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서천은 식인 부족의 흔적을 찾아 기척을 최대한 죽이고 살금살금 걸었다.
수색대가 그 뒤를 따랐다.
‘그나저나, 소령을 아무도 눈치 못 채는구나.’
소령을 눈치채면 어찌 설명할지 고민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
초절정에 이르는 당혜나 당염조차 그녀의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괜히 유령이 아니다.
소령은 원래부터 유령곡 내에서 완성된 자객이기도 하지만, 주서천을 오랫동안 따라다니며 약간의 성취를 이루었다.
게다가 심심하면 검을 부딪치면서 수련을 했으니 성장할 수밖에 없었다.
“아까 보니 식인 부족에 대해 잘 알고 있던 것 같은데?”
추격 도중 당혜가 궁금한 듯이 물어 왔다.
“남만과 관련된 책을 읽었거든.”
“그건 도움이 될 만한걸.”
주서천의 말에 수색대원들의 안색이 밝아졌다.
사람에게 미지란 공포이니, 적어도 그건 해결됐다.
“그러면 뭘 조심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겠나?”
당염도 반색하며 주서천에게 물었다.
“아까 전에 봤듯이 독침의 위력이 상당합니다. 남만의 지형을 자기 집처럼 사용해서 까다롭고요.”
“그건 아까 우리도 봤네. 정말로 성가시더군.”
암기가 장기인 당가에게는 최악의 환경이었다.
지형지물이 전부 막아버리니 소용이 없었다.
“그렇다고 접근전이 쉬운 것도 아닙니다. 그들은 전부 전투의 대가입니다. 이걸 보십시오.”
주서천은 식인 부족에게서 수집한 칼을 꺼내 보였다.
“만도(蔓刀)?”
장도라기에는 짧고, 단도라기에는길었다.
길이는 중간 정도였으며 날이 살짝 굽은 것이 특징이었다.
“남만에서는 밀림도(密林刀)라 불립니다.”
원래는 벌초 및 벌채를 위해 사용한 도구다.
날이 두껍고 튼튼해, 웬만한 걸 베어도 끄덕하지 않았다.
나무나 덩굴 등을 자를 용도로 만들었는지 파괴력이 엄청난데, 남만의 몇몇 부족들은 이걸로 사람을 쪼개는 용도로 즐겨 쓰기도 하였다.
그렇다 보니 후에는 무술로 연구되고 발달했다.
“접근전에 자신이 있지 않은 이상, 적어도 세 명씩 짝지어서 한 놈을 공격하십시오.”
“고작 한 명을 세 명씩이나 맡아야.하나?”
당염이 눈살을 찌푸렸다.
천하의 당가가 야만족 하나에게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 자존심이 상했다.
“이곳이 중원이 아니라 남만이라는 걸 명심하십시오. 기후에 적응하지도 못해 제대로 된 힘도 내지 못하잖습니까. 그리고 이곳이 그들의 앞마당이란 것도 참조하셔야 합니다.”
일부러 괜한 자존심을 건들지 않으려고, 환경의 탓으로 돌렸다.
실제로 그런 연유도 있긴 했다.
‘하여간, 당가 놈들은 귀찮단 말이야.’
당혜가 그중에서도 성격이 제일 더러운데, 직계나 방계도 마찬가지다.
하나같이 자존심만 드세다.
속도 좁아서 괜히 원한이라도 사면 잊지 않고 자식 대까지 이어져 온다.
귀찮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적당히 비위를 맞춰 줬다.
당혜만으로도 피곤하다.
“누가 내 욕을 한 것 같은데……”
당혜가 매서운 눈썰미로 주서천을 슥 훑었다.
“습기로 민감해진 모양이네. 기분 탓이야.”
주서천이 눈썹 하나 까닥하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약 한 시진 정도를 걸었을까.
슬슬 숨이 거칠어질 때쯤, 수풀 너머에서 북소리가 들렸다.
둥! 둥! 두둥! 둥! 둥! 두둥!
대수림 전체에 울려 퍼지는 북소리.
앞으로 걸을수록 그 소리는 크게 퍼지며 고막을 때렸다.
이때부터 소리가 거의 나지 않도록 기어가듯이 살금살금 다가갔다.
들키지 않도록 수색대를 잠시 멈춘 다음, 혼자서 유령공을 운용해 잎사귀 사이를 지나갔다.
‘찾았다!’
주서천이 소리 나지 않게 살짝 웃었다.
그의 시선 끝에는 수풀이 끝나고, 수림 한가운데 세워진 거대한 사원이 눈에 들어왔다.
‘많군.’
아무래도 본거지에 온 듯했다.
식인 부족의 숫자가 대충 세어도 이백은 됐다.
많은 숫자였다.
그리고 무슨 의식을 하는 중인지, 경계도 삼엄했다.
화지 대신 신체를 써서 몸에 문양을 그려 둔 식인 부족이 밀림도나 창을 들고 곳곳에 있었다.
‘어디 있지?’
혹시 몰라 점창파를 찾아봤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희망을 잃지는 않았다.
현재 있는 곳은 사원의 뒤편이다.
입구가 보이지 않았다.
아마 반대편인 정문에 있지 않을까 싶었다.
웅성웅성.
아직 주변을 살펴보고 있을 때, 사원의 너머에서 소란이 들렸다.
‘도망친 놈인가.’
이곳까지 안내한 미끼가 상황을 알리고 있는 모양.
어차피 여기서 시간을 끌 생각도 없었다.
‘여기라면 당가도 마음껏 싸울 수 있다.’
대수림 한가운데 있지만, 본거지라서 그런지 생활하기 편하도록 나무는커녕 수풀 하나 안 보였다.
당가를 신경 쓰지 않고 싸울 수 있다면 앞으로의 전투가 보다 쉬워지니 나쁠 건 없었다.
‘좋아. 그럼 이대로 간다.’
주서천이 소령을 옆에 두고 뒤로 슥 물러났다.
그리고 스무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서 수색대원들에게 간단히 작전의 개요를 설명한 다음 함께 이동했다.
‘스물일곱.’
아까 독침을 맞고 쓰러진 인원은 근처 수풀 속의 나무 아래에 숨겨두고 왔다.
셋이 빠졌으니 스물일곱.
주서천 본인까지 포함하면 스물여덟 명이었다.
이들을 지키면서 이백여 명이 넘는 식인 부족과 싸우려면 성가시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사원의 반대편으로 이동해서 점창파를 빠르게 구출시켜 합류할 생각이었다.
작은 돌멩이를 숨어 있는 수풀 바로 앞에 던졌다.
그러자 근처에서 경계 중이던 식인 부족 둘이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걸어왔다.
슬금슬금.
경계가 삼엄해서 그런지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도 조심스럽다.
하나는 앞에 서서 큼지막한 밀림도를 들어 근접전을 준비하고, 다른 하나는 뒤에서 독침을 쏘아낼 죽통을 입에 물었다.
수색대 사이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돌았다.
그 긴장감이 표출될 무렵, 식인 부족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밀림도로 수풀 사이를 쑤시려는 그 순간
슈우웃!
수풀이 갈라지면서 단검이 튀어나온다.
워낙 빨라 반응하기도 힘들었다.
“커헉!”
언제든지 독침을 쏠 준비 중이었던 식인 부족이 목에 단검이 꽂혀 끅끅 거렸다.
시뻘건 핏물이 목의 구멍을 통해 꿀럭인다.
결국 입에 바람을 넣지 못했다.
“……?”
앞에 있던 식인 부족이 화들짝 놀랐다.
습격을 당했다는 걸 인식하자, 경계병답게 소리부터 지르려 했다.
휘익!
그러나 이번에는 수풀 속에서 사람이 튀어나와서 막았다.
주서천은 손을 번개같이 뻗어 경계병의 정수리와 턱을 붙잡고 휙 돌렸다.
우드득.
즉사였다.
“당신, 실은 도사가 아니라 자객이 아닐까 싶은데.”
휘리릭!
당혜가 손목에 연결된 얇은 줄을 당겼다.
목에 꽂혀 있던 단검이 슥 빠지며 소매 안으로 돌아왔다.
사거리에 제약이 생기지만, 사용과 회수가 자유로운 암기인 비단검(飛短劍)이었다.
“강호가 원래 험한 법이 아닌가. 은밀한 동작 한둘은 익혀야 하지 않겠어?”
눈을 가늘게 뜨고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는 당혜의 질문에 주서천이 아무렇지 않게 능청을 떨었다.
“자, 그럼 가자.”
주서천이 목을 부러뜨린 식인 부족에게서 뺏은 밀림도를 쥐었다.
기분좋은 묵직함이 손에 딱 감긴다.
“적! 먹이다! 적이다!”
경계병이 하나둘만 있던 게 아니다.
조금 더 걷자 대기하고 있던 식인 부족이 금세 나왔다.
사원을 중심으로 북서 방향에서 침입했다.
정면은 물론이고 측면에 있던 경계병도 일행을 발견했다.
“야만족 주제에 말은 할 줄 아는군.”
당염이 신기한 듯 중얼거렸다.
발음이 조금 알아듣기 힘들지만, 중원의 언어가 분명했다.
“지금은 관리조차 하지 않지만, 그래도 중원에 패배해 영토를 흡수당했으니까요? 당연히 하겠죠.”
남만의 남부라면 모를까, 중원과 가까운 북부로 들어왔으니 언어가 비슷해도 이상할 건 없다.
“후웁!”
주서천이 숨을 들이쉬었다.
그러곤 오른팔을 시원스레 휘둘렀다.
밀림도가 손에서 벗어났다.
휘리릭!
밀림도가 공중에서 화려하게 회전하며 날아가더니만, 정면에 있는 식인 부족의 머리에 정확히 박혔다.
“……?”
식인 부족들 입에서 놀란 목소리가 빠져나온다.
주서천은 허리춤의 검을 빼 들면서 소리쳤다.
“중원에서 온 수색대요! 구하러 왔소!”
“아와와와와!”
그러나 그 목소리는 식인 부족의 괴성에 묻혔다.
아와와와와!
한 사람에게서 시작된 괴성은 둘로, 둘로 시작된 괴성은 넷으로. 그렇게 온 사방으로 퍼져 울렸다.
적이 우후죽순 나타나기 시작했다.
앞은 물론이고 옆, 그리고 사원에서도 이쪽을 내려 보기 시작했다.
원래는 제사를 지내느라 건축물의 앞에 있던 것 같았는데, 소란을 듣고 이동했다.
“우리를 죽이려고 정면으로 들어온 건 아니겠지?”
원대식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식인 부족의 숫자들을 보고 식은땀을 흘렸다.
숫자가 많은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아무리 본 가에서 정예를 뽑아 왔다고 하지만, 남만의 힘을 얕보지 말라고 한 건 주 대협이 아닌가.”
당염도 그 높은 자존심을 접고 침을 꿀꺽 삼켰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주서천이 앞으로 당당하게 걷는다.
마치 산책이라도 하듯, 그의 몸에서 약간의 여유까지 느껴졌다.
“저쪽이 수로 밀어붙인다면……”
주서천의 눈이 독수리처럼 매서워졌다.
가늘게 떠진 눈매 사이로 살의를 담은 안광이 뿜어졌다.
“여기는 저로 밀어붙이면 됩니다.”
터무니없는 자산감에 당혜가 어이없어 했다.
그러나 여기 있는 그 누구도 그 말을 부정하지 못했다.
그의 말에 실제로 설득됐는지 몇몇은 아예 고개를 끄덕이기까지 했다.
당혜가 그 반응을 보고 싸늘하게 웃었다.
“그렇죠. 천하백대고수이자 정파의 영웅. 화산파의 대제자 매화정검 대협님께서 계시는데 무서워할 필요는 없겠죠.
어머나, 기뻐라. 대단해라. 당가의 무사 분들께서는 아예 주서천 대협께 모든 걸 맡길 모양이네요. 이왕 이렇게 된 거, 차라리 화산파로 옮겨 가는 건 어떨까요?”
“……”
당가 무사들의 낯빛이 검게 죽어 갔다.
지금 코앞에 둔 식인 부족보다 당장 내일부터 음식에 뭐가 들어간 건 아닐지 걱정해야 할 판국이었다.
식인 부족의 통치자, 사계(司祭)는 분노를 금치 못했다.
얼마 전, 영역 내로 먹이들이 들어 왔다.
타 부족의 습격인가 싶었는데 아니었다.
중원의 무림인들이었다.
무림인의 고기는 그다지 맛이 없다.
근육으로 단련되어 살이 질기고
노린내도 심해 먹기 힘들었다.
그러나 그들의 진가는 심장과 내장, 그리고 뇌다.
맛은 없지만 이 부위를 먹으면 힘을 얻을 수 있었다.
특히냐 사제에겐 주술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 부위였다.
그는 중원인들을 보자마자 식욕이 들끓었다.
그래서 그들을 습격하고, 포획해왔다.
그리고 오늘, 먹기 전의 준비인 제사를 하던 중이었다.
한데 이게 무슨 일인가!
“감히 어떤 놈이 신성한 의식의 방해를 하느냐!”
갑자기 소란스러워지더니 습격자들이 나타났다.
“누군지 알아 와라!”
사제의 불호령이 떨어지자 전사들이 움직였다.
“중원인입니다!”
“흠?”
사제의 분노가 금세 누그러졌다.
그 대신 입가에 웃음이 잔혹하게 번졌다.
만약, 타 부족이었다면 잔인한 형벌을 내리려고 할 셈이었으나 중원인이라는 말에 기분이 좋아졌다.
“이게 웬 떡이더냐. 남만의 신이 우리를 보살피는구나.”
처음에는 백에서 이백 정도 습격해 온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인원수를 듣자마자 비웃음이 터져 나왔다.
“서른도 되지 않는다고? 미친놈들. 중원의 무림인들은 하나같이 오만방자한 놈들뿐이구나. 하하.”
사제는 일부러 들으라는 듯이 목소리를 높여 웃었다.
그의 시선 끝에는 우리에 갇힌 먹이들이 보였다.
“들었느냐? 서른도 되지 않는다고 하는구나! 내 그곳에 고향 사람들을 넣어 줄 테니 기다리도록 하라!”
먹을 것이 늘어났다는 생각에 휘파람이 절로 나왔다.
주서천이 정면을 향해 손가락을 까딱였다.
“킁!”
식인 부족 중 덩치가 산만 한 자가 앞으로 나섰다.
아까는 수림의 어둠 탓에 제대로 못 봤는데, 식인 부족은 전원 특징이 있었다.
피부는 오랫동안 햇빛에 노출되어 그런지 건강하게 그을렸고, 온몸은 알 수 없는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상반신은 그대로 노출했는데 , 조각가가 공들여 손을 댄 것처럼 완벽한 근육이 보였다.
그리고 제일 돋보이는 것은 눈.
마치 먹이를 노리는 굶주린 짐승과 마주 보는 기분이었다.
“나, 전사……”
“명예를 들먹일 생각이면 그만둬라. 인육이나 처 먹는 놈의 이름 따위 기억하고 싶지 않으니까.”
주서천이 검을 빙글 돌려 고쳐 잡는다.
“낄낄낄!”
“끌끌!”
전사가 말을 제대로 잇지도 못하고 끊기자, 주변의 식인 부족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래도 지금 이 상황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분위기다.
마치 사냥을 구경하는 모양새였다.
모욕을 당한 전사는 자존심이 상했는지, 얼굴이 금세 붉으락푸르락 해졌다. 눈에 핏발도 섰다.
“크아아압!”
분노를 쏟아 내기 위해 몸을 먼저 움직였다.
대화는 필요 없었다.
몸은 육중한 주제에 제법 민첩했다.
주서천은 달려드는 식인 부족을 가만히 지켜봤다.
‘일류에서 절정 정도인가.’
기세만 대충 봐도 경지를 알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주변도 비슷해 보였다.
‘과연, 약육강식의 세계.’
남만은 어찌 보면 힘의 법칙을 따르는 마교와 닮았다.
약자는 먹히고, 강자는 먹어서 살아남는다.
그에 알맞게 남만인은 중원인보다 숫자가 적다 할지라도, 개개인의 무위는 상당히 뛰어났다.
두근. 두근.
맥박이 점차 빨라진다. 혈액 순환이 빨라진다.
손에 힘이 들어간다. 전투 직전의 고양감이 솟아올랐다.
타앗!
전사가 코앞까지 다가온 순간, 주서천의 신형이 불현듯이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
전사의 눈이 커졌다.
흥분했는데도 눈앞의 상황은 잘 파악했다.
그건 본능이었다.
‘안 돼!’
분명 약해 보이는 먹이었다.
한데 어찌 된 영문인지 눈을 껌뻑이니 사라지더니만, 코앞에 나타났다.
도저히 쫓을 수 없는 속도였다.
이만한 속도를 가진 강자는 부족 내에서도 별로 없다.
머릿속에서 경종이 앵앵 하고 시끄럽게 울렸다.
본능이 함부로 다가가선 안 된다고 알린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다리를 멈추려는 순간, 앞에서 빛줄기가 터지며 선을 그었다.
대각선이었다.
서걱.
시야가 비스듬하게 갈라지며 천천히 미끄러졌다.
정확히 말하면 시야가 아닌, 전사의 육신이었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전사에게 파고든 주서천은 검을 재빠르게 휘둘러, 전사의 몸을 대각선으로 동강 냈다.
“후웁!”
그걸로 끝이 아니다.
출수한 검을 허리춤으로 옮겨 회수했다.
검신이 공명하듯 파르르 울린다.
미약하게나마 자색이 뒤섞인 기의 자락이 뭉쳤다.
파앙!
공기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검을 휘둘러서 난 것이 아니다.
주서천이 대기를 꿰뚫고 뛰쳐나갔다.
다리에 거대한 힘을 주었다가 폭발시켰다.
돌풍과 동시에 일직선을 그리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흡!”
구경 중이었던 전사 넷이 헛바람을 들이쉬었다.
그들도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이동 속도에 놀랐다.
그러나 할 수 있었던 건 놀라는 것뿐.
애초에 마음을 편히 잡고 있던 대가는 컸다.
스걱!
시원할 정도로 깔끔한 소리가 났다.
제일 가까이에 있던 전사의 팔이 동강 나며 허공으로 떠올랐다.
파바바밧!
검격은 거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물리적으로 베어 버린 뒤, 검기의 여파가 대기를 미끄러지듯 지나간다.
혼자 다니지 않는 습성이 지금은 도리어 방해가 됐다.
바로 뒤에 서 있었던 자가 사정권 내에 들어왔다.
“캬아악!”
가슴팍에 기다란 혈선이 그어졌다.
피부가 찢기면서 그 안에 있던 살도 무참하게 베어졌다.
흩뿌린 피가 안개가 되어 섬뜩하게 피었다.
주서천은 얼굴에 튀려던 피를 검풍으로 날려 버렸다.
“캬아앗!”
누군가 괴성을 지른다. 고통이 섞여 있다.
굳이 고개를 돌려 볼 필요도 없었다.
팔이 잘린 전사의 분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