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五章 (102/254)

사도천의 영역은 절강에서부터 시작해 복건, 강서, 광동, 호남, 광서다.

그중 호남과 광동, 광서가 그 중심지다.

사도천 본부도 이곳에 있었다.

신분이 준비됐으니, 사도천 본부로 가면 인근의 하오문이 알아서 돕는다고 들었다.

복주에서 남서 방향으로 말을 타고 꾸준히 이동했다.

도중에 복건곡에 들러 유령들을 포섭했다.

이동 중 가끔씩 얼굴을 보고 놀랐지만, 이제 그것도 익숙해졌다.

착용감도 면구를 착용한 것을 잊을 정도로 편안했다.

과연 변장의 대가다운 실력이었다.

“너 이 새끼, 방금 쳐다봤냐?”

“왜 갑자기 시비야? 그래! 쳐다봤다, 어쩔래!”

“죽여 주마!”

말을 타고 삼사일을 이동해 광동곡에 도착해 역시 평소 하던 대로 유령들에게 얼굴만 보여 주고 떠났다.

또 며칠을 달려 본부 인근의 마을에 도착했다.

사파의 중심지답게 떠들썩했다.

마을에서 툭하면 싸움이 일어났다.

거리에 시체가 굴러다녀도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았다.

정파에 비해 사파에는 무림인의 숫자가 많을뿐더러, 하나같이 성질이 거칠어 항상 온갖 사고가 났다.

이런 곳에서 조금이라도 만만해 보이면 얕보여 시비가 걸린다.

인피면구 덕에 그건 피할 수 있었다.

그래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는지, 가끔 누가 싸움을 걸어왔으나 압도적인 무위로 패서 내쫓았다.

“어서 오십시오!”

약속된 장소에 찾아가니 하오문도 몇 명이 반겼다.

“내가 누군지 아나?”

“문주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장로.”

“장로를 뵈어 영광입니다.”

흑도인들이라 그런지 전부 아부를 하기 바빴다.

강자 앞에서 약자는 숙이고 굴복하는 법.

기분 나쁠 정도로 아부를 해 금의상단의 이의채가 절로 떠올랐다.

“이번에 전달할 것은 일반 문도에게 맡길 수 없어 직접 왔다.”

“헤헤헤, 그렇군요. 분부만 내려 주십시오.”

심기를 거스르고 싶지 않은지 계속 눈치를 봤다.

“현재 사도천의 상황에 대해서 대충이나마 설명해 봐라. 온 김에 너희들 능력을 시험해 봐야겠다.”

대략적인 정보를 들었지만, 세세하게는 못 들었다.

무엇보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듣는 것과는 조금 다른 법이니, 혹시 몰라 물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하오문도는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듯, 눈을 반짝이면서 성심성의껏 알려 줬다.

주로 호남과 광동을 아우르는 정보였고, 그 외에 사도천 본부와 관련된 정보도 있었다.

“장로께서도 알다시피, 칠검전쟁 이후 내부가 시끄럽습니다. 특히나 정파의 영웅으로 떠오르는 매화정검의 등장 이후로 사도천주가 예민해져 있지요.”

순식간에 종료되어 버린 칠검전쟁에서 득을 본 건 정파뿐이었다.

사파와 마교는 실밖에 없었다.

사도천주는 이러한 결과에 분노했다.

나름대로 전력을 다했는데 약간의 이득조차 얻지 못했다.

안 그래도 그 전에는 폭섬도문의 멸문으로 빈자리를 채우려 엉망인 상황이었다.

그 일이 벌어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전쟁의 결과까지 좋지 않으니 화나는 건 당연지사였다.

그렇다 보니 분위기가 영 좋지 않았다.

기분이 안 좋은 날에는 피바람이 불며 시체가 늘어났다.

“그 일을 시작으로, 내부의 분위기가 많이 안 좋아졌습니다. 특히 난봉꾼 담리백이 심상치 않습니다요.”

담리백이 나오자 주서천의 눈빛이 변했다.

“정파에서 후기지수들을 다수 배출해서 그런지, 사도천주가 사파의 젊은 무인들을 좋지 않게 보고 있습니다.

아들인 담리백도 마찬가지지요. 얼마 전에는 수하들 앞에서 처음으로 망신을 줬답니다.”

‘허 , 설마 이렇게 역사가 흘러갈 줄이야.’

알고 있는 미래가 완전히 틀어진 건 아니었다.

계기는 달라도 역사 자체는 유사했다.

수하들 앞에서 망신을 당한 치욕을 시작으로 아비에게 반기를 들게 되니까.

“게다가 얼마 전에 녹룡채의 토벌이 있지 않았습니까. 그 일로 정파의 위상이 높아진 탓인지 사도천주의 심기가 굉장히 안 좋아졌습니다. 결국 주변과의 불화로 이어져 내부가 엉망진창이랍니다.”

‘정말이지 쉬운 일 하나 없군.’

하나를 해결하면 하나가 발생한다.

왠지 가시밭길만 걷는 것 같아 한숨이 절로 나왔다.

‘무엇보다 내 행동으로 인해 이런 일이 생기다니!’

세상사 마음대로 되지 않는 법.

무림을 구하려고 노력한 건 좋은데, 다른 곳에서 문제가 생겼다.

“이건 아직까지 소문입니다만, 사도천주에게 불만이 있는 주요 인사들이 담리백에게 붙고 있답니다.

내부가 정말 여러모로 개판이니, 장로께서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저보다 더 잘 알고 계시겠지만요. 헤헤헤. 아랫것이 뭘 더 자세히 알겠습니까.”

이것만이 아니라 그 외의 잡다한 정보도 얻었다.

생각보다 수확이 많아서 물어보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부 유용한 정보라 상당히 괜찮았다.

“훌륭하군. 내 문주에게 잘 말해두지.”

“아이고, 감사합니다! 장로!”

슬슬 떠나야 할 때가 됐다.

등허리에 장궁을 챙기고, 화살까지 꼼꼼히 확인했다.

누가 알아볼 것 같아 애검인 태아도 소령에게 맡기고 그럭저럭 쓸 만한 철검을 구해 허리에 찼다.

“너희는 여기에서 대기하고 있어라.”

복건곡에서 유령 넷을 데려왔다.

소령까지 포함해 다섯 명이었지만, 데려갈 수는 없었다.

사도천의 본부에는 고수들 천지니 아무리 존재감을 숨긴들, 금방 들킬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호남의 남부, 광동의 복부.

이 경계선에 사도천의 본부가 위치해 있다.

사파의 중심이니만큼 크고 넓다.

“하오문에서 장로가 왔습니다.”

“장로? 별일이군.”

상천십좌.

사파의 지도자, 사도천주가 미간을 좁혔다.

하오문의 수뇌는 모습을 안 보이는 걸로 유명하다.

몇 번이나 불쾌한 심경을 보여도 그들은 결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크게 신경 쓸 건 아니었다.

어차피 흑도의 무리니 딱히 이렇다 할 위협이 되는 것도 아니었고, 겁이 많은 게 특성이지 않나.

“얼마 전에 하오문의 권좌가 바뀌지 않았습니까.”

“아아, 그랬지. 인독종이라 했나.”

흑도에선 누구나 알 만큼 유명할지 몰라도, 무림 전체를 보면 아니다.

잡배의 두목에 불과했다.

“예. 전대에게서 권좌를 빼앗았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방식이 여러모로 다른 듯 싶습니다.”

“이제야 제 주제를 아는군. 전대는 겁도 많고 건방졌지. 마음에 들어. 적당히 지낼 곳은 내주도록.”

정보 자체는 그리 중요한 건 아니었다.

얼마 전에 의뢰했던 정파와의 분쟁 지역에 대한 정보였다.

새로운 하오문주가 인사 겸 신뢰를 얻으려고 주요 인사를 보낸 것이라고 생각하고 넘겼다.

그리고 이 소식은 아비를 적대하기 시작한 아들에게도 전해졌다.

“하오문의 장로라……”

담리백이 흐응, 하고 턱을 매만졌다.

“이건 기회요.”

얼굴이 보이지 않는 그림자가 슥 나타나 말했다.

“기회라면?”

“그대의 아비는 전부는 아니나 상당 부분의 정보를 하오문을 통해 얻고 있소. 그들을 회유하거나 혹은 협박한다면 눈은 몰라도 귀 정도는 가릴 수 있을 거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흑도의 방파 따위가 그 정도 역할을 하겠나?”

담리백이 어이없다는 듯이 코웃음을 쳤다.

흑도에 대한 인식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그만이다.

그 정도의 인식밖에 되지 않았다.

“하오문을 업신여기지 마시오. 확실히 그들 개개인은 별것 아니오. 그러나 정보력만큼은 다르지. 사내란 응당 술과 여자 앞에선 약해지는 법이니까. 거지들보다 정보의 양은 부족해도, 질은 상당히 좋소.”

“흠……”

담리백은 그다지 귀담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고개를 끄덕여 그리하겠다고 답했다.

“어차피 사도천주가 되면 자주 이용할 곳. 미리 만나서 충성을 받아두는 것도 나쁘진 않지.”

담리백이 어깨를 으쓱이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안광이 핏빛으로 불타올랐다.

“그것보다 슬슬 시간이 되었으니 다녀와야겠군. 오늘은 어떤 걸로 입가심할까?”

음산한 웃음소리가 어둠 속에서 울려 퍼졌다.

칼날 바람이 불었다.

입김이 눈에 확연히 보일 정도의 추위였다.

머리를 위로 드니 한낮인데도 어두웠다.

잿빛으로 물든 구름이 몰려와 중원 전체를 가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새하얀 눈송이가 보였다.

열아홉 살에 보는 첫눈이었다.

사도천에 잠입한 지도 며칠이 지났다.

대접 자체는 나쁘진 않았지만, 비웃는 눈초리는 잔뜩 받았다.

장로라 해도 하오문이니 당연한 취급이었다.

“우리의 주인이 그대를 만나길 원하오.”

“주인……?”

처음에는 사도천주인가 싶었다.

그러나 전혀 예상외의 인물이 만남을 요청했다.

‘담리백?’

안 그래도 만나서 의중을 확인하려고 했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가 먼저 만남을 요청했다.

머리를 굴려 보니 답이 금방 나왔다.

‘과연 , 사도천주에게서 하오문을 떨어뜨릴 셈인가.’

나쁘지 않은 생각이다.

다만 그 광오한 난봉꾼이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게 의문이었다.

‘하오문이라면 흑도라고 신경도 쓰지 않을 터인데, 개인 면담까지 하다니…… 적어도 그놈 생각은 아니야.’

분명 누군가 담리백의 곁에 붙어 있을 것이다.

‘좋아, 일단 가 보자.’

상대가 사도팔문일지 암천회일지는 아직 모르지만 정체를 제대로 숨겨야 하고, 대화를 이끌어 의중을 파악해야 한다.

마음의 준비를 충분히 한 뒤, 머리 속으로 여러 생각을 하면서 역사의 인물인 담리백을 만나러 갔다.

“어서 와라.”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화려한 의자에 앉은 담리백이 보였다.

다만 예상대로 혼자가 아니었다.

면사를 쓰고 있어 얼굴은 확인하지 못했지만, 옷차림을 보면 남자란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담리백. 얼굴은 멀쩡하군.’

현생도 마찬가지지만, 전생에서도 온갖 악명을 달고 살아서 마두처럼 생긴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이목구비는 선명하고 곧게 뻗은 짙은 눈썹은 인상에서 강인함을 느끼게 한다.

천하백대고수. 소천주(小川主) 담리백!

“만나서 반갑다. 본좌가 담리백이다.”

‘본좌? 지랄을 하네.’

피식하고 웃으려던 걸 참았다.

담리백은 마치 무림이 손안에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눈빛이나 말투 하나하나에서 오만함이 묻어났다.

등허리는 등받이에 딱 붙이고, 턱은 살짝 들어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의자도 계단 위에 있었다.

보아하니 담리백의 집무실인 모양이었는데, 이렇게 꾸민 걸 보니 평소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헛웃음이 나올 뻔한 걸 가까스로 참고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짜증이 나지만 지금은 참아야 할 때다.

“소천주께 감히 이름을 댈 정도의 수준은 아닙니다. 하오문의 장로로 기억해 주십시오.”

“소천주? 됐다. 담 어르신이라 불러라.”

과거에는 별호를 자랑스러워했었으나, 이제는 아니다.

그의 욕망을 전혀 충족시켜 주지 않았다.

‘가지가지 하네.’

이제 막 마흔 살 밖에 되지 않은 주제에 어르신이라니, 지랄도 정도껏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하지만 어쩌랴.

지금은 인내해야할 때였다.

비위를 적당히 맞춰 주면서 대화에 임해야 했다.

호칭을 정정하려고 머리를 들었을 때다.

무언가 변화가 일어났다는 걸 눈치챘다.

‘눈이……’

감았다가 뜨는 눈꺼풀의 안, 흰자위에서 핏줄이 도드라지더니만 동공이 옅은 적색을 띠기 시작했다.

“네놈을 부른 건 앞으로 볼 사이이니 얼굴을 익혀 두려고 한 것도 있지만, 하나 제안이 있어서다. 듣자하니 아버지에게 보고를 하기 위해 온 거라지?”

“예, 그렇습니다.”

“좋다. 그러면 다음부터는 이제 나에게 먼저 보고하도록 하여라.”

“예?”

주서천이 짐짓 모른 척을 했다.

담리백의 속내가 어떤지는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연기를 했다.

“설마하니 본좌의 제안을 거절하는 건 아니겠지!”

담리백의 목소리가 한층 더 커졌다.

아니, 커진 것뿐만이 아니었다.

살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해지고, 손등 위로 힘줄이 지렁이처럼 꿈틀거렸다.

눈가의 주름도 일그러지면서 툭 튀어나온 시퍼런 핏줄과 섞여 기이해졌다.

‘아!’

부글부글.

하단전이 순간 반응할 뻔했다.

정도의 심법이 이렇게까지 격렬하게 반응하는 경우는 하나뿐이다.

‘마공(魔功)!’

정과 마는 상극.

도가(道家) 무학이라면 반응하는 것이 당연하다.

소림이나 무당만큼은 아니나 화산의 무공도 정공 중의 정공으로 이름 높지 않나.

반응을 안 하면 이상하다.

“빨리 대답하지 못할까!”

분노로 격앙된 외침이 집무실 내를 가득 채웠다.

용암처럼 들끓는 살기에 버티지 못한 듯, 탁자 위에 올려 둔 꽃병이 아래로 떨어져 산산조각 났다.

정신병을 의심할 정도의 갑작스러운 반응, 붉은빛으로 물드는 안광을 보니 마공이 틀림 없었다.

그것도 내공심법이 곧장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면 마공 중에서도 지독한 걸 연공한 게 분명하다.

굳이 다가가지 않아도 목 바깥으로.치밀어 오르는 구토감, 그리고 벌레가 온몸을 기어 다니는 느낌.

‘완전히 맛이 갔군.’

자하신공은 화산의 유일무이한 신공이다.

천마신공이 아닌 이상 웬만한 마기에도 꿈쩍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아무렇지 않은 척할 수는 없었다.

괜한 의심을 받지 않으려고 일부러 괴로운 척을 했다.

그러자 지금까지 아무 말 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던 그림자가 나서서 담리백을 진정시켰다.

“어르신, 진정하시지요. 이러면 답변조차 듣지 못합니다.”

“……흥.”

담리백이 주서천을 옮아매던 기를 거두었다.

깨진 꽃병 위에 뒹군 꽃이 죄다 말라 비틀어졌다.

그제야 살았다는 듯이 거칠게 숨을 내쉬는 주서천.

연기만으로는 상천십좌의 경지에 올라와 있었다.

“무, 물론입니다. 소인은 그저 어르신께서 저 같은 놈을 거두어 주셔서 놀랐을 뿐입니다. 사도천주가 되실 분을 모시게 되다니…… 흑도인으로서 가슴이 벅차 숨이 턱 막혀서 그랬습니다. 부디 진노를 거두어 주십시오.”

“뭐라고? 크하하!”

혀에 기름이라도 칠한 듯, 매끄럽게 이어지는 아부에 담리백이 반색하면서 미친놈처럼 웃어 댔다.

“고놈 참, 말 한번 잘하는구나. 하기야, 하오문과 같은 약자들이 아부를 빼면 이 강호에서 어떻게 살아남았겠느냐. 흐흐흐…… 좋아, 마음에 들었다. 내 용서해 주마.”

‘담리백. 완전히 끝까지 갔구나.’

어떻게 막아 내거나 고쳐 낼 수준이 아니다.

마공에 완전히 취해 버려서 일반적인 상식이 안 통한다.

‘그리고 저 면사, 분명 보통 놈이 아니다.’

당장이라도 피를 보지 않으면 폭발할 기세였다.

그런데 그걸 말만으로 순식간에 잠재웠다.

“마음 같아선 어르신께 충성을 맹세하고 싶으나, 소인이 무공이 약하여 서 있는 것도 힘듭니다. 괜찮으시다면 쉬는 것을 윤허해 주시옵소서.”

완전히 임금을 대하는 말투였다. 그러나 현명했다.

담리백의 입이 귀 밑까지 찢어졌다.

“껄껄껄! 그래. 본좌가 윤허해 주겠다. 이런 놈이 왜 아직도 하오문의 장로직인지 모르겠군. 좋아, 내 밑에서 열심히 일하면 하오문주로 만들어 주도록 하마.”

“감사합니다.”

“그래, 이만 물러가 보도록 하여라.”

난봉꾼이 아닌 광인이 있었다.

담리백의 대면은 좋지 않았다.

이렇게 통제 불능일지는 몰랐다.

무엇보다 이러한 광인에게 벌써부터 사도팔문이 붙었다는 건, 암천회의 공작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암살…… 아니, 그럴 필요는 없어. 그보다 좋은 방법이 있다.’

주서천의 가늘어진 눈매가 날카롭게 빛났다.

‘그건 분명 혈안흡혈공(血眼吸血功)이다.’

혈교를 대표하는 마공 몇 가지를 꼽으라면 항상 빠지지 않는 것이 혈안흡혈공이다.

그 정도로 최상승의 마공이다.

수련법은 간단하면서도 잔혹하다.

사람의 피를 빨아들여 내공으로 쌓고, 단계를 올린다.

그리고 마공이 응당 그렇듯, 부작용도 심각했다.

오성이 마성으로 물들면서 두뇌까지 장악한다.

심성은 포악해지고, 감정 조절에 장애가 생긴다.

별것 아닌 일에도 쉽게 화나고, 피를 보지 않으면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다.

더욱 무서운 것은 피를 볼 때마다 감정이 격앙되어 마성이 점점 짙어진다는 것이다.

인내심은 바닥 밑까지 떨어지고, 굳이 화가 나지 않아도 지속적으로 피를 공급받아야만 한다.

안광이라면 모를까, 동공이 핏빛으로 물드는 건 중원을 뒤져 봐도 혈안흡혈공 정도 밖에 없다.

무엇보다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전생에서도 암천회에게 마공을 받았다고 하니 분명했다.

‘아무 이유 없이 암살한다면 사도천과의 관계는 틀어진다. 이제 막 아들과 사이가 안 좋아졌다고 해도, 미워서 죽여 버릴 정도는 아니야. 아니, 설사 그렇다고 할지라도 체면이 있으니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다른 곳도 아니고 내부에서 암살이 일어났다.

사도천주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 일 자체를 허용했다는 것부터 사도천에게는 자존심에 금이 가는 것이다.

그래서 암살 외의 방법을 택했다.

‘마공을 수련한 걸 대외적으로 밝혀야 한다.’

아무리 자유분방한 사도천이라 할 지라도,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마도(魔道)다.

사파인이 비열하고 거칠지라도, 최소한의 선이 있다.

그게 사도와 마도의 차이다.

무엇보다 마공을 수련하면 이성이 마비되고 감정이 맛이 가지 않는가.

불안해서라도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혈안흡혈공은 어떠한 단계에 있건 간에 지속적인 피의 공급이 필요해. 분명 공급처를 숨겨 뒀을 거야.’

필요할 때마다 매번 사람을 데려오면 눈에 띈다.

그렇다고 동료를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잔뜩 흥분한 성욕이나 마성을 풀 시간도 필요하고, 무인들이 후각에 민감한 만큼 혈 향도 지워야만 했다.

그러니 따로 공간을 마련해 두었을 터.

그곳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혈안흡혈공도 그렇지만, 마공은 일반적으로 극의에 오르지 못하면 조절이 불가능하다.’

흡혈이나 살해 욕구가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날 게 분명한 일이다.

공급처가 멀 확률은 낮았다.

그리고 본부이다 보니 고수가 들락날락하는 것까지 생각해 보면 그 범위는 더 좁아진다.

가까운 거리, 눈에 띄지 않는 장소.

이를 바탕으로 탐색하면 몇 군데 추측 가능한 곳이 나온다.

이튿날, 주서천은 구경이라는 명목으로 몇 군데를 미리 점찍어 뒀다.

그러곤 때를 기다렸다.

담리백이 내부에 있는 한, 수상쩍은 곳을 들쑤시는 건 불가능했다.

금방 눈치챌 것이 뻔한 일.

그래서 일부러 몸을 웅크리고, 흑도인으로서 연기하며 시간을 보냈다.

‘무림의 영웅이 되는 게 이렇게나 힘들었나.’

역사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온갖 고생은 다 하고 있었다.

이런 짓까지 할 줄은 몰랐다.

예전에는 적당히 숨었다가 전장에 나가 검 몇 번 휘두르면 되는 줄 알았는데,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물론 무력만으로 영웅은 될 수 있다.

그러나 무림을 완벽히 구해 낼 수는 없었다.

역사대로라면 암천회는 패배한다.

하지만 그 암흑기로 인한 피해는 막대하다.

그걸 최소화해야 한다.

그리고 나흘 뒤, 막 아침이 밝았을 무렵이다.

담리백이 드디어 떠났다.

혹시 몰라서 눈속임은 아닌지 철저하게 확인했다.

그러나 목적지를 듣고 안심하고 움직일 수 있었다.

‘사도팔문의 야수문(野獸門)인가. 이빨이 될 자들을 포섭하려고 떠났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사도팔문은 둘로 나뉘게 된다.

아니, 이미 나누어졌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과거이자 미래가 될 기억을 더듬어 보니 담리백 측에 붙어 사도천주를 공격한 게 떠올랐다.

‘움직인다.’

날이 저물었다.

달님도 눈구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달빛 한 줌 없는 밤. 세상은 암흑천지였다.

그러나 이 암흑이 마음에 들었다.

남몰래 해야 할 일이 있는 입장에선 제격이었다.

유령으로서 움직이기에는 최적이었다.

어느덧 사성의 성취를 이룬 유령보가 진가를 발휘했다.

횃불이나 등은 소용없었다.

소리부터 시작해 존재감조차 대기에 녹아들어 움직였다.

며칠 전부터 눈여겨봤던 지점을 뒤져 봤다.

세 번째까진 실패했으나, 네 번째에 드디어 찾을 수 있었다.

사용인들이 이용하는 뒷간이었는데, 청소를 잘 하지 않아서 냄새가 지독한 장소였다.

곳곳에 짚 더미가 뒹굴고 있었는데, 그 아래에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찾을 수 있었다.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까지 철저하게 확인한 뒤, 계단을 통해 아래로 내려갔다.

물론오기 전에 입구를 짚으로 덮어 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계단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얼마가지 않아 주변을 볼 수 있었다.

빛 한 줌 들어오지 않는 곳이었으나 내공으로 시각을 향상하여 대낮처럼 볼 수 있었다.

“으드득!”

이가 절로 갈렸다. 혈압이 올라 목이 당겼다.

원래 고수 정도 되면 감정의 조절은 자유롭다.

정도의 심법은 더더욱 그렇다.

분노로 인해 혈압이 오르는 것 정도야 얼마든지 조절할 수 있다.

하나 그러지 못할 정도로 화가 났다.

시체, 시체, 시체. 시체의 산이 즐비했다.

어린아이건 노인이건 할 것 없이 피를 뽑혀 목내이(木乃伊 : 미라)처럼 변해 있었다.

눈앞의 참혹한 광경에 화가 안 날 수 없었다.

무인도 아니고, 딱 봐도 힘 없는 사람들밖에 없었다.

그중에는 아이를 품에 안고 고통으로 일그러진 어머니의 시체도 있었다.

‘일단 살아 있는 사람이 있는지부터 확인하자.’

사람의 목숨부터 우선해야 한다.

훼방도 없으니 마음 편히 탐색할 수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생존자가 여럿 있었는데 , 전부 의식이 없었다.

건드려봐도 반응이 전혀 없었다. 다행이었다.

겁먹은 채로 일어난다면 구조가 성가셨을 것이다.

이 틈을 노려 위로 데려가려고 할 때였다.

“으, 배고파 돌아가시겠군.”

“음, 이 아랫것들 조금만 손대 볼까?”

“아서라. 담리백이 보통 미쳐 있는 것도 아닌데, 그런 짓 했다간 어떻게 될지 몰라.”

출입구의 계단 위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림자 속에 황급히 숨어 출입자를 지켜봤다.

‘어쩐지, 아무도 없더니만……’

아무리 의심받지 않는 장소에 숨겨뒀다 할지라도, 제물로 사용되는 사람들을 관리할 사람이 필요하다.

인기척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아 의아했는데, 자리를 잠시 비운 것이었다.

‘어디 보자…… 셋인가.’

인기척을 느낄 것도 없었다. 소리만으로 인원을 파악했다.

예상한 대로 계단 위에서 세 명이 내려왔다.

전부 경비치고는 무공이 고강했다.

전원이 일류의 무인이었다.

스스슥.

시선 바깥으로 은밀히 움직인다.

소리 하나 내지 않고 그들의 뒤로 접근하는 데 성공했다.

파밧!

정체가 발각될 위험이 있어 화산의 검은 쓸 수 없다.

흔적이 남는다.

만중검은 속도가 느려서 부적합하니 유은비도를 택했다.

바람도 없는데 소매가 부풀어 오르면서 비수가 튀어나온다.

두 개의 빛줄기가 경비의 목을 노렸다.

나머지 하나는 직접 접근해서 역수로 쥔 비수로 목을 그었다.

“끅!”

“컥!”

경비들이 외마디 비명을 흘리며 절명했다.

유은비도의 성취가 낮아도, 화경의 고수의 손에서 펼쳐지는 만큼 막강했다.

째앵!

‘어?’

둘로 나누어졌던 빛줄기 중 하나가 적의 목에 닿지 못했다.

실수한 게 아니라, 적이 쳐내서 실패했다.

암습을 했는데 설마하니 이 걸 쳐낼 줄은 몰랐다.

일류의 무인치곤 실력이 상당했다.

“누구……!”

고함이 입 바깥으로 빠져나오기 전에, 손을 번개같이 출수해 목을 붙잡았다.

“커헉!”

“좋아. 이렇게 된 이상 정보나 캐내…… 응?”

협박하려 던 찰나였다.

목숨을 끊을 생각도 아니었는데, 손에 잡힌 경비가 시체처럼 축 늘어졌다.

혹시나 해서 맥박을 확인해 봤지만 연기하는 건 아니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의아할 때쯤, 피부가 점차 거무튀튀하게 변하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독?”

입을 열어 확인해 보니 어금니 쪽에 자그마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자결용 독약을 숨기기에는 충분하다.

“칠성사병?”

망설임 하나 없이, 주저하지 않고 독약을 깨물었다.

훈련된 자객도 그렇게 목숨을 쉽게 끊지 못한다.

사파인이야 두말할 것도 없었다.

‘생각보다 빨리 움직여야겠군.’

정기적인 연락 수단이 있을지 모른다.

그게 도중에 끊긴다면 눈치채고 몰려올 수도 있었다.

사람들을 구하는 손길이 빨라졌다.

안전한 장소로 옮기는 발걸음에 힘을 박찼다.

전력을 다해 움직인 덕인지 이각 만에 약 오십여 명의 사람들을 전부 옮길 수 있었다.

바로 위로 데려간 것만이 아니라, 조금 떨어진 장소에 내려 두었다.

“무량수불.”

대피를 끝낸 뒤, 산처럼 쌓인 시체 앞에서 도호를 외웠다.

지하실 내부에 건질 것이 없는지 꼼꼼히 확인하고, 아무것도 없는 걸 확인하고 불을 질렀다.

입구는 잘 보이도록 활짝 열어 두었다.

그 위로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게 훤히 보였다.

아무 생각 없이 불을 지른 건 아니다.

주변 사람들이 잘 보이도록, 연기가 많이 나게 공작을 해 뒀다.

혹시라도 어두워 보이지 않을까 싶어 주변의 수풀에 불을 질러 시뻘건 색이 보이도록 손을 썼다.

“불이다!”

다른 곳도 아니고 사파의 근원지다.

경계가 삼엄할 수밖에 없었다.

화재가 난 것을 금세 발견했다.

적의 습격은 아닌지, 고수 몇몇을 포함한 무사들이 사방에서 몰려들었다.

주서천은 그 속에 녹아들었다.

“이, 이런……”

무사들 중에서 당황하거냐, 안색이 창백해진 자들이 여럿 있었다.

“이런 곳에 왜 불이 난거지?”

위치만 보자면 근처에는 아무것도 없다.

하인들이나 들르는 뒷간이었다.

그러니 자연적으로 발화할 것도 없었다.

누군가 불을 지른 건 확실한데, 딱히 기척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양동일지도 모릅니다!”

“돌아가야 합니다!”

누군가가 소리 질렀다.

처음에 도착했을 때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던 무사들이었다.

어딘가 모르게 초조하고 다급한 표정. 그러나 설득력 있는 말에 무리가 곧장 되돌아가려 했다.

“당장 불을 꺼야 한다! 안 그러면 이 근처는 불바다가 될 거야!”

누가 말했는지 알 수 없도록 무리 속에 섞여, 목소리까지 바꿔서 소리쳤다.

“반으로 갈라진다!”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기도의 고수가 명령했다.

그러자 몇몇의 무사들이 맡겨 달라는 듯 나섰다.

“저희에게 맡겨 주십시오!”

“습격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진화(鎭火)는 저희가 하도록 하겠습니다!”

목소리에 다급함이 느껴졌다.

표정도 심히 좋지 않았다.

‘담리백의 수하들이로구나.’

불이 난 곳은 겉보기에는 중요한 장소가 아니다.

새하얗게 질린 걸 보면 이곳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표정을 보면 그 속내를 뻔히 알 수 있었다.

“불이 번지는 게 생각보다 빠르다! 겨우 몇 명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그들이 허튼수작을 부릴 수 없도록 공작을 부렸다.

주변을 움직일 수 있도록 위엄을 잔뜩 실었다.

위엄이란 게 별 게 아니다.

사람 자체로서의 음성도 있지만, 내력을 담으면 반 이상은 한다.

“뭣들하고 있어! 빨리 움직여!”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누가 말했는지 찾으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워낙 사람이 많아 파악이 불가능했다.

무엇보다 눈앞에서 불이 나 점차 주변에 옮겨붙고 있으니,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할 때가 아니었다.

담리백의 수하들이 막기도 전에 달려온 무사들이 반으로 나뉘어져 움직였다.

“으으으……”

“안 돼…… 큰일이다……”

어떻게든 내쫓으려고 했지만 불가능했다.

화재로 인한 연기가 워낙 커서 사람들이 너무 몰려왔다.

담리백이었다면 모를까, 일개 무사의 신분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손 놓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땡땡땡.

한밤중에 경종이 울렸다.

화재가 일어났다는 소식에 벌떡 일어나 병장기를 차고 바깥으로 나왔다.

화재의 근원지에서 남아 있던 무사들은 주서천이 의도한 대로 진화에 힘썼다.

“어?”

“여기 뭔가가 있다!”

불이 꺼지고, 연기가 걷히니 지하로 향하는 계단이 나타났다.

“허!”

“이건……”

그동안 숨겨져 왔던 공간이 사람들 앞에서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화재에 의하여 불에 탄 시체도 있지만, 진화가 워낙 빨라 불에 타지 않은 그대로의 시체도 있었다.

얼마 되지 않았다.

진화를 지휘하던 사도천의 고수가 얼굴을 굳혔다.

목내이처럼 삐쩍 말라 버린 시체.

흔적을 보아하니 자연스레 목내이가 된 건 아니었다.

심상치 않음을 느낀 사도천의 고수는 무사 몇몇을 보내 보고했다.

‘자, 어떻게 나오나 보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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