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十二章 (109/254)

유정목온 주서천과의 재회를 기뻐하기도 전에, 방금 전 일어난 소란에 대해 보고했다.

처음에는 무림맹 소속 고수의 뺨을 후려쳤다는 소식에 질겁했다가, 자세한 사정을 듣고 안도했다.

절차상 장본인에게도 사정을 들어야 해서 화산오장로 지검옹 학송이 등곽우를 찾아서 물어봤다.

등곽우는 당한 일을 스스로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아 그냥 유정목의 보고대로라고 솔직히 고했다.

자존심이 상하지만 잘못한 것을 알기에 잡설을 덧붙이지 않았다.

‘제기랄, 얼른 화산을 떠나야겠군.’

얼굴이 왕밤처럼 부어서 어딜 돌아다닐 수도 없다.

게다가 사람들 앞에서 굴욕까지 보이지 않았는가.

얼른 치료를 받고 무림맹으로 돌아가자고 생각했다.

한편, 주서천은 유정목과의 재회를 느긋이 보내고 있었다.

“어째 매해 보는 느낌이로구나.”

유정목이 후후, 하고 기분 좋은 웃음을 흘렸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습니다.”

주서천이 면목없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수선행이란 건 하산한 뒤 몇 년 동안 강호를 유람하다 돌아오는 건데, 어째 자신은 툭하면 돌아왔다.

그러나 아무도 이를 뭐라 하진 않았다.

워낙 세운 실적이라거나 경험이 남들의 십 년 정도로 많고 뛰어 났으니까.

“뭐, 이렇게 가끔씩 쉬러 오는 것도 나쁘진 않구나. 장문인께서도 허가했으니 괜찮단다. 마음 편히 있다 가거라.”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보다 정말 안 본 사이에 많이 컸구나.”

“그런가요?”

키라도 컸나 싶어 머리를 문지르며 확인해 본다.

유정목은 제자의 그 모습이 귀여운지 쿡쿡 하고 옅게 웃더니만 고개를 좌우로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산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거늘, 정말 여러 업적을 세우지 않았느냐. 가끔씩 나가던 친목회에 나가지도 못할 정도로, 요즘 날 찾는 사람들이 많단다. 주로 너의 이야기를 하더구나.”

유정목은 제자의 성장에 자랑스러워 했다.

“청출어람이라 하더니만, 네가 나보다 낫구나. 하기야, 어릴 적부터 그랬지.”

“아닙니다. 사부님의 가르침이 없었다면 제가 있었겠습니까. 그런 소리 하지 마십시오.”

“……”

유정목은 말없이 미소 지으며 두 눈을 감았다.

꾀죄죄한 얼굴. 흙투성이인 피부.

경계와 두려움이 뒤섞인 눈빛이 자신을 올려다봤다.

어린 주서천이다.

그 어린아이가 몰라볼 정도로 성장했다.

소년이 되고, 청년으로 성장해 정파의 영웅으로 불렸다.

자랑스럽지 않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처음에 그 소식을 들었을 때, 가슴이 먹먹해 눈물을 흘렸다.

“장하다, 내 제자.”

얼마 뒤 십이월이 지나 일월이 됐다.

주서천도 약관, 스무 살이 됐다.

화산에 오자마자 장 사형제와 낙소월을 만나 보려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매화검수가 되기 위한 폐관 수련으로 당분간은 나오지 않을 거라는 답변을 들었다.

오격권자 등곽우는 치료를 받고 무림맹으로 되돌아갔다.

돌아가기 전 유정목에게 찾아가 사죄를 했다.

유정목은 언제나처럼 선하게 미소지으며 괜찮다고 용서해 주었고, 등곽우는 안도할 수 있었다.

만약 자신의 무례를 용서해 주지 않았더라면 여러 곤란한 일이 있었을 테니까.

“주인님, 주서천이 화산에 있다고 합니다.”

“뭐하나! 당장 떠날 채비 하지 않고!”

매화정검 주서천. 그 이름을 모르는 자는 이제 없다.

사람들이 그 소식을 듣고 화산에 몰려들었다.

그렇지 않아도 사람이 많은데, 이젠 아예 포화 상태였다.

볼일 하나 보려면 이틀은 기다려야 했다.

손님이 많아지니 그만큼 인력도 많이 들었다.

아예 근처 마을에서 사용인 공고를 올려 잔뜩 고용했다.

식비라거나 그 외의 비용도 많이 들었다.

화산의 재력이 풍부하지 않았다면 진작 거덜 났다.

손님들의 공양도 있어서 어찌어찌 손해는 보지 않았다.

“주 대협을 만나 뵈려면 어찌해야하오?”

“내 매화정검께 긴히 말씀드릴 것이 있어……”

“일전에 매화정검께 도움을 받은 태원장주요.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소.”

방문 목적에 ‘주서천’이라는 석 자가 쉴 새 없이 올라왔다.

만나고 싶다는 사람들이 세 자릿수는 됐다.

한두 사람이라면 모를까, 이리 많으니 주서천도 기겁하면서 수련을 핑계로 전부 거절했다.

“주 대협을 어떻게 뵐 수 없을까요? 부탁드릴게요.”

“아, 안 됩니다!”

미인계까지 동원돼서 젊은 제자들만 고생했다.

‘부럽구나.’

‘여인들에게 이리도 인기가 많다니!’

‘허, 하나같이 예쁘장한데, 전부 주 사제에게 시집을 갈 목적으로 왔다는 것이 정말인가. 대단하군.’

상가건 무가건 간에 어지간한 명가에선 아직 약혼을 올리지 않은 여아들을 화산으로 보냈다.

혹시라도 호감을 보이면 좋지 않겠나.

그를 사위로 얻는 건 천군만마를 등에 업는 것과 다를 것 없었다.

“화산에 미녀들이 모인다는데?”

“그래? 사내로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꽃에는 곤충이 찾아오는 법.

그 소식을 들은 사내들이 화산을 방문했다.

졸지에 화산이 만남의 장, 혹은 관광지로 변모한 덕에 인근의 마을도 대박을 맞았다.

사람이 모이니 자연스레 시장이 활성화하고, 또 장사를 위해 상인들의 방문도 잦아졌다.

이의채는 이를 일찌감치 눈치채고 전부터 객잔이나 전장 등 여러 사업체를 세워 돈을 쓸어 담았다.

한편 화제의 중심에 서 있는 주서천은 연무장을 찾아 수련을 하고 있었다.

‘음, 유명해진 건 좋지만 나쁜 점도 있군.’

주변에서 보내오는 존경의 눈길은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시선이 많은 건 확실히 성가신 일이었다.

공용 연무장을 찾으면 구경꾼이 절로 모여드니 마음 편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혼자 수련할 만한 곳이 없나 찾아 스승과 절벽 등반을 했던 곳을 방문했다.

주서천은 대성한 무공을 제외하고 정리해 보았다.

자하신공과 자하검결은 여전히 변동 사항이 없다.

각각 팔성과 제삼식에 머물러 있다.

일월신궁은 사성이고, 녹안만독공은 삼성이다.

유은비도와 유령보가 사성.

그리고 신행백변이 천권과의 결전에서 칠성으로 올랐다.

‘그리고 만중검이 사성.’

사도천 행에 큰 도움이 됐던 무공이다.

그러나 이번에 전력을 내면서 한 가지 흠을 발견했다.

‘육체가 무게를 버텨야 해서 내력의 소모가 크다.’

만중검은 양날의 검이다.

무게를 늘려 파괴력을 높일 수 있지만, 그만큼 몸에 부담이 온다.

자칫 잘못하면 근육이 파열될 수도 있기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면 내공을 소모해서 대신 막아 줘야 했다.

검법을 펼치고 몸을 움직이는 데만 해도 내공이 소모되는데, 거기에 무게를 지탱하느라 더 든다.

과소비도 이런 과소비가 없고, 비효율적이었다.

차라리 다른 무공을 찾아 배우는 게 효과적이다.

그래서 이 흠을 고칠 방법이 없을까 생각했는데, 만중검과 함께 습득했던 철포삼이 떠올랐다.

철포삼은 외공 무공으로 마치 철갑을 두른 것처럼 몸을 단단하게 만드는 효능을 지녔다.

이 힘이라면 내공의 소모 없이도 만중검의 무게를 버티리라.

그래서 당분간 철포삼 위주로 수련하기로 했다.

“……그런데 수련 방법 참 무식하기 짝이 없구나.”

외공답게 수련은 지극히 간단명료했다.

내공을 쓰지 않고 단단한 물체를 두드린다.

이게 끝이다.

그 이상 그 이하의 것도 없었다.

단계가 나뉘어져 있었으나 강도의 차이였다.

예를 들어 나무부터 시작해서 돌을 친다거나 하는 수준이었다.

저잣거리에서나 나오는 수련법이다.

“하라는 대로 해야지.”

시험 삼아 나무를 후려쳐 봤다.

쿵!

“이런”

생각해 보니 환골탈태를 했던 걸 잊어 먹었다.

환골탈태는 근육이나 골격을 바꿔 주면서, 동시에 피부의 단단함 정도도 조금은 올려 준다.

괜히 신체 개조가 아니다.

그래도 덕분에 수련 과정을 넘을 수 있었다.

퍽! 퍽! 퍽!

돌도 쉽게 부서졌다.

집채만 한 바위 정도의 크기가 되자 좀 할 만했다.

살갗이 까지도록 수련했다.

‘후, 다 좋은데 너무 지루하네.’

차라리 복잡한 게 더 낫다.

심심하진 않으니까.

그러나 철포삼은 그저 단조로운 동작으로 한곳을 후려치며 단련하는 방식이니 하품이 다 나왔다.

* * *

세달 뒤.

입을 벌리면 나오는 허연 김이 사라졌다.

천하를 하얗게 물들던 눈도 녹아 없어졌다.

기분 좋은 따스함이 몸을 감싼다.

곳곳에 꽃이 펴 알록달록한 색채로 눈을 즐겁게 한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스한 봄이 왔다.

화인의원(華仁醫院).

무림 아니, 중원제일의 의원이었다.

이 의원의 원주가 의술이 하늘에 닿았다는 신의였다.

“이 일을 어찌해야 할꼬……”

화인의원의 분위기가 좋지 않다.

신의의 제자이자 부원주, 율건의 속은 바싹바싹 타들어 갔다.

곁을 보필하는 사형제들도 마찬가지였다.

“사형, 이 일을 어떻게 합니까?”

“역시 가지 못하도록 감금이라도 했어야 합니다.”

“중원도 아니고 남만에서 행방불명이라니 , 대체 이 무슨 사달이란 말입니까?”

신의의 행방불명.

이 일이 외부로 나가면 어떤 일을 초래할지는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다.

시간을 되돌려, 약 반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남만에서 내가 모르는 독이 발견됐다고 하는구나. 게다가 신약도 개발되었다고 한다. 다녀오마.”

“예?”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았다.

마치 산책이라도 다녀오겠다는 듯이 말하니 누가 진담이라 생각했겠는가.

그러나 신의는 진심이었다.

실제로 이튿날 남만으로 갈 채비를 꾸리며 호위 무사까지 집합시켰다.

“안 됩니다!”

율건을 비롯한 신의의 제자들이 말리고 나섰다.

당연히 찬성할 리가 없었다.

“내가 가고 싶다는데 뭐가 안 돼? 콱!”

“그걸 모르셔서 묻는 말씀이십니까!”

남만(南靈).

한때 대월국이기도 하였던 이 지역은 관부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인데, 워낙 척박하고 위험하기 때문이다.

아직 파악도 되지 않은 소수 민족은 물론이고, 인신 공양이라는 풍습까지 있는 광인들도 있다.

게다가 독혈곡과 비견될 정도로 수많은 독물 천지인 데다가, 수수께끼의 주술이 도사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끝없이 펼쳐진 대수림은 한번 들어가면 돌아오지 못할 정도로 광활하고 미로처럼 얽혀 있다.

수많은 맹수들까지 도사리고 있으니 신의의 제자들이 꿱꿱거리면서 말리는 건 이상하지 않았다.

“그것 참, 알았다. 알았어. 시끄럽게 굴긴.”

며칠 동안의 감시와 노력이 빛을 본 걸까, 신의는 입맛을 다시면서 포기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정확히 보름 뒤, 신의가 몇몇 호위 무사들을 이끌고 담장을 넘어 남만으로 떠났다.

화인의원은 발칵 뒤집혀 신의를 쫓았지만, 이미 그는 남만의 대수림으로 사라져 찾을 수 없었다.

불행 중 다행인 건 정기적으로 연락을 취하겠다는 서신을 받은 것이다.

실제로 연락은 꾸준했다.

하나 어찌 된 영문인지 보름 전부터 깜깜무소식이다.

그동안 연락만큼은 빠뜨리지 않았기에 갑작스러운 연락 두절은 자제들을 불안하게 했다.

“조사대를 파견해야 한다.”

“어떤 미친놈이 남만으로 간답니까? 아니, 애초에 그 독 천지인 곳은 아무나 갈 수 없습니다.”

남만인은 누구나 다 독에 대한 내성이 있다고 하는데, 이게 농담이 아니다. 정말로 독물이 너무 많다.

심지어 중원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더워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죽는 자도 여럿이었다.

“그리고 사부님께서 행방불명된 것은 비밀로 해야 하는데, 누굴 믿고 이 일을 맡깁니까?”

“사부님께서 남만에 간 것은 저희 밖에 모르는 비밀입니다. 이 와중에 행방불명된 사실이 알려진다면, 어떤 소문이 퍼질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율 사형이 제일 의심을 받을 거요.”

꿀꺽.

율건이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중원에선 지도자의 자리를 빼앗으려고 스승이나 사형제, 심지어 부모까지 죽이는 패륜이 비일비재하다.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에 사도천에서 그런 일이 있지 않았는가.

그런 의심을 받으면 화인의원은 끝이다.

“내가 미쳤다고 그런 짓을 해?”

신의가 있기에 화인의원이 있다.

“사람들이 그런 걸 신경 쓰겠습니까.”

“저희를 눈엣가시로 보던 의원들을 생각하십시오. 그들이 온갖 수작으로 공격해 올 것입니다.”

자연사한 것이라면 모를까, 제자들의 음해에 죽었다는 소식이 알려진다면 나락까지 떨어지리라.

“무엇보다 황제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오.”

일찍이, 신의는 어릴 적부터 의술에 재능을 보였고 그 천재성은 황궁에까지 닿아 어의로 초청을 받았다.

그리고 중년이 됐을 때쯤, 황족의 목숨을 구하면서 비호와 자유를 보장받게 됐다.

이러한 연이 있는데 만약 음해다뭐다 하는 소문이라도 퍼지게 된다면 어찌 될지는 뻔하다.

움찔.

좌중에 있는 모두의 얼굴에 두려움이 떠올랐다.

현 황제는 신의와 특별한 연이 있다.

그들의 머릿속에선 일가친척 전원이 참수형을 받는 것이 그려졌다.

이대로 있을 수는 없었다.

“전부터 협력 관계였던 당가는 어떻습니까. 독룡은 그렇다 쳐도, 독봉에게 도움을 받을지도 모릅니다.”

“나쁘지 않아. 그러나 그들만으로는 부족하다.”

남만은 독만이 전부가 아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맹수들을 비롯하여 주술사나 무인들도 위험했다.

“하면, 누가 그곳에 또 간답니까?”

“남만의 독지에 아무렇지 않게 갈 수 있고, 웬만한 위험에도 끄떡없는 고수가 어디 있…… 아!”

“있다!”

신의의 제자들이 한 사람을 떠올렸다.

화인의원과 당가는 협력을 하다 보니 교류가 잦다.

그러다 보니 각자 서로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도중에 여러 소식을 듣기도 하는데, 그중에는 얼마 전에 열렸다는 당가의 주점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천독지체!”

매화정검, 주서천!”

“후웁!”

짧은기합.

퍼억!

콰르릉!

내공 없이 주먹을 내질렀다.

눈앞에 주먹만 한 구멍을 보고 몸이 단단해지면서 위력도 조금 증가했구나, 라고 생각했다.

환골탈태의 보정과 더불어 한동안 철포삼의 수련에 집중한 덕인지 금세 오성에 오를 수 있었다.

만중검 역시 오성에 올랐다.

중도만공의 특성상 더 이상 수련할 수 없었지만 만족할 만한 결과였다.

신행백변 역시 팔성의 성취를 해낼 수 있었다.

주서천은 오늘도 만족할 만한 수련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 유정목의 석식의 준비를 하려 했다.

그러나 장문인이 자선을 찾는다는 소식에 자하각에 먼저 들렀다.

“부르셨습니까, 장문인.”

“허어. 그새 또 성취를 이뤘구나.”

우일문이 주서천을 보고 감탄했다.

“정말입니까?”

학송이 우일문의 말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겨우 약관에 화경인 것도 도저히 믿지 못하는 수준인데, 거기에서 성취가 있다니.

괴물이란 말인가.

“장문인에 비해선 아직 조족지혈입니다. 화경 중에서 조금 앞서 있을 뿐입니다.”

‘당연하지!’

학송이 어이없어했다.

장문인이 누군가.

상천십좌라 일컬어지는 절대고수가 아닌가.

애초에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저놈 어릴 때 주워 먹은 영약이 굉장했나 봐.”

영진이 질린 표정으로 혀를 내둘렀다.

“영 장로님. 영약도 영약이지만 본인의 노력도 중요한 것임을 잊지 말아 주십시오.”

심옥련이 영진의 말을 정정했다.

‘무슨 일이지?’

장문인뿐만 아니라 화산오장로 전원이 모였다.

궁금해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다만 예검수를 비롯해 매화검수 몇몇과 폐관 수련에 들어간 위지결은 자리에 없었다.

그 의문은 우일문에 의하여 금방 풀렸다.

“아무래도 네가 다시 강호에 나가야 할 것 같구나.”

“강호에 말입니까?”

“무림맹주…… 아니, 화인의원에서 의뢰를 했다.”

화인의원은 화산파와 직접적인 연이 없다.

그래서 무림맹주를 통해서 화산파에 의뢰를 전달했다.

“의뢰라 하오면……?”

“앞으로 들을 내용은 관계자를 제외하곤 결코 외부로 새어 나가선 아니 된다. 이를 명심하도록 하여라.”

“사부님에게도 말입니까?”

“너의 스승을 생각하는 마음은 갸륵하나, 그렇다. 그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의뢰인이 비밀로 해 달라 하였으니 이해해 주기를 바라마.”

“알겠습니다.”

이렇게나 꼭꼭 숨기다니, 도대체 무슨 내용일까?

“신의가 행방불명?”

주서천이 놀라는 대신 미간을 찌푸렸다.

‘끙, 역시 내가 알던 미래와는 다르구나.’

전생에서 신의는 중원을 떠나지 않는다.

아니, 떠나지 못한 것이 맞다.

칠검전쟁을 비롯해서 온갖 전장의 불씨로 인해 얌전히 있어야 했으니까.

그리고 얼마 뒤 , 암천회에 합류하게 된 검마에 의하여 신의를 비롯한 화인의원은 멸문을 맞이한다.

정말 원래의 운명에서 상당히 벗어났다.

“천독지체에 너 정도 되는 고수가 어디 흔하겠느냐. 아니, 거의 유일하다 싶을 게다.”

영진이 수염을 쓰다듬었다.

‘과연, 딱 알맞은 사람이란 건가.’

이제야 지목당한 연유를 알겠다.

남만이 목적지라면 확실히 자신보다 제격인 사람이 없으리라.

“얘야, 네가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다녀오겠습니다.”

“……응?”

이제 막 화려한 언변을 토해 내며 설득하려던 학송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주변 사람들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신의라 하면 이 시대에 필요한 분이 아니겠습니까. 가야 하는 것이 당연히 맞지요.”

‘필요하다.’

괴팍한 양반이지만, 악인은 아니다.

과거 , 전란의 시대 때만 해도 신의만 있었다면 영웅들이 그리 어이없이 죽진 않을 것이라 평했다.

화인의원 역시 신의로 움직이니, 그를 구한다면 곧 수많은 약과 의원을 얻는 것과 같다.

결코 손해가 아니었다.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고민했던게 바보같이 느껴지네요.”

심옥련이 조금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화산파 입장에서 이번 일은 나쁘지 않았다.

중원제일의 의원이라 하는 화원의원이 아닌가.

빚을 지게 해서 전혀 나쁠 것이 없었다.

무엇보다 원주인 신의를 구하게 된다면 그 빚의 크기는 두말할 것도 없으니, 괜찮은 거래였다.

설사 신의가 무사하지 못할지라도, 시신이나 유품만 가져와도 충분한 대가를 받을 수 있다.

“저 혼자서 다녀오면 됩니까?”

“그럴 리가 있겠느냐.”

명수악, 조문양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너라 할지라도 혼자서 그 대수림을 뒤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당가에서도 지원이 올 것이다.”

‘아, 조 장로님도 계셨군.’

화산오장로 중 유일하게 친하지 않은 장로다.

하마터면 ‘계셨어요?’ 라는 실례를 저지를 뻔했다.

“그리고, 점창파의 도움도 있을 게다.”

우일문이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말했다.

“안내자로군요.”

운남에서 조금만 내려가면 남만이다.

점창파는 운남에 위치해 있어서 오래전부터 남만과의 교류가 잦았다.

교류뿐만 아니라 과거에 남만이 중원을 침공했을 때, 가장 격전을 치른 곳이 점창파다.

듣자 하니 신의의 호위와 길안내 역시 점창파에서 맡았다고 했는데, 애석하게도 함께 연락이 끊겼다.

‘가끔 느끼는 거지만 정말 약관이 맞는지 의심스럽다니까.’

학송이 설명을 덧붙이려다가 입맛을 다셨다.

무슨 말을 해도 뭐든 꿰뚫어 보고 있다는 느낌이다.

“알겠습니다. 사대제자, 주서천. 강호에 나가 임무를 수행하겠습니다. 또 다른 특이 사항은 없습니까?”

“없다, 없어! 있을 리가 있겠느냐!”

영진이 질렸다는 듯 손사래 치며 답했다.

“그럼 전 이만 물러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주서천은 예의 바르게 인사하곤 자하각을 벗어났다.

“허, 참.”

“정말 그동안의 고민이 허탈하게 느껴지는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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