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二章 (87/254)

흑도인은 밤에 익숙하다.

그들은 낮에 돌아다닐 만큼 성실하지 못하다.

그래서 활동 시간도 밤에 치중되어 있다.

보통 저녁에 일어나고, 아침에 잠드는 하루를 보낸다.

그래서 밤눈이 밝다.

빛이 없어도 눈은 밤에 금세 익숙해지고, 보이지 않아도 감각만으로 눈치챈다.

그러나 그런 그들이라도 모습은 물론이고 기척조차 느껴지지 않는 유령들을 발견해 내지는 못했다.

“끅!”

자객에게 중요한 건 은밀함이다.

그리고 유령들은 그 은밀함을 섬뜩할 정도로 잘 지켰다.

지하 투기장의 입구에 서 있던 문지기들은 소리도 내지 못하고 숨을 멈춘 채 바닥에 쓰러졌다.

쓰러지는 것조차 소리가 없다.

유령들은 줄이 끊어진 인형처럼 쓰러지는 몸을 붙잡아 내려놓았다.

소령에게 보호받는 종업원은 그저 찰나에 가까운 순간에 벌어진 일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저, 산책하듯이. 고요하게.”

주서천이 뒷짐을 지고 걷는다.

얼굴에는 어떠한 다급함도, 긴장감도 존재하지 않는다.

표정에는 편안함이 묻어났으나, 그 발걸음은 평범하지 않았다.

실체가 없는 것처럼 기척 없이 걷는다.

그 옆에서는 종업원이 귀신에 홀린 것처럼 따랐다.

“누구…… 끅!”

철문을 열고 들어온 지 일각이 지났지만, 다들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기괴하다고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눈만 마주치면 죄다 절명했다.

이 기이한 현상에 종업원은 공포에 질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길만 안내했다.

‘사, 사자!’

손도 대지 않았는데 얼굴을 마주치면 죽는다.

도저히 사람으로 보이지가 않았다.

“히야, 그것참 기가 막히네.”

주서천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종업원과 다르게 유령들의 움직임이 보이긴 했으나, 그래도 만나면 적이 휙휙 쓰러지니 신기했다.

적이 기껏 해 봤자 삼류에 불과한 하오문도이니 가능했다.

그리고 약 일각 정도를 내려갔을까, 아래에서부터 거센 함성 소리가 점차 커지며 울려 왔다.

멍하니 있던 종업원도 그제야 정신을 차리며 침을 꿀꺽 삼켰다.

“이, 이 앞입니다.”

옆으로 돌자 환한 빛이 어둠을 걷으며 맞이했다.

“와아아아!”

“죽여라! 죽여라!”

“내가 너한테 돈을 얼마나 건지 알아!”

욕설과 괴성으로 뒤섞인 함성이 폭발했다.

종업원은 고막을 찌르는 소리에 헉 하고 놀랐다.

반면 주서천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면서 주먹을 쥐락펴락했다.

눈앞에는 여기까지 오는 길목과는 다르게 탁 트인 공간이 나왔는데, 천여 명은 수용이 가능한 넓이였다.

주서천과 종업원이 서 있는 장소부터 경사로가 아래로 쭉 이어져 있고, 평지가 나온다.

그리고 저잣거리처럼 외곽선을 두른 다음 벽을 세워 구역을 구분했다.

사람이 출전하는 곳부터 시작하여 투계나 투견 등의 동물이 싸우는 곳 등 다양한 투기장이 마련됐다.

구역을 나눈 벽에는 관중석이 붙어있었고, 그 자리에서 사람들이 함성을 내지르며 응원에 열중했다.

“이 정도의 함성이라면 내가 소리쳐도 못 듣겠군.”

주서천이 쓴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사람이 많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원래라면 관련이 없는 사람들에게 소리쳐 도망치게 하려 했지만 이러면 아무래도 어렵다.

“비소돈이나 그 일당을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은?”

“비, 비소돈은 보시면 알 것이고, 그 수하들은 병장기에 돼지 코를 장식으로 달아 뒀습니다.”

“고생했다.”

전낭을 뒤져 은자를 꺼내 종업원에게 건냈다.

목숨을 걸고 안내를 해줬으니 몫을 두둑하게 챙겨 줬다.

“더 이상 안내는 필요 없으니 돌아가라. 여기까지 오면서 기척은 느끼지 못했으니 아무도 없을 거야.”

“가, 감사합니다!”

종업원은 머리를 지면에 닿기 직전까지 숙인 다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줄행랑을 쳤다.

소령을 포함하여 십 인의 유령들을 뒤로한 주서천은 흑막처럼 음험한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비소돈을 제외하고 그 일당은 남김없이 죽여라. 그 외에 적의를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살려 두지 마.”

“존명.”

감정 하나 없는 목소리들이 화합을 이룬다.

주서천은 지면을 튕기며 몸을 날렸다.

“어?”

아래로 이어진 경사로 끝에 서 있던 경계병이 무언가를 발견하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하수의 눈에 잡힌 주서천은 ‘저것이 무엇이지?’ 라고 판단했을 때, 이미 지척까지 다가왔다.

눈이 인지하고, 뇌로 전해져 판단을 내리기도 전에 화살처럼 날아오던 그의 소매에서 빛이 뿜어졌다.

정말로 빛이 뿜어진 것이 아니라, 비수가 곧은 선을 그려 내면서 경계병의 미간에 꽂혔다.

“이 런, 개 같……?”

뒤편에서 대기하고 있던 동료가 움직이나, 그 옆으로 주름살이 가득한 노인이 지나갔다.

푸욱!

”케헥!”

지저분한 목 위로 가느다란 혈선이 그어졌다가, 이내 피가 분수처럼 솟구치며 안개를 만들었다.

“……?”

외곽에서 서성이던 사람들이 의문을 품는다.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에 사고가 따라가지 않는다.

그들의 앞에 당도한 주서천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저 산책을 하듯, 자연스럽게 사람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그 뒤와 옆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뒤따른다.

“으, 으아……”

비명이 터져 나오기 직전.

유령들의 눈동자가 합이라도 맞춘 듯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목표를 포착한다.

“으아아아악!”

비명이 터져 나오면서 함성에 묻히자, 병장기에 돼지 코를 장식으로 단 하오문도들이 피를 흩뿌렸다.

“목 씻고 기다려라, 비소돈.”

그 육신은 과할 정도로 크다.

근육도 근육이지만 살로 가득했고, 신장은 칠 척이 넘는다.

본래 적림십팔채의 산적이었으나 산채의 식량고를 털어 쫓겨난 비소돈은 밤거리를 전전했다.

그러다 정주에 흘러들어 왔는데, 그는 매서운 속도로 동쪽을 지배했다.

원래 동쪽을 지배하고 있던 자를 습격해 그가 관리하고 운영하던 곳들을 빠르게 흡수해 버렸다.

이후 하오문주에게 수족으로 인정받은 뒤, 간간이 고수들을 주의하며 자신만의 나라를 구축했다.

원하는 여자가 있다면 납치해 와 범했고, 짜증이 나면 근처에 있는 사람을 마음껏 패고 죽였다.

“크헤헤헤!”

비소돈은 눈앞에 공허한 눈동자로 누워 있는 나체의 여인들을 내려다보면서 경박하게 웃었다.

“과거의 나도 참 모를 놈이군! 이런 곳을 내버려 두고 산채에 박혀 있었다니!”

약간의 힘만 가져도 왕처럼 군림할 수 있는 곳을 외면하는 무림인들이 새삼 이해되지 않는다.

비소돈은 하오문 밖의 정도니 사도니 뭐니 하고 떠드는 이들을 비웃으면서 향락에 취했다.

“두, 두, 두목!”

쿵쿵쿵!

누군가가 바깥문을 두드린다.

이제 막 즐기려던 참에 방해꾼이 찾아오자 기분이 상했다.

비소돈은 벌거벗은 채로 문으로 향했다.

그가 걸을 때마다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크게 흔들린다.

“어떤 새끼냐!”

비소돈이 짜증 난다는 듯이 손바닥으로 문을 힘껏 후려치자, 굉음과 함께 박살이 나며 나가떨어졌다.

“히엑!”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하오문도가 놀라며 뒤로 물러났다.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잔뜩 흥분한 비소돈이 심호흡했는데, 코까지 지방이 가득해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꼭 돼지가 호흡하는 것처럼 ‘쿰척’거렸는데, 입을 열 때마다 지독한 냄새가 코를 찔러 고약했다.

“스, 습격입니다!”

하오문도는 보고하면서도 눈동자를 돌려 비소돈의 등 뒤를 힐끔거리기 바빴다.

방 내부에 널브러진 아름다운 여인들을 보는 그 눈에는 부러움이 묻어났다.

“킁! 같잖은 이유라면 쳐 죽이려고 했다만, 보고가 널 살렸구나. 운 좋은 줄 알아라.”

비소돈이 동쪽의 모든 영역을 지배한 지도 십 년이 넘었지만, 그렇다고 그게 영원했던 것은 아니다.

힘 좀 써서 자기만의 세력을 불린 하오문도나 혹은 외부에서 들어온 자들이 도전해 오곤 했다.

“다 좋은데 이런 게 귀찮단 말이지!”

언제나 그렇듯이 도전자를 묵사발 내리라.

그러나 그다음 보고로 인해 비소돈의 얼굴은 여유가 사라지고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졌다.

“저, 적이! 적이 코앞까지 다가왔습니다!”

열한 명 아니 열두 명의 유령.

그들은 혼란에 빠진 사람들 사이를 누볐다.

때로는 청순한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시골 처녀였고, 어떨 때는 힘 하나 쓰지 못하는 노인이었다.

아이일 때도 있었으며 또는 이제 갓 약관이 된 청년이었다.

유령들에게는 감정도, 분위기도, 기척도 없었다.

하오문도에 불과한 하수들은 그들을 포착하지 못했고, 압도적이라는 이름의 무력에 저항하지 못했다.

“컥, 케헥!”

삼십 년 전에 흘러들어 온 하오문도가 목을 움켜잡고 컥컥거리다가 바닥에 쓰러져 절명했다.

그 외에 다른 하오문도들도 마찬가지였다.

저항은커녕, 적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 채 죽어 갔다.

시간이 지나자 이 괴현상에 하오문도들의 낯빛이 새파랗게 질렸다.

“히, 히익!”

“귀, 귀신이다!”

“도망쳐!”

급기야 병장기를 떨어뜨리고 도망치려 했다.

“여기서 도망쳤다간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비소돈은 정주에서도 흉포하기로 유명한 자다.

배신자는 물론이고 도망자에게도 자비를 내리지 않는다.

운이 좋다면 팔다리 하나 잘린 것으로 끝나지만 대부분은 목숨을 유지하지 못하고 황천길을 걷는다.

“그렇다면 여기서 뒈지든가!”

“모습도 보이지 않는 고수를 상대하라고? 그게 가능했으면 하오문도로 살겠냐? 병신 같은 놈!”

지금 당장 죽게 생겼는데 그게 무슨 소용인가.

어차피 그들에게 의리나 충성 따위는 존재하지 않다.

도망치는 하오문도들을 힐끔 쳐다 보곤, 비도를 적당히 던져 맞췄다.

“놓칠 것 같으면 무리해서 쫓을 필요는 없지만, 죽일 수 있다면 죽여라. 살려 두지 마라.”

비소돈처럼 나름 이름 있는 자가 천선의 수족이란 건 알고 있지만, 조무래기들은 어떤지 잘 모른다.

분명 그중에서도 천선을 위해서 일하는 자가 있을 터.

확실히 알지 못하니 죽이는 것이 마음에 편하다.

“대, 대이이인!”

칼을 쥐고 있던 하오문도들이 그걸 보고 전의를 잃었다.

다들 창백한 낯빛으로 부복하며 빌었다.

“부, 부디 자비를!”

“목숨만은 살려 주십시오!”

“집에는 홀로 남은 노모만……”

바람이 불었다.

소맷자락에서 튀어나온 비도는 몇 줄기의 선을 그으면서 부복한 하오문도의 머리와 목을 꿰뚫었다.

여기저기서 큭 소리를 흘리면서 절명했다.

유은비도도 실전에서 충분히 쓸 만해졌지만, 아직이다.

죄다 적수가 되지 않으니 파악할 수 없다.

“크아악!”

목숨 구걸이 통하지 않자 도주를 택했다.

반항할 생각은 감히 하지 못했다.

그들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은 남들보다 눈치가 빠르고 주제를 알고 있어서다.

몇몇은 도주에 가망이 없다고 판단해 검을 뽑아 들었지만, 반항도 채 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그 와중에 어떤 하오문도는 남들을 미끼로 삼아 도주하는 데 힘썼다.

“으으……”

공포로 떨리는 목소리.

그들에게 전의 따위는 남지 않았다.

사기는 나락 끝자락까지 떨어졌다.

“귀, 귀신이 틀림없어!”

“지하 투기장에 사라져 간 원귀들인 게야!”

장소가 장소다 보니 공포도 더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하에서 사람들이 홱홱 죽어 나가니 정신이 이상해지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유령들이 이름 그대로의 취급을 받으면서 하오문도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을 때, 벼락과도 같은 목소리가 내리쳤다.

“네 이놈들-!”

목소리에 반응하듯 지반이 크게 흔들렸다.

도망치던 몇몇 하오문도가 깜짝 놀라 앞으로 고꾸라진다.

그러나 그들의 노랗게 질렸던 낯빛은 되돌아왔고, 도리어 환하게 밝아졌다.

“와아아아!”

“두목이 오셨다!”

동쪽을 약 십여 년 동안 지배한 강자.

공포이자 곧 폭력을 상징하는 자가 아닌가!

아군이자 상관이라는 것을 깨닫자, 하오문도의 마음에서 사라졌던 전의가 다시 되돌아왔다.

“아무것도 못 하고 당하기만 해?”

비소돈이 한심하다는 듯이 주변을 둘러봤다.

그 눈동자에는 진한 모멸감이 묻어났다.

그 눈을 보고 나서야 뇌리에 새겨진 공포가 떠올랐다.

“헤헤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두목님.”

“잠시 놀아 주고 있던 것뿐입니다!”

지면에 입을 맞출 정도로 머리를 낮춘 자들도, 병장기를 내던지고 도망치던 이들도 전부 돌아섰다.

손바닥 뒤집듯 전환하는 태도에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자아, 얼른 나오지 못할까!”

비소돈이 덩치에 알맞은 큰 칼을 뽑았다.

“나의 눈은 못 속인다! 벌써부터 겁먹고 몸을 떨고 있는 소리가 다 들리는군!”

“그래?”

기다렸다는 듯이 숨을 토해 내면서 앞으로 나선다.

땅에서 솟았는지, 하늘에서 떨어진 지 모를 유령이 눈앞에서 나타나자 하오문도들이 몸을 흠칫 떨었다.

그러나 비소돈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반대로 터지기 일보 직전인 웃음보를 참지 못했다.

“꾸하하!”

“왜 웃지?”

“그야 네가 생각 이상으로 이리도 멍청한데, 웃지 않을 수 있겠느냐?”

웃는 도중 콧속의 지방이 눌려서 그런지 웃음소리도 괴상했다.

비소돈은 누런 이를 드러내며 이죽거렸다.

“자고로 자객이란 건 들키지 않고 몰래 죽이는 일에 특화되어 있는 법. 모습을 들킨 이상 이미 힘의 반절을 잃는다. 무공에 어지간히 자신이 있는 모양인데,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하오문, 나아가 흑도에서 고수를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

초절정은커녕 절정도 소수에 속한다.

다만 정주는 하오문주가 뒤에 있는 만큼 고수의 숫자가 타지보다 많은데, 비소돈이 그 고수 중 한 명이다.

“무음사자. 네놈의 패인은 날, 아니 이 정주의 밤거리를 너무 우습게 본 것이다.”

눈짓을 보내자 수하들이 주서천을 포위했다.

“너처럼 외부에서 도망치듯이 정주로 들어와 자기가 천하제일이 된 것처럼 날뛰다가 목숨을 잃은 자들이 제법 여럿 되지. 그 오만이 널 죽일 것이다.”

비소돈은 독사검과 음살녀보다는 머리가 나쁘지만 그렇다고 평균 이하는 아니다.

그 둘이 생각 이상으로 뛰어날 뿐이고 비소돈도 무공만으로 동쪽을 오랫동안 지배한 게 아니다.

만약 뇌까지 근육으로 차있었다면 진작 누군가에게 속아서 죽었다.

“자비를 베풀어 주마.”

비웃음 가득한 눈동자가 주서천을 내려다본다.

“반항하지 않고 나에게 투항한다면 목숨만은 살려 주마. 이 주변에 숨어 있는 쥐새끼들도 마찬가지.”

무음사자가 무신도 아니고 혼자 이 난리를 쳤을 리 없을 터.

전력을 주변에 숨겨 둔 게 틀림없었다.

‘모습만 드러낸다면야 자객 따위 두려워할 것 없다.’

살려 준다는 건 거짓말이다.

언제든지 목덜미를 노릴 수 있는 수하따위 곁에 두고 싶지 않았다.

아직까지도 주변에 몇 명이 숨어있는지 파악되지 않는다.

이런 걸 허투루 품었다간 독이 된다.

언제든지 무음사자의 목을 취할 수 있도록 발가락 끝을 조금씩 꾸물거리면서 거리를 좁혔다.

“암살에 대해서 알고 있나, 비소돈?”

“……?”

“암살이란 이름 그대로 몰래 죽이는 것. 목격자만 없다면 얼마든지 성립될 수 있지.”

갑자기 뭔 개소리냐?”

주서천이 답답한 듯, 복면을 아래로 내렸다.

비소돈은 이를 항복이라 여기며 씩 웃었다.

앞으로 정주에 자신의 이름이 알려질 상상에 즐거워했다.

“꾸하하! 이리 쉽게 포기할 줄은!”

열한 명이 차례대로 나타났다.

그 중에는 쉽게 죽이기에는 아까운 상등품의 계집도 섞여 있었다.

비소돈의 입가에는 저열하기 그지없는 진한 미소가 번졌고, 눈은 욕망으로 번들거렸다.

“편히 보내 주마!”

쿵!

산만 한 덩치가 움직인다.

한 걸음 내디딘 것뿐인데 보폭이 커서 거리가 제법 됐다.

주서천에게 멧돼지처럼 돌격한 비소돈이 손에 쥔 칼을 크게 휘둘렀다.

부웅!

큼지막한 칼이 대기를 가른다.

무식할 정도로 비대한 지방과 근육에서 나온 힘은 모든 걸 쪼갤 기세였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수하들의 머릿속에서는 몸이 장작처럼 쪼개지는 무음사자가 그려졌다.

하나 그 예상은 모두 빗나갔다.

휙!

한 걸음. 고작 한 걸음.

전력을 다한 일도(一刀)를 피하는데 그 정도면 충분했다.

유령보 특유의 기척 없는 발걸음이었다.

쾅!

굉음과 함께 도가 떨어지자 지면이 움푹 파이며 흙먼지를 뱉어 냈고, 칼의 주인인 비소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느리다.’

시간이 날 때마다 유령들과 일 대 다수로 수련을 했다.

덕분에 유은비도와 유령보는 삼성에 올랐다.

비소돈은 큰 체구답지 않게 제법 빠른 편이었지만, 유령들과 비교하면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느렸다.

더 이상의 탐색전은 무의미하다는 걸 깨닫자, 통나무처럼 굵직한 팔을 지면 삼아 달려 올라갔다.

“으헉!”

비소돈이 놀라 비명을 내지르며 몸을 일으켰다.

밟고 있는 팔이 크게 흔들렸으나 주서천은 아랑곳하지 않고 속도를 더했다.

‘팔’

머릿속으로 목표를 그려 낸다.

한동안 그에게 가르침을 준 유령들의 조언을 떠올리며 움직였다.

손목을 살짝 튕기자 소매가 펄럭였고, 비수가 미끄러지듯이 튀어나오다 잡혔다.

그리고 곧장 비수를 한 바퀴 회전시켜 역수로 잡은 뒤, 어깨에 위치한 견우혈(眉隅穴)을 찔렀다.

푹!

“악!”

목과 척추, 아울러 어깨까지 이어지는 부분에 문제가 생기자 순간 힘이 빠져 버려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대, 대체 무슨!’

비소돈은 꼼짝도 하지 못했다.

감히 반항할 생각도 들지 않았다.

무음사자의 움직임을 조금도 쫓지 못했다.

설마하니 이 정도로 고수일 줄은 몰랐다.

이런 고수가 대체 무슨 사정으로 이런 흑도의 거리에 온 것인지 의문이 들었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었다.

독사에게 잡힌 먹이처럼 옴짝달싹하지 못한 채, 옅은 신음을 흘리면서 살려 달라고 빌어야 할 때였다.

“죄, 죄송합니다. 대인!”

체면을 챙기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규격 외의 고수가 거리에 들어왔다.

여러 의문이 스쳐 지나갔지만, 지금 이 상황이 질문할 정도로 여유가 있지는 않다.

목숨만은 건지기 위해서 눈동자를 필사적으로 굴렸다.

“비소돈.”

주서천이 비소돈을 차갑게 내려다 봤다.

“원하는 것이 있으시다면 말씀만……”

“암살에 대해서 내가 뭐라고 말했었지?”

“……”

비소돈의 낯빛이 창백하게 질렸다.

주서천은 비소돈과 그 잔당을 조금도 남기지 않았다.

우두머리의 머리가 바닥을 구르자, 대다수가 전의를 잃고 항복했으나 유령들의 검에는 자비가 없었다.

이곳 지하 투기장에서 동정 따위는 필요치 않다.

일반인들이야 진작 도망쳤고, 남은 것들은 비소돈의 위광에 힘입어 쓰레기 짓을 일삼던 놈들이다.

죄책감이라 할 것도 없었고, 감정이 전무한 유령들이야 두말할 것 없었다.

지하 투기장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비명은 끊이지 않고 계속됐다.

‘이걸로 천선이 열 좀 받겠군.’

소식을 듣고 분개할 천선을 생각하니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살려 주세요!”

마무리를 하던 도중 지하 투기장 곳곳을 탐색했는데, 그중 뇌옥에 수감되어 있던 노예들을 발견했다.

악인이 있다면 그대로 내버려 둘 생각이었지만, 그중에는 납치당하거나 억울하게 끌려온 사람들도 있었다.

“풀어 줘라.”

유령들에게 명령해서 그들을 풀어 주었다.

다들 자유가 됐다는 말에 의심하면서도 지하 투기장의 난리를 확인하곤 기뻐하면서 뇌옥을 뛰쳐나갔다.

“와아아!”

“살았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중 반은 탈출하고 싶은 마음에그냥 사라졌지만, 몇몇은 은혜를 잊지 않고 감사를 표했다.

“슬슬 정리됐으니 반은 여기에 남아 누가 점령하지 못하도록 지키도록 해. 나머지 반은 나를 따라온다.”

“존명.”

동쪽이 쑥대밭이 된 한편, 서쪽은 여전히 치열한 공방전이 계속됐다.

인독종과 독사검.

누구 하나 밀리지 않았다.

독사검은 적절한 지형과 전술을 이용해 방어에 나섰고, 인독종 역시 만만치 않은 지략을 세워 싸웠다.

“크아아악!”

“아악!”

고통에 찬 비명이나 목숨을 잃는 자들이 나오는 건 평소와 다름없었지만 오늘따라 정주의 밤이 더 길게만 느껴졌다.

“뚫렸다!”

인독종 측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반면 독사검 측은 다들 얼굴이 흙빛으로 물들었다.

창수를 배치해 좁은 골목에 창을 찔러 넣어 효과적으로 막아 내고 있었으나, 지붕 위의 적이 문제였다.

인독종을 비롯한 몇몇 하오문도들이 활잡이를 처리하곤 지붕 아래로 돌파해 와 창수들을 제거했다.

“쓸모없는 것들!”

독사검 이 결국 앞으로 나섰다.

“끄아아악!”

독사검의 무공은 하오문도치곤 고강했다.

하오문도 중에서 그를 막을 자는 몇 없었다.

그가 검을 휘두르자 하오문도가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독사검. 드디어 기어 나왔나.”

강능초가 독사점을 보고 이죽거렸다.

“조금 승승장구했다고 건방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뱀처럼 찢어진 눈매에서 살의가 흘러넘쳤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저것들을 물리고 홍루와 청루를 넘긴다면 목숨만은 살려 주마.”

“상대할 가치도 없군.”

“굳이 벌주를 택하겠다는 건가. 독사에게 덤빈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려 주도록 하지!”

독사검이 손에 쥔 검을 떨어뜨리고, 그 대신 허리에 두른 연검을 들었다.

“하앗!”

슈아악!

독사에게서 연검이 출수됐다.

연겸답게 검이 휘면서 마치 뱀처럼 구불거렸다.

먹이를 노리는 독사의 송곳니는 순식간에 인독종의 흉부를 위협했다.

“흡!”

인독종의 숨이 절로 멈췄다.

머리에서 판단을 내리기도 전에 몸이 먼저 움직여 뒷걸음질 쳤다.

그가 있던 자리에 연검이 도착했다가 번개같이 회수됐다.

“흐흐흐!”

연검은 무림에서도 보기 드문 병장기다.

검 자체가 유연하여 휘는 탓에 다루기가 무척 힘들다.

하나 그만큼 궤도를 읽지 못한다는 특징이 있어서, 일단 다루기만 한다면 그 위력은 상당했다.

“강능초.”

독사검이 입술을 혀로 적시며 기분 나쁘게 웃었다.

“너에 대해서는 조금 알고 있다.”

“정주에 버려진 고아가 고군분투해 살아남은 것?”

그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설이다.

정주의 밤을 살아가는 주민들이라면 어린아이도 알고 있다.

정주 출신의 하오문도가 최근 세력과 명성을 떨쳐서 그런지 비교적 알려져 있는 편이었다.

“청루에 거둬진 점소이.”

강능초의 차가운 표정에도 변화가 생겼다.

비록 순간에 불과했으나, 독사검은 그 광경을 놓치지 않았다.

“홍루가 넘어간 이후로 좀 알아봤지.”

독사검의 비열함과 치밀함은 하오문에서는 제일이다.

무공을 쓰기 전에 일단 책략부터 짜낸다.

그중 즐겨 쓰는 건 적의 약점을 낚아채 놓아주지 않고 천천히 소화시키는 것이다.

비소돈과 음살녀 등의 강자들은 그 음침함이 싫어 대화도 꺼린다.

“다리 밑에서 함께 동냥질하던 여아가, 청루의 포주의 눈에 들어오면서 운 좋게 같이 떠나게 됐던가?”

고아였던 강능초가 할 수 있는 건 동냥뿐이었다.

다행히 혼자는 아니었다.

다리 밑에서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아이들이 많았다.

서로 의지고 기대면서 살아가던 도중, 독사검이 말했던 것처럼 청루의 포주가 찾아왔다.

청루의 포주는 여아들을 씻긴 다음 몇몇을 데려갔다.

가끔씩 이렇게 데려가 기녀로 키운다고 한다.

하루에 한 끼니를 걱정하는 고아들 입장에선 나쁜 게 아니었다.

숙식을 해결할 수 있으니 좋았다.

원래라면 여아들만 갔어야 하지만, 그중 한 명이 포주에게 강능초를 점소이로 써 달라고 사정사정했다.

“닥쳐라.”

여태껏 냉정함을 유지하던 강능초가 반응했다.

독사검의 입가에 맺힌 미소가 더더욱 진해졌다.

“어린 시절을 함께하고, 자신을 구원해 준 기녀에게 사랑에 빠지는 건 널리고 널린 흔한 이야기 아닌가?”

결말만 이야기한다면,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기녀의 삶은 짧다.

남자의 정기를 하루에 몇 번이나 받다 보면 자연스레 폭력에도 쉽게 노출된다.

무엇보다 병에 걸리면 치료가 어려웠다.

의원을 부르는 것보다 차라리 새로운 기녀를 데려와 가르치는 것이 더 돈이 적게 들었다.

당시의 강능초는 어떻게든 해 보고 싶었지만, 현실이라는 이름 앞에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나는 건 무력감이었고, 그 끝은 결코 좋지 못했다.

“눈물겨운 이야기야!”

독사검은 말과 다르게 조소를 흘렸다.

“독사검!”

역린을 건드리자 철옹성 같던 이성도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강능초의 눈이 분노로 돌아갔다.

강능초는 이제껏 단 한 번도 보이지 않았던 진득한 살기를 흩뿌리면서 독사검에게 덤벼들었다.

‘걸려들었다!’

독사검은 웃음을 꾹 참으면서 손을 쭉 뻗었다.

손에 잡혀 있던 연검이 파도처럼 출렁였다.

뱀이 지나간 자리처럼 구불구불한 궤적을 그려 낸 연검은 강능초의 어깨를 비스듬하게 베고 지나갔다.

“크으읏!”

마치 불에 담근 쇠로 지지는 듯한 고통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놓지 말아야 할 이성의 끈이 끊겼다는 걸 깨닫곤 뒤늦게 몸을 황급히 뒤틀었으나 늦었다.

독사검은 한번 잡은 먹잇감을 놓아줄 생각이 없는지 연검을 휘두르며 집요하게 공격했다.

‘인독종만 처리하면 이긴 거나 다름없다!’

처음부터 눈엣가시였던 인독종을 처리하려 했지만,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려도 성공하는 이가 없었다.

지붕 위에서부터 날뛸 때도 몇몇 이들을 빼내 습격을 시도했으나 한명도 성공하지 못하고 실패했다.

어차피 적들이라 해도 하오문도 아닌가.

통솔자인 인독종만 죽는다면 오합지졸이나 다름없다.

“어어, 저거 위험한 거 아니야?”

“인독종이 당하고 있잖아!”

실제로 공방을 잇던 하오문도들이 반응을 보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무적이라 불리던 사굴의 침공에 성공하여 사기가 높아졌으나, 순식간에 떨어졌다.

얼굴에는 불안감이 묻어났고, 하오문도 아니랄까 봐 도망쳐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부터 튀어나왔다.

“시끄러워!”

“그럴 리가 없잖아!”

“큰형님을 도와야 해!”

하오문도가 구 할 이상은 의리도 없고, 삼류 잡배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전원이 그런 건 아니다.

그중에는 소수지만 인독종에게 충성을 맹세한 사람도 몇 있었다.

다만 그들도 크게 영향력을 떨칠 만큼 고수는 아니었는지라 부대 전체의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했다.

“형님! 도와 드리겠습니다!”

그래도 수하라고 누군가 나섰지만, 독사검이 그걸 가만히 내버려 둘 리가 없었다.

독사검이 옆으로 눈짓을 보내자, 수하들 몇몇이 빠져나와 독사검과 인독종으로 향하는 길목을 막았다.

혹시라도 인독종이 도망치려는 것을 막기 위해서 퇴로까지 완벽히 차단했다.

‘틀렸나……’

정신을 되찾았지만 어깨 탓에 전투를 속행하기가 힘들었다.

순간의 분노를 참지 못하고 실수를 저지른 행동에 후회가 들었지만 후회는 항상 늦은 법이다.

“이곳을 조금이라도 바꾸고 싶었거늘……”

마음이 약해진 탓일까.

무심코, 소망 어린 말을 중얼거린다.

태어나고 자란 고향, 정주.

그 정주가 좋으면서도 싫었다.

어릴 적, 수많은 아이들의 죽음을 보았다.

끼니를 때우지 못해 죽는 사람부터, 동냥을 하다가 기분이 나쁘다며 맞아 죽는 아이도 있었다.

점소이가 된 이후로도 주문한 음식이 늦는다면서 폭력을 받곤 했다.

사람이지만 사람으로서 취급받지 못하고, 하루의 끼니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고민하고 걱정했다.

현실이라는 이름에 굴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품에 안은 채 독기를 머금고 살아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주변에서 독종이라 불렸고, 다리 밑의 고아는 청루의 뒤를 봐주는 무인이 됐다.

이 험악한 세상에서 혼자 어찌어찌 버텨 봤으나 그것도 여기까지.

강능초는 머리를 위로 늘어뜨리곤, 달빛조차 없는 시커먼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중얼거렸다.

“나름 원망하지 않고 혼자 열심히 살아왔거늘…… 조금 정도는 도와줄 수 있지 않소?”

그 중얼거림에 답한 건 원시천존이나 부처도 아닌 사굴을 오랫동안 지배한 독사겸이었다.

“흑도에서 누군가의 도움을 기대하다니, 그거야말로 네놈의 패인이다! 나약한 자신을 원망해라!”

공력을 쏟아 낸 검이 강능초의 목젖을 노렸다.

쐐애액!

날이 선 검이 빛을 뿜어내며 날아온다.

눈으로 확인하고, 뇌리에 박히자 몸이 반응했다.

몇십여 년 동안 경계하고 긴장한 신경 탓이었다.

근육이 수축되고, 힘을 주면서 움직인다.

피를 꿀럭꿀럭 토해 내는 어깨가 움직임이며 통증을 극대화했다.

‘죽는 것도 편히 못 하나……’

머릿속에선 다리 밑에서 살아왔던 시절부터의 인생이 스치고 지나갔다.

이것이 주마등이란 것일까.

“끝이다!”

저승사자처럼 사형선고를 내리는 독사검의 목소리.

미련 가득한 감정이 치솟았지만 이미 늦었다.

그리고 검극이 목살을 파고들려는 순간.

번쩍!

“흡!”

채앵!

어디선가 날아온 비수가 독사검의 검을 후려쳤다.

목을 꿰뚫으려던 검은 살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옆으로 튕겨 나갔다.

강능초는 놀라움에 흡, 하고 숨을 멈췄고 독사검도 믿을 수 없는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웬 놈이냐!”

독사점은 공격을 연결하지 않고 뒤로 물러났다.

“비령……”

강농초가 서늘한 목덜미를 매만지면서 중얼거렸다.

“비령? 아, 그런 이름이었지.”

그 사람은, 갑작스레 나타났다.

눈을 껌뻑이니 그곳에 원래 있던 것처럼 서 있었다.

“설마……”

독사검의 얼굴이 똥을 씹은 듯 일그러졌다.

“만나서 반갑다, 독사검. 돼지부터 처리하고 오느라 좀 늦었다.”

주서천이 머리를 빙그르르 돌렸다.

뼈 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그리고 이제부터 너희를 죽일 거다.”

정주가 발칵 뒤집혔다.

여태까지 세력 간의 싸움은 숱하게 있었지만 이 정도로 크게 난 적은 없었다.

철옹성이나 다름없었던 동쪽과 서쪽이 습격당했다.

그리고 믿어 의심치 않던 지하 투기장이 무너졌다.

한밤중에 사람들이 뛰쳐나오고, 무음사자가 비소돈의 목을 벤 사실이 소문이 되어 발 빠르게 퍼졌다.

그리고 주서천이 의도했던 대로, 이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하오문주 천선의 무거운 엉덩이가 움직였다.

“이게 도대체 뭔……”

천선의 얼굴은 볼 것도 없이 일그러져 있었다.

다툼 정도야 늘 있는 일이다.

비소돈의 권좌에 도전하는 것이 흔한 것은 아니지만 가끔 있었다.

애초에 비소돈 역시 십여 년 전에 이젠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자에게 승리하여 자리를 빼앗지 않았나.

그러나 들려온 소식은 예상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난리를 친 거야?”

가슴속에서 치솟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천선을 진정 분노하게 만드는 건 바로 피해였다.

무음사자는 살인에 굶주린 악귀처럼 하오문도를 살려 두지 않았다.

무자비하게 목숨을 앗아 갔다.

신기하게도 주민이나 고객은 건들지 않았다.

목숨을 잃은 건 구 할 이상이 비소돈의 수하들이었다.

전쟁에서야 그러는 것이 보통이지만, 하오문에서는 아니다.

하오문은 보통 따르던 우두머리가 사망할 경우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거나 고개를 숙여 항복한다.

그들에게 의리 따위 존재하지 않으며, 위광을 두를 수 있는 사람이 누군지는 그다지 중요치 않다.

덕분에 머리가 바뀌어도 큰 변화는 없다.

어차피 그 머리도 수족으로 삼으면 그만이다.

평소처럼 정보의 수집에도 문제가 없고, 지하 투기장에서 흘러나오는 시커먼 돈도 큰 변동은 없었다.

도전자나 지하 투기장의 주인도 이를 잘 안다.

어차피 믿음이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수하들이다.

과거에 누구 밑에 있었든 상관없이 몇몇을 제외하곤 자기 밑으로 흡수할 예정이니 굳이 무리해서 처리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걸 전부 무시했다.

이렇게 되면 천선 입장에서는 굉장히 성가시고, 짜증 나는 일이었다.

천선의 무거운 엉덩이가 움직였다.

강능초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무음사자……?”

방금 전에 일어난 상황보다 시선 끝에 있는 낯익은 등을 보고 이해가 안 가는 표정을 지었다.

“왜 여기에 있지?”

머릿속의 의문은 곧장 입 바깥으로 나왔다.

“비소돈을 맡겠다며 지하 투기장으로 가지 않았나?”

“무음사자?”

독사검의 얼굴도 일그러졌다.

정보와 전략을 중시하는 그가 무음사자란 전력을 빼놓을 리는 없었다.

그의 존재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동쪽을 습격한 사실은 몰랐다.

애초에 오늘 일이 벌어진 지 고작 한 시진이 지났을 뿐이다.

‘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아서 어디에 숨어 있거나 혹은 문제가 생겼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나.’

무음사자의 명성은 익히 들었다.

강호의 소문은 과장된 면이 있다고 하지만, 이곳 하오문에선 그런 소문조차 조심해야 한다.

“일을 전부 끝냈으니까.”

주서천이 목을 한 바퀴 돌리면서 답했다.

“뭐라고?”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대답에 강능초가 황당해했다.

아직 한 시진이 조금 지났을 뿐.

그런데 그 짧은 시간 동안 동쪽의 지배자를 제압했다니……

무음사자를 완전히 믿지 못하는 건 아니다.

적어도 그는 헛말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건 너무 터무니없지 않나.

자신이 믿던 수준은 비소돈의 수하들 몇몇을 암살한 정도다.

애초에 임무 자체를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사굴을 치는 동안 돼지들의 움직임을 막아 주는 수준이었다.

짧은 시간 동안 몇 번이나 고민했지만 시원할 만한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강능초가 고민의 답을 내기에는 상황이 그다지 여유롭지 못했다.

“최근 소문이 자자한 무음사자가아니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오.”

독사검이 태연스럽게 인사를 건냈다.

“무음사자!” “어떻게 되는 거지?”

치열하게 이어지던 공방도 잠시 멈췄다.

좌중의 시선이 한곳으로 몰렸다.

“참으로 잘됐군. 이 독사검, 무음사자와의 만남을 고대하고 있었소.”

독사검이 잠시 검을 내려뜨리고 말을 걸었다.

“날?”

주서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소. 무음사자 정도 되는 절대의 고수가 어째서 애송이를 돕는지 이해가 안 가서 말이오.”

독사검은 입꼬리를 살짝 올려 기분 나쁘게 웃었다.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무음사자가 정주에서 손에 꼽는 고수인 건 부정할 수 없다.

그러니 웬만하면 적으론 두지 말아야 한다.

사실 그 전에 접촉하여 회유하고 싶었지만, 행적이 워낙 불분명하여 시도할 수가 없었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말만 하시오. 이래 봬도 이 정주, 아니 흑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니까.”

독사검 이 자신감 있게 웃으며 콧대를 세웠다.

“하하.”

주서천이 아니라 강능초가 대신 웃었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말만 하라고?”

방금 전까지만 해도 황당과 의문으로 심각했던 강능초가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하오문에서 아무리 잘나 봤자 하오문이다.

문주가 아닌 이상 그 힘은 유령곡과 비교할 게 아니다.

“방금 전까지 염라대왕을 보고 온 놈이 말이 많구나. 뒈지고 싶지 않으면 닥치고 있는 게 좋을 거다.”

“그것참 미안하군.”

상황이 재미있지만, 솔직하게 답하는 건 무음사자의 정체를 알려 주는 일이니 입을 다물기로 했다.

“내 밑 아니 나와 함께한다면 부귀영화를 약속하겠소. 어쩌면 그대의 힘이라면 흑도의 영원한 이인자가 될 수 있을 거요.”

“일인자가 아니라 이인자인가?”

“일인자는 포기하시오. 하오문주는 사람이 아니요. 아무리 그대여도 감히 넘볼 수 없을 거외다.”

독사검은 하오문주, 천선의 힘을 엿봤다.

그렇기에 그게 얼마나 변칙적인지 잘 알고 있다.

‘천하 모두가 속고 있다. 흑도라고 무시당하는 하오문주는 능히 천하백대고수 중에서도 열 손가락이다.’

한때 어리석게도 문주의 자리를 넘봤으나, 그 힘을 맛본 뒤로는 깔끔하게 포기했다.

“나와 그대라면 하오문주의 오른팔과 왼팔이 될 수 있으니 잘 생각해 보……”

“그럴 생각 없다. 아무리 그래도 정파인이 흑도의 오른팔이나 왼팔이 될 수는 없지 않나.”

 “……?”

정파인이라는 말에 독사검은 물론이고 강능초조차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주서천은 어깨를 으쓱이곤, 볼일 다 봤다는 듯이 태세를 정비하면서 비수에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만나서 반가웠다, 독사검.”

“자, 잠깐만 기다리시오.”

독사검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겉과 다르게 속은 냉정했고, 역습의 준비를 하느라 바빴다.

‘아무리 무공에 자신 있다곤 하지만, 자객이 혼자 와선 몸을 당당히 드러내다니. 참으로 멍청하도다!’

입 바깥으로 비웃음이 튀어나올 뻔한 걸 참았다.

이렇게 역공해서 승부를 쥔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실제로 수하들만 알아보는 눈짓과 손짓으로 비밀스레 명령을 내리자, 익숙한 듯 공격의 준비를 했다.

아무렇게나 위치해 있던 것 같은 수하 몇몇이 주서천을 향해 조금씩 움직여 포위했다.

“독사검.”

주서천이 심드렁한 어조로 그를 불렀다.

독사검이 은근슬쩍 돌리던 눈동자를 멈추고, 시선을 마주 보던 곳으로 옮겼다.

그러자 주서천은 손목을 튕겨 비수를 던졌다.

다만 그 방향은 정면이 아닌 지면이었다.

지면에 비수가 박히면서 자갈이 튄 것을 본 독사검의 얼굴에 의문이 묻어났다.

“암습이란 건 자고로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은밀하게 움직여야 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독사검이 눈썹을 구부렸다가 이내 외쳤다.

“눈치챘다! 쳐라!”

파바밧!

정확히 열 명의 무인이 몸을 날렸다.

그들 전부 나름 암습에는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그래 봤자 하오문이다.

자객방, 그것도 천하제일에 꼽히는 유령에 비해선 태양 앞 반딧불이었다.

뒤늦게 강능초가 위험하다면서 소리를 질렀으나 주서천은 듣고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소매 안에 숨겨 두고 있는 비수도.나오지 않았고 신묘한 움직임으로 피하지도 않았다.

그저, 속삭이듯이 말했다.

“이렇게.”

시간이 느릿하게 흘러간다.

너무 느려서 마치 세상이 멈춘 것 같았다.

한 사람을 노리고 몸을 던진 열 명 각자 병장기를 꼬나 쥐고 험악한 얼굴로 내공을 끌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 이변이 벌어졌다.

눈을 감았다 뜨자 그들의 뒤로 사람들이 나타났다.

눈은 천으로 가리고, 몸에 딱 달라 붙으며 면적이 좁은 옷차림이 특징적이었다.

“뭔……”

팟!

암습을 시도한 하오문도의 목에 혈선이 그어졌다.

마치 거울을 마주한 것처럼, 목에 혈선이 그어지는 순간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동시에 벌어졌다.

푸슈슛!

외마디 비명을 흘릴 틈도 없었다.

앗 하는 사이에 목에서 피가 뿜어져 나와 안개처럼 흩어졌다.

“……”

좌중이 침묵했다.

아니, 반응할 수 없었다.

눈으로 좇기는커녕 기척도 느낄 수 없었다.

갑자기 나타났다가 사라지니 귀신에 홀린 기분이었다.

그리고 암습을 노렸던 장본인은 터져 나오려는 비명을 가까스로 참아야만 했다.

‘유, 유령곡!’

눈치채지 못했다.

아니, 눈치챌 수 없었다.

유령곡이야 워낙 실체가 없는 곳으로 유명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런 거물들이 올 리 없지 않은가.

추측의 가능성조차 전무했다.

그러나 방금 전 벌어진 상황과 암습이라는 말에 가까스로 눈치했다.

‘모른 척해야 한다!’

의뢰인조차 모른다는 신비의 자객방.

그동안 비밀을 어찌 유지해 온 것인지 대충 짐작이 갔다.

시체는 말이 없는 법.

독사검의 상황 판단은 빨랐다.

“대인!”

더 이상 흑도의 일이라고 부르기에도 힘들다.

하오문의 영역에서 벗어난 일이었다.

독사검은 주변의 수하들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자리에 부복하여 빌었다.

“제가 어리석게도 대인을 몰라뵈었습니다! 부디 목숨만은 살려 주십시오!”

하오문주도 두렵지만 유령도 두렵다.

여기에서 괜한 반항을 부렸다간 어떻게 될지는 안 봐도 뻔하다.

‘독사검이 졌구나!’

사굴의 하오문도들이 동요를 보였다.

‘어떻게 해야 하지?’

‘도망쳐? 아니면 항복해야 하나?’

‘무음사자는 자비가 없다던데……’

지도자의 굴욕 어린 항복 따윈 상관없었다.

애초에 충의가 없었으니 실망감도 없었다.

중요한 건 도망치느냐, 아니면 굴복하느냐다.

다만 간단히 선택할 수 없는 문제였는데, 어떤 자는 패자의 수하를 전부 죽이거나 노예로 만들고 어떤 이는 대표로 삼을 만한 몇몇만 본보기로 죽였다.

후자라면 새로운 기회와 이득을 챙길 수 있지만, 전자라면 그냥 죽는다.

그렇다고 그냥 도망치면 척살을 당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

좌중이 침묵하고 긴장했다.

머리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끝났다.

주서천이 머리를 한 바퀴 돌리곤 물러나 강능초의 뒤로 돌아갔다.

주변의 시선이 무음사자에게서 강능초에게로 옮겨졌다.

‘사굴의 새로운 지도자!’

‘독사검이 인독종에게 졌구나!’

목숨 줄을 쥐고 있던 사람이 바뀌었다.

방금 전까지 고민하고 있던 하오문

도들이 병장기를 슬그머니 내리면서 눈치를 봤다.

사신보다는 독종이 나았다.

“살려 주시오, 인독종. 그대 곁에서 보좌를 설 기회를 주시오. 사굴이 익숙하지 않아 힘들 거요.”

강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다.

살아남는 게 강자다.

설사 무공이 약할 지라도 입장상 인독종이 유리했다.

그의 뒤에는 무시무시한 유령이자 사신이 있었다.

인질을 삼아 볼 생각도 해 봤지만 곧장 포기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괴물이 앞에 있는데 뭘 하는가.

“살려 주십시오, 대인!”

“인독종 님을 몰라뵈었습니다!”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채앵

챙그랑!

병장기들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시끄러운 소리를 냈다.

사굴에 붙었던 하오문도들이 항복했다.

“독사검.”

“예, 대…… 컥!”

인독종의 발끝이 독사검 의 복부에 꽂혔다.

“숨긴 재산이 있다면 빠짐 없이 말하는 게 좋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편히 죽지는 못할 테니까.”

유난히 길었던 정주의 밤이 끝났다.

아침이 밝자 정주는 밤에 있었던 이야기뿐이었다.

“어젯밤 소식은 들었나?”

“그 난리를 피웠는데 모를 리가 있나. 지하 투기장과 사굴 전부 인독종의 손에 떨어졌다며?”

“설마하니 하룻밤 사이에 비소돈과 독사검이 당할 줄은 몰랐네. 내 친척이 어제 지하 투기장에 있었는데 보통 난리가 아니었다더군. 비소돈은 물론이고 그 수하들조차 목숨을 부지할 수 없었다고 들었네.”

“도대체 어떻게 하룻밤 만에 서로 반대 방향에 있는 곳을 처리했지? 인독종이 음살녀 와 손을 잡았나?”

“아니. 목격자들에 의하면 무음사자, 그리고 그가 데려온 자객들이 쑥대밭으로 만들었다고 하더군.”

“허어!”

어젯밤에 대한 소문이 정주 전체에 파다했다.

심지어 그 소식은 정주를 넘어서 하남으로 퍼졌다.

이후 중원 무림 전체에 퍼지는 건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나 무림 전체에서 보면 그다지 큰 화제는 되지 않았다.

“그래 봤자 삼류 밖에 없는 잡배들 아닌가.”

“쓰레기들 정리하는 데 얼마나 걸린다고.”

“무음사자? 하하. 과한 별호로군.”

“삼류들밖에 없으니 기척을 못 잡는 건 당연하지. 비소돈이나 독사검도 대단해 봤자 절정이 아닌가.”

정도와 사도, 마도에선 반응이 미적지근했다.

다들 코웃음을 치면서 별거 아니라며 넘어갔다.

그것보다는 혈근경 사건 이후 매서워진 분위기가 더 중요했다.

흑도는 흑도. 제대로 취급조차 못 받는 세계다.

화제가 되는 건 어디까지나 흑도, 그리고 하오문의 중심부인 정주 사람들 정도였다.

여하튼, 이튿날이 밝자마자 강능초는 잠 한숨 자지 않은 채로 잔존세력을 흡수하는 데 힘썼다.

지하 투기장은 힘쓸 것도 없었다.

주서천이 그 잔당을 전부 소탕해서 손쉽게 이루어졌다.

사굴의 경우도 조금 시간이 걸리긴 했으나 어렵진 않았다.

권좌의 교체에 곧장 순응하며 흡수됐다.

독사검은 지하 뇌옥에 갇혔다.

재물의 위치를 전부 토해 내게 만들기 위해서 고문을 가했다.

그리고 이 일이 있은 직후 하오문에서 한 사람이 움직였다.

암천회의 천선성, 하오문주였다.

선홍 빛깔을 띠는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며 앞이 안 보일 정도로 방 안을 가득 메웠다.

침실의 위쪽에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남자들과 여자들이 뒤섞여 널브러져 있었다.

머리가 아찔해지는 향기의 속, 천선에게서 차디찬 분노가 흘러나왔다.

“도대체 이게 뭔……”

천선의 입장에선 날벼락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최근 신홍 강자로 떠오른 인독종이 근시일 내로 삼인방의 권좌에 도전할 것은 대충 예상했다.

그 행위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일상처럼 있는 일이고, 과거에도 몇 번 있었다.

비소돈과 독사검이 그랬고, 음살녀도 마찬가지였다.

세 사람 모두 전에 있던 강자이자 수족을 죽였다.

딱히 수족을 죽인다고 해도 화내진 않는다.

사람이야 바꿔 쓰면 그만이고, 반대로 약자가 아니라 강자라면 그것을 환영하면 환영했지 싫지는 않았다.

전처럼 제안을 하면 되는 것이고 그걸 거부하면 죽이면 된다.

그러면 새 사람이 나타나 수족이 된다.

그리고 이런 과정 중 도전자들에겐 공통점이 있었는데 바로 수입원의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점이었다.

동쪽의 지하 투기장, 서쪽의 암시장, 남쪽의 환락가.

이곳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은 적지 않다.

어차피 권좌를 얻으면 이 수입원도 들어오기에 건들지 않았다. 황금 알을 낳는 거위를 고생해서 얻었는데 괜히 싸웠다가 제 기능을 내지 못하면 아깝지 않은가.

적의 밑에 있던 하오문도도 마찬가지인 이유로 운영을 위해 자기 수하로 만드는 데 힘썼다.

그래서 언제나 있는 일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내부의 일보단 외부의 정보 수집이 중요했다.

“이 버러지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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