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二章 (99/254)

등하불명(燈下不明), 등잔 밑이 어둡다.

소주의 비밀 분타에 제격인 말이었다.

설마하니 외진 곳이 아니라, 소주의 한가운데, 그것도 관리들이 넘나드는 곳에 있을 줄은 몰랐다.

원대 말기 쯤에 중봉신승이라는 승려를 추모하려고 건립된 대형 정원은 중원에서도 나름 이름 높았다.

그렇다 보니 침입도 쉽지가 않았다.

그래서 일부러 야심한 시각까지 기다려 축시(丑時) 무렵, 달이 구름에 가려진 순간을 노리고 사자림으로 잠입했다.

대문 격인 문청(門廳)이 아니라, 경비가 허술한 곳을 노리고 최대한 기척을 지운 채 담장을 넘었다.

유령선공이 이곳에서 진정한 위력을 발휘했다.

제갈승계의 경우 보법이 서툴러 주서천이 옆구리에 끼고 움직였다.

유령보의 효능이 떨어졌지만, 그래도 경비의 눈을 피할 정도는 충분히 됐다.

중심 건물인 지백헌(指柏軒)부터 시작해 이곳의 대형 정원을 가로질러 곧장 사자림으로 향했다.

일각도 되지 않는 시간에 숨도 참아 가며 움직였고, 도중에 다리를 지나 사자림에 겨우 도달했다.

태호석(太湖石)으로 된 사자들의 형상과 돌로 된 산이 어울려 기기묘묘한 경관을 자아내고 있었다.

돌로 쌓아 올린 이 산의 밑에는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미로의 동굴이 있었다.

‘정말로 기괴한 곳이로군.’

주변이 온통 사자로 된 가산 밖에 없었다.

한둘도 아니고 수백 개가 이어지니 정말로 기이한 곳이었다.

‘승계야. 그다음은 어디냐?’

분타가 사자림에 숨겨져 있는 건 확실한데, 입구가 어디인지는 몰랐다.

‘여기입니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그 입구도 기관으로 되어 있다면, 제갈승계의 눈을 피해 갈 수는 없었다.

제갈승계가 걷던 도중 동굴의 벽면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주서천은 눈을 마주쳐 고개를 끄덕였고, 제갈승계는 동굴의 벽면을 눌러 옆으로 조심스레 밀었다.

어떤 처리를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문이 열리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어때 괜찮냐?’

주서천이 제갈승계의 어깨를 툭툭쳐서 물었다.

‘네, 괜찮은 것 같습니다.’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그래도 아직 웃기에는 이르다.

소리를 최대한 죽이고 조심스레 진입했다.

전원이 다 들어온 뒤 석벽을 닫았다.

혹시 몰라 외부에서 열린 걸 발견한다면 여러모로 곤란하다.

“후아, 이제 숨 좀 돌리겠군.”

주서천이 지친 목소리로 숨을 내뱉었다.

내부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어두컴컴했다.

품 안에서 손바닥만 한 야명주를 꺼내 주변을 밝혔다.

“어?”

제갈승계의 목소리였다.

무슨 일인가 하고 야명주를 비춰 봤다.

그러나 그 표정이 별로 좋지 못했다.

“왜 그……”

주서천도 말을 멈추고 얼굴을 굳혔다.

“이건……!”

낙소월의 눈이 커졌다.

천장을 비롯하여 벽면과 지면에는 인위적으로 뚫어 둔 무수한 구멍이 보였다.

야명주의 빛은 그 구멍을 통해 흘러들어 갔고, 그 위로 선 같은 것이 그어진 게 보였다.

‘아뿔사!’

실수였다.

이런 게 있을 줄은 몰랐다.

아무리 제갈승계라고 할지라도, 보이지 않는다면 알아보기 힘들다.

눈이 조금이라도 어둠에 익숙해졌더라면 알아됐을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으니 문제였다.

눈앞에 입구가 보이자 급한 마음에 자세히 검토하지도 않고 들어온 것이 문제였다.

아니, 무엇보다 야명주부터 꺼내든 것이 실수였다.

기를 시각으로 순환해 어둠에 익숙해져야 했다.

“아니, 애초에 이곳은……”

제갈승계가 주변을 둘러봤다.

그 눈동자는 주변을 파악하는 데 힘쓰고 있었다.

“뛰어!”

주서천이 제일 먼저 몸을 날렸다.

멀뚱히 서 있는 제갈승계를 옆구리에 끼고, 보법을 최대로 펼쳤다.

그 뒤로 낙소월과 소령이 뒤따랐다.

스릉-!

무언가가 스쳐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홱 돌려 보니 입구의 천장에서 칼날이 떨어졌다.

일반적인 검의 날 같은 것이 아니라, 낫처럼 흰 날이었는데 그 크기가 통로를 가득 메울 정도였다.

그것이 하나둘씩 떨어지나 싶더니만, 무서운 속도로 천장과 벽에서 치솟으며 통로를 메웠다.

“정면, 지면 오 척!”

제갈승계가 온 감각에 집중했다.

내공을 끌어 올려 시각과 청력을 활성화하는 데 힘썼다.

“뛰어!”

제갈승계의 말에 의문이 떠오를 틈도, 생각할 시간도 없다.

그저 그 말에 따라서 크게 뛰었다.

약 육 척가량을 넘어서 바닥에 착지했고, 그대로 곧장 다시 달렸다.

통로가 점차 내리막길로 변하다 보니 속도가 붙었다.

“오른쪽, 왼쪽, 왼쪽, 왼쪽, 오른쪽!”

제갈승계의 눈동자가 쉴 새 없이 굴러간다.

쿠구구궁!

기관은 건드리지 않았다.

모두 피해 갔다.

그러나, 처음에 발동된 기관이 문제였다.

벽을 베어 가르며 튀어나오는 칼날들이 그 외의 기관을 건드리면서 연쇄 반응을 일으켰다.

‘안 돼.’

제갈승계의 머릿속으로 통로의 구조가 그려졌다.

지금까지 지나오면서 확인했던 기관이 보였다.

발동됐던 걸 다시 한번 그려 내며 전체를 살폈다.

‘너무 많다.’

지반이 어떻게 됐을지 모르지만, 통로에 비해 기관의 숫자가 많아도 너무 많다.

어떻게 될지 뻔하다.

중심이자, 기반이 되는 통로가 무너질 터.

그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얼마 가지 않아 천장에서 흙무더기가 후드득 떨어지기 시작했다.

“천장이 무너집니다!”

쿠구구구.

가벼운 진동에 머리 위에서 흙먼지가 떨어진다.

그러나 얼마 뒤 그 흙먼지는 산사태가 됐다.

설치된 기관과 함정이 모조리 발동되자, 좁디좁은 통로가 버티지 못하고 결국 무너져 내렸다.

이제 설치된 기관 따위는 어찌 되었든 상관없었다.

그것보다도 무서운 속도로 무너지는 천장이 문제였다.

주서천은 용의 몸처럼 길게 이어진 통로를 따라 전속력으로 달렸다.

낙소월과 소령이 힘겹게 따랐다.

숨이 차고, 폐가 찢어질 듯이 아파오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지만 상관없었다.

내공이 빠르게 소모되어도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어떻게든 이곳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뛰었고, 중간중간 제갈승계의 경고에 따라 움직였다.

그렇게 정신없이 한참을 달렸을까, 몇 리인지도 모를 통로의 긴 구간도 드디어 끝났다.

“으아악!”

주서천이 참았던 숨을 터뜨리면서 지면을 박차고 멀리 뛰어올랐고, 지면에 무사히 착지했다.

남들이라면 바닥을 화려하게 굴렀겠지만, 뛰어난 무공의 소유자답게 갑작스러운 착지에도 완벽했다.

“사매, 소령!”

주서천이 고개를 홱 돌려 낙소월과 소령이 무사한지부터 확인했다.

“하아, 하아……”

낙소월이 무릎을 굽히고 땀에 젖은 채로 숨을 골랐다.

체력의 소모보다는 심적 소모가 컸다.

경공을 최대로 펼치면서도 정신없이 쏟아지는 기관이나 함정도 피해야 했고, 천장의 붕괴도 무서웠다.

비명을 지를 틈도 없었고, 거의 무의식적으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미친 듯이 달렸다.

“괜찮아?”

주서천이 낙소월을 걱정했다.

“큰일 날 뻔했지만요.”

낙소월이 살짝 웃으면서 농을 던졌다.

“휴우.”

주서천이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곤 옆구리에 낀 제갈승계를 내려 둔 뒤, 이번엔 소령을 살폈다.

“소령은…… 괜찮구나.”

과연, 심살. 죽을 뻔한 위기를 겪었는데도 표정에 변화가 없다.

게다가 호흡 역시 유령심법 때문에 여전히 죽은 사람처럼 멈춰 있다 생각할 정도로 느릿했다. 정상이다.

“다친 곳은 없고?”

“없습니다. 다만 내공을 반절 정도 소모했습니다.”

소령이 무뚝뚝하게 몸 상태를 보고 한다.

“으아악!”

주서천이 몸을 홱 돌렸다.

제갈승계가 바닥에 앉은 채 뒤로 급하게 물러나면서 정면을 삿대질했다.

“저, 저기!”

새로 도착한 장소는 대낮처럼 밝지는 않지만, 그래도 온은한 빛이 조금씩 흘러나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을 밝히는 그 빛 사이에서, 얼굴이 시체처럼 창백한 사람들이 나타났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사람이었던 것’이었다.

“강시!”

이마 위의 부적이 눈에 띄었다.

얼굴뿐만 아니라 드러난 피부는 죽은 사람처럼 창백하기 그지없었다.

열여덟 열아홉, 스물? 딱 이십 구였다.

“혈교의 주술인가……”

강시술은 예로부터 존재했으나, 이를 이용하는 건 마도인. 그것도 혈교 정도였다.

남만도 주술에 일가견이 있었으나, 그중 강시술은 금지 술법으로 정해 사용자는 엄중히 벌하였다.

마교의 경우는 강시가 비주류였다.

영환술사(靈還術師)의 숫자가 적기도 했지만, 강시에 관심도 적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단체네요.”

낙소월이 어느새 호흡을 가다듬고 검을 뽑았다.

중원에서 강시는 금기다.

마도가 괜히 마도가 아니다.

사람으로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아무렇지않게 행한다.

강시의 원형은 본래 타지에서 죽은자의 시체를 고향으로 운반해 묻어주기 위함이었지만, 언젠가부터 사람을 죽이기 위한 병기로 변질되면서 금지됐다.

이제 와선 편히 쉬어야 할 사람을 다시 되살려, 고인을 모욕하는 역천(逆天)에 불과했다.

“소령은 나서지 말고 승계를 호위하면서 몸을 지켜라.”

유령곡의 무공은 강시를 상대로 상성이 좋지 않다.

천적이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다.

유은비도처럼 암기술 등은 대체로 사혈을 노리거나 혹은 목이나 심장을 찔러 치명상을 입힌다.

그러나 심장이 없어도 움직이는 강시에게는 소용이 없었다.

‘좋아, 안 그래도 새로이 배운 걸 언제 써먹을지 고민했는데…… 강시가 적이라면 딱 알맞은 상대다.’

주서천이 검을 고쳐 잡는다.

평소처럼 매화검이 아니었다.

기본적인 검세(劍勢)부터 다르다.

콩.

정면의 강시가 뛴다.

한 발씩 교차하여 뛰는 게 아니라, 양발을 동시에 움직였다.

콩콩콩.

강시의 몸놀림은 뻣뻣하고 자연스럽지 않아 마치 나무토막이 스스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속도는 우습게 볼 것이 아니다.

주서천의 눈에는 느려 보였지만, 일반적인 무인 만큼은 된다.

쐐애액!

강시가 팔을 들어 올려 손가락을 모아 손을 칼날의 대용으로 했다.

그리고 곧장 섬뜩한 찌르기를 날렸다.

주서천은 몸을 최소한으로 틀어 강시의 수도(手刀)를 거뜬히 피하곤, 검을 아래에서 위로 휘둘렀다.

부웅.

위로 쳐올리는 검은 그다지 빠르지는 않다.

평소의 매서운 소리도 없었다.

대신 묵직한 바람 소리를 내면서 수직선을 그어 강시의 오른팔을 잘라 냈다.

‘조금은 버벅거리나.’

외관으로 보면 오른팔을 가볍게 자른 것 같지만, 실은 조금 고전했다.

좀 더 간단히, 그리고 빠르게 잘랐어야 했는데 손에서 전해져 오는 느낌이 달랐다.

‘좋아, 그러면 그다음!’

감상이나 생각은 찰나에 불과하다.

손잡이를 양손으로 꼬옥 쥔 채, 위에서 아래로 힘껏 내리그었다.

부우웅.

검이 아닌 둔기를 휘두르는 소리가 났다.

공기를 베는 것이 아니라 뭉개고 날려 버린다.

왠지 모르게 기분 좋게 들릴 묵직한 파공성.

검으로 모습을 감춘 둔기가 강시의 머리를 쪼개려 했다.

텅!

“흠.”

주서천이 과연,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검이 빗나가지는 않았으나, 강시가 나머지 한 팔을 들어서 막아 냈다.

그러나 전부는 아니고 팔이 반쯤 파였다.

피는 흐르지 않았으나 썩어빠진 악취와 더불어 시커먼 연기가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대충 이 정도인가…… 아, 낙 사매! 놈들은 시독(尸毒)도 머금었으니까 조심해!”

주서천이 내공을 끌어 올려 무게를 더했다.

팔에 막혔던 검이 점차 무거워지며 나머지도 베었다.

머리 위를 보호할 것이 사라지자, 강시도 어쩔 수 없었다.

두개골이 둘로 쩍 갈라졌다.

털석.

꼭두각시를 움직이던 실이 끊어진 것처럼 머리를 잃은 강시가 툭 쓰러졌다.

‘좋아, 그럭저럭 쓸 만하군.’

주서천이 검신에 묻은 시커먼 피를 털어 내며 흡족하게 웃었다.

방금 전까지 사용한 검법은 만중검(萬重劍)이었다.

‘맹강이 좋은 걸 남겨 줬군.’

맹강이 숨겨 둔 것 중에서 비급이 둘 있었다.

하나는 지금 보인 만중검이요, 나머지는 철포삼이었다.

읽어 보니 마음에 들어 곧장 수련했다.

어차피 중도만공이 있어 거리낌 없었다.

그래서 한동안 시간이 날 때마다 수련했는데, 이게 생각보다 괜찮았다.

‘그야말로 중검(重劍)이로구나.’

만중검은 천근추(千斤鐘)의 묘리를 기초로 했다.

자기 몸보다 배나 되는 무게를 실어 검을 휘두른다.

그러나 이 무게란 것이 일정하지 않고, 수련하면 수련할수록 늘어난다는 점이 특징이었다.

맹강이 왜 이렇게 좋은 걸 사용하지 않았나 의문이었는데 수련해 보니 그 연유를 알 수 있었다.

만중검은 검법인 동시에 일종의 동공(動功)이었다.

가부좌를 틀고 앉아 내공을 쌓아 심법 수련을 하는 걸 보통 좌공(坐功)이라 부르고, 이 좌공과는 다르게 신체를 움직이면서 호흡해 내공을 쌓는 게 동공이다.

동공은 좌공과 다르게 어려우나, 난이도는 둘째 치고 만중검 자체가 하나의 내공심법이나 마찬가지라서 중도만공을 습득하지 않는 이상 익힐 수 없었다.

일성에선 검에 무게를 싣는 법을 익히고, 이성이 되면 그때부터 더할 수 있게 된다.

참고로 강시를 적수로 딱 알맞은 편이었다.

무게를 더해 이처럼 머리를 부수거나 쪼개면 된다.

“매화(梅花)가 아니라 매화(每化)아니에요?”

낙소월이 조금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도 앞에서 다가오는 강시에게 눈을 떼지 않았다.

스윽.

오른손에 잡힌 검을 잠시 거두고, 왼손의 중지와 엄지를 구부리면서 공력을 모은다.

타앙!

낙소월이 손가락을 튕겼다.

화산파의 얼마 없는 지공(指功)인 매화오품지(梅花五品指)였다.

둥글게 말아진 공력이 튀어 오르듯 일직선으로 쭉 뻗어 나가 강시의 이마 정중앙을 후려쳤다.

그러나 강시는 고개를 뒤로 살짝 젖혔을 뿐,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 콩콩 뛰면서 접근해 왔다.

시체라면 부패하기 마련이지만, 강시는 그렇지 않다.

도리어 갑옷을 입은 것처럼 몹시 단단했다.

금강 강시는 아니라 할지라도 강시라면 웬만한 공격은 잘 버텨 낸다.

그녀가 검이 아니라 지공의 고수였다면 결과가 달랐겠지만, 아쉽게도 장기인 것은 검이었다.

“좋아, 그렇다면……”

낙소월이 진각을 밟곤 앞으로 쏘아졌다.

휘리릭!

검을 화려히 휘두르거나 찌른다.

워낙 빨라 복수의 검으로 보였다.

훗날 매화검봉이라 칭해질 그녀의 손에서 이십사수매화검법이 펼쳐졌다.

 환검이 아닌 산검을 사용했다.

파바밧!

같은 이십사수매화검법인데도 달라보였다.

주서천의 경우 검기 다발을 쏘아내 한꺼번에 투하한다.

마치 유성우가 쏟아져 내리는 것과 닮았다.

그만큼 범위도 넓다 보니 어디로도 피할 수 없도록 그 주변을 빠짐없이 공격한다.

그러나 낙소월의 경우는 그 반대다.

넓지 않고 좁게 한 부분을 노려 일점사하는 것이 가능했는데 , 이건 결코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검기를 쏘아 낸 것만으로도 힘들 터인데, 통제를 놓치지 않고 하나하나 조종해서 하나의 지점만 노린다.

화살을 쏘아 그 위를 다른 화살로 명중하는 신기만큼 어려웠다.

무엇보다 검기의 규격이나 공력 양이 전부 알맞지 않으면 서로 부딪쳐서 하나로 모이지 않고 산화한다.

그런데 하나로 모인 모양새를 이룬다는 건, 동시다발적으로 쏘아 낸 검기의 조정도 완벽하다는 의미다.

완벽할 정도로 깔끔하고 아름다워, 도리어 이상함이 느껴질 정도다.

“괜히 천재가 아니구나, 사매.”

주서천은 머리가 사라진 강시를 보고 질린 목소리로 말했다.

무공에 대한 이해도도 높고, 신체의 움직임도 대단하지만 기의 조정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사형은 그런 소리 할 자격 없거든요.”

낙소월이 어이없다는 듯이 주서천을 쏘아붙였다.

열아홉에 천하백대고수의 반열에 든 괴물이 있다.

“그것참, 사형제끼리 칭찬해 주는 것은 좋은데 옆쪽도 좀 신경 써 주십시다!”

제갈승계가 죽통노를 끌어안고 후들거렸다.

혹시 몰라서 가져온 무기를 써 봤으나 강시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화살에 뚫리기는커녕 튕겨져 나갔다.

무공을 못 하는 건 아니지만, 섣불리 공격했다간 죽이지도 못하고 시독에 중독될까 봐 접근도 못 한다.

소령은 자객답게 독에 내성이 있었지만, 강시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주서천과 낙소월이 힘내야만 했다.

다행히 힘이 부족하진 않다.

도리어 신경이 쓰이지 않도록 제갈승계와 소령이 숨어 있기를 원했다.

주서천은 만중검으로 강시를 머리나 몸까지 베었고, 낙소월은 산검으로 머리를 날렸다.

주서천과는 달리 내공이 무한하지 않은 낙소월은 조금 지친 기색이었지만, 그럼에도 강시들을 어렵지 않게 처리했다.

“드디어 숨 좀 돌리겠네.”

검으로 머리를 찔러 확인 사살까지한 뒤에야 안심할 수 있었다.

낙소월은 수통을 꺼내 목을 축였고, 제갈승계는 주변을 둘러보면서 구조를 파악하는 데 힘썼다.

“미안하다. 너무 섣불렀어.”

주서천이 머리를 긁적이며 사과했다.

도착하자마자 야명주부터 꺼낸 게 잘못이었다.

좀 더 신중해야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누구라도 그랬을 걸요.”

낙소월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위로해 줬다.

“낙 소저 말씀이 맞습니 다. 아니, 애초에 그곳은 ‘무너지도록’ 설계되어 있었으니까요.”

“그게 무슨 소리냐?”

“워낙 순식간이라 자세히 보지는 못 했지만, 빛뿐만 아니라 소리나 무게, 그 외에도 문이 열렸다 닫히는 진동 등 여러 가지에 반응하도록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설사 형님이 야명주를 꺼내지 않았더라도 발동됐을 겁니다.”

제갈승계의 설명에 주서천이 눈살을 찌푸렸다.

“잠깐, 그렇다면……”

“사자림의 입구는 눈속임이었다거나, 아니면 이곳 자체가 함정일 수도 있는 거죠.”

후자가 아니기를 빌어야겠군.”

전자라면 적어도 이곳이 비밀 분타라는 건 변하지 않지만, 후자의 경우면 곤란하다.

“그래도 그 정도의 설비를 준비한 거면 적어도 눈속임은 아니지 않을까요?”

낙소월이 치맛자락에 묻은 먼지를 소매로 툭툭 털어 내면서 말했다.

“그러지 않기를 바라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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