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아아-!
주서천의 검이 바람 소리를 냈다.
대기에 구멍을 내고 궤적을 그려 내며 맹강의 상완을 노렸다.
맹강도 반격에 나섰다.
육중한 신체와 다르게 재빨랐다.
하단에서 상단으로 쳐올린 검으로 튕겨 냈다.
채앵!
검과 검이 부딪치면서 불꽃을 토해낸다.
양쪽 다 검기가 실려 부딪칠 때마다 시퍼런 빛을 내뿜었다.
공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주서천이 공중으로 튕겨져 나간 검을 신속하게 회수했다.
그리고 이어서 화산파의 절기가 주서천의 손에서 펼쳐졌다.
“이십사수매화검법!”
맹강이 한눈에 알아봤다.
나이는 그냥 먹은 게 아니다.
적림의 총채주인 만큼 다양한 상대와 싸워 왔다.
‘매화노방, 매화접무, 매화토염!’
일초에서 삼초까지 자연스레 연결했다.
검이 기를 뱉어 내듯, 검기 다발을 위로 쏟아 냈다.
한둘이 아니라 여러 개였다.
멀리서 보면 상당한 장관이다.
그러나 가까이, 맹강의 시점에서 보면 지옥도였다.
파바바밧!
아니나 다를까, 그다음 초식이 이어진다.
마치 유성우라고 해야 할까.
머리 위에서 한곳을 향해 떨어져 내리는 검기는 그야말로 무시무시했다.
낙섬(落進)으로 햇살을 떨어뜨리고, 낙락(落落)을 펼쳐 검기를 남김없이 쏟아내고 떨어뜨렸다.
“크으읏!”
맹강의 입에서 신음 소리가 절로 흘러나왔다.
하나하나는 별 것 아니지만 한곳을 향해서 무수히 떨어지니 막는 것도 보통 힘든 게 아니었다.
채채채채챙!
맹강의 검에도 기가 실린다.
최대한 막아 낼 수 있도록 널찍하게 펴지는 형태였다.
하지만 한계가 있었다.
최대한 바쁘게 움직이며 튕겨 내던 맹강도 결국 몸을 옆으로 던져 피해 냈다.
흔히 말하는 나려타곤이다.
파스스스슥!
목표를 잃은 검기 다발이 흙바닥 위로 떨어졌다.
지면 위에는 그물을 연상시키는 자국이 남았다.
그 여파로 흙먼지가 구름처럼 뭉게뭉게 피어오르면서 시야를 방해했다.
주서천이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눈을 감았다.
흙먼지가 지독하니 차라리 다른 감각에 의지하기로 했다.
현명한 선택이었다.
좌측에서 뿌옇게 피어오른 먼지구름이 갈라지면서 맹강이 튀어나왔다.
‘뒈져라!’
맹강이 입가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는 반드시 치명상을 입힐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어림없지!’
주서천이 눈을 번쩍 빛냈다.
시각을 단념하고 그 외의 감각에 집중한 만큼 반응도 빨랐다.
기다렸다는 듯이 몸을 틀어 검을 막았다.
째애앵 - !
철과 철이 다시 부딪친다.
맞대는 것만으로도 바람이 불었다.
그들을 중심으로 먼지구름이 걷혔다.
희뿌옇던 시야는 온데간데없고 깨끗해졌다.
검신 너머로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였다.
“……”
격렬했던 충돌이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주서천도 맹강도 움직이지 않고 서로 마주봤다.
‘왜지?’
주서천이 속으로 의문을 표했다.
‘몇 번이나 기회가 있었을 텐데, 왜 아직도 검강을 쓰지 않은 거지?’
언뜻 보면 맹강이 전력을 내보이는 것 같아도 전혀 아니었다.
화경의 증거를 쓰지 않는 것이 그 증거다.
검술에서도 무언가 부족함이 느껴졌다.
확실히 하수는 아닌데 화경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다.
‘제대로 된 검법을 구사한 것도 아니고.’
신체 능력이나 반사 신경은 저절로 감탄이 흘러나왔지만, 그 외의 부분은 뭐라 말하기에는 애매했다.
이게 마음에 걸려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
원래의 의도대로라면 맹강이 강기를 맹신하는 순간, 허를 찌르는 반격으로 승부를 내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정작 아슬아슬한 순간에도 강기를 쓸 생각이 도통 보이지 않아 어찌할지 고민됐다.
“주서천.”
머릿속으로 수십 가지의 상념이 지나가고 있던 중이었다.
맹강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상념을 깨뜨렸다.
전과 다르게 차갑게 불타오르는 분노가 보였다.
를러넘치는 살기 속에서 비치는 것은 진지함이었다.
“설마 날 이렇게까지 밀어붙일 줄은 몰랐다.”
강호의 소문은 언제나 과장이 섞여있는 법.
매화정검도 강호의 소문을 등에 업은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인정하마.”
“쳇 참, 주저리주저리 말 더럽게 많네. 아까는 잔뜩 화나서 욕만 하더니만, 이제는 잡설이냐?”
“건방진 놈. 이 적림총채주, 맹강이 인정해 주겠다고 말하고 있거늘. 그 영광을 걷어차?”
“그딴 영광 필요도 없고, 관심도 없다.”
“이노옴! 그놈의 혓바닥은 정말로 쉴 새 없이 건방진 소리를 지껄이는구나!”
맹강이 노성을 내지르면서 팔을 쑥 뺐다.
손에 쥔 검도 함께 따라갔다.
“크하아압!”
맹강이 폐 깊숙한 곳에서 숨을 빨아들였다가, 내뱉으면서 고함을 내질렀다.
동시에 검도 크게 휘둘렀다.
주서천은 번개 같은 몸놀림으로 퇴보를 밟아 검을 피했다.
약간의 여유를 부릴 정도로 가뿐히 피했다.
다음에 이어질 검격에 대비하면서 머리를 굴렸다.
‘……?’
이상했다. 당장 전력을 쏟아 낼 기세였다.
당연하게도 공격이 연달아 날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다음으로 이어진 행동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도, 도망쳐?’
주서천의 얼굴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그 눈동자에 보이는 건 전속력으로 뛰는 맹강의 등이었다.
‘설마 제갈수란을 인질로 삼을 생각인가?’
그렇다면 큰일이다.
후문의 전력은 미끼다.
적림도 일부분을 묶는 용도 밖에 되지 않는다.
사실상 맹강을 막을 수 있는 무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가 멧돼지처럼 돌격하면 모두 박살이 나리라.
“어딜!”
주서천이 어림없다는 듯이 맹강을 쫓았다.
평소 보법과 경공에 시간을 투자한 만큼의 결과가 나왔다.
뒤늦게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거리를 순식간에 좁혔다.
‘유은비도!’
왼팔을 앞으로 쭉 뻗었다.
소맷자락이 부풀어 오르면서 펄럭였다.
파바밧!
손목을 살짝 튕기자 비수가 쏘아졌다.
일직선을 곧게 그은 것처럼 깔끔한 궤적이 남았다.
“이 새끼!”
맹강이 귀신같이 눈치채고 등을 휙 돌렸다.
그러곤 검을 휘둘러 검풍을 방출했다.
아지랑이가 모였다가, 넓게 퍼진다.
눈으로 보이지 않는 칼날의 바람이 쏘아져 나가 비수를 떨쳐 냈다.
맹강의 검풍에는 눈이 없었다.
그저 후위를 막아 내기 위해서 아무렇게나 쏘아졌다.
“으악!”
“컥!”
그 탓에 애꿎은 몇몇의 적림도만 휘말렸다.
검풍이 불어닥친 자리에 피 안개가 생겼다.
“이젠 암기까지 써? 어이가 없군.”
맹강이 어이없어했다.
암기 던지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당가와 견줘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였다.
“어이가 없어? 내가 할 말이다.”
주서천이 맹강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인정한다 뭐다 하더니, 꽁지 빠지게 도망쳐? 도대체 뭐하는 놈이냐?”
하나부터 열까지 이해할 수 없다.
존재감만으로는 화경이 확실한데, 무공은 아니다.
전력을 낼 것 같이 말하더니, 도망쳤다.
“작전상 후퇴라는 말도 못 들어 봤나?”
맹강이 입꼬리를 비틀어 올려 웃었다.
기분 나쁜 웃음이었다.
챙그랑.
웃음과 더불어 맹강이 쥐고 있던 검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힘이 풀려서가 아니었다. 고의다.
“네 머리가 아직까지 목 위에 멀쩡히 붙어 있는 연유가 뭔지 아나? 무공이 강해서? 운이 좋아서? 아니야. 이 몸이 아직까지 전력을 내지 않아서다.”
“과거 시험을 수십 차례 낙방하고 허구한 날 술이나 퍼마시는 주제에 ‘난 아직까지 전력을 내지 않았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 라는 거지? 나도 안다.”
“아니.”
“그러면 왼팔에 용의 힘이라도 봉인해 뒀나?”
“흐흐흐, 그렇게 잘난 듯이 떠드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다.”
맹강이 음산하게 웃었다.
웃음소리에서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섬뜩함이 느껴졌다.
그는 보란 듯이 등을 보이면서 몸을 돌렸다.
환하게 개방된 문처럼 보였지만, 어째서인지 다가갈 수 없었다.
주서천의 눈에는 문 뒤로 적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리는 수백 수천의 궁병이 보였다.
‘설마……’
머릿속에서 한 가지 가능성이 나왔다.
그것이라면 지금까지의 이상 행동을 모두 설명할 수 있다.
그것만큼은 아니기를 빌었다.
하나 언제나 불길한 생각은 적중하기 마련이었다.
“으하하!”
맹강의 목소리에서 자신감이 잔뜩 묻어났다.
그가 다시 몸을 돌려 정면을 마주 봤다.
“자아, 애송아. 이제 제대로 춤춰보자.”
그것은, 창이었다.
창두(槍頭)는 어떠한 명검보다 예리하게 빛난다.
그 아랫부분으로는 붉은 천으로 된 끈 묶음, 영(線)이 대롱대롱 매달려 시선을 끌었다.
왼손이 먼저 앞으로 나아가 나무로 제작된 창간(槍tF)을 잡고, 오른손이 뒤를 잡아 고정했다.
‘실수다.’
주서천이 속으로 혀를 차면서 후회했다.
생각이나 의심이 너무 많았다.
판단이 좋지 못했다.
맹강은 검강을 일부러 쓰지 않은 게 아니다.
애초에 사용하지 못했다.
화경에 오른 건 검이 아니라 창이었다.
창이 들려 있지 않으니 강기를 쓰지 못한 것은 당연했다.
검술의 수준이 생각보다 낮은 것도 이걸로 설명이 된다.
괜히 기회를 노린다, 저런다 하면서 삽질을 했다.
검강을 진작 사용했다면 쉽게 처리했을 일이었다.
빠드득!
이가 절로 갈렸다.
자기 자신의 한심함에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하하하. 이제 좀 볼 만한 얼굴이 되지 않았느냐?”
맹강이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었다.
…
후우.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힌다.
뜨겁게 달아오른 뇌를 차갑게 식혔다.
천천히 심호흡해 진정시켰다.
지금의 잘못은 경험으로 녹이면 된다.
반성하고 조심하면 된다면서 자조(自照)했다.
주서천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맹강의 눈도 매서워졌다.
‘죽여야 한다.’
맹강은 주서천을 더 이상 애송이라 우습게 보지 않았다.
그의 마음속에서 살심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서른, 아니 이제 겨우 스물 남짓한 나이에 이 정도의 강함이다. 십 년이 지나면 상대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 여기서 놓치면 언젠가 복수 할 터. 훗날을 위해서라도 기필코 죽여야 한다.’
하단전에서부터 내공을 끌어 올렸다.
전과 다르게 그 순환이 빨라졌다.
이제야 본연의 힘을 낼 수 있다.
무엇보다……
맹강이 무심코 생각을 말로 옮겼다.
“이걸 보여 준 순간, 누구도 여기서 살아 돌아갈 수는 없다.”
선을 그었을 때 왼발의 발꿈치와 오른발의 발꿈치가 같은 선상에 위치하도록 자세를 잡았다.
창술의 보편적인 보법의 형태를 하고 있고, 한 손은 창대의 뿌리 쪽을 잡고 있었다.
숨죽인 순간, 다음 공격이 물 흐르듯이 이어지자 주서천이 눈을 크게 뜨고 놀란 목소리를 냈다.
“이화창(梨花槍)…… 양가창법(楊家槍法)!”
“흥!”
“역시 관군 출신, 그것도 장수구나!”
양가창법.
남송 시대의 여장군, 양묘진(楊妙眞)이 전한 창법으로 명대에 와서 저명한 창술이 됐다.
그 근본 자체가 몹시 뛰어났지만, 시대를 거치면서 여러 무인의 손에서 더욱 발달하여 창법 중에서도 으뜸이 됐다.
무림 방파의 말을 비유하자면 군의 절세무공이자 절기로 인정되어 군내에서도 장수들에게만 전수됐다.
“킁, 잘도 알아봤구나.”
맹강이 탐탁지 않은 듯 눈살을 찌푸렸다.
“잡는 방식을 보면 그 답은 정해져있으니까.”
“무림에도 이러한 방식이 없진 않을 텐데?”
“그래, 틀린 말은 아니다.”
일평생을 무학에 바치는 무림인들이다.
다양한 병장기의 무공이 있었고, 많지는 않으나 그중에는 창도 존재했다.
양가창법의 명성이 널리 알려지자, 몇몇의 무인들은 그 묘(妙)를 참조로 하여 창법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성을 연상시키는 산채, 무림인이라면 쓰지 않을 활의 활용, 그리고 훈련된 산적들까지.”
하나같이 관군을 연상시키는 것 밖에 없었다.
“이러고도 군과 관계가 없다고?”
“됐다.”
대답할 가치도 없다. 애초에 별 기대도 안 했다.
맹강이 창대를 쥔 손에 힘을 줬다.
눈매도 한층 더 매서워졌다.
겉에서 흐르는 기도 자체가 변했다.
전에 없었던 자신감이 물씬 풍겼다.
검을 쥐고 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공기가 떨렸다.
얼마 가지 않아 죽은 듯이 멈췄다.
마치 세상이라도 멈춘 듯, 고요함만이 남았다.
주서천도 맹강도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주변은 신경 쓰지 않고 서로 쳐다보기만 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몸이 저려 가만히 있지 못할 텐데, 두 고수는 처음처럼 미동도 보이지 않았다.
탁!
멈췄던 세상이 다시 움직인다.
바람에 흩날리던 풀잎이 옆으로 기울었다.
쐐-액!
새하얀 빛줄기가 뿜어진다.
대기에 구멍이 뚫렸다.
고요함을 깨고 먼저 움직인 건 맹강의 창이었다.
한 발을 내디디며 창을 힘껏 내지른다.
창대의 뿌리 쪽을 잡아서 자연스레 찌르기도 길어졌다.
창을 최대한 내지른다.
일 보 전진하니 그 길이가 보다 늘어났다.
무서운 건 그 찌르기가 번개처럼 매서우면서도 힘찬 점이었다.
‘위험하다!’
주서천이 신속하게 튕겨 나가듯이 물러났다.
‘어딜!’
맹강의 눈에서 시퍼런 안광이 뿜어져 나왔다.
그는 어림없다는 듯 퇴보하는 목표를 맹렬하게 추격했다.
부웅!
손에 힘을 주고 창을 위로 들어 올리자, 창대가 엿가락처럼 휜다.
맹강은 그 탄력을 이용해 창으로 원을 그려 내듯 빙글빙글 돌렸다.
영도 따라 돌았다.
‘눈속임!’
중원의 창은 어떤 창이건 간에 영이라는 끈 묶음이 달려 있는데, 그 용도는 세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영을 흔들어 창극이 제대로 보이지 않도록 눈을 현혹하는 것이요, 둘째는 적을 찔렀을 때 그 피가 손잡이를 타고 내려와서 미끄럽게 하지 않는 것이었다.
셋째는 단순한 장식으로 사용됐다.
양가창법은 이 첫 번째를 제대로 응용했다.
일부러 원을 그리듯 찔러 나아가며 현란한 움직임으로 속인 뒤 가슴 정중앙을 찔러 왔다.
“흡!”
그러나 주서천은 그 현혹에 넘어가지 않았다.
몸을 최소한으로 틀어 원을 그리는 찌르기를 피하고, 결정적인 일격에는 검을 휘둘러 힘껏 튕겨 냈다.
째애앵 - !
금속의 마찰음이 길게 늘어졌다.
강하게 후려친 그 힘의 여파가 각자의 검과 창에 전해졌다.
‘봉점두(鳳點頭)를 간단히 막은 것도 놀라운데, 아직도 이런 공력을 낼 수 있다고?’
맹강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공수를 교환하면 교환할수록 눈앞의 괴물에 기가 질렸다.
딱히 헤매지도 않았고, 놀라움도 없었다.
그저 지금까지 막아 내던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받아쳤다.
‘죽여야 한다!’
살심이 더더욱 깊어졌다.
치욕을 되갚아 주는 것을 넘어서, 이제는 미래를 위해 제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바바밧!
맹강의 상완근이 부풀어 올랐다.
핏줄이 툭 튀어나온 게 보인다.
근력이 본연의 힘을 발휘했다.
근력 만이 아니라, 내공까지 더했다.
온몸에서 넘치는 힘을 이용해 창을 붙잡고 몇 번이나 내질렀다.
파바바밧!
나아갈 땐 날카롭고, 물러날 때는 빨랐다.
그야말로 신속의 움직임으로 수십 차례의 찌르기를 보여 줬다.
‘대단하군!’
주서천이 순수하게 감탄했다.
창은 길면 길수록 다루기도 어렵고, 기동성이 떨어진다.
또한 무거워지니 속도도 느려지는 게 정상이다.
그러나 맹강의 창은 그러한 단점이 하나도 없었다.
도리어 보통의 창보다 길지만 움직이면 우레와 같았고, 그 움직임은 흔들리지 없는 산이나 다름없었다.
‘후웁!’
기감을 활성화한다.
몸의 감각이 예민해졌다.
시각과 청각 등이 창의 정보를 받아들이고 관측한다.
주서천의 검도 창의 움직임에 따라갔다.
생채기조차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전부 쳐 냈다.
채채채챙!
빛과 빛이 선을 그려 냈다.
하나의 선은 둘이 되고, 둘은 여러 개로 나누어져 허공을 그렸다.
그러나 그 선은 상대에게 닿지 않았다.
닿기도 전에 허공에서 부딪친 또 다른 선에 의하여 사라졌다.
째앵 - !
검격과 창격이 크게 부딪쳤다.
수를 셀 수도 없는 부딪침 중 하나, 불꽃이 크게 튀면서 둘이 물러났다.
“미친놈!”
이걸 전부 막아?
맹강이 뒷말을 삼키면서 기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검과는 다르다.
창에는 자신이 있었다.
심지어 봐주지 않고 전력을 다했거늘, 죄다 막았다.
손에 땀이 맺힐 정도로 최대한의 빠르기였다.
그것이 막힌 게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어떻게 막을 수 있는 거지?’
맹강은 의아해했다.
빠르기만 했다면 이렇게 놀라지는 않는다.
창에 실린 공력도 적지 않았고, 움직임이 변화무쌍하고 끊임이 없는 이화창도 그 묘리가 보통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화경의 경지가 아닌가.
반응 속도에서부터 내공의 순환, 근력이나 순발력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아무리 영약을 밥 먹듯이 처먹고 내공을 쌓았다 할지라도, 그것만으로는 화경에 맞대응할 수는 없다.
‘아니, 이제는 아무래도 좋다.’
죽인다!
그 일념에 모든 걸 집중했다.
살심이 피어오르고, 기가 되어 압박해 왔다.
웬만한 고수조차 버티기 힘든 압박이었다.
주서천이 잠시 멈칫한다.
맹강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맺혔다.
타아앗!
맹강이 앞으로 쏘아졌다.
여전히 번개와 같은 몸놀림이다.
정말 창을 들고 있는 게 맞을까 싶은 움직임이었다.
아무렇게나 자란 수염이 바람에 흩날린다.
눈썹도 수염에 맞춰 움직였다.
‘온다!’
주서천이 무릎을 슬쩍 굽혔다.
검을 쥐고 있던 손에도 힘이 더해졌다.
내공의 순환 속도가 신속해졌다.
붕! 부웅!
맹강의 창이 원을 그리듯 돈다.
붉은 천도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시선을 끌었다.
창극과 창영, 두 가지의 잔상이 현혹하려 들었으나, 주서천의 시선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놓치지 않겠다는 듯, 오직 창극만을 잡는다.
그 덕에 잔상 속에서 맺히는 창강(槍窟)을 발견했다.
‘나왔다!’
최초로 노렸던 수가 나왔다.
맹강의 눈에서 과신이 감돌자 이때다 싶어 검을 힘껏 내리 베었다.
“멍청한 놈! 끝이다!”
맹강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호기롭게 외쳤다.
째앵!
“뭔……!”
맹강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입이 벌어졌다.
파죽지세로 진격하던 창이 멈췄다.
원래라면 멈추기는커녕 상대의 검이 잘려 나가야만 했다.
설사 만년한철로 제련한 검이라도 이렇게 버티지는 못한다.
“설마!”
보다 견고해진 기의 덩어리가 부딪쳤다.
그 여파가 창대에서 손으로 전해져 파르르 떨렸다.
“화경이라고……!”
맹강의 입에서 불신과 경악으로 물든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후웁!’
주서천은 그 잘난 입을 나불대지 않았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반격에 나섰다.
창이 내리쳤던 검은 이미 회수됐고, 손목을 빙글 돌려 고쳐 잡아 그대로 혼신의 찌르기를 선보였다.
쐐-액!
검극이 한 자루의 창이 된다.
그동안 보여 줬던 맹강의 찌르기와 견주어도 전혀 지지 않은 기세였다.
자하검결이나 이십사수매화검법의 절초는 아니었지만, 순수한 근력과 내공으로 이룬 일격이었다.
바람 소리를 내고, 대기를 둘로 가른다.
희미하게 띠는 자색의 빛줄기를 그려낸 궤적이 나아갔다.
‘안 돼!’
맹강의 안색이 백지장처럼 창백해졌다.
손 놓고 가만히 구경만 하는 건 아니다.
창을 쥔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품 안을 파고드는 주서천을 막기 위해서 왼손으로 창대를 위로 올리고, 오른손으로는 힘껏 내렸다.
힘의 방향을 사선으로 향하게 했으며, 창대가 휘면서 그 반탄력을 이용해 좀 더 빠르게 올라왔다.
“크하악!”
푸욱!
그러나 대응이 늦어도 너무 늦었다.
결국 오른쪽 가슴을 허용했다.
몸을 최대한 비틀었지만, 그래도 범위 안에선 벗어나지 못했다.
호신강기의 전개도 늦어 막지도 못했다.
뒤늦게 뛰어올랐던 창도 목표를 잃고 멈춰 섰다.
공중에서 다시 잡지 않았다면 바닥에 내팽개쳐졌겠지만, 맹강의 자존심이 그걸 용납하지 않았다.
맹강은 치명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보통 사람이라면 들지도 못하는 창을 한 손으로 낚아채 세웠다.
“이런, 육, 시랄……!”
쿨럭!
맹강이 피를 울컥 토했다.
“암천회의 도움을 받았나?”
주서천이 중얼거리듯이 물었다.
맹강이 몸을 움찔 떨었다.
“한적한 시골의 산적이라면 모를까, 한때 군의 장수였던 무인이 적림 같이 눈에 띄는 곳에 숨을 수는 없다.”
맹강은 본연의 실력을 철저하게 숨기고 있었다.
양가창법을 사용하면서도 탐탁지 않게 여긴 것을 보면 혹시라도 정체가 밝혀질 걸 두려워했을 것이다.
“탈주병이야 많지만, 그게 장수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관에서 널 가만히 두지 않을 터.”
장수, 즉 무관인 게 분명했다.
이런 신분이라면 함부로 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애초에 조용히 살아간다, 라는 전제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반대 파벌이라면 방해꾼을 드디어 쉽게처리할 수 있다며 좋아할 것이고, 같은 파벌도 뒤가 구린 비밀을 발설할 것을 두려워해 죽기를 바랄 것이다.
황제 역시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지방에 숨어 있다 반역을 꾀하지 않을까 싶은 불안 탓이었다.
실제로 역사 속에 그런 전례가 있었다.
“천기인가?”
“흐, 흐……”
맹강이 끓는 목소리로 실소를 흘렸다.
“우습구나, 우스워……”
“뭐가?”
“천하가…… 손바닥 위에…… 있다고 잘난 듯이 떠들더니…… 그게 아니니 웃을 수밖에……”
역시 암천회의 비호를 받고 있었다.
적림십팔채는 몰라도 총채주는 관여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나에게 이겼으니 그 상으로…… 알려 주마. 아는, 건…… 많지 않다. 그저, 그 지긋지긋한 북방의 오랑캐를 더 이상 보고 싶지 않고…… 지옥 같은 곳에서…… 벗어, 나고 싶어 도움을 받았을 뿐……”
쿨럭!
상태가 좋지 않은지 말이 중간중간 끊겼다.
안색도 파리하고, 피도 드문드문 토했다.
“대단, 하긴…… 하더군.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얼굴도 고쳐 주고…… 또……”
말을 할수록 그 목소리가 낮아졌다.
알고 싶은 것이 더 있었지만 아무래도 여기까지인 모양이었다.
“크하하하…… 천하가, 속고 있구나. 암천회는 물론이고, 무림까지. 화산의 괴물에게 속고 있었어……”
맹강은 있는 힘을 쥐어짜 내듯이 외쳤으나, 그 목소리는 주서천에게 밖에 닿지 않았다.
맹강과의 격전에서 승리한 주서천은 그의 등 위에 발을 올려놓고 목소리에 내공을 실어 외쳤다.
“그만!”
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어찌나 큰지 메아리가 되어 녹룡채를 넘어 산에 퍼졌다.
나뭇가지 위에서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던 소동물이 깜짝 놀라 도망쳤다.
“……!”
토벌대와 적림도도 잠시 멈췄다.
이제 막 목을 베려던 무인도 목소리에 반응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몇백 명의 무인들의 이목이 모조리 한곳으로 몰렸다.
맹강의 시신 위에 서 있는 주서천이었다.
“서, 설마!”
근처의 적림도가 시신을 알아본 듯 떨리는 목소리로 경악했다.
그 파장이 주변의 동료들에게 퍼졌다.
반면 토벌대의 표정은 환해졌다.
상당히 지쳐 있었는지 거칠게 심호흡하고 있음에도 기뻐하는 얼굴이었다.
“총채주는 죽었다! 괜한 반항 말고 항복해라!”
주서천의 말이 여러 사람의 표정을 변화시켰다.
“말도 안 돼!”
말이 끝나기 무섭게 부채주가 힘껏 부정했다.
여태껏 온갖 기적을 보여 줬던 총채주다.
지금껏 누구도 보여 주지 않았던 전술을 응용하였고, 관아의 토벌대나 정파의 고수가 쳐들어와도 간단히 물리쳤다.
맹강이 있는 한은 영원히 일인자는 될 수 없지만, 그래도 일인자 못지 않은 삶을 누릴 수 있었다.
“허, 헛소리다!”
사람 같지 않았던 총채주가 패배, 그것도 약관밖에 되지 않은 애송이에게 죽은 것이 믿기지 않았다.
“현실에서 눈 돌려서 괜한 헛짓하지 말자.”
주서천이 맹강의 위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확인시키려는 듯 시신을 발로 차 얼굴이 보이도록 했다.
“와아아아아-!”
맹강의 얼굴이 보이자 토벌대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이럴 수가……”
총채주가 죽다니……?”
부채주가 충격에 빠져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수뇌에 속하는 적림도도 마찬가지였다.
챙그랑.
“하, 항복!”
“목숨만은 살려 주십시오!”
“대협을 몰라뵈었습니다!”
“저에겐 고향에 홀어머니가 있어……”
맹강의 죽음에 녹룡채의 산적들이 전의를 상실했다.
여기저기서 병장기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천하제일의 산채라 불리던 녹룡채의 최후였다.
승리는 토벌대에게 돌아갔다.
그러나 그 승리에 취해 기뻐하기에는 아직 일렀다.
녹룡채의 토벌은 성공했지만, 적림의 토벌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 녹림칠채와 수림구채가 남았다.
대호채와 녹룡채가 차례대로 함락됐으니 그 소식을 듣고 분명 지원을 보낼 게 분명했다.
이미 지칠 때로 지친 토벌대는 더이상 싸울 여력이 없었다.
설사 도적들이라 해도 싸운다면 필패다.
그래서 전투가 끝나자마자 급한 대로 금창약 등으로 상처를 치료한 뒤, 후퇴의 준비를 했다.
“사문에 상관없이 셋으로 나눠 움직입니다. 뇌옥에 인질들이 갇혀 있을 테니 전부 풀어 주시고, 함께 떠날 준비를 시키십시오. 투항한 적들을 포승으로 묶어 대신 넣어 두십시오. 저항하면 죽여도 상관없습니다.”
“재물은 어떻게 할까요?”
“금으로 한두 푼 정도만 챙기세요. 그 외에는 이동예 방해되니 놓고 갑니다.”
“으헥. 그 많은 것들을 말입니까?”
제갈승계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우린 지쳐 있고, 인원도 적지 않아. 게다가 인질 중에서도 거동이 불편한 부상자부터 우선해야 해.
그리고 안 그래도 준험한 산세를 따라 움직여야 하니 최대한 몸을 가볍게 해야 해. 식량도 최소로 한다.”
“어쩔 수 없군요.”
아쉬워하는 건 제갈승계뿐만이 아니었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토벌대원의 눈빛에 미련이 묻어났다.
주서천은 그들이 혹시라도 욕심에 눈이 멀어 사고라도 치면 어쩔까 싶어 못을 박았다.
“아무리 금은보화라고 한들 사람의 목숨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약간의 욕심으로 인해 누군가 죽을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하십시오. 여러분은 지금 어깨에 재화가 아니라 목숨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사형……?”
낙소월이 감격한 듯 눈물을 글썽였다.
토벌대도 그 말에 적잖이 동화된 듯 아쉬워하면서 생각을 고쳤다.
‘이런 건 확실히 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사고가 난다.’
전생에도 오늘날처럼 비스름한 일이 있었다.
적의 진지를 습격해 승리했는데, 그때도 창고에서 상당한 금은보화를 발견했다.
당시에도 적의 지원이 올지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한시라도 빨리 후퇴해야 했으나, 지휘관을 비롯해 전원이 재물에 눈이 머는 바람에 창고를 털게 됐다.
그 뒤로 곧장 진지에서 물러났지만, 결국은 시간을 소모해 적의 추격을 받게 됐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재물의 무게 탓에 속도가 느려져 하마터면 전멸할 뻔했고, 부대의 사 할 이상을 잃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재물들을 버리고 겨우 살아남았다.
“이럴 때가 아닙니다. 적이 근방에 다가왔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합니다.”
“예!”
토벌대의 눈이 달라졌다.
얼굴에는 여전히 피곤함이 남아 있었으나, 그 대신 사명으로 빛났다.
‘대단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