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十二章 (97/254)

제갈수란이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으나 속으로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합류를 뒤늦게 해 주서천의 제대로 된 활약은 보지 못했으나, 지금의 모습만으로도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고민은 길지 않고 판단은 일체의 흔들림도 없으며 현명하였다.

사람들이 혹여나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도록 사전에 막았고, 강호의 협의를 중시하였다.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주술처럼 느껴지고, 무엇보다 그 지휘는 최전선의 장군처럼 능숙했다.

‘휴, 봐 둔 게 많아서 다행이다.’

주서천도 대대적인 지휘는 거의 처음이었다.

전란의 시대에서 여러 전장을 숱하게 경험하긴 했으나, 어디까지나 명령받는 입장 밖에 없었다.

그러나 여러 곳을 전전했던 만큼 수많은 영웅이나 사문의 인재들에게 보고 들은 것이 있었고, 이후에 찾아올 평화의 시대에서 책을 통해 지식을 쌓았다.

“부채주.”

“예.”

부채주의 얼굴은 엉망이 됐다.

눈은 한쪽이 부풀어 오르고, 코는 뭉개졌다.

이도 몇 개가 비었다.

패배가 확실해지자마자 도망치려 했으나, 주서천에게 붙잡혀 먼지나게 맞았다.

“시간이 없다 보니 내가 좀 급하다. 사람이 급하다 보니 성질이 좀 안 좋아져. 그렇지?”

“네, 그렇습니다.”

“몇 가지 물을 건데, 뜸 들이지 말고 바로바로 말했으면 좋겠어. 혹시나 거짓말을 하면 어디 한두 군데 부러질 거야. 아, 말은 해야 하니 입은 안 건들게.”

“감히 누구 앞이라고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물어만 봐 주십시오, 대협.”

“총채주가 평소 드나들던 곳이라거나 혹은 무언가 숨겼을 법한 장소 알고 있으면 바른대로 말해 봐라.”

“넵.”

시간이 없어서 기부터 죽여 뒀다.

공들인 노력 이 있는지 알아서 불었다.

조금이라도 뜸을 들이거나, 혹은 거래를 하려 들면 다소 심한 폭력을 행사했다.

“이쪽입니다.”

부채주가 순순히 안내했다.

참고로 혹시 모를 기관에 대비하여 제갈승계와 동행했다.

안내받은 곳은 채주실의 옆방이었는데, 주로 여자들을 가둬 놓고 온갖 더러운 성욕을 풀던 곳이었다.

좋지 못한 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시신은 없지만 핏자국이 상당 부분 보였다.

“나가 있어라. 또 도망쳤다간 어떻게 될지 알지?”

주서천이 부채주에게 턱짓했다.

“무, 물론입니다.”

부채주가 몸을 파르르 떨면서 문을 닫고 나갔다.

형님, 여기가 맞는 것 같습니다.”

문이 닫히자마자 제갈승계가 말했다.

“도대체 어떻게 아는 거냐?”

주서천이 신기한 듯이 물었다.

기관의 기초를 공부했으나 이상하다는 건 느끼지 못했다.

“……?”

제갈승계는 이해가 안 가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딱 보면 알지 않습니까? 방의 구조부터 이상합니다.”

“됐다. 물은 내가 잘못이지.”

천재의 부류도 여럿이 있는데, 제갈승계는 그중에서도 최악이었다.

자신이 이해하는 걸 당연시하고, 그걸 모르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무엇보다 가르치는 건 더 최악이다.

기초적인 것은 설명할 수 있지만, 그 외에는 두루뭉실했다.

“자, 보십시오. 이걸 침으로 누르면……”

제갈승계가 정중앙의 벽 면으로 다가가 품 안에서 꺼낸 침으로 꾹 눌렀다.

드르륵!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한가운데 부분의 벽이 움푹 들어갔다가 옆으로 밀리며 비밀 공간이 나왔다.

손가락으로 두들긴 것도 아니고, 본 것뿐인데 비밀 공간을 알아챘다.

어떻게 알아챈 건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하여간 천재란 것들은!’

주서천은 한숨을 푹 내쉬며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시간이 많지 않으니 그럴 여유는 없었다.

‘무엇을 숨겼을까?’

위에 서 있는 사람은 대부분 뒤가 구린 법이고, 뒤가 구린 사람은 중요한 걸 숨겨 두는 법이다.

특히나 적림도라면 더더욱 그렇다.

믿을 사람 하나도 없으니 누구에게 맡길 수도 없었다.

분명히 멀지 않은 곳에 무언가를 숨겨 뒀을 거라고 추측했고,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함정은?”

“지났어요.”

“지나다니?”

“이 벽이 하나의 기관이자 함정입니다. 문을 잘못 열 경우 발동될 겁니다. 어디 보자 유형은……”

툭툭.

제갈승계가 발을 몇 번 굴러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아랫바닥이 꺼지게 되어 있는 건 확실한데, 그 아래에 무엇이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소리의 전달을 보아하니 일단 깊이는 오에서 육 장 정도고……”

“허어.”

발을 몇 번 구른 것만으로 함정의 유형까지 파악했다.

보면 볼수록 터무니없는 감각이었다.

공감각 능력이 사람의 한계를 넘은 건 분명한데, 이상하게도 기관과 관련될 때만 발현된다.

“보아하니 총채주가 스스로 관리한 것 같은데, 꽤나 제법입니다. 보통은 기관이 발동될 것 같아 지정된 곳 외에는 벽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아 먼지가 쌓일 텐데, 들키지 않으려고 평소에도 청소해 뒀네요.”

맹강은 의심을 받지 않으려고 일부러 바닥의 청소를 철저하게 해 자연스러움을 유지했다.

“그리고……”

제갈승계가 거리낌 없이 비밀 공간으로 들어섰다.

“뭐야, 뭔가 숨겨서 더 있을 줄 알았는데 별거 없잖아? 형님, 안에는 함정이 더 이상 없습니다.”

어째 목소리에서 아쉬움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기관을 기대한 모양이었다. 역시 별종이다.

주서천은 제갈승계를 어이없다는듯이 쳐다보곤 문의 안으로 들어와 주변을 슥 훑어봤다. 공간 내부는 그다지 크지 않았고, 탁자와 위에 놓인 상자 밖에 없었다.

‘어디 보자……’

평소에 관리를 했는지 상자가 부드럽게 열린다.

부피가 제법 커서 무엇이 있을지 기대됐다.

‘응?’

상자를 여니 자그마한 목함이 나왔다.

그 아래로는 표지가 누렇게 변질된 서적이 몇 권 쌓여 있었다.

주서천은 목함의 내용물부터 확인했다.

“영약인가.’

알싸한 향이 내뱉는 환(丸)이 보였다.

한 알밖에 없었지만, 꽤나 귀해보였다.

혹시 약의 효력이 떨어질까 걱정되어 목함을 닫고 품 안에 갈무리했다.

“실망시키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영약이야 나쁘진 않지만, 그렇다고 기대를 충족시킬 정도는 아니었다.

어차피 영약이야 많다.

서적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전부 꺼내서 표지를 확인해 봤다.

만중검(萬重劍)

철포삼(鐵布杉)

무공도 무공이지만, 흥미를 끄는 건 표지에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서적이었다.

꽤나 여러 번 펼쳤는지 곳곳이 너덜너덜했고, 표지도 누렇게 변질됐다.

다른 비급서는 잠시 내버려 둔 뒤, 이름 없는 서적부터 읽었다.

‘이거야!’

내용을 확인하니 입가에 미소가 절로 번졌다.

주서천은 한 알의 영약과 세 권의 서적을 손에 넣고 제갈승계와 함께 방을 뒤로하고 나왔다.

방문을 열자마자 부채주가 머리를 바닥에 닿을 정도로 깊이 숙인 뒤 인사했다.

그 뒤에 또 무언가 숨긴 것이 없을까 싶어 침실까지 살살이 뒤져 봤지만 마땅한 것은 나오지 않았다.

“바깥도 정리된 것 같으니 슬슬 우리도 나가자.”

“으엑, 벌써요?”

제갈승계가 대놓고 아쉬운 반응을 보였다.

그 눈에는 아직 살펴보지 못한 녹룡채의 기관이 보였다.

“나중에 더 좋은 거(?) 보여 줄 테니까 가자. 정말로 시간 없으니까.”

주서천도 마음 같아선 몇 날 며칠 동안 녹룡채에 남아서 조사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상황이 상황인 만큼 아쉬워도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사형, 이쪽은 전부 끝났어요.”

낙소월과 당혜를 선두로 한 무리가 뇌옥에서 구출한 사람들을 데려왔는데, 그 숫자가 무려 이백이었다.

“우리도 마찬가지요. 전부 뇌옥에 가뒀소.”

초련이 이마에 맺힌 땀을 소매로 닦으면서 말했다.

“무공도 폐해 뒀으니까 걱정 마. 이걸로 추적해 올 일도 없을 거야.”

장서은이 덧붙여 말했다.

‘무공을 폐해?’

부채주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무공을 폐했다는 건 단전을 부쉈거나, 혹은 사지 근맥을 절단했다는 의미.

무인, 그것도 남의 것을 약탈하며 살아가는 산적에겐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였다.

단전을 부수면 내공의 순환이 불가능해질 뿐만 아니라, 다시는 기를 쌓을 수 없게 된다.

사지 근맥을 절단할 경우에는 팔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잘해 봤자 걷는 것이 한계였다.

전자건 후자건 간에 평생을 약자로 살리라.

“준비는 끝났으니 이동합시다. 사람들이 다치거나 떨어지지 않도록 인솔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저, 저기……”

부채주가 슬그머니 눈치를 봤다.

눈은 내리깔고, 손바닥은 비비적 대며 어색하게 웃었다.

“저는 안내도 했으니 이만 가 봐도 되겠습니까?”

주서천이 부채주를 바라보았다.

“이번에 대협의 말씀을 듣고 개과천선할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는 남을 도우며 살겠습니다.”

“부채주, 이 근방에 대해서 잘 알아?”

안다. 모를 리 없다.

녹룡채에 들어오고 이 생활을 한 지도 어언 이십 년이 넘는다.

그러나 이들과 함께하고 싶지 않아 거짓말을 했다.

“제가 산채에만 있어서 잘 모릅니다.”

“사지 근맥을 끊어야겠군.”

“이 근방, 아니 중경이 제 앞마당이지요! 말씀만 하십시오! 어디든지 최단 거리로 안내하겠습니다!”

“그래.”

토벌대가 드디어 녹룡채를 떠났다.

원래는 새로 합류한 제갈세가까지 합해 팔십 명이었으나, 인질들이 추가되어 총 이백팔십 명이었다.

인원수도 상당하고, 일반 백성이 이백여 명이다 보니 안전한 길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부채주를 비롯해 녹룡채의 정찰대원 몇몇을 뽑아 안내를 맡겼다.

혹시 중간에 허튼짓을 할지 몰라 사람을 곳곳에 나눈 다음 누가 거짓을 고하는지 감시했다.

다행히도 협박이 통했는지 허튼수작은 부리지 않았다.

“우리가 정말로 산 겁니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으흐흑! 흐흑!”

퇴군이 녹록하지는 않았다.

인질들의 상태가 그다지 좋지 못했다.

녹룡채를 탈출하여 감사하며 기뻐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의심을 하거나 현실을 부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대부분 녹룡채에서 겪은 일이 끔찍했는지 표정이 좋지 못했다.

아직 영역에서 완전히 벗어난 건 아니라서 그런지 그 불안감은 전부 해소되지 않았다.

남자들의 경우에는 나름 준수한 상태였으나, 여자들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여자가 다가가면 괜찮았지만, 남자가 다가가면 소리를 마구 지르며 미쳐 날뛰는 경우가 많았다.

토벌대원 중 여자가 없던 건 아니지만, 많지는 않아 곤혹스러웠다.

정 통제가 불가능할 때는 어쩔 수 없이 혈도를 짚어 강제로 잠재워 이동했다.

등에 업고 가야 했지만, 미쳐 날뛰는 것보다는 나았다.

“이대로 괜찮을까요?”

낙소월이 걱정 어린 얼굴로 넌지시 물었다.

이들을 버리고 갈 생각은 없었지만, 추격이 마음에 걸렸다.

“생각 이상으로 느려서 걱정이에요.”

“괜찮아.”

주서천이 안심하라는 듯이 웃었다.

“확실히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을 테니까.”

“어째서죠?”

낙소월이 아니라 제갈수란이 궁금한 듯이 물었다.

“눈앞에 놓인 주인 없는 황금 탓입니다.”

“아……!”

제갈수란이 무언가 깨달은 듯 탄성을 흘렸다.

해가 동산 너머로 뉘엿뉘엿 넘어갔다.

붉게 물들었던 하늘이 밤의 장막으로 덮였다가 여명으로 변한다.

오늘이 어제가 되고, 내일이 오늘이 됐다.

녹룡채의 함락 후 이튿날이 밝았다.

“무, 무슨!”

녹룡채의 산적이 눈을 크게 뜨며 놀랐다.

얼마 전에 명령을 받고 외부에 파견 나가 있다가 귀환했는데, 산채가 쑥대밭이 됐다.

온갖 곳에 동료의 시체가 굴러다니고 있고, 뇌옥에서부터 절규에 가까운 비명 소리가 들렸다.

“흐, 흐이익!”

지옥도가 현세에 펼쳐지면 이런 광경이리라.

산적은 깜짝 놀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쳤다.

도망친 곳은 얼마 전에 방문한 인근의 산채였다.

“뭣이? 녹룡채가 쑥대밭이 됐다고?”

벽악채주(壁岳塞主)가 놀란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 그렇습니다!”

‘설마……!’

얼마 전의 회의에서 거론된 토벌대가 떠올랐다.

“말도 안 돼!”

경악 어린 육성이 저절로 나왔다.

분명 토벌대의 규모는 백도 되지 않는다고 들었다.

그 정도 인원으로는 녹룡채를 결코 함락하지 못한다.

함락은커녕 정문조차 넘지 못할 것이다.

‘그 난공불락의 요새를 함락했다고?’

벽악채주는 힘껏 부정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의 불안을 떨쳐 내지 못했다.

결국 소식을 듣고 한 시진도 되지 않아 수하들을 이끌고 녹룡채로 향했다.

벽악채는 녹룡채와 대호채 만큼은 아니나 그래도 제법 근접해 있었다.

그다지 멀지 않았다.

“허어!”

녹룡채에 도착하니 입이 절로 벌어졌다.

설마설마했지만 정말이었다.

눈으로 확인했는데도 믿기지 않았다.

무적이라 불리던 녹룡채가 이렇게.처참히 당할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으헉! 초, 총채주!”

주변을 둘러보다 맹강의 시신을 볼 수 있었다.

혹시 닮은 사람은 아닐까 싶어 몇 번이나 재확인했지만 적림총채주 맹강이 맞았다.

산채가 가까이에 있는 만큼 만날 일도 잦았다.

십 년 넘게 봐 온 만큼 얼굴이나 체격을 잘 알고 있었다.

“채주! 뇌옥에 녹룡채 애들이 갇혀있습니다!”

“뭣이?”

벽악채주가 그 말을 듣고 뇌옥으로 향했다.

“허어!”

뇌옥에 가 보니 가관이었다.

약 백여 명 정도의 녹림도가 뇌옥 안에 갇혀 축 늘어져 있었다.

몇몇은 미치기라도 한 것인지 소리를 꿱꿱 지르면서 발광했다.

“사, 살려 주십시오!”

녹룡채의 산적들이 쇠창살을 붙잡으면서 애원했다.

“도대체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지? 누구에게 습격을 받았나? 관아에서? 아니면 무림맹?”

“아, 아닙니다. 주서천. 주서천입니다.”

“정말로 매화정검이었다고?”

벽악채주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토벌대의 규모가 알려진 것과는 달랐나?”

“아닙니다. 칠십에서 팔십 정도 밖에 안 됐습니다.”

“농담할 시간은 없다. 허튼소리 한다면 죽여 버리겠다.”

“저, 정말입니다!”

벽악채주가 믿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상천십좌라도 있었나?

절대고수가 동행했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러면 정말로 심각해진다.

“아, 아닙니다.”

“그럼 대체 뭐야? 하나부터 열까지 정리해서 말해 봐라.”

벽악채주는 그동안 요 며칠간 있던 사정을 자세히 들었다.

그 내용이 터무니없어서, 혹시나 속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 다른 이에게도 물어봐서 확인해 봤다.

한두 명까지는 그렇다 쳐도, 네다섯 명이 같은 말을 하니 벽악채주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지금 산채에는 아무도.없다는 거지?”

“예, 예? 예. 그렇습니다.”

하나 벽악채주는 주서천의 강함에 경악하지도, 불선하지도, 그렇다고 겁에 질리지도 않았다.

그 눈에 비친 것은 한없이 펼쳐진 욕망이었다.

“채주, 창고에 보물이 산더미로 쌓여 있습니다. 아무래도 놈들이 도망치느라 전부 남기고 간 것 같습니다.”

산채 내에 정찰을 나갔던 수하가 돌아와 속삭였다.

“흐!”

벽악채주가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웃었다.

사람, 특히나 적림도의 욕심은 생각 이상으로 크다.

그들은 눈앞에 놓인 재물에 눈이 돌아갔다.

사정을 듣고 한 일은 적림십팔채에 보고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녹림채의 재물을 터는 일이었다.

수레를 찾아서 그 안에 재물을 값비싼 것부터 채운 뒤, 거동이 힘들어져서야 벽악채로 되돌아갔다.

녹룡채의 식구들은 도와 달라 외쳤지만, 먹을 것을 적당히 던져 주고 내버려 뒀다.

벽악채주는 산채에 돌아와서야 생각을 정리하고, 전서구를 날려 적림에 이 소식을 알렸다.

‘독점하지 못하는 게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적림십팔채는 도적 간의 연합체이다.

법 없이 사는 그들에게도 최소한의 규칙은 존재한다.

녹룡채처럼 몰락한 산채의 재물을 분배하지 않고 독점할 경우, 눈총을 받는 일로는 넘어가지 않는다.

녹룡채가 망해?

총채주가 죽었다고?

맹강의 사망 소식은 주서천이 예상한 대로 적림을 요동치게 만들었다.

그만큼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이십 년 전에 등장하여 절대자로 군림했던 맹강이다.

후에 천하백대고수에 들어 위쪽에 앉았다.

“뭣들 하고 있어? 나가 있는 애들 불러와!”

금의상단의 습격이 거짓말같이 멈췄다.

각지의 채주들은 다음에 있을 폭풍을 대비했다.

지속적인 습격으로 슬슬 한계를 앞에 둔 이의채에게서 드디어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각지에서 활동 중이던 적림도는 모든 걸 중지하고 귀환했다.

“도대체 그 숫자로 어떻게 녹룡채를 쑥대밭으로 만든 거지?”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녹룡채는 지금 주인이 없습니다. 얼른 가서 창고를 털어야 합니다.”

토벌대의 존재 자체는 옆으로 치운 지 오래였다.

총채주의 복수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도리어 각지의 채주들은 새로운 야망에 활활 타올랐다.

첫 번째로 할 일은 주인 없는 재물을 분배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총채주의 자리를 쟁탈하는 일이다.

한편, 토벌대는 나흘이 지나서야 겨우 쉴 만한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한 곳은 대호채였다.

전에 관아에서 사람을 부른 덕인지, 대호채에 도착하니 관병들이 가득했다.

“와아!”

“살았어!”

사람들은 관병들을 보고 나서야 안심할 수 있었다.

녹룡채에서 온갖 고통을 받았던 사람들은 서로를 얼싸안고 눈물을 펑펑 흘렸다.

“주서천 대협 만세!”

“화산파 만세! 당가 만세! 제갈세가 만세!”

“금의검문 만세!”

기쁨에 찬 함성은 대호채뿐만 아니라, 인근 산을 뒤덮었다.

맹수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거대했다.

그리고 정확히 일주일 뒤, 토벌대의 활약이 중원을 강타하면서 일파만파 퍼졌다.

“자네, 얼마 전 소식 들었나?”

“얼마 전이라 하면 어떻게 알아듣나. 중원의 소식이 어디 한두 가지여야지.”

“어허, 이 사람아. 최근에 중원의 화제가 된 것 하나뿐이지 않나?”

“천하백대고수 주서천 말인가? 하늘이 내린 협객이시지! 그야말로 대협이야, 대협!”

현 무림에서 유명인을 꼽으라면 누구일까?

누군가 묻는다면 백이면 백, 이리 답할 것이다. “주서천!”

그의 이름이 중원 곳곳에 퍼져 화제다.

도적이라 무시당하지만 그래도 무림의 거대 세력으로 인정받는 적림에 문제가 생기면 당연히 주목을 받는다.

한데 그 적림십팔채 중에서도 대호채와 더불어 최강이라 일컬어지는 녹룡채를 고작 백도 되지 않은 무인들을 이끌고 멸했으니 관심이 폭발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처음에 대호채와 녹룡채 소식을 듣고 사람들은 흥분했다.

무림맹의 정예 부대가 나선 것일까, 아니라면 은거고수의 활약일까 등의 여러 추측이 난무했으나 어떠한 것도 들어맞지 않았다.

충격적이게도, 대호채를 무너뜨리고 난공불락의 요새를 박살 낸 것은 백여 명도 되지 않은 토벌대였다.

사람이 적은 만큼 유명 고수들로만 구성되어 있나 싶었지만, 그러기는커녕 전원이 죄다 마흔 살도 되지 않은 젊은 무인들이었다.

“어떻게 된 거지?”

“녹룡채를 비롯해 적림십팔채가 세간의 평이나 생각과는 달리 별거 아니었던 거 아닌가?”

“어허, 이 사람아. 정말로 그랬다면 관이나 정파 세력이 가만히 있었겠나?”

“무엇보다 그곳에는 맹강이 있지 않았나?”

“적림의 총채주, 맹강! 그자도 죽었다며? 어떻게 죽은 건지 누가 말 좀 해 보게.”

“주서천이 홀로 상대했다고 들었네.”

“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맹강이 어디 그냥 산적 나부랭이도 아니고, 화경의 고수가 아닌가?”

“맹강에게 당한 정사의 고수가 한둘이 아닐세. 그중에는 전(前) 천하백대고수도 있지 않았나.”

“그래. 자네가 잘못 들은 거겠지.”

강호 특유의 부풀려진 소문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목격자가 한둘이 아니었다.

살아남은 적림도부터 시작해 갇혀 있던 사람들, 그리고 결정적으로 함께 싸운 토벌대가 있었다.

심지어 당혜와 제갈수란이 나서서 답해 주자 믿기 시작했다.

“적림의 맹강이 화산의 주서천에게 당했다!”

“친척 중에 이번 토벌행에 참여한 금의검문의 무사가 있는데, 내 듣자하니 처음부터 끝까지 전선에 서서 사람들을 이끌다가 최후에는 맹강과 정면으로 승부를 냈다고 하더군!”

“작년에 산화일장에게 이긴 것도 운이 아니라 실력이었어. 어떻게 약관에 그렇게 강할 수 있지?”

“약관도 아닐세. 아직 열아홉이야.”

“열아홉? 그게 사실인가? 믿기지 않는구먼.”

고금을 통틀어도 열아홉 살에 화경의 고수를 정면으로 상대하여 승리한 전례는 없다.

설사 무공이 대단하다 할지라도, 경험이 부족하여 패배하는 게 보통이었다.

“하, 무공이 그렇게 대단한데도 그동안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거야? 똘추, 아니 봉추라고 무시당했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넘기다니…… 인내심이 대단해.”

“어디 인내심뿐인가? 어딜 가던 겸손한 태도를 보이며 하수라고 무시 하지 않고 존중한다고 들었네.”

“더 대단한 건 녹룡채에서 있었던 일일세.”

“뭔데?”

“눈앞에 평생, 아니 후손 내내 놀고먹을 재물이 산처럼 쌓여 있으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야 당연히 챙길 만큼 챙기고 도망쳤겠지.”

“그렇지? 한데 주 대협께서는 눈길 하나 주지 않고 잡혀 온 사람들부터 구하는 걸 우선으로 했다더군. 정파인이라면서 말만 번지르르한 놈들과는 다르지!”

무림인, 아니 중원인들이 주서천을 칭송했다.

그의 행보는 널리 퍼져 사람이 적은 촌까지 퍼졌다.

난공불락의 성채라 칭해지던 녹룡채를 적은 전력으로 무너뜨리고, 적림총채주를 홀로 상대해 승리했다.

그뿐만 아니라 산처럼 쌓인 재물이 눈앞에 있는데도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갇힌 사람들부터 구했다.

영웅지에서나 나올 법한 행보에 중원인들은 열광했고, 이야기 속에서 오르락내리락했다.

“화산파에서 영웅을 배출했어!”

“화산의 명예가 하늘을 찌르는구나.”

주서천이 흥하자, 사문의 격도 올라갔다.

“가가, 소림으로 속가제자를 보내는 것보다는 화산으로 보내는 게 좋지 않을까요?”

“부인의 말대로요. 마침 그 생각을 하고 있었소.”

“엄마, 나 화산에서 무공을 수련하고 싶어요.”

“셋째가 저대로 크면 망나니가 돼서 속 썩일 것 같은데…… 이참에 화산으로 보내 볼까?”

화산의 세대교체가 얼마 남지 않았다.

조금 있으면 제자를 새로 받아들일 시기다.

그렇다 보니 적전제자나 속가제자에 대한 관심이 늘었다.

상가나 명가는 벌써부터 준비하고 있었다.

호북, 방현(房縣).

시간이 흘러 어언 이 주일이 지났다.

녹룡채가 무너진 지도 삼 주일이다.

온 무림의 관심사인 토벌대는 그동안 나름대로 바삐 지냈다.

약 삼 주일 전, 토벌대는 대호채에 도착해 산채를 정리 중이던 관병들에게 인질들의 신병을 넘기고 충분한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정확히 삼 일 뒤에 사람들의 성대한 배웅을 받으면서 관아로 향했다.

“아이고, 대협! 안 됩니다! 관아는 안 됩니다!”

부채주가 빌면서 봐 달라고 했지만, 깔끔하게 무시하고 맹강의 시신과 묶어서 관아에 넘겼다.

맹강은 당연하고 부채주의 목에도 두둑한 현상금이 붙어 있어서 상당한 포상금을 받았다.

주서천은 상금을 정확히 넷으로 나눠서 화산파, 당가, 제갈세가, 금의검문에 전달했다.

이후 대강 정리되자 일주일이 흐른 뒤였고, 느긋하게 걸어 이곳 방현까지 오는 동안 일주일이 지났다.

그리고 방현에서 고급 객잔을 전세내어 늦은 회포를 풀고 이것저것 하다 보니 다시 시간이 흘렀다.

“슬슬 헤어질 때가 됐구나.”

장홍이 아쉬운 얼굴로 작별 인사를 고했다.

수선행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 토벌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하산한 것이니 강호에 남아 있을 수 없었다.

“모처럼 같은 여자끼리 모였는데 아쉽네.”

장서은이 낙소월의 손을 붙잡고 쓰게 웃었다.

“저도 마찬가지에요.”

낙소월의 눈길에도 아쉬움이 감돌았다.

주서천이 독자적으로 움직이다 보니 사형제와 만날 일 자체가 없다.

심지어 동년배 여자도 보기 힘들다.

금의검문에 머물렀을 때도 친해진 동성이라곤 무선화나 초련 정도였다.

“참 나, 어차피 낙 사매와는 내년이나 내후년에 만날 수 있잖아?”

장홍이 어이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어릴 적부터 온갖 기대를 받으며 매화검수로 내정된 낙소월의 수선행은 일반 제자와 달리 짧다.

길어도 내후년에는 화산으로 돌아와 매화검수로서 수련을 받으리라.

“혜 언니와 수란 언니도 잘 지내셔야 해요?”

장서은이 당혜와 제갈수란에게 살갑게 말했다.

‘언제 저리 친해졌지? 과연 장서은 사저야.’

장홍과 장서은은 어릴 적부터 유독 붙임성도 좋고, 성격이 밝아 주변 사람들과 쉽게 친해졌다.

굳이 배분이나 실력이 아니어도, 훌륭한 인성과 더불어 밝은 성격 덕에 사형제들이 많이들 따른다.

“그리고 혜 언니는 욱하는 성질 좀 죽이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요. 그러다 미움받을 거예요?”

“너야말로 사람에 따라 위경련을 일으킬 과한 친화력부터 어떻게 하는 편이 좋아.”

같은 여자라고 봐주지 않는 독설이었다.

“호호호. 그렇게 걱정해 주셔서 감사해요. 역시 말은 그러셔도 혜 언니는 상냥하네요.”

“……”

당혜의 미간이 슬며시 좁혀졌다.

“어휴, 그나저나 사제가 이리도 대단하니 어디 가서 자랑할 수 있을 망정 내 어깨는 못 펴겠구나?”

장홍이 주서천을 보고 고개를 좌우로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 말 하지 마십시오. 장 사형과 사저의 활약도 대단하시지 않았습니까.”

거짓말이 아니다.

실제로 장홍과 장서은의 지휘는 우수했고, 최후에 보여 줬던 매화검진의 운용은 실로 대단하였다.

비록 이번의 토벌행에서 주서천의 활약이 부각됐으나, 그 외의 사람들이 묻힌 것은 아니었다. 장홍과 장서은의 경우에도 역시 매화검수가 될 인재라면서 칭찬이 이어졌다.

“하여간 사제 하나 잘 둬서 이게 무슨 꼴이냐.”

장홍은 말하면서도 전혀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기분 나빠 하기는커녕, 도리어 자랑스럽다는 듯이 웃으면서 주서천의 어깨를 두들겼다.

“시간만 있다면 너에게 한 수 배우고 싶지만, 그건 나중으로 미뤄야겠다.”

“이제는 정말로 가 볼게. 잘 있어, 사제.”

주서천 사형과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내년에는 저희도 강호로 나올 예정이니, 필요하시다면 얼마든지 불러 주십시오.”

장홍과 장서은을 시작으로 사형제들이 한마디씩 건냈다.

화산에서 십 년, 아니 수십 년을 함께했지만 이렇게나 많은 사형제들에게 인사를 받는 건 처음이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음에 나온다면 술 한 잔 사겠습니다.”

당가나 제갈세가, 금의검문에서도 인사가 이어졌다.

전장에서 서로 등을 맡겼던 만큼 친분도 쌓였다.

방현에서 화산파의 일행들을 떠나보내고, 남은 사람들은 북동 방향으로 향했다.

호북을 넘어 하남을 지나 산동으로 복귀할 예정이었다.

“그러면 저희도 이만 가 보도록 할게요.”

중간 즈음에 양양(襄陽)이라는 마을에 도착하자, 제갈세가도 이만 헤어지기로 했다.

제갈수란은 남동생과는 다르게 화산파처럼 토벌행으로 나온 것인지라 이만 돌아가 봐야 했다.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 다, 누님.”

주서천이 나서기도 전에 제갈승계가 먼저 인사했다.

“설마 제갈 소저께서 와 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아무래도 승계도 있고, 매화정검 대협과는 연이 있으니까요.”

“대협이라니, 과분합니다. 낯 뜨거우니 그냥 편하게 주 공자라 불러주십시오.”

주서천이 손사래를 치면서 쓰게 웃었다.

“네, 그러면 그러도록 할게요. 아, 그리고……”

“……?”

“얼마 전에 해 주신 말씀은 큰 도움이 됐어요.”

“……아!”

제갈승계를 데려오려고 제갈세가에 방문했을 일이다.

진법에 관해 미래에 알고 있는 지식 중 하나를 흘리듯이 말하고 갔는데, 무언가를 얻은 모양이었다.

“도움이 됐다면 다행입니다.”

“그러한 지식은 어디서 얻었는지 궁금하네요.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진법에 대해 토론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하하하……”

주서천이 어색하게 웃었다.

진법에 대해 알고 있는 건 정말 기초뿐, 그 이상의 것은 잘 모른다.

한편, 제갈세가의 호위 무사들은 주서천과 제갈수란의 대화를 들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가씨가 저렇게 말을 많이 하시다니!’

‘가문 사람들이라면 모를까, 외부인 앞에선 하루에 열 마디를 하는 것도 보기 힘들거늘……’

‘부럽다, 부러워. 삼봉 중 이봉과 저리 친해지다니!’

제갈수란이 말 자체를 안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필요하지 않으면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진법이나 혹은 전술 관련으로는 누구보다 이야기를 많이 하나, 그 외의 사설은 입에 담지 않는 편이었다.

‘크으, 수상한 놈팡이라면 내 진작 혼줄을 내 줬겠지만 상대가 상대니 그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최근에 주서천이 천하백대고수의 반열에 올랐다고 하던데……’

‘무공이면 무공, 인품이면 인품. 그리고 호북 제일의 미녀와도 친하니 부러워서 배가 다 아프구나.’

그렇게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제갈세가와도 나중의 만남을 기약하면서 이별을 고했다.

“자, 이제 멈추지 않고 바로 가 봅시다. 산동에서 상단주께서 저희를 위해 잔치를 준비했답니다.”

“와아!”

날씨가 조금 쌀쌀하다.

이제 얼마있지 않으면 설매가 피지 않을까.

무심코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호북에서 산동의 금의상단까지 오는 길에 별일은 없었다.

순탄한 움직임으로 무사히 제남에 도착했다.

급하지는 않아 서두르지는 않았다.

어차피 적림이야 줄어든 산채를 보강하고, 녹룡채의 재물을 배분하고 총채주를 새로 뽑느라 토벌대에는 관심도 없었다.

배가 고프면 잠시 멈춰 서서 사냥을 하고, 잠이 부족하면 수면을 취했다.

이렇게 여유를 부리면서 이동했는데도 산동의 제남까지는 일주일 밖에 걸리지 않았다.

일반인이라면 말을 타지 않는 이상 무리였을 테지만 하나같이 무인들이다 보니 잘 지치지도 않고 걸음도 빨랐다.

“대협께서 오셨다! 길을 비켜라!”

제남에 도착하기도 전에 이의채가 소식을 들었는지 잔칫상을 준비해놓고 버선발로 뛰어 마중 나왔다.

“집이다!”

제갈승계가 이제야 살겠다는 듯 환하게 웃었다.

평생을 살았던 세가보다 금의상단이 편하고 좋았다.

“소란 떠시는 건 여전하시군.”

주서천이 피식 웃었다.

성대한 환영에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아이고, 정말로 고생 많으셨습니다. 방방곡곡에서 기승을 부리던 개새끼들, 아니 도적들이 대협 덕분에 활동을 멈추고 도망치듯이 사라지더군요. 하, 그동안 입은 피해가 정말 만만치 않았습니다.”

“혹시 그동안 입은 손해가 생각 이상으로 큽니까?”

이럴 줄 알았으면 녹룡채에서 값비싼 것 좀 가져올 걸 그랬나 싶은 후회감이 들었다.

“대협께서 나서 주선 덕에 어찌어찌 적자는 면했습니다만, 그뿐입니다. 그놈들이 기승을 부린 이후로는 손해 본 부분을 막느라 흑자를 보지 못했습니다.”

이의채가 이득 하나 건지지 못했다는 사실에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타 지방에서 계획 중이었던 사업 몇 개도 연기됐습니다. 경쟁 상단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작업장을 빼앗아서 아예 무산된 곳도 있습니다.”

“그래도 적자는 면했다니 불행 중 다행이군요.”

역시 상왕은 상왕이었다.

남들 같다면 적자는 물론이고 상단 자체가 망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한 곳도 아니고 각지에서 적림도가 끊임 없이 약탈해 오고, 그로 인한 손해를 다른 돈으로 막아 냈다.

“정말로 위험할 뻔했던 적도 있었지만, 무곡 어르신이 도와주신 덕분에 살았습니다. 아, 대협께서 소개해주신 그와 그녀의 힘도 든든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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