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째서?’
어째서 갑자기 이렇게 모습이 변한 것일까.
마치 원래의 연령으로 성장한 느낌이었다.
‘아!’
머릿속에 무언가가 스치고 지나갔다.
“소령, 그 힘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지?”
끄덕.
자문주술은 발동 시에 신체 능력을 증폭하는 대신 정기나 대체하는 내공을 지속적으로 소모한다.
그래서 쓸데없는 소모를 막기 위해 스스로 풀 수 있도록 처리해 두었다.
“풀어 봐.”
눈에 보이진 않으나 불길한 느낌의 기세가 사라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 소령의 몸집도 작아졌다.
“역시!”
주서천이 무릎을 탁 치며 탄성을 흘렸다.
자문주술이란 건, 신체의 능력을 강화하고 증폭시킨다.
즉, 근력이나 몸놀림에 필요한 근육이나 뼈대 등을 일시적으로 힘에 걸맞도록 바꿔 버린다.
소령처럼 신체 나이가 전부 자라지 못한 경우, 주술이 발동하면서 갑작스러운 성장을 겪게 되는 것이다.
무늬의 이식은 무사히 끝났다.
싸워 봐야 알겠지만, 주술 역시 성공적으로 발동한 듯했다.
‘왠만한 고수들조차 소령을 상대하진 못할 거다.’
소령에게 어린아이의 외형은 커다란 이점이다.
적을 방심시키고 급습해 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유령들 사이에서도 그녀의 무력은 최상위.
아니 어쩌면 정점에 있을지도 모른다.
비록 그녀의 연령은 많지 않으나, 그동안 함께하면서 대련으로 수련하는 등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눈에 띈 변화는 정기의 흡수, 내공량의 증가다.
맥을 짚어 보니 양이 보통이 아니었다.
‘영약이라도 새로 구해 줄까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졌군.’
내공으로 전환한 정기가 생각보다 많았다.
이 정도면 능히 일 갑자 정도도 노릴 수 있다.
무한하다 할 정도는 아니나 영약의 지원을 받은 대문파의 후기지수와 견줄 정도의 수준은 됐다.
“몸에 무언가 이상을 느끼면 바로 말하도록 해.”
“이해.”
주서천은 소령을 근처에 숨어 있도록 명하고, 널려진 도료를 대충 정리한 다음 일행에게 되돌아갔다.
발걸음을 옮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에서 호법 중이던 단하성과 만났다.
“주 대협!”
“무슨 일이십니까?”
단하성의 표정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
어딘가 모르게 다급해 보여 적의 습격이라도 있었나 싶었다.
“그건 내가 할 질문일세. 주 대협이 있는 곳에서부터 불길한 무언가가 느껴져서 얼마나 놀랐는지……”
걱정이 되어 찾아가 보려고 해도, 사전에 접근을 막아 달라는 부탁까지 받았으니 다가갈 수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려야만 했다.
“아……”
주서천이 난처한 웃음을 홀리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불길한 무언가라는 건, 두개골에 내포된 사기가 틀림없다.
아무래도 약간 새어 나온 모양이었다.
하기야, 그 정도 되는 양의 사기가 외부로 노출되었는데 그걸 느끼지 못한다면 더 이상하다.
“혹시 전에 그 주술을 쓰는 자들이 나타나기라도 한 건가?”
단하성이 경계 어린 눈으로 주변을 슥 둘러봤다.
“그런 건 아니니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오해하지 않도록 얼른 머리를 쥐어짜냈다.
“다만, 그때의 후유증이 좀 남아서 치료 중이었습니다. 도중에 주력(呪力)이 새어 나간 것 같군요.”
방금 막 떠올린 것치곤 그럴싸한 거짓말이었다.
단하성도 수긍이 가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야, 그 괴물과 정면으로 부딪쳤으니 부상을 입는 것도 이상한 게 아니지. 지금은 괜찮은가?”
“방금 전에 전부 치료했습니다.”
“다행이군. 다들 걱정 중일 텐데, 얼른 내려가도록 하세.”
아무래도 주력의 여파가 제법 넓게퍼진 듯했다.
아니나 다를까, 일행이 있는 곳으로 내려가자 휴식 중이던 수색대원들이 주변을 경계하는 중이었다.
“걱정을 끼쳐 죄송합니다. 주술의 후유증을 치료하느라 일이 좀 생겼습니다.”
“후유증?”
당혜가 고운 이마를 찡그리며 물었다.
어딘가 모르게 기분이 언짢아 보이는 표정이다.
“싸움이 끝난 지 얼마나 지났는데 후유증에 대해 지금 말하는 건 무슨 심보일까. 이 정도는 별거 아니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당신 몸이 아무리 튼튼하다고 해도,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면 너무 미련해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가 고민되네.”
당혜가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
주서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둔해도 정도껏이라는 말, 알고 있어?”
당혜가 한숨을 푹 내쉬더니, 주서천의 손목을 낚아채 검지와 중지로 맥을 짚어 진찰했다.
‘언제나 생각하지만, 성격은 안 좋아도 미모는 대단하다니까.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 장난 아니군.’
두근두근.
진맥 덕에 거의 처음으로 독봉의 아름다움을 지척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화산제일미인 낙소월과 자라다 보니 내성이 있어 다행이었지, 그게 아니었더라면 진정하지 못했을 것이다.
“걱정해 준 건 고마운데, 치료 는끝났으니까……”
애초에 후유증 자체가 거짓말이라 양심이 찔렸다.
“주 대협이 말한 대로요.”
단하성이 주서천을 대신해 자세히 설명해 줬다.
“독도 전부 해독한 줄 알았는데, 그 잔류가 남아 후에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으니까요.”
“흠, 그것도 맞는 말이오.”
혹시라도 은인의 몸에 문제라도 있을까 걱정됐다.
“아, 그리고 신의께서도 괜찮으시다면 진맥이 끝나고 봐주실 수 있을까요?”
“상관없네.”
신의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큰일은 아니니까 일들 보세요.”
수색대가 그제야 경계를 풀고 물러났다.
“이렇게까지 난리를 피울 정도는 아닌데……”
사소한 거짓말을 했는데 눈덩이처럼 불었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서 나쁠 건 없잖아. 그리고 몇 가지 물어볼 것도 있어서 그래.”
“아, 과연. 괜히 둘이서 따로 이야기했다가 이상한 오해를 받을 것 같아서인가. 머리 좀 썼네.”
“그만둬 당신에게 머리 좀 썼다고 듣다니, 나도 머리가 많이 나빠진 것 같잖아.”
꽈악.
손목을 잡은 힘이 강해졌다.
“그래서, 할 말은?”
“주요 부족에 가려진 배경과 화산의 일대신공.”
“들켰나.”
주서천이 올 것이 왔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연하지. 비록 그 색이 옅긴 했지만, 자색으로 물든 걸 줄기차게 내뿜었잖아.”
당혜가 어이없다는 눈초리로 주서천을 쳐다봤다.
주서천과 도감부장의 생사결.
그 비무의 과정은 보는 이들이 절로 전율을 끼칠 정도로 대단하였다.
천하백대고수 중에서도 상위에 이르는 무위도 경악스러웠지만, 정말로 놀라운 건 자하신공이었다.
물론 그걸 눈치챈 건 최소 절정 이상의 고수들뿐, 아직까지는 소수에 불과하다.
단하성은 은인을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아, 입을 다물고 있을 뿐 그 역시도 궁금해하는 눈초리였다.
“좋아.”
주서천은 선의가 도감부장의 제안을 받고 남만으로 오게 된 경위와, 협력하게 된 연유를 설명해 췄다.
“신공에 대해선 좀 봐줘라.”
주서천이 이야기를 끝내고 쓰게 웃었다.
자하신공에 대해선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었다.
어차피 언젠가는 밝혀질 것이라고는 예상했다.
변명거리도 나름 준비했다.
그러나 아직 밝힐 때가 아니다.
또한 상황에 따라 변명이 바뀔 수도있으니 섣불리 말할 수는 없었다.
‘정말로 종잡을 수 없는 남자야.’
당혜는 이야기를 전부 다 듣고 나서야 손목을 쥔 손에서 힘을 풀며 생각에 잠겼다.
첫 만남 때도 그랬지만, 그동안 봐왔던 수많은 남자.
아니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유형의 사람이었다.
무엇보다 암천회에 대해서 들었을 때는 농이라도 하는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 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 후의 행적 역시 의문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정파의 영웅, 매화정검. 사파의 영웅, 궁귀검수.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중원이 발칵 뒤집히지 않을까.
아니, 믿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당혜 역시 궁귀검수가 이름을 날리기 전이 아니었더라면 믿지 못했을 것이다.
정사의 영웅이 동일 인물인 것도 놀랐지만, 무엇보다 다른 성질의 무공을 쓸 수 있는 게 이상했다.
어떤 것인지는 정확히 모르나 화산파의 검 외의 검법뿐만 아니라 궁술이나 암기에도 능하지 않던가.
한 사람이 전부 펼칠 수 있다는것도 믿기지 않은데, 그 연령이 약관이라니. 상식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이러한 남자가 경계하는 단체, 암천회에 대한 경계심도 새삼 깊어졌다.
흉마의 무덤 사건만 해도 대단한데, 그 영향력이 이 먼 남만까지 끼칠 줄이야 상상도 못 했다.
그동안은 이웃 나라의 이야기였는데 도감부장의 무위를 보니 경각심이 세워졌다.
“좋아, 당신이 말하는 거니 이유가 있겠지. 다만, 후유증이 남을 정도로 무리는 하지 말도록 해.”
당혜가 길고 가느다란 검지를 들었다.
그 검지는 주서천의 콧잔등을 타고 올라가, 이마를 짚었다.
“착각하지 마. 당신을 걱정하는 게 아니니까. 나중에 나와의 재대결에서 져서 변명하면 곤란한 것뿐.”
당혜가 마음에 안 드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 * *
합비, 무림맹.
“드디어 도착했다!”
수색대는 무림맹에 도착하자마자 환호했다.
중원을 떠났던 건 삼월이었던 봄.
그리고 어느덧 시간이 흘러, 남만에 다녀오니 초여름이 됐다.
제법 무더위이긴 하나, 남만의 살인적인 더위를 겪고 온 수색대에겐 덥기는커녕 시원하게 느껴졌다.
열기나 습도가 빠지지 않고, 바람조차도 전무한 남만의 대수림에 비하면 무릉도원이었다.
‘약 석 달 만인가?’
삼월 중순 무렵에 남만에 도착했고, 주요 부족과 전쟁을 치르며 두 달 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남만의 세력 다툼을 무사히 끝내고 뒷정리를 하느라 또 시간이 흘렀다.
게다가 귀환 중에도 중간중간 휴식을 취했다.
수색대가 고생했으니 불평도 할 수 없었다.
어차피 급한 것도 아니라서 느긋하게 왔다.
“어서 오십시오. 수고 많으셨습니다.”
정문을 열고 제일 먼저 반긴 건 부군사, 제갈상이었다.
“사부님!”
제갈상이 다음 말을 잇기도 전, 그의 뒤에서 연신 불안한 듯 서 있던 중년인이 신의를 보고 외쳤다.
“응? 네가 여기까지는 웬일이냐?”
신의가 중년인을 알아보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의원은 어쩌고?”
“사부님께서 행방불명됐는데 의원이 문제입니까!”
중년인, 화인의원의 책임자이자 명의로도 이름이 알려진 율건이 제 가슴을 두드리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동안 얼마나 고생했는지, 머리의 반절이 희끗해져서 십 년은 더 나이들어 보였다.
“제발, 제발 저희 생각 좀 해 주십시오! 사부님과 연락이 끊긴 후 어떤 심정이었는지 아십니까!”
율건이 울분을 담아 소리쳤다.
의뢰를 맡긴 이후, 무림맹주는 걱정할 것 없다며 맡겨 달라 했지만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신의의 생존 여부가 걱정되기도 했으나 율건이 정말로 미칠 것 같던 건 주변의 시선이었다.
특히나 신의에게 빚을 진 이들이 찾아오며 눈을 가늘게 뜰 때는 미치는 줄 알았다.
그중에는 ‘혹시라도 허튼짓을 했다면 용서하지 않을 것이오.’ 라며 대놓고 말하는 자도 있어서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율건이 걱정했던 대로, 신의의 행방불명이 장기화되자 주변에서 의심의 눈초리가 쌓여 가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임무를 수행 중이던 수색대와도 연락이 잘 되지 않는다는 걸 들었을 땐 죽고 싶었다.
발 뻗고 잔 것은 옛일이다.
눈을 감으면 주변의 수군거림이나 의심의 눈초리가 떠올랐다.
신경이 쓰여 진료를 보지 못하는 건 물론이오, 잠도 못 자고 밥도 넘어가지 않았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살았다.
그리고 약 몇 주 전 기다렸던 소식이 도착했다.
율건은 신의를 원망 어 린 눈으로 쳐다보다가, 그 옆에 서 있는 주서천을 보고 활짝 웃었다.
“아이고, 주서천 대협!”
율건은 아들, 아니 손자뻘 되는 주서천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을 기세로 손을 붙잡고 인사했다.
“역시 정파의 영웅이시로군요! 한 사람, 아니 화인의원을 구해 주셨습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으흐흑!”
‘스승 잘못 둬서 뭔 고생이냐.’
주서천이 진심으로 율건을 불쌍하게 여겼다.
내버려 두었다간 감사의 인사만 수십 번 정도 이어지려 하자, 율건을 말린 뒤 제갈상에게 안내를 받았다.
“임무를 수행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만, 맹주께서 기다리고 계시기에 죄송하게도 대표자분들께서는 보고를 하셔야 할 듯싶습니다.”
“괜찮습니다. 당연히 할 일이지요.”
급하게 온 것도 아니고, 중간에 마을에 들를 때마다 적절한 휴식을 취했다.
긴 여정의 종착점이라 긴장이 풀려 좀 피곤하긴 하지만, 보고가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었다.
보고할 걸 예상하여 일과가 끝날 시간인 해가 막 질 무렵에 일부러 맞춰서 도착했다.
주서천과 당혜와 당염, 단하성만 따로 무림맹주의 집무실로 향했다.
“어서 오시오.”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무림맹주, 남궁위무가 책상 앞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반겼다.
“맹주님을 뵙습니다.”
“다들 남만까지 다녀오느라 피곤할 텐데, 그럴 필요는 없소. 편히 있어도 괜찮소.”
남궁위무가 인자하게 웃었다.
상천십좌의 시선이 주서천으로 향했다.
“원래라면 노고를 치하하며 축배를 들어야겠으나, 그러지 못하는 점을 부디 용서해 주게.”
“괜찮습니다. 기밀 임무이지 않았습니까.”
화인의원은 신의의 행방불명이 알려질 것을 두려워했다.
그래서 일부러 의뢰를 특급 기밀로 붙였다.
이를 알고 있는 건 직접적인 관계자들 그리고 화산파와 점창파, 당가의 수뇌들과 무림맹주나 군사 정도다.
무림맹의 장로들조차도 이 임무를 아는 이는 없다시피 하다.
신의가 무사히 돌아왔으니, 차후 이 일에 대해서 이야기는 하겠으나 그건 나중의 일이다.
그렇다 보니 축배를 드는 대외적인 잔치도 열 수는 없었다.
“이해해 줘서 고맙네. 그럼 보고를부탁해도 괜찮겠나?”
“물론입니다.”
주서천이 남만에서 겪은 일을 보고 했다.
지루하지 않도록, 중요하지 않은 부분은 빼고 최대한 간략히 말했다.
“허어, 그런 일이 있었을 줄이야.”
이야기가 끝나자, 남궁위무가 믿기지 않은 듯 탄성을 흘렸다.
“주요 부족의 배후 세력…… 암천회라고 했던가?”
그리고 중요한 건, 바로 암천회에 대해서였다.
‘슬슬 알려질 때가 됐다.’
무림을 뒤에서부터 조종하려는 암중세력.
그 세력의 이름이 무림맹주의 입을 통해 나왔다.
‘암천회의 정보력이라면 도감부장이 남만에서 목숨을 잃은 경위에 대해 반드시 알아낼 터. 그렇다면 내가 관련된 것이 알려지는 것도 시간문제다.’
신의가 행방불명된 동안은 임무에 관해 전부 기밀로 붙여지지만, 전부 해결된 지금은 다르다.
화인의원의 수뇌들은 그동안 목숨이 아까워 이번 일을 숨겼을 뿐, 지금은 한시름 놓아 떠들게 될 거다.
무엇보다 신의의 행적을 걱정하여 제자들을 의심한 이들의 오해를 풀어 주려면, 자세한 내막을 알려 줘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것까지 어떻게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어차피 암천회에게 노려질 거라면 슬슬 그들을 양지로 꺼내 각 세력의 경각심을 높일 생각이었다.
차후 전쟁에선 무림맹의 힘을 빌려야 하는 건 필수이니, 지금부터 말해서 나쁠 것은 없다.
다만, 알고 있는 것의 전부를 말한 건 아니었다.
아무리 정파의 영웅이라도, 개인에 불과한 자가 너무 자세히 알면 의심받기 마련. 적당히 숨겨 말했다.
이런 식으로 거짓을 섞어 말하는 방식은 도가 터서 그런지, 미리 생각한 게 막힘 없이 술술 나왔다.
과거에 강호행 도중 암천회에 대해 우연찮게 알게 됐으나,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어갔다.
그러나 강호 곳곳을 돌며 여러 사건에 개입했으며 그 규모와 힘이 보통이 아니었다는 걸 깨닫는다.
특히, 적립총채주 역시 그 일원이었다는 걸 강조했다.
그렇지 않아도, 전(前) 적림총채주 맹강의 행적은 워낙 밝혀지지 않은 것이 많아 정체가 수상쩍었다.
그 정도 되는 고수가 갑자기 땅에서 솟은 것처럼 나타나 적림십팔채를 정복한 일화는 정말 이상했다.
암천회의 존재 증명에 설득력을 더하는데 도움이 됐다.
“솔직히,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는 힘드네.”
“이해합니다.”
무림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였는 암중 세력이 있다고 듣는다면, 누구나 다 황당해할 게 당연했다.
도리어 이렇게 비웃지 않고 진지하게 들어 준다는 게 이상했다.
‘이래서 명성이란 게 중요하다.’
어린 시절에 암천회에 대해서 떠들어 대지 않은 건 , 힘이 부족해서도 있지만 결정적으로 아무도 믿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누군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고, 설득하려면 그에 따른 힘과 명성이 필요했다.
다행히도 매화정검과 정파의 영웅이라는 유명세는 무림맹주가 귀담아 듣기에는 충분했다.
“신의께 여쭤 보신다면, 그에 관련된 자세한 이야기를 들으실 수 있을 겁니다.”
“알겠네.”
남궁위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암천회에 대한 게 정말이라면, 쉬이 넘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무림의 안위가 걸린 중대사다.
신의의 증언까지 나온다면?
앞으로 있을 일은 꽤나 복잡해지리라.
‘자아, 이제 시작이다. 암천회.’
주서천이 입술을 혀로 적셨다.
암천회의 칠성사 중 둘이 죽고, 도감부의 수장도 목숨을 잃었다.
심지어 존재에 대해서도 알려졌다.
앞으로 그들에게 노려지겠지만 만반의 준비를 해 둬서 대응할 자신이 있었다.
천기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상상만해도 즐거웠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