나왔다.
그게 정말로 입으로 낸 것인지 , 아니면 머릿속으로 울린 것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모든 걸 토해 냈다.
퍼엉!
비명을 내자마자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어?’
눈이 떠졌다. 어둠이 걷히고 빛이 들어왔다.
그러나 그 눈에 비친 건 갈기갈기 찢겨진 살점 사이로 보이는 뼛조각과 사라져 버린 양팔이었다.
사람의 몸으로 담아낼 수 없는 극양기.
끝내 몸이 버티지 못하고 팔이 터져 버렸다.
‘이대로 끝인가?’
고통으로 인한 비명도 없었다.
검수로서 죽음을 의미하는 팔의 손실로 인한 충격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전부 끝났구나 하고 생각하며 체념했다.
-사람이 담을 수 없는 것인가.
-불의 화신이자, 불사의 요정인 구희의 정수가 담긴 거였구나.
-신의 영역이다.
-인간이 어떻게 해 볼 수 있는게 아니지 않은가?
주서천은 더 이상 생각을 잇지 못했다.
어떻게든 해 보려던 운기법도 이어지지 않았다.
팔을 잃어버린 채로, 죽음을 받아들이려 했다.
그리고 그 순간.
“웃, 기지 마! 쿨럭!”
주서천이 답답함을 날려 버리며 소리를 내질렀다.
아파서, 너무 아파서 비명을 내질렀다.
말을 할 때마다 피를 울컥 토해냈다.
“아파아아! 아프단 말이다아아아!”
조각나 버린 뼈가 위로 올라간다.
어깻죽지부터 시작해 뼈가 이어지고, 제자리를 찾는다.
그리고 그 위로 꽃잎처럼 비산한 살점이 하나둘씩 붙더니만 원래의 모습을 되찾기 시작했다.
꿈인지도 현실인지도 모르겠다.
팔이 폭발해 치유된 것인지, 아니면 원래부터 터지지 않은 것인지 모를 정도로 뇌가 돌아가 있었다.
영약의 흡수, 나아가 운기조식 중 말하는 건 위험한데도 주서천은 짜증을 내듯 마음껏 소리 질렀다.
‘이렇게 된 거, 어떻게든 올라가 주마!’
“매화정검, 궁귀검수……”
누군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낮은 음은 아니었다.
여자가 아닌 남자의 것이란 건 알 수 있었다.
“참으로 재미있구나.”
피식.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몹시 차가웠다.
백여 개의 계단 위. 화려한 옥좌의 주인.
보이는 건 발끝 밖에 없었다.
“……”
암천의 주인 아래, 칠성사의 네 명 밖에 남지 않은 우두머리들이 부복한 채로 숨도 멈춘 채 가만히 있었다.
특히, 외팔이인 천기의 얼굴이 좋지 못하였다.
‘이럴 수는 없다.’
그동안 있었던 일은 악몽 그 자체였다.
고작 반년. 일 년도 되지 않은 시간이거늘 오랫동안 준비해 온 대계가 둘이나 박살이 났다.
충격의 시작은 일 년 전 이맘때쯤, 천선의 사망 이후 반야신공이 소림사에 전달되고, 맹강이 연달아 목숨을 잃으면서 녹룡채가 무너졌다.
확실히 화가 나긴 했으나 다음번에 계획된 일을 처리하면 만회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시간도 시간이지만, 정말 크나큰 노력과 자금이 소모됐다.
다른 걸 제쳐 둘 만큼 중요한 계획이었다.
천기는 빈틈없는 성격답게 자만하지 않고 심혈을 기울이며 여러 신경을 쓰면서 관리했다.
그리고 뼈가 시릴 정도로 바람이 부는 나날.
패륜의 반란이 시작됐다.
사도천의 중추인 사도팔문의 반절을 움직여야 했는지라 정말로 여러모로 힘을 많이 썼다.
회주가 직접 관여했을 정도로, 암천회에 있어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미래를 위한 대계(大計)였다.
그러나 그 결과는 하오문의 장로, 아니 궁귀검수라는 변수가 등장하여 천권을 죽임으로 망쳐 버렸다.
담리백이 반란에 성공할 거라는 건 기대도 하지 않았다.
장기화한 내전으로 세력을 약화시키길 원했다.
실제로 그러기 위해서 여러 손을 써 두었다.
머리털이 다 빠질 정도로 여러 곳을 조종했다.
하지만 이게 웬일. 반란이 실패할 것은 예상했지만 그 결과가 원하는 것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약화하기는커녕 암천회의 손바닥 위에 올라온 인형들이 별 힘도 쓰지 못하고 제압당했다.
즉 하루아침에 몇 년 동안 투자한 첩자들이나 끄나풀 등이 별 쓰임도 없이 사라졌다는 뜻이었다.
무엇보다 칠성사의 우두머리인 천권까지 잃었다.
이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두 귀를 의심했다.
반란의 대실패, 천권의 사망 등 하나같이 혈압이 오르게 했다.
꿈일 것이라며 현실 도피까지 했다.
그러나 전부 현실이었다. 거짓이 아니었다.
아니기를 빌었으나 그건 바람에 불과했다.
설상가상으로 사도천주는 치명상은커녕 조금 지친 것으로 끝났고, 세심한 성격 어디 안 가는지 집요하게 사도천 내를 뒤지면서 끄나풀들을 처리했다.
마음 같아선 궁귀검수인가 뭔가 하는 놈을 데려와 찢어 죽이고 싶었지만 반란이 끝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사라졌다.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이 실패로 인한 회 내부의 결과는 두말할 것도 없었다.
보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았다.
어떻게든 수복해 보려 했으나 사도천주는 그리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고, 결국은 반 이상을 잃어버렸다.
복수할 대상은 사라졌고, 원했던 것은 하나도 얻지 못했다.
그뿐이랴, 불과 며칠 전 사상 최악의 소식을 듣게 되면서 암천회의 전 수뇌가 한자리에 모였다.
‘도감부장이 당했다고?’
천기성이 회주의 두뇌이고, 개양성이 오른팔이라면 도감부는 왼팔이었다.
그것도 그냥 왼팔도 아니라 칠성사라는 일곱 개의 기관과 견주는 도감부의 수장이었다.
회의 설립 이후 돈벌이나 회유 방책, 그리고 전력을 높이기 위한 영약과 내단을 수집하고 관리하는 도감부의 역할은 몹시 중대하다.
그래서 되도록 방해되지 않도록 공통된 계획에 전부 빠져 있었으며, 독자적인 행동을 허가받았다.
이렇다 보니 당연히 그에 맞는 무력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회주 다음으로 강자인 개양의 바로 아래였다.
특히 지닌 내공만큼은 그 개양성을 상회한다고 하니 그런 도감부장이 죽은 게 믿기지 않았다.
‘주서천 …… !’
천기가 속으로 이를 뿌드득 갈았다.
매화정검. 또 그 이름이다.
정성스레 준비한 칠검전쟁을 망친 것부터 시작해, 사사건건 방해해 왔다.
이름만 들어도 혈압이 오른다.
정사의 영웅이라 불리는 이들이 교대로 암천회를 들쑤시는 상황. 설상가상으로 회의 존재가 알려졌다.
“죽여 주십시오!”
쿵! 쿵! 쿵!
천기가 이마를 바닥에 찧었다.
어찌나 강한지 한 번 부딪칠 때마다 찢겨진 피부 사이로 피가 터졌다.
“매화정검과 궁귀검수. 그 둘은 더 이상 눈엣가시의 수준으로는 볼 수 없도다.”
암천회주는 무림이 자신의 손바닥 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오만한 사람이다.
그 눈에 들어오는 것도 대단한데, 매화정검과 궁귀검수는 회의 적수로 인정받았다.
“살계부에 그 이름을 상천십좌와 동일한 위치에 올리고, 다소 희생이 있어도 상관없으니 척살하여라.”
“존명!”
네 명밖에 남지 않은 칠성사가 사라졌다.
“썩…… 좋은 기분은 아니로군.”
암천회주가 불쾌한 듯 중얼거렸다.
시간을 쪼개서 심혈을 기울였던 게 무산됐다.
왼팔까지 잘려 나갔으니, 기분이 좋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무엇보다 계획대로가 아닌, 회의 존재가 탄로 난 것이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정도와 사도, 마도가 서로 싸우다가 지쳤을 때 등장하여 비웃어줄 생각에 내심 기대하기도 했다.
‘주서천.’
궁귀검수를 추적하는 건 아무래도 시간이 걸릴 터.
그래서 정파의 영웅 먼저 끌어내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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