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월이 밤하늘에 떠올랐다.
구름이 껴 일부분만 보일 뿐, 전체는 보이지 않았다.
다른 때보다 어둡지만, 무서운 건 간간이 울리는 비명이다.
강능초는 하오문도 백여 명을 이끌고 홍루의 뒷배를 습격했다.
“끄아아악!”
“아악!”
정주가 눈치를 보면서 혈투를 지켜 봤다.
괜히 휘말릴지 몰라 경계를 높이고 주의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는 않았다.
이 정도 규모의 총력전은 확실히 흔하지 않지만 그래도 가끔 벌어졌다.
“무음사자다!”
“강능초가 무음사자를 포섭 했어!”
“도망쳐! 홍루에는 가망이 없다!”
하오문도에게 의리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설사 어제 형제의 연을 맺었다 할지라도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도망친다. 괜히 흑도가 아니다.
안 그래도 눈에 띄게 약화된 홍루의 세력은 습격에 제대로 된 반항도 하지 못하고 결국 무너졌다.
고수인 부두벽과 참락가를 잃었을 때부터 정해진 운명이었다.
“이제부터 홍루는 나, 강능초의 지배를 받는다.”
“모, 목숨만 살려 주십시오!”
청루와 홍루가 전부 강능초 밑으로 들어갔다.
둘 다 정주의 밤거리에서 나름 영향력이 컸던 만큼 수익이나 무력 등이 전부 배로 증가하게 됐다.
그리고 이 소란은 하오문주의 귀에도 들어가게 된다.
“강능초, 강능초라……”
하오문주가 어둠 속에서 중얼거린다.
그 목소리에는 성가시다는 감정이 다분했다.
인독종, 강능초.
그에 대한 정보가 머릿속으로 떠오르며 펼쳐졌다.
내용이 제법 자세하다.
강능초는 태생부터 정주로서, 밤거리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고아였다.
어릴 적에 다리 밑에 버려져 부모의 이름도 모르고 자랐다.
남들처럼 어릴 때 동정심을 유발하며 구걸로 연명하다가 운이 좋아 어떤 무림인에게 무공을 배웠다.
다만 그렇게까지 대단한 수준은 아니었다.
정말로 대단한 건 강능초 본인이었다.
그는 살아남기 위한 수단으로 무공을 수련하고 또 수련했다.
재능도 약간 있긴 했지만, 더 대단한 건 끈기였다.
가끔씩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기루에 서성이는 무림인에게 끈질기게 달라붙어 가르침을 받았다.
도중에 수련이라는 명목하에 화풀이나 다름없는 폭력이 가해졌지만, 그에 굴하지 않았다.
죽을 뻔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온갖 고난을 경험한 덕에 그 자리까지 오를 수 있었다.
“신경 쓸 정도는 아니야.”
정주의 밤거리는 타지보다 험하다.
하루아침에 어떤 세력이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 군림한다.
이런 일이 정말 숱하게 벌어진다.
흔하진 않지만 외부에서 고수를 초빙해 세력권을 넓히기도 했다.
무음사자가 눈에 밟히긴 했으나, 암천회의 일로 바쁜 하오문주가 움직일 정도는 아니었다.
정주의 하오문에는 청루와 홍루 외에도 이름을 크게 떨치는 세력이 여럿 있는데, 그중에는 하오문주에게 충의를 맹세하여 천선의 수족이 된 자들이 있다.
앞으로 노려야 할 목표가 그들이었다.
“앞으로의 일을 이야기해 주겠다.”
강능초 앞에는 어릴 적부터 함께한 동료와 최근 그의 비호를 약속받고 수하로 들어온 하오문도가 있었는데, 그 숫자가 백을 조금 넘는 숫자였다.
그들은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라는 비장한 얼굴로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얼마 전, 홍루를 집어삼켰으나 나는 그걸로 만족할 생각이 없다. 정주의 밤거리가 얼마나 위험하고 욕심이 많은지 알고 있지? 최근 눈에 띄게 성장한 우리를 가만두지 않을 놈들이 많다. 그놈들에게 먼저 당하고 싶지 않다면 우리가 선수를 쳐야 하지.”
꿀꺽!
“그 말은 즉, 전면전이라는 말씀이십니까, 형님?”
“그래. 그뿐만 아니라 정주를 지배하에 둘 것이다.”
수하들이 웅성거렸으나 그것도 잠깐이었다.
전부 예상했다는 듯이 머리를 주억거렸다.
비소돈, 독사검, 음살녀!
세 명의 이름이 나오자 수하들이 몸을 움찔 떨었다.
대다수가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삼 인은 정주, 아니 하오문 전체에서도 오랫동안 이름을 떨친 강자들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이 삼 인 전부 각각 독자적인 세력을 만들었는데 그 규모와 힘이 대단하였다.
행동도 악랄하기 그지없어 그들의 손에 거쳐 이용되거나 목숨을 잃은 자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그렇게 두려워할 것 없다! 우리에겐 무음사자가 있다!”
“무음사자!”
좌중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뀐다.
그늘까지 끼었던 얼굴이 몰라보게 환해졌다.
무음사자의 이름은 정주에서 공포 그 자체였다.
그런 그가 아군이라는 말에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강능초는 힘만 내세우는 머저리가 아니다.
정주의 밤거리, 흑도에서는 온갖 암계가 도사리고 있다.
힘만 믿고 설치면 이름도 채 남기지 못한 채 죽는다.
물론 압도적인 무공을 지닌 고수라면 상관없으나 애초에 그런 인물이 강호의 밑바닥에 올 리가 없다.
그는 오늘 밤을 위해 나름대로 치밀한 준비를 해 뒀다.
급습을 위한 병력을 분산한 다음 곳곳에서 적지로 모여 공격하는 수단을 사용했다.
온갖 정보가 모이며 소문의 전달도 빠른 정주인 만큼 움직임을 조심해야 했다.
최근 홍루를 흡수하면서 강해졌다지만 괜히 방심했다가는 허무하게 질 수 있었다.
“일단 제일 성가신 독사검부터 처리한다.”
독사검은 삼 인 중에서도 상대하기가 제일 껄끄러웠는데, 그 이유는 그가 무공도 강할 뿐만 아니라 지략도 상당했기 때문이다.
위험한 순간 숨을 때를 잘 찾고, 세력 싸움 중에 주변의 지원 세력을 적절히 이용했다.
게다가 함정을 파는 것이 특히 성가셨다.
괜히 나머지 둘과 싸우다가 전력을 소비했다간 그 틈을 파고들 것 같아 일 차 목표로 삼았다.
“어떻게 하겠나?”
고수는 약자에게 명령받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 지휘자가 하오문도라면 두말할 것 없다.
하오문주조차도 멸시받는 현실이다.
무음사자나 되는 고수가 말을 들을 것이라곤 기대도 안 했다.
“비소돈.”
주서천이 몸을 풀 듯이 손목을 이리저리 돌렸다.
“설마……?”
청루주가 입을 떡 벌렸다.
강능초가 말없이 눈살을 찌푸렸다.
“내가 그쪽을 맡지.”
“터무니없는 생각입니다!”
청루주가 목소리를 높였다가 흡, 하고 입을 닫았다.
그 낯빛이 시체처럼 새하얗게 질렸다.
‘내가 미쳤지!’
강농초는 상관없다.
그는 자기 사람에게는 따스하고 부드럽다.
이 정도 무례는 어느 정도 용서해 준다.
무엇보다 청루주는 이곳에서 나름 책사였다.
강능초 다음으로 권한이 제일 높았다.
그래서 작전을 실행하기 전 회의에도 지속적으로 참석했었다.
문제는 무음사자였다.
그녀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잊을 수 없는 위압감을 보여 준 괴물 같은 그가 두려웠다.
그러나 걱정과는 다르게 주서천은 청루주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비소돈이 다른 둘보다 머리가 나쁘지만, 그렇다고 두뇌 능력이 전무한 건 아니다. 너희가 독사검에게 승리한다 해도 전력의 소비가 제법 클 테니 그걸 노리고 덮쳐 올 게 분명해. 어쩌면 청루나 홍루를 점령하고 인질로 삼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후자의 경우 저희도 잘 알고 있사옵니다. 그러나 아무리 무음사자일 지라도 혼자서 비소돈의 소굴에 들어간다면……”
강능초가 손을 들어 청루주의 말을제지했다.
안 그래도 매서운 눈매가 가늘어지며 무서워졌다.
‘설마하니 이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군. 무공에 대한 자신감인지는 모르겠지만, 거절할 이유가 없다.’
강능초도 주서천이 말한 것이 신경쓰여 여러 계책을 준비해 뒀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설사 무음사자가 실패한다 할지라도 그 실력이라면 계책 이상의 피해를 줄 수 있다.
‘동귀어진이라도 한다면 그거야말로 원하는 바다. 통제하지 못하는힘은 양날의 검. 적을 베어 주되 내 목이 노려질지 모르지 않나. 이 상황, 이용해 주마.’
입가에 진한 미소가 맺힐 뻔했지만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참았다.
이런 좋은 흐름을 망칠 수는 없다.
“알았다. 그렇다면 잔존 병력을 청루로 집결하여 방어에 힘쓰지. 지원은 힘들 텐데 괜찮겠나?”
“그래.”
정주의 외곽은 전부 치안이 좋지 못한 밤거리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골목 사이는 빛 한 줌 들어오지 않아 정주의 주민조차 길을 잃기 십상이다.
위험이야 말할 것도 없다.
신체 건강한 남자가 들어가면 쥐도 새도 모르게 노비로 팔리고, 여인이 들어간다면 죽기 직전까지 범해져 목숨을 잃는다.
그중에서도 밤거리에 익숙한 하오문도조차 다가가지 않는 곳이 있었는데, 각각 동서와 남쪽이었다.
서쪽에는 주로 모조품이나 도난품, 혹은 마약 등을 판매하는 야시장이 있었는데 이곳을 사굴(蛇窟)이라 불렀다.
햇빛 대신 등불이 올라올 때 즈음, 사굴로 향하는 길목을 지나 나오는 저잣거리에 무리가 나타났다.
“응?”
정찰을 돌던 하오문도가 이상함을 느꼈다.
그건, 정말로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었다.
저잣거리를 거닐던 사람 중 몇몇이 모였다.
한 사람은 두 사람이, 두 사람은 네 사람으로 변한다.
이윽고 눈을 껌뻑일 때마다 수가 무서운 속도로 증가하자, 그제야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억!
누군가가 눈에 들어오자 입이 절로 벌어졌다.
경종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치며 시끄럽게 울어 댔다.
근처에 서 있던 동료도 무언가 깨달은 듯,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목청껏 소리쳤다.
“인독종이다!”
정주에 사는 주민들의 눈치는 귀신같이 빠르다.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자마자 꽁지 빠지게 도망쳤다.
“죽여라!”
강능초의 살벌한 명령이 내려졌다.
독사검의 수하를 제외하곤 건들지 말라고 사전에 말해 두었기에 굳이 뒷말을 붙일 필요는 없었다.
“와아아아!”
“인독종을 따르라!”
청루와 홍루를 포함해 정예들로 데려온 무인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수준은 기껏해야 삼류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기세만큼은 고수라는 듯 정주를 뒤흔들었다.
소란을 들은 사굴원(蛇窟員)들이 문을 박차고 나타났다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기겁했다.
“일어나! 습격이다!”
“큰형님을 불러!”
“크아악!”
터져 나온 비명이 저잣거리를 넘어 사굴 곳곳까지 퍼졌다.
습격에 대비하지 못했던 사굴원이 쓰러진다.
강능초와 그 무리는 인근에 있는 사굴원의 목숨을 전부 빼앗은 뒤, 독사검이 있는 곳을 향해 전진했다.
“함정을 조심해라!”
그러나 처음의 위세와 다르게 전진은 쉽지 않았다.
미로처럼 얽힌 골목길도 성가시지만, 무엇보다 지점마다 설치된 함정 탓에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사굴의 초입이 습격을 당하고 있는 동안, 그 소식은 바람이 되어 독사검에게 닿는다.
“인독종, 주제도 모르는 놈이……!”
독사검이 차가운 분노를 토해 내며 대응에 나섰다.
“감히 나 독사검에게 덤비다니, 겁을 상실했군!”
독사점은 하오문주를 제외하곤 정주에서 최고라 자부하고 있었다.
실제로 틀린 말은 아니었다.
비소돈은 힘이 있으나 머리가 떨어지고, 음살녀는 기교와 머리가 있지만 힘이 부족하다.
그에 반면 독사검은 힘과 머리는 물론이고 적절한 기교까지 어우른 인재였다.
최근 이름을 날린 인독종이라고 한들, 독사검에 견줄 정도는 아니었다.
두렵기는커녕 코웃음만 나왔다.
“쥐새끼!”
독사검의 부름에 이름처럼 쥐를 닮은 사내가 나타났다.
체구도 성인 남자치곤 작은 편이었다.
“활을 조금이라도 쏠 줄 아는 놈들을 지붕 위로 올려 보내고, 내가 가르쳐 주는 곳에 배치해 요격하라고 전해라.
혹시라도 도망치거나 한다면 주저하지 않고 목을 베어 본보기를 보여 주도록!”
쥐새끼가 큰 소리로 대답하면서 사라졌다.
“쯧.”
독사검은 짜증 가득한 얼굴로 혀를 찼다.
무엇이 그리 마음에 안 드는지 미간이 씰룩인다.
‘최근에 힘을 얻어 기고만장한 애송이 따위야 내 적수가 되지 못한다. 정녕 문제가 되는 건 무음사자지.’
무음사자!
정주의 밤거리에 몸을 담근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채 한 달도 되지 않아 공포로 군림하는 고수다.
천하의 독사검이라 해도 소리 없이 다가와 영혼을 가져가는 사자는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그 외에도 신경 쓸 것이 많아 머리가 아팠다.
* * *
사굴이 습격을 받아 소란스러운 그 때, 그 반대편인 동쪽 역시 다소 시끄러웠다.
다만 이곳의 소란은 언제나 벌어지는 일상인지라 이상할 것이 없었다.
동쪽에는 인내심이 눈곱만큼도 없고 성질이 흉포한 자만 모여 있어 정주 내에서도 무법천지 그 자체였다.
고리대금업을 하거나 혹은 불법 투기장을 운용했고, 사람을 납치해 와 협박하는 등의 일이 다분했다.
온갖 폭력이 난무하는 곳인지라 하오문도들조차 힘이 없다면 웬만하면 접근하지 않는다.
다만 이곳에서도 무분별한 폭력이 제한된 장소가 있는데, 바로 지하에 비밀스레 만들어진 투기장이었다.
투견이나 투계부터 시작해 심지어 사람끼리 목숨을 배당받고 싸우는 장소로서, 역사도 제법 길다.
살벌한 폭력을 구경하는 취미를 지닌 상인이나 혹은 관리도 가끔씩 방문하는 지라 나름 신경 쓰는 곳이다.
“여, 여기입니다.”
청루의 종업원에게 안내를 받은 주서천은 비좁고 을씨년스러운 골목을 지나 막다른 벽에 당도했다.
일 장 높이로 세워진 벽에는 돼지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고, 가운데에는 척 봐도 수상한 철문이 서 있었다.
차이점이 였다면 지금까지 온 거리와는 다르게 횃불로 주변을 밝히고, 덩치가 산만 한 문지기가 있다는 점이었다.
“그, 그럼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헤헤헤!”
종업원이 비굴하게 웃으며 꽁지 빠지게 도망치려 했으나 주서천의 손이 뒷덜미를 재빨리 낚아채 막았다.
“케헥!”
“원래 이곳 투기장에서 일했다고 했었지?”
종업원은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선했다.
“내부의 길도 알고 있나?”
종업원은 불길함을 느껴 ‘모른다.’ 라고 답하려다가 입을 다물고 목을 움츠렸다.
아무리 투기장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 해도 무음사자를 언짢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목숨은 하나니까.
“그러면 안내해라.”
“흑흑!”
종업원은 눈물과 콧물을 쏟아 내면서 마치 세상이 무너진 듯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무음사자가 지하 투기장에 침입하여 무엇을 할지 잘 알고 있었기에 격한 감정을 참지 못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유서라도 써둘걸!’
마음속으로 온갖 원망 어린 말을 남기며 걸었다.
“그만.”
중앙에 서 있던 문지기가 허리춤에서 칼을 뽑았다.
“못 보던 얼굴이군.”
문지기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번졌다.
들어가고 싶다면 은으로 두 냥은내놓아라.”
“그런 건 없다.”
“나, 나으리!”
전낭을 뒤적이던 종업원이 흙빛이 됐다.
“뭐?”
문지기의 얼굴이 험상궂게 일그러졌다.
“넌 어떻게 저런 것들에게 무시를 당하냐?”
“낄낄낄!”
근처에 있던 문지기들이 비웃음을 흘렸다.
몇몇은 마침 심심하니 잘됐다면서 손뼉까지 쳤다.
동료들에게 비웃음 대상으로 지목당한 문지기는 치욕감을 버티지 못하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얼굴은 터질 것처럼 시뻘겋게 달아올랐고, 눈에는 진득한 살기가 흘렀다.
“오냐, 지금 네가 겁대가리를 상실한 모양이구나!”
이 거리에서 그의 무위를 알아볼 자는 없다.
종업원이야 두말할 것도 없었다.
정주에서 실력도 없는데 쓸데없이 허세만 부리는 잡배가 가끔 있다.
“소령.”
“네.”
움찔!
앞으로 발걸음을 내민 문지기가 몸을 떨었다.
그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흔들렸다.
그 얼굴은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 같았는데, 그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던 문지기들도 마찬가지였다.
“히이익!”
종업원이 놀란 목소리를 내며 바닥에 벌러덩 주저앉았다.
‘어, 언제?’
눈을 깜빡인 순간, 무음사자의 중심으로 원래부터 있었던 것처럼 눈을 천으로 가린 흑의인이 나타났다.
흑의라 해도 천의 면적이 워낙 얇은 데다가, 또 피부도 검어 잘 보이지도 않았다.
“반격을 하되, 종업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다. 공격이 아니라 방어에 전념하도록.”
소령이 넘어진 종업원의 옆에 섰다.
“적의가 없다면 놓쳐도 상관없다. 그 외에는 신속하게 전부 죽이도록.”
어떻게 된 것인지 열 명이 땅에서 솟아나듯 나타나자, 문지기들이 그제야 무언가 잘못됨을 느꼈다.
“명.”
“으아악!”
정주의 밤거리가 순식간에 전쟁터로 변했다.
힘없는 주민들은 방문을 걸어 잠그고 숨죽였고, 조금이 라도 싸울 수 있는 사람들은 습격에 대비했다.
“화살이다!”
파바밧!
지붕 위에서 화살이 날아왔다.
안 그래도 어두워 화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막기가 힘들었다.
무엇보다 골목이 비좁다 보니 명중률이 보통이 아니었다.
눈먼 화살도 거의 백발백중이다.
“간우(干羽)를 들어서 막아라!”
간우란 보통 대나무같이 가벼운 재질로 된 순(眉)의 일종으로, 화살을 한두 번 막기에는 최적이었다.
“흥!”
강능초가 하오문도의 어깨를 밟고 펄쩍 뛰어 지붕 위에 가벼이 착지했다.
뒤로 몇몇의 수하가 따랐다.
“인독종!”
지붕 위에 있던 활잡이가 놀라 목소리를 높였다.
“멍청한 놈!”
놀라기 전에 시위에 화살부터 걸었어야 한다.
하기야, 그런 판단이 가능했다면 하오문도로는 아깝다.
강능초는 기왓장 위를 밟으면서 지척에 있는 활잡이의 목을 검으로 베었다.
피가 얼굴에 튀었지만 상관하지 않는다.
그 대신 활잡이가 쥐고 있던 활을 잡고, 시위에 화살을 건다.
풍!
화살이 일직선을 그려 내며 날아가 또 다른 활잡이의 어깨에 박혔다.
“아악!”
활잡이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으나, 강능초의 얼굴은 만족스럽 지 않았다.
‘역시 잘 보이지도 않는데 쏘는 건 힘든가.’
원래는 가슴을 노렸는데 빗맞아 버렸다.
“활잡이부터 처리한다!”
“와아아!”
강능초의 선수에 힘 입은 하오문도가 달렸다.
기왓장 위로 올라온 그들도 강능초처럼 활을 빼앗았다.
머리 위에서 쏟아지던 화살이 멈추자, 아래에 있던 하오문도들이 함성을 내지르며 다시 진격한다.
“이런, 썅!”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독사검이 욕설을 내뱉었다.
독사검은 그동안 이 전술로 무패를 자랑했다.
원래 하오문에서 전술을 아는 자는 적다.
지략은커녕 문맹이 수두룩하다.
주먹만 조금 쓸 수 있는 자들에 불과한 잡배가 낭인이나 병사처럼 참전한 경험이 있을 리 만무했다.
흑도의 싸움이란 게 원래 대부분 수로 해결하거나, 급습을 하거나, 인질이나 독으로 해결하는 법이다.
사실 내빼지 않고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 자체가 신기하다.
대부분 질 것 같으면 꽁지 빠지게 도망친다.
독사검은 그걸 공포로 통제하고, 그럭저럭 쓸 수 있는 머리로 전략을 사용해 살아남았다.
하오문에게 조언을 줄 만한 책사라면 애초에 이런 밑바닥에 있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처음으로 무너졌다.
인독종은 독사검처럼 지략을 쓸 수 있는 무인이었다.
“흐, 날 열 받게 만들어?”
독사점이 입꼬리를 비틀어 웃었다.
그러나 그 눈은 웃지 않고 분노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창수! 놈들이 골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도록 해라! 나머지는 위를 조심하면서 습격에 대비한다!”
“혀, 형님! 부상자는 어떻게 할까요?”
“지금 그걸 말이라고 물어?”
독사검의 눈이 한충 더 살벌해졌다.
“움직일 수 없는 거 아니면 나가서 싸워. 도망치는 새끼들은 전부 내 손으로 목을 쳐 주마.”
강능초도 보통이 아니었지만, 독사검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무패를 자랑하던 단순한 전술이 무너졌지만, 당황하지 않고 지휘에 힘썼다.
특히나 창수를 이용하는 것이 빛을 발했다.
골목이 워낙 비좁고 굽이졌기에 공격하는 입장에선 한두 명씩 줄을 서서 전진할 수밖에 없었다.
한데 입구 부근에서 기다란 창을 이용해 찔러 대니 강능초 측은 애를 먹었다.
강농초도 그걸 파악하고 지붕 위로 수하를 보냈지만, 독사검은 검이나 칼을 든 수하들로 대응했다.
한 치의 앞도 볼 수 없는 치열한 공방이었다.
* * *
시커먼 밤하늘 위로 비둘기가 날아오른다.
새하얗던 깃털도 밤에 녹아들었다.
비둘기는 몸을 숨긴 인간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정주의 밤거리를 지나 화려한 전각에 들어섰다.
“호호호.”
퇴폐적인 분위기 를 풍기는 미부인이 소리 높여 웃었다.
그 손에는 전서구가 전해 준 종이가 잡혀 있다.
정주의 밤거리 중, 남쪽을 지배하는 음살녀 의 눈이 초승달처럼 휜다.
“인독종이 독사검을 쳐? 안 그래도 예전부터 그 썩을 놈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잘됐구나! 호호호!”
음살녀는 색공을 익혀 남자의 정기를 빼앗아 내공을 쌓고 아름다움을 유지한다.
게다가 주안술까지 수련해 외견은 서른을 막 넘은 것처럼 보이나 실은 육십에 가까운 할머니였다.
그러나 그 사실을 입으로 함부로 놀렸다간 죽는 것보다 더한 고통을 받으니, 다들 말로 꺼내지 않았다.
다만 예외적인 몇 사람이 있었는데 삼 인 강자인 비소돈과 독사검이었다.
비소돈은 할머니에게 성욕을 느낀다는 것에 거부감이 들어 음살녀를 피했고, 독사검은 대놓고 멸시했다.
“내 손으로 직접 찢어 죽이고 싶지만……”
하오문주가 다툼을 금해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가능했다면 진작 손을 썼을 것이다.
불행 중 다행으론 그 꼴 보기 싫은 자를 돕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것이다.
하오문주는 수족들 외의 싸움에는 관심이 없다.
만약 독사검이 이대로 패배해 약해진다면 거리낌 없이 버린 다음 또 다른 인재를 찾아 수하로 삼을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독사점은 그동안 무수한 도전을 받았으나, 무패를 자랑하며 지금의 자리를 지키고 세를 키워 왔다.
하오문의 온갖 경험을 산전수전 겪고 무공까지 상당한 독사검이 인독종에게 지는 건 상상하기 어렵다.
음살녀는 속으로 아쉬워하면서, 무음사자에게 기대하며 독사검에게 큰 피해라도 입히기를 기도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