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六章 (103/254)

이튿날.

한밤중에 난리가 있었다.

하인 등이 이용하는 뒷간에서의 화재였다.

장소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혹여나 양동 작전이 아닌가 싶어 경계를 강화하고 주변을 탐색했다.

그러나 걱정한 대로의 습격은 없었다.

그 대신 사도천주도 모르는 지하실의 존재가 밝혀졌다.

“마공의 흔적 입니다.”

“……”

사도천주가 주먹을 꽈악 쥐었다.

어찌나 세게 쥐었는지 손톱이 파이며 피가 주르륵 났다.

“지하실이 소천주의 거처와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개……”

무심코 ‘자식’이라 말하려다가 참았다.

다른 것도 아닌 마공의 흔적이 발견됐다.

아들이라 해도 결코 용납할 수 없는 행위였다.

그렇지 않아도 담리백의 성정이 요즘 따라 좋지 않다는 소문이 돌았다.

원래부터 난봉꾼으로 악명이 자자해 넘어갔는데, 알고 보니 마공의 부작용이었다.

“참을 만큼 참았다.”

우둔한 점이 시간이 흘러도 나아지지 않았지만, 무공만큼은 남달라 눈감아 줬다.

최근에 대놓고 사도천의 권좌를 호시탐탐 노리며 욕망을 보이는 것도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아니다.

인성이 마성에 물들고, 정상적인 사고와 판단을 잃게 되면 그걸로 끝이었다.

‘으으으!’

후계를 맡길 수 없는 것은 그렇다 쳐도, 자신에게 악영향이 얼마나 갈 지 생각하니 열불이 터졌다.

아들이 마인이었던 것도 눈치채지 못한 상천십좌라며 비웃음을 당할 것을 생각하니 얼굴이 벌게졌다.

“그놈을 당장 내 눈앞으로 데려와!”

사도천주는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리고, 야수문으로 간 담리백에게 복귀 명령을 하달했다.

그리고 이 소란은 금세 사도천, 아니 사파 전체로 퍼졌다.

목격자가 워낙 많아 통제할 수가 없었다.

명령이 전달되기도 전에 야수문에 들어갔다.

“이게 어떻게 된 것이냐.”

장대한 체구, 갈기처럼 자라난 수염, 거칠고 사납기 그지없는 안광을 내뿜는 중년인이 입을 열었다.

“마공을 수련하다니, 제정신인가?”

중년인, 야수문주 임초건이 담리백을 추궁했다.

“이야기가 다르지 않나, 소천주.”

현 야수문주는 사도천주를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단순히 안 좋아한다는 수준을 넘어 원한을 지녔다.

과거 무림맹과의 전투 중 주요 고수들 앞에서 ‘야수문이라 하더니 머리까지 짐승이구나. 어찌 그렇게 생각이 짧나?’ 라며 모욕을 당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기억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마음 깊숙한 곳에 남아 가끔씩 꿈에 나올 정도였다.

그때 이후로 사도천주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고, 담리백의 아비를 내쫓자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말이 좀 달라진다.

아무리 그래도 마공을 수련한 자를 도울 수는 없었다.

“닥쳐라.”

담리백의 섬뜩한 목소리가 임초건의 고막을 때렸다.

“감히……”

사도천주라는 괴물이 위에 버티고 있어서 그렇지, 천하백대고수인 임초건도 성질이 보통이 아니다.

누군가가 시비 걸거나 기분을 나쁘게 만들면 철저하게 박살낸 다음, 짐승의 먹이로 던지는 사람이었다.

“흥! 나에게 송곳니를 드러낸다면 누가 더 불리한지는 알고 있을 텐데?”

임초건의 분노에도 담리백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무서워하기는커녕 혈광을 내뿜으며 비웃었다.

“나에게 손을 들어 준 건 야수문만이 아니다. 사도팔문 중 무려 세 곳이 깊이 관여했다. 아버지, 아니 천주가 그걸 가만히 넘길 사람이 아니란 건 잘 알고 있을 텐데?”

역대 천주들 중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패도적이라 평가받는 현 사도천주.

그렇다 보니 그를 따르는 사파인들도 많았다.

다만 그중 반은 공포도 섞여 있었다.

자비 없는 성격으로 유명해 실수나 배신에 용서란 것이 없었다.

실제로 과거에 사도팔문주 중 한 명이 반기를 들었다가, 바로 쳐 죽이고 자기 사람을 문주로 앉혔다.

임초건이 담리백과 손을 잡았다는 걸 조금이 라도 알아채는 순간, 그의 목숨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어차피 전면전을 준비하고 있지 않았나. 그게 좀 더 빨라진 것뿐이다.”

담리백의 입가에 기분 나쁜 미소가 번졌다.

마공을 수련한 것이 발각됐지만 신경 쓰는 눈치가 아니었다.

불타오르는 안광의 핏빛이 심해졌다.

딱 봐도 마공의 성취가 얕지 않았다.

“허, 그 난봉꾼이 그럴 줄 알았다니까!”

정파인이건 사파인이건 간에 마공을 수련했다는 것이 밝혀지면 보통 난리가 아닌데, 하물며 사도천주의 아들이 수련했다고 알려지니 무림은 발칵 뒤집혔다.

사파는 물론이고 정파에도 혈안흡혈공에 대해 알려지면서 온종일 그에 대한 이야기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담리백의 행실이 평소 좋지 않아 온갖 소문으로 가득했는데, 거기에 불을 붙이게 됐다.

“비열한 것도 모자라 미쳐 있을 줄이야!”

“사도천이 그래도 마지막 선까진 건들지 않았는데……”

사파인이 비겁하다면, 마도인은 미친놈이다.

전자의 경우는 그래도 대화라도 통한다. 그 차이는 크다.

“사도천주는 뭘 하고 있던 거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친아들이 마공을 수련한 걸 눈치를 못 채? 상천십좌의 이름이 우는군, 울어!”

“에잉, 쯧쯧. 상천십좌가 아니라 상천구좌 아니야?”

정파가 아닌 사파라 마기에 덜 민감하다 할지라도, 상천십좌 정도 되면 눈치채기 마련.

그런데 전혀 몰랐으니 비웃음이 쏟아지는 건 당연했다.

열 명의 절대고수들은 무위의 차이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이번 일로 한자리가 변할지 모른다.

한편, 정파가 이 틈을 타서 사파를 쉴 새 없이 깎아내리는 동안 사파도 여러모로 시끌벅적했다.

“위선자들의 말을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틀린 말은 아니오.”

“틀린 말이 아니라면?”

“우리의 생각보다 그리 강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요.”

사도팔문의 분위기가 범상치 않다.

원래의 역사가 재현되듯 여덟은 넷으로 갈라져서 반란을 도모했다.

“어차피 더 이상 물러설 수도 없소.”

“담리백과 한배를 타기로 한 이상, 이런 일은 각오하지 않았나.”

“사도천주가 그걸 알고도 넘어갈 위인은 아니지.”

북풍한설보다 차갑고, 그 결심은 단칼과도 같다.

배신할 기미나 위험이 될 것 같으면 얼마의 시간이 흘러서라도 제거하는 게 사도천주라는 사람이다.

다음에 잘하라는 말에 넘어가 안심했다가 어이없는 실수로 몰려 목숨을 잃은 자가 몇 명인가.

그 철혈의 노인은 능력이 출중하고 충성심이 가득하면 가족 이상으로 잘해 주지만, 그게 아니라면 반대다.

조금이라도 의심이 될 경우 눈앞에서 지워 마음이 편안해지려는 지독함을 보였다.

과거, 권력이 사도천주 한 사람에게 쏠리지 않게 하려고 불응하거나 여러 공작을 한 적이 있었다.

당한 것에는 무조건 되갚아 주려는 사도천주 성격상 불안해서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죽입시다.”

“살려 두면 언젠가 당할 뿐이오.”

세간의 평은 좋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제 와서 내뺄 수는 없었다.

그러기에는 이미 너무 멀리 왔다.

담리백이라는 광인이 대표자인 건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구심점이 필요하니 어쩔 수 없었다.

담리백이 비록 마공을 수련해 신뢰를 전부 깎아 먹긴 했지만, 그의 힘과 세력이 아직 멀쩡히 남아 있었다.

여기에서 하나라도 빠지게 된다면 눈앞의 괴물을 과연 상대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준비해야겠군.”

소란의 중심, 담리백이 귀환했다.

‘담리백!’

담리백이 정문에 나타나자 시선이 집중됐다.

현 무림에서 제일 화제의 인물이니 당연했다.

그러나 그 시선이 곱지는 않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편인 사파도 마도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동안 보여 준 무위도 결국 마도란 말이지!’

‘이젠 눈이 시뻘건 것을 숨기려 들지도 않는군.’

‘뭘 잘했다고 저리 당당한 태도인가?’

담리백은 비난의 눈초리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도리어 가슴을 활짝 펴고 당당하게 걸었다.

“허! 어디서 개새끼들이 짖는구나!”

담리백이 주변을 슥 둘러보곤 비웃음을 흘렸다.

감히!

“아직도 네놈이 예전의 소천주라고 생각하나?”

“마도의 개가……!”

정면에서 무시를 당했다.

옛날 같았다면 소천주의 지위에 그러려니 하고 넘겼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소문에 의하면 사도천주 역시 대노했다고 했으니, 그의 지위는 이미 힘을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전부 뒈질 놈들이니, 살아있을 때 할 말 정도는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해 줘야지!”

담리백이 일부러 들으라는 듯이 소리쳤다.

“허, 참!”

“어이가 없어선!”

사도천의 무인들이 어이없어했다.

“허풍도 저 정도면 절대고수지!”

“마성에 물들어서 그런지 머리도 맛이 갔군. 지금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한지도 모르나?”

주변에서 수군거림이 끊이지 않았지만, 위축되기는커녕 핏빛으로 물든 안광이 불타오르듯 빛났다.

담리백은 수많은 시선을 지나쳐 붉은 기왓장의 전각에 들어섰다.

“담, 리, 백!”

사도천주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파스스!

소림의 사자후조차 비견되지 않는 목소리.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전각 전체가 거세게 흔들렸다.

외부의 문 앞에서 경비 중인 무사들조차 그 외침에 영향을 받은 듯 미간을 찡그리며 복부를 매만졌다.

평소 무사들과 하인들이 들락거리는 복도에는 사람은커녕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다.

‘무식한 영감탱이.’

시종일관 여유를 잃지 않았던 담리백도 사도천주의 고함을 듣자마자 표정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소리를 지른 것만으로 이 정도라니!’

담리백은 천재다.

권위를 유지하려고 노력도 많이 했다.

거기에 모자라 마공에까지 손을 댔다.

하루에 몇 사람의 피를 먹어 치웠는지 모른다.

심지어 암천회에게 영약까지 지원을 받았다.

나름대로의 깨달음도 얻게 되면서 도약도 했다.

화경을 넘진 못했지만, 적어도 그 끝자락 정도는 된다.

무엇보다 마공이란 것이 두려움을 없애 주고, 고통에 무감각하게 만드는 효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리니, 절대고수란 경지가 보통이 아니란 것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

‘두려워하지 마라.’

두근두근.

심장이 성난 소처럼 뛰기 시작한다.

수십, 수백 명의 목숨을 빼앗아간 혈액이 몸을 몇 바퀴 돌았다.

배꼽 아래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용솟음쳤다.

그 힘은 꼬리뼈를 지나 척추를 타고 올라가 감정을 탐욕스럽게 먹어 치웠다.

공포가 사라지고, 자신감이 솟는다.

내리깔았던 동공은 위로 번뜩이고, 안광은 핏빛을 머금은 채 유황불처럼 불타올랐다.

“허, 이 정도의 혈기라니!”

사도천주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혀를 찼다.

“내가 병신이지, 내가 병신이야!”

사도천주가 답답하다는 듯 제 가슴을 두드렸다.

주름 가득한 그 얼굴은 똥을 씹은 듯 구겨졌다.

“아비가 부르면 아들이 답하는 것이 도리라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달려왔거늘, 어찌 그리 화를 내시오?”

담리백의 얼굴에 다시 여유가 돌아왔다.

입가에 번진 진한 미소는 비열하기 짝이 없었다.

예전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건방진 태도였다.

“기회를 주마.”

사도천주가 위엄 어린 목소리로 경고했다.

“당장 스스로 단전을 폐하고, 전 무림에 사과해라. 그러면 목숨만큼은 살려 주도록 하마.”

혈육에 대한 마지막 자비였다.

“흐!”

담리백의 입꼬리가 비틀어 올라갔다.

“으, 하, 하, 하!”

광기가 뒤섞인 기분 나쁜 목소리.

그 목소리에선 온갖 부정적인 감정이 복받쳐 올라 주변을 뒤덮었다.

“알겠소! 내 그리하리다!”

더 이상 아들의 심중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담리백은 양손을 들어 순순히 그리하겠다는 의사를 표현한 뒤, 사도천주를 향해 천천히 걸었다.

그러곤 그의 바로 앞에서 허리를 살짝 숙이곤,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이러면 됐소? 아, 혹시 모두의 앞에서 단전을 폐해야 하는 거요 아니면 여기서 해야 하는 거요?”

“네놈이 정녕 화를 부르는구나.”

사도천주의 목소리가 분노로 들끓었다.

폭발하기 직전의 화산과도 같은 기세였다.

“설마하니 자식이라고 손을 못 댄다고 생각한다면……”

파앗!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말하는 틈을 타서 담리백이 몸을 튕기듯이 뛰쳐나가 아비에게 덤벼들었다.

지금까지의 숙임은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라고 말하듯 폭발적인 힘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쉽게 당할 사도천주가 아니었다.

아들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란 건 알고 있었다.

마성에 물들었으니 어떤 짓을 저지를 거라 예상했다.

무엇보다 담리백이 마공을 수련해 강해졌다 할지라도, 그래 봤자 화경 끝자락에 불과했다.

손가락을 반쯤 구부린 짐승의 발톱이 패륜을 저지르기 위해서 번개같이 출수해 사도천주를 위협했다.

“네 이노오오옴!”

눈앞에서 벌어진 패륜에 사도천주가 분노했다.

방금 전 초식에서 느껴진 건 순도 높은 살의였다.

아들이 미친 건 알았지만, 설마하니 일말의 주저도 없이 자신을 죽이려 할지는 몰랐기에 그 분노가 더욱 컸다.

“이제 좀 죽을 때가 됐소!”

담리백이 주먹을 연달아 휘둘렀다.

일격마다 치명적인 권풍을 뿜어내며 사도천주를 몰아쳤다.

사도천주는 어이 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흘리더니만, 쏟아지는 권풍을 전부 쳐 내곤 반격에 나섰다.

파바바밧!

전력을 낼 필요도 없었다.

엄지와 중지를 부딪쳐 고강도의 내공을 담은 탄지공을 손수 보였다.

주류 무공이 아닌데도 그 위력은 상당했다.

대기에 커다란 구멍을 내고 담리백을 후려쳤다.

파앙!

“크흑!”

담리백의 입에서 신음이 절로 튀어나왔다.

버티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하고 뒤로 쭉 밀려났다.

방금 전의 공격에서 전력을 쏟아 부었는지, 섬뜩할 정도로 붉은 핏빛의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오냐, 일단 네놈을 죽을 때까지 패 버리고 이 일에 관한 걸 캐물어야겠다!”

사도천주가 노도의 기세로 소리쳤다.

“퉤!”

담리백이 피 섞인 침을 뱉어내곤 씩 웃었다.

“과연 그게 마음대로 될 것 같소?”

쐐애액!

대기가 갈라졌다.

사도천주의 예리한 감각에 무언가 쏜살같이 날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처음엔 암기라도 날아오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옆구리 쪽으로 파고들어 오는 건 사람이었다.

“사도천주!”

정확히 말해선 야수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사도천주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옆구리를 파고드는 조강(順理)은 낯설지 않았다.

사파에서 이만한 조공을 펼칠 수 있는 건 한 사람뿐.

“임초건? 미쳤느냐!”

사도천주가 분노를 넘어 황당해했다.

야수문주가 평소에 자신을 안 좋게 생각하는 건 대충 알고 있었지만, 설마하니 반기를 들 줄은 몰랐다.

무엇보다 마인으로 낙인 찍힌 담리백의 손을 들어 주다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죽어라!”

임초건이 연이은 공격으로 말 대신 답했다.

“허어!”

반기를 든 것은 그가 바라보는 한 한 사람만이 아니었다.

시선 끝에 몇몇의 무인들이 나타났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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