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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二章전쟁발발(戰爭勃發) (75/254)

第二章전쟁발발(戰爭勃發)

녹안만독공의 사성의 확인도 끝냈다.

그 거리가 넓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제 멀리 있는 적에게도 독공으로 공격할 수 있었다.

간자들은 한 사람도 남기지 않았다.

어차피 그들의 임무는 교란과 전장의 조율, 그리고 정보 취득이었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방해가 되는 데다가, 어차피 고문해도 입을 열 놈들이 아니다.

아니, 애초에 정보조차도 간자들보다 자신이 알고 있는 바가 더 많았다.

“얼굴은…… 누구인지는 모르겠네.”

복면을 벗겨 봤지만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

품 안을 뒤져 봤으나 신분을 증명할 만한 것이 없었다.

애초에 복면을 쓰고 흑의까지 입었는데 그런 걸 가져올 리가 없다.

주서천은 곳곳에 흩어진 시체를 한 곳에 모였다.

그리고 두 사람씩 어깨에 매달고 경공을 극성으로 펼쳐 전력으로 달려 근처 의 황하에 유기 (遺棄)했다.

진지가 위치한 고원과는 달리 수심이 깊고 물살이 센 곳이어서, 증거를 인멸하기에는 최적이었다.

화장을 하면 연기가 보일 테니 추적을 당할 것이고 땅에 묻기에도 인원이 많으니 티가 난다.

진지 방면과는 반대로 시체를 유기했으니 발견될 가능성도 적고, 발견될 때는 알아보기도 힘들다.

“슬슬 돌아가도록 하자.”

이튿날이 밝았다.

간밤에 일어난 일 탓에 당연히 소란이 일어났다.

하룻밤 사이에 절정 고수 이십 명이 사라졌다.

“허어,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사도천이나 마교의 음모가 틀림없습니다!”

“자객을 보낸 것이 틀림없소!”

나흘을 남기고 고수들이 실종됐다.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다들 입을 모아 하나같이 사도천이나 마교의 짓이라면서 의견을 내놓았다.

“그런데 남궁세가는 왜 아무렇지 않은 거요?”

다른 의견도 있었다.

남궁세가에도 의심의 눈초리가 향했다.

정파 무림맹 오대 세력 중 남궁세가만 제외하고 고수들이 실종됐다.

의심받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하다.

“지금 우리를 의심하는 건가?”

“말이 심하군.”

당연하다시피 불쾌하다는 반응이 돌아왔다.

“진정 ! 진정하시오!”

상명진인이 중재에 나섰다.

“전날 밤 경비에 의하면 어떠한 소란도 없었다고 하오.

그렇다면 즉 이십여 명이 자기 발로 나갔다는 것인데, 이상하지 않소? 일단 내부를 의심하는 행동은 멈추길 바라오.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사도천이나 마교가 바라는 것일지도 모르외다.”

“큭.”

“흥.”

상명진인의 중재에 가까스로 싸움이 일어나는 건 막을 수 있었다.

“조사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비급 쟁탈전까지 겨우 나흘. 이 일은 나중으로 미루고 지금은 경계를 강화하고 칠검전쟁에 대비할 때요.”

“그렇다면 상명진인께서는 이 안건을 묻어 두자는 겁니까? 지금 누군가의 사형이자 사제가 행방불명 됐는……”

“그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나, 강호에는 ‘어쩔 수 없다’ 라는 상황이 있다는 걸 알고 있지 않소? 행방불명된 자 중에선 본 파의 제자도 있소. 그 마음을 모르겠습니까.”

“흠.”

“만약 여기서 조사 인원을 따로 뺀다면, 비급 쟁탈전에 불리할 것이요. 내 본부로 서신을 보내 개방도에게 조사를 의뢰할 테니 거기에 맡겨 둡시다.”

상명진인은 유능했다.

무공만으로 장문인이 된 것이 아니었다.

괜히 미래의 영웅이 아니었다.

한편, 모든 일의 원흉(?)인 주서천은 이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상명진인이 난사람은 난사람이야. 그보다, 남궁세가 출신이 없던 걸 보면 역시 세가에는 간자를 심어 놓기가 어려운 편인 것 같군.’

오대세가는 혈육을 우선시하고 조금 폐쇄적인 성향이 있다 보니 침투하기가 어려웠다.

무엇보다 남궁세가의 전대 가주가 무림맹주 아닌가.

그 눈을 피하기가 보통 쉬운 게 아니었다.

‘그리고 정말 만약에 간자들의 신분이 노출되거나 혹은 이번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면 자연스레 남궁세가가 의심을 받을 테고, 결과적으로 불화를 만들 수도 있다. 여전히 소름 끼칠 정도로의 계획성이야.’

주서천이 혀를 내두르면서 다음 준비를 했다.

‘다음은 사도천의 간자들을 처리한다. 다만 경계가 강화될 테니 오늘 밤에 나오는 데 고생 좀 하겠군.’

추가적으로 행방불명된 이름을 듣자 간자들의 정체도 누구인지 알게 됐다.

남궁세가를 제외하고 사대 세력에서 나름대로 이름을 알린 제자들이었고, 그중에서 대어도 있었다.

항산파 장로의 제자로, 검호와도 친하게 지냈던 절정 고수였다.

다시 날이 저물었다.

예상했던 대로 오늘은 은밀하게 빠져나오는데 힘이 좀 들었다.

어제 내공을 제법 소모했으나 걱정될 수준은 아니다.

여전히 단전에 잠든 내공의 양은 상당했다.

그리고 오늘은 어제보다 좀 더 빠르게 출발했다.

사도천 진지에 도착해서 암호를 남길 시간이 필요해서 였다.

다행히 일은 계획대로 척척 진행됐다.

“누구나!”

무림맹 간자들 때처럼 조금 먼 곳에서 집결시켰고, 이리저리 실랑이 끝에 전멸시켰다.

사도천 소속 간자는 무림맹보다 많았다.

그 대신 고수는 적고, 하수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 숫자는 서른 둘.

인원이 많긴했으나 무림맹 소속 간자들보다는 무공이 약해 처리하기는 쉬웠다.

“네놈, 도대체……”

“그 말은 지겹다. 죽어라.”

크아악!

고문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몇 가지 대화를 통에 건진 정보가 있긴 했다.

각 세력에 침투한 간자들은 비급쟁탈전 삼 일 전에 집결하여 칠검전쟁에 관련된 회의를 하려 했다.

그동안 별 이상 없었는지, 그리고 임무에 대해 점검한 뒤에 상부에 보고할 예정이었다고 한다.

각 세력과의 연락도 이 이후에 할 예정이었는데, 그 탓에 무림맹 간자들이 전멸한 것도 몰랐다.

무림맹이 이 일을 비밀에 부치기도 했고, 침투한 세력이 다른 간자들끼리 서로 모른 탓이기도 했다.

“운이 또 그렇게까지 좋은 것만은 아닌가.”

하필이면 이튿날이 삼 일 남은 날이다.

아직 마교가 남았지만, 시간이 부족했다.

‘하루만 더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노릇.

두 군데는 처리했지만 그 남은 한 군데로도 변수가 남는다.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오늘처럼 처리해야만 했다.

‘슬슬 천권(天權)이 움직일 때가 됐군.’

* * *

이튿날.

사도천도 무림맹과 반응이 비슷했다.

제일 먼저 무림맹과 마교부터 의심했고 경계도 강화됐다.

무림맹을 향한 적대심을 비롯해 온갖 욕이 쏟아진 건 두말할 것 없었다.

“언제나 우리보고 비겁하다 하더니만, 정파 놈들도 별다를 게 없지 않나.”

“더러운 위선자 새끼들!”

참고로 간자들 출신은 정말 다양했다.

사도칠문에서부터 시작해 중소문파도 있었다.

대신 절정 정도 되는 고수는 두세 명밖에 없었다.

한판 사도천 만큼 이번 사태에 격렬한 반응을 보이는 세력이 있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암천회였다.

날이 밝았을 때, 보고가 올라왔어야 한다.

하지만 그것도 무려 두곳에서 올라오지 않았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냐.”

드디어 칠성사의 또 다른 우두머리가 움직였다.

그 이름은 천권.

저울(權)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상황이나 세력의 힘을 측정하고 균등하게 만든다.

천권의 밑에는 칠성사병이 적지만, 그 대신 간자와 풍자가 있었다.

그들이 따르는 자가 바로 천권이었다.

천권은 이들을 이용해서 첩보를 받고, 그 정보를 이용해 각 세력이 동시에 약화되도록 힘을 썼다.

또한 이번 혈근경의 비급 쟁탈전, 칠검전쟁을 책임지는 암천회의 수뇌였다.

“어떻게 된 영문이지?”

기다려 보기도 했지만 여전히 보고는 없었다.

무림맹 한 곳이라면 모를까 사도천에서도 없었다.

무슨 일인가 하고 알아보자, 금세 정보가 들어왔다.

“……사라졌다고?”

마교를 제외한 육대 세력에 심어둔 간자가 행방불명됐다.

무슨 일이 있는 게 분명하다.

어쩌면 생사를 알 수 없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살해당했을 지도 모른다.

그들은 전쟁을 삼 일 남겨두고 연락도 없이 사라질 만큼 결코 어리석지 않다.

“천기.”

천기와는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암천회가 칠검전쟁에 심혈을 기울인 만큼, 암천회 전부를 통괄하는 천기도 다른 곳에 신경을 덜 썼다.

천기는 그 말을 듣자마자 이를 부드득 갈았다.

“정말이지 귀신에라도 홀린 기분이로군. 이로써 누군가가 본 회에 대해 알고 있다는 게 확실해졌다.”

“그럴 리가.”

“천권. 그 생각을 고치지 않는다면 헛된 곳만 파헤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오만이다. 주의해라.”

오만까지는 아니다.

천권의 반응은 정상적이었다.

암천회는 무립맹, 사도천, 마도이세에서 정체를 숨겼다.

그 시간도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그런데 암천회조차 파악하지 못한, 자신들의 비밀을 파악한 적이 등장했다는 걸 쉽사리 믿을 수 없었다.

“천선과 옥형(玉衡)에게 본 회에 대해 알고 있고, 배신하거나 발설할 만한 자를 조사하라고 말해 두겠다.

천권, 네놈도 마찬가지다. 놈을 찾아 생포해서 데려와라. 놈의 가치는 칠검전쟁 이상이다.”

암천회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느냐에 따라 대계가 천지 차이로 바뀐다.

천기는 정체불명의 적을 위험 인물로 정했다.

“궁귀검수에 보이지 않는 적이라……”

천기가 불길한 듯 손톱을 물어뜯었다.

천기, 천선, 천권, 옥형!

칠성사 중 무려 네 명이 주서천을 쫓기 시작했다.

* * *

‘아쉽지만 마교는 포기한다.’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했다.

그리고 보고가 올라오지 않아 움직일 천권 등의 암천회도 신경 쓰였다.

어차피 칠대 세력 중 육대 세력의 간자가 전부 사망했다.

한 곳 정도는 내둬도 큰 영향은 안 끼친다.

바람잡이, 즉 풍자들도 마찬가지다.

간자가 없으니 바람 잡을 거리도 없어졌다.

그리고 삼 일 뒤.

무림맹과 사도천, 그리고 마교는 논란 속에서도 전쟁의 준비를 끝내고 비급 앞 고원에 집결했다.

그 숫자가 삼천이었고, 각각 천 명이었다.

휘이잉.

조금 쌀쌀하게 느껴질 바람이 정중앙의 고원에 있는 혈근경이 담긴 철함을 스치고 지나갔다.

전날 밤까지 철저한 경비를 하다 문제없이 전부 물러났다.

모두가 지켜보던 자리에서 후퇴했고, 이후에도 수상한 행동을 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날이 밝았소!”

상명진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찌나 큰지 메아리가 되어 적대 세력의 진지에까지 전해졌다.

“혈근경은 본교의 것이다!”

염화살마가 천 명의 마교도를 뒤로 두고 외쳤다.

“그게 그렇게 갖고 싶어서 몰래 암살이나 했느냐!”

산화일장이 삼 일 전의 일에 대하여 외쳤다.

“누가 할 소리!”

“그래서 네놈들이 사파라는 게다!”

무림맹도 당한 것이 있어 격렬하게 반응했다.

마교는 저게 뭔 개소리나는 반응이 나왔다가, 이내 수그러들었다.

마공의 영향으로 이제 곧 싸울 것이라는 상황에 흥분한 듯 살의로 가득한 눈을 번들거렸다.

“힘이 곧 모든 걸 지배한다!”

염화살마가 으르릉거렸다.

“죽여라! 약탈해라! 빼앗아라! 힘이 모든 것이라는 걸, 그게 곧 면죄부라는 마교의 법칙을 가르쳐 줘라!”

와아아아아!

하늘이 무너질 만큼의 함성 소리가 주변을 뒤덮는다.

그 뒤로 무림맹과 사도천의 함성이 따랐다.

칠대 세력이 전부 한곳으로 향해 진격한다.

목적지는 두말할 것도 없이 중앙의 고원이었다.

각 세력에서 발이 빠른 별동대들이 따로 빠져나왔다.

나머지 인원들은 격돌할 적군에 대비했다.

채앵!

첫 번째 금속음이 터져 나왔고, 그 뒤로 수많은 철음이 공명하듯이 시끄럽게 울어 댔다.

하지만 그 소리조차도 얼마 지나지 않아 비명 소리에 의하여 묻혔다.

“크아아악!”

“아악!”

“이 더러운 사파 놈들!”

“정파의 위선자 새끼들아!”

“크하하! 죽어, 죽어라!”

난리도 아니었다.

삼천 명이 전부 한곳에 몰려 싸우는 건 장관이었다.

한순간에 수십 명이 목숨을 잃는다.

지옥이 있다면, 이곳이었다.

인세의 지옥이 여기에 펼쳐져 있었다.

푸르른 꽃도 시뻘갛게 물들었다.

“하하! 이제 나도 천하제일 고수다!”

별동대 중 사도천이 먼저 도착했다.

사파의 일류 무사가 철함을 들고 희희낙락했다.

“병신!”

푹!

“컥!”

일류 무사가 철함을 놓치면서 피를 토했다.

믿기지 않는 듯, 가슴에 꽂힌 검을 내려다보다 고개를 올렸다.

“너, 너 이 새끼…… 형님인 나를……”

“피도 안 나눈 의형제인데 뭘 형님이요? 으하하! 강호 무림이란 게 원래 이런 거 아니겠소?”

일류 무사의 의동생이자, 별동대원이 욕심으로 번들거 리는 눈으로 히죽 웃었다.

그는 인사하기 무섭게 떨어진 혈근경을 주워 사람이 없는 방향을 향해 전력으로 달렸다.

“그렇게 소리치는 것 자체가 어리석……”

서걱!

그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고원에서 일 장이라도 벗어나기 전에 그 목이 허공으로 떠올라 바닥을 굴렀다.

“흐! 혈근경이라!”

“마공이라 하면 본래 본교의 것이 아닌가!”

뒤늦게 도착한 마교도가 음산하게 웃었다.

얼굴에 묻은 피를 혀로 핥는 모습은 괴기 그 자체였다.

“아아 ……”

그다음으로 도착한 무림맹 별동대가 할 말을 잃은 채 탄식했다.

방금 전 벌어진 상황에 말을 잃었다.

무림 비급이란 이런 것이다.

어떤 무공이건 간에 의(義)로 맺어진 연조차 한순간에 끊어 버린다.

“여기에서 곱게 빠져나가지는 못할 것이다.”

곤륜의 무인들이 혈근경을 쥔 마교도를 포위했다.

“호! 곤륜의 말코 놈들!”

“지긋지긋하구나!”

칠검전쟁.

그 전쟁이 이제 막 시작됐다.

눈을 감으면, 과거의 기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누군가의 비명이, 다른 누구의 비명을 불렀다.

전생에 칠검전쟁에 참전한 적은 없다.

그때는 아직 화산파에서 얌전히 수련만 하고 있을 때였다.

그러나 눈앞의 광경은 어느 때보다 익숙했다.

여기에 있는 그 누구보다 알고 있었다.

머리까지 어지러울 정도로 코를 찌르는 짙은 혈 향과 고막을 찢어발길 정도로 화음을 이루는 비명까지.

머릿속 두뇌 너머 영혼 깊숙이 각인되어 있었다.

“가라! 정상을 향해라!”

남궁재영의 목소리가 그 상념을 깨웠다.

과거가 사라지고, 현재에 도착한다.

멈췄던 시간이 다시 흘러갔다.

무림맹 천인대는 오대 세력에 맞게 이백 명씩 다섯 부대로 나눠졌다.

그중 이십 명씩 빠져 별동대를 구성하고, 전쟁이 시작되자마자 먼저 정상으로 향했다.

한 부대당 백팔십 명이 남았고, 주서천 일행의 경우 남궁재영이 지휘하는 부대로 들어갔다.

“남궁세가와 사천당가다!”

제일 먼저 마주친 적은 사도천 무리였다.

“선봉은 저희에게 맡겨 주시지요!”

당혜의 소맷자락이 펄럭이자, 그 안에서 독을 바른 침이 위를 향해 치솟았다가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으아악!”

“폭우이화침(暴雨梨花針)이다!”

당가의 독문 암기로서, 한두 개가 아닌 수십여 개를 단숨에 발사해 폭우처럼 쏟아 내리게 한다.

조금이라도 찔릴 경우 곧장 중독되기에 무림에서도 악명 높기로 유명하다.

다만 제조법이 손쉬운 것이 아닌지라 당가에서도 귀한 쪽에 속한다.

사용하는 데 마음 좀 먹었다.

“독봉! 네 이녀…… 커헉!”

중독된 사도천 무사가 달려오다 고꾸라졌다.

“됐다! 이제 뒤로 물러나라!”

남궁재영이 당혜를 칭찬하면서 후퇴 명령을 내렸다.

‘아무리 독왕이 딸에게 관심이 없다고 한들, 그래도 딸아이를 챙겨주면 약간의 빚을 지게 할 수는 있다.’

남궁재영은 이 와중에도 명분에 관한 이익을 계산하여 행동했다.

“남궁세가의 창궁(蒼窟)을 똑똑히 보여 줘라!”

와아아아!

남궁세가가 사천당가 일행을 호위하며 나아갔다.

“것 참, 너무 하구만! 저 좀생이 놈들!”

초련이 그걸 보고 욕했다.

같은 부대인데도 금의검문 취급은 좋지 못했다.

도와줄 생각은커녕 존재 자체도 잘 인식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금세 주변의 목표가 됐다.

사도천인지 마교인지도 모를 험상궂은 남자들이 덤벼들었다.

“죽어랏!”

“너나 죽어라!”

주서천이 검을 화려하게 휘둘렀다.

검 줄기가 지나갈 때마다 적들이 추풍낙엽처럼 나가떨어졌다.

전생에서 몇 번이나 봐 왔던 전장.

그러나 전과는 다른 점이 있으니, 바로 무위였다.

전에는 고수들의 눈을 피해 가면서 하수들과 싸우다가 지치면 적당히 숨어 지냈다.

운이 좋아 어찌어찌 전쟁이 끝날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고, 중상을 입어도 사지는 무사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럴 필요가 없다.

그렇게 우러러보던 고수이자 강자가 자신이었다.

“대장. 이건 언제까지 들고 있어야 하오?”

금의검문 무사들 중 한둘도 아니고 무려 여섯 명이 삼 척 길이의 상자를 들고 따라오고 있다.

무게가 나가 힘든 것 같지는 않지만, 전장 한복판이니 주변의 습격에 불안한 듯 눈동자를 굴려 댔다.

“한 번 쓰면 끝이지?”

“그렇소.”

“그러면 좀 더 기다려.”

전장은 혼돈 그 자체였다.

더 이상의 구분이 무의미했다.

다들 뒤섞여서 서로를 공격하는 데 힘썼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무리가 있었는데, 바로 소살대(燒殺隊)였다.

“전부 태워 죽여라!”

염화살마가 바짓가랑이를 주물럭거리면서 웃었다.

눈앞에 있는 사람들이 불에 타면서 비명을 지를 것을 상상하니 아래쪽 분신이 벌써부터 벌떡 섰다.

전에 산화일장이 말한 대로 염화살마는 사람을 태워 죽이는 데 쾌감을 느끼는 이상성욕자였다.

“크하하핫!”

“죽어라!”

소살대원들은 대주인 염화살마만큼은 아니었으나 사람을 태워 죽이는 것을 즐거워하는 마인들이었다.

그들이 지나가는 곳마다 불길에 휩싸여 괴로워하는 무인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하하하! 저걸 봐 봐!”

“춤을 아주 잘 추는걸!”

소살대원 몇몇은 나비처럼 춤춘다면서 박수를 쳤다.

도저히 제정신으로 보기 힘들었다.

그야말로 악몽 그 자체!

염화살마는 소살대를 이끌고 정상으로 향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을 가로막는 무리가 있었다.

“네 이노오옴!”

상명진인의 분노로 가득한 외침이 청천벽력처럼 떨어졌다.

그 얼굴은 노기로 가득 차 있었다.

방금 전까지 실컷 웃던 염화살마는 웃음기를 지우고 눈앞에 나타난 도사 무리를 노려봤다.

“언제나 본교 앞에는 네놈들이 막는구나. 곤륜파!”

염화살마는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마교가 무림에 가려면 필연적으로 청해를 지나야 했고, 그곳에는 항상 곤륜파가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

굳이 정마대전이 아니라도 곤륜파와 마교는 셀 수 없는 세월 동안 서로를 증오하면서 싸워 왔다.

“네놈들의 방해로 일을 그르친 적이 몇 번인지 아느냐? 이번에야말로 눈엣가시였던 네놈들을 태워 죽이고, 겸사겸사 혈근경도 손에 넣도록 하겠다!”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전쟁에서 정보란 건 상당히 중요한데, 이는 그 정보 하나로 승세가 좌지우지되기 때문이었다.

산화일장은 특히나 그 정보에 신경을 많이 썼다.

전쟁이 시작된 이후로 실황으로 보고를 받았고, 그중에는 상명진인과 염화살마에 대해서도 있었다.

“으하하!”

주목을 받아도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산화일장에게 최대의 적은 상명진인과 염화살마였다.

한데 그 최대의 적수들이 공멸하려 한다.

이제 더이상 장해가 될 것은 없었다.

“혈근경은 이제 이 산화일장의 것이다!”

처음부터 고원을 주시하고 있었지만, 혈근경을 탈취하여 도주한 자는 한 명도 없었다.

정상을 향해서 올라가는 무사들은 수두룩했는데, 어째 내려오는 자는 없다.

저 위에서 벌어지는 쟁탈전이 얼마나 치열한지 간접적으로나마 느낄 수 있었다.

산화일장도 위를 향해서 몸을 날렸다.

앞을 가로막는 자가 있으면 패도적인 장법으로 전부 쳐 죽였다.

“꺼져라!”

“으악!”

당연한 이야기지만 혼자서 오른 건 아니었다.

아무리 산화일장이 천하백대고수라 할지라도, 백 명이 붙는다면 답이 없다.

곁에 호위도 있었다.

산화일장은 전속 전진한 끝에 고원의 정상에 드디어 도착할 수 있었다.

“목숨이 아깝지 않다면 혈근경을 넘기는 것이 신상에 좋을 것이다!”

상황이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지만, 그래도 여유를 부릴 수는 없다.

얼른 혈근경만 취하고 돌아가려 했다.

“산화일장!”

천하백대고수의 등장에 싸움이 소강상태에 들어섰다.

정파인들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었고, 그에 반면 사파인들은 반색하거나 아쉬워하는 모습도 보였다.

산화일장은 아쉬워하는 사파인들을 보면서 어리석다는 듯이 혀를 찼다.

“쯧쯧. 네놈들같이 하수가 혈근경을 익혔다간 마성에 미쳐 결국 주화입마를 피하지 못할 것이다. 쓸데없는 욕심 부릴 생각하지 말고 날 돕기나 해!”

“알겠습니다!”

사도천 무리가 별말 하지 않고 욕심을 버렸다.

산화일장이 등장한 순간 상황은 이미 종결됐다.

혈근경을 손에 넣고 도망쳐도 금세 따라잡힐 게 뻔했다.

“산화일장! 무인으로서 마공을 봉인하지 않고 사사로운 이익에 이용하려 하다니! 부끄럽지도 않느냐!”

무림맹 측에서 청년이 한 걸음 나서서 외쳤다.

산화일장의 고개가 돌아갔다.

“애송이. 넌 누구냐?”

“소태산, 고찬정이다!”

“태산파의 소문주? 잘도 여기까지 왔군.”

산화일장이 심드렁한 얼굴로 피식 웃었다.

자세히 보니 고찬정 외에 다른 후기지수들도 보였고, 그들을 보호하듯 오악검파의 제자들이 보였다.

“일지검에 검화. 남궁재영은 어디있고 웬 애송이들만 여기에 있는 게냐?”

산화일장이 누구를 찾는 듯 주변을 둘러봤다.

남궁재영은 상명진인이나 염화살마 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충분히 경계할 수준의 적수는 된다.

괜히 혈근경에 정신이 팔려 뒤통수를 맞는 건 사양이다.

“선배님께서는 전장을 정복하고 계신다.

그분의 검에 마도와 사도의 무리가 곧 전멸할 것이니, 산화일장 네놈도 순순히 항복하는 게 좋을 것이다!”

“소, 소문주!”

고찬정이 답하자 태산파의 제자들이 기겁했다.

“허, 묻는다고 전장 상황을 곧이곧대로 답해?”

산화일장이 그걸 보고 좋아하면서도 어이없어했다.

“정파의 후기지수 놈들은 머릿속이 텅 비었다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이 정말이구나. 네가 말한 게 얼마나 생각 없고 어리석은 대답인지 알고 는 있느냐?”

“흥! 선배님께서 오시지 않는다 할 지라도, 사파의 우두머리 따위 결국 우리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항복을 제안한 건 최소한의 자비를 보여 준 것뿐이지.”

“그렇다! 내 일지검에 과연 몇 수 버틸 수 있을까?”

곽채도 앞으로 나서면서 자신만만하게 소리쳤다.

다만 그 주변의 정파인들은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숭산파의 제자들 또한 ‘저질렀다!’라는 얼굴이었다.

산화일장은 그 건방진 태도에 화가 난다기보다는 어이없어했다.

“내 살다 살다 너희처럼 오만방자하고 우둔한 놈들은 처음이구나. 그래도 이걸로 함정이 없다는 건 알았다. 그 건방진 혀를 더 이상 놀릴 수 없도록 단숨에 끝내 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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