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감부장은 주서천을 부모를 죽인 원수처럼 노려봤다.
그만큼 만년화리에 대한 원한이 보통이 아니었다.
그 영물을 관리하느라 고생한 것도 있지만, 만년화리를 잃은 이후 암천회주에게 눈총을 받지 않았나.
더 열 받는 건 도감부 외의 기관, 칠성사의 몇몇에게 비웃음까지 받았던 일이다.
파앙!
도감부장이 사라졌다가 나타났다.
그 몸이 마치 벼락으로 되어 있는 것처럼, 시퍼런 빛줄기를 남겼다.
끼이이익!
손톱으로 철판을 긁는 듣기 싫은 소리였다.
날카로운 무언가가 날아온 느낌이었지만, 실상은 달랐다.
마치 육중한 철퇴가 박힌 것과 같이, 도감부장의 주먹이 정중앙을 노려 오며 들어왔다.
쿠와아앙!
세로로 세운 검 위로 주먹이 부딪쳤다.
단순히 물질끼리만 부딪친 것만이 아니다. 강기가 충돌했다.
그 양만 해도 수준을 달리할 정도였다.
뇌가 ‘대앵’ 하고 울릴 정도의 충격파가 전신으로 퍼졌다.
근육이 찌릿찌릿하고 반응하며 오그라들었다.
다리가 약간 후들거렸다.
마찰열에 달아오른 발바닥이 뒤로 쭉 밀려, 강의 코앞까지 가서야 멈췄다.
“허어!”
둘의 입에서 동시에 놀라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과연, 암천회의 수뇌!’
어린 시절부터 쉬지 않고 영약을 흡수해 왔다.
만년화리, 천년설삼, 소환단 등.
정말 한계에 부딪쳐서 밥 대신이라 할 정도로 먹어 댔다.
더 먹고 싶어도 육체의 한계나, 흡수하는 시간이라거나 여러 가지 연유로 밀어 둬야 할 정도의 양이었다.
그런데도, 도감부장의 벽력선권의 위력을 쉽게 막아 내지 못했다는 사실에 입이 절로 벌어졌다.
‘도대체 이딴 놈이 어디서 나왔단 말인가!’
도감부장 역시 놀란 건 매한가지다.
분노로 이성이 반쯤 날아갔는데도 약간은 침착한 판단을 내렸다.
‘전력을 담아낸 벽력신권을 막아내다니!’
뇌제의 무공, 벽력신권은 마공과 견주어도 지지 않을 정도의 파괴력을 지녔다. 괜히 신공이 아니다.
그뿐만이 아니다.
속력 역시 정말벼락과 같다고 칭해질 정도로 빨랐다.
비유하자면 철퇴가 눈이 좇을 수 없을 정도로의 빠르기로 날아간 것이나 다름없거늘, 완벽히 막아 냈다.
‘위험하다.’
괜히 살계부에 이름이 올라온 게 아니다.
나이는 어리지만, 얕보다간 목숨이 위험할지도 모른다.
아니, 그 이전에 존재만으로도 위험하다.
천하백대고수, 화산파, 정파의 영웅.
그리고 회에 대한 기밀까지 알고 있다.
최우선으로 처리해야 한다.
앞으로 어떤 방해를 할지 상상조차 안 갔다.
“크하아압!”
도감부장이 숨을 들이쉬었다.
주변에 넓게 퍼져 있던 전류가 한곳으로 모여들며 뭉쳤다.
그 준비조차 얼마 걸리지 않았다.
여전히 속도가 번개처럼 빠르다.
“후웁!”
주서천도 준비를 끝냈다.
복부에 힘이 들어가면서 잘 다져진 복근이 드러났다.
방금 전 힘을 분출하여 이완됐던 근육이 다시 수축된다.
힘줄이 도드라지며 훤히 보였다.
호흡과 동시, 배꼽 아래 단전에서부터 내공을 뽑아냈다.
약간도 아닌 대량의 양을 공력으로 전환한다.
스스슥!
벽력신권처럼 전류를 쏟아 내는 등의 화려함은 없었다.
그러나 범상치 않은 자색의 줄기가 넘실거렸다.
‘자하신공.’
다들 하나같이 자기 싸움에 집중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보는 눈이 많다.
여기서 그걸 보이면 곤란하다.
하지만, 전력을 내지 않을 수는 없었다.
지금 눈앞에 주먹을 쥐고 있는 적수가 누구인가!
천권, 내단검문주 철무명환 역시 지닌 내공이 보통이 아니었으나 도감부장에 비해서는 조족지혈이었다.
수뇌답게 그 무력도 보통이 아니지만, 역시 압권인 건 가늠을 수 없는 무식한 내공이었다.
나름대로 무한에 가까운 내공을 소유하고 있다고 자랑하는 자신조차 기가 질릴 정도다.
그런 고수와의 싸움에서 무언가를 숨겨 가며 싸울 수는 없었다. 그래서 모든 걸 쏟아 냈다.
우르르릉!
벽력이 쳤다. 하나가 아니라, 둘이 화음을 이뤘다.
하나는 정말로 벽력의 힘을 둘렀다.
나머지 하나는 벽력을 연상시키는 고함만으로 끝났다.
그러나 그 속이 빈 것은 아니다.
검신을 두른 자색의 강기가 소용돌이치듯, 맹렬하게 회전했다.
웅웅웅!
회전에 따라 대기가 떨듯이 울음소리를 낸다.
회전수가 올라갈수록 그 여파는 더더욱 심했다.
‘자하!’
멈추지 않고 끝없이 회전하는 자색의 강기.
그리고 검 끝으로 옮겨 쏘아 내려는 필살의 찌르기!
‘개벽!’
한일(一) 자로 그어지는 자색의 선.
그 선이 지나간 곳은 공기가 터지고, 부욱 찢어지며 폭음을 냈다.
‘뇌격(雷擊)!’
도감부장 역시 지지 않겠다는 듯, 거의 동시에 자하개벽에 견줄 초식을 끝내고 출수했다.
‘출호( 出虎)!’
좌우의 손을 주먹을 쥐고, 동시에 뻗었다.
정권으로 내지르는 게 아니라, 직각으로 세운 팔을 양 젖꼭지 사이 한가운데를 노리고 힘껏 휘둘렀다.
휘두른 순간 시퍼런 빛이 뿜어져 나왔는데 , 그 형상이 마치 앞발을 동시에 휘두르는 맹호와 같았다.
콰아앙!
대기가 흔들릴 정도로의 충격파.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땅이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흔들렸다.
주서천도 도감부장도 물러나지 않았다.
두 다리를 기둥 삼아 굳건히 세워 정면으로 부딪쳤다.
카가가가각!
모조리 깎아 낼 기세로 회전하는 자색의 강기가 전류로 된 맹호를 잡아먹을 것처럼 덮쳤다.
그러나 맹호 역시 물러나지 않았다.
회전에 휘말려 갈기갈기 찢겨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앞에 있는 걸 짓뭉겠다.
“아악!”
“커헉!”
비명의 근원지는 충격에 근접한 두 고수가 아니었다.
인근에서 격전 중이던 무인들이었다.
중원의 수색대는 물론이고 도감부원, 그리고 충왕조차 충격파에 이기지 못하고, 움직임을 멈췄다.
지금은 그 여파에 휘말리지 않도록 몸을 최대한 웅크리고 주변을 경계하는 데 집중했다.
“크읏!”
“큿!”
회피하지 않고 정면을 향해 서로를 마주 본 힘이 가운데에 뒤섞였다가, 이윽고 버티지 못하고 폭발했다.
주서천과 도감부장 역시 이번에는 그 여파를 이기지 못했는지 , 서로 뒤로 멀찍이 날아가 버렸다.
“거참, 더럽게 강하네!”
주서천이 불만이 담긴 중얼거림을 흘리며, 수면 위를 돌맹이처럼 튕기다가 공중에서 제비를 돌아 착지.
만중검의 묘리를 이용해 체중을 최대한 가볍게 만든 다음 등평도수로 수면 위를 뛰었다.
“어딜!”
도감부장이 어 림 없다는 듯, 뒷발로 자갈로 이루어진 폭풍을 남기면서 강으로 뛰어들었다.
그 역시 보법과 경공의 경지가 제법 되는 듯, 아무렇지 않게 수면 위를 뛰면서 오른팔을 들었다.
시퍼런 안광을 담은 눈매는 곧장 아래를 향했는데 그걸 본 주서천이 다급하게 외쳤다.
“전부 강가에서 떨어져!”
말을 끝내자마자 달리던 걸음을 멈췄다.
자연히 수면을 지면 삼던 발이 움푹 가라앉으려 했으나, 그러기도 전에 검을 머리 위로 들었다.
죽어라앗!
도감부장이 머리 위로 든 주먹을 수면 위로 내리꽂는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주먹에는 전류가 담겼다.
저게 수면에 닿은 순간, 이 강이 어떻게 될지는 안 봐도 알 수 있었다.
주서천은 신행백변을 만중검으로 얼른 전환해, 체중을 최대로 늘린 다음 동일하게 검을 내리꽂았다.
콰아앙!
벌써 몇 번째의 폭음인지 모른다.
고막이 남아나질 않는다.
한 곳도 아니고 두 곳에서 굉음이 났다.
빠지지지직!
이승과 저승을 둘로 나누듯, 만독지와의 경계선 역할을 하던 강이 대낮에 환하게 빛났다.
그냥 빛난 것만이라면 아름다울지 모른다.
그러나 전류가 강 전체에 흐르면서 죽음의 강으로 변모했다.
아래를 향해서 똑바로 긋던 수직선이 물을 통해 주변으로 슥 퍼지면서 재앙이 됐다.
그 안에 살던 생물들은 갑자기 찾아온 충격에 버티지 못하고 죽었다.
“성가선 놈!”
도감부장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나름 노렸던 일격이었으나 정작 목표에게 닿지 못했다.
주서천이 직전에 수형(水形)을 뒤집어 뒀다.
격류의 물살은 구멍에 빨려드는 것처럼 한곳에 들어가나 싶더니, 서로 부딪치며 위로 올라갔다.
올라간 수준이 아니다.
그야말로 기둥이 되어 솟구쳤는데 그 높이가 어마어마해 하늘을 봐야만 했다.
벽력신권의 전류가 전체로 퍼지기 직전, 최대의 충격파를 원형으로 만들어 아래로 내리꽂으면서 일정한 영역 안의 물이 위로 올라 바닥까지 보였다.
수면 아래를 헤엄쳐야 할 어류가 어째서인지 애꿎은 허공을 헤엄치면서 파닥이는 게 눈에 잡혔다.
“제기랄!”
도감부장이 이를 뿌드득 갈았다.
공격도 맞지 않았을뿐더러, 눈앞의.물기둥 탓에 시야가 가려졌다.
설상가상으로 그 직후 물기둥이 다시 내려앉으며, 몇 장 높이의 파도가 덮쳐와 주변을 집어삼켰다.
요동치는 파도 탓인지 등평도수를 유지할 수 없었던 도감부장의 몸은 물에 잡아먹혔다.
주서천은 수면의 아래에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다가 도감부장이 빠진 걸 보고 다음 검초를 날렸다.
‘제이식, 화우선형!’
부웅-!
수중에서 휘둘러지는 검.
물의 저항으로 인해 그 속도는 느릿했지만 검초는 확실하게 펼쳐졌다.
검신을 겹겹이 두르고 있던 강기가 얽혀 있던 실타래처럼 풀리더니, 부채꼴형으로 퍼져 나뉜다.
그러나 수중에서 펼친 탓에 온전하지 않았다.
빽빽하게 자리 잡고 있어야 할 검기 다발이 늘어지면서 벌어져 그 위력이 다소 약해졌다.
꼬르록!
도감부장이 입에서 거품을 흘리며 필사적으로 움직였지만, 수중이라 그런지 움직임에 제한이 있었다.
어떻게든 피해 보려 했으나 화우선형을 받아들였다.
피부가 슥 갈라지며 피 안개가 퍼졌다.
‘크흑!’
도감부장이 고통을 참아내며 수면 위로 향했다.
벽력신권으로 강에 전류를 내보내면 타격을 입힐 수 있지만, 호흡을 할 수 없어 제한이 생긴다.
자칫 잘못하면 순환이 꼬여 심각한 내상을 초래할 수 있어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주서천도 동일한 연유로 수면 위로 향했다.
호흡이 필요 없는 유령신공의 묘리의 도움도 있었지만, 사전에 호흡을 해 두었기에 가능했다.
한두 번 정도야 초식을 연달아 낼 수는 있지만, 위력도 반감하여 굳이 무리할 필요는 없었다.
푸하!
주서천과 도감부장이 거의 동시에 올라왔다.
물살에 휘말려 일행과 조금 멀어지긴 했지만, 그렇게까지 거리가 있는 건 아니었다.
“죽여 버리겠다!”
도감부장이 악을 쓰며 물 위를 박차고 지상으로 올라왔다.
주서천도 그 뒤를 따라와 검격을 쏟아 냈다.
파바밧!
검 끝에서 수십 개의 검기 다발, 검의 꽃이 피어오르더니 폭죽처럼 터지며 한꺼번에 쇄도했다.
“이십사수매화검법!”
도감부장이 등을 돌리자마자 한눈에 알아보고 팔을 교차했다.
지닌 내공이 보통이 아닌 만큼, 호신강기를 아무렇지 않게 펼쳐 낙매성우(落梅成雨)를 막았다.
“허!”
주서천이 질린 듯이 혀를 내둘렀다.
등을 보인 채 공격을 받았거늘 상처를 입은 몸으로 잘도 막는다.
정말 성가신 상대였다.
십육초식인 낙매성우가 끝나자마자, 검 끝에서 피어난 매화의 숫자가 줄기는커녕 늘었다.
머리 위로 그 그림자가 도감부장의 주변을 가득 메웠다.
십칠초식인 매영조하(梅影造河)였다.
어림없다!”
도감부장이 발을 굴렀다.
공기가 빠지직하고 터지면서 전류가 흐르는 막이 원형으로 만들어졌다.
한곳을 향해 쇄도한 매화의 검격.
그러나 그 노력이 무상하게 강기의 막에 부딪치자마자 사라졌다.
퍼퍼퍼펑!
공기가 터질 때마다 눈부신 빛이 번쩍인다.
자색과 푸른색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그러나 감상에 젖을 틈도 없이 검격과 권격이 공중에서 몇 번이나 부딪치면서 대기를 찢어발긴다.
시간이 갈수록 도감부장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수십에 이르는 공수를 교환한 뒤, 서로 거리를 벌려 잠시 숨을 골랐다.
“이럴 수는 없다!”
도감부장이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경악한 표정을 지으며 외쳤다.
“고작 약관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 정도라고? 이럴 수는 없단 말이다!”
어린 나이에 화경에 오른 것만 해도 기적이다.
처음에는 화경의 고수라 할지라도 최하위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직접 붙어 보니 전혀 아니 었다.
화경의 고수 중에서도 다음 경지를 앞에 둔 최상위였다.
더더욱 놀라운 건, 나이에 맞지 않은 경험이다.
도감부장은 주서천이 어리다고 결코 얕보지 않았다.
안 그래도 도발을 당해 화가 치밀어 올라 이성을 반쯤 잃은 채 찢어 죽일 기세로 공격을 퍼부었다.
정면으로 쏘아 낸 것도 있지만, 가끔 허초도 섞는 등 다양한 방법을동원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화산의 후기지수, 주서천은 놀라지 않은 채 능숙한 몸놀림으로 대응했다.
마치 산전수전을 겪은 노련한 고수 같았다.
‘버겁다.’
주서천도 도감부장이 부담스러웠다.
‘도감부장과는 상성이 그다지 좋지 않은 것도 있지만, 칠성사와 달리 우위에 있지 않으니……’
천선과 천권의 경우에는 상황이 좋았다.
천선이야 자만하여 방심한 게 제법 컸고, 천권은 사도천주에게 집중하고 있어서 급습이 먹혔다.
그러나 도감부장과의 싸움에서는 어떤 유리한 상황도 벌어지지 않았다.
처음부터 도주 탓에 경계 중이었고, 무엇보다 장기인 내공 대결에서도 물러나지 않아 힘들었다.
이렇게 강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주서천이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검자루의 익숙한 감촉이 느껴진다.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
‘그동안 운이 좋았던 것뿐이다.’
암천회.
그 이름은 결코 얕볼 게 아니다.
중원의 전 세력을 적으로 두고 무림을 궤멸 직전까지 만들지 않았는가.
도리어 그동안 약간의 운이 따라 줘서 좋은 결과를 얻은 거다.
‘그들이 강하지 않을 리가.’
편린으로 나누어진 기억이 모인다.
화합을 맞추듯 서로 이어지고, 붙으면서 과거를 만들어 냈다.
전무후무한 전란의 시대.
전날 술잔을 기울이던 사람이 내일이면 죽어 있다.
눈을 뜨면 정파의 영웅 중 누군가가 장렬한 최후를 맞이하고, 희망이었던 전대의 은거 고수도 죽었다.
기밀로 정체조차 알지 못하는 정예부대가 차갑게 식어 바닥에 누워 있다.
정도와 사도, 그리고 마도까지 힘을 합해 반항하여 어떻게든 이겼으나, 상처뿐인 승리였다.
그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기에 경계했고, 두려워하고, 대비했다.
힘을 키우면서 싸울 날을 기다렸다.
지금도 마찬가지.
아직까지도 다양한 걸 습득하고, 수련하고, 힘을 키워 가면서 저항하고 있다.
“고맙다, 도감부장.”
스스스스!
발밑에서 희뿌연 아지랑이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한다.
한 줄기가 두 줄기로, 두 줄기가 네 줄기로, 이윽고 백여 개에 이르는 줄기로 불어나고, 뭉친다.
“부족한 경각심을 다시 한번 깨워 줘서. 너희가 얼마나 대단한지 잠시 잊고 있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아까는 워낙 정신도 없었고, 그 색이 옅어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확실한 자색이었다.
화산파, 아니 전 무림을 뒤져 봐도 자색이라는 특징을 지닌 무공은 하나밖에 없다.
화산파의 장문인에게만 허락된 일대신공!
“자하신공!”
입 바깥으로 뱉고 싶은 말이 많았다.
머릿속도 여러모로 복잡했다.
아무리 정파의 영웅이라고 해도, 차기 장문인으로 내정된 것이 아닌 이상 자하신공은 배울 수 없다.
그렇다면 저건 무엇이라 말인가?
장문인으로 내정되었다면 암천회가 모를 리 없다.
비밀리에 얻는 것은 불가능했다.
무엇보다 더더욱 믿기지 않는 건, 자하신공을 능숙하게 다룬다는 것이다.
신공답게 습득이 쉽지 않아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려면 적어도 서른은 넘어야 하는데 말이다.
“도감부장.”
주서천이 무릎을 살짝 구부렸다. 상체도 살짝 낮췄다.
눈매는 여전히 독수리처럼 매서웠다.
“칠각사.”
어쩌면 이무기였을지도 모르는 독혈곡의 영물.
“아니,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불안을 느낀 도감부장이 선수쳐서 중얼거렸다.
과거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독혈곡의 왕이자 고위의 영물 칠각사.
품은 내단이 기대되어 언젠가 회수하기 위해 관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필이면 마침 사형제에게 인정받으려던 단하성과 그 일행에게 뿔이 잘렸다.
설상가상으로 거주지의 천장이 무너지면서 무참히 깔려 버렸다.
그 이후에 벌어진 일은 뻔하다.
칠각사가 더 이상 위험하지 않다는 걸 깨달은 영물들에게 잡아먹혔으리라 생각했었다.
“그래서는 안 돼!”
혈압이 오르면서 뒷골이 당기기 시작한다.
가슴이 쿵광쿵광 뛰었다.
불길한 감각이 등골을 지나쳤다.
도감부장은 암천회의 일원이 되면서, 도감부라는 기관이 확립되기 전부터 영약의 관리를 해 왔다.
어디 한곳에 정착하지도 않고, 쉴 틈도 없이 중원을 몇십, 몇백 번을 돌아다니면서 신경을 썼다.
거기에 들어간 노력만 해도 보통이 아니다.
그리고 그 심혈을 기울인 노력이 정체를 알 수 없는 자에 의해 물거품이 됐을 때 화를 참을 수 없었다.
그걸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도둑맞았다고?
“잘 먹었다?”
“으아아악! 이 개자식아- !”
아니기를 바랐다. 절대 그럴 리 없다고 생각했다.
한 사람에게 두 번이나 도둑맞았다니.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분노가 용암처럼 끓어올랐다.
인내심이 바닥, 아니 무저갱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 대선 시뻘건 불꽃이 분화했다.
감정의 격동으로 인해 체온이 올라가면서 혈액 순환도 빨라졌다.
벽력신권은 양공(陽功).
극양(極陽)의 성질을 지녔다.
그렇다 보니 감정이 격양되면 참기가 힘들었다.
이성은 평정심을 찾으라고 경고했다.
주서천 정도 되는 고수를 정신을 놓고 상대할 수는 없었다.
머리로는 알고 있다.
그러나 가슴이 말을 듣지 않았다.
영혼이 살의에 휩쓸려 폭풍우 쳤다.
‘기다렸다!’
주서천의 눈이 기회의 빛으로 반짝인다.
콰르르르릉!
벼락이 쳤다. 분노의 벼락이었다.
죽이겠다는 그 일념이 잘 드러나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