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十一章 (108/254)

섬서, 화산파.

봉우리 위에 쌓인 새하얀 눈이 보인다.

산속이라서 그런지 타지보다 기온이 좀 더 낮다.

간간이 눈 속에 핀 매화가 보인다.

화산파라서 그런지 유난히 많이 보였다.

웅성웅성.

숱하게 보이는 건 매화만이 아니었다.

방문객의 끝도 없는 줄도 보였다.

녹룡채의 토벌 이후, 화산의 기세는 구파일방 중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높아지면서 이름을 떨쳤다.

자연스레 방문도 잦아졌다.

무림문파뿐만 아니라 어떻게든 연을 만들어 보려는 상단도 있었다.

“줄 한번 더럽게 길군.”

풍채 좋은 상인이 눈살을 찌푸렸다.

화산에 도착한 지 어언 반나절이 되어 간다.

그러나 줄이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기어코 상인의 인내심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거 좀, 빨리빨리 좀 갑시다!”

상인의 짜증은 극으로 치달았다.

그렇지 않아도 날씨가 추워서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더 했다.

“지금 기다리는 거 안 보이냐?”

짜증을 겪고 있는 건 한 사람만이 아니었다.

그 앞줄에 서 있던 누군가도 매한가지였다.

“이래서 상인이란 족속들은……”

“쯧.”

“뭣이?”

상인이 발끈했다.

“지금 뭐라 지껄였느냐?”

“어이쿠, 이거 돈에 영혼까지 팔아넘겼다는 상인이 아직까지 자존심이 남아 있을 줄은 몰랐네.”

무인이 어깨를 으쓱이면서 비아냥거렸다.

“감히……!”

상인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갑자기 일어난 소란에 좌중의 시선도 몰렸다.

그러자 몇몇 사람들이 상인과 무인을 알아보았다.

태원장주(太原場主)다!

태원장은 산서 위주로 활동하는 전장이다.

최근에는 하북과 북경까지 진출할 정도로 영역을 넓혔다.

“태원장주?”

무인이 태원장주라는 이름에 반응했다.

“이제야 감히 누구에게 시비를 건 지 알겠느냐?”

태원장주가 이죽거리면서 물었다.

“뭐? 으하하하!”

무인이 허리를 뒤로 젖히면서 웃었다.

“한낱 상인 따위 주제에 이 등곽우에게 잘도 지껄이는구나.”

“오격권자(五擊拳子)!”

등곽우라는 이름에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졌다.

‘그 오격권자라고?’

태원장주의 얼굴이 굳었다.

오격권자라 하면 다섯 번의 권격으로 상대를 제압한다는 정파의 고수였다.

현재 무림맹에 소속된 고수로서 혼자서 몇 개의 임무를 완수하기도 한 무인이었다.

그러나 그 성격이 정파인치곤 좋지 못했다.

그러나 이리 많은 사람들 앞에서 모욕을 당했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아무리 오격권자라고 해도, 거 말이 심한 거 아니요?”

그래도 최소한의 예우는 지켰다.

주변에 있던 상인들도 입 바깥으로 말은 꺼내지 않았지만, 머리를 주억거리며 그의 말에 동의했다.

“맞는 말을 한 건데 뭐가 심하나?”

그러나 등곽우는 말을 번복할 생각이 없었다.

팔짱을 낀 채, 오만한 눈초리로 코웃음을 쳤다.

“옳소!”

“명예는 모르고 돈만 밝히는 자들.”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쯧쯧.”

무인들과 상인들의 골은 생각보다 깊었다.

벌써부터 둘로 나뉘어져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일촉즉발의 순간.

화산파의 제자들이 소란을 듣고 헐레벌떡 달려왔다.

“무슨 일입니까?”

“얌전히 서 있는데, 저기 있는 상인이 먼저 빨리 좀 가라고 소리를 질렀네. 내 그래서 한 소리 했지.”

등곽우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라는 듯 말했다.

“아니, 뭔……”

태원장주가 어이없어하며 할 말을 잃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시작한 건 자신이다.

그러나 일을 여기까지 키운 건 등곽우가 아닌가.

“맞는 말이긴 하지만, 비약이 심하오. 내 그건 깊이 사죄드리리다. 하나 돈에 영혼을 팔았다느니 하는 말은 좀 심하지 않소?”

“허 참, 어이가 없군? 시비를 건 것은 그쪽인데 나보고 사과하라?”

“말 좀 부드럽게 하시오. 난 꼬박꼬박 지키고 있지 않습니까.”

“내가 왜 그래야 하는지 이해가 안가는군.”

“이 무지렁이가……”

결국 태원장주도 화를 참지 못하고 폭발했다.

오격권자의 명성이 적지는 않지만, 태원장도 마찬가지다.

소속 없는 고수를 감당할 정도는 된다.

화산파 앞이라서 괜한 소란을 일으키기 싫어 정리하려고 했는데, 생각이 바뀌었다.

‘큰일이다.’

젊은 화산 제자의 얼굴이 굳었다.

이대로 가다간 문 앞에선 큰 다툼이 일어나게 생겼다.

힘으로 제압하려고 해도, 오격권자가 제법 고수라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뒤에 있는 사제에게 도움을 청하라는 눈빛을 보냈다.

“뭣이? 무지렁이?”

등곽우의 얼굴이 벌게졌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는지 콧바람을 씩씩 내뿜으며 주먹을 꽉 쥐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오격권자다.

주먹을 쥔 것을 본 화산 제자가 자신의 검으로 손을 옮겼다.

“오격권자 선배님. 진정해 주십시오. 이곳은 화산의 정문 앞입니다.”

“허! 이젠 새파란 애송이가 날 제지하려고 하는구나! 지금 모욕을 듣고도 참으라는 말이더냐!”

등곽우의 수염이 파르르 떨렸다.

분노가 제어 불능한 곳까지 닿았는지 살기가 조금씩 흘러나왔다.

주변의 무인들까지 각자의 병장기로 손을 옮기려는 순간.

정문에서 누군가가 뛰쳐나왔다.

“진정하십시오!”

유려한 눈매의 중년인이었다.

소매 안의 매화를 보면 어디에서 온 건지 굳이 물어볼 필요는 없었다.

“누구요?”

“반갑습니다. 소유검, 유정목이라고 합니다.”

유정목은 포권으로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휴! 다행이다!’

어찌할 줄 모르던 화산 제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뒤에 따라온 사제에게 엄지를 들어 줬다.

자고로 웃는 얼굴에 침 뱉기는 어렵다 하지 않았나.

유정목은 웃는 인상이 좋고 부드러워 남을 진정시키는 데는 일가견이 있었다.

별호조차도 소유검이 아닌가.

적절한 선택이었다.

“그래서?”

그러나 상황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

등곽우에게 무지렁이라는 말이 역린이었는지, 분노는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도리어 자신의 앞을 막은 것이 무척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노기 어린 목소리를 높였다.

“내 소란을 부린 건 미안하다고 생각했소. 그러나 모욕을 당했는데도 그냥 넘길 수는 없는 일. 다치고 싶지 않다면 물러나시오.”

‘뭐라고?’

유정목을 제외한 화산의 제자들이 불쾌해했다.

화산의 정문 앞에서 소란을 떤 것도 모자라, 이를 제지하러 온 유정목을 얕보는 것처럼 말했다.

아무리 이성을 잃고 화가 났다지만 이건 아니지 않은가.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니나, 너무 흥분하셨습니다.”

그러나 성격 좋은 유정목답게, 자신을 얕잡아 보는 말에도 꾹 참았다.

화내기는커녕 유려한 눈매를 초승달처럼 휘면서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진정시키려는 듯 노력했다.

그러나 등곽우는 들은 척도 하지않은 채, 태원장주에게 발걸음을 천천히 옮기며 주먹에 기를 실었다.

“저런!”

“오격권자!”

감히!

화산의 제자들이 격분했다.

유정목은 화산 내에서도 제법 존경을 받는 편이다.

영웅을 길러 낸 스승이기도 하지만 선한 품성이나 부드러운 성격 등으로 여러 사람들을 편안하게 했다.

심지어 화산 내에선 ‘기분 나쁜 일이 있어도 소유검을 보면 눈 녹듯이 사라진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무엇보다 소유검이 아니라고 해도, 화산의 정문에서 이렇게 대놓고 무시하는 건 참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지.’

유정목이 속으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웬만하면 나서고 싶지 않았지만, 상황이 어쩔 수 없었다.

“너희는 사람들이 다치지 않도록 지켜드려라.”

무시당한 와중에도 화를 내지 않고, 제압을 위해 주변인들을 신경쓰는 걸 보면 성품을 알 수 있었다.

“기어코 날 막으시겠다?”

등곽우의 눈썹이 사납게 올라갔다.

평소의 등곽우라면 결코 이런 행동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검선이 있다는 화산파가 아닌가.

그러나 오랫동안 서 있던 짜증과 더불어 받은 모욕을 그냥 넘길 수가 없었다.

원래 고수란 게 자존심이 상당하다.

정파라면 더더욱 그렇다.

명예에 목숨을 거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아무래도 나에 대해 모르는 모양인데, 이번 기회에 똑똑히 알려 주마.”

등곽우가 낮게 으르릉거리며 내공을 끌어 올렸다.

“무림맹으로부터 가입 권유까지 받고, 초청을 받은 오격권자 등곽……”

빠악!

목에 힘을 주고 거만하게 말하던 등곽우.

그의 머리가 돌연 뒤에서 가해진 충격에 아래로 떨어졌다.

“……”

좌중이 침묵에 잠겼다.

화를 내던 화산의 제자도, 속으로 쾌재를 부르던 태원장주도, 구경꾼들도 입을 다물었다.

“무슨……?”

등곽우가 머리를 천천히 들었다.

그리고 그 고개도 옆으로 슬그머니 돌아갔다.

그의 뒤에는 나름 준수하게 생긴 청년이 서 있었다.

“긴말 안 한다. 저분께 머리 박고 사과해라.”

“……?”

유정목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등곽우의 뒤통수를 후려친 건 자신의 제자였다.

“감, 히……”

등곽우는 주서천의 얼굴을 보자마자 어찌나 화가 났는지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부들부들 떨었다.

나이도 새파랗게 어린 놈에게 뒤통수를 맞았다.

이미 그 분노가 조절하지 못할 정도로 치솟았다.

“뭘 잘못한 건지 알고는 있나?”

주서천이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미친놈!’

‘죽으려고 환장했군. 젊은데 안타깝게 됐어.’

‘시원하지만 저리 미친 짓을 하면 큰일이지.’

구경꾼들은 혀를 차며 미리 애도했다.

“이노옴!”

예상했던 대로 등곽우가 폭발했다.

눈이 완전히 돌아갔다.

누가 말릴 겨를도 없었다.

이미 그의 장기인 주먹이 곧게 뻗어 나갔다.

주서천은 주먹을 똑바로 마주 봤다.

남이 보기에는 피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구경꾼 중 몇몇이 작은 비명을 토해 낸 순간.

주서천이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가볍게 회피했다.

머리 옆으로 주먹이 지나간다.

권압이 일으킨 돌풍에 의하여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무슨?’

등곽우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오격권자가 괜히 오격권자가 아니다.

그의 무공은 하나하나가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전력이 담겨 있다.

번개와 같이 빠르고, 둔기와 같이 강하다.

아무리 이성을 잃었다고 하지만 빗나갈 것은 아니었다.

술에 취해도 무공만큼은 흔들리지 않고 잘 맞출 자신이 있거늘, 이렇게 간단히 피하다니?

“한 대.”

짜악!

등곽우의 머리가 튕기듯이 돌아갔다.

화끈한 통증과 함께 뺨이 벌겋게 부어올랐다.

‘무슨……?’

머리가 띵하다.

아픔보다는 이렇게 어이없이 당했다는 사실에 충격이 컸다.

귀신에 홀린 듯한 기분이었다.

돌아간 고개를 원래 위치로 천천히 돌린다.

무표정한 얼굴로 눈을 똑바로 마주치는 청년이 서 있었다.

“사격(四擊) 남았다.”

“나를 능멸하려 들다니!”

빠드득!

등곽우가 이를 갈면서 살기의 폭풍을 쏟아 냈다.

벌겋게 된 건 뺨 뿐만이 아니었다. 얼굴 전체다.

힘이 들어간 팔과 목에는 힘줄이 도드라져 훤히 보였고, 그 분노가 멀리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느껴졌다.

문지기를 맡았던 화산 제자가 이러다간 정말 사달이 나겠구나, 하면서 나서려는 순간.

짜악!

아까 전처럼 경쾌한 소리가 울린다.

그 소리가 너무 맑아 청명하다고 느낄 정도였다.

그러나 그 위력은 한가하게 소감을 낼 때가 아니다.

“커흑!”

등곽우의 입 바깥으로 피가 튀어나왔다.

부러진 이가 흙바닥에 떨어졌다.

뺨이 보다 심하게 부풀었다.

‘왜?’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처음에는 허를 찔렸을 뿐이라고, 방심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눈을 부릅뜨고 집중했다.

그러나 의지와는 다르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더한 통증이 느껴지며 고개가 옆으로 휙 돌아갔다.

“사죄.”

짜아아악!

“커허어억!”

이번에는 여유도 주지 않았다.

고개를 원래 위치로 돌리기도 전에 반대편으로 날아갔다.

코뼈가 부러져서 숨을 제대로 쉬기가 힘들다.

“으아아아악!”

이제는 이판사판이다.

또 당할 수는 없어 생각도 하기 전에 주먹을 들어 힘을 실었다.

스스스스!

내공이 주먹에 응집된다.

그 양이 보통이 아니란 듯, 돌풍이 불면서 뒤에 있는 사람들을 슥 훑었다.

“힉!”

상인들뿐만 아니라 무인들도 소스라치게 놀랐다.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섬뜩할 정도의 양이다.

괜히 무림맹의 고수, 오격권자가 아니다.

“죽어랏!”

이젠 정말로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단순히 혼내 준다 하는 수준이 아니라 목숨을 빼앗을 기세였다.

‘끝이다.’

‘아무리 오격권자라도 몸 성히 돌아갈 순 없겠구나.’

화산파의 정문 앞에서 사람을 죽였다.

그게 화산의 제자라면 두말할 것도 없다.

무림맹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그 실적을 쌓은 오격권자라고 해도 이 일을 가볍게 넘길 수는 없으리라.

뺨을 후려 맞은 건 오격권자가 방심하기도 했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당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먹을 뻗는다. 돌풍이 휘몰아쳤다.

머리가 쭈뻣 설 정도의 위력이 직진해 눈앞의 상대에게 닿았다.

그러나……

째앵!

오격권자의 주먹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허공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부딪친 것처럼 멈췄다.

게다가 부딪친 충격이 과했는지, 손목이 꺾이듯이 틀어지고, 손등의 살갗도 찢어졌다.

“아악!”

몸이 성하지 않은 건 등곽우 쪽이었다.

“뭐, 뭐야?”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사람들이 어안이 벙병한 채로 등곽우를 쳐다봤다.

주먹을 내지른 것까진 봤다.

기감이 둔한 일반인도 느낄 정도의 일격이었다.

그런데 튕겨 나갔다.

“허어!”

그러나 일반인들과는 다르게, 무인들 중에서도 실력 있는 자들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고 감탄했다.

호신강기!

검강과 더불어 화경을 증명하는 응용법.

도대체 저 청년은 누구란 말인가?

“이격.”

짜아아아아악!

이번에 난 소리는 컸다.

주변인들이 깜짝 놀랄 정도의 크기였다.

등곽우도 이번에는 몸까지 튕겨 나갔다.

“끄, 끄허억……”

등곽우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부러진 이 사이로 바람 소리를 내면서 신음을 흘렸다.

오격권자가 바닥에 널브러졌다.

“사부님께 사죄해라.”

“서천아, 난 이제 됐다.”

보다 못한 유정목이 나서서 주서천을 말렸다.

“불편하셨다면 죄송합니다. 불초제자가 사부님께 인사를 올립니다.”

주서천은 스승이 다가오자마자 허리를 낮춰 인사했다.

‘제자였어? 그러면 화낼 만하군.’

‘잠깐, 소유검 의 제자라고?’

‘설마……?’

유정목은 소유검이라는 별호로 불리며 무인으로서도 나름대로 명망이 있으나, 중원 전체에 이름이 알려진 계기는 달랐다.

“주서천!”

“매화정검, 주서천이닷!”

천하백대고수!

영웅은 언제나 관심이 따르는 법.

매화정검의 스승이 소유검이라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었다.

“뭣? 주서천이라고?”

“정파의 영웅?”

“소문대로 화경이었구나!”

그제야 사람들의 의문이 풀렸다.

다들 하나같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폭발적인 관심을 보였다.

화산의 명예를 드높인 장본인이 아닌가.

이 중에는 어떻게든 그에게 딸을 이어 주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쯧쯧쯧!”

“아무래도 오격권자가 사람을 잘못 만났구먼.”

“소유검의 제자가 매화정검이란 걸 몰랐던 모양이군.”

주변의 분위기나 말이 확 바뀌었다.

태세 변환도 이 정도면 천하백대고수급이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오격권자를 두려워했던 사람들이 혀를 차면서 쓰러진 등곽우를 불쌍하게 여겼다.

‘으으으’

등곽우는 동정 어린 시선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노성이라도 내뱉어서 닥치게 하고 싶은 심정이 굴뚝같았지만, 주서천이 아직 버티고 있어 그럴 수 없었다.

‘이게 뭔 꼴이더냐!’

어쩐지 약관치곤 강하다 싶었는데 주서천이었다.

운이 지지리도 안 좋았다.

“인사는 나중에 하도록 하자. 그보다, 오격권자. 괜찮으십니까?”

유정목이 등곽우에게 다가가 걱정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그 고운 마음씨에 주변 사람들이 감동했다.

‘과연, 소유검.’

‘그 마음이 비단보다 곱다고 하더니, 정말이로구나.’

‘암, 저래야 영웅을 가르친 스승이지.’

‘이렇게 된 거 내 아들을 소유검에게 맡겨 볼까?’

주서천이야 아직 제자를 받을 시기가 아니라서 불가하지만, 유정목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실제로 그러한 목적으로 방문한 사람도 있었다.

속가제자라도 영웅과 사형제 간이면 더할 나위 없다.

“소, 소유검 대협. 죄, 죄송합니다.”

‘사과해야 한다.’

등곽우의 안색이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질렸다.

머리가 차가워지니 이제야 상황 파악이 됐다.

아무리 무림맹 소속 고수라 할지라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

화가 나서 그걸 넘어 버렸다.

남의 문파 앞에서 소란을 일으킨 건 그렇다 쳐도, 제지를 무시하고 그 제자를 죽이려고 했다.

주서천의 엄벌이 무서워서가 아니라도 사죄해야 하는 것이 맞았다.

“아닙니다, 괜찮습니 다. 잠시 흥분을 이기지 못할 수도 있지요. 저야말로 혹여나 제 제자가 손속이 너무 과하지 않았나 싶어 죄송하군요.”

“손속이 과했던 것을 사죄드립니다, 오격권자.”

주서천이 유정목을 따라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네놈이 사죄하지 않았더라면 죽기 직전까지 됐을 것이다.’

하마터면 속마음이 바깥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많이 다치셨군요. 누가 이분을 영장로님께 데려다주지 않겠느냐?”

“저희가 하겠습니다.”

뒤편에서 대기 중이던 화산 제자들이 나섰다.

‘쌤통이다.’

대놓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십 년 묵은 체증이 내린 것처럼 속시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문이 대놓고 무시 받은 게 열받았는데, 주서천이 나타나 그 이상의 복수를 해 줘서 기뺐다.

“오늘 일어난 소란 탓에 혹여나 불쾌하셨다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불만이 있으시거나 피해를 입으셨다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십시오.”

누구도 유정목의 말에 토 다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면 저희는 이만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방금 일어난 소란을 보고해야 하는지라, 양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유정목이 부드럽게 미소 짓곤 목례했다.

과연 소유검.

미소를 보자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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