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三章 (112/254)

휙!

오른발을 축으로 삼아 빙글 돌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밟고 있던 자리에 밀림도가 떨어져 내렸다.

나무도 깔끔하게 잘라 내는 칼날이 지면에 부딪치면서 시끄러운 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북서 방향, 독침!’

주서천이 그 와중에 주변의 움직임까지 포착했다.

눈동자는 상하좌우 무서운 속도로 움직이고, 예민해진 감각은 그물이 되어 주변을 뒤덮은 상태였다.

“이리 와라!”

오른손은 내버려 두고, 왼손을 쭉 뻗어서 팔이 잘린 전사의 목을 낚아채서 방패로 삼았다.

북서 방향에서 날아온 독침 여럿이 방패로 내세운 전사의 몸에 수두룩하게 박혔다.

“당가!”

“알아.”

당혜가 품 안에서 어린아이 머리만한 구를 꺼냈다.

아무런 무늬 없는 흑색이었다.

“당가의 힘을 보여 줄게.”

핑그르르!

손바닥에 힘을 주고, 공을 위로 튕겨 올린다.

회전력을 더했는지 공중에서 화려하게 회전했다.

신기하게도 그 과정은 전혀 거칠지 않았다.

공은 물 위를 흐르듯, 부드럽고 천천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슴 높이에 도착한 순간 당혜의 쌍장이 공을 힘껏 후려쳤다.

타앙!

“잠깐, 저거 설마……”

주서천이 날아가는 공을 보고 질겁했다.

전란의 시대에서 사용됐다는 당가의 암기가 떠올랐다.

“천뢰구(天雷球).”

콰아아아아앙!

식인 부족 한가운데에 도착한 공이 굉음과 더불어 불꽃을 토해 냈다.

천지를 뒤흔들 정도의 폭발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수천 개의 침이 발산됐다.

“으아악!”

“끄악!”

“캬아아악!”

여기저기서 식인 부족들의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

화염에 휘말렸을 뿐만 아니라, 몸에 침이 박혔다.

침이 그냥 박힌 것도 아니고, 압축됐다가 폭발의 힘을 빌려 날아가 그만큼 파괴력도 보통이 아니었다.

살은 물론이고 단단한 뼈대까지 구멍을 내고 사라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경천동지할 위력.

여기에 정파인들이 있었다면 더 이상 무공이 아니지 않냐며 화를 냈을 정도다.

‘아니, 천뢰구가 왜 벌써 나와?’

주서천은 피부에 확 와 닿는 화염의 열기를 느끼면서 당황을 금치 못했다.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정사대전이 끝나고 전란의 시대에 개발됐을 텐데?’

천뢰구는 아무리 당가라 할지라도 정파, 아니 무림 정서상 사용하기에는 꺼림칙한 무기다.

독과 암기는 그래도 아슬아슬하게 무공의 반열에 어찌어찌 있지만, 천뢰구는 그냥 폭약이니까.

무를 숭상하는 자들에게는 혐오 그 자체인 병기였다.

그러나 전란으로 인해 몇 번이나 위기를 겪게 된 이후, 당가가 위기감을 느껴 개발해 사용하게 된다.

다만, 그때 당시에도 사용의 유무로 말이 많았던 무기 였다.

“너무 그런 표정 짓지마. 실험해보려고 가져온 거니까. 그리고 적이 야만족이니 사용한 거고. 아무리 나라도 중원에서 이런 걸 함부로 쓰지는 않아.”

당혜가 주서천의 당황한 얼굴을 보고 천뢰구에 생리적 혐오를 느끼고 있다 지레짐작해 설명했다.

“확실히 그가 말한 대로 위력은 대단하지만, 드는 돈에 비해 그렇게 효율적이지는 않네.”

“그?”

“제갈 공자. 전에 금의상단에 머물 때, 당신의 동생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니 친절하게 알려 주더라.”

‘너였냐!’

생각해 보니 당가는 과거에도 제갈승계에게 관심을 많이 보였다.

죽통노의 설계도도 돈으로 사지 않았던가.

아무래도 알게 모르게 당혜가 제갈승계를 찾아가서 기관 장치에 대해서 물어본 모양이었다.

제갈승계야 기관 이야기면 환장하는 놈이니, 분명 신이 나서 여러 가지를 알려 주었으리라.

“으, 으으……!”

“아, 악마……”

“악마다! 귀신이다!”

천뢰구에 사십에서 오십여 명이 당했다.

그중 반 이상이 사망하고, 나머지 반은 중상을 입었다.

식인 부족들이 이제야 반응했다.

두려움과 경계, 그리고 분노로 가득한 시선으로 일행을 노려봤다.

“사람을 먹는 것들 주제에 악마라고?”

주서천이 옷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며 어이없어했다.

“가당치도 않네.”

당혜가 눈썹을 구부렸다.

“한가하게 말을 나눌 때는 아닌 것 같습니다!”

원대식이 좁혀 오는 포위망을 느끼고 소리쳤다.

“이대로 돌파한다!”

당염이 주먹을 쥐고 머리 위로 올렸다.

“와아아아아!”

“아가씨를 따르라!”

“당가의 무서움을 보여 줘라!”

천뢰구의 힘으로 식인 부족은 압도 당했지만 당가는 그 반대였다.

세가의 힘에 전율하며 사기가 올랐다.

“가자아!”

주서천이 마무리를 하듯, 소리를 힘껏 질렀다.

마치 소림의 사자후처럼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우오오옷!”

측면이냐 후위는 당가에게 맡긴다.

할 일은 앞으로 돌진하여 달려드는 식인 부족을 제거하는 일이었다.

파바바밧!

“아악!”

“칵!”

식인 부족은 확실히 강하다.

그러나 중원 무림으로 따지자면 대단해봤자 절정 정도의 수준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훤히 드러난 곳보다는 대수림 속에서의 전투에 특화되어 있다.

이렇게 뻥 뚫린 곳에선 본신의 무력을 전부 내보이지 못했다.

주서천은 이를 노리고 더더욱 밀어붙이며 안으로 파고들었다.

“여기 있소!”

“살려 주시오!”

사원의 측면 부분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드디어 정면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중앙의 끝, 쇠창살로 된 우리 안에 갇힌 중원인들이 보였다.

점창파가 틀림없었다.

“어?”

안법으로 시력을 높여 우리 안의 얼굴들을 확인하던 중 낯이 익은 얼굴이 보였다.

상대방도 주서천을 보고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점창칠공자?”

“주 대협이 아닌가!”

과거, 독혈곡에서 만나 함께 칠각사를 사냥했던 무인.

점창칠공자인 단하성이 그곳에 있었다.

아와와와!

한가하게 인사를 할 틈은 없었다.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괴성들이 경각심을 높였다.

주서천은 다리에 힘을 주고 지면을 박찼다.

“막아라!”

사원의 꼭대기에서 사제가 고함을 지르자, 열에 이르는 식인 부족이 길목을 막아섰다.

“크아압!”

주서천이 맹수처럼 포효했다.

“……!”

단순히 소리만 친 게 아니다.

목소리에 내공이 실렸다.

열 명의 식인 부족이 동시에 멈칫했다.

충격이라도 받은 것인지 동공은 풀렸고, 근육은 말을 듣지 않는지 미세하게 떨기만 했다.

“둘!”

사형 선고가 내려진다.

식인 부족에게 접근해서 검을 재빠르게 두 번 휘둘렀다.

쐐애액!

바람이 터지면서 검이 날아간 순간, 식인 부족이 일시적인 마비에 풀리면서 막기 위해 밀림도를 들었다.

서걱!

그러나 검에 닿은 순간, 남만에서도 두께와 튼튼함을 자랑하는 밀림도조차 물처 럼 깨끗하게 베였다.

식인 부족이 대경하면서 눈을 부릅떴다.

작아진 동공에 비치는 건 검에 실린 강기였다.

“칵!”

식인 부족이 외마디 비명을 흘리면서 절명했다.

밀림도 다음으로는 몸뚱이가 깔끔하게 양단됐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둘이나 당했다.

워낙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어안이 벙벙했다.

“괴물인가!”

열이 여덟이 됐다.

남은 식인 부족이 경악했다.

주서천은 그들이 놀라건 말건 상관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사냥에 나섰다.

“둘러싸!”

아까 전까지만 해도 적을 우습게 여기던 식인 부족은 생각을 고쳤다.

긴장으로 인해 땀이 흘렀다.

파바밧!

여덟의 식인 부족이 신속하게 움직였다.

일대일의 결투 같은 건 없다.

위기를 감지하고 사냥에 나섰다.

“죽여라!”

여덟이 넷으로 나뉘어서 공격을 가했다.

사방에서 각각 극독을 바른 침이 날아오고, 그 뒤로는 밀림도를 쥔 식인 부족이 살의로 넘실거리는 안광을 내뿜었다.

“핫!”

주서천이 기합을 터뜨렸다.

목소리 만으로 공기를 터뜨릴 정도의 크기였다.

소리를 내질러 공기의 흐름을 바꾼다거나 바람을 일으키지는 않았다.

그건 음공(音功)의 영역이다.

그 대신 자리에서 위로 뛰어올랐다.

방금 전까지 밟고 있던 자리에 독침이 날아와 서로 부딪쳤다.

‘걸렸다!’

멍청한 놈!’

식인 부족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독침은 속임수. 뛰도록 만들기 위한 함정이다.

사람은 날지 못한다.

공중에서의 행동은 제한되어 있다.

내려올 때를 노려서 밀림도를 휘둘렀다.

쐐액!

매섭게 찢어지는 공기.

소리가 길게 늘어진다.

밀림도가 잎사귀나 덩굴 대신 대기를 쪼개면서 덮쳤다.

목표는 공중, 주서천. 피할 수 없도록 사방을 노렸다.

미세한 틈도 주지 않으려고 최대한 접근했다.

무엇보다 도기가 실렸다. 설사 약간 빗나간다 할지라도, 도신을 두른 기의 칼날에 베이리라 믿었다.

그러나 그 믿음은 산산조각 났다.

‘검추(劍維)!’

만중검에는 초식이 별로 없다.

동공이기도 한 만중검은 어디까지나 무게를 늘리는 것이 전부다.

그러나 검초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그중에는 오성의 성취를 이루면 사용할 수 있는 초식이 있다.

검추.

양손으로 검을 쥔다. 그리고 지면을 향한다.

근력은 물론이고 내공까지 전부 퍼부어, 무게를 증폭시켰다.

위에서 아래를 향하며 직선을 그려내는 검.

무게의 증가에 따라 추락하는 속도가 급증한다.

워낙 빨라서 떨어지는 게 아니라,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스윽.

“……!”

식인 부족이 놀라 숨을 들이쉬었다.

도병을 쥔 손에서 감각이 없었다.

애꿎은 빈 허공만 베었다.

“이럴 수가!”

네 개의 밀림도가 전부 빗나갔다.

옷깃조차 스치지 못했다.

전력을 낸 것이기에 그만큼 충격이 컸다.

그리고 그 놀라움의 감정을 추스를 틈도 없이 곧바로 이어진 폭음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콰콰콰광!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무게가 깃든 검이 지면과 충돌했다.

마치 송곳처럼 바닥에 틀어박혔다.

박힌 것만이 아니다. 완전히 박살이 났다.

지반이 뒤집히고, 그 안의 자갈들이 위로 비산했다.

그중에선 뾰족하게 세워진 바위도 있었다.

그 바위는 튕겨져 나가 근처의 식인 부족의 흉부를 꿰뚫었다.

“커헉!”

시뻘건 핏물이 튀었다.

바로 옆에 서 있던 식인 부족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당황하다가 지면에서 솟구쳐 나온 흉기들을 보지 못하고 몸에 허용했다.

투두두둑!

식인 부족의 오밀조밀한 근육 위로 파편이 무수히 박혔다.

피부 안의 장기에 구멍이 났다.

“아악!”

“커허억!”

식인 부족이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

접근해 있던 넷이 전부 충격파와 파편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셋!”

주서천이 숫자를 센다.

저승사자의 호명이었다.

타앗!

다리 근육이 부풀어 오른다.

용천혈에서 내력이 뿜어져 나왔다.

주서천이 안광을 남기며 사라졌다.

‘안 돼!’

독침을 쏘았던 식인 부족이 위기를 느끼고 손을 허리춤의 밀림도로 옮겼다.

그러나 주서천이 보고 놔둘 리 없다.

고속으로 이동한 그의 육신이 화려한 검 줄기를 내뿜었다.

“캬아악!”

“끄악!”

목숨 줄을 겨우 붙잡고 있던 식인 부족.

그러나 그들은 도병에 손도 대지 못한 채 나가떨어졌다.

여덟의 식인 부족.

그들의 목숨을 끊는 데는 일각조차 걸리지 않았다.

순식간에 전장이 정리됐다.

“콜록콜록. 다 좋은데 너무 요란하단 말이지.”

주서천이 뭉게뭉게 피어오른 먼지 속을 유유히 빠져나왔다.

“허어……”

점창칠공자, 단하성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저 입을 떡 벌린 채 얼빠진 소리를 냈다.

“매화정검!”

“그 무명(武名)은 거짓이 아니었군……”

점창파의 제자들도 놀란 건 매한가지였다.

하나같이 말을 잇지 못하고 주서천의 신위에 경악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들을 괴롭혔던 식인 부족이다.

결코 이렇게 쉽게 당할 적들이 아니다.

그런데 그걸 비웃기라도 하듯, 눈 깜짝할 사이에 신속한 움직임으로 간단히 처리했다.

‘또 이렇게 도움을 받을 줄이야.’

단하성은 독혈곡 때의 일을 떠올렸다.

희망을 잃고 절망에 빠졌을 때.

그가 영웅처럼 나타나 목숨을 구해 줬다.

그 은혜를 결코 잊지 못한다.

“괜찮으십니까?”

주서천이 우리 앞에 다가가 검을 휘둘렀다.

쇠창살이 깨끗하게 잘려 바닥에 떨어지며 소리를 냈다.

“이렇게 또 목숨을 빚질 줄이야. 정말로 고맙네.”

단하성이 밖으로 나와 진심 어린 인사를 했다.

“오랜만입니다. 반갑게 인사라도 하고 싶지만, 아쉽게도 그럴 시간이 없군요.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내 그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산공독에 당해 내공이 제한되어 있네. 폐를 끼쳐 미안하군.”

“괜찮습니다. 독의 전문가도 함께왔습니다.”

주서천이 걱정 말라는 듯 뒤돌아서 당가를 불렀다.

“여기! 해독 좀 해 주십시오!”

“지금 놀리는 거지?”

당혜가 이를 뿌드득 갈았다.

피로 흠뻑 젖은 채 식인 부족의 포위망을 이제 막 겨우겨우 돌파했다.

주서천이 날뛰면서 이목을 대부분 끌긴 했지만, 그래도 전부는 아니었다.

당가도 싸우면서 왔다.

“당가!”

“다행이군!”

“살았어!”

당가를 확인한 점창파의 안색이 환해졌다.

한편 사원의 꼭대기.

대리석으로 된 제단 앞에 선 사제는 아래에서 일어나는 광경을 하나부터 열까지 보고 부들부들 떨었다.

공포가 아니다.

한계를 넘어선 분노로 인해 몸이 저절로 떨렸다.

혈압이 올라가며 눈이 벌게졌다.

뿌드득.

사람의 뼈로 만들어진 지팡이에 금이 갔다.

목에 걸린 뼈 목걸이도 파르르 떨면서 소리를 냈다.

“감히……”

사제의 분노는 용암처럼 부글부글 들끓었다.

노기에 반응하듯 시커먼 아지랑이 같은 것이 스멀스멀 피어오르면서 바닥을 기었다.

‘큰일이다.’

‘사제께서 분노하셨다.’

호위전사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들은 겁먹은 어린아이처럼 오들오들 떨었다.

“쓸모없는 것들!”

사제의 입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그 위엄 어린 목소리가 남만의 대수림에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그의 분노에 전사들이 곧장 반응했다.

몸을 움찔 떨고, 두려운 표정으로 한쪽 무릎을 꿇었다.

“감히 신성한 의식을 방해하게 내버려 둔 것도 모자라서 먹이까지 놓쳐? 이 버러지들아!”

머리에 열이 뻗어 진정할 수가 없었다.

악을 쓰듯이 욕설을 내뱉으며 전사들의 무능을 지적했다.

그러나 식인 부족의 어떠한 전사들도 감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자존심이 상하기는커녕 두려워했다.

“됐다! 내 직접 지휘하겠다!”

사제의 눈에서 녹색의 광채가 흘러나왔다.

“중원의 무림인들이여! 남만에 발을 들인다는 것이 어떠한 의미인지 똑똑히 알려 주도록 하마!”

사제가 오른손에 쥔 뼈로 된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

무려 육 척이나 되는 길이였는데, 소재가 전부 사람의 뼈였다.

신기한 것은 그 색이 전부 검었다.

굳이 가까이 가지 않고 멀리서만 봐도 기분이 나빠졌다.

생리적인 혐오감이 솟아서 무척 꺼림칙했다.

파앗!

지팡이의 끝, 두개골에서 불길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점점 퍼지더니 사원 전체를 뒤덮었다.

“크, 아, 앗!”

“캬하아앗!”

“우오옷!”

남만의 전사, 식인 부족이 빛에 반응을 했다.

정확히 말해선 피부 위의 문양이었다.

시커먼 빛이 닿자마자 문자인지 그림인지도 모를 문신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렸는데 무척 기이했다.

“크아아아아!”

“크아앗!”

아까 전의 묘한 괴성은 없었다.

그 대신 이성을 상실한 것처럼, 잔뜩 흥분한 울음소리를 토해 냈다.

우르르르!

천지가 뒤흔들렸다.

지진이 일어난 게 아니다.

정확히는 땅이 아닌 대기가 흔들리는 게 맞았다.

사원을 감싸 안 듯 퍼지던 불길한 빛은 백오십 가량의 식인 부족에게 스며들어서야 확산을 멈췄다.

사원의 아래, 이상 현상을 목격한 중원인들이 동요했다.

“허어! 기괴하구나!”

사람의 힘으로 어찌 이런 짓을 할 수 있겠는가.

당염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그저 놀라기만 했다.

‘과연, 남만의 주술.’

주서천도 조금 놀라기는 했다.

그러나 전란의 시대 암천회가 주술까지 동원한 적이 있어 익숙했다.

물론 이 정도 규모는 처음 겪는 일이었다.

사제의 주술은 상상 이상으로 대단했다.

“조심하십시오! 감정이 마비되어 공포를 느끼지 않을 겁니다!”

남만의 책을 읽다 보면 식인 부족처럼 주요 부족들에 대해서는 제법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그중에는 단연 주술에 대해서도 있었다.

“아마 고통도 모를 것이니, 동귀어진의 기세로 덤벼들 거요. 그러니 주의하고, 또 주의하시오!”

“당신, 실은 남만인 아니야?”

당혜가 산공독의 해독을 막 끝내고 어이없어했다.

“그러니까 평소에 다양한 책을 읽도록 하자.”

주서천이 당혜의 말을 받아치며 백오십의 식인 부족과 마주 봤다.

그에 비해 이쪽의 전력은 열세였다.

“고맙소, 독봉.”

단하성의 눈이 예리해졌다.

그 뒤로 해독을 끝낸 점창파의 무인들이 범상치 않은 기세를 끌어 올렸다.

‘점창의 전력이 보통이 아니라고는 들었지만……’

당염이 단하성을 비롯한 점창파의 무인들을 보고 감탄을 흘렸다.

여태껏 산공독으로 제한이 걸렸다면 감각이 둔화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한데 전혀 그리 보이지 않았다.

“적, 백오십.”

단하성이 당가의 무사에게 철검을 건네받았다.

“아군, 육십.”

주서천이 검을 고쳐 잡곤 살짝 웃었다.

“적구려.”

잠깐의 침묵.

그리고 주서천과 단하성이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입을 열었다.

“적이.”

당가, 이십칠.

점창파, 삼십이.

오십하고도 구, 그리고 주서천까지 합해 육십

백오십의 식인 부족 전사들과 대치한 수색대였으나 그 사기가 낮기는커녕 높기만 했다.

“야만족 놈들!”

“뭔 사술인지는 모르겠지만, 소용없다!”

점창파는 감금된 것의 울분을 풀기라도 하듯, 각자 당가에게 건네받은 검을 들고 적의를 내보였다.

몇몇은 이곳에 오기 전 임시 진지에서 습격을 받아 사형제를 잃기라도 한 것인지 복수로 활활 타올랐다.

“수색대를 셋으로 나눕니다! 이십!”

주서천이 앞장서서 지휘에 나섰다.

당가와 점창파가 군말 없이 명령에 따랐다.

세 개의 조로 나눠 각각 주서천, 당혜, 단하성이 조장을 맡았다.

“목표, 정상!”

주서천이 사원을 가득 메운 불길한 기운에 대응하듯, 기세를 맹렬하게 불태웠다.

“가자!”

두두두두!

육십의 무인들이 동시에 몸을 날렸다.

그 많은 숫자가 움직이는데도 보법 탓에 발걸음 소리는 적었다.

“크아앗!”

식인 부족 측에서 괴성이 터졌다.

살육과 광기에 뒤섞인 목소리였다.

그들의 이성은 더 이상 남지 않았다.

백오십에 이르는 전사들이 괴성을 내지르면서 사원의 위와 옆에서 덤벼 오는 것은 장관이었다.

“어딜!”

당혜가 왼팔을 쭉 뻗으면서 비단검을 날렸다.

손목에 걸린 얇은 줄이 직선을 그리면서 식인 부족의 목을 노렸다.

단검이 푹 하고 정확히 목에 명중했다.

“캬르륵!”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