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十章 (95/254)

적림도 사이에서 주서천의 목에 현상금이 걸렸다.

“죽어랏!”

매화정검의 이름은 결코 낮지 않다.

눈앞에서 장두가 손쉽게 당한 것이 그것을 증명했다.

하나 부(富)라는 것은 때때로 사람의 공포를 비롯하여 객관적인 판단력까지 둔하게 만든다.

“후우……”

숨을 들이쉰다.

폐가 공기를 흡입했다가 내뱉었다.

검을 쥔 손가락을 꽉 쥐었다.

팔목 부근의 퍼런 핏줄이 툭 튀어나왔다.

상완근이 춤추듯 요동쳤다.

뱃심에서 시작된 힘의 여파가 한 차례 출렁이더니 , 몸 구석구석을 돌고 원래의 자리까지 되돌아왔다.

타앗!

정면을 본다.

일곱 명의 적림도가 보였다.

과한 재물에 눈이 멀어 벌겋게 충혈된 핏줄까지 보였다.

일부러 천천히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지는 움직임이다.

그러나 일부러 느리게 움직이는 것은 아니었다.

주서천의 육체가 비정상적이었다.

동체 시력부터 시작해서 상황 판단력, 뇌에서 근육으로 전달되는 신경다발 전부 그 수준을 달리한다.

정신을 차렸을 때쯤, 그 몸은 일장 바깥의 일곱 명의 품 안에 도착해 있었다.

‘초식을 펼칠 필요도 없겠구나.’

대다수가 실력이 형편없다.

대호채의 산적들보다는 수준이 높지만 그래 봤자 거기서 거기였다.

이십사수매화검법은 소 잡는 칼로 닭 잡는 격이다.

그래서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어?”

일곱 명 중에서 선두에 선 적림도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어떻게?’

분명히 일 장 바깥에 있었다.

그러나 눈을 감았다가 뜨니 주서천이 사라졌다가 코앞에 나타났다.

너무 놀라 손에 쥔 검을 휘두를 틈도 없었다.

머리 속에선 그저 의문만이 남았다.

“하나.”

중얼거림과 동시에 주서천의 검이 가느다란 선을 긋는다.

무서울 정도로 깨끗한 수평선이다.

“꺽!”

의문을 표했던 적림도가 목을 붙잡았다.

그 손이 삽시간에 붉게 물들었다.

“미, 미친!”

나머지 여섯 명이 즉각 반응했다.

목표가 사라졌다가 땅에서 솟아난 것처럼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순식간에 한 명의 목숨을 앗아 버렸다.

그들은 다가오는 위협에 대응하기 위하여 각자 손에 쥔 병장기를 휘둘렀다.

쐐애액!

주서천의 머리 위로 도검이 떨어졌다.

“둘, 셋.”

왼발을 내디디고, 그대로 축의 중심으로 삼는다.

전진하는 척하면서 반 바퀴를 돌아 공격을 피했다.

피한 것만이 아니다.

오른손에 쥔 검으로 반원을 그렸다.

물 흐르듯이 수려한 움직임이었다.

“커허억!”

적림도가 비명을 질렀다.

그가 최후로 본 것은 분리된 하체였다.

상체가 없어지니, 바로 옆의 적림도가 보였다.

눈이 커진 걸 보니 어지간히 놀란 모양이다.

쐐-액!

섬뜩할 정도로의 파공음이 터졌다.

반원을 그렸던 검이 바로 옆의 적림도를 향해서 찌르기를 날렸다.

‘어딜!’

적림도가 어림없다는 듯 뒤로 물러 났다.

이렇게 급히 반응하여 움직인 건 하늘에 맹세하고 처음이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상대가 좋지 못했다.

검의 범위에서 벗어나는 건 성공했으나, 그 검극에서부터 뿜어져 나온 검기는 피하지 못했다.

“헙, 으윽!”

가슴 정중앙에서부터 등 뒤로 구멍이 생겼다.

막기도 전에 순식간에 당했다.

“……!”

일곱 중 셋이 순식간에 당하자 뒤따라오던 넷이 발걸음을 멈추고 주춤거렸다.

그들의 사고를 지배하던 욕심도 옅어졌고, 대신 방금 전 동료의 죽음이 떠올랐다.

“일곱.”

파바바밧!

평소의 그 화려한 검초는 아니었다.

그저 아무렇게 휘두른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공포로 몸이 얼어붙은 적림도의 목숨을 끊는 것으로는 충분했다.

주서천이 그들의 사이를 누비며 검을 재빠르게 휘두르자, 전원이 반항 한 번을 하지 못하고 쓰러졌다.

“으으으.”

“저딴 괴물을 상대하라고?”

“눈에 보이지도 않잖아!”

적림도 사이에서 사라졌던 공포가 다시 솟아났다.

그제야 마비됐던 이성이 돌아왔다.

잔뜩 흥분했던 욕망도 차갑게 식었다.

“어떤 기분인지 십분 이해해. 답이 없지?”

주서천이 잠시 멈춰 서서 씩 웃었다.

전생의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올랐다.

자신도 터무니없는 고수를 만나 죽을 뻔한 적이 있었다.

한눈에 봐도 이기기는커녕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어차피 싸워도 질 것이고, 급도 다르니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싶었다.

“그러니까 괜히 고집부리지 말고 항복하자.”

진심이었다.

녹룡채가 평소의 전력이라면 또 모를까, 지금이라면 가망이 없었다.

“헛소리!”

부채주가 끼어들었다.

‘항복한다면 죽는다.’

주서천이 아니라 맹강에게 죽는다.

총채주가 지휘를 맡겼다.

그걸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다면 곱게 못 죽는다.

“싸우지 않고 항복을 받아 내려는 것을 보니 놈도 지친 것이 틀림없다. 내공도 슬슬 바닥일 거다.”

“내가 지쳤다면 널 형님으로 부르겠다.”

“아우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항복해라!”

“지랄을 한다.”

주서천이 하도 어이없어서 피식 웃었다.

“좋아, 마침 잘됐다.”

부채주가 생각보다 성가셨다.

적어도 저 자리는 엿 바꿔서 얻어먹은 건 아닌 모양이었다.

흠칫!

‘괜, 괜히 나셨나?’

생각보다 거리가 가깝다.

토벌대의 전력이 상상 이상이었다.

‘정말로 지치기는 했나?’

일단 호언장담은 했는데 말하고도 불안하다.

땀 한 방을 흘리지 않았고, 호흡도 안정됐다.

다치기는커녕 생채기 하나 없었다.

‘제기랄. 시간을 끌어야 한다.’

후문이 해결되기 전까지 어떻게든 버텨야 했다.

그의 마음속에서 적림총채주는 천하제일 고수였다.

마치 협객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는 백성과 같았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시간을 끌라고?’

사기가 하락할 것이 마음에 걸려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지만, 실은 속으로 울상을 짓고 있었다.

화산의 검도, 당가의 독도 여간내기가 아니다.

신진 세력인 금의검문조차 보통이 아니었다.

‘아아, 총채주님!’

다리가 조금 떨렸다.

괜스레 눈물이 핑 돌았다.

점점 갈수록 사기가 떨어지는 게 느껴졌다.

“주서처어어어언―!”

그때였다.

앞이 보이지 않는 순간, 기다렸던 목소리가 산 전체를 울렸다.

그야말로 구원의 목소리였다.

부채주의 얼굴에 끼었던 그늘도 삽시간에 사라졌다.

그 대신 환한 빛과 자신감이 감돌았다.

“총채주님!”

후문을 포기하고 녹룡채와 합류한 맹강이었다.

“병신 같은 놈들!”

맹강이 전장의 상황을 보고 분노했다.

반을 보냈는데, 반의반밖에 안 남았다.

그에 비해 토벌대는 경상자는 있어도 중상자는 없었다.

‘좋아, 생각 대로다.’

주서천의 눈이 가늘어졌다.

‘혹여나 눈치라도 챈다면 어쩌나 싶었는데, 무사히 넘어갔다.’

맹강은 천하백대고수, 그것도 화경의 경지다.

그 정도면 진법에 대해 몰라도 대강 눈치를 챌 수는 있다.

뇌가 근육으로 되어 있다면 또 모를까, 머리도 예사롭지가 않아 수를 읽을 것을 불안해 했었다.

만약 그가 눈치채고 전력을 나누지 않았다면 상상 이상으로 힘든 싸움이 됐을지도 모른다.

자신은 상관없었지만, 토벌대원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아무리 산적들이라 할지라도 저 정도의 인원이 전부 덤벼 온다면 결코 적은 피해로는 안 끝난다.

“총채주님이시다!”

“지원이다!”

고수의 등장은 존재감만으로도 힘과 안심을 준다.

고생해서 떨어뜨린 사기가 다시금 치솟았다.

‘적림총채주, 맹강’

여러모로 마음에 걸리는 사내였다.

어느 날 불현듯 산채에 나타나 막강한 무위를 보였다.

녹룡채주가 되는 건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무엇보다 비상한 것은 무공뿐만이 아니었다.

산적치곤 상당한 지식의 소유자였다.

그럭저럭 커다란 산채에 불과했던 녹룡채가 성을 연상시키듯이 변한 것도 맹강의 머리에서 나왔다.

그러나 이 정도의 무인임에도 불과하고 맹강은 무명이었다.

산채에 나타나기 전의 행적이 불명이었다.

무언가 이상해 따로 조사해 봤지만, 명확히 밝혀진 것은 없었다.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전생의 기억을 더듬어 봐도 나오는 게 없었다.

기억을 못 하는 게 아니라 정보가 없었다.

실컷 이용만 당한 적림십팔채라서 그런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아 전란의 역사에 언급이 몇 없었다.

문제의 맹강도 전란 도중 사망했다.

‘다른 건 몰라도, 무공만큼은 보통이 아니다.’

용암처럼 들끓는 분노와 더불어 폭풍우치는 살의가 증명하고 있었다.

“주서천, 제갈승계.”

맹강이 칠 년 전에 들었던 이름을 중얼거렸다.

“나, 나는 왜 부르는 거야?”

제갈승계가 금의검문 무사들 사이에서 질겁했다.

“칠 년 전의 복수를 하러 왔구나!

육대랑이 싸지른 똥이 이러한 훼방을 놓다니…… 이 싸움만 끝난다면 내 그놈 시체를 장강에서 꺼내 와 다시 죽여야겠다.”

그 일만 생각하면 아직도 이가 바득바득 갈린다.

원래라면 소리 소문 없이 처리했어야 할 일이었으나 그러기는커녕 온 무림의 이목을 끌게 됐다.

그 탓에 적림십팔채의 활동 반경이 상당히 좁아졌다.

그리고 화산파, 제갈세가와 척을 진 것도 문제였다.

강호에서 화산파의 제자나 제갈세가의 혈족과 만나면 죽을 각오를 하거나, 아니면 무조건 도망쳐야 했다.

쌓인 한이 적지 않은 듯, 설사 도망치거나 숨는다고 해도 집요하게 추격해 왔다.

대대적인 토벌대가 구성되거나 전쟁이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생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처죽여 주마.”

맹강이 살의로 번들거리는 눈동자를 빛냈다.

승리를 눈앞에 두고 사기를 드높였던 토벌대도 맹강의 등장에는 잔뜩 긴장하며 주춤거렸다.

주서천의 눈이 한 걸음 내디딘 맹강을 훑어봤다.

팽가의 천골과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은 골격하며 , 떡 벌어진 어깨와 이어진 팔은 통나무처럼 굵었다.

상의를 입지 않아 근육이 고스란히 보였는데 , 장인이 심혈을 기울여 제련한 강철을 보는 듯했다.

“사형.”

주서천이 맹강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장홍을 불렀다.

“종채주는 저 혼자서 맡을 테니, 나머지를 부탁드리겠습니다.”

“사제.”

장홍 대신 장서은이 답했다.

돌처럼 딱딱하게 굳은 얼굴이 사뭇 진지하다.

“사제의 무위가 보통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어. 그렇지만 상대는 천하백대고수, 적림총채주 맹강이야.”

맹강은 사대제자의 배분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무공도, 내공도, 경험도 많았다.

천하백대고수 끝자락에 있는 것도 아니었고, 맹강은 이미 중원 각지에 악명이 자자한 고수였다.

정파나 사파에서 맹강이 강해 봤자 도적 나부랭이에 불과하다며 우습게 봤다가 당한 자가 한둘이 아니다.

옆의 장홍도 동의하듯 머리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강호를 유람하며 그 악명은 질리도록 들었다.

“괜찮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하지만……”

“무엇보다 지금은 맹강에게 전부 붙어 있을 정도로 여유롭지 않다는 것을 사형과 사저도 알고 계시죠?”

“끄응.”

맹강이 오면서 삼십여 명 정도를 끌고 왔다.

토벌대가 겉으로 멀쩡해 보여도 속은 그렇지 않다.

이미 배나 되는 전력을 상대하느라 체력과 기력을 상당 부분 소모해 한계를 코앞에 두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최대 전력들이 두세 명씩 빠지는 것은 치명적이다.

‘하아!’

장홍은 어릴 적부터 함께 자라 왔던 사제의 어깨에 모든 걸 맡겨야 한다는 사실에 괴로워했다.

“조심해.”

장서은도 죄책감을 느끼는지 그 표정이 좋지 못했다.

“예.”

짧은 대답과 주저 없이 내딛는 발걸음.

그 등이 유난히 넓어 보인다.

“괜찮아요.”

낙소월이 안심하라는 뜻 옅게 미소지었다.

“사형은 저희의 상상 이상으로 강하니까요.”

그녀의 눈동자에 굳은 신뢰가 담겼다.

그 말을 시작으로, 토벌대와 적림도가 다시 부딪쳤다.

전술의 변화는 없었다.

매화검진이 전위에 섰고, 그 주변을 당가와 금의검문이 돌아다니며 지원했다.

장홍과 장서은, 그리고 낙소월이 펼치는 매화검진은 매화가 떨어지는 것처럼 너울거리면서도 때로는 검처럼 예기를 뿜어내며 상대방을 꿰뚫었다.

“아아악!”

“멍청하긴! 제자리를 지켜라! 뭉치면 산다!”

부채주가 생각 이상으로 분발했다.

지휘를 능숙하게 하며 매화검진에 어찌어찌 대항했다.

녹룡채의 산적들은 생각 이상으로 강했다.

그들은 일반 산적과 달리 명령에 따라 진형을 갖췄다.

“제갈 소협!”

당혜가 고개를 홱 돌렸다.

“죽통노, 이발(二發)!”

파바바밧!

제갈승계의 외침과 더불어 화살이 쏘아졌다.

매화검진에 대항하려고 모여든 진형을 향해서였다.

“으악!”

“피해라!”

이제 막 모이려던 적림도가 비명을 지르면서 몸을 날렸다.

몇몇은 튕겨내기도 했지만, 그것은 소수에 불과했다.

화산파, 당가, 금의검문 그리고 제갈세가.

급조된 구성치고는 그 위력이 무시무시했다.

주서천과 맹강이 마주 봤다.

두 무인 사이에선 대기를 무겁게 짓누르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병장기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가까이 들려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았다.

동공은 조금도 떨리지 않고, 상대를 가만히 바라본다.

약간의 움직임도 놓치지 않겠다는 기세였다.

‘인상만 보면 머리도 근육으로 되어 있을 것 같은데, 그건 아닌 모양이야.’

맹강은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태산처럼, 눈앞에 굳건히 서서 살의를 보내왔다.

그냥 서 있는 것도 아니다.

몸에 틈 하나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움직여도 대응할 수 있게 준비하고 있었다.

“정파의 젖비린내 나는 아이야. 내가 무섭더냐?”

침묵을 먼저 깬 것은 맹강이었다.

“화산파가 옛날 같지 않다더니만, 정말이었군. 흐흐, 그러니 칠 년 전에 겁먹고 꽁지 빠지게 도망쳤지.”

피식.

주서천이 도발에 걸려들기는커녕 실소를 흘렸다.

“맹강. 아까 전에 쳐 죽이겠다는 기세는 어디 갔나?”

맹강이 입가에 맺힌 비웃음을 지우고 표정을 굳혔다.

“맹강. 네가 날 정말로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면, 진작 덤벼야 했다. 그런데 경계하면서 어쭙잖은 도발까지 하다니…… 겁먹었나?”

“그 잘난 세 치 혀가 조금 있으면 살려 달라는 말로 바뀔 걸 생각하니 참으로 즐겁군.”

여유가 묻어나는 말투와 달리 맹강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이마에 시퍼런 혈관이 튀어나왔다.

‘운이 좋아 얻은 유명세라고 생각했거늘, 그런 것만은 아닌가.’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

겉으로 보이는 검세(劍勢)만 해도 보통이 아니란 걸 눈치했다.

‘화경에 근접한 초절정인가?’

그 추측은 보기 좋게 틀렸으나, 주서천의 연령을 생각해 보면 이상한 건 아니다. 도리어 정상적이다.

“와라, 애송이.”

스르릉

맹강이 검을 뽑았다.

새하얀 검신이 모습을 드러내며 태양 빛을 반사했는데, 매서운 예기를 보니 보통 명검이 아니었다.

산적치곤 보기 힘든 부류의 병기다.

적림도 대부분이 부(芹)나, 도(刀), 혹은 창(槍)을 써서 그렇다.

‘검산정(劍山征)’

땅에서 솟은 것처럼 나타난 이름없는 무인.

그 무인은 검 한 자루만으로 차례차례 녹림채를 정복했다.

“후웁!”

타앗!

주서천이 지면을 박찼다.

몸을 살짝 띄운 것처럼 보였지만 서 있던 자리에 발자국이 움푹 파였다.

질풍같이 내달린 주서천이 내력을 대거 끌어 올렸다.

초반에 확실하게 끝낼 생각이었다.

아직 맹강 앞에서 무위를 전부 내보이지 않은 이 순간이 기회다.

공수를 교환할수록 적의 경계를 높이기만 할 뿐이니, 괜한 탐색전 말고 전력을 쏟는 게 좋았다.

‘일초!’

정면으로 내달리면서 검을 쭉 뻗는다.

대기를 둘로 가르자 섬뜩할 정도의 파공성이 터졌다.

쐐-액!

혼신의 찌르기를 보여 준 검극이 올곧게 나갔다.

그 끝은 정확히 맹강의 미간을 노렸다.

“흡!”

맹강이 숨을 들이쉬며 수세식을 펼쳤다.

생각 이상의 속도에 놀란 듯, 눈이 화등잔만 해진 게 보였다.

그 순간, 주서천이 몸을 틀었다.

맹렬한 기세로 찌르려던 공세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원래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일 할이나 이 할의 공력도 아니고, 거의 전력을 쏟은 찌르기였다.

보통이라면 갑작스러운 흐름의 전환에 기맥이 역류해 터지고도 남는 일이었다.

그러나 화산파의 신법이자 보법, 신행백변은 그러한 변화에도 버틸 수 있도록 연구되면서 고쳐졌기에 그걸 가능하게 했다.

뇌에서 내려온 명령이 기의 흐름을 급속도로 바꾼다.

근육은 물론이고 기맥이나 혈맥에도 문제가 없다.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 정상적인 힘을 뿜어냈다.

휘리릭!

사선으로 내디딘 왼발을 축으로 삼아 반 바퀴 돌았다.

전속력으로 내달리다가 급정지했을 뿐만 아니라, 방향까지 틀었는데도 자세는 안정적이기만 했다.

내공의 힘으로 힘의 법칙을 일정 부분 무시하는 것이 무공. 그 진가가 제대로 발휘됐다.

몸이 정확히 반을 도는 순간 오른발을 힘껏 내디딘다.

허리의 근육이 돌아가는 게 느껴졌다.

쐐―액!

순수한 근력과 내공이 받쳐 준 월오삼검, 태아가 대기를 반으로 가르면서 매서운 소리를 토해 냈다.

‘아뿔사!’

맹강이 혀를 찼다. 패색이 짙은 눈동자에는 주서천의 검이 잡혔다.

아지랑이 자락이 검신을 얇게 감싼 것이 보였다.

검기를 실었으니 날은 실제보다 더 길다.

보다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수세식을 취하고 있는 게 다행이다.

영원처럼 느껴지던 찰나의 순간이 되돌아온다.

느릿하게 움직이던 검이 잔상을 남기며 옆구리를 노리고 들어오자, 맹강은 다급하게 검을 허리로 옮겼다.

채애애앵-!

검과 검이 부딪치면서 마찰음을 토해 냈다.

그 여파가 상당한 듯 소리가 늘어지면서 고막을 때렸다.

“크윽!”

맹강의 입에서 먼저 신음 소리가 튀어나왔다.

얼굴은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주서천의 표정도 그다지 좋지 못했다.

아쉬움이 잔뜩 묻어났다.

옆구리를 노렸지만, 치명상은 입히지 못했다.

완전히 들어가기 전 맹강의 검이 아슬아슬하게 막아 냈다.

하지만 검기의 대결에서는 승리했다.

검이 부딪치자마자 맹강의 검이 안쪽으로 밀렸다.

그 탓에 자신의 검으로 상처를 내는 꼴이 됐다.

피부에 생채기를 내는 수준이 아니라, 단련된 근육이 파이면서 이 촌(寸 : 약 3cm) 정도의 상처를 냈다.

“이, 망할, 새끼가……!”

맹강이 분노로 들끓었다.

목소리에서는 그동안 냈던 살기가 한 번에 폭발하듯 뿜어 져 나왔다.

‘쩝. 아쉽군.’

검기가 아니라 검강이었다면 검 채로 베어 갈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면 처음의 회전이 늦어진다.

아무리 강기를 마음 가는 대로 다룰 수 있게 됐다고 해도, 검기를 펼치는 것과는 속도의 차이가 난다.

안 그래도 맹강의 반응 속도가 얼마나 대단한지 체감하지 않았는가.

검강이었다면 이 검상도 입히지 못했을지 모른다.

상대가 달랐다면 충분히 통할 일격이었으나, 안타깝게도 맹강은 화경의 고수였다.

“욕 좀 그만해라!”

주서천이 검을 맞댄 채, 왼손만으로 일장을 날렸다.

평범한 장법이 아니라 독장(毒掌)이었다.

“허!”

맹강이 본능적으로 위협을 느끼고 뒤로 물러났다.

조금만 늦었어도 독에 중독될 뻔했다.

주서천도 그 틈을 타서 뒤로 몇 걸음 물러나 태세를 정비했다.

“……”

맹강이 시선을 내리깔았다.

방금 전에 밟고 있었던 잡초의 색이 시커멓게 물든 것이 보였다.

손바닥에서 방출된 독기가 목표를 잃고 허공에 떠돌다가 지면의 풀잎들로 흡수됐다.

“정체가 뭐냐고?”

주서천이 먼저 맹강이 할 말을 낚아챘다.

“그저 지나가던 평범한 화산파의 검수다.”

맹강이 혈도를 눌러 지혈했다.

“평범? 헛소리!”

정파, 그것도 구파일방의 검파로 알려진 화산파의 제자가 독장을 썼다.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부분이다.

그것도 보통 독도 아니고 척봐도 맹독의 수준으로 보인다.

사실은 무식한 양의 내공을 녹안만독공을 이용해 독으로 전환한 것에 불과하나, 그 사실을 알 리가 없었다.

“하, 정파의 위선자께서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시는군!”

정파인은 독의 사용을 꺼림칙하게 여긴다.

설사 생사결이라 할지라도 사용하게 되면 치욕으로 여겼다.

“그만 좀 지껄여라, 어떻게 틀에 박힌 말만 하냐!”

주서천이 지긋지긋하다는 듯이 외쳤다.

타앗!

다시 한번 몸을 날렸다.

이번에는일격에 모든 걸 담아내려 하지 않았다.

일단 가볍게 일초를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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