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六章상천검접(上天劍接) (79/254)

第六章상천검접(上天劍接)

“하, 할아버님!”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제갈상이 나와 날뛰는 조부를 뜯어말렸다.

“놔둬라. 아무래도 목을 좀 졸라야겠다.”

황견이 제갈상을 보고 고개를 좌우로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외의 무림맹 장로들 반응도 비슷했다.

다들 주서천이 한 말에 어이없거나 불쾌해하는 모습이었다.

“매화정검 그대의 공을 생각해서 참고 있으나, 더 이상 저희를 능멸하려 하지 마십시오.”

경인사태가 엄중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아, 어쩌지.’

한편, 곤란한 건 주서천도 마찬가지였다.

혈근경이 또다시 암천회로 돌아가지 않도록 소각을 택했다.

그러나 뒷일을 생각 못 한 건 아니었다.

숙원을 해소할 기회를 잃은 소림사의 반응도 당연히 예상했고, 어떻게 대처할지도 생각해 두었다.

북두 소림이 아닌가.

정파 무림 최고의 전력인데 추후의 일을 생각하면 사이가 나빠져선 아니 됐다.

문제는 그 해결 방안을 이곳에서 함부로 공개할 수 없었다.

“조용.”

어떻게 설득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주변을 정리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야말로 위압 그 자체였다.

얼굴을 붉히며 죽일 듯이 외치는 제갈중호도, 서로 수군거리던 장로들도 모든 걸 멈췄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간 걸 보면 다른 세상으로 이동한 기분이었다.

“화산파 사대제자, 주서천.”

“예, 무림맹주님.”

주서천은 부복한 채로 답했다.

“고개를 들고 내 눈을 보거라.”

그 말대로 하자 보인 건 남궁위무의 눈이었다.

‘검성, 남궁위무……’

어떠한 자물쇠건 풀 수 있다는 열쇠와도 같았다.

그 눈을 보자마자 벌거벗은 느낌이 들었다.

‘상천십좌……’

오직 열 명밖에 없는 절대자. 그 절대자와 정면으로 마주 보는 건 난생처음이었다.

눈을 마주한 순간부터 변화가 일어났다.

사람이 사라지고, 눈앞에 있던 책상과 의자도 없어졌다.

땅도 갑자기 꺼지듯 사라진다.

다소 차갑게 느껴지던 약간의 바람도 멈췄고, 기척도 없어졌다.

그 대신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이 나타났다.

창궁이었다.

“대처 방안이 있는가?”

창궁 위로 목소리가 울린다.

어디에서 들려오는 건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목소리의 주인은 틀림없이 검성이었다.

목소리는 광활하게 울려 퍼지면서 차근차근 거리를 좁혀와 어떠한 것보다 묵직하게 짓눌러 온다.

결려 오던 어깨는 이윽고 몸 전체로 퍼지다가 가슴속에 숨어 있는 혼까지 파고들어 압박했다.

주서천은 그 압박을 거부하지 않았다.

두려워하지 않았다.

피하지 않았다.

반발하지 않았다.

눈앞에 무엇이 있건 간에 상관하지 않았다.

그저 정면을 주시하면서 들려온 목소리에 답했다.

“예. 확실히 있습니다.”

말을 끝낸 순간,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무엇을 경험한 것인지도 몰랐다.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난 건지도 몰랐다.

다만 방금 전에 보고 있었던 광경이 되돌아왔다.

“그럼 됐네.”

남궁위무가 굳은 표정을 풀고 인자하게 웃었다.

“하?”

“오늘 회의는 내일로 미루겠소. 그리고 괜찮다면 이 아이와 산책 좀 하려 하는데, 괜찮겠소?”

그 물음에 좌중은 침묵에 잠겼다.

그 누구도 뭐라 하지 못했다.

아니, 할 말을 잃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했다.

그 고요를 깬 것은 화를 참지 못한 제갈중호였다.

“지랄!”

* * *

수뇌부가 골머리를 썩이던 회의는 결국 이렇다 할 결과를 내지 못하고 끝났다.

아니, 끝난 게 아니었다.

정확히 말해선 검성의 뜬구름 잡는 소리로 연기됐다는 것이 맞았다.

“그 친구가 원래 젊었을 때는 그러지 않았는데, 어째서인지 나이가 들수록 참을성이 없어지더구나.”

남궁위무가 뒷짐을 쥔 채 쓴웃음을 흘렸다.

“아닙니다. 제가 말하고도 어이가 없었는걸요.”

주서천이 멋쩍은 듯이 웃으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그나저나 여기는 어디지?’

남궁위무가 산책을 하자면서 데려왔다.

무림맹 본관에서 북쪽으로 반 시진 정도를 걷자, 남만의 밀림과 같은 죽림(竹林)이 나타났다.

“무림맹주란 게 되어 보니 참 피곤하더구나. 어딜 가도 시선 탓에 제대로 쉴 수 없는 게 힘들더군.”

“혹시, 기문진법으로 가려진 은신처입니까?”

“허어. 무공까지 뛰어나더니 지성도 보통이 아니구나. 그야말로 정파무림의 복이 따로 없도다.”

남궁위무는 감탄사와 동시 기분 좋은 듯이 웃었다.

그리고 노인과 청년은 다시 말없이 걸었다.

반 시진 정도 걸었을까, 끝이 보이지 않던 죽림이 잠시 끊어지면서 한적한 공간이 나왔다.

주변은 여전히 대나무로 둘러싸여 있었으나, 그래도 머리 위가 뚫려있어 햇볕이 내려왔다.

“이 근처에는 이 늙은이 빼곤 아무도 없으니 걱정 말거라. 이제 좀 말해 줄 수 있겠느냐?”

남궁위무가 몸을 돌려 상냥한 목소리로 물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바로 말씀드리겠……”

“아, 일단 듣는 것보다 보는 것부터 하고!”

보는 것부터? 라고, 묻는 순간 검이 날아왔다.

언제, 어떻게 검을 뽑았는지도 몰랐다.

그런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반응했다.

뇌에서 몸으로 명령을 내리고 내공이 단전에서 용솟음쳐 순환하는 시간은 찰나에 불과했다.

주서천 일생에서도 이렇게 반응했던 적은 없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모든 걸 쥐어짜듯이 내공을 끌어 올려서 검강을 형성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째애애앵!

검신이 부딪친 순간, 월오삼검인 태아가 이제껏 없었던 떨림을 보인다.

고통을 느끼는 것처럼 울어 댔다.

그 떨림은 검신에서 손가락으로 전해져 빙판 위를 미끄러지듯이 지나가 두뇌를 두드렸다.

충격이었다.

“ ……”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비명은 없었다.

첫 번째 생각은 놀라움.

두 번째 생각은 파악에 나선다.

세 번째 생각은 대경이었다.

“좋은 검이로군.”

남궁위무가 태아의 검신을 슥 훑어보곤 웃었다.

첫 대면 때부터 방금 전까지 보여줬던 인자한 웃음.

그러나 주서천은 그 웃음에 압도됐다.

노인이 쥔 검에는 어떠한 형체도 보이지 않았다.

원래라면 검강을 버티지 못하고 절단됐어야 한다.

의문이 추측을 냈고, 추측은 확신이 된다.

무형검강!

입이 절로 벌어지며 경악 어린 비명이 터져 나왔다.

드디어 무의식의 경계가 무너진다.

생각이 몸을 따라가지 못했으나, 이젠 생각이 몸을 따라잡았다.

“그것에 놀란 게냐?”

남궁위무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뭘 기대하신 겁니까!”

주서천이 황급히 물러나면서 외쳤다.

온몸에선 땀이 비 오듯이 흘러내렸다.

숨기고 있던 경지.

“어차피 맹주님께 숨길 생각도 없었습니다.”

검마도 한눈에 보고 알아봤는데, 아직은 그보다 고수인 상천십좌 검성이 모를 리 없다.

무림맹주와 대면한다고 들었을 때 분명 눈치챌 거라 생각했다.

“널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아느냐. 끌끌.”

남궁위무가 장난스러운 웃음을 흘리면서 현란한 발걸음을 밟았다.

‘무한보(無限步)!’

주서천은 남궁위무의 발걸음을 보는 걸 포기했다.

보통 적의 보법을 보면 대충 어떠한 움직임을 보이는지 추측할 수 있지만, 무한보는 예외였다.

무한보는 이 보통의 방식을 이용했다.

적의 눈길을 끌어 발걸음의 탐색이 끝날 때쯤 전혀 다른 방향과 보폭으로 변경해 변화한다.

한 번이 아니라 이걸 몇 번이나 반복하는 탓에 한계가 없다는 이름이 붙었다.

“응? 무한보에 어찌 대응해야 하는지 알고 있군.”

남궁위무가 주서천의 눈길을 보고 신기한 듯이 쳐다봤다.

그 와중에도 움직임은 멈추지 않는다.

소맷자락이 펄럭이면서 남궁위무의 손이 바람을 가르면서 다가온다.

손은 무시할 수 없는 위험이었다.

검이 아님에도 머리카락이 쭈뻣 섰다.

피부 위로도 닭살이 우수수 돋으면서 경고했다.

주서천은 급박하게 움직이면서 보법을 최대로 펼쳐 손목에 닿으려던 노인의 손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호오!”

남궁위무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파바밧!

‘후우.’

주서천이 멈추려다가 섬뜩함에 재차 움직였다.

뒷걸음질 치니 그가 있던 자리에 손이 다시 당도했다.

남궁위무는 목표를 놓쳐 버린 손을 무한보와 연결하여 물 흐르듯이 잇따라 뻗었다.

방향이나 힘의 세기, 그 외에도 공력의 운용까지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대연십구식(大衍十九式)을 십일식까지 피해?”

남궁위무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허허! 취미 삼아 배운 것이라고, 내 그동안 게으름을 피웠구나!”

‘취미?’

욕이 입 안까지 감돌았다가 들어갔다.

금나수(摘韋手)를 피하려고 유례없던 전력까지 끌어내면서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게 취미 수준이라고 하니 욕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검성이라면서 금나수로 화경을 밀어붙여?’

세상의 불합리에 분노가 나올 뻔했다.

“어허, 그래도 금나수에는 내 일생의 무학이 들어 있는 것이니 그리 억울해하지는 말거라.”

남궁위무가 손을 거두면서 검초를 펼쳤다.

형태 자체는 남궁재영에게서도 보았던 창궁무애검법이었지만, 어째서인지 초식 하나하나가 절초였다.

검을 쭉 뻗어 찌르기를 보여 주면 정말로 하늘에 구멍을 뚫는 듯했고, 베려 하면 하늘을 쪼개는 듯했다.

속도는 한 줄기의 벼락과도 같았으며, 검에 실린 힘은 자연재해를 연상시켰다.

그 검에 대항하기 위해서 전력을 쏟아 붓는다.

정신을 차리고 있을 때는 이십사수매화검법을 극성으로 펼쳐서 어떻게든 받아치는 중이었다.

비밀을 위해서 십사수매화검법을 펼쳐야 한다는 등의 여유를 부릴 때가 아니었다.

괜히 힘을 아끼다가 검성이 펼치는 검초에 맞아 몸이 산산조각 나는 모습이 눈에 훤히 보였다.

여태껏 길어 봤자 십사초나 십육초 정도밖에 보여 주지 않았으나, 지금 처음으로 극성을 보였다.

이십사수매화검법은 본래 변검에 중점을 두나 십오초식 낙매분분(落梅粉粉)부터는 성질이 달라진다.

“ 호오?”

남궁위무도 그것을 알아봤다.

최초로 검 끝이 흔들리더니만 이윽고 속도가 붙으면서 여러 잔상들을 남겨 환검(幻劍)으로 바꿨다.

낙매성우(落梅成雨)에서 수십여 개로 나누어지고 매영조하(梅影造河)에서 절정에 올라 수를 늘린다.

이윽고 무수한 초식이 이어지면서 넓게 퍼진 복수의 검화(劍花)가 한꺼번에 급소를 노리면서 쇄도했다.

어찌 보면 변화의 극(極).

“환검과 산검(散劍)에서 희미하게 맡아지는 매화 향, 이십사수매화검법인가. 숨기는 것도 참 많구나.”

한 초식의 접근도 불허한 검성이 희미하게 웃었다.

무림맹주가 매화검수에 대해 모를 리 없었다.

“졌습니다.”

무언가 시험하려는 의도를 눈치채기도 했지만, 방금 전에 검강을 유지한 채로 절기를 펼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공이 아직 남아 있으나 결과가 눈에 훤하니 굳이 계속 이어갈 필요가 없었다.

보여 줄 것은 다 보여 주었다고 판단한 주서천은 배 째라는 듯이 바닥에 대자로 뻗어서 숨을 골랐다.

현생일대의 패배. 그것도 완패(完敗).

그러나 어떠한 충격도 없다.

전생에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경험했으니까.

“벌써?”

남궁위무가 누워 있는 주서천을 내려다봤다.

아쉬움 반, 불만 반이 뒤섞인 눈이다.

“영감님 손자들 중에서 아무나 데려와서 삼 초식 이상 버티라 해 보십시오. 만약 버티면 손에 장을 지지겠습니다.”

검을 쥔 사람으로서 검성을 존경했었으나, 그 존경심도 방금 전의 비무로 눈곱만큼만 남기고 사라졌다.

아직까지도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놀리려는 남궁위무의 눈길을 보니 성질이 제갈중호만큼 안 좋다.

“끌끌끌 처음 봤을 때도 믿기지 않았지만, 검을 맞대 보았는데도 여전히 믿기지 않도다. 약관도 되지 않았는데 화경에 오르다니, 정신 나간 재능이로구나.”

상천십좌도 열여덟 살에 화경에 오르지 못했다.

아니, 고금 역사를 뒤져 봐도 그런 무인은 없었다.

“괜찮다면 내 손녀랑 선을 좀 보겠느냐?”

“수작 부리지 마세요.”

“끄응!”

남궁위무는 주서천과 대화를 끝냈다.

검으로 맞대어 무위를 보는 겸 품성까지 확인한 뒤에야 소림사의 대안 방안에 대해서 물어봤다.

이에 주서천은 자신이 생각한 바를 있는 그대로 답했고, 남궁위무는 왜 말할 수 없었는지 이해했다.

날이 밝자마자 남궁위무는 제갈중호만 따로 불러 사정을 설명했다.

“반야신공이라고?”

제갈중호가 화들짝 놀라 목소리를 높였다가, 헙! 하고 입을 다물었다.

이내 이 주변이 몇몇만 제외하고 접근할 수 없는 기문진법 속의 은신처라는 걸 깨닫고 안도했다.

“과연, 이제야 모든 것이 이해가 가는군.”

제갈중호는 주서천을 노려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눈길은 어제와 다르게 한층 부드러워졌다.

수백 년에 소실되었다던 소림사의 절세무공!

아직까지 해석하지 못한 역근경 수준이 아닌가.

그 파장은 혈근경에 비교도 되지 못할 정도다.

혈근경은 마공인지라 연공하게 되면 쉽게 주화입마에 걸리거나 혹은 마성에 물들어 자신을 잃게 된다.

하지만 반야신공은 다르다.

무공이 난해하다 보니 설사 배우는 것이 어려워도 제정신을 유지한다.

설사 습득하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없다.

반야신공은 금액으로 환산할.수 없으며, 소림사의 평생의 은인이 될 수 있다.

만약 이게 나온다면 정파, 사파, 마교는 물론이고 낭인이나 은거기인 등이나 새외까지 부를지 모른다.

내부를 순식간에 무너뜨릴 수 있는절세신공.

그게 바로 소림사의 반야신공이었다.

“도대체 이걸 어디에서 얻었느냐?”

제갈중호가 출처부터 물었다.

분노는 눈 녹듯이 사라졌으나, 그 대신에 의심에 가까운 의문이 떠올랐다.

“강호 좀 떠돌다가 독혈곡에서 주웠습니다.”

“독혈곡? 애뇌산?”

“예. 그게 어떻게 된 것이냐면……”

얼굴에 철판을 깔고 뻔뻔하게 거짓말을 고했다.

흔들림 하나 없는 목소리, 경련 하나 없는 표정, 정직하게 빛나는 눈동자는 숙련된 사기꾼 그 자체였다.

독혈곡에 방문한 적이 있으니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었다.

원래 진실이 섞여야 더 그럴싸한 법이다.

미개척지이니 그동안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던 연유가 되고 입곡했던 목격자도 있었다.

점찰칠공자, 단하성.

나중에 시간이 나면 그에 대해서도 조사해 보자고 마음먹었다.

참고로 소환단 네 알도 있지만, 굳이 말하지 않았다.

괜히 몇 알 먹었냐고 추궁할 것 같아서다.

네 알을 전부 먹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사부님께서 돌려주라 했으니 그럴 수 없었다.

“과연, 천독불침을 이용한 건가.”

“알고 계신 겁니까?”

“소문은 나지 않았으나 목격자가 한둘이 아니니 조금만 조사해도 다 나오지.”

제갈중호가 별거 아니라는 듯 답했다.

“생각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반대였군. 흠흠. 죽여 버리겠다는 말은 취소하마.”

“아닙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니 화 좀 참고 사십시오. 그러다 돌아가십니다.”

“아주 나보고 죽으라고 말하지 그러냐? 흥!”

제갈중호에게 천명이 있으나, 그래도 되도록 장수하여 제갈상이나 제갈수란을 가르쳐 줬으면 했다.

그 외에도 도움이 될 사람들이 많다면야 암천회에 대비하는 입장에서 환영이었다.

“좋아, 장로들은 내게 맡겨라. 어떻게든 해 보마.”

믿겠습니다.”

“아, 그리고……”

“그리고?”

“크흠! 어흐흠!”

제갈중호가 일부러 헛기침을 하면서 뜸을 들였다.

무언가 눈치를 주었으나, 주서천은 시치미를 쳤다.

“고얀 놈.”

제갈중호가 발을 동동 구르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승계, 내 멍청한 손주 놈은 잘 지내는고?”

“잘 지냅니다.”

주서천이 곧장 답했다.

“제발 그놈에게 이제 좀 정신 차리고 기문진법이라도 공부하라고 전해라.”

제갈중호는 무림맹 군사와 후계를 키우는 데 바빴다.

제갈승계에게 신경을 쓰고 싶어도 쓸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그 황소 힘줄보다 질긴 고집에 포기했었다.

“전할 말은 더 없으십니까?”

“없다!”

제갈중호가 볼일 다 봤다는 듯 등을 돌렸다.

“서천아.”

대화가 끝나자 남궁위무가 불렀다.

“누가 서천입니까?”

“어흠. 원래 검을 맞대면 친한 사이가 되는 것이야.”

남궁위무가 짓궂게 웃었다.

“아, 그리고 물어볼 게 또 있단다.”

‘이십사수매화검법에 대해서인가?’

그 외에 짚이는 것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가능성이 낮았다.

“정말로 데릴사위로 들어올 생각이 없는 게냐? 지금 들어와야 나한테 검도 좀 배우고 그런다.”

남궁위무는 주서천이 탐났다.

매화정검이라는 별호는 아무것도 아니다.

강호에선 소문이 과장됐다는 등 말하지만 그 반대였다.

무공은 두말할 것도 없고, 머리를 굴리는 데도 부족하지 않다.

성품 역시 더할 나위 없었다.

그야말로 최고의 일등 신랑감!

검을 맞대자마자 머릿속에서 손녀들 중 누구를 보내 미인계로 잡아올까 고민까지 했다.

‘다행히 이 녀석의 진가를 알아보는 사람이 아직 나밖에 없다. 누가 알아보기 전에 얼른 채가야 해.’

친구인 제갈중호에게도 주서천의 무위를 비밀로 했다.

제갈중호가 눈 돌아가서 손녀딸을 전부 데려오는 등 온갖 지혜를 짜서 빼앗으려 들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영감님, 저 도사입니다.”

“도사가 원래 오라비가 되고 가가도 되는 거 아니냐.”

“아닌데요.”

주서천이 정색했다.

“네가 매화검수에 들어가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괜히 재수 없게 중직에 앉기 전에 얼른 혼례부터 올리자. 약혼이라도 상관없다.”

중과 달리 도사에게는 혼례의 자유가 있다.

다만 중직이거나, 예정된 후보라면 불가능했다.

“무한보가 변검에 상성이 좋다는 거 알고 있지? 지금 받아들이면 내 월권으로 창궁무애검법까지 가르쳐주마. 어때? 솔직히 끌리지?”

적통에게만 허락되는 창궁무애검법이 팔리려 한다.

“아, 혹시 연상이 취향이냐? 생각해 보니 네 나이가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니까 세가 사람 중에서……”

“아 좀!”

* * *

남궁위무와 제갈중호는 장로들을 설득하기로 했다.

전부 거짓으로 할 수는 없어 약간의 진실을 섞었다.

물론 이마저도 새어 나가지 않도록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무림맹주와 군사가 수뇌부를 설득할 동안, 주서천은 무림맹에서 머물다가 두 장의 서신을 받았다.

발신지는 둘 다 화산파였다.

“수선행을 중지하고 귀환할 것……”

서신에는 화산파의 이름을 드높인 것에 대한 칭찬이 있었지만, 사정을 자세히 듣고 싶다고 적혀 있었다.

다른 서신은 유정목에게서 온 것이었는데, 주서천의 안부를 묻는 것과 큰일이 나서 귀환하라는 것이 아니니 걱정하지 말라는 글이었다.

“훌쩍.”

이렇게 배려해 주시고 걱정해주시니 감동이었다.

주변에 사람만 없었으면 오열하듯이 울었다.

“슬슬 그 미친 여자와 헤어질 때도 됐군.”

당혜와 상의하기 위해서 당가의 객실을 찾았다.

“아가씨께서는 여기에 안 계선다.”

원대식이 어색한 어조로 답했다.

“예전이었더라면 어떤 목적이냐면서 집요하게 물었을 텐데, 내가 무공 좀 한가락 하니 태도가 바뀌는구나. 그 소인배적인 태도에 자괴감 안 드니?”

“네 이놈!”

그래도 무림맹이란 걸 아는지 목소리를 낮춰 화냈다.

“괜히 소란을 일으켰다간 아가씨가 찾아와서 네놈들이 먹는 밥에 독을 타겠지.”

 “……”

원대식이 침묵했다.

“정말……?”

농담 삼아 던졌는데 진실이었던 모양새였다.

“아, 아니다! 아가씨는 그런 분이 아니시다!”

“목소리가 떨리는군. 어쩐지 너희가 나랑 말싸움한 이후로는 변소에 자주 가더니만……”

알고 싶지 않은 진실을 알게 됐다.

당혜의 호위 무사들은 하나같이 수준급의 독공을 지녔는데, 혹시 독봉의 정기적인 독 탓이 아닐까 싶었다.

“어쨌거나, 여기 없으면 어디 갔는데?”

“음.”

원대식이 입을 다물었다.

그 외의 호위 무사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다.

‘뭐지?’

그러고 보니 무림맹에 온 이후로 당혜가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갑자기 궁금증이 솟았다.

“어차피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어디에 있는지 금방 나온다.”

“……끄응. 소가주님을 뵈러 갔다.”

“소가주라면……”

생각지도 못한 이름에 눈이 커졌다.

독룡(毒龍)이 무림맹에 있었어?

사천당가는 한 세대에 용과 봉을 동시에 배출했다.

흔히 있는 일은 아니지만,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독룡.’

소가주인 독룡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전생의 기억에 따르면 평범하게 활동하다가 독왕이 사망하여 가주직을 승계한 정도였다.

현생에서도 독룡은 활동이 적다보니 자연스레 주목을 받지 않았다.

독공이 고강하다는 정도만 알았다.

“지금은 만나러 가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원대식이 경고하듯이 말했다.

웃음기 하나 없었다.

‘흠.’

괜히 찾아가서 안 좋은 기분을 건드리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호기심이 동했다.

‘조금만 보고 올까.’

본래의 역사에서 당가의 남매에 대한 특이한 일화는 없었지만, 그래도 이런 반응이니 신경 쓰였다.

“대답해 줘서 고맙다.”

바깥으로 나와 당혜를 담당한 하녀를 찾아 물었다.

“당 소저가 어디로 향했는지 보았니?”

“네, 네!”

하녀가 얼굴을 살짝 붉히면서 답해줬다.

주서천이 감사 인사를 하고 떠나자, 주변에 있던 하녀들이 몰려와 부럽다면서 떠들어 댔다.

“방금 전 공자님이 매화정검 대협이시지?”

“너, 넌 좋겠다!”

한때 봉추라며 폄하하던 주서천은 없었다.

대신에 칠검전쟁을 정리한, 무림의 안위를 위해 혈근경을 소각한 매화정검 주서천이 있었다.

출신 또한 명문지파인 데다가 외모 또한 환골탈태 이후 상당히 준수해졌으니 당연히 인기도 따랐다.

여하튼, 주변인들의 목격담을 따라 당혜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워낙 유명하다 보니 목격자가 많았다.

다만 가면 갈수록 인기척이 사라지면서 사람들도 점차 안 보이게 됐다.

일각 정도 걷자 창문이 달려 있지 않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의 장원이 멀리 보였다.

“과연, 독원(毒院)인가.”

안내판을 읽어 보니 왜 사람들이 없는지 이해됐다.

독원에서는 독을 연구하거나 해독약을 만든다.

그 외에도 독사(毒死)한 시체를 부검하기도 했다.

그렇다 보니 주변에 독기가 흘러나올 수도 있으니 함부로 접근할 수가 없었다.

‘……?’

앞으로 걸으려다가 멈췄다.

‘뭐하는 거지?’

문 앞에 서서 정문을 바라보는 당혜가 보였다.

볼일이 있다면 들어가면 될 것을, 이상하게도 앞에 서서 석상처럼 미동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음.”

다가가서 뭐하냐고 말을 걸어볼까 싶었지만, 관뒀다.

멀리서 보는데도 뒷모습의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어떠한 이유로 이곳에 말없이 혼자 와서 저러고 있는 것일까.

여러 의문이 꼬리를 물고 늘어났지만, 시원스러운 답변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아니 , 돌아가도록 하자.’

괜히 무리해 관계가 틀어질지도 모르니, 나중을 기약하면서 돌아가기로 했다.

남궁위무와 제갈중호가 힘을 쓴 덕분에 장로들을 설득할 수 있었다.

완전한 설득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다들 탐탁지 않아 하면서 불문에 부치기로 했다.

제일 크게 반발했었던 제갈중호가 갑자기 주서천 편을 들어준 게 의문이었으나 나중에 듣기로 했다.

남궁위무는 주서천을 맹에 묶어 두어 어떻게든 회유하려 했다.

손녀딸과 엮어 보려는 건 진심이었다.

그러나 주서천이 화산파에서 보내온 서신을 내밀면서 귀환해야 한다 하자, 입맛을 다시면서 아쉬워했다.

“그럼 나도 이만 돌아가 볼게.”

당혜도 사천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마침 당가에서도 칠검전쟁의 사정에 대해서는 궁금한 모양이었다.

“그거 잊지 말고.”

주서천이 당혜의 손가락을 가리켰다.

기사분반이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였다.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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