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十一章 (120/254)

“생각한 대로 배신하는군그래. 좋네.”

신단이 완성되면 구희의 여족장에게 넘긴다고 약조했다.

그러나 그걸 지킬 생각 따위는 없었다.

“그들이 우릴 가만두지 않을 걸세. 괜찮겠나?”

“그깟 야만족 따위 방해조차 되지 않는다. 그리고, 어차피 그들은 연합군을 막느라 정신이 없을 터.”

남자가 히죽 웃으며 손을 올렸다.

“크아악!”

“아악!”

수풀 속에서 신의의 일행을 감시 중이던 주요 부족의 전사들의 비명이 흘러나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으로 물든 옷차림을 한 복면 무인들이 나타났다.

전원이 남만에 합류하기 전 따라왔다가, 도중에 사라졌던 수하들이었다.

“간다.”

그 숫자는 고작 삼십밖에 되지 않았지만, 하나하나 범상치 않은 고수들뿐이었다. 전부 절정, 초절정이다.

특히냐 이들을 이끄는 남자의 무공이 대단했는데, 대수림임에도 고강한 무력을 자랑하였다.

신의는 남자의 뒤를 따라 미리 알아둔 샛길로 빠져나갔다.

“잘 들어라, 신의. 이제부터 할 이야기는 결코 누구에게도 발설하면 아니 된다. 만약, 조금이라도 입을 뻥긋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겠지?”

“흘흘흘. 어차피 얼마 남지 않은 생이라 목숨에는 미련이 없네. 그러나 아직 보지 못한 의서나 약들이 마음에 걸리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알겠네.”

“좋다. 네놈이 아직까지 살 수 있는 건, 의술이 아닌 그 현명함 때문이라는 걸 명심해라. 그러나 후회할 건 없도다. 그 덕에 무림, 아니 중원을 손바닥 위에 둔 본 회에 들어올 수 있는 거니까.”

“본 회……?”

남자가 스산하게 웃으며, 길을 막는 커다란 잎사귀를 슥슥 베어 넘겼다.

빽빽하게 늘어져 있는 나무도 조금씩 줄어들며, 입구 근처까지 왔다.

지긋지긋하던 독물도 이젠 끝이다.

“그렇다. 무림은 정도와 사도, 그리고 마도이세로 나누어져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크나큰 착각이다.”

남자의 눈이 음험하게 빛났다.

지겨울 정도로 펼쳐진 대수립이 사라지고, 멀리서 거센 물살 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상천십좌조차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분이 회주로 계신 이곳의 이름은……”

남자가 뒷말을 이으려는 순간이었다.

그의 발걸음이 갑작스럽게 뚝하고 멈췄다.

“잔뜩 기대하게 해놓고 정작 중요한 이름을 말하지 않다니, 이 늙은이를 괴롭힐 생각인가?”

신의도 따라 멈춰 서서 물음을 던졌다.

그러나 그따위 말장난에 장단을 맞춰 줄 때가 아니었다.

남자의 눈이 독수리처럼 매서워졌다.

주변을 맴돌던 수하들도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멈췄다.

“그 이름이 무엇인지 궁금한데, 알려 주지 않을래?”

신의가 아니었다. 낯선 목소리, 제삼자였다.

“누구나!”

남자가 경계 어린 목소리를 높이며 주먹을 내질렀다.

쿠아아앙!

평범한 정권 지르기가 아니었다.

주먹 끝에서 폭풍이 뿜어져 나와 앞에 있던 나무를 뿌리째로 박살 냈다.

그 바람은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앞으로 쭉 뻗어 나가 코앞에 둔 강 한가운데를 정확히 맞췄다.

콰앙!

다시 한번 터지는 굉음.

그리고 강물이 위로 솟구치면서 물기둥을 만들었다.

물방울이 후두둑 떨어지면서 일곱 빛깔의 무지개를 만든다.

권풍에 얼마 남지 않은 나무들이 속속들이 쓰러지면서 시야를 넓혔다.

강 앞에 일련의 무리가 보였다.

‘우리가 오는 걸 기다리고 있었다?’

남자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무언가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걸 느꼈다.

“만나서 반갑다.”

일련의 무리 중 누군가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남자는 그 얼굴을 보자마자 눈살을 찌푸렸다.

“네놈,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기억을 더듬으며 떠올려 보려 했지만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기억날 듯 말 듯해서 속이 답답했다.

“보아하니 암천회에서 한 부대 정도는 이끄는 우두머리인 것 같은데, 내 얼굴을 몰라?”

“뭐, 뭐라고? 지금, 뭐라고 했느냐?”

남자가 눈을 찢어질 듯이 크게 떴다. 입도 떡 벌어졌다.

방금 그 이름은 그냥 지나칠 것이 아니었다.

“아마 천기 그놈이 날 찢어 죽이려고 초상화를 배포해서 살계부에 이름을 올렸을 텐데……”

남자가 입을 떡 벌렸다.

대경한 걸 넘어, 충격에 빠져 할 말을 잃은 듯 입만 뻐끔뻐끔거렸다.

암천회와 천기. 결코 알아서는 안 될 이름이 두 번이나 나왔다.

회의 이름은 그렇다 쳐도 칠성사의 이름까지 알다니?

“살계부? 살계부…… 억! 주서천! 주서천이로구나!”

드디어 흐릿했던 기억에서 무언가가 떠올랐다.

흉마의 무덤에서 발견된 혈승의 비급을 초석 삼아 일으켰던 칠검전쟁이란 대계를 망친 장본인.

그리고 협력 세력이었던 적림십팔채의 총채주와 녹룡채를 무너뜨려 천기의 뒷목을 잡게 만든 훼방꾼.

그 외에도 소림사에 신공을 전달하거나 비밀리에 준비한 분타도 박살내는 등 온갖 방해를 하지 않았나.

“주서천? 그 매화정검 말인가?”

의학 외에는 관심이 없다는 신의도 주서천의 이름을 들어 봤는지 반응을 보였다.

“누구냐.”

남자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지금 신단이고 뭐고 신경 쓸 게 아니었다.

알아서는 안 될 이름을, 결코 밝혀지지 말아야 할 이름이 두 번, 아니 세 번이나 나왔다.

암천회, 천기, 살계부.

회의 일원이라 할지라도 상위의 인사가 아니라면 모르는 것들뿐이었다.

신단도 신단이지만, 지금은 회의 기밀에 대해 알고 있는 주서천의 존재 자체가 문제였다.

“화산파의 주서천이다.”

“죽이지 말고 회로 데려간다. 팔다리 한두 개 정도 자르는 건 상관없다. 신의도 있으니, 즉사가 아닌 한에서 처리한다.”

살계부에 올라왔지만, 이러면 이야기가 다르다.

죽이지 않고 데려가서 정보의 출처를 알아내야만 한다.

스스슥!

서른이나 되는 수하들이 주서천을 포위하기 위해 움직였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고 멈춰야만 했다.

사각사각!

무언가를 갈아 내는 소리.

한두 소리도 아니고 족히 수천에 이르는 소리가 겹치니 소름이 다 끼쳤다.

“설마……”

남만, 그것도 만독지에서 이러한 소리를 낼 수 있는 이는 한 사람 밖에 없다. 벌레의 왕 뿐이다.

불길함은 현실이 됐다.

정면이 아닌 뒤에서부터 시커먼 구름 같은 것이 기어 오는 게 보였다.

그 안에는 피부가 창백하고 소매에서 벌레들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청년이 서 있었다.

“충왕이 어째서……”

지금쯤이면 연합군에 맞서 박 터지게 싸우고 있어야 한다.

여기에 있을 사람이 아니니, 당연히 놀랐다.

“흐, 흐흐……”

청년 충왕에게서 음산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설마 했더니 정말이로구나. 나를, 아니 주요 부족을 전부 속이다니. 온전히 나갈 수는 없을 거다.”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웃기는커녕 분노와 살의로 불타오르는 중이었다.

“이런 걸 사면초가라고 하는가?”

신의가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은 채, 가만히 수염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흥!”

남자 역시 위기 속에서도 당황하기는커녕 코웃음을 치며 여유를 부리면서 주변을 슥 훌어봤다.

주서천과 충왕 외에도 눈에 들어오는 이들이 몇몇 있었다.

“점창칠공자와 독봉인가.”

남만의 사제가 목숨을 잃으면서, 그리고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몇 가지 귀에 들려온 게 있었다.

점창파와 당가. 그러나 주서천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다.

그 점이 아쉬웠지만, 인제 와선 상관없었다.

“어차피 다 죽이면 그만이다.”

“대단한 자신감이군요. 과연, 중원을 손바닥 위에 두고 있다고 자랑할 정도는 되시네요. 그럼요, 비록 신단만 제조하고, 누군가 빼앗을까 봐 겁이나 바짓가랑이가 젖은 채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쳤지만요. 그래도 그 배짱은 높이 사 드릴게요.”

당혜가 언제나처럼 신랄한 독설을 퍼부었다.

“계집, 그 예쁜 주둥이가 찢어지는 꼴을 경험하고 싶지 않다면 입을 다물고 있는 게 좋을 거다.”

이름 모를 남자가 으르릉거렸다.

“나약한 것들끼리 몰려다니면서 송곳니를 드러내는구나. 이렇게 된 거, 모조리 쳐 죽여 주마.”

파드드득!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던 새들이 위로 비상했다.

나무 열매를 까먹던 다람쥐도 꽁지 빠지게 도망쳤다.

보란 듯이 꽃잎을 활짝 핀 꽃봉오리가 오그라들었다.

동식물을 겁먹게 하는 기세가 폭풍처럼 몰아쳤다.

당혜가 입을 꾹 다물었다.

평소의 독설을 내뱉을 분위기가 아니었다.

눈앞의 적수가 체내의 기를 방출하는 것만으로도 대기가 떨려 오는 게 느껴졌다.

“후읍!”

단하성도 경계를 최대로 높였다.

숨을 쉬기 갑갑할 정도의 압박감이 느껴졌다.

괜히 다수를 앞에 두고 여유를 부리고 있던 게 아니다.

충왕이 나타난 이후로도 태세는 변하지 않았다.

자신만만한 태도에는 이유가 있다.

눈앞의 이름도, 정체도 모를 남자의 무위는 딱 봐도 보통이 아니다.

‘개양……?’

겉으로 드러날 정도로의 심후한 공력.

공기가 떨리는 정도로의 여파라면 경지가 낮지는 않았다.

대충만 봐도 최소 화경. 어쩌면 그 위일지도 모른다.

이 정도 되는 힘은 칠성사에서도 몇 없다.

암천회주의 오른팔이자 무력을 상징한다는 개양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잠깐.’

생각이 잠시 멈췄다. 그 대신 다른 게 떠올랐다.

‘영약의 관리, 신단의 제조.’

암천회에서 영약을 관리하는 기관은 오로지 한 곳.

“도감부?”

“……”

예상이 맞아떨어졌다.

남자, 아니 도감부 소속의수뇌의 눈썹이 떨렸다.

워낙 찰나의 순간이었으나 결코 놓치지 않았다.

동요였다.

“맞구나?”

주서천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번졌다.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암천회의 수뇌이고 지고의 영약을 구하러 남만까지 왔다면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건 한 명 외에는 없다.

칠성사는 아니나 그와 견줄 수 있는 수뇌.

영약과 내단 등에 집중되어 있는 조사 및 수집 기관의 수장.

“도감부장.”

콰과과과과!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워낙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 대부분이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나 서로를 마주 보고 있던 주서천은 달랐다.

그 이름을 부르자마자 도감부장이 움직인 걸 봤다.

고막이 찢어질 정도로의 굉음.

도감부장이 밟고 있던 지면이 움푹 파이더니, 폭발과 함께 위로 솟았다.

도감부장은 지반 아래에 꽁꽁 숨겨져 있던 크고 작은 바위들을 박살내고, 뒤로 흩뿌리면서 뛰쳐나갔다.

공간과 공간 사이를 접은 것처럼 사라졌다가 나타났다.

고속으로 이동한 것만이 아니다.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 속, 도감부장이 팔을 뒤로 뺐다가 주서천과 가까워진 순간 일권을 내지른다.

코앞에 꽂히 려는 일촉즉발의 순간.

주서천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검을 세워 주먹을 막았다.

꽈아아앙!

그건 , 주먹이라기에는 너무나도 큰 소리였다.

청천벽력. 남만의 구름 한 점 없는 날씨에 천둥이 쳤다.

소리뿐만 아니라, 물리적인 폭발까지 있었다.

검과 주먹이 부딪친 순간 그 여파가 파도처럼 출렁이더니만, 얼마 지나지 않아 폭죽처럼 터졌다.

“으아악!”

제일 먼저 피해를 입은 건 주서천의 근처에서 경계 중이던 무인들이었다. 몰아친 폭풍에 날아갔다.

고수의 반열에 드는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볼썽사납게 나가떨어지진 않았지만, 뒤로 밀려났다.

눈에 먼지가 들어가지 않도록 꽉 감고, 허벅지에 힘을 팍 주고 버텼다.

뒤로 밀려난 발자국이 남았다.

“명령을 바꾼다.”

뭉게뭉게 피어오른 구름이 걷히면서 그 중심이 드러났다.

검과 주먹을 맞대고 있는 괴물들이었다.

“주서천, 신의를 제외하고 전부 죽여라. 놓치는 건 용납하지 않는다.”

도감부장이 시선을 고정한 채로 명령을 내렸다.

“존명.”

삼십에 이르는 수하, 도감부원들이 몸을 날렸다.

“벽력신권 빠직, 빠지직!”

눈에 보이지 않은 전기가 흘렀다.

시퍼런 빛줄기가 번쩍번찍하면서 태아의 몸을 툭툭 건든다.

벽력신권(露靈神拳).

고금을 통틀어 전설적인 고수의 이름을 꼽을 때면 빠지지 않는 뇌제(雷帝)의 독문무공이다.

그러나 실전된 지 워낙 오래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진 걸로 알고 있거늘, 이렇게 눈앞에 존재했다.

‘속력도 속력이지만, 위력도 정상이 아니다. 괜히 뇌제의 무공이 아니군. 팔이 다 찌릿찌릿하다.’

극쾌(極快)이자, 극강(極强)의 성질을 동시에 지녔다.

그것도 무너지지 않고 잘 어울려 수평을 이룬다.

도감부장에 대해선 자세히 모른다.

암천회가 망하기 전까지도 암암리에 영약, 약재, 독초, 내단 등을 관리하느라 천기성처럼 전면에 나서진 않았다.

마지막까지 남았다가 괴멸됐다는 건 들었지만, 관련된 정보가 거의 남지 않았다.

그들에 대해 알려지면 과한 욕심 탓에 분쟁이 일어날 것을 우려하여 기록에도 남기지 않아서다.

직접적인 관련자들 외에는 모른다.

화산파의 장로로서 나름대로 정보의 접근 권한이 높았지만, 그렇다고 전부를 아는 건 아니었다.

장문인급이 아니라면 열람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주서천도 알 수가 없었다.

“급습을 막아 낸 건 칭찬해 주마.”

‘너무하지 않냐?’

도감부장 정도 되는 무인이라면 오만을 부리면서 ‘한 수 양보해 주마.’ 라거나 ‘이걸 막아 봐라.’ 라면서 공격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괜히 암천회 아니랄까 봐, 특급 기밀에 이르는 이름이 나오자마자 급습을 했다.

다른 곳에 시선을 떨어뜨리지 않고 주시하고 있어서 망정이지 한눈팔고 있었다면 분명히 당했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도감부장이 목소리를 높이며 눈을 희번덕 떴다.

주서천이 검을 고쳐 잡고 상반신을 경계했다.

쐐애액!

‘각법(脚法)?’

그러나 공격은 위가 아니라 아래에서 들어왔다.

빠지직!

도감부장이 다리를 채찍처럼 휘둘렀다.

벽력신권과 다를 것 없이 시퍼런 전기가 번쩍였다.

주서천은 찰나라는 짧은 시간 동안 고민했다.

상반신을 경계하던 검을 옮길까 했지만, 허초일 확률을 상정하여 부딪치는 게 아니라 퇴보를 택했다.

서걱!

“허어.”

주서천이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바람에 휘날린 그의 머리카락 끝이 검으로 베인 것처럼 잘렸다.

도감부장의 다리, 정확히는 그 다리를 두른 전기가 칼날처럼 예리해져서 조금만 스쳤는데 베였다.

‘뇌제의 진전을 완벽히 이었구나!’

벽력참절각(露靈斬截脚).

각법은 대부분 타격을 중점으로 했지만 벽력참절각은 다르다.

이름에 걸맞게 베고, 끊어 버린다.

맞으면 맞는 게 아니라 베이는 특이한 각법이다.

“이걸 피해?”

도감부장도 놀란 건 마찬가지다.

설마 이렇게나 완벽히 피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는 얼굴이었다.

하나 놀란 것도 잠시. 암천회의 수뇌답게 틈을 만들지 않고 그다음 동작을 이어 권격을 쏟아 냈다.

파바바바밧!

빠직, 빠직!

주먹을 획획 내지를 때마다 전류가 휘황찬란한 빛을 내뿜었는데, 시야도 가리고 속도도 빨라 성가셨다.

무엇보다 질리는 건, 공력의 양이었다.

주먹이나 발길질 하나하나에 실린 내력이 보통이 아니었다.

그 주서천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로의 양이었다.

“아니, 공청석유로 목욕을…… 아니, 됐다.”

암천회주 다음으로 영약과 내단 등에는 영순위의 권한을 지닌 도감부장이다. 내공이 많은 건 당연하다.

파바바밧!

점창의 사일검도 쾌검으로 이름이 높지만 이 정도는 아니다. 정말로 벼락이라도 된 것처럼 빨랐다.

그동안 성실하게 수련한 보법을 펼치며 어떻게든 피해 냈지만, 전부는 피하지 못했다.

쾅! 콰앙! 쾅!

검과 주먹이 부딪칠 때마다 폭음이 터졌다.

지면이 움푹 파이고, 돌이 콩을 볶듯이 튀었다.

주서천과 도감부장.

그 누구도 지지 않고 대해와 같은 공력을 교환하면서 공수를 교환했다.

이대로 두었다간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고 생각한 주서천의 머리로 무언가가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고 보니, 전에는 잘 먹었다.”

주서천의 입가에 음흉한 미소가 번졌다.

“……?”

“만년화리. 잡느라 좀 고생하긴 했는데, 누가 잘 키워 줘서 그런지 속이 아주 알차더라.”

도감부장이 순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

주서천은 주먹에 검을 맞댄 채, 도감부장의 귓가에 수줍게 고백하는 처녀처럼 속삭였다.

“그거, 먹은 거 나야.”

도감부는 영물의 관리까지 도맡아한다.

대부분 영약이 그렇듯, 내단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품은 기의 양이 늘어나고, 효력도 증감된다.

특히나 영물의 내단의 경우, 주변의 환경에 영향을 받아 변하는 경우도 있어 특별한 관리가 필요했다.

만년화리도 마찬가지였다.

암천회가 관리 중인 영물들 중에서도 상위에 있는 만큼, 신경도 많이 썼다.

그러던 어느 날, 만년화리를 도둑 맞았다.

사용할 나날을 기다리며, 귀하디귀한 자식을 둔 부모보다 더한 마음으로 키웠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만년화리는 살점 하나 없이 뼈만 남아있었다.

그때의 충격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온갖 고생을 하면서 키운 잉어가 사냥당했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주서천의 속삭임을 듣자마자 욕설이 튀어나왔다.

“썅!”

당시에 범인을 찾으려고 주변을 이 잡듯이 뒤졌다.

갑작스레 내공 증진을 이룬 고수가 등장하지 않았나 싶어 조사까지 해봤지만, 결국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포기하지는 않았다.

암천회주도 그 일이 몹시 마음에 안 드는지, 범인을 잡아 오라고 명했다.

그리고 오늘, 그 범인을 찾았다.

“쌰앙!”

쿠와아아앙!

도감부장의 눈이 뒤집어졌다.

그 몸에선 여태까지와는 비교도 안 될 살의가 뇌력과 함께 폭사됐다.

빠직! 빠지지지직!

고압의 전력에 머리카락이 절로 쭈뻣 선다.

피부 위의 솜털도 선 게 보였다. 닭살도 우수수 돋았다.

머리카락이 쭈뻣 서고, 태아의 검신을 통해 전류가 침입해 올 정도의 전기가 모습을 드러낸다.

“주서천!”

귀가 찢어질 정도로의 고함.

소림의 사자후조차 한 수 접을 정도의 그 크기는 마치 우레와도 같았다.

“크윽!”

“큿!”

주변인들도 그 영향을 고스란히 받았다.

마른 하늘에 떨어진 천둥소리에 귀를 붙잡고 신음을 흘렸다.

“이 호로 새끼가!”

도감부장의 안광이 시퍼렇게 불타올랐다.

여태껏 볼 수 없었던 분노를 볼 수 있었다.

“어쩐지 나이에 맞지 않게 내공이 많더니만……!”

살계부에 이름이 올라오면, 자연히 조사 대상이 된다.

당연히 주서천에대한 정보도 대강 알고 있었다.

정파의 후기지수이자 영웅, 매화정검.

어린 시절부터 내화외빈이라 불리며, 내공량이 남들에 비해 이상할 정도로 많았다.

사실 이때만 해도 그냥 조금 더 많은 정도라고 판단했으나, 성년이 된 이후로는 그 수준이 달랐다.

정말 어디서 기연이라도 닿아 영약이라도 주워 먹었나 싶었는데, 그게 정말이었다.

“죽여 버리겠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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