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 중순. 남만행이 결정됐다.
“사부님, 그럽 제자는 이만 물러나보도록 하겠습니다.”
주서천은 유정목에게 남만에 다녀오겠다는 말을 가까스로 참아 내면서, 구배지례를 올렸다.
매번 정성을 들여 인사하는 제자가 낯간지러우면서도 자랑스러웠다.
“그래, 다녀오너라. 내 너의 사형제들에겐 대신 안부를 전해 주도록 하겠다.”
화산에 오른 지 세 달하고도 보름이 지났지만, 낙소월 등의 폐관 수련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래서 아쉽지만 나중을 기약하고 하산했다.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싶지 않아 동이 틀 무렵에 소리 소문 없이 내려와 인근 마을에서 대기 중이던 소령과 합류했다.
그녀와의 재회도 제법 오랜만이었다.
“넌 어째 시간이 흘러도 잘 성장하지 않는구나.”
원래 어린아이의 성장은 몰라보게 빠르다고 하지 않던가?
여아라면 더더욱그렇다.
하나 어찌 된 영문인지 소령은 시간이 흘러도 키 하나 자라지 않아 조금 신기했다.
“유령공의 특성입니다.”
“응? 그건 또 뭔 소리냐?”
처음 듣는 이야기에 주서천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귀식대법을 기초로 한 유령심공의 수련자는 신체 시간이 남들보다 느리게 흐릅니다.”
유령공은 수련하면 수련할수록 인간에서 벗어난다.
자객의 귀식대법이 응당 그렇듯, 맥박은 거의 멈췄나 싶을 정도로 늦춰진다.
호흡 역시 마찬가지였다.
혈액 순환까지 마치 죽은 사람처럼 되어 버리니, 신체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는 비유는 틀린 말은 아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몸에 이상이 생기고 죽음에 이르겠지만, 유령공은 활동에 지장이 없도록 만들어 준다.
아니, 문제없을 뿐만 아니라 특별한 힘을 선사했다.
‘허, 설마 그러한 효능까지 있을 줄이야.’
노화의 방지는 무공이라면 전부 갖추고 있지만, 유령공은 그중에서도 탁월한 모양이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불노이나, 정작 그러한 욕망이 없는 유령들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삼안신투가 대단하긴 하군.’
괜히 무공에 ‘신’이 붙는 게 아니다.
천하제일, 아니 고금제일의 도둑이자 자객이었다.
‘응? 그러고 보니 소령이 몇 살이었지?’
생각 도중 소령의 연령을 물어본 적이 없다는 것을 떠올렸다.
“너 몇 살이냐?”
“열일곱 살입니다.”
“콜록콜록! 뭐, 뭐라고?”
주서천의 눈이 빠져나올 것처럼 커졌다.
입이 떡 벌어져 침이 줄줄 흐를 기세였다.
신체의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고 해서 나이가 있겠구나 생각했지만, 많아 봤자 열다섯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열일곱 살이라니!
‘알면 알수록 상식에서 벗어난 자들이군.’
전생에선 그저 정체불명의 자객방이라 생각했다.
한데 깊게 파고드니 생각 이상의 것들이 나왔다.
심살이라는 비인도적인 것부터 시작하여 , 삼안신투가 초대 유령곡주였다는 것까지 놀라운 것뿐이다.
유령곡이 암천회의 실세였다고 밝혀져도 전혀 이상할 것 없을 정도의 수준이었다.
‘적으로 만들지 않아서 정말로 다행이다.’
난적을 아군으로 회유한 것은 최상의 계책이었다.
* * *
운남, 최남단.
남만을 코앞에 둬서 그런지 삼월인 데도 머리 위에서 내리쬐는 열기가 제법 뜨겁다.
“여자를 땡볕에서 기다리게 만들다니, 여전히 취미가 나쁜걸.”
햇볕을 가릴 용도로 쓴 죽립이 보인다.
그림자가 얼굴을 가렸지만 그 미모는 여전히 눈부시게 빛났다.
손가락의 기사분반이 햇빛에 반사되어 빛난다.
“섬서에서부터 쉴 새 없이 달려왔는데, 조금 반겨 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여전히 입담이 더러우시네.”
주서천이 지지 않고 당혜의 독설을 받아쳤다.
“네놈이야말로 막말을 하는 건 여전하구나!”
독봉의 호위 무사, 원대식이 으르릉 거렸다.
“대식아, 너도 여전하…… 응?”
당가의 무리는 서른 명이었다.
그러나 그 얼굴들이 평소와는 조금 달랐다.
“안녕하신가, 주 대협.”
노년에 둔 중년이었다.
그런데 어딘가 모르게 낯익다.
처음 보는 얼굴은 아니었다.
“당염이라고 하네.”
“아!”
이름을 들으니 이제야 기억했다.
예전에 당혜에게 협력을 구하려고 ㄴ당가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당가의 주점이 열렸을 때 가주인 당유기 근처에서 감독을 맡았던 당가의 장로였다.
“후배가 당가의 장로님을 뵙습니다. 화산파의 사대제자, 주서천입니다.”
주서천이 당염을 알아보고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무림인 중에서 자네를 모르는 자가 있겠는가. 그리 소개하지 않아도 알고 있네. 오랜만에 보는군.”
당염이 뒷짐을 쥔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보다시피 이번 수색대에 나와 혜 아가씨께서 동행하게 됐네. 잘 부탁하지.”
“저야말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하기야, 남만까지 가는데 이렇게 적은 숫자만 보낼 리 없다.
애초에 당혜를 보낸 것만 해도 신기했다.
‘독왕은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오대세가는 대부분 혈육에 대한 애착이 크다.
후기지수인 직계 혈통이라면 두말할 것도 없다.
아무리 화인의원의 도움 요청이었다고 해도 딸을 남만의 수색대에 참여시키다니,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전에도 이런 적이 있어서 의아함은 더했다.
다만 남의 가정사인지라 함부로 물어볼 수가 없었다.
“자, 그럼 준비도 끝났으니 슬슬 떠나 봄세.”
“점창파도 합류한다고 들었는데, 기다리지 않아도 괜찮습니까?”
“그들은 이미 남만에 있네. 생각보다 일찍 도착해서 미리 길이라도 알아보겠다고 하더군.”
“든든하군요.”
주서천에게도 남만은 미지의 지역이다.
화산오장로였던 시절, 책을 읽어 남만에 대한 지식은 있었지만 역시 직접 가는 것과는 다른 법이다.
‘신의. 부디 목숨 줄만 붙들고 계시오.’
수색대는 남만의 울창한 대수림에 들어섰다.
큰 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리 잡아, 빛도 잘 들지 않았다.
우거진 잎사귀를 지나쳐, 그 안에서 들려오는 맹수들 울음소리를 경계하면서 깊숙이 들어갔다.
아직도 이곳이 남만의 경계선이자 시작점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안에는 무엇이 도사리고 있을지 일행은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이 근처인데……”
당염이 주름 가득한 미간을 찌푸렸다.
점창파와의 합류 지점은 그다지 멀지 않지만, 찾기가 힘들었다.
“끄응, 더워 죽겠군.”
“중원과는 기후가 완전히 다르다고 하더니……”
“답답해서 미치거나, 쩌 죽거나.”
중원이 남만을 잘 신경 쓰지 않는 것은, 이곳이 환경이 그다지 좋지 못하기 때문이다.
열대 기후다 보니 기본적으로 온도가 높고, 수림 특성상 바람도 나무에 막혀 통풍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커다란 잎사귀나 이름 모를 식물들이 열기나 습기를 흡수해 잘 빠져나가지 않아 최악이었다.
걷는 것만으로도 체력이 소비되는데 여기에서 전투까지 속행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도 괜찮은 독물이 있는걸?”
“호, 저건 보기 힘든 건데.”
“중원으로 되돌아갈 때 챙겨야겠구나.”
남만은 예상대로 독물의 천지였다.
일반 사람에게는 위험천만한 곳이었지만, 당가에게는 천국이었다.
다들 눈을 빛내면서 주변을 살피며 걸었다.
그게 위안이 됐는지 기후로 인한 짜증이 조금 줄었다.
그렇게 두 시진을 걸었을까, 당염이 무언가 발견한 듯 활짝 웃었다.
“저기로군!”
이 장, 아니 삼 장 밖에 목책이 보였다.
점창파가 근처에 진지를 구축해 뒀다고 했으니 틀림없다.
“드디어 도착인가!”
“이제야 쉴 수 있겠구나.”
수색대원들이 그제야 숨을 크게 내쉬며 웃었다.
“잠깐.”
주서천이 걸음을 멈추고 손을 들어 제지했다.
“무슨 일인가?”
당염이 긴장된 기색으로 주서천에게 물었다.
“피 냄새가 납니다.”
“ ……”
수색대원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정말인가?”
당염이 반신반의한 얼굴로 물었다.
독을 다루다 보면 냄새에 민감해진다.
그래서 당가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 비해 후각이 발달됐다.
그런데 주서천이 혈 향을 맡았다고 하니 미심찍어할 수밖에 없었다.
“자존심이 무척 상하는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경계는 하도록 하세요.”
당혜가 불쾌한 목소리로 당염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먼저 눈치채지 못한 것에 자존심이 상한 듯했다.
수색대는 주변을 경계하면서 목적지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가까워질수록 무거운 긴장감이 감돌았다.
시야를 가리는 잎사귀를 치워 내고, 수풀에서 벗어나자 사람의 손길이 지나간 그루터기가 잔뜩 보였다.
“맙소사!”
당가의 무사가 자기도 모르게 놀란 목소리를 냈다.
새로이 나타난 눈앞의 광경은 참혹했다.
곳곳에 잘린 신체 일부가 널브러져 있었다.
그 밖에도 시간이 지나 굳은 핏자국이 천막이나 나무 탁자 위를 장식했다.
“허어!”
당염이 놀라움 반, 걱정 반이 뒤섞인 소리를 냈다.
놀라움은 주서천이 말한 대로 무슨일이 벌어진 것이었고, 걱정은 이곳에 있는 사람들의 안전이었다.
“설마하니 점창파가 당한 겐가?”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점창파는 예로부터 실전 무학으로 이름이 높았다.
그들의 도(道)는 전장에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가끔씩 정파가 아닌 사파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호전적인 그들은 구파일방 중에서도 강맹하다고 알려진 만큼 이렇게 쉽게 당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적어도 여기서 전멸한 건 아닌 모양이네요.”
당혜가 눈을 가늘게 뜬 채로 주변을 슥 훑어봤다.
“과연, 시싱이 하나도 보이지 않구려.”
자세히 보니 잘려 나간 신체의 일부는 보였지만 시신은 보이지 않았다.
“다섯 명씩 짝을 지어 이 장 이내를 탐색해라.”
“알겠습니다.”
원대식이 무사들을 이끌고 주변을 뒤졌다.
탐색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보고가 올라왔다.
“핏자국이 저쪽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대충 감이 잡히는군.”
주서천이 혼자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감이 잡히다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그러나 그 감이 맞지 않길 바라고 있습니다.”
“궁금하게 하지 말고 얼른 말해 보게.”
“경우의 수가 둘이 있습니다. 전자는 대대적인 습격을 당해 다른 곳으로 이동한 것이고……”
“후자는?”
“식인 부족에게 잡혀간 것입니다.”
당염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관부의 손길이 닿지 않고, 무법 지대인 남만은 여러 소수 민족, 그리고 문명이 닿지 않은 야만족이 있다.
“식인 부족이 있다는 말인가?”
“예.”
주서천은 당염의 물음에 전생에서 책에서 읽었던 남만에 대한 기본지식을 일행들에게 알려 주었다.
“남만에는 나라는 없지만, 그 대신 여러 부족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식인 부족입니다.”
“쯧! 천인공노할 놈들이로군!”
식인. 그러한 풍습이 어떨지는 두말할 것도 없다.
마도이세에서나 종종 있는 인륜을 벗어난 일이다.
“그리고 느긋하게 움직일 수 없게 됐죠.”
당혜도 기분 나쁜 듯 눈썹을 찡그렸다.
식인 부족에게 잡혀갔다면 어떻게 될 지는 안 봐도 훤하다.
한시라도 빨리 그들을 구출해야만 했다.
“식인 부족은 식인 전에 자기들 신에게 제사를 올리는 풍습이 있으니 바로 잡아먹히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럼 얼마 정도의 시간이 있나?”
“그렇게 많지는 않을……”
주서천이 도중에 말을 끊고 눈을 가늘게 떴다.
“……!”
당염도 이상을 느꼈다.
당혜가 눈짓으로 주변을 슥 훌어보곤 무사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게 보였다.
수색대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진형을 만들기 시작했다.
다만 눈치채지 못하게 조심조심 움직였다.
‘몇 명이지?’
주서천이 오감을 끌어 올리고, 기감까지 개방했다.
넓게 펼쳐진 감각이 파도가 되어 수림을 훑었다.
사람 네다섯 명은 둘러야 할 정도의 거목을 지나 울창한 수풀 더미를 샅샅이 뒤졌다.
‘찾았다.’
예리한 감각에 걸려드는 건 여덟.
그것도 전부 상당한 실력자가 전 방위에 숨어 있었다.
“사방팔방으로 여덟! 경계 태세!”
주서천의 명령이 내려지자마자 수색대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원래는 여태껏 당염이 이끌었지만, 그가 합류한 이후로는 지휘권이 옮겨졌다.
남만에 대해서 약간이나마 알고 있고, 그보다 강한 자가 없으니 당연했다.
당염도 그걸 알기에 불만 없이 얌전히 따랐다.
푸슛!
“컥!”
무사가 목덜미를 붙잡고 픽 쓰러졌다.
주서천과는 정반대 방향에 있어서 아쉽게도 구하지 못했다.
주서천은 눈을 크게 뜨고 무사의 목덜미를 살폈다.
자세히 보니 침 하나가 꽂혀 있는 게 보였다.
“독침입니다! 조심하십시오!”
남만은 독과 주술, 야수를 이용한다.
그중 독은 중원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독혈곡이라 일컬어지는 애뇌산에서 등장하는 독물들도 이곳, 남만에서는 흔하게 발견된다.
“후웁!”
숨을 들이쉬자 근육이 부풀어 올랐다.
피가 빠르게 돌면서 머리가 뜨거워졌다.
단전이 끓어올랐다.
“어딜!”
왼발을 내디디고, 애검인 태아를 있는 힘껏 휘둘렀다.
한 손도 아닌 양손, 만중검이다.
부웅!
무게가 실린 검. 중검을 휘두르자 그만큼 검압도 늘어났다.
압력이 뭉쳐서 바람이 되어 돌풍이 됐다.
대기를 짓누르는 묵직한 파공음이 터지면서 검풍이 뿜어져 나와 앞에 있는 모든 걸 쓸어버릴 기세로 쏟아졌다.
쿠아아앙!
검풍만으로 폭발이 일어났다.
앞에 있던 거목이 흔들릴 정도의 위력이었다.
수풀은 둘로 나누어지며 뜯어졌다.
그 사이에 숨어 있던 식인 부족 둘이 벌러덩 넘어져 굴렀다.
‘과연 , 생각한 대로의 위력이다. 실을 수 있는 무게도 증가하고, 보다 안정적이야. 무엇보다 철검이 아닌 태아를 쓰니 무리를 할 필요도 없다.’
주서천이 스스로 놀라워하면서 흡족해했다.
고생해서 철포삼을 수련한 보람이 있었다.
사실 , 몸이 단단해지는 것보다는 만중검을 보다 완벽하게 펼치는 것에 의의가 컸다.
“어딜!”
식인 부족이 다시 일어나려 하자, 주서천이 어림없다는 듯 땅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빨리 처리할 셈으로 거리를 좁히려 하자, 근처에서 움직임이 또 포착했다.
방금 전에 두 명이 당하자, 근처에 있던 양쪽 수풀에서 한 명씩 나와 측면에서 공격해 왔다.
동시에 넘어져 었던 식인 부족도 벌떡 일어났다.
‘과연, 낚시인가!’
완전히 일어나기 전에 달려오게 만들어 순식간에 끝내는 거겠지.
전술은 칭찬할 만했다.
그러나 그 정도야 주서천도 경계했다.
아니, 애초에 경계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전혀 위험하지 않았다.
양손으로 쥐었던 검을 한 손으로 잡고, 만중검 대신 실로 오랜만에 이십사수매화검법을 펼쳤다.
파바밧!
검 줄기가 화려하게 내뿜어졌다.
식인 부족 입에서 놀란 목소리가 났지만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비록 쾌검은 아니지만 화경의 검수가 힘껏 펼친 만큼 그 속도가 보통이 아니었다.
주변이 조각났다.
“크아악!”
사냥감을 노리던 식인 부족 넷이 순식간에 당했다.
주서천은 목숨이 끊긴 것을 확인하자마자 등을 돌려 외쳤다.
“수림은 그들의 영역이오! 괜히 무리해서 끌려가지 말고, 서로를 의지한 채 침착하게 대응하십시오!”
상황이 상황인지라 경어는 생략했다.
“큭!”
“커컥!”
그러나 부상자가 속출했다.
낚시에 걸린 건 아니다.
수풀 사이에서 날아오는 독침에 맞아 쓰러졌다.
“당가의 무사가 독침에 이렇게 쉽게 당한다고?”
당염이 어이없어했다.
굳이 직계나 방계 혈통이 아니라 할지라도, 당가의 무사들은 독과 근접해 있어 내성이 자연스레 높다.
“감히, 누구 앞에서……”
당염뿐만 아니라 당혜도 자존심이 상했다.
당가가 독침으로 농락당한다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중원의 독을 보여 주마!”
당혜가 오른손을 쭉 뻗었다.
크게 부풀어진 소매 안에서 암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러나 암기를 쓰기에는 주변 환경이 좋지 못했다.
아무리 정확한 명중을 자랑한다 할 지라도, 무식할 정도로의 커다란 거목이나 잎사귀, 그 외에도 덩굴이 방해하다 보니 변수가 너무 많았다.
게다가 식인 부족이 수풀을 통해 이동하니 거의 무의미했다.
그래서 주서천도 검을 휘두르는 데 방해가 될 것 같아, 검풍으로 앞에 있는 수풀부터 뜯고 시작했다.
열대 기후, 숨이 막히는 열기와 습기, 쉴 틈 없이 달려드는 벌레와 독물, 그리고 빽빽한 지형지물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식인 부족까지 공격해 오니, 남만은 그야말로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괜히 관부나 중원 무림이 남만에 진출하지 않은 게 아니다.
환경이 척박해도 너무 척박했다.
이런 곳에서 사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
“기다려!”
주서천이 사고가 나지 않도록 얼른 나섰다.
똑같이 검풍부터 날려 수풀부터 뜯거나 밀어 버리고, 화산의 검으로 세 명을 순식간에 처리했다.
“일부러 놓친 거야?”
당혜가 한 명이 도망가는 걸 보고 물었다.
“그래 . 소굴을 알아야 하니까. 쓰러진 무사들에게 해독제 놓아 주고, 챙겨서 얼른 가도록 하자.”
화인의원이 괜히 주서천에게 도움을 요청한 게 아니다.
남만의 환경과 무서움을 알고 있기에, 당가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느끼고 그를 찾았다.
“무사할까?”
“점창파가 없다면 수색은 더더욱 힘들어질 거야. 부디 살아 있기만을 바라야지.”
그리고 신의도 식인 부족에게 붙잡히지 않았기를 바랐다.
그거야말로 최악의 경우였다.
대수림의 깊숙한 곳.
울창한 수목들을 지나면 고대로부터 내려져 온 사원이 존재했다.
어찌나 오래되었는지 곳곳에는 이끼로 가득했지만, 흘러간 세월이 무색할 만큼 어마어마한 위용을 자랑했다.
“점창파가 이리 쉽게 당하다니……”
보름 전, 운남의 최남부 마을에서 당가와 매화정검을 기다리는 동안 먼저 탐사를 행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딱히 문제 될 건 없었다.
옛적부터 운남과 남만을 오가는 자에게 돈을 주고 안내를 받았다.
길을 잃을 염려도 없었고, 헛고생도 하지 않았다.
적당한 곳에 도착해 주변을 정리하고 진지를 구축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다음이 문제였다.
식인 부족의 습격.
남만의 주요 부족에 대해선 알고 있었다.
나름대로 대비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였다.
점창파는 과한 자신감에 차 있었다.
식인 부족은 생각 이상으로 강했다.
중원에서 볼 수 없었던 무공과 독, 그리고 주술은 압도적이었다.
결국 구파일방, 아니 정파 무림 중에서도 실전에선 상위에 속한다는 점창파조차 당해내지 못했다.
신의의 수색대에 뽑힌 제자들만 오십이었는데, 그중 열이 죽고 나머지 마흔은 산 채로 붙잡혀 왔다.
“풀어 줘! 우리가 누군지 아느냐!”
“비겁한 놈들! 산공독을 쓰다니!”
정신을 차렸을 때는 쇠창살 안에 있었다.
무공을 쓰려고 해도 독 탓에 내공을 끌어 올릴 수가 없었다.
‘이대로 끝이란 말인가?’
식인 부족의 습성은 알고 있다.
그들은 이름 그대로 식인을 한다.
정체불명의 말을 중얼거리며 제사를 한 뒤, 달려들어 살점을 뜯었다.
그 생각이 드니 점창의 제자들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언제 죽을지 모르는 나날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