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식인 부족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목의 정맥을 끊었는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멧돼지처럼 돌격해 왔다.
당혜는 미간을 찌푸리곤, 손목을 틀어 줄을 빙글 돌려 식인 부족의 목을 감아 힘을 줬다.
숭덩.
보통의 줄이었다면 끊어졌겠지만, 어지간한 인간의 힘으로는 끊거나 잘라 낼 수 없다는 천잠사(天蠶絲)다.
끊어지기는커녕 전해져 오는 힘을 튕겨 낼 정도의 튼튼함을 지녔다.
식인 부족의 목이 깔끔하게 잘렸다.
이제 겨우 하나를 죽였다.
아직 적은 수두록했다.
당혜가 비단검을 회수한 사이에 식인 부족이 달려들었다.
“아가씨!”
호위 무사인 원대식이 얼른 접근하려 했다.
그러나 당혜는 그에게 오지 말라는 손짓을 한 뒤,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고 머리를 쪼갤 기세로 날아오는 밀림도를 최소한의 움직임 만으로 간단히 피해 냈다.
“크룩!”
전사에게 이성은 남아 있지 않지만, 전투에 의한 판단력은 평소의 단련 덕에 잔존해 있었다.
비록 본능밖에 남지 않았어도 적이 자신의 공격을 피한 뒤 어떻게 공격을 이을지 알고 있었다.
전사가 몸을 휙 돌려 밀림도를 크게 휘둘렀다.
부웅.
확실히 주술의 영향인지 힘의 세기나 속도가 올라갔다.
그러나 당혜는 당황하지 않고 일장을 날렸다.
퍼억!
식인 부족 전사가 복부에 손바닥을 맞고 멈췄다.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무적은 아니다.
당가의 자랑인 적련독장이 침투해 근육과 신경을 마비시켰다.
그 독이 이윽고 혈맥을 타고 뇌와 심장까지 번지면서 목숨을 끊어 버렸다.
“난 됐으니까.”
당혜가 턱짓으로 정면을 가리켰다.
“알겠습니다!”
그래도 호위 무사로서 신경 쓰이는지, 그다지 멀리 가지 않고 당혜의 근방에서 식인 부족을 상대했다.
“점창의 힘을 보여 줘라!”
단하성이 흐릿해졌다가 나타났다.
순간적인 움직임만큼은 제일이라는 탄현신법(彈鉉身法)이었다.
식인 부족의 밀림도가 애꿎은 허공만 벤다.
그리고 점창칠공자의 손에서 사일검법(射日劍法)이 펼쳐졌다.
‘일수초현(日輸初現)’
식인 부족의 시야에서 처음 나타난 것은 사람의 육신이 아니라, 검날이었다.
푸욱!
도저히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는 빠르기.
이름답게 쏘아진 검은 무시무시한 찌르기를 보였다.
무엇보다 섬뜩한 것은 사혈을 노리는 정확함이었다.
식인 부족의 전사가 혈을 찔려 즉사했다.
“캬아앗!”
“죽어!”
그사이에 셋이나 되는 식인 부족이 덤벼들었다.
단하성은 또다시 탄현신법을 펼쳐 잔상을 남기고 사라진 뒤, 사일검의 초식을 이어 찌르기를 쏘았다.
파바바밧!
눈부신 빛줄기가 쏘아졌다.
광기 어린 기세로 돌진하던 전사들이 연이은 찌르기를 맞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죽어랏!”
“정창의 힘을 보여 주마!”
활약하는 건 단하성만이 아니었다.
점창의 다른 제자들 역시 무공이 뛰어났다.
장문인 직전 제자에게만 허락된 절기인 사일검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혀를 내두르는 쾌검이었다.
“당가! 고개 숙이시오!”
“흐억!”
그리고 세 개의 조로 나뉘면서 당가와 점창이 뒤섞이자 즉흥적이지만 서로 합을 맞춰 도왔다.
‘점창이 괜히 실전 무학으로 이름이 높은 게 아니구나.’
‘즉흥적이지만 이렇게 맞춰 줄 수 있다니!’
‘ 대단하군.’
당가의 무사들은 점창의 제자들의 움직임에 순수하게 감탄했다.
‘과연, 점창파.’
주서천 역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전란의 시대를 떠올리면서 전장을 누빈 점창파를 떠올렸다.
점창의 명성은 무위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바로 전장 그 자체에 있다.
‘그리고 안 본 사이 그도 강해졌구나.’
주서천이 식인 부족을 넷이나 거뜬하게 처리하면서 단하성을 힐끗 쳐다봤다.
‘화경을 코앞에 둔 초절정인가. 독혈곡에서 구해 준 보람이 있었네. 이렇게 도움도 되고 다행이야.’
어째서인지 볼 때마다 위기에 빠져있기는 했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최종적으로 이렇게 도움이 됐다.
‘좋아. 이 정도면 믿고 맡겨도 되겠다.’
굳이 다른 조를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어졌다.
당혜와 단하성은 생각 이상으로 잘 해내고 있었다.
“속도를 올릴 테니, 바짝 따라오시오!”
주서천이 지면을 미끄러지듯이 돌파했다.
피- 융!
마치 사일검의 묘리처럼 그의 육신은 화살이 되어 쏘아졌다.
주서천이 지나간 자리는 쑥대밭이 됐다.
눈을 까뒤집고 달려든 식인 부족은 접근하기도 전에 화산의 검에 숭덩 잘려 간단하게 쓰러졌다.
한편 주서천의 조에 편성된 수색대원들은 죽을 맛이었다.
‘여기서 더 빨라지겠다고?’
‘괜히 매화정검이 아니군!’
‘모든 걸 정리할 생각인가!’
식인 부족의 전사는 결코 약하지 않다.
중원 기준으로도 하수는 없었다.
대부분이 이류나 일류였다.
간간히 고수에 속하는 절정의 경지에 이른 자도 있어 상대하기가 쉽지 않았다.
주술로 강화되어 더더욱 그랬다.
그런데 눈앞의 괴물, 화산파의 영웅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앞을 가로막는 걸 가볍게 처리해 나갔다.
그뿐이랴, 검강이나 검기도 줄기차게 사용했다.
도대체 지닌 내공이 얼마인지 궁금할 정도였다.
어쨌거나, 주서천 조의 수색대원들은 이 무시무시한 속도를 겨우 따라잡느라 입이 바싹 말랐다.
잠깐 쉬려고 해도 그럴 시간을 주지 않았다.
조금만 느려져도 주서천이 저 멀리 가버려서,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뒤쳐져 버릴 것 같아 힘을 쥐어 짜냈다.
그러다 보니 세 개로 나누어진 조끼리 차이가 생겼다.
당혜와 단하성의 조는 아직 사원의 위로 향하는 계단 앞에서 천천히 전진하고 있는 반면 주서천의 조는 벌써 계단의 중턱까지 올라 쾌속 진격했다.
“거기서 꼼짝 말고 있어! 내 지금 중원인을 끌고 와서 네놈 머리통을 날려 버릴 테니까!”
경사진 사원이었으나 방해는 되지 않았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평평한 땅 위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자유로웠다.
“쿠오오오-!”
위로 올라갈수록 전사들의 수준도 높아져만 갔다.
이류는 물론이고 일류도 없었다.
대부분이 절정, 혹은 초절정이었다.
숫자는 적지만 그만큼 강했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무려 칠 척이나 되는 전사였다.
강함을 증명하듯 몸에 새겨진 문신도 많았다.
온몸에 그려둔 그림과 글자가 불길한 빛에 반응하듯 꿈틀거렸는데, 그 광경이 심히 기이했다.
콰앙!
칠 척의 전사가 진각을 밟으며 몸을 날린다.
경사진 곳에서 몸을 날렸으니 누가 본다면 자살한다고 착각할 만한 장면이나 전혀 그렇지 않다.
부우우웅.
주서천의 머리 위로 그림자가 드리운다.
시선을 위로 올리니 정확히 이곳으로 떨어지는 전사가 보였다.
그리고 덩치만큼 남들보다 배는 커다란 밀림도를 오른손에 꽉 쥔 채, 있는 힘껏 아래로 내리찍었다.
휘잉.
쿠아아아앙―!
도라기보다는 철퇴에 가까운 파괴력이었다.
칠 척의 전사가 떨어진 순간 그 근방에 폭풍이 불었다.
수십 년 이상을 공들여 만든 장엄한 분위기의 계단이 처참하게 박살났고, 사원 중턱은 엉망진창이 됐다.
“으아악!”
“자, 잡아!”
수색대원들이 비명을 질렀다.
그들은 당장 날아가지 않기 위해서 바닥을 붙잡고 버렸다.
그러냐 오로지 돌진만 하던 식인 부족은 무사하지 못했다.
몇몇은 돌풍에 휘말려 사원 아래로 떨어졌다.
“하하하하!”
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던 사제가 웃었다.
“아무리 중원인이라 한들, 부족 최고의 전사 앞에선 조족지혈이로구나!”
일반 전사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강함.
주술도 여럿 부여할 수 있어 증폭 효과도 배는 많다.
사제는 입술을 혀로 적시며 사악하게 웃었다.
기분 나쁜 빛으로 번들거리는 눈에서는 식욕이 비쳤다.
‘저 정도 되는 고수라면 심장과 뇌에서 추출할 수 있는 기력도 적지 않으리라.벌써부터 흥분되는군. ’
중원 무림의 고수는 육질의 맛은 최악이지만, 그 힘만큼은 최고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주술에 발전이 없던 사제는 강해질 수 있다는 고양감에 심취했다.
“부족 최고의 전사여. 그놈울 데려와라. 설마하니 머리와 심장을 엉망으로 만든 건 아니겠지?”
다른 곳은 몰라도 뇌와 심장의 훼손이 심하면 제대로 힘을 흡수할 수 없다.
그래서 조심하라고 명령해 두었다.
물론 저 정도의 공격이라면 몸이 박살 났을지도 모르지만, 상대도 고수였으니 어느 정도 버텼으리라.
“……?”
사제가 웃음기를 지워 내며 머리를 옆으로 기울였다.
어떻게 된 것인지 전사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확인을 하려고 해도 전사의 덩치가 워낙 커서 그 앞의 상황이 보이지 않아 확인할 수가 없었다.
“아니, 걱정하지 마라.”
“……서, 설마!”
사제의 얼굴이 걸레짝처럼 일그러졌다.
“내 심장과 뇌는 멀쩡하다.”
푸욱!
근육과 살로 이루어진 등에 구멍이 나면서 검극이 빠져나왔다.
검신에는 희미한 자색의 강기가 실려 있었다.
피부 위에서 징그럽게 꿈틀거리던 문신도 힘을 잃고 멈췄다.
불길한 아지랑이 대신 피가 흘러나왔다.
“읏차.”
주서천이 검을 뽑고, 앞으로 고꾸라지려는 칠 척의 전사를 밀쳤다.
쿵! 쿠쿠쿵! 광!
육중한 몸이 경사를 타고 계단 아래로 데굴데굴 떨어진다.
부딪칠 때마다 소음을 냈다.
그리고 사원의 아래층-지면에 닿았을 때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해졌다.
“어, 어떻게!”
사제가 대경하며 입을 떡 벌렸다.
“부족 최고라 부를 만큼 강하긴 하더라.”
주서천이 비아냥거리지 않고 진심으로 말했다.
공격을 당한 순간, 무게를 높여 하체를 단단히 고정하고 호신강기까지 만들어내 공격에 대비했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아무리 자신이라 할지라도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튕겨 나갔으리라.
“이, 이, 아……!”
주서천은 사시나무처럼 떨어 대는 사제를 살펴봤다.
주변의 전사들에 비해 사제는 크지 않았다.
겨우 오 척 정도의 키였다.
지팡이만 무식하게 컸다.
눈두덩이는 움푹 파였고, 몸은 깡말랐다.
아무렇게나 자란 수염은 지저분했다.
머리카락도 없었다.
그러냐 눈빛만큼은 달랐다.
지옥의 불구덩이를 담은 것처럼 불타올랐는데, 신기하게도 녹색이었다.
“이노오오오오오오옴― !”
기어코 사제의 분노가 폭발했다.
크아아앙!
도저히 사람의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 외침이었다.
그리고 사제의 육체도 전사들처럼 변화했다.
여리기 그지없는 근육이 부풀어 오르더니, 울퉁불퉁해졌다.
힘줄과 퍼런 핏줄까지 돋았다.
상체의 근육이 크게 부풀어 오르면서 역삼각형을 만들었다.
그리고 문신에서는 안광과 같은 빛이 났다.
화르륵!
수염에 불이 붙었다.
아니, 수염이 불길로 변하여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안광에서 남만의 대수림을 연상시키는 녹색이 흘러나왔다.
아니, 불타오른다는 말이 맞았다.
비유적인 의미가 아니었다.
정말로 불길이 타오르듯이 뿜어져 나와 도저히 사람의 것으론 보이지 않았다.
수염도 마찬가지였다.
녹으로 물든 불길이 악마의 혀처럼 넘실거리면서 공기를 태웠다.
사제가 굽었던 등을 쫙 폈다.
고작 오 척밖에 되지 않았지만, 근육이 부풀어 오르면서 좀 더 커졌다.
‘사람이 아니잖아?’
천하의 주서천도 혀를 내둘렀다.
“후웁!”
그사이, 사제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안 그래도 부푼 가슴 근육이 기형적일 정도로 커졌다.
‘……?’
주서천이 몸을 흠칫 떨었다.
‘열기?’
숨을 멈출 정도로의 열기가 와 닿았다.
그러나 한서불침인 자신이 뜨거움을 느끼다니?
“피햇!”
직감적으로 무언가가 이상하다는 걸 느낀 주서천은 몸을 옆으로 던지며 수색대원들을 향해 경고했다.
“크아아아아아아!”
그리고 직후, 사제가 숨을 내쉬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뿜었다는 것이 맞았다.
화르르르륵!
숨이 아니었다.
목구멍 너머에서 뿜어져 나온 건 주변의 대기를 전부 불살라 버리는 녹색의 불이었다.
고작 어린아이 머리만 한 불덩이 같은 게 아니다.
부채꼴처럼 쫙 펼쳐지면서 사원의 측면을 뒤덮었다.
“끄아악!”
“아악!”
주술로 인해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식인 부족의 전사들이었으나, 문신 째로 녹아내리며 비명을 질렀다.
그 비명이 무척이나 처절해서 아래에서 격렬한 전투를 잇고 있던 무림인이나 전사가 움찔 떨었다.
“무슨……”
주서천도 개구리처럼 엎드린 채 말을 잇지 못했다.
‘맞으면 나라도 끝난다.’
식인 부족의 지도자이니 보통이 아닐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로 무시무시할 줄은 몰랐다.
한서불침이 괜히 한서불침이 아니다.
신체가 완전히 변형되면서 차가움과 뜨거움에 내성이 생겼다.
그뿐이랴.
환골탈태까지 더했으니 불을 몸에 뒤집어쓰지 않는 이상 열기에는 끄떡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아슬아슬하게 피해 내긴 했지만, 저 불의 열기만으로 몸이 달아올랐다.
피부 위로 닭살이 돋고, 땀도 분비되면서 흘러내렸다.
“으으으! 쥐새끼 같은 놈!”
사제가 소음을 섞어 놓은 것처럼 기괴한 목소리로 짜증을 냈다.
분노에 따라 불로 된 수염이 타올랐다.
“죽엇!”
부웅.
사제가 괴이할 정도로 부푼 오른팔을 휘둘렀다.
불꽃은 없었지만, 그래도 위력이 보통이 아니었다.
고작 팔을 휘두른 것인데 돌풍이 크게 불었다.
살아남은 수색대원들이 날아가지 않으려고 웅크렸다.
“미친!”
주서천이 실로 오랜만에 진심을 담아 욕설을 내뱉었다.
허벅지에 힘을 주고 바닥을 튕겨 위로 올랐다.
휘리리릭!
공중에 떠오른 그의 몸이 팽이처럼 팽그르르 돌았다.
손에 쥐고 있던 검이 사제의 팔을 그었다.
푸슈슛!
팔 위로 무수한 혈선이 그어졌다.
피가 잔뜩 튀면서 허공에 흩뿌려졌다.
“크아악! 이 잡놈이!”
사제가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지르며 마구 날뛰었다.
그럴 때마다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지면이 흔들렸다.
밟은 곳마다 움푹 파이면서 그 파편이 주변에 비산하는 것이 장관이었다.
제자리에 착지한 주서천은 사제의 마구잡이 공격을 침착하게 피했다.
그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검강을 썼는데도 자르지 못했다.’
방금 전에 공중에서 돌 때 검기가 아니라 검강을 만들어 냈다.
원래라면 팔이 뎅겅 잘렸어야 했다.
그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다.
이 이름 모를 주술이 호신강기를 두른 효과를 내고 있다.
“어디 이것도 피할 수 있나 보자.”
화르륵!
화염으로 타오르는 수염이 넘실거리더니만, 등 뒤 너머 여섯 개나 되는 화염의 구를 만들어 냈다.
“허어!”
사제의 주술은 보면 볼수록 경악스러웠다.
화염의 구를 보면 삼매진화 같은 것이 아니다. 그 이상이다.
두둥실 떠오르고 있는 걸 보면 확실하다.
죽어랏!
사제의 목소리에 맞추듯, 화염의 구가 움직였다.
여섯 개로 된 불덩이는 빙글빙글 돌면서 날아왔다.
‘저것도 위험하다!’
아까 전의 입에서 토해 낸 불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약간의 열기가 느껴진다. 척 봐도 위험했다.
주서천은 아까 전처럼 옆으로 몸을 날려 경사면을 굴렀다. 아래로 떨어지기는 했지만 도중에 멈췄다.
“어?”
그러나 안심하기도 잠시.
정면을 향해 날아간 불덩어리가 방향을 틀어 쫓아오는 것이 보였다.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을 텐데!”
사제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번졌다.
불덩어리는 공중에 두둥실 떠다니는 것만이 아니었다.
의지로 이어진 끈이 마음대로 조종하고 있었다.
그 말을 들은 주서천이 가볍게 혀를 찼다.
호신강기를 정면으로 펼쳐서 불덩어리를 막아 내려 했다.
그러나 그 순간.
감각 속에서 무언가가 잡혔다.
머리를 드니 어디선가 날아온 사람이 보였다.
아니 , 정확히 말해선 목에 구멍이 뚫린 식인 부족의 시신이었다.
퍼어엉!
화살처럼 쏘아지던 불덩어리는 날아온 시신과 부딪쳤다.
그리고 그대로 굉음을 터뜨리며 폭발했다.
뭉쳐 있던 화염의 구가 폭발로 인해 안개처럼 흩어지면서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어떤 연놈이냐!”
사제가 웃음을 지우더니 분노의 일갈을 터뜨렸다.
그리고 그사이에 어디선가 시신이 하나 더 날아와, 다섯 개 남은 화염의 구 중 하나와 부딪쳤다.
쿠아아앙!
귀청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의 폭음.
공중에서 화려한 폭발이 일어나면서 화염의 구가 하나 더 줄었다.
“끄응!”
사제가 지팡이의 끝으로 지면을 두드렸다.
네 개밖에 남지 않은 화염의 구가 선회했다.
녹색으로 이글거리는 안광이 시신이 날아온 곳으로 향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것처럼 보였다.
“내 눈을 속이진 못한다!”
“소령!”
주서천이 반갑다는 듯이 웃었다.
당가와 점창파 사이에 숨어 식인 부족을 상대하고 있던 소령이 유령곡주의 위기를 느끼고 달려왔다.
“이 버러지들이이이이이!”
사제가 분노의 외침과 동시에 지팡이를 힘껏 내리찍었다.
쿠우우웅!
지팡이 끝을 중심으로 지면이 움푹 내려앉았다.
지반이 뒤집히면서 위로 튀었다.
물리적인 충격만이 아니다.
스멀스멀 피어오르던 불길한 기운이 파도가 되어 주서천과 소령을 훑었다.
“흡!”
주서천이 태아를 들어 바닥에 꽂고 버텼다.
소령은 충격파에 날아갔다가, 공중제비를 돌아 착지했다.
사제는 이때다 싶어 지팡이를 들었다.
두개골에서 녹색의 안광이 뿜어지더니, 불덩어리가 움직였다.
시뻘건 불길로 된 궤적을 남기는 화염의 구.
네 개의 구가 각각 둘로 나뉘어 주서천과 소령을 노렸다.
타앗!
제일 먼저 반응한 건 소령이었다.
소령은 유령곡주의 몸부터 구하기 위해서 그의 앞으로 몸을 던졌다.
뒤나 옆에서 불덩어리가 날아오건 말건 상관하지 않았다.
자신보다는 유령곡주가 우선이었다.
“소령!”
주서천도 소령을 향해서 달렸다.
괜한 위험으로 그녀를 잃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화염의 구가 한곳을 향해 사방에서 떨어졌다.
쾅! 콰아앙! 콰앙!
불꽃끼리 격돌하면서 몸을 불사른다.
폭발을 일으키면서 주변의 공기를 없애 버리고, 화염을 토해 냈다.
용암과 견줄 만큼의 열기가 주변의 계단이나 경사를 녹여 버리면서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주 대협!”
격렬한 전투 와중에도 주서천에게서 눈을 떼지 않던 단하성이 그걸 보고 비명을 질렀다.
수색대의 표정도 그다지 좋지 못했다.
그들도 방금 전까지 저 불덩어리가 어떤 위력을 지녔는지 봐 왔다.
“안 돼!”
“주서천 대협이 당하시다니!”
여기저기서 안타까워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독봉, 당혜도 제자리에 서서 위를 올려다본다.
아직도 거세게 타오르는 불길을 눈에 담았다.
그녀의 눈빛에는 어떠한 감정도 묻어 있지 않았다.
얼음처럼 차가운 감정만이 감돌았다.
수면 아래와도 같은 고요함.
“아니.”
당혜가 부정했다.
“저렇게 쉽게 당할 인간이 아니지.”
현실을 외면하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진리라도 본 표정이었다.
광기나 외면이 아닌 ‘확신’이었다.
원대식은 모시는 주인의 말을 듣고설마 하는 표정으로 불꽃을 쳐다보았다.
“흥!”
사제가 콧방귀를 꼈다.
“머리나 심장은 물론이고 뼈조차 남아 있지 않겠구나. 날 화나게 한 대가이니……”
파아앗!
사제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정면의 불꽃이 둘로 갈라지면서 비수가 튀어나와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설마!”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저 폭발에 정통으로 휘말렸으니 살아 있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 믿음은 보기 좋게 무너졌다.
주서천이 죽었다고 생각한 다른 이들의 예상조차 빗나갔다.
구름처럼 피어오른 불꽃을 가르면서 튀어나온 건 화상 하나 입지 않은 주서천과 소령이었다.
‘어떻게!’
너무 어이가 없어 차마 말도 내뱉지 못했다.
“$간다.”
주서천이 조용하게 속삭인다.
폭발에 휘말리기 전, 소령을 감싸 안아 호신강기를 최대한으로 펼쳤다.
그 탓에 내공의 소모가 심했다.
휘이이잉!
갈라 버린 건 불꽃만이 아니다.
대기를 나누면서 그의 육신이 정면의 사제를 향해 쏘아졌다.
층층이 겹쳐진 대기의 벽이 사라졌고, 지나쳐 온 주서천이 강기를 실은 태아로 힘껏 수직선을 그었다.
“어림없다아!”
사제가 대응하듯 지팡이를 수평으로 들었다.
한 손이 아닌 양손으로 쥐어 수비에 집중했다.
까아아앙!
검과 지팡이가 부딪치면서 금속음을 토해 냈다.
어디 한쪽도 물러나지 않으려고 했다.
사제가 근육을 부풀리며 힘을 준다.
주술에 반응하듯 문신이 피부 위로 튀어나올 정도로 꿈틀거렸다.
“이거 알고 있나?”
주서천가 입꼬리를 비틀어 올려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