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三章서문세가(西門世家) (76/254)

第三章서문세가(西門世家)

남궁재영은 검성에게 가르침을 받았던 만큼, 천하백대고수는 아니나 그에 견줄 정도로의 고강한 무공을 지녔다.

그 무위는 남궁세가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였다.

“남궁세가의 힘을 보여 줘라!”

남궁재영이 외침과 동시에 앞을 막아선 무인을 베었다.

가슴부터 골반까지 깊게 베이며 핏물이 터졌다.

“와아아아!”

남궁재영이 앞을 이끌자 남궁세가의 사기는 떨어질 일이 없었다.

누구도 두려움을 보이지 않았다.

그와 반대로 남궁재영과 마주한 무인들은 상태가 영 좋지 못했고, 대부분 공포에 짓눌려 목숨을 잃었다.

남궁세가는 질풍처럼 날쌔게 움직여 불이 번지듯이 맹렬한 공세를 퍼부었다.

원래라면 이 상승세를 타고 적들을 무찔러 고원에 도착해야만 했으나, 도중에 문제가 생겼다.

“남궁패검(南宮覇劍)! 여전하구나!”

“누구냐!”

남궁재영이 발걸음을 멈췄다.

물으면서도 방금 전 목소리가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그새 안 봤다고 내 목소리를 잊어 먹었나?”

“서문이진(西門펴 晉)!”

남궁재영이 눈살을 찌푸렸다.

“뇌승도(雷承刀)!”

후방에 있던 초련이 곧장 별호를 불렀다.

“뇌승도? 그 서문세가?”

주서천도 알아들었다.

절강(浙江)의 서문세가.

사도칠문의 명가로 도법이 빠르고 패도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그중 서문이진은 남궁재영과 같이 천하백대고수와 엇비슷한 무공을 지닌 초절정의 고수였다.

“아!”

주서천이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잊고 있었던 기억이 방금 전에 떠올랐다.

‘남궁재영과 서문이진!’

남궁세가는 안휘에 있고, 서문세가는 절강에 있다.

둘 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라 할 정도로 가까워서 그런지 예로부터 만날 일이 많았다.

다만 정사의 명가였던 탓에 동료가 아닌 적으로서, 대부분은 말싸움을 하거나 병기를 부딪쳤다.

두 사람 역시 마찬가지였고, 후기지수였던 시절에 특히 충돌이 잦아 악연으로 이어져 있었다.

"결국은 정사대전에서 겨루다가 공멸하지만.’

남궁재영과 서문이진이 역사에 길이 남을 사람이었다면 모를까, 정사대전에서 주야장천 싸우다가 이슬이 되는 것뿐이니 자세히 기억할 리 없었다.

그래도 남궁재영이 검성의 아들이고 현 가주의 동생인지라 기억에 조금이라도 남아 있었다.

“왜 여기에 서문세가가?”

“참전한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는데……”

남궁세가의 무사들이 수군거렸다.

앙숙인 만큼 항상 의식하고 있고, 어디에 참전한다하면 그걸 모를 리 없었다.

칠대 세력 중 사도천 측 인원 목록에서 서문세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사파가 그걸 얌전히 따른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지 않나. 어디 보자…… 대충 봐도 백은 되려나?”

주서천이 어깨를 으쓱였다.

정파도 칠검전쟁 규칙을 완전히 따르지는 않았다.

사파도 마찬가지다.

아니, 사파는 더 나아가 백 명 정도 되는 인원을 비밀로 하고 잠입시켰다.

“이 비겁한 놈들!”

“그러고도 무인이라 할 수 있느냐!”

“약속을 지키지 않다니!”

남궁세가의 무사들이 씩씩거리면서 화를 냈다.

“더러운 서문세가 놈들!”

온갖 비난이 쏟아졌으나 서문세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반대로 콧방귀를 끼면서 그들을 비웃었다.

“누가 정파 아니랄까 봐 정말이지 꽉 막혔구나.”

“네놈들은 전쟁에서도 그렇게 하나하나 따져 가면서 싸울 생각이 냐?”

“하긴, 바닥을 구르는 걸 죽기보다 싫어하는 놈들!”

‘그건 그래.’

주서천도 서문세가의 비난에 수긍했다.

평화가 지속되었던 현 정파 무림은 목숨보다 자존심을 더 중요시 여겼다.

자신 역시 한때 그랬다.

그러나 수많은 전란을 겪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서 점점 정파의 고집을 버렸다.

물론 그 관념에도 어느 정도 선이 있어 가끔씩 막가는 사도천 정도는 아니었다.

“그나저나, 독봉도 있으니 운이 좋군.”

서문이진이 당혜를 보고 기분 나쁘게 웃었다.

멀리서도 한눈에 볼 수 있는 미모라 일찍이 발견했다.

“오늘에야말로 네놈을 쳐 죽인 다음, 내 상으로 독봉을 취하겠다!”

서문이진이 몸을 날렸다.

그 뒤로 서문세가의 무사들이 뒤를 따랐다.

“아가씨를 지켜라!”

원대식이 당혜를 뒤로한 채 외쳤다.

“자비 따윈 없다!”

남궁세가와 서문세가가 충돌했다.

“흐합!”

서문이진이 뛰어올랐다가 도를 힘껏 휘둘렀다.

서문세가의 쾌도(快刀)답게 그 속도가 범상치 않았다.

칼이 대기를 ‘부욱’ 가르면서 남궁재영의 머리 위로 떨어진다.

남궁재영은 얼른 검을 세워 도를 막았다.

째앵!

어느 한쪽도 밀리지 않았다.

검과 도가 서로 버티면서 몸을 파르르 떨어 댔다.

파직! 파지직!

도신에서 보이지 않는 전류가 흘러, 검을 통해 이동하려 했으나 남궁재영이 내공으로 막아 냈다.

서문세가의 대표 도법, 뇌전도법(雷電刀法)이다.

“네놈을 죽이기 위해 내 칼을 갈고 닦아 뇌전도법을 대성하고 십팔승천도(十八承天刀)까지 익혔다!”

“뭘 익혔건 간에, 서문세가의 잔재주 따위는 남궁세가의 검에는 당하지 못할 것이다!”

남궁재영이 도를 쳐 내면서 낮게 으르릉거렸다.

“길고 짧은 건 대 봐야 아는 법이지!”

서문이진이 도를 재빠르게 여러 번 휘둘렀다.

빠르기뿐만 아니라 도세 또한 강맹했다.

이에 남궁재영은 가전 무공인 창궁무애검법(蒼窟無珪劍法)으로 하나도 빠짐 없이 전부 막아 냈다.

“흥!”

서문이진이 혀를 차면서 다음 공격을 잇는다.

도를 휘두를 때마다 벽력 소리가 들렸다.

초절정의 고수들답게 공방을 교환하는 것이 보통이 아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오십 초를 교환했다.

‘괜히 창궁무애검법이 아니로군!’

상천십좌인 검성의 검법이다.

결코 수준 낮을 리 없었다.

무엇보다 남궁패검의 실력 자체도 뛰어났다.

괜히 적수로서 칼을 닦았던 게 아니다.

속으로 혀를 내두르면서 지금 싸움에 집중했다.

한편, 남궁재영도 속으로 놀라고 있었다.

‘이놈, 정말로 수련을 허투루 한 게 아니었구나.’

일격 하나하나에 강맹한 힘이 들어가 있다.

받아칠 때마다 팔 근육이 찌르르 울렸다.

‘큰일이다.’

아마도 동수, 결과를 예측할 수가 없다.

정말로 큰 문제는 여기에서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대로 있다간 산화일장이 혈근경을 차지할 것이다.’

상명진인이 염화살마를 맡겠다고 떠났다.

사도천의 대표를 상대할 수 있는 건 정파에서 자신뿐이다.

일단 후기지수들을 위로 보내긴 했으나, 그들이 산화일장을 이길 가능성은 적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서문이진으로 향한 신경을 조금 떼어 내서 주변을 둘러봤다.

무사들이 서로 격렬하게 다투고 있었다.

확인해 보니 혈근경이 위치한 곳을 향한 길을 뚫기는 어려워 보였다.

다들 기세가 엇비슷했다.

설사 이 싸움에서 승리한다 할지라도 시간이 너무 걸린다.

그 시간이라면 산화일장이 혈근경을 차지하고 도망치기까지 충분했다.

“날 앞에 두고 딴 곳을 봐도 괜찮겠나!”

서문이진의 도가 하단에서부터 파고든다.

뒤로 급히 물러났으나, 허벅지를 베고 지나갔다.

‘큭!’

불행 중 다행으로 상처는 옅었다.

싸우는 데 무리가 없을 정도.

혈선(血線)이 그어진 것으로 끝났다.

남궁재영은 복잡한 심경을 어찌할 줄 모르고, 다시 정신을 서문이진에게로 집중했다.

‘이렇게 된 거 무슨 일이 있더라도 상황을 빠르게 정리한……’

펑!

파바밧!

생각을 잇기 전, 무언가 소리가 덮친다.

뇌전도법의 천둥소리도 아니고, 익숙해져 더 이상 들리지 않는 사람들의 비명 소리도 아니었다.

수십여 마리의 새들이 동시에 날갯짓하는 소리가 나면서 서문이진 어깨 너머로 화살 비가 쏟아졌다.

푸부북!

“아악!”

“끄아아악!”

창궁을 까맣게 물들인 건 백여 발이 넘는 화살 비!

남궁재영은 촘촘한 거리를 유지한 채 폭포처럼 쏟아진 화살 비를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다.

전장은 언제나 예측 불허라 하지만, 방금 전 벌어진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게 대체 뭔……”

남궁재영과 서문이진의 시선은 약속이라도 한 듯 화살이 날아온 방향으로 향했다.

“뭐긴 뭐야! 다발화전(多發火簡)이지!”

화살에 화약을 넣은 통을 묶고 불을 붙일 경우, 그 열의 힘으로 목표물까지 날리는 걸 화전이라 한다.

그리고 이 다발화전은 다발이라는 이름에 맞게, 불을 붙이면 단숨에 여러 발을 발사할 수 있었다.

속이 빈 육각형 상자를 만든 다음, 화전을 담을 수 있는 관을 설치.

그리고 화문(火門)까지 도화선을 넣어 불을 붙이면 단숨에 쏠 수 있었다.

사거리는 약 일 리에서 이 리 정도 되며, 그물처럼 촘촘히 배치된 화살을 넓은 범위로 공격이 가능했다.

“기관의 천재, 제갈승계의 특제요!”

초련이 신난 목소리로 외쳤다.

그 뒤로는 금의검문 무사들이 옆구리에 다발화전 통을 끼고 있었다.

“그건 또 뭐야?”

주서천이 초련에게 물었다.

“그 도련님이 사용할 때 꼭 외치라 했소.”

초련이 어깨를 으쓱이면서 답했다.

“뭐, 틀린 말은 아니지.”

제갈승계는 기관으로 인정받으려는 욕심이 상당하다.

어차피 틀린 말도 아니니 뭐라 할 생각은 없었다.

‘정말로 엄청난 천재다.’

다발화전은 전생에서도 없었던 무기다.

그도 그럴 것이, 전생의 만각이천은 원래 온갖 푸대접을 받아 기관을 만들 지원금도 받지 못했다.

삼안신투의 비고가 등장하면서 기관의 중요성이 뒤늦게 알려져 지원이 들어왔지만, 그것에도 제한이 있었다.

제갈세가에서는 암기 등을 치욕적으로 여겨 무기를 금했고, 오직 기관 및 함정의 해제에만 집중시켰다.

사천당가의 독문 무기로 알려진 죽통노가 그 증거였다.

“승계에게 돈이 주어지면 이렇게 무서울 줄이야!”

화약은 값비싸다.

보통 돈이 드는 게 아니다.

관부에서 개발됐던 화전도 같은 이유로 폐기됐다.

제조비가 보통이 아닌데 활과 효과도 별반 차이가 없어서 외면됐고, 자연히 연구도 중지됐다.

그런데 제갈승계는 그 중지된 걸 살려 냈을 뿐만 아니라 개량시켰다.

제갈승계는 이의채에게 부탁해 기관이나 무기에 관련된 온갖 서적을 가져와 읽었고, 전부 습득했다.

그리고 그것을 옹용해 터무니없는 걸 만들어 냈다.

“이, 아……”

서문이진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어찌나 황당해하는지 남궁재영을 앞에 두고 말까지 더듬었다.

“이 비겁한 새끼들아!”

“나도 안다!”

주서천도 초련에게 말로 대충 들었을 때는 감이 잘 안 잡혔는데, 직접 보니 엄청나다는 걸 깨닫게 됐다.

“봉추와 금의검문?”

남궁재영이 눈살을 찌푸렸다.

얼마 전에 자신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이들을 잊을 리 없었다.

주변의 싸움까지 잠시 멈추며 금의검문을 향한 온갖 욕이 쏟아졌다.

심지어 아군까지도 경멸했다.

“자, 금의검문의 이름을 똑똑히 들어라!”

주서천은 사문이 욕먹을까 봐 금의검문을 팔았다.

“검문의 주인은 이의채다!”

부모 욕은 자식도 먹는다.

초련이 그걸 걱정하고 금의상단주의 이름을 팔았다.

“아직 둘이나 남았잖아!”

서문세가 무사들이 사색이 되었다.

그들 눈에 비춰진 것은 금의검문의 무사들 중 네 명이었다.

두 명씩 짝지은 그들은 상자를 개봉해 다발화전을 보였다.

한 번에 무려 백 발까지 쏠 수 있다.

“가자!”

주서천이 외치면서 앞으로 달린다.

그가 비키면서 뒤에 있던 다발화전의 화문이 보였다.

퍼엉!

시원스러울 정도로의 폭음이 터지면서 백 발의 화살이 창궁을 까맣게 물들었다.

“이런 젠……”

파바바밧!

“끄아악!” “아악!” “아아아악!”

무림인들에게 화살은 그리 큰 위협이 되지 않지만, 처음 겪는 화망(火網)에는 약한 모습을 보였다.

무엇보다 그들은 방금 전까지 전력을 다해 싸운 탓에 내공과 체력을 크게 소비한 상태였다.

그렇다 보니 평소보다 버티지 못했고, 목숨을 잃지는 않았지만 대부분이 중상을 입었다.

“사천당가!”

주서천이 서문세가의 무사를 베면서 외친다.

“호위!”

일언반구(一言半句)에 사천당가가 당혹스러워했다.

죄다 뭔 말인지 이해 못 하는 표정이었다.

“따라가!”

당혜가 주변 호위를 뚫고 몸을 날렸다.

“아가씨!”

그제야 사천당가의 무사들이 움직였다.

그들에게 당혜는 어떠한 상황에도 우선시된다.

그녀를 놓친 남궁세가의 무사들과 달리, 사천당가의 십여 명은 발에 불붙은 듯 달려가 따라잡았다.

주서천이 앞장섰고, 그 뒤로 금의검문이 따라붙는다.

그리고 사천당가가 그들을 둘러 호위했다.

“막아라!”

서문이진이 급히 외쳤다.

“어딜!”

남궁재영은 그가 명령하지 못하도록 덤벼들었다.

“저걸 부숴!”

서문세가뿐만 아니라 주변의 사도천 소속 사파인들도 다발화전의 위험성을 느끼고 덤벼들었다.

주서천은 최대한 정신을 집중했다.

사방에서 몰려드는 인기척을 거의 전부 감지할 수 있었다.

팟!

좌측에서 사파인이 창을 앞으로 쭉 뻗어 온다.

주서천은 상체를 앞으로 숙인 뒤 몸을 가볍게 회전했다.

검 역시 몸을 따라 원을 그렸고, 다가오던 사파인이 쏟아지는 내장을 붙잡으면서 쓰러졌다.

“네 이놈!”

쉴 틈도 없이 공격이 들어온다.

세 방향에서 빛줄기를 번쩍하고 뿜어내는 도를 볼 수 있었다.

재빠르고 패도적인 걸 보니 서문세가의 무인이다.

“명전삼도(閃電三刀)인가.”

삼초식밖에 없지만, 간단한 만큼 힘을 쏟아 내면 대단한 위력을 낸다.

서문세가의 기초 도법이었다.

꽈악.

검을 쥐자 상완근이 미세하게나마 부풀어 오른다.

완력과 내공이 힘을 주고, 속도도 알맞게 따른다.

파바밧!

일부러 수준을 낮춰서 십사수매화검법을 펼친다.

일초식에서부터 사초식까지 보여 줬다.

매화노방, 매화집무, 매화토염, 매개이도!

길가에 있던 나비가 춤추다 염기를 뱉어 내고, 꽃처럼 피어났다가 날카롭게 이끌었다.

섬전삼도로 위력을 최대한 이끌었다고 한들, 화경의 고수에게 상대가 되지는 않는다.

검이 지나가고 잔상이 남자 서문세가의 무인들이 피를 흩뿌리면서 쓰러졌다.

한순간에 셋이 목숨을 잃었다.

뒤에서 따라오거나 근처에 있던 사파인들이 공격하려다 움찔 떨었다.

“오랜만에 보는군.”

동경을 보지 않았지만, 아마 그리운 표정을 짓고 있지 않을까.

회귀 전, 정사대전 때 서문세가와 싸워 본 적 있었다.

섬진삼도와 뇌전도법 모두 경험해 봤다.

“십사수매화검법!”

“소매의 안쪽을 봐라!”

“매화! 화산파인가!”

여기저기서 자신의 검법을 알아봤다.

이래서 일부러 이십사수매화검법을 펼치지 않았다.

오늘 일이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사문의 추궁을 피할 수 없다.

귀찮음을 방지하기 위해 수준을 낮췄다.

“자, 와라!”

하나밖에 남지 않은 다발화전을 가진 두 명을 빼곤, 여덟 명도 검을 들고 전투에 나섰다.

금의검문에서도 일군, 정예에 속하는 무사들이다.

자기 목숨 지킬 만큼은 충분히 된다.

특히 초련의 활약이 대단했다.

질풍보로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공격을 회피하고, 단쾌검법으로 상대했다.

질풍십객이란 별호는 엿 바꿔서 얻은게 아니다.

‘음! 좋아!’

주서천이 금의검문의 힘을 보고 만족했다.

그들이 이렇게 싸우는 걸 보는 건 처음이라 조금 걱정했었는데 괜한 걱정이었다.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정도로 잘 싸웠다.

상왕의 사람 고르는 솜씨는 정말 기가 막힐 정도로 좋다.

“커헉!”

사천당가도 잘 싸우는 것으로는 지지 않는다.

괜히 오대세가가 아닌 데다가, 당혜처럼 적통의 호위들은 특히나 수준 높은 무공을 지녔다.

소맷자락이 부풀어 오르면서 암기가 쏟아질 때마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아아악!”

그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건 당혜였다.

“아가씨, 여긴 저에게……”

“비켜.”

당혜가 원대식을 치우곤 손바닥을 쭉 뻗었다.

경쾌하다 할 정도로의 일장(一掌)이 적의 흉부에 맞았다.

“컥!”

손바닥에 맞고 날아가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다들 맞자마자 마비라도 된 듯 움직일 수 없었다.

이에 누군가가 어찌어찌 힘을 내서 상의를 벗고 맞은 자국을 확인하자, 손바닥 대신 연꽃이 남아 있었다.

적련독장(赤蓮毒掌)!

사천당가에 얼마 없는 장법이자 절기로 유명했다.

“커흐흑! 독봉의 무공이 보통이 아니라고는 들었지만, 설마하니 이 정도일 줄이야……”

당혜의 손에는 자비가 없었다.

꽃이라고 생각해서 몰려들었는데 알고 보니 독이었다.

그것도 보통 독이 아니라 극독.

그 독에 목숨을 잃었다.

당혜는 적련독장으로 적들을 쓰러뜨리면서도 다발화전을 가끔씩 힐끔거렸다.

‘제갈승계라고?’

당혜는 정보에 대해서도 훤하다.

주요 인사는 물론이고 웬만한 인재들에 대한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다발화전을 제작했다는 제갈승계에 대해서는 자세히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도대체 누구기에 만들 수 있었던 거지?’

당혜는 의문을 속으로 삼키며 전장에 집중했다.

“독봉 곁의 화산파!”

“봉추다! 봉추가 틀림없다!”

“뭐? 똘추?”

주서천이 잘못 듣고 난동을 부렸다.

검을 휘두를 때마다 두세 명이 피를 흩뿌리며 쓰러졌다.

파바바밧!

검신에 반사된 빛이 번쩍인다.

검줄기가 뿜어져 나올 때마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졌다.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적들을 상대했지만, 지칠 생각은커녕 그 기세가 격해졌다.

“커, 커허억!”

“도대체 내공이 얼마나 되는 거냐!”

“제발 좀 쓰러져라! 이 괴물!”

일행들은 점점 지쳐서 이동이 조금씩 느려졌으나, 주서천은 그 반대로 폭풍처럼 몰아치면서 쾌속으로 질주했다.

그냥 달리는 것이라면 또 모를까, 사방팔방으로 움직이면서 적들을 유린했다.

“쏴라!”

주서천이 후방의 일행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이에 초련이 주춤거리면서 물었다.

“주 대장! 제정신이오?”

일행 앞에는 사도천의 무사들이 즐비했다.

문제는 그 한가운데 주서천이 떡하니 있다는 점이었다.

“빨리!”

“끙, 죽어도 원망하지 마시오!”

초련이 손을 들어 주먹을 꽉 쥐었다.

“긴급으로!”

한 명이 다발화전을 들고, 또 다른 한 명은 길게 늘어진 심지를 자르고 불을 붙였다.

앞서 있던 사도천의 무사들이 눈치챘지만 이미 늦었다.

심지가 워낙 짧아 한순간에 불이 붙었다.

퍼퍼펑!

백여 발의 화살이 쏘아졌다가 떨어진다.

범위 근처에 있던 무사들이 양옆으로 파도처 럼 갈라졌다.

범위 중심에 있던 무사들이 뒤늦게 피하려 했지만 너무 늦었다.

머리 위로 떨어진 화살 비를 맞아야 했다.

“크아악!” “악!” “커헉!”

운이 나쁘면 흉부나 머리에 맞았고, 운이 좋다 할지라도 팔이나 다리 등에 맞았다.

몇몇은 무기를 휘둘러 화살을 쳐냈으나 그 탓에 바로 옆에 있는 동료가 눈 먼 화살이나 검에 당했다.

주서천은 검을 휘두르는 척했다가 몸에 반투명한 호신강기를 얇게 둘러 화살을 막아 냈다.

검풍을 쏟아 내 전부 쳐내는 방법도 있지만, 그러면 적군들을 향한 피해가 줄어드니 고의로 하지 않았다.

“말도 안 돼!”

일행들이 입을 떡 벌리면서 대경했다.

주서천의 무위에 대해서 알고 있던 초련도 이번에는 꽤 놀란 모양이었다.

‘설마했지만 정말로 이 정도 일 줄은……’

당혜는 주서천의 경지에 대해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으나, 이렇게 무위를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눈을 부릅뜨고 입을 크게 벌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충분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뚫렸다!”

주서천이 오라는 듯 턱으로 까딱인다.

“앞으로!”

당혜가 앞장서서 나아가고 일행이 그 뒤를 따랐다.

그걸 본 서문이진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아직 충분할 정도의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산화일장이 있어도 저 인원이 올라가면 어찌 될지 모른다.

무엇보다 제대로 보지 못했으나 일기당천의 기세로 순식간에 아군을 무찌른 주서천 일행이 신경 쓰였다.

“어디를 보고 있지?”

어떻게 할지 잠시나마 고민하고 있을 때, 스산한 목소리와 더불어 남궁재영의 검이 파고들었다.

“제기랄!”

서문이진이 욕을 내뱉으면서 검을 쳐내려 했다.

“큭!”

고수들끼리의 싸움에도 한눈을 파는 행위는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

서문이진이 도로 검을 치려고 했을 때, 그 움직임은 이미 늦었다.

무의식적으로 몸을 비틀었지만, 섬광처럼 눈부신 속도를 자랑한 찌르기가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검신이 무려 반이나 틀어박혀 살을 뜯어 먹고 지나간다.

불에 덴 것처럼 화끈한 통증이 느껴졌다.

“남궁재영, 이 개새끼!”

서문이진이 남궁재영에게 다시 집중했다.

한편 위에선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썅!”

산화일장이 짜증 가득한 목소리를 냈다.

원래라면 지금쯤 혈근경을 들고 내려갔어야 한다.

정파의 애송이들이 문제가 아니었다.

도중에 갑작스레 끼어든 마교 탓이었다.

“정파의 애송이들이야 얼마든지 잡을 수 있지!”

“산화일장부터 죽여!”

마치 원수를 만난 것처럼 달려드는 마교도들의 공격적인 기세에 결국 그들부터 처리해야만 했다.

수하들이 대신 무림맹을 맡았다.

산화일장은 처음에 여유로웠다가 차츰차츰 시간이 지나갈수록 마른 사막처럼 속이 바짝 타들어 갔다.

상명진인과 염화살마 중 누가 이겨 언제 올지 모른다.

또 도주할 시간도 벌어야 한다.

그래서 조금 무리하는 감이 있어도 힘을 다해 마교도와 싸웠다.

“케헥!”

“하여간 마교도 이 힘밖에 모르는 미친놈들은!”

전력을 다하자 일각 좀 덜돼서 전부 정리했다.

마교도는 밀리면 밀릴수록 이성을 버리고 본능에 의지하게 된다.

대신 그만큼 무위도 강력해졌다.

무엇보다 정말 귀찮은 건 마성이 짙어질수록 고통을 느끼지 않게 되고, 목숨 아까운 줄 모르게 된다는 것.

끝에 가면 하나같이 동귀어진할 기세로 달려드니 보통 피곤한 게 아니었다.

“비켜라!”

산화일장이 외치자 사도천 무사들이 물러났다.

“호, 그래도 꼴에 오악검파의 후기지수들이라고 죽지 않고 잘 살아 있구나.”

무림맹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수하들이 잘 막아 줬다.

피해가 극심했지만 그건 무림맹도 마찬가지였다.

숫자도 열댓 명밖에 남지 않았고, 대다수가 상처 입고 지친 모습이었다.

“내 원래 네놈들을 한 놈도 빠짐없이 죽이려 했지만, 특별히 자비를 베풀어 주도록 하마. 혈근경을 얌전히 내준다면 목숨만은 살려 주도록 하지.”

“헛소리!”

안아연이 고민도 하지 않고 곧바로 답했다.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족속들을 믿을 수 없을뿐더러, 애초에 네까짓 놈들에게 항복할 것 같으냐?”

고찬정이 안아연의 말에 덧붙였다.

“흥! 보아하니 네놈도 마교도를 상대하느라 지친 모양이지? 그 말 그대로 돌려주마!”

곽채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큭”

실소가 흘러나왔다.

“상대하는 것이 귀찮아 자비를 베풀어 주었더니, 독주를 넘어 아주 죽여 달라고 애원하는구나……”

산화일장의 눈에서 형형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방금 전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진득한 살기였다.

“흥! 그렇게 말하면 겁낼 줄 아느냐?”

고찬정이 코웃음 치면서 앞으로 나섰다.

뒤편에서 태산파 제자들이 기겁하며 말렸으나 전부 무시했다.

“산화일장은 지금 마교도와 싸우느라 지쳐 있다는 걸 전부 알고 있지 않은가? 분명 허장성세……”

산화일장이 몸을 날려 공간을 접었다.

“헉!”

고찬정이 놀라 검을 휘두르려다가 실패했다.

산화일장의 손이 고찬정의 목덜미를 순식간에 낚아했다.

“커허억!”

빠져나오려고 손목을 붙잡고 바동거렸지만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 손 놓지 못할까!”

“말하는 도중에 공격을 하다니! 부끄러운 줄 알아라!”

곽채와 안아연이 소리를 빽빽 질러댔다.

“에잉, 쯧촛줏 저놈들은 아직도 사태 파악을 하지 못한 건가. 화를 넘어 이젠 불쌍할 정도로구나. 도대체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 있…… 헛!”

쐐액!

산화일장이 숨을 들이쉬며 뒤로 물러났다.

방금 전까지 밟고 있던 지면에 검상이 길게 남았다.

“누구나!”

산화일장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화산파.”

그 시선 끝에는 검을 쥔 청년이 서 있었다.

“주서천.”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