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六章 (115/254)

독의 근원이자 저주받은 땅, 만독지.

그곳이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고대에도 ‘존재했다.’ 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알려진 것이라곤 만 가지, 아니 셀 수 없는 숫자의 독이 있어 침입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 내부를 결코 들여다볼 수 없는 인세의 지옥이자 대수림 속의 수림.

만독지. 중원의 금지인 독혈곡조차 이곳에 비해선 그저 일부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악명 높았다.

“여전히 기분 나쁜 곳이군.”

물살이 거센 강의 너머로 지옥이 펼쳐져 있다.

그러나 상식을 넘어선 거목이 빽빽하게 자리 잡아 그 내부를 확인할 수도, 살펴볼 수 없었다.

무엇보다 보기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불온하고 꺼림칙한 기운이 강을 경계로 자리 잡고 있다.

일간에서는 만독지의 존재로 남만이 독의 천지가 되었다는 말도 있는데, 이곳을 보니 수긍이 갔다.

“무슨 일이냐.”

남자는 뒤에서부터 느껴지는 인기척에 반응했다.

“사원이 당했습니다.”

“청화군이 사원을 습격했나? 제법 많이 죽었겠군.”

남자가 코웃음을 쳤다.

“아닙니다. 식인 부족이 멸망했습니다.”

“무슨……?”

남자의 얼굴이 싹 굳었다.

눈이 화등잔만 해지고, 숨은 멈췄다.

불신과 경악이 뒤섞인 표정이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식인 부족이 멸망하다니!”

그들의 강함은 두말할 것도 없다.

주요 부족에겐 큰 전력이지만, 식인을 즐겨 하고 통제 불능의 미친놈들 밖에 없어서 같은 주요 부족들도 꺼려 했다.

그래도 거의 유일하다시피 대화가 가능한 사제와 필요한 것을 교환해서 협력을 유지할 수는 있었다.

“목격자가 한둘이 아닙니다. 아마 지금쯤 대수림 전체에 퍼지고 있을 겁니다.”

“이럴 수가…… 사제, 사제는 어떻게 됐느냐?”

사제는 남만의 강자 중에서도 손꼽힐 정도다.

비록 무인은 아니나, 그 힘은 화경의 고수 이상이다.

남만의 대전사조차 경외하는 괴물이었다.

“제단 위에서 시체로 발견됐습니다.”

“누구냐.”

남자가 눈을 매섭게 떴다.

“누가 사원을 습격했나.”

“그게…… 사원 내부에 생존자가 남아 있지 않아…… 컥!”

남자의 손이 사라졌다가 나타나 목을 붙잡았다.

“네놈이 할 일이 있다는 것에 감사해라. 그렇지 않았다면 진작 죽었을 테니까.”

“컥…… 흐…… 커흐흑!”

남자가 분노를 짓누르며 손을 놓았다.

“콜록, 콜록…… 아, 아직 정확하지는 않으나, 중원의 무림인이 온 것같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과연 적어도 천하백대고수가 내려왔다는 건가.”

남자가 조용히 생각에 잠겼고, 정보원은 벌겋게 손자국이 난 목덜미를 매만지면서 심호흡했다.

“누군지는 모르나 내 그놈을 쳐 죽이리라.”

그 목소리에서는 질척질척한 살의가 묻어났다.

‘일이 귀찮게 됐구나.’

남만의 주요 부족의 전력 중에서 식인 부족의 영향력은 생각 이상으로 크다.

그런데 열댓 명도 아니고, 아예 씨가 말라 버렸다.

특히 전사들만이 아니라, 그 지도자이자 강자였던 사제의 손실이 크나큰 손실이다.

“부족 회의를 열어라.”

아직 알려지지 않은 위협도 위협이지만 지금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은 전력의 큰 감소였다.

남만의 주요 부족은 그동안 순수한 힘을 이용하여 대수림을 지배하면서 온갖 행패를 부렸다.

마음에 드는 여자는 범하고, 부모 앞에서 자식을 죽이거나, 자식 앞에서 부모를 잔인하게 살해하였다.

그 외에도 식량을 빼앗거나, 혹은 짐승의 먹이를 던진 적도 여럿이었다.

온갖 야만적인 일이 있었으니 불만이 쌓이는 건 당연하다.

그저 힘 앞에 분노를 삭이고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힘이 조금이라도 약해지는 순간.

“전쟁이 일어날 거라고”

남만이 소란스럽다.

“식인 부족이 멸족했다.”

남만의 주요 부족, 식인 부족.

그리고 부족장이자 남만의 괴물, 사제.

그의 죽음이 얼마 지나지 않아 남만을 강타했다.

“그 괴물이 죽었다고? 정말인가?”

“그래. 지금 주요 부족이 각각 전사들을 보내 사원을 털고 있다고 하더군.”

“헛소문이 아니라 정말이었다고?”

“아니, 도대체 누가 그 괴물을 죽였단 말인가?”

남만이 식인 부족의 소식에 요동쳤다.

주요 부족과 대항하던 청화 지방은 물론이고, 각지로 뻗어 나갔다.

빽빽하게 늘어진 식물이나, 독물 등의 척박한 환경 탓에 소문이 느린 데도 불과하고 그 속도는 빨랐다.

남만에서 식인 부족의 존재감이나 영향력이 어떤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중원인일세.”

“엥? 중원인이라고?”

“설마하니 중원에서 군대를 보내온 겐가?”

“아닐세. 중원의 무림인들일세.”

“허어! 도무지 이해가 안 가는군.”

중원의 정세는 남만만큼 복잡하다.

고향 일로도 바쁠 텐데, 남만의 일에 끼어든 게 이해가 안 갔다.

“듣자 하니 누구를 찾으러 온 것 같은데……”

“누구?”

“그건 잘 모르겠군. 그러나 그들이 식인 부족과 격돌하게 된 연유는 대강 알고 있네.”

“그 식인귀들의 영역이 중원 앞까지 있지 않나. 부딪치는 것도 이상한 건 아니지.”

식인 부족은 사람이라면 가리지 않는다.

심지어 부족 내에서 노약자가 발생하게 되면 잡아먹기도 한다.

그런 족속들의 영역 안에 들어섰으니 습격을 당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한편 남만이 소란스러운 사이, 여리는 이 틈을 이용하여 각지의 세력에게 전령을 보내며 호소했다.

“대우(大廣)이자 대월의 후예들은 들으라. 도대체 언제까지 저 야만족들에게 모든 걸 내줄 생각인가!”

원래 그의 연설에는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었다.

그러나 정세가 바뀌자 그들의 마음도 움직였다.

무엇보다 최근 중원 무림인들이 청화에 있다는 걸 듣는 순간 하나같이 눈을 빛내기 시작했다.

수색대의 목적지는 만독지로 정해졌다.

그러나 떠나기 전부터 난항을 겪어야 했다.

저주받은 땅이라 불리는 만독지는 그 자체적으로도 문제지만 그 근방이 전부 주요 부족의 영역이었다.

그러다 보니 만독지에 진입하려면 필수 불가결적으로 주요 부족과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마침 서로 간의 목적지가 같으니, 임시로 힘을 합하는 건 어떻습니까?”

여리가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며 물었다.

한 세력을 이끄는 지도자답지 않게 소극적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사적인 자리에서는 생명의 은인에게 예의를 갖추는 것뿐이었다.

대외적인 자리에서 위엄 어린 모습을 보일 때는 수색대도 조금 놀랐다.

“아무래도 저 혼자 결정하기에는 힘든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일행과 상의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입니다.”

주서천은 주요 인물들을 불러 의논했다.

“속내가 뻔히 보이는군.”

당염이 불쾌한 심경을 드러냈다.

“협력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남만의 세력 다툼에 저희의 힘을 이용할 생각인 것 같소.”

단하성이 솔직 담백하게 이야기했다.

이번 일로 가장 득을 본 건 청화 지방군이었다.

남만의 세력 구도에서 식인 부족이 빠지자, 주요 부족에게 반감을 지니고 있던 세력이 움직이게 됐다.

그리고 청화 지방군은 일등 공신인 중원의 수색대를 아군으로 만들어 주변에 홍보할 생각이었다.

“예. 그러나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금 불쾌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수색대 역시 청화 지방군의 힘이 필요했다.

마은 같아선 스스로 해결하고 싶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건 무리였다.

은밀하게 잠입하려고 해도 주요 부족이 잔뜩 날이 서 있어서 불가능했고, 정면충돌은 아예 불가능하다.

외부의 협력이 없다면 신의를 구하는 건 불가능했다.

“제안을 받아들이겠습니다.”

“희소식이로군요.”

여리와 완채의 안색이 환해졌다.

청화 지방군은 이제 지방군의 수준이 아니었다.

세력이 불어나면서 얼마 전에 연합군으로 바뀌었다.

그 숫자가 무려 삼천여 명.

중원처럼 국가 규모의 세력 구도를 바꾸는 전쟁치곤 그 숫자가 적을지도 모르지만 남만의 입장에선 결코 적지 않은 숫자였다.

참고로, 식인 부족이 멸족하게 되고 수색대가 함께한다는 소문을 듣고 움직인 세력이 무려 이천이었다.

전대 왕조가 망하고 군대가 사라지면서 무법 지대가 된 이후로 이렇게 모인 건 또 처음이었다.

“물론, 협력하는 건 어디까지나 신의의 구출 전까지라는 걸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중원도 아닌 남만의 내전에 깊게 끼어들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물론입니다.”

완채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들이 지금 걱정하는 건, 중원의 수색대가 빠지게 되면 겨우 합류한 세력이 빠질 것 같아서였다.

일단 전쟁을 시작하게 되면 패배하지 않는 이상 병력을 빼지 않을 테니, 그건 문제없었다.

“또한 신의가 만독지에서 발견됐다는 건 사실이어야 할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서천이 말꼬리를 흐리며 서늘한 눈빛을 보냈다.

꿀꺽.

청화 연합군의 수뇌진이 침을 꿀꺽 삼켰다.

살의도 아닌 약간의 기운만으로도 압도당했다.

“무, 물론입니다. 정확한 정보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주서천이 내뿜은 기운을 회수하며 살짝 웃었다.

남들이 보는 앞에서 한 세력의 지도자에게 이러는 건 실례지만, 중원도 아닌 남만이니 강하게 나갔다.

무엇보다 혹시라도 정보가 잘못됐다거나, 허튼짓을 한다면 큰일이니 약간의 경고도 필요했다.

“자, 그러면 슬슬 전략 회의를 하도록 하겠소.”

짝짝.

완채가 손뼉을 쳐서 주의를 끌었다.

“일단 우리의 주적인 주요 부족에 대해서 알려드리겠소. 중원의 무림인들이 자리해 있으니, 연합군 여러분께서는 부디 양해해 주시기 바라오.”

남만의 주요 부족은 원래 넷이었다.

본래 그들은 중원과의 전쟁에서 패배하기 전에는 인적이 드문 만독지를 주 활동지로 삼아 숨어 지냈으나, 무법 지대가 된 이후로 무력을 통해 남만을 지배했다.

“첫째로, 야수 부족을 꼽을 수 있소.”

“야수 부족?”

중원의 무림인들에게는 익숙한 이름이었다.

얼마 전에 있었던 패륜아의 반란에 가담한 사도천의 사도팔문 중 한 곳이 아니었던가.

물론, 지금은 사도천주에 의하여 완전히 묵사발 났다.

“아아, 그러고 보니 중원 무림에도 비슷한 이름의 사도 문파가 있다고 들은 것 같은데…… 그 관계성은 잘 모르오.

다만, 주요 부족은 중원은커녕 근방과 교류조차 하지 않으니 아마 관계는 없을 거요.”

남만과 교류하는 중원의 세력이라고 해 봤자 운남이나 관부 정도다.

그 외에는 전무하다시피 없다.

심지어 관부의 경우에는 지배를 위해 관리까지 파견했지만, 다들 하나같이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바빠 전혀 신경 쓰지 않는 편에 속했다.

“야수 부족은 대수림의 사나운 짐승들을 길들였을 뿐만 아니라, 동물의 힘을 사용하는 신비한 힘을 지녔소.

예를 들어 곰의 힘이라거나, 늑대의 민첩함을 사용할 수 있다오. 숫자도 가장 많은데, 천여 명 정도 된다오.”

“언제나 생각하는 거지만, 남…… 어흠. 대수림의 주술은 신비하고 대단한 것 같구려.”

당염이 남만이라 말을 하려다가 얼른 고쳤다.

중원에서 남만이라는 명칭은 아무렇지 않게 사용되고 있지만 이곳에서 그리 불렀다간 눈총을 받는다.

남만이란 건 어디까지나 중원인이 남쪽의 미개한 민족이라며 낮잡아 부르던 말이었다.

적이라면 모를까, 아군이 되어 협력 관계가 된 이들 앞에서 지킬 건 지켜야 했다.

“그다음은 독충 부족이요. 그들은 대수림 최초로 만독지 내부로 진입해, 터전을 가꾼 자들이지.”

“그 만독지에서 말인가요?”

당혜가 놀라운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비교적 남만과 교류가 있던 점창파도 잘 몰랐지만, 당가는 독의 명가답게 만독지에 대해 알고 있었다.

알고 있다고 해도 일부에 불과하지만 독공을 수련한 무인으로서 경외를 표하고 있었다.

“대수림에서도 독의 대가로 알려진 부족이오. 물론, 만독지를 제 집처럼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은 아니외다. 그들의 영역은 어디까지나 초입 부근에 불과하오.”

“그래도 대단하군요.”

남만인은 중원인에 비해 기본적으로 독에 대한 내성이 있다.

심지어 무인이 아닌 일반인 중에도 있다.

그런 사람들이 접근조차 꺼려 하는 만독지인데, 그곳에서 살아간다는 건 굉장한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이름에도 알 수 있다시피, 그들은 만독지에서 살아가며 그곳의 독충을 수족처럼 부리게 됐소.

어떤 이는 몸이 독충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던데,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소. 수는 칠백 정도요.”

“으음…… 칠백이나……”

수색대에서도 신음이 흘러나왔다.

설마하니 만독지에서 그렇게 많은 이들이 살아가고 있을 줄은 몰랐다.

얼마나 강할지 상상이 안 갔다.

“그리고 그다음은 구희(嫗姬) 부족이 있소.”

“구희 부족?”

전의 둘과는 다르게 이름만으로는 추측이 불가능했다.

그러나 그 이름이 나오자 분위기가 돌변했다.

청화 연합군 한 사람 한 사람이 무거운 표정을 지은 걸 보면, 범상치 않은 부족임이 틀림없었다.

“구희 부족은 주요 부족 중에서도 가장 오래되었고, 신비롭고, 무서우며, 강맹하오. 그 숫자는 삼백여 명 밖에 되지 않지만 한 명 한 명이 일당백이오.”

“그들은 어떠한 부족입니까? 구희라면…… 혹시, 북해인들처럼 주로 여자들로 구성된 이들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조금 긴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는데, 괜찮겠습니까?”

“예.”

“역사의 기록에 의거하여, 대우와 대월이 있기도 전 최초의 국가인 반랑이 있었습니다. 그 국가를 세운 이가 바로 흥왕이란 자인데…… 전해져 내려오는 구전에 의하면, 그 부모가 신농씨(神農氏)의 오세손인 낙용군(絡龍軍)과, 제래(帝來)의 딸인 구희입니다.”

“신농씨? 염제(炎帝) 말입니까?”

중원 최초의 왕조, 하나라 이전에나 실존했다는 전설상의 군주인 삼황(三皇)의 이름이었다.

사람에게 농사를 본격적으로 알려준 이로서, 신격을 갖춘 군주였다.

그러나 이젠 전설 속의 이야기다.

“그렇소.”

어쨌거나 그 신농의 삼세손인 제명(帝明)에게는 서로 다른 배에서 낳은 두 아들이 있었는데, 각각 북쪽과 남쪽을 다스릴 제의와 녹속이었다.

그리고 제의의 아들이 화(火)의 화신이자 불사의 요정이라 불리는 구희의 아비인 제래이고, 녹속은 용왕의 딸과 결혼하여 훗날 용의 제왕이라 칭해질 낙용군의 아비였다.

“구희는 용궁에서 살던 낙용군과 잠시 만나 사랑에 빠져 잉태를 하게 되고, 백 개의 알을 낳게 되오.”

백 개의 알에서는 백 명의 아들이 태어난다.

그러나 그중 오십여 명이 후에 피치 못할 사정으로 용궁으로 돌아가게 된 낙용군을 따라 떠나 버린다.

나머지 오십여 명은 어머니인 구희를 따라 산에 남는데, 이들이 훗날 남만 최초의 왕조가 된다.

“그러나, 그 반랑이라는 나라는 일찍이 멸망하였소. 지금은 그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다만……”

“그 후예를 자처하는 겁니까?”

“예. 그러나 그 힘은 진짜요. 그 숫자는 비록 삼백여 명 밖에 되지 않지만, 실제로 구희의 피를 이었는지 몰라도 불을 다스리거냐, 혹은 불사에 가까울 정도의 재생력을 지니고 있소. 그러니 조심해야 하오.”

“흠. 그게 정말이란 말인가?”

당염이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수염을 쓰다듬었다.

고대의 신화 이야기가 나온 것도 이상한데 , 그 후예들이 불을 다스리고 불사에 가깝다고 한다.

남만의 주술이 신기한 것은 예로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너무 허무맹랑한 이야기라 믿기 힘들었다.

“중원의 무림인들이야말로 일격에 바위를 부수고, 수면 위를 걸어 다닌다고 들었소. 혹은 눈앞에서 그림자를 남기며 사라진다거나, 숨을 반나절 동안 참는다거나, 혹은 맥박이 하루에 열 번만 뛰어도 살아가는 기술이 있다던데…… 우리야말로 믿기지 않소.”

당염이 완채의 말을 듣고 머쓱한지 쓴웃음을 흘렸다.

중원의 무림인 중에서도 그 정도 되는 경지는 흔치 않으나, 그래도 확실히 존재한다.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무공이란 개념이 희박한 남만인 입장에선 허무맹랑한 이야기였다.

“주요 부족은 넷이라고 했는데, 그다음 부족은 어떤 자들입니까?”

주서천이 완채에게 물었다.

“원래는 넷이었으나, 이제는 셋이오. 나머지 한 곳이 식인 부족이었소.밀림도를 귀신같이 잘 다루고, 독충 부족에게 협력을 받아 제조한 독침으로 소리 소문 없이 의식을 빼앗아 갔지. 무엇보다 정말로 무서운 건 사제요. 그의 주술이 없는 게 천만다행이오.”

완채나 여리, 그리고 주변의 청화연합군의 수뇌부가 질색한 표정을 한 채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주서천은 그 반응을 보고 식인 부족이 생각 이상으로 거물이란 걸 깨달을 수 있었다.

“그나저나, 식인 부족은 그 악명과 다르게 숫자가 생각보다 적군요.”

“식인 부족은 인구의 변동이 심하오. 정기적으로 많아졌다가 줄어드오. 얼마 전까지는 사백에서 오백 정도였소.”

“그게 무슨 소리죠? 저희가 봤을 때는 많아 봤자 이백여 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요.”

당혜가 이해가 안 가는 표정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나머지 삼백여 명 정도가 노쇠하거나, 혹은 선천적으로 몸이 약한 자들이었소이다.”

“설마……”

“전부 잡아먹혔소.”

완채 대신 여리가 기가 질린 표정으로 답했다.

청화 연합군 삼천.

주요 부족 이천.

수로만 보면 청화 연합군이 압도적이다.

그러나 그렇게 유리하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이 정도 숫자임에도 청화 연합군은 불안해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적들은 국가 체제 붕괴 이후 힘만으로 남만을 굴복시킨 괴물들이니 당연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연합군에는 그 괴물들을 겨우 육십으로 박살 낸 중원 무림인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일단 부대 편성부터 해야겠군요.”

총지휘권은 여리와 완채에게 있었으나 수색대는 특별히 개별적인 지휘를 인정받게 됐다.

최대의 전력에게 맞춰 움직이는 거야 당연했고,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이상 독자적 행동도 허가했다.

청화 연합군의 수뇌들도 이를 뭐라하지 못했다.

“일단 독의 내성과 해독 능력부터 확인하도록 하죠.”

당혜가 손가락 끝에서 독액을 뚝뚝 흘리며 섬뜩하게 웃었다.

청화 연합군도 남만인이라서 독에 대한 능력만큼은 걱정할 것 없다.

그러나 문제는 중원인이었다.

당가야 중원에서도 독을 특화한 곳이다 보니, 남만인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진 않았다.

문제는 점창파였다.

무공이나 실전 경험은 대단하나 독에 얼마나 맞설 수 있을지가 문제였다.

다행히도 이들 중 대부분은 과거에 점창칠공자 단하성을 따라 독혈곡에서 살아 돌아온 자들이었다.

그때 고생한 보람이 있었는지, 독에 대한 내성도 제법 있고 해독 능력도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 해독제를 처방받거나, 혹은 예방제 같은 것을 투약 받았다.

“일단 싸움이 시작되면, 해독을 도와주는 건 힘들어요.”

당혜가 단하성에게 주의점을 알려주었다.

“그러니 되도록 독충 부족과는 부딪치지 말고, 야수 부족과 구희 부족을 부탁드릴게요.”

“과연, 이해했소. 신경 써 주셔서 고맙소.”

단하성은 당혜에게 해독제를 건네받으면서도 속으로 그녀의 아름다움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허어, 괜히 독봉이 아니로군. 집사람을 만나지 않았고, 이십 년만 젊었어도 미쳤을 거야.’

단하성은 사십 대의 중년이다.

집안이 집안이다 보니 혼례야 성년이 되자마자 올렸다.

다만 점창파의 적전제자로서 무공이라거나 온갖 전투에 불려 다니느라 집에 제대로 들어가질 못했다.

그래도 비록 집안끼리 정해 준 부부 관계이나, 마음이 맞아 잘 지내고 있다.

또한 아내 역시 소싯적에는 운남에서 미모가 곱기로 유명하였고, 마음씨 역시 좋아 금술도 좋았다.

‘그나저나, 주 대협과 독봉 소저는 무슨 관계지?’

남만에서 함께 지내다 보면 주서천과 당혜의 험악하면서도 왠지 모를 달달한(?) 대화를 들을 수 있다.

당혜가 깜짝 놀랄 정도로의 독설을 퍼붓고, 주서천이 그걸 아무렇지 않게 응수하면서 대화를 이어 간다.

대부분 남자, 아니 무인들조차 당혜의 앞에선 기가 죽기 마련인데 주서천은 아무렇지 않아 했다.

게다가 정파의 영웅과 독봉이 어울리다 보니 그야말로 선남선녀가 따로 없었다.

그래서 혹시 하는 마음으로 묻자, 

“점창칠공자께서 어떤 마음으로 그런 질문을 하시는 건지 궁금하네요. 혹여나 제가 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얼굴을 붉히면서 ‘저, 별로! 아무런 사이도 아니에요!’ 라고 할 줄 알았나요? 그게 아니라면, 오지랍을 떨어 혹여나 전장의 이슬로 사라질 도사들을 소개해 주시려고 그런 건가요?”

“아니 , 그게 저……”

“괜찮아요. 이해해요. 궁금하실 수도 있지요. 무엇보다 점창칠공자께서는 조금 있으면 무림의 젊은 후학들을 보고 ‘껄껄껄,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 라고 할 나이니까요. 어머나, 그런데 어쩌죠. 이제는 조금만 웃어도 폐가 찢어질 듯이 아파 올지도 모르는데…… 어떤 독이 좋을까?”

“쓸데 없는 말은 하지 않겠소, 소저.”

“좋아요. 전 이래서 능구렁이가 되기 전, 눈치 있는 남자들이 좋다니까요. 적어도 말귀를 알아먹잖아요?”

당혜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 *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