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五章새옹지마(塞翁之馬) (78/254)

第五章새옹지마(塞翁之馬)

“천권”

“예.”

천권의 몸에서 땀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칠검전쟁에 투입됐던 간자는 어떤 자들이지?”

“곤륜파, 태산파, 숭산파, 항산파. 그리고 무림맹과 사도천에서 각각 신뢰받은 무인들입니다. 무림맹 이십, 사도천 삼십이. 도합 오십이 명 입니다.”

“그래. 그러면 그들이 어떻게 됐느냐?”

“……신원을 알 수 없는 고수에 의하며 전부 사망했습니 다.”

“그 후 어떤 대처를 했는가.”

“천기에게 명령을 받아 조사를 위해 고원으로 투입됐습니다.”

“어떻게 됐는지 말해 보거라.”

“……칠검전쟁 이틀 전에 도착해 조사해 봤으나 간자들의 흔적은 찾지 못하였고, 전쟁도 끝났습니다.”

“하하. 그 말대로다.”

암천회주가 턱을 괸 채로 무감정하게 웃었다.

그 웃음소리에 천권이 몸을 움찔 떨었다.

“천권 그대가 만약 혈근경이 불타는 걸 막고 탈취했다면 모를까, 결국 아무것도 못 한 거군.”

“죽여 주십시오!”

쿵!

천권의 이마가 지면에 부딪쳤다.

“아니.”

암천회주가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 오로지 눈빛만 보였다.

“천권 그대가 할 일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특히나 여러 곳을 돌아다니는 몸이 아닌가. 우수한 인재를 잃게 되면 앞으로의 일이 성가실 테니, 그럴 수 없다.”

“아닙니다. 부디 무능한……”

“내 그래서 그대의 친척을 잡아 고문한 뒤 죽였느니라.”

“……!”

바닥을 내려다보는 천권의 동공이 떨렸다.

“마음에 안 드는가?”

“아니옵니다! 회주님의 넓은 아량에 깊이 감복하여 말이 안 나와서 그렇습니다!”

“다행이군.”

암천회주가 어둠 속에서 웃었다.

사람이라기보다는 악마에 가까운 미소였다.

“천기.”

“예!”

천권 옆에 부복하고 있던 천기가 곧장 답했다.

“팔은 어떻느냐.”

천기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지가 멀쩡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왼팔을 잃어 외팔이가 됐다.

“회주님께서 깔끔하게 베어 주신 덕에, 출혈조차 나지 않아 회복이라고 할 것도 없었습니다. 지금은 고통조차 느껴지지 않으니, 이 천기. 회주님의 배려에 감복, 또 감복하였나이다!”

흉마의 무덤을 책임졌던 건 천기다.

그리고 흉마의 무덤이 수몰되자 대신 혈근경을 내세웠다.

그런데 그 혈근경도 불타 없어지고, 야심 차게 준비했던 전쟁은 결국 하루 만에 끝나 없어졌다.

책임을 져야 했다.

“그대는 어차피 본 회의 두뇌가 아닌가. 그래서 고심 끝에 팔은 필요없을 것 같아 잘랐도다.”

“저 따위를 위해서 회주님께서 생각을 해 주시다니, 정말로 감사할 따름입니다!”

미쳤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나, 천기는 진심으로 암천회주의 아량에 감사를 느끼고 있었다.

실수를 팔 하나로 만회할 수 있었으니까.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서, 주서천에 대해서 어찌 생각하는지 의견을 말해 보아라.”

“실력이 없는 건 아니지만, 운이 크게 적용됐다고 생각됩니다.”

“운?”

“예. 당시 고원에서 일어났던 싸움 중, 산화일장은 마교도 대부분을 혼자서 상대하느라 지쳤습니다. 무엇보다 주서천이 어리다고 상당히 얕보았고, 여러 복합적인 요건으로 그리 쉽게 당한 듯합니다.”

“그리고?”

“그래도 천하백대고수를 이기는 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운이 좋다 해도 실력 또한 있어야 하지요. 결코 예사로운 놈은 아니니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도천에는 궁귀검수, 무림맹에는 매화정검인가. 무림이 난세라는 걸 느끼기 시작한 건지, 곳곳에서 인재들이 튀어나오는구나.”

암천회는 새싹이라도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그게 구파일방처럼 명문지파일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척살 순위를 이급으로 올려 감시해라. 기회가 있다면 얼마든지 죽이도록.”

“유치한 정의심으로 본 회의 대계를 방해한 놈입니다. 결코 놓치지 않고 척살하도록 하겠습니다.”

* * *

“염화살마, 그 마두를 죽이자마자 소식을 들었을 때는 솔직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이해 못 했네.”

상명진인이 수염을 매만지면서 소감을 내뱉었다.

“아무리 체력이나 내공을 소진했다고 한들, 산화일장을 정면 승부로 이기다니. 정말로 대단하군.”

“아닙니다. 요행이 있어서 가능했던 일입니다.”

주서천이 허리를 숙인 채로 공손하게 답했다.

“요행 또한 실력이지. 천하백대고수에겐 그런 것만으로는 불가능하네. 자랑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을 텐데, 정말로 겸손한 태도로군. 화산파의 미래가 밝아.”

곤륜파의 장문인조차도 주서천이 설마 이런 활약을 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내 마음 같아선 자네와 좀 더 대화를 나누고 싶으나, 아무래도 그럴 입장이 아니라서 말일세.”

장문인이다 보니 오랫동안 문파를 비우고 있을 수 없었다.

흉마의 무덤 조사로 시간이 상당히 흘렀다.

사도천과 마교가 철수하고, 칠검전쟁이 공식적으로 끝나자 상명진인은 곧장 곤륜파로 돌아갔다.

칠검전쟁 대표 보고자는 남궁재영이 맡았다.

“무림맹에서 명령이 내려왔다.”

남궁재영이 주서천과 당혜를 불렀다.

“합비, 무림맹의 본부로 귀환령이 떨어졌다. 나는 물론이고 두 사람도 마찬가지다.”

“설명을 위해서인가요?”

당혜가 예상했다는 듯이 물었다.

“그래. 상명진인께서도, 그리고 나도 혈근경 앞에서 벌어진 일은 자세히 모르니까.”

“그리하도록 하죠.”

참전하기 전부터 예상한 일이었다.

군말하지 않고 따라가기로 했다.

“주 대장. 우린 어떻게 해야 하오?”

사천당가의 무사들이야 묻지 않아도 당혜를 따라갈 예정이었으나, 금의검문은 좀 달랐다.

“돌아가서 상단주에게 전쟁에 대해 전부 설명해 주도록.”

“알겠소. 그럼 나중에 뵙겠소이다.”

금의검문은 먼저 출발하여 산동으로 향했고, 나머지 일행은 남궁재영과 동행해 무림맹으로 떠났다.

산서에서 합비까지 그다지 멀지는 않지만, 칠검전쟁으로 지쳐 있어 두다리로 걷기에는 무리였다.

그래서 여행 도중 말을 구해 달렸다.

그렇다고 급박한 상황 정도는 아니었는지라 서두르지는 않았다.

“매화정검의 무공이 사실은 대단하다며?”

“그래. 내 오악검파의 제자들에게 직접 들었네.”

그동안 어딜 가던 그다지 곱지 못한 시선을 받았다.

독봉에게 비겁하게 승리하고 그녀의 치맛자락 안에서 숨어 다닌다는 등 비난만 받았다.

하지만 칠검전쟁에서 활약하고 매화정검이라는 별호가 붙자 그 시선은 전부 바뀌었다.

“그렇다면 독봉과의 대결에서도 정당하게 이긴 것이겠군.”

“암, 당연하고말고.”

“그러고 보니 주 대협은 연화각 출신이 아니었나? 애초에 화산파의 인재만 모이는 곳에 있었는데 형편없다는 것이 좀 이상하지 않나? 난 예상했었지.”

“자네 분명 매화정검이 참전한다는 걸 듣자마자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가 죽고 싶어 환장했다면서 욕하지 않았나?”

“커, 커흠!”

참고로 귀행(歸行)의 구성원은 남궁세가, 사천당가뿐이었다.

칠대 세력에 참전했던 나머지 문파는 전쟁지에 남아서 정리하거나 혹은 곤륜파처럼 본산으로 귀환했다.

“흐흐!”

주서천은 고수다.

청각에 조금만 집중하면 그 목소리가 아무리 작더라도 전부 들을 수 있었다.

당연히 자신에 대한 평도 전부 놓치지 않고 들었다.

고평가이다 보니 입가에 자연스레 웃음이 걸렸다.

아직 영웅이라 불릴 정도는 아니지만, 이 정도도 충분했다.

전생에서조차 이런 평가는 못 들었다.

무엇보다 아직 나이가 어린데도 이렇게나 인정받는 게 더더욱 기분이 좋았다.

“당신, 지금 얼굴 굉장히 기분 나쁜 거 알고 있어? 소름 끼칠 정도라 내 팔에 닭살이 다 돋네.”

당혜가 희희낙락하는 주서천을 보고 혀를 찼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기 마련인데, 하물며 남이 전쟁에서 이름 좀 날렸으니 속이 찢어지겠지. 마음 넓은 대협이 참아야 하지 않겠는가?”

주서천이 웃음을 거두지 않았다.

“정말로 창자가 찢어지는 고통을 알려 줄까?”

‘당분간 이 여자랑 밥은 먹지 말아야겠어!’

원래 밥은 혼자 먹어야 하는 법!

강호 무림 이 무서운 세상 속에서 어찌 누굴 쉽게 믿겠는가.

무림 정파는 속이 검으니 특히 그렇다.

‘나에게 이런 날이 올 줄이야!’

호의 어린 시선이나 혹은 부러움과 질투.

전부 전생에선 경험해 본 적 없었고 특히나 후자의 경우는 본인이 몇 번이나 가졌던 감정이었다.

욕이나 무관심은 전생에서도 받은 적이 있어 아무렇지 않았는데, 이런 종류는 처음이었다.

툭 까놓고 말하면 기분이 좋았다.

가슴 좀 펴고 코도 높이 세우고 다닐 수 있게 됐다.

“무림맹이라…… 반가운 사람을 볼 수 있겠는데.”

“지룡?”

“어떻게 알았지?”

주서천이 깜짝 놀랐다.

“당신에 대해서 조사했을 때, 조금.”

“당가의 원한이란……”

원한을 갚으려고 이리저리 조사한 게 분명했다.

“그러고 보니 너도 무림맹에 도착하면 꽤나 정신없겠네.”

정파 무림 최고의 후기지수 오룡삼봉, 무엇보다 명가의 여식이지 않은가.

교류로 바쁠 것이 분명했다.

당혜는 상당한 독설가이나, 그렇다고 예법을 모르는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상대를 가려서 한다.

실제로 금의검문의 무사들에게도 말을 놓지 않고 경어를 유지했다.

보통 자존심을 건들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봉인을 해제하고 신랄한 독설을 내뱉곤 했다.

“무림맹……”

당혜는 무언가 고민에 빠진 듯 눈을 지그시 감았다.

주서천은 그런.당혜를 보고 걱정했다.

‘무림맹에서 어떻게 해야 내 음식에 창자가 찢어지는 독을 넣을 수 있을까 고민하는 건 아니겠지?’

* * *

합비, 무림맹.

제일 먼저 보인 건 으리으리한 대문이었다.

괜히 무림맹 본부가 아니라는 듯, 그 규모가 웅대했다.

대문뿐만 아니라 옆으로 즐비한 담장도 보통이 아니었다.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길었다.

그리고 담장만큼 길게 이어진 사람들의 행렬이 보였다.

정파 무림의 심장부인 만큼 방문객도 상당했다.

원래라면 이 기나긴 줄에 서서 기다려야 했겠지만, 일행이 일행인지라 그럴 필요가 없었다.

무림맹주의 아들인 남궁패검과 오룡삼봉 중 일봉이 있다.

당연히 앞에 있는 줄을 무시하고 들어갈 수 있었다.

 …… 

주서천은 대문을 보자마자 입을 다물었다.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고, 그저 구경하듯 곳곳을 살펴봤다.

‘전란이 있기 전의 무림맹은 이랬구나 ……’

무림맹이 처음인 건 아니었다.

전생에 몇 번 방문한 적 있었으나 전부 전란의 시대 이후였다.

무림맹을 최초로 방문했을 때도 정사대전이 끝난 이후 잠깐의 평화가 있을 때였다.

기억 속의 무림맹은 이미 정사대전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있는 이후였다.

전란의 막이 내렸을 때 반은 복구되었다곤 했으나, 그 때는 이미 자신이 화산오장로였을 때였다.

화산파의 재건에도 바쁜데 한가하게 무림맹 본부까지 갈 수 있을 리 없었다.

‘평화……’

칠검전쟁이 이리 간단히 끝난 게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원래라면 정사대전으로 이어졌어야 한다.

‘막았다.’

칠검전쟁은 미래를 향한 분기점이었다.

이 분기점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미래가 크게 바뀐다.

정사대전이란 건 무림 역사에서 항상 중요했다.

하지만 칠검전쟁 자체가 하루 만에 끝나 그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

‘이 줄기가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원래의 칠검전쟁만 해도 희생자가 만 명이 넘었어야 한다.

계속되는 조사에 수많은 인원이 투입됐다.

무림맹 사도천, 마교를 합한 수였으니 당연했다.

그런데 죽어야 할 사람들이 살아남았다.

그들은 살아서 미래에 각각 영향을 줄 터.

앞으로 벌어질 일은 이제 예측불허였다.

무림맹에 도착하고 귀빈실을 배정받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방을 방문한 사람은 하인이나 하녀가 아니라, 몇 년 만에 대면하는 사람이었다.

“주 소협. 정말로 오랜만이군.”

훗날 천군사라 불릴 무림맹의 부군사였다.

“정말로 오랜만에 뵙습니다, 부군사님.”

주서천이 놀라워하며 얼른 인사했다.

‘과연 미옥공자! 앞으로 난 무슨 자신감으로 살아야 할까? 내 외모에 대해 회의감이 드는군!’

기억에 의하면 제갈상과는 일곱 살 차이였으니, 지금은 스물하고도 다섯 살이다.

당연히 오랜만에 봤다고 주름이 늘었다거나 할 일은 없었고, 반대로 과거보다 더 대단해졌다.

“둘이 있을 때는 그렇게까지 딱딱하게 할 필요는 없다.”

제갈상이 부드럽게 웃었다.

저 웃음에 도대체 몇 명의 사람들이 반했을지 의문이 들었다.

‘그나저나…… 정말로 알아서 잘 성장했구나.’

미래가 바뀌면서 조심해야 할 사항이 있다.

대표적으로 역사의 주요인물이 죽지 않도록 조심하는 일.

대표적으로 눈앞에 제갈상이나 제갈수란이 예정보다 더 일찍 죽는다면 정파 무림에 미래는 없다.

그래서 나름대로 두 사람에 대해서 신경을 쓰고 있기는 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생사 유무 정도였다.

어떻게 도우려고 해도, 아직 이렇다 하고 도와줄 게 없었다.

장본인이 워낙 뛰어나니 장애물이 있어도 알아서 해결했고, 세가 자체에서도 지원이 상당했다.

무엇보다 인맥도 보통이 아니다.

이미 무림맹의 주요 인사들과는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도움이 될 일이야 훗날 전란의 시대에 한해서라서 어떻게 도움을 줄지도 고민이었다.

무엇보다 쉽게 도울 수 없는 이유가 하나 있었는데.

‘괜히 입 잘못 놀렸다간 의심받을 수 있다는 거야.’

제갈상은 과거의 기억을 지닌 것도 아닌데 정보와 추측만으로 미래를 예상하곤 했다.

괜히 암천회에서 제갈상을 죽이려던 게 아니다.

그만큼 그의 두뇌는 적에게 위협적이었다.

이런 제갈상에게 도움 주겠다고 말을 잘못 놀렸다간 추궁을 받거나, 혹은 괜한 의심을 살 수 있었다.

“장강에서 승계와 함께 널 잃었을 때, 그때의 일이 아직도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구나.”

“죄송합니다. 제가 그때 승계를 구해서 곧장 합류했어야 했는데……”

“아니, 반대로 내가 감사할 입장이지…… 이에 관해선 말을 아껴야겠군. 아무래도 내가 그리 오래 대화할 입장은 아니라서 말이야.”

제갈상이 아쉬운 얼굴로 쓰게 웃었다.

부군사라고 한가하지 않다.

반대로 군사에게 인계받는 중이라 바쁘면 더 바빴지 여유가 없었다.

할 이야기는 산더미만큼 많았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느냐, 장홍이나 장서은과는 만났느냐.

제갈승계는 잘 지내는지도 묻고 싶었다.

그러나 시간은 그다지 길지 못했고, 아쉬움을 달래면서 방에서 떠나야 할 때가 됐다.

“그럼 오늘은 푹 쉬고 내일 보자.”

* * *

“남궁패검과 매화정검이 무림맹에 도착했습니다.”

“흠.”

사도천주가 턱을 긁적였다.

칠검전쟁이 끝난 지도 어언 일주일이 지났다.

처음 결과를 들었을 때는 분노보다는 황당함이 컸다.

혈근경을 눈앞에서 놓친 것이 짜증났지만, 그 산화일장을 화산파의 애송이가 죽인 게 믿기지 않았다.

“도대체 뭐하는 놈이지?”

산화일장은 사도천주가 나름 신뢰하는 인물이었다.

여기서 신뢰한다는 건 능력 면이었다.

무공뿐만 아니라, 지도력이나 머리도 그럭저럭 잘 굴린다.

주도면밀해서 방심도 잘 안하는 고수였다.

태허점자나 염화살마, 남궁패검에게 당했다면 또 모른다.

그런데 웬 이상한 놈에게 당했으니 당황했다.

“겨우 열여덟 살? 화산파에 인재가 나왔군.”

나이를 들었을 때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몇 번이나 조사해 봤지만 그 나이가 맞았다.

“재능이 보통이 아니야.”

사도천주의 눈이 가늘어졌다.

“나중을 생각해서라도 현상금을 걸어 놔야겠어.”

확실히 대단하기는 하지만, 크게 신경 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멍청한 놈 마교도 여럿과 싸워서 지쳤으면 방심하지 말았어야지.”

사도천주는 산화일장의 방심을 패배 요인으로 삼았다.

분명 상대가 무명에 어려서 그랬을 것이라고.

‘혈근경을 손에 넣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쉽지만, 됐다.

어차피 정사마 전부 피해를 입었으니까”

피해 인원수는 엇비슷했다.

무림맹이 고수의 피해는 없었지만 그렇게까지 안타까워할 정도는 아니다.

‘당분간 조용해질 것 같으니, 이 틈을 타서라도 폭섬도문과 묘가검문 그 둘이 싼 똥이나 치워야겠어 .”

사도천주는 아직도 두 문파로 고생중이었다.

* * *

마교(魔敎)란, 힘을 숭배하는 종교이자 무림 세력이다.

이 ‘힘’이라는 것은 마교의 사상이자 근원이다.

약한 것은 곧 죄다.

힘!

마교의 힘이란 사상은 무척 극단적이고, 엇나가 있었다.

괜히 이름에 마(魔)가 붙는 게 아니었다.

강하다면, 어떠한 죄라도 용서된다.

아니, ‘죄’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다.

누군가를 범해도 개의치 않는다.

누군가를 죽여도 개의치 않는다.

누군가의 재물을 빼앗아도 개의치 않는다.

그 어떠한 경우에도, 강자를 탓하는 건 없었다.

마교에서는 강자가 약자의 것을 빼앗거나 없애 버리는 건 숨 쉬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었다.

이 힘이라는 단순무식하고 잔악무도한 정신 나간 사상은 상당히 오랫동안 이어져서 지금껏 유지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 마교에서 제일로 강한 자는 곧 지배자로 군림할 수 있었다.

인성이나 예법 따위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강하다면 충분했다.

마교에선 그 강자를 교주, 천마(天魔)라 한다.

신강, 십만대산.

발목까지 파일 정도로 푹신한 융단이 깔린 아흔아홉 개의 계단 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남녀들이 뒤엉켜 동물 울음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그래서 최후에는 매화정검이 혈근경을 흔적도 남기지 않고 없앴단 말이더냐?”

“그렇습니다!”

칠검전쟁의 최대 피해자는 마교였다.

참전한 천여 명의 마교 무사들이 전멸하다시피 했다.

하지만 생존자가 없던 건 아니었다.

몇몇은 살아남아 마교로 돌아와 보고를 올렸다.

그들은 고원에서 보고 들은 바를 세세하게 설명했다.

“죽고 싶어 환장했나 보군.”

그리고 마교는 사도천과 달리 혈근경을 진심으로 원했다.

상승의 마공을 얻어 전력을 키우려 했다.

패배한 것이나 피해 입은 것은 짜증나지만 괜찮다.

다시 전력을 투입해서 혈근경을 가져오면 된다.

그런데 그 중요한 혈근경이 없어졌다.

행방을 알 수 없도록 사라진 게 아니라 불타 없어져 버렸다.

“죽여라.”

마교가 주서천을 쫓기 시작했다.

* * *

정파에서 명예, 그것도 불명예란 건 무척 중요하다.

어떠한 문파가 불명예를 남길 만한 행동을 했다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스스로 그 행동을 해결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그 문파는 불명예가 풀리지 않고 영원히 남아 후대까지 계속해서 언급되게 된다.

지금의 소림사가 그랬다.

소림사는 혈승이라는 불명예를 낳았고, 이에 대하여 책임을 지고 매듭을 지어야 했다.

그러나 결국 혈승을 놓쳐 해결하지 못했고, 그 결과 사백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언급되고 있었다.

소림사가 해결하지 못한 숙원이라고.

그러던 중 혈근경이 사백 년 만에 등장했다.

비록 혈승은 놓쳤으나, 그 후인을 남길 수 있는 비급의 출현은 숙원을 풀 천재일우의 기회였다.

그러나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참전하지 못하게 됐고, 대신 무림맹에게 비급을 인수받기로 약조를 받았다.

“후우……”

그런데 그걸 주서천이 도중에 소각해버렸다.

이는 생각보다 간단하게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소림사는 숙원을 풀 천재일우, 아니 최후일지도 모르는 기회를 잃었다.

무림맹 또한 이 탓에 입장이 곤란해진 상황이었다.

“지금은 그러한 상황이란다.”

검성, 남궁위무가 신음 소리를 흘렸다.

다른 수뇌부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곤란한 표정만 지었다.

“아, 그렇다고 너를 탓하려고 부른 건 아니니 걱정하지 말거라. 네 행동이 나쁜 것만은 아니니까.”

남궁위무는 새하얀 눈썹에 가려진 눈매를 초승달처럼 휘어 인자하게 웃었다.

“네가 좀만 더 생각하고 행동해 주었다면……”

하북팽가의 장로, 팽군평이 원망하듯이 중얼거렸다.

“허! 저 돌머리에게 생각하고 행동해 달라고 듣다니! 얘야, 내가 너라면 당장 목숨을 끊었을 게야!”

개방의 장로, 취봉개(取棒弓) 황견이 말했다.

농인지 진담인지 구분할 수가 없었다.

옆에 있던 팽군평이 시선을 돌려 황견을 죽일 듯이 노려봤으나, 황견은 어깨를 으쓱이며 모른 척했다.

“과연, 어떠한 사정인지 이해했습니다.”

주서천이 머리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무림맹 회의가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참고인으로 부름을 받았고, 있는 그대로 설명했다.

당연하지만 칠검전쟁이 시작된 후의 경위에 대해서다.

그 전에 간자에 대한 건 말하지 않았다.

이 이야기 자체는 별 대단한 게 없었다.

그 날 고원에 주서천만 있던 것도 아니다.

이미 다른 사람을 통해 몇 번이나 보고됐던 사항이었다.

차이가 있다면 장본인이 설명하는 것 정도.

무림맹 수뇌부가 주서천을 호출한 건 절차상인 것도 있었으나, 소림사와의 일을 설명하기 위함이었다.

“주서천.”

남궁위무의 옆, 학사풍의 노인이 그를 불렀다.

“예, 군사님.”

군사, 제갈중호.

부군사 제갈상을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조부이다.

본래 가주직을 제갈운에게 물려준 다음 은거할 예정이었으나, 친우의 부탁으로 군사를 맡게 됐다.

검성, 남궁위무와 무려 두 세대를 현역으로 활약하고 있는 몇 안 되는 노장(老將)이었다.

“괜찮다면 목을 좀 조르고 싶은데 괜찮겠느냐?”

소림사의 참전을 반대한 건 사실상 제갈중호였다.

그 입장에선 주서천이 모든 일을 망친 주범으로 보였다.

보자마자 배알이 뒤틀려 미칠 지경이었다.

“진정하게나, 이 친구야.”

남궁위무가 쓴웃음을 흘리며 제갈중호를 말렸다.

“허이구, 친우를 잘못 둔 탓에 노년까지도 고생하더니만 이젠 손자뻘 되는 놈이 날 죽이려 하는구나! 그 중들이 한번 입을 열면 얼마나 긴지 알겠느냐?”

제갈중호가 뒷목을 잡고 화를 버럭냈다.

“군사님 고정하셔야 합니다. 건강도 좋지 않으시지 않습니까?”

주서천이 제갈중호를 진심으로 걱정해 줬다.

‘이 영감 안 그래도 얼마 안 남았는데……’

제갈상이 서른도 되지 않아서 군사에 오른 건 능력도 능력이었으나, 제갈중호의 나이가 많은 탓이기도 했다.

기억에 의하면 제갈중호는 정사대전이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망한다.

길어 봤자 이 년이었다.

“이 일은 저에게 맡겨 주시지 않겠습니까?”

“아가야. 네가 무언가 큰 착각을 한 것 같은데, 우린 이걸 해결하라고 널 부른 게 아니란다.”

황견은 어이없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한쪽 입꼬리가 올라간 걸 보면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일단 절차상 장본인에게 보고를 받아야 하는 것도 있고, 네 탓에 엿 됐으니까 화산파에 잘 설명해서 소림사가 열 받은 걸 어떻게 좀 해보라는 거지.”

“황 장로, 지금 회의 중이시라는 것을 잊으신 걸까요. 좀 더 주변을 배려하여 주의해 주셨으면 하네요.”

아미파의 장로, 경인사태(敬仁師太)가 미간을 좁히면서 말했다.

이에 황견이 투덜거리면서 사과했다.

“제게 생각이 있습니다.”

“생각? 생각이 있는 놈이 혈근경을.불태워?”

제갈중호가 발끈했다.

당장이라도 달려들 자세였다.

“이 친구야, 제발 좀 진정하게. 그래도 이야기는 좀 들어야 하지 않겠나. 쯧쯧.”

남궁위무가 못 말리겠다는 듯이 혀를 찼다.

“후우, 후우……”

제갈중호가 심호흡을 하면서 화를 가라앉혔다.

조금 진정할 수 있어지자 입을 열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좋다, 말해 봐라.”

“그런데 여기에서 말하기에는 좀 그렇습니다.”

“널 죽여 버리겠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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