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四章매화정검(梅花整劍) (77/254)

第四章매화정검(梅花整劍)

“곽채!”

고찬정이 시퍼렇게 질린 얼굴로 기침을 토한다.

“주서천?”

안아연이 제일 먼저 알아봤다.

“봉추잖아?”

곽채가 의아한 눈초리로 주서천을 쳐다봤다.

“소문주!”

태산파의 제자들이 부랴부랴 달려와 고찬정을 부축했다.

“혈근경는 어떻게 된 거지?”

“봉추 혼자 여기에 왜 온 거야?”

“지원군은?”

무림맹 측에서 온갖 의문이 쏟아졌다.

그 얼굴에는 희망이 묻어났다가 금세 다시 절망으로 바뀌었다.

산화일장을 상대할 만한 무인이 여기에 없는 것도 문제지만, 우두머리라 하는 삼인방도 문제였다.

사태 파악이라곤 눈곱만큼도 하지 못하는 데다가, 자존심만 쓸데없이 높았다.

고찬정이 붙잡힌 걸 보고 모든 걸 내려놓고 도망칠까 고민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그를 구해 줬다.

처음에는 드디어 남궁재영처럼 고수가 온 줄 알고 일순간 희망을 품었으나 크나큰 착각이었다.

화산파의 봉추. 독봉과의 내기에서 비겁한 수를 이용해 승리하고, 그 뒤에 숨어 있는 겁쟁이가 아닌가!

“주서천?”

산화일장이 주서천의 이름을 곱씹었다.

‘과연, 봉추인가. 그러면 독봉이 어디 있지?’

봉추는 독봉을 따라다닌다.

그렇다면 주변에 독봉도 있을 터.

어쩌면 함정을 위한 미끼일지도 몰랐다.

정파는 언제나 함정은 파지 않는다고 호언장담하지만, 그건 앞에 삼인방처럼 머저리들만 적용되는 이야기다.

정파에게도 전략과 전술이라는 것이 있고, 최대한 이용했다.

그렇기에 위선자라 비난받는 것이다.

“그래. 내가 화산파의 주서천이다.”

주서천이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가슴을 폈다.

‘흠. 저놈 외에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는군. 혼자다.’

잔뜩 올라갔던 경계를 낮췄다.

‘잠깐 그렇다면 방금 전 그 검격은 봉추가 한 건가?’

산화일장이 이해가 안 가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방금 전 검격은 어디에서 날아오는지 보지도 못했다.

검을 휘두르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몸이 반응했다.

그 덕에 피하는 데 성공하긴 했지만, 기척 하나 느끼지 못한 게 신경쓰였다.

‘음. 확실히 내가 지치긴 지친 모양이군.’

화산의 검수라고 해도 고작 약관 밖에 되지 않았고 봉추 같은 하수의 검을 느끼지 못할 리 없으니까.

“봉추야. 괜한 자세 잡지 말고 좋게 말할 때 가라. 넌 날 화나게 하지 않았으니 목숨은 살려 주마.”

“산화일장께서 오늘따라 자비로우시군!”

“운수 좋은 줄 알아라!”

뒤편에 서 있던 사도천 무사들이 한마디씩 했다.

“어휴! 내 그놈의 별호 빨리 바꿔야지!”

주서천이 한숨 쉬며 도망치기는커녕 걸어갔다.

“정파의 애새끼들은 자비를 베푸는 데도 목숨을 버리는 게 유행이냐? 사람을 마라(魔羅)로 만드는군!”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산화일장이 팔을 곧장 뻗었다.

그 손바닥이 흉부를 노려 온다.

휙!

주서천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검을 휘두른다.

하단에서부터 상단으로 똑바로 수직선을 그었다.

“헙!”

산화일장이 숨을 멈추며 반사적으로 몸을 비틀었다.

곧게 뻗어 가던 손바닥도 방향을 틀었다.

‘어째서?’

산화일장 스스로도 자신의 행동에 당혹스러워했다.

고수도 아니고 애송이가 휘두른 검 따위, 장풍을 쏟아 내서 튕겨 내고 장력을 내서 후려치면 그만이다.

일 초.

많아 봤자 이 초에서 삼 초로 끝날 승부다.

“호오!”

주서천이 그걸 보고 감탄사를 흘렸다.

“산화일장이 그래도 무공이 대단하다곤 하던데, 그게 헛소문은 아니었던 모양이군.”

방금 전 검격에 칠 할의 공력이 주입됐다.

그대로 부딪쳤으면 손바닥이 둘로 쪼개졌을 것이다.

‘뭔가 이상하다.’

산화일장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 이마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팔에 닭살이 우수수 돋는다.

‘놈의 경지를 가늠할 수 없다.’

자객들처럼 은신에 특화되어 있다면 또 모르겠지만, 화산파에 그런 게 있다는 건 들어 본 적 없다.

‘뭐냐.’

눈과 눈을 마주한다.

강호의 어떤 기인이 눈을 보면 영혼을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애송이가 아니다!’

눈에는 약간의 긴장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싸움에 의한 흥분이나 적의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어떠한 감정을 지닌 것인지 파악할 수가 없었다.

바람 한 점 없는 날씨의 호수처럼 잔잔하기만 하다.

“봉추? 전 무림을 속이고 있었구나!”

산화일장이 주서천의 이상함을 눈치챘다.

“일 초로 거기까지 알아낸 건가?”

주서천이 정말로 놀랐다.

“좋아. 그럼 내 특별히 일 초 양보해 주마.”

주서천이 선심 쓰는 듯이 말했다.

“미친놈!”

산화일장이 주서천을 보고 욕했다.

“죽으려고 환장했군!”

좌중의 반응도 비슷했다.

“확실히 네놈의 무공이 보통이 아닌 것 같으나, 잘해 봤자 오룡삼봉이다. 내가 겁먹을 줄 아느냐?”

불안감을 느꼈지만 지쳐서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봉추! 죽고 싶어 환장한 게 아니라면 우리 뒤에 숨어라!”

곽채가 주서천의 등을 보고 외쳤다.

산화일장과 다르게 무림맹 측은 아직 주서천의 무위가 범상치 않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여전히 그들에게 주서천은 봉추였고, 형편없는 하수에 불과했다.

“봉추, 봉추…… 똘추가 된 기분이군.”

주서천이 부들부들 떨었다.

“산화일장. 내 별호를 바꾸는 데 공신이 돼 줘야겠다.”

마주 본 채로 내공을 끌어 올렸다.

“간다!”

뒤에서 말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하고 몸을 날렸다.

“헉!”

방금 전까지 주서천을 똑바로 주시하고 있었던 산화일장은 그가 순식간에 눈앞까지 다가오자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합!”

주서천이 짧은 기합을 내지르면서 십사수매화검법을 펼쳤다.

그래도 처음부터 전력을 다하지는 않았다.

육 할 정도의 공력을 쓰며 탐색전을 시작했다.

일단 산화일장의 무공부터 조사할 생각이었다.

“일 초를 양보한다더니!”

산화일장이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피해 냈다.

“아까 전에 잘난 듯이 걷어차더니 이제 와서?”

주서천이 어이없어했다.

“자비를 베풀었으면 괜한 자존심 따지지 말고 챙겨라!”

주서천이 일침을 가하며 섬광 같은 찌르기를 보였다.

산화일장에게 하나하나가 치명적인 일격이었다.

‘무슨.’

산화일장이 찌르기를 아슬아슬하게 피해 냈다.

방금 전에 어깨를 스치고 지나가 피가 튀었다.

경지와 경지에는 차이가 존재한다.

특히나 화경은 더더욱 그렇다.

초절정과 다른 건 강기뿐만이 아니었다.

신체 능력은 물론이고 실력에도 차이가 있다.

설사 초절정 고수 중에서 최상승에 속한다고 한들, 화경이 적이라면 혼자서 이기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화산의 검은 천하무적이다!”

주서천이 남들에게 들으라는 듯이 사문 자랑을 했다.

자랑하면서도 검초는 쉬지 않았다.

십사수매화검법의 검초가 물 흐르듯이 이어졌다.

변검답게 머리가 아플 정도로 다채로웠다.

“내 사부님은 소유검 유정목이시다!”

주서천이 스승 자랑도 했다.

‘산화일장은 천하백대고수. 분명 싸우고 난 다음에는 화제가 될 수밖에 없지. 그러면 최대한 명성을 올려야겠지? 사문과 사부님의 이름부터 높이자!’

봉추라는 별호를 떨어뜨리는 것도 중요하나, 영순위로 해야 할 건 사부님의 명예였다.

“감히 날 능멸하다니!”

산화일장의 얼굴이 벌갛게 달아올랐다.

주서천은 나름 진지했으나, 남이 보기에는 장난을 치는 것 같이 보였다.

산화일장이 결국 도주할 여분의 내공까지 끌어 쓰기로 했다.

사파인은 정파인보다 자존심을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특히나 하수도 아니고 천하백대고수이지 않은가?

“산화장법(散花掌法)의 무서움을 똑똑히 알려 주마!”

천하백대고수가 드디어 반격에 나선다.

주서천도 이번에는 공세에서 수비세로 바꿔 준비했다.

“흐합!”

손바닥에 힘을 집중해 쳐내는 걸 장법이라 하는데, 산화일장은 이 기본 원리와 조금 달랐다.

기존의 장법이 손바닥 전체나 중앙에 공력을 집중한다면, 산화장법은 손바닥에서부터 바깥으로 방출하면서 공격하는 원리로 되어 있었다.

산화장법에 맞으면 손바닥뿐만 아니라 그 주변으로도 타격을 입는데, 그것이 마치 꽃이 흩어지는 모양새를 닮아 산화장법이라 불리는 것이다.

‘오!’

과연 천하백대고수는 다르다.

전력을 다한 손바닥에는 제법 묵직하게 느껴지는 공력이 담겨 있었다.

전생의 자신, 그것도 화경에 오르지 않았던 때라면 꼼짝도 하지 못하고 당했을 것이다.

그것도 중년이나 노년 때에 해당되는 사항이지, 지금과 같은 나이 때면 기세만으로도 정신을 잃었다.

“하압!”

방금 전까지의 생각은 찰나에 불과했다.

산화일장이 전력을 다했을 때 몸이 곧장 반응했다.

명검, 태아가 대기를 매끄럽게 타면서 곡선을 보였다.

동시에 흘러나온 바람이 공기층을 찢어발겼다.

사방팔방으로 정신없이 쏟아지는 검풍은 산화일장의 손바닥과 부딪쳤다.

“컥!”

산화장법 특성상, 손바닥만 막는 건 소용없다.

주변으로 방출된 공력에 피해를 입는다.

그런데 주서천이 그 특성을 검풍을 사방팔방으로 방출하면서 완벽하게 막아 냈다.

“이게 대체 무…… 쿨럭!”

산화일장이 내상을 입은 듯 피를 울컥 토해 냈다.

그 눈은 믿기지 않는 듯 부릅떠졌다.

공격과 공격이 부딪쳤다.

빈틈없이 서로 부딪쳤으니 그다음은 내공의 대결로 이어진다.

그런데 그 내공의 대결이 어이없을 정도로 허무하게 끝났다.

초절정의 고수인 데다가 이제 곧 노년을 바라보는 나이인 산화일장이다.

그런데 내공 대결에서 패배했다.

아무리 정파의 내공이 정순하다 할 지라도, 자신이 지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조기에 영약을 복용하는 건 역시 중요해!”

주서천이 활짝 웃었다.

“설사…… 영약을 처먹었어도…… 이럴 리가……”

산화일장이 끓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여전히 믿기지 않다는 표정으로 동공이 심하게 흔들렸다.

“영약이라는 건 밥 먹듯이 먹어야하는 법이지!”

“이 개……”

“아직도 안 죽었나?”

푸욱!

“크아악!”

산화일장의 가슴에 검을 꽂아서 비틀었다.

극심한 내상을 입은 상태라 제대로 피하지도 못했다.

주서천이 검을 뽑아내자, 산화일장이 재차 피를 몇 번 토하곤 옆으로 힘없이 쓰러졌다.

푹 푸욱.

혹시 몰라서 확인 사살까지 했다.

과거, 괜히 시체에 대한 모욕이라면서 지나치려다 벌떡 일어난 사파인에게 죽을 뻔한 경험이 있었다.

산화일장은 돌에 맞은 개구리처럼 뒤집은 채로 경련하더니 이내 숨이 끊어졌다.

“……”

그 광경을 본 그 누구도 말을 잇지 못했다.

잔악무도한 행위 탓이 아니었다.

그 누구도 그걸 신경 쓰지 않았다.

산화일장이…… 

“……당했다.”

먼저 침묵을 깨뜨린 건 사도천이었다.

목소리는 떨려 오고 얼굴은 새하얗게 질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다 이긴 싸움이라면서 여유까지 부리던 사도천.

그러나 상황이 역전됐다.

“커허억!”

염화살마의 입에서 비명이 흘러나왔다.

검 끝이 파고든 목에선 피가 꿀렁꿀렁하고 넘쳤다.

“캬하으흐악……!”

죽기 직전 상명진인에게 저주를 퍼부었으나 목이 찔려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천하백대고수이자 마교의 소살대주인 염화살마는 입만 뻐끔거리다가 절명했다.

“후우!”

상명진인이 눈썹에 묻은 피를 소매로 닦아 냈다.

반 시진 넘게 이어진 격렬한 싸움이 방금 끝났다.

“장문인! 다치신 데는 없으십니까?”

“나는 괜찮으니 걱정 말거라. 그보다 소살대의 잔당을 부탁하마.”

승부에서는 이겼지만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중요한 건 혈근경이지 염화살마가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남궁재영이 고생하면서 산화일장을 막고 있을지 모르니 한시라도 빨리 정상으로 가야만 했다.

“진인!”

이제 막 떠나려고 했을 때, 위쪽에서 전령이 날아오듯이 달려왔다.

“무슨 일인가!”

상명진인이 전령의 얼굴을 보고 불안해했다.

희소식이었다면 전령의 얼굴이 밝아야 한다.

그렇다고 어둡지도 않았지만,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게……”

“얼른 말해 보게!”

상명진인이 애가 타는 듯 전령을 부추겼다.

“주, 주서천이 산화일장을 죽였습니다!”

“뭐라고?”

상명진인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주서천은 등을 돌렸다.

사도천의 잔당이 아직 남아 있으나 어차피 위험도 되지 않는다.

‘산화일장은 역사대로 죽는구나.’

상명진인, 염화살마, 산화일장.

칠검전쟁의 주역들이니 모를 리 없었다.

산화일장은 흉마의 무덤 조사 도중 욕심에 눈이 먼 수하에게 배신을 당해 목숨을 잃는다.

염화살마는 상명진인과의 혈투 끝에 죽었던 게 기억이 났다.

“아차. 회상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니지.”

주서천은 스스로를 욕하면서 등을 돌렸다.

아직도 어안이 벙벙한 채 서 있는 오악검파가 보였다.

“혈근경을 태워 없애라.”

“…… 네?”

안아연이 멍해 있다가 되물었다.

“얼른.”

혈근경으로 일어났던 전쟁이다.

그 계기가 없어진다면 전쟁 역시 멈출 수 있다.

“무슨 소리!”

곽채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면서 반발했다.

“혈근경은 소림사에서 회수하기로 한 것을 잊었느냐, 봉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겠는데, 그랬다간 큰일 나. 소림사로 운송하는 도중에 탈취당할걸?”

암천회의 간자, 천권의 끄나풀은 한둘이 아니다.

또한 그들은 신뢰할 만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혈근경의 운송을 맡겼다간 구 할 이상은 빼돌릴 것이 뻔했다.

그러면 또 다른 칠검전쟁이 일어난다.

소림사의 나한들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암천회는 그 이상이었다.

“네 이놈! 설마하니 마공을 탐내는 것이냐?”

“터무니없는 소리 좀 하지 마라. 내가 태우라 했지 그걸 넘기라고 했냐? 평화를 위해서라도 없애자.”

주서천이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헛소리!”

이번에는 곽채가 아니라 고찬정이었다.

목 부분에 손자국이 아직 벌겋게 남아 있다.

고찬정은 눈을 부릅뜨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봉추! 우리가 공을 세우는 것을 질투하는 것이로구나!”

“이건 또 신선한 개소리군!”

주서천이 감탄했다.

“흥! 잠시 방심하여 공격을 허용했을 뿐, 네가 방해만 하지 않았다면 진작 내가 처리했을 것이다!”

고찬정이 주서천보다 뻔뻔하게 나왔다.

“허어……”

주서천이 할 말을 잃었다.

인면수심이 따로 있지, 설마하니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전생에서도 이렇게까지 안하무인인 자는 본 적 없었다.

‘하기야, 그런 놈들은 전쟁에서 죄다 죽었었지?’

고찬정, 곽채, 안아연!

삼인방의 이름 전부 전생에서 듣지 못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설마 네가 이럴 줄이야!”

순수한 놀라움에서 흘러나온 감탄사였다.

그래도 목숨을 구해 주지 않았는가.

동조는 그렇다 쳐도 가만히 있지는 못할망정 앞서서 욕하고 있었다.

“도와 달라는 말도 없었는데 멋대로 개입한 거 말이냐?

도움 따위 없어도 알아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와……”

“공을 빼앗으려는 속셈인 걸 내가 모를 줄 알고!”

“캬!”

감탄사가 끊이지 않는 개념 찬 말!

주변의 반응도 비슷했다.

심지어 같은 태산파의 제자들도 소문주가 부끄러운지 얼굴을 붉혔다.

“시간 없으니까 그만하자!”

어이가 없어 화도 나지 않았다.

삿대질까지 하면서 소리를 꿱꿱 지르는 고찬정을 무시해 지나쳤다.

“거기 서라!”

스르릉!

고찬정이 검을 뽑고 성큼성큼 걸어 나오자, 뒤편에 서 있던 태산파 제자들이 몸을 던져 막았다.

“지금 뭐하는 짓이냐! 이거 놔라!”

“소문주, 이러다가 진짜 사달 납니다!”

“무슨 말씀하시는지 알겠는데, 목숨을 구해준 주 대협에게 그러시면 어떤 소문이 나겠소!”

주서천이 태산파 제자들을 연민의 눈초리로 쳐다봤다.

저런 소문주를 데리고 있으니 얼마나 고생할까.

속으로 그들에게 무운을 빌어 준 뒤, 발걸음을 앞으로 향하려 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곽채가 튀어나왔다.

“어딜 가느냐, 이 화산파의 나부랭이……”

짜악!

“컥!”

곽채의 머리가 꺾이듯이 홱 돌아갔다.

그동안 쌓였던 화가 조금은 가라앉는 듯했다.

이제는 안아연만 남았다.

그러나, 전처럼 강수를 쓸 필요는 없었다.

“이 치욕…… 잊지 않을 것이다…!”

안아연이 비구니답지 않은 표정을 짓는다.

눈매만 보면 마인을 연상시킬 정도로 살의 넘친다.

‘왠지 나쁜 짓을 저지르는 느낌이야.’

잘잘못을 따지면 분명 삼인방에게 잘못이 있는데, 한 말만 들어 보면 꼭 자신이 악당이라도 된 것 같았다.

바닥에 떨어진 혈근경을 주운 다음 곧장 불을 붙였다.

“주 대장!”

마침 일행이 도착했다.

격렬한 혈투를 했다는 듯, 금의검문 무사들은 피투성이였다.

당혜나 사천당가 무인들의 꼴도 말이 아니었다.

흙투성이에 토혈 등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대체 어떻게 된 거요?”

주서천이 옅게 웃었다.

* * *

“화산파의 주서천이 산화일장을 죽였다!”

“혈근경이 불탔습니다!”

제일 먼저 들린 소식은 이 두 가지였다.

“뭐?”

남궁재영과 서문이진이 싸우다 말고 당황했다.

“지, 진짜요!”

사도천 무리가 도망치듯 내려오면서 외쳤다.

이제 총지휘권은 자연스레 서문이진에게로 향했다.

서문이진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목격담에 당황했다가,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 퇴각 명령을 내렸다.

“후퇴하라!”

사도천의 무사들이 속으로 환호했다.

패전 소식에 대놓고 기뻐할 수는 없지만 목숨은 건질 수 있었다.

“서문이진!”

“남궁재영. 넉살 좋게 날 따라올 수 없다는 것 잘 안다. 아쉽지만 우리의 대결은 미뤄야겠군.”

서문이진도 아쉬워하면서 나중을 기약했다.

“잘 있어라!”

사파인들이 전부 서문이진을 뒤따랐다.

사도천이 대거 후퇴하자, 소식을 들은 마교도도 별수 없다는 듯 혀를 차면서 빠지기 시작했다.

다만 그렇게 빠져나가는 건 비교적 흥분하지 않은 소수뿐이었다.

대부분은 전장에 남아서 끝까지 싸웠다.

“이게 대체……”

남궁재영이 의아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 * *

강호 무림은 칠검전쟁에 주목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전쟁은 채 하루도 되지 않아 종료를 맞이했다.

“전쟁이 끝났다고?”

“그게 무슨 소리인가. 칠검전쟁은 막 시작된 것이 아니었나?”

상명진인이 염화살마를 맡았고, 남궁재영은 산화일장을 막으려다가 뇌음도 서문이진과 싸웠다.

처음에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사람들은 산화일장이 혈근경을 차지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생각과는 달리 전혀 상상하지도 못한 사람의 튀어나와 상황을 순식간에 정리했다.

“뇌음도처럼 칠대 세력 외의 고수가 참전했나?”

“그러네.”

“그게 누군가?”

“주서천!”

대다수 사람들은 그 이름을 들었을 때 고개를 갸웃거렸다.

또는 전혀 믿지 않는 반응을 보였다.

“주서천? 설마 봉추를 말하는 겐가?”

“이젠 봉추가 아닐세. 매화정검(梅花整劍)이지!”

봉황에 가려진 별호는 새로이 탈바꿈됐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건가? 자세히 말해 보게.”

“태허검자, 염화살마, 남궁패검, 뇌음도가 고원의 아래에서 싸우는 동안 산화일장이 수하들을 이끌고 정상으로 향했네.

마침 그 위에는 태산파, 숭산파, 항산파의 제자들이 있었다고 하더군.”

“저런!”

산화일장은 천하백대고수이고, 혼자도 아니었다.

아무리 오악검파라 해도 막아 내기가 힘들었다.

사람들은 주먹에 땀을 쥐면서 그다음 이야기에 집중했다.

도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정리했던 것일까?

“그리고 곧장 마교의 무리까지 올라와 무림맹, 사도천, 마교가 섞여 처절하게 싸웠다고 하네.”

“끔찍했겠군!”

“마교도는 금세 산화일장에게 전멸했고, 그 손이 무림맹의 젊은이들로 향했네. 하나 그 순간!”

꿀꺽.

“주서천이 등장해 ‘나는 모든 걸 정리하러 왔다. 무림의 평화는 내가 지키겠다.’ 라고 외쳤지!”

“허어!”

말한 적 없다.

“그렇다면 그 봉추, 아니 매화정검이 산화일장을 이겼다는 건가?”

“암! 그렇고말고! 그것도 혼자서!”

“허어!”

주서천 산화일장과 정면 승부에서 홀로 이겼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과장된 것이 아니냐면서 믿지 않았다.

분명 누군가의 도움이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 자리에 있던 오악검파에서 그런 말이 있었다.

하지만 그 위에 있던 목격자가 한두 명이 아니었고, 결국 진실이라는 것이 판명됐다.

“그럼 혈근경은 결국 어떻게 된 건가?”

“욕심으로 전쟁까지 불러들인 저주받은 것이라면서 매화정검이 그 자리에서 불태웠다고 하더군!”

“허! 완전 대협이네, 대협이야!”

강호의 소문이란 게 응당 그렇듯, 살이 붙고 왜곡되기도 했으나 그래도 완전히 허위는 아니었다.

주서천은 하루아침에 정파 무림의 대협으로 추앙받았다.

그만큼 활약상이 대단해 명성이 높아졌다.

금의검문의 신무기, 다발화전에 대해서도 널리 알려졌다.

관부의 병기부가 관심을 가질 정도였다.

다만 좋은 방향으로 유명해진 것만은 아니었다.

“아니, 금의검문은 ‘검’이라는 이름을 달 자격이 있는 건가?”

“참 나. 돈에 영혼을 팔았다고 하더니 그 말대로군! 사파보다 더 비겁하지 않나?”

“애초에 무인이 아니라 상인이 만든 곳 아닌가. 내 언젠가 사달을 낼 줄 알았네.”

“흥!”

다발화전에 대한 평가는 좋았다.

그러나 무림 정서상 받아들이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자연히 개발하고 제작한 제갈승계에게도 이목이 쏠렸다.

“승 공자님. 여론이 좋지 않습니다. 발뺌할까요?”

이의채가 원하면 전면 부인해서 숨기겠다고 말했다.

“됐습니다. 욕먹는 거 익숙합니다. 숨기고 있는 게 욕먹는 것보다 더 싫습니다.”

제갈승계는 이의채의 제안을 거절했다.

인정받지 못하는 건 익숙하다.

욕먹는 건 항상 그랬다.

일상이 세가 내에서 외부로 바뀐 것뿐 별반 차이도 없게 느껴졌다.

“제갈세가라면 확실히 저런 걸 만들 만하지.”

“오해하지 마시오. 우린 저딴 건 생각하지도 않소.”

제갈세가는 무관한 일이라면서 전면 부인했다.

“한데, 결국 칠검전쟁은 누가 이긴 겐가?”

“누가 이겼다고 확답하기에는 애매하군.”

“각각 피해는 어떤가?”

“천 명 중 사백여 명이 사망했고, 이백여 명이 중상을 입었지. 나머지 사백 명 정도가 살았네.”

“어디가?”

“무림맹, 사도천. 마교의 경우는 생존자들이 겨우 백 명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더군.”

혈근경이 불타 없어지자 사도천은 곧장 퇴각했으나, 마교는 대부분이 남아서 끝까지 싸웠다.

자존심이 상해 도망치지 못한 게 아니라, 마성을 주체하지 못해 이성을 되찾지 못해서였다.

“굳이 말하자면, 그 전쟁의 승자는 매화정검일지도 모르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