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七章 (116/254)

“흐음.”

주서천은 눈앞에 놓인 물건을 보고 고심에 잠겼다.

‘주술이라……’

육 척이나 되는 지팡이.

그리고 그아래에 놓인 수상찍은 서적.

바로 식인 부족의 보물이었다.

지팡이는 주술의 힘을 증폭시켜 주고, 이 서적은 일종의 비급이다.

사제의 주술이 기록되어 있었다.

남만이건 중원이건 간에 이 비급이 외부로 유출된다면 혈풍을 부를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혹시 몰라, 사원을 나올 때 소령에게 부탁해 사제의 몸을 뒤져 몰래 챙겨 오기는 했다.

“이거 , 잘만 하면 배울 수 있을 것 같은데……”

사제의 주술서를 읽어 보니 생각 외로 어렵지 않았다.

몇 가지 조건이 있었지만, 까다롭지 않았다.

사람의 정기나 생기가 대가였는데 순간 소모가 심각해서 그렇지, 내공으로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었다.

주술서를 읽어 보니 무림인들의 뇌라거나 심장 등을 탐내는 연유를 알 수 있었다.

나머지는 피부 위에 그려지는 문신이다.

그림이나 글자 같은 걸 그리기만 하면 발동이 가능하다.

즉, 피시술자는 무인이건 아니건 간에 내기만 있다면 주술로 인해 강해질 수는 있었다.

“그 정도의 힘인데 이 정도의 조건 밖에 되지 않는다니……”

주서천은 사제를 떠올리면서 감탄을 금치 못했다.

무공으로 치자면 그야말로 신공이자 마공.

문신만 잘 새기고, 내공만 잘 모으면 그만이다.

어떠한 깨달음이라거나 혹은 기감이 필요한 것도 아니니 보면 볼수록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끙. 아무래도 직접 쓰기에는 힘들겠군.”

아무리 여러 신분이 있다고 해도 그렇지, 명색의 정파인, 그것도 구파일방의 도사가 아닌가.

딱 봐도 수상쩍어 보이는 문양 같은 걸 피부 위에 그려 둘 수는 없었다.

곰곰히 생각해 보았지만, 아무리 아깝다곤 해도 마인으로 몰릴 것 같아 사용할 수는 없었다.

보이지 않는 문신은 없나?

눈에만 띄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쓸 용의가 있었다.

사람의 정기야 내공이 있으니 필요 없다.

딱 알맞은 새로운 힘이었다.

혹시 하는 마음으로 다시 한번 주술서를 꼼꼼히 읽어 가며 찾아봤다.

다행히 문신의 도료에 대한 합성법이나 제조법에 대한 내용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아예 보이지 않는 문신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도 비슷한 건 있었다.

남만에는 피역(避役 : 카멜레온)이란 생물이 있다.

이 생물은 자유자재로 피부색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지녔는데, 제대로 봐도 찾을 수 없을 정도의 수준이라서 포식자들 앞에서 무척이나 유리했다.

완전하게 안 보이게 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잘 보이지 않는 것 정도는 가능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알맞지 않았다.

감정이 고양되면 숨기기는커녕 옅게 빛나는 효능을 지녔다.

식인 부족에게 문신이란 건 곧 전사로서의 강함을 증명하고 인정받는 것. 숨기는 개념 자체가 없었다.

“흠, 감정의 고양이라……”

주서천의 눈동자가 옆으로 굴러갔다.

혼자 멀뚱히 서 있는 소령이 시야에 들어왔다.

화경의 고수가 되면 감정의 조절 정도는 쉽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조절이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심살의 과정을 겪은 유령들은 다르다.

마음이 없으니 감정도 없고, 고양감도 없다.

무공과 주술은 동시에 수련해도 문제가 없으니, 딱 알맞은 조건이었다.

“좋아, 그러면 너에게 부여해야겠다. 괜찮겠니?”

“예.”

“됐다. 뭘 묻겠냐.”

유령선공의 영향 탓에 뭘 시켜도 곧장 듣는다.

편하기는 한데, 가슴 한구석이 불편했다.

최대한 도구가 아닌 사람으로서 대하고는 있지만, 정작 본인이 그렇지 않으니 골치가 아팠다.

마음을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다.

그러나 심살의 영향력이 너무 컸다.

“아무래도 사원에 다시 들러야 하긴 하겠구나.”

사원을 떠나기 전, 또 건질 게 없나 대충 둘러봤다.

그중에는 금은보화나 병장기도 있었고, 독침의 제조를 위한 방 같은 것도 발견했다.

아마 그중 한 곳에 문신을 그리기위한 도료의 재료 역시 있으리라.

다만, 사원은 지금 주요 부족이 점거하고 있는 중이다.

어차피 전쟁이 일어나면 정복해야할 곳 중 하나지만, 한 번 할 일을 두 번 해야 한다는 게 귀찮았다.

“소령, 너에게 줄 게 많구나.”

주서천은 소령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문신을 위한 도료도 필요하지만, 정기를 대신할 수 있도록 내공량도 늘려야 한다.

이왕 남만에 왔으니 영약이라도 찾아볼까 생각했다.

* * *

한 사람만을 찾기 위한 수색대는 폭풍을 일으켰다.

그 폭풍의 이름은 전쟁이었다.

남만은 전 왕조의 반란 실패 이후 처음으로 군사를 일으켰다.

그러나 이러한 소란에도 중원에서 파견된 명의 관리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흠. 청화 지방의 그 토호가 군사를 움직였다 하네.”

“하하하, 고작 삼천 말인가? 애들 장난이 아닌가.”

“그것도 적이란 게 야만족이라 하니…… 쯧쯧.”

“고작 짐승들끼리 싸우는데 우리가 나설 연유가 있겠소? 신경 쓰지 맙시다.”

관리들은 토호의 이름조차 모를 정도로 남만의 정세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언제나 일어나는 야만족의 세력 다툼일 뿐이라며, 오천의 규모에도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돌렸다.

지금 당장 중요한 건 그것보다 배에 어떻게 기름칠을 할지, 어떤 미인을 안을지가 문제였다.

한편, 여리는 군사인 완채의 도움을 받아서 지방 곳곳에서 끌어모은 병력을 이끌고 이동했다.

그 숫자가 삼천. 병력은 전혀 분산되지 않았다.

삼천여 명이 한꺼번에 움직이다 보니, 그 울림이 보통이 아니었다.

평소에 사람이건 뭐건 신경 쓰지 않던 짐승들도 이번만큼은 머리를 숙이며 어둠 속에서 경계했다.

파드드드득!

수백 마리에 이르는 새들이 날개를 펄럭이며 대수림 위로 날아올랐다.

한꺼번에 날갯짓하는 소리가 마치 우레와 같아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내리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적의 숫자는 이천이오. 야수 부족 천, 독충 부족 칠백, 구희 부족 삼백……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오.”

“그게 다가 아니라면?”

“야수 부족이 다루는 짐승들도 포함해야 하오. 대부분 늑대를 기르는데, 그 숫자가 삼백 마리 정도요.”

“사람만큼은 아니겠지만, 꽤나 성가시겠군.”

“그렇소.”

이천 명과 삼백 마리. 적은 숫자는 아니다.

“그러나 불행 중 다행인 건, 주요 부족들 사이에 협력성이 그다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요.”

“과연 그건 확실히 좋은 소식입니다.”

주서천의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주요 부족에 속해 있다고, 동일한부족은 아니다.

야수 부족, 독충 부족, 구희 부족.

통일된 지도자가 있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특색있는 이들이 애초에 쉽게 손을 잡을 리 없다.

서로 간의 힘이 비등하니 어디 한 곳이 부딪치면 힘이 약화되어 다른 세력에게 침략을 당할 것을 두려워해 협력 관계를 맺은 것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오직 개인의 힘만을 믿으며, 협력을 하지 않아도 충분하다는 그 알량한 자존심은 승리에 최적이었다.

“보통, 이렇게 독립적으로 움직일 경우는 병력을 적절하게 분배하여 각개격파하는 걸 생각할 거요.”

끄덕.

“그러나 그거야말로 노림수. 독충 부족은 나무나 수풀 속에 숨어, 온갖 독충을 움직여 암습을 해 오는데 그 힘을 결코 얕보지 마시오. 그걸로 과거 대월국의 잔존 병력이 전멸했소.”

이미 몇 번이나 패배한 전쟁인 만큼, 적에 대한 경계심도 높았다.

대처 방안도 준비되어 있었다.

“그러니 도리어 연합군은 병력을 분산시키지 않고, 정면 승부로 해결해야 할 거요. 일 차 목표는 이곳.”

좌중의 시선이 완채의 손가락 끝으로 향했다.

“식인 부족의 사원.”

한편 , 연합군이 전략 회의를 하고 있을 무렵.

주요 부족 역시 앞으로 흘릴 피에 대비했다.

오직 무력만으로 남만을 굴복시킨 세력이 몇 년 만에 모여 실로 오랜만에 부족 회의를 열었다.

대리석으로 된 원형 탁자에는 세 사람이 앉아 있었는데, 하나같이 다들 개성이 가득했다.

제일 눈에 띄는 건 물소의 뼈로 된 가면을 쓴 자였는데, 몸집이 산만하여 절로 압도될 정도였다.

신장만 해도 무려 구 척에 가까워서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야수 부족의 지도자이자 대전사인 ‘검은 물소’였다.

“어차피 따로 움직일 건데, 굳이 이렇게 모여 말을 나눌 필요가 있나?”

검은 물소가 먼저 침묵을 깨면서 물었다.

동감이다.

다른 쪽에서 수긍의 말이 들려왔다.

독충 부족의 족장이었다.

남만인답지 않게 피부가 시체처럼 창백한 게 특징이었는데, 족장치고는 어려 보이는 청년이었다.

그러나 그건 문제 되지 않는다.

정말로 눈에 띄는 건, 피부 위로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벌레였다.

한두 마리도 아니고, 수십 마리씩이나 되는 벌레가 기어 다니는 광경은 혐오스러웠다.

“본 녀도 마찬가지니라.”

차갑게 가라앉은 위엄 어린 목소리.

그 주인은 선녀로 착각할 만한 미모의 여인이었다.

쇄골에 살짝 닿을락 말락 하는 길이의 머리카락은 당장 타오를 것처럼 붉고, 피부는 건강하게 그을렸다.

몸매 역시 육감적이라 정욕을 들끓게 했지만, 신분을 떠올리면서 가까스로 참아야만 했다.

구희 부족의 여족장이기에.

“좋다. 그러면 알아서 하도록 하지.”

검은 물소가 만족스러운 웃음소리를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두 족장도 발걸음을 옮겼다.

* * *

둥둥둥.

고수(鼓手)가 북을 친다.

북소리가 웅장하게 울리면서 곳곳에 퍼졌다.

삼천에 이르는 병력이 동시에 움직이자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땅이 흔들렸다.

이상할 정도로 자란 잎사귀나 덩굴도 밀림도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쉽게 뎅겅뎅겅 잘렸다.

연합군은 종횡무진하며 사원 앞까지 당도해 멈췄다.

“보아라!”

여리가 목청을 높였다.

“스스로를 주요 부족이라 칭하며, 온갖 패악을 저지르는 야만족의 무리가 지레 겁먹고 앞까지 왔구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식인 부족의 영역이었던 사원.

지금은 주요 부족이 자리 잡고 있었다.

“크르르릉!”

날렵한 몸놀림을 자랑하는 근육, 입 안에 보이는 송곳니가 돋보이는 짐승이 적의 등장에 경계하며 사납게 울어 댔다.

“들어라, 자랑스러운 청화의 병사들이여!”

여리가 장식용 검을 꺼내 머리 위로 세웠다.

“야만족이 그동안 어떠한 짓을 저질렀는지 알고 있지 않은가? 잘 생각해 보아라!”

연합군의 병사들의 눈이 벌갛게 충혈됐다.

몇몇은 화를 참지 못하는지 저주와 원망의 말을 내뱉었다.

“내생까지 약속하였던 아내를 무참히 범하고,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자식들을 무참하게 살해하였다. 그뿐만 이랴, 늙고 병든 부모는 어디론가 잡혀가 돌아오지 않았고, 재물은 약탈당해 배를 굶주려야 했다!”

둥! 둥! 둥!

여리의 목소리와 더불어 북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가 연합군의 마음에 불을 붙였다.

증오와 분노가 타오르고, 크게 번지면서 삼천에 이르는 병사들의 사기를 드높였다.

“더 이상 참지 말거라, 전사들이여! 인륜과 도덕을 저버리고, 짐승보다 못한 놈들에게 본때를 보여 주자!”

“와아아아아!”

“가자!”

“가자아아아아!”

여리는 지도자이자 지휘관이었다.

그의 외침에 영향을 받은 연합군의 기세는 그야말로 압도적. 전율을 다 느낄 정도였다.

삼천이나 되는 병력이 사원을 덮쳤다.

“적이다!”

“아우우우우!”

사람 몸집만 한 늑대가 목청껏 울어 댔다.

야수 부족도 공명하듯 짐승의 울음소리를 내면서 지면을 박찼다.

천에 이르는 전사들이 뛰어들었다.

보통, 일반적인 전쟁의 경우 접근전을 펼치기 전에 활을 쓰는 것이 보통인데 남만은 예외였다.

잎사귀라거나 덩굴, 나무가 빽빽하게 늘어져 있다 보니 어지간한 명궁이 아닌 이상 맞추기조차 힘들어 잘 쓰이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남만의 전쟁은 근접하여 붙는 것에만 특화되어 있었고, 첫 시작은 이처럼 격전이었다.

“크아악!”

“아악!”

“내 팔!”

격전도 격전이지만, 숫자가 장난이 아니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징그러울 정도로 많았다.

식인 부족의 사원은 좁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도 삼천, 아니 사천을 넘는 숫자를 채울 정도는 아니다.

상황은 난전이 될 수밖에 없었고, 다행히 중앙의 사원이 있어 이곳에서 전투를 이을 수 있었다.

다들 발 디딜 틈이 없어지면 사원의 계단이라거나 언덕까지 밀리는 모습도 간간이 보였다.

“죽엇!”

연합군의 병사는 체계적이었다.

군사 훈련을 받아서 그런지, 다수 대 다수의 싸움에서 능숙했다.

그들의 주 무기는 밀림도와 창이었다.

남만에서 살아가려면 밀림도는 필수다.

자연스레 병기술도 밀림도가 잘 발달될 수밖에 없다.

식인 부족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잘 사용했다.

굽어진 칼에 덤벼든 야수 부족의 전사나, 늑대는 칼날에 베여 피를 흩뿌리며 쓰러졌다.

창은 장창이 아니라 단창을 사용했다.

울창하게 자라난 나무들 사이에서 길이가 길어 봤자, 여기저기 장애물에 걸려 사용하기가 까다롭다.

사실 창보다는 칼이 낫기는 했지만 수풀에 숨은 적을 찌르기 위한 용도로 쓰이다 보니 발달하게 됐다.

그들은 서로 등을 맞대고 훈련한 기억을 떠올리면서 야만족에게 대항했다.

“아우우우!”

그에 비해, 야수 부족은 마구잡이식이었다.

사람이라기보다는 짐승에 가까운 싸움을 보여 줬다.

하나 그렇다고 상대하기 쉽다는 건 아니었다.

괜히 남만의 주요 부족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 그 강함은 몸서리칠 정도의 수준이었다.

사람과 짐승이 화합을 맞추는 건 생각 이상으로 무서웠다.

물어뜯길 때 흘러나오는 비명은 처절했다.

“흥.”

야수 부족의 지도자, 검은 물소가 콧방귀를 꼈다.

“겨우 이 정도인가?”

검은 물소 앞에서 숫자는 무의미했다.

전력의 차이는 반 이상이 나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다.

개개인의 무력이 이렇게 차이가 나지 않는가.

“그래도 괜한 잔머리를 굴리지 않고, 전 병력을 이끌고 와준 것은 칭찬해 주마.”

설마하니 청화 연합군이 나뉘지 않고 삼천의 병력 그대로 쳐들어올 줄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 탓에 야수 부족이 전부 가담하게 되는 꼴이 되긴 했으나, 검은 물소는 그 점이 더욱 마음에 들었다.

어차피 연합군이야 숫자만 우세한 잡졸에 불과하다.

그렇게 , 생각했었다.

격렬하기 그지없는 전장이었다.

위에서 내려다봐도 어디가 우세한지 알 수 없을 정도의 난전이다.

그러나 그 비명이 난무하는 곳에서 눈에 띄는 이들이 있었다.

낯선 행색을 한 무인들이었다.

“저년은 내 거야!”

몸에 털이 수북한 전사가 눈을 벌겋게 떴다.

그 눈에 잡힌 건 다름 아닌 독봉, 당혜였다.

야수 부족은 사람보다는 짐승에 가까운 자들이었다.

성욕같이 원초적인 욕구도 배는 많았다.

싸우는 와중에도 성욕에 쌓였는지 가랑이를 주물럭거리면서 징그럽게 웃어 댔다.

“어딜! 내 거다!”

“범해 주마!”

저속할 정도의 웃음소리.

무려 여섯에 이르는 야수 부족의 전사가 늑대를 타고 당혜에게 덤벼들었다.

“어?”

먼지구름을 내면서 돌진하던 순간 입을 헤벌리고 있던 늑대가 눈을 껌뻑이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 위에 있던 야수 부족의 전사도 자연스레 탄성에 의하여 바깥으로 튕겨져 나가 바닥을 굴렀다.

목이 곧장 부러져 즉사. 영문 모를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가씨에게 그따위 망발을 내뱉다니……”

당혜의 앞, 호위 무사 원대식이 앞장섰다.

“독?”

나머지 아홉 명의 전사가 몸을 흠칫 떨며 급격히 멈춰 섰다.

본능이 머릿속에서 경고를 울렸다.

“용서하지 마라!”

“명!”

원대식이 앞장서자, 그 뒤로 당가의 무사들이 따른다.

당염 역시 수염을 휘날리며 독장을 날렸다.

“크아악!”

“아악!”

아홉 명의 전사 중 반절이 독에 중독됐는지, 복부를 부여잡고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그중 반은 가져온 가방에서 황급히 해독제를 꺼내 복용하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단하성의 검이 단죄하듯 그들의 목을 베었다.

“크앙!”

야수 부족의 전사들은 죄다 하직했으나, 그 아래 타고 있던 늑대들은 아니었다. 아직 멀쩡했다.

주인을 잃은 슬픔인지 아니면 분노인지 모를 울음소리를 토해 내면서 원수인 단하성에게 달려들었다.

몸집이 일반적인 수준을 넘어서, 그 괴력이나 위압감이 보통이 아니었다. 그것도 네 마리나 됐다.

“비켜.”

그러나 복수를 시도하기도 전에, 네 마리의 늑대는 몸이 붕 뜨면서 외부의 물리력에 날아갔다.

그냥 난 것만이 아니다. 바닥 위로 힘껏 던져졌다.

등 뒤로 ‘깨갱’하는 애처로운 비명이 들렸다.

주서천은 단하성을 지나쳐 마침 물어뜯길 위험에 빠진 연합군의 병사 뒷덜미를 잡았다.

“우왁!”

병사가 놀란 목소리를 내며 뒤로 물러났다.

그가 있던 자리에 늑대의 입이 부딪치며 딱 소리를 냈다.

“어딜!”

주서천이 오른손으로 주먹을 쥐고 대충 휘둘렀다.

빠아악!

철퇴가 된 주먹이 늑대의 머리를 후려쳤다.

두개골에 금이 가더니, 완전히 박살이 나버렸다.

“응?”

예리해진 감각 속에서 무언가가 잡힌다.

몸을 날리려던 걸 멈춰 서서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쐐애액!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무언가가 유성처럼 궤적을 그려 내면서 날아오는 게 보였다.

“화살?”

놀란 목소리가 절로 나왔다.

손이 반사적으로 움직여 목을 노리고 날아온 화살을 낚아했다.

남만에서 궁술은 사장된 기술이다. 아무도 쓰지 않는다.

그런데 화살이 날아왔으니 놀라울 따름이다.

어떻게 된 영문인가 싶어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살펴봤지만, 빽빽하게 자리 잡은 나무밖에 안 보였다.

혹시 하는 마음으로 눈에 내공을 불어 넣었다.

시력이 일시적으로 좋아지자 그 너머도 보였다.

‘궁수?’

두꺼운 나뭇가지 위에 앉아 시위에 화살을 거는 궁수가 있었는데, 매를 연상시키는 가면이 특징이었다.

“새의 힘도 빌릴 줄 알아?”

주서천이 짐짓 감탄하며 중얼거렸다.

‘날 봤어?’

매 가면도 놀랐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그럴 리 없다고 부정했다.

목표물과의 거리는 결코 가깝지 않다.

부족 내에서도 이 정도 시력을 갖춘 사람은 자신 외에 없다.

아마도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확인한 것뿐이라고 생각하면서 바로 옆의 나무 위로 장소를 이동했다.

끼이이익.

화살을 시위에 다시 걸고, 힘껏 잡아당긴다.

방금 전에 막은 것은 우연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며 눈에 힘을 팍 준 순간, 매 가면의 숨이 멈췄다.

그 눈동자에 비친 건 목표물인 주서천이 아니었다.

직선을 그려 내며 날아온 비수였다.

푹!

외마디 비명을 흘릴 틈도 없었다.

나무 위에 있던 매가면이 이마에 비수가 꽂힌 채 뒤로 넘어졌다.

벗겨진 가면 사이로 드러난 표정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불신과 경악의 감정이었다.

“대단하군……”

연합군의 천인장(千人將), 계달이 감탄했다.

그의 눈에 비치는 건 중원의 무림인, 그중에서도 압도적인 무위로 날뛰고 있는 주서천이었다.

식인 부족에 대한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솔직히 말해서 그대로 믿기에는 힘들었다.

예부터 청화 지방의 지휘관으로서 싸워 왔다.

그만큼 주요 부족과의 전쟁에도 경험이 많다는 의미다.

계달은 식인 부족이 얼마나 무서운 자들인지 안다.

그들의 이름만 들어도 몸서리쳤다.

기억 속의 공포로 새겨질 정도의 괴물들을 고작 육십이란 숫자로 사망자 하나 없이 전멸시켰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

‘군사께서 세력을 모으기 위해 거짓말을 하셨군.’

승전 소식은 으레 과장되기 마련이다.

아군의 사기를 올리고, 적군의 사기를 낮추기 위해서다.

승자가 공적을 높이기 위해 부풀려 말하는 건 이상한 게 아니었다.

그것의 일환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압도적인 승리를 거머쥐었다고 하면 참전할 세력도 늘어날 테니까.

전략 회의에서 주서천을 처음 봤을 때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아니, 도리어 의심까지 했다.

‘식인 부족이 정말 이자에게 패한 것이 맞는가?’

어려도 너무 어렸다.

솔직히 말해서 삼십 대의 무인이 승리의 주역이라고 해도 믿지 못했을 거다.

그런데 중원인들 중에서도 특히나 어려 보이는 자가 그 남만의 사제를 이겼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정찰병을 보내 확인해 보니 식인 부족이 지도상에서 사라진 건 확실했다.

하지만 의문이 많이 남았다.

물론 그렇다고 주군인 여리의 목숨을 구해 준 은인에게 가서 무례한 질문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별수 없이 찜찜한 마음을 남긴 채로 사원으로 왔는데 그의 무력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입을 벌렸다.

‘아니, 저 어린 나이에 어찌 저렇게 강하지?’

전장을 종횡무진하는 검수.

그의 검 앞에선 그 무엇도 방해가 되지 못했다.

전부 일검에 베였다.

맹수의 가죽을 가공한 것도 살과 함께 갈라지면서 피를 흩뿌렸고, 달려드는 늑대의 머리는 주먹질 한두 번에 박살이 났다.

몇 마리, 몇 명이 덤비건 전혀 문제없었다.

그저 그 앞에선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가는 야수 부족의 전사.

그것도 한 사람에게 저리 당한다는 게 충격적이었다.

그 외의 무림인들 역시 고강한 건 매한가지였으나, 그래도 수준이 달랐다. 머릿속에서 우레가 쳤다.

‘이길 수 있다.’

계달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주요 부족!

전장에 나서면서도 불안을 떨쳐 낼 수 없었다.

전력의 차이가 우세하지만 여전히 사기는 낮았다.

대수림 출신이라면 누구나 다 그 이름을 들으면 겁부터 먹는다.

나름 고수인 계달도 바짝 긴장한다.

마음 한구석의 불안감과 패배감.

그게 깊이 새겨져 지울 수 없었는데, 이제는 아니었다.

‘이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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