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十章폭섬도문(暴閃刀門) (71/254)

第十章폭섬도문(暴閃刀門)

삼견은 사형제 중에서도 경공과 보법이 특기였다.

지면을 박차며 뛰어드는 그 모습은 사냥개 그 자체.

주서천과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힌다.

휙!

시위를 재차 튕기면서 화살을 토해낸다.

“흥!”

삼견이 어림없다는 듯 전력으로 도를 휘두른다.

가볍지 않은 압력이 뭉친 도풍(刀風)이 뿜어져 나왔다.

잘만 날아가던 화살은 자연적인 것이 아닌, 인위적인 바람에 의하여 그 방향이 꺾였다.

꼬리에 달린 깃털도 도기에게 예리한 단면도를 남기고 잘렸다.

“과연. 일류부터는 잘 안 통하나.”

주서천이 흡족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기습이라면 모를까 정면 승부로는 조금 힘들다.

자신이 평생을 궁술에 매진했으면 모른다.

애초에 일류 이상 무인에게 써 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기도 했고, 중도만공은 무공의 본연의 힘을 끌어낼 수 없으니 여기에서 만족했다.

“죽어랏!”

삼견이 머리를 쪼갤 기세로 도를 휘두른다.

“으악! 백인장!”

근처에 있던 낭인이 비명을 질렀다.

겨우 하루 동안 정이 들었을 리 없다.

그가 사라진다면 앞으로의 싸움이 험난해질 것 같아서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서 주서천을 호위했던 것이다.

모든 이들이 주서천의 죽음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너나 죽어라!”

검이 번개같이 뿜어져 나오며 도를 쳐 냈다.

“무, 무슨……”

쳐내는 힘이 보통이 아니다.

대해와 같은 공력에 삼견도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느꼈고, 그것이 죽기 직전에 한 최후의 생각이었다.

삼견이 튕겨 올라간 도를 제자리에 되돌리기도 전에 주서천의 검이 목을 스치고 지나간다.

서걱!

눈을 부릅뜬 채로 굳어진 삼견의 머리가 목과 분리되어 공중에서 화려하게 회전했다.

“검……?”

바로 뒤에 있던 사견이 상황 판단을 하지 못했다.

음호사궁이라는 별호의 활잡이가 친형을 검으로 단숨에 베어 버리자 머리가 멍해졌다.

“검수라니까!”

주서천의 몸이 흐릿해졌다가 삼견 앞에 나타났다.

삼견이 아차 하고 도를 휘두르려 했으나, 늦었다.

주서천은 삼견의 흉부에 검을 꽂은 다음 빼냈다.

“꺽!”

외마디 비명을 흘린 삼견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일류 고수 둘이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다.

“네 이노오오옴!”

동생을 잃은 형의 분노가 전장을 울린다.

일견과 이견이 살기를 내뿜으면서 달려온다.

이견이 제일 먼저 도착해 도법을 펼쳤다.

그 기세가 가히 폭풍과도 같아서 주선천도 감탄했다.

‘과연 이게 폭섬도문의 무공인가!’

폭섬도문의 무공은 사도 중의 사도였다.

폭섬기공은 체내에 흐르는 기혈(氣血)의 순환을 폭발시켜 순간적으로 신체 능력을 몇 배나 향상시키는 효능을 지니고 있다.

대신 몸에 부담이 많이 가서 한 번 쓰면 장기간 동안 유지하기는 힘들다.

“이놈! 이놈!”

이견이 화를 내면서 도를 몇 번이나 휘둘렀다.

몸집이 큼에도 불구하고 그 움직임 만은 빠르다.

주서천은 먼저 빗발처럼 쏟아져 내리는 도격을 검으로 맞받아치면서 익숙해지는 데 힘썼다.

상대편에선 전력을 다했지만, 주서천은 탐색하는 데만 집중했다.

“이, 이럴 수가……”

“도대체……?”

한편 좌중은 잠시 싸우는 것도 멈추고 이견과 주서천의 대결에 넋 나간 얼굴로 구경하는 데 바빴다.

“음호사궁이 검으로 막아 내고 있는데……?”

“밀리는 것 같긴 하지만……”

“멍청한 놈아. 저건 어떻게 막을 수 있는 게 아니야. 저대로 버티기만 해도 이견은 제풀에 지쳐 쓰러지니 이길 수 있다.”

“허어!”

“활잡이라며?”

“별호 자체도 ‘궁’ 아닌가!”

“이 추어 같은 놈!”

이견이 씩씩거리면서 도에 힘을 더했다.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것 같아도 도법을 펼치고 있었다.

휘익!

아래에서 위로 칼날이 날아오자, 한 걸음 뒤로 후퇴해서 회피했다.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렸다.

이견이 위로 향하는 힘을 멈추고 곧장 두 걸음 앞으로 전진해, 있는 힘껏 아래로 내리그었다.

채앵!

불꽃과 불꽃이 튀긴다.

주서천의 검이 이견의 도를 막아 냈다.

“아우야! 놈을 결코 놓치지 말거라!”

일견이 타오르는 눈을 번득이면서 날아와 도를 휘둘렀다.

부웅!

후방에서 칼날이 옆구리를 노리고 들어왔다.

“이 정도인가!”

탐색전을 끝내기로 했다.

막고 있는 도를 위로 튕겨낸 동시 왼쪽 발을 중심으로 삼아 몸을 회전했다.

손에 쥐고 있던 검도 반원을 그린다.

옆구리로 들어오던 도가 검에 튕겨져 나갔다.

‘내, 내가 밀려?’

분노로 이성을 잃었던 일견이 정신을 번쩍 차렸다.

폭섬도법은 무림에서도 패도적이고 강맹하기로 이름이 높다.

베는 힘과 그 위력이 마공과 견줘도 지지 않을 정도인데, 밀어 버리기는커녕 간단히 밀렸다.

“무슨 놈의 내공이…… 윽!”

“많냐고? 나도 안다!”

주서천이 말을 끊으며 이십사수매화검법을 펼쳤다.

이초식인 매화집무부터 시작해 육초식인 매화낙락까지 보이는 데 한순간.

매화 대신에 검기가 떨어졌다.

“억!”

일견이 버거워하면서 뒤로 물러났다.

반대편에 있던 이견이 얼른 끼어들어 주서천의 검법을 막는다.

파바밧!

검법이 계속해서 매화빈분으로 이어졌다.

어지러울 정도의 검로가 무수히 펼쳐지며 둘을 덮쳤다.

“크으윽!”

채채채챙!

검초를 막아 냈지만, 전부는 아니었다.

검에 실린 기를 흘리진 못해 조금씩 상처가 늘어났다.

팔초식이 매화혈우라는 이름에 걸맞게, 검에 묻은 피가 늘어날수록 검광은 붉은색으로 빛났다.

이십사수매화검법은 변검(變劍)이 중점이다.

변화가 워낙 자유자재이다 보니 단순하고 일격 에 중점을 둔 폭섬도법으로는 맞대응하기가 힘들었다.

오랫동안 서로 합을 맞춰 온 형제이기에 겨우 막는 게 가능했지, 그게 아니라면 진작 패배했다.

“이리도 빠르다니!”

일견이 검법을 겨우겨우 막아 내면서 신음을 흘렸다.

폭섬기공의 신체 능력 강화는 상당해서, 절정의 고수가 쓴다면 순간적인 능력은 초절정과도 맞먹는다.

신체 능력만 보면 초절정과 맞먹음에도 불구하고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매화구변(梅花九變)!’

검이 또다시 변화를 보인다.

이십사수매화검법에 겨우 익숙해지는 사이에 아홉 번이나 큰 변화가 이루어지자 형제는 혼란에 빠졌다.

“호, 혹시……”

일견의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변화가 가득하나 난잡하지 않고, 군더더기 하나 없는 정확한 움직임은 아름다울 지경.

이와 같은 상승의 검법은 무림에서도 흔하지 않다.

“눈썰미가 굉장한데.”

주서천이 짐짓 감탄하며 솔직하게 칭찬했다.

“매화만개(梅花滿開)!’

아홉 가지의 모습을 보이던 매화가 활짝 핀다.

검이 지나가고 남은 아홉여 개의 잔상이 순간 사라졌다가 봉우리가 열리듯 활짝 피며 주변을 삼켰다.

“커허억!”

일견과 이견의 몸에 무수한 검상이 남았다.

매화구변으로 아홉여 개의 변화를 초고속으로 펼친 다음 초식을 이어 끊어졌던 대기의 기를 자극해 이렇게 꽃이 만개한 것처럼 보이게 할 수 있다.

구경꾼들 중 고수가 있었다면 완벽하게 이어진 검초에 감탄하겠지만, 아쉽게도 이곳에는 그런 고수가 없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인 데다가 방금 펼쳤던 검법 자체가 워낙 수준이 높았기에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주서천이 가볍게 검을 휘두르니 일견과 이견이 피를 흩뿌리는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

먼저 고요를 깬 건 폭섬도문이었다.

“으아악!”

“포, 폭섬사견이 전부 죽었다!”

적군의 사기가 눈에 뛸 정도로 가라앉았다.

이 중에서 제일 고수였던 네 명이 순식간에 죽었으니 당연했다.

“와아아아!”

“백인장을 따르라!”

“우리에게는 음호사궁이 있다!”

묘가검문의 사기는 폭발하듯이 치솟았다.

* * *

한편, 묘진배는 무사들을 이끌고 우회해서 구릉을 올랐다.

“크악!”

폭섬도문도가 비명을 지르며 나가 떨어졌다.

“하하하! 좋아! 생각대로구나!”

묘진배가 흡족하게 웃었다.

움호사궁을 비롯해, 낭인 출신 중에서 실력 있는 자들 몇몇을 정면에 배치했다.

폭섬도문이 어제의 피해 탓에 정면에 신경 써서 병력 대부분을 그곳에 두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우회해서 몰래 침입하니 진지로 향하는 길목을 지키는 무사들이 적었다.

“부문주. 뭔가가 이상합니다.”

곁에 서 있던 가신이 말했다.

“이상하다고?”

“그게…… 뭐랄까. 쉬워도 너무 쉽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하하하. 자네도 걱정이 너무 과하군. 그야 내 책략이 완벽했기 때문이라네. 걱정하지 말게나.”

묘진배는 가신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웃었다.

그러나 얼마 뒤의 그 웃음은 싹 사라지게 됐다.

거도(巨刀)!

구릉의 정상에는 중년의 거한이 기다리고 있었다.

칠 척을 가뿐히 넘는 신장도 범상치 않지만, 잘 발달된 걸 넘어 과할 정도의 근육은 짐승과 같았다.

상의를 입지 않아 갈라진 근육뿐만 아니라 세월의 흔적을 보이는 무수한 흉터들까지 전부 보였다.

어깨와 팔은 통나무보다 굵었고, 주름진 얼굴은 마치 한 마리의 야수를 연상시켰다.

아무렇게나 자란 산발과 같은 머리칼은 전부 뒤로 넘긴 것이 특징이었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구나, 묘가좌검.”

“네 이놈! 어째서 혼자더냐!”

가신의 불길함이 맞아떨어졌다.

“그걸 말이라고 묻느냐? 멍청한 놈!”

거도, 구종(具種)이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음을 흘렸다.

딱!

구구구구!

엄지와 중지를 부딪치자 지면이 울렸다.

아까 전 경고했던 가신의 얼굴빛이하얗게 질렸다.

“함정입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곳저곳에서 도를 든 무사들이 나타났다.

자신들이 왔던 곳에서 무사들이 양껏 몰려와 퇴로가 완전히 막혔다.

총 전력차도 두 배다.

묘진배가 눈을 질끈 감았다.

‘당했구나!’

가신이 하는 말을 좀 더 주의 깊게 들어야 했다.

그만 자만에 빠져 함정에 보기 좋게 걸렸다.

“으하하! 네놈 수를 모를 줄 알았느냐?”

구종의 비열한 웃음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흥! 보아하니 문파의 무사들 대부분이 여기에 있는 것 같구나.

이러면 네놈의 본대에 힘이 부족해 정면이 금방 뚫릴 것이다. 어리석은 건 네놈이다!”

“날 돌대가리로 아는군. 내 그럴 줄 알고 칼 좀 쓴다는 자식들을 보내 뒀다. 폭섬사협이라는 이름은 들어보았겠지?”

“폭섬사협이 아니라 폭섬사견이겠지. 과연, 그 개놈들을 보냈다면 본대가 조금이라도 더 버티겠구나.”

사파인이라서 그런지 말이 거칠다.

“흥! 그게 네 실수다! 폭섬사견이 없다는 건 여기에도 이렇다 할 고수가 별로 없다는 뜻이겠군!”

묘진배가 코웃음을 치며 검을 세웠다.

“뭐라고? 으하하하!”

구종이 허리를 젖히며 크게 웃었다.

“여기에서 네놈만 처리한다면 , 우리의 승리다!”

묘진배가 검에 기를 불어 넣었다.

그의 몸에서 살의가 쏟아져 나와 구종에게로 향했다.

“묘가좌검 설마 네가 내 상대가 될 줄 아느냐?

이 천하백대고수이자 폭섬도문주 구종에게?”

“천하백대고수가 네놈 하나뿐인 줄 아느냐?”

“병신 같은 놈, 한심하기 짝이 없구나.”

피식.

구종이 가당치도 않다는 듯 바람 소리를 냈다.

“천하백대고수 안에서도 우열이 있다는 걸 모르나 보군.”

구종이 별호에 걸맞은 크기의 칼을 뽑는다.

잘 보면 그 도신에는 실처럼 가는 기가 넘실거렸다.

“초절정이란 걸 내 앞에서 자랑해봤자…… 헉!”

묘진배가 비웃으려다가 눈을 부릅떴다.

“서, 설마!”

집중하면 보이지 않던 도기가 점차 반투명해져 도신의 형체를 따라 유형화한다.

물처럼 일렁이던 그 기는 이내 견고해지고 단단해져 얼음처럼 굳어졌다.

“이제 그만 죽어라!”

사파는 정파와 다르게 우두머리를 대부분 무력으로 정한다.

묘가검문도 마찬가지다.

묘가검문의 이인자는 묘진배고, 일인자는 당연히 문주인 묘진각이었다.

하나 그렇다고 함부로 전선에 나설 수는 없었다.

최고 고수이기 전에 문파의 중심인 탓이다.

괜히 나섰다가 포위라도 당해 죽기라도 한다면 그 피해와 혼란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문파의 운명을 건 싸움에 참전하지 않을 수는 없었지만, 거리를 두고 지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큭, 크헉! 그, 급보…… 급보입니다!”

전령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외쳤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이냐! 말해봐라!”

묘진각이 타들어 가는 목소리로 황급히 물었다.

“부, 부문주께서 전사하셨다고 합니다!”

“뭐라고?”

묘진각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전령은 보고하면서 정상에 있던 일을 자세하게 알렸다.

묘진배의 정예가 구릉 정상에 도착

그러나 구종에게 수를 읽혀 미리 준비한 함정에 걸렸다는 것.

정예는 끝까지 남아 어떻게든 반항하나 결국 몇몇 무사를 제외하곤 전멸 끝내 묘진배의 목도 잘렸다.

“그곳에서 가까스로 생존한 무사들에게 들은 것이니, 유감스럽게도……”

“으아아악! 구종! 구종, 이 개새끼!”

묘진각이 걸쭉한 욕설을 내뱉었다.

눈이 시뻘갛게 충혈되고, 핏줄이 튀어나왔다.

분노로 인해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라 돌아오지 않았다.

핏줄을 잃은 충격에 제정신이 아닌 듯 알아들을 수도 없는 괴성을 내지르면서 난동을 부렸다.

“죽인다! 내 손으로 기필코 죽여 버리겠다!”

“무, 문주! 진정하시오!”

“그렇습니다! 일단 진정하셔야 합니다!”

보좌하고 있던 장로들이 묘진각을 뜯어말렸다.

문주 다음으로 강했던 부문주를 잃은 상황은 결코 좋지 않았다.

묘진각까지 이성을 잃으면 끝이다.

“진정? 지금 내 동생이 살해당했는데 진정하라고?”

“어떤 심정인지 알고 있습니다만, 이대로 이성을 잃으신다면 제대로 된 복수도 할 수 없습니다.”

장로들이 묘진각을 최대한 어르고 달랬다.

묘진각도 바보는 아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복수와 광기에 불탄다면 그거야말로 구종이 원하는 바이다.

으드득!

“……그 외에 또 보고할 것은 없느냐?”

묘진각이 구종의 손에 죽었다는 말을 듣자마자 괴성을 질러 대는 탓에 보고가 도중에 끊겼다.

전령은 절망에 가득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마, 맙소사!”

그 절망은 좌중의 모두에게 전염됐다.

“강기? 구종이 도강을 써?”

“그, 그렇습니다.”

“……”

불을 보듯 새빨갛게 타오르던 얼굴도 강기라는 말에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만큼 중대한 사안이었다.

정파면 몰라도 사파는 무공 숙련이 빠르지만, 경지의 벽이 정파보다 높고 두꺼운 것이 특징이다.

정파보다 고수가 적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파에서도 화경이 흔하지 않은데, 사파야 두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묘가검문에는 화경의 고수가 없었다.

문파 내 최고수 묘진각도 초절정이다.

 …… 

부들부들!

묘진각의 어깨가 격렬하게 떨렸다.

입술을 깨문 힘이 어찌나 강했는지 입술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졌다.

“문주.”

장로가 걱정스러운 어조로 그를 불렀다.

“알고 있소!”

전선이 어찌 되었을지는 안 봐도 뻔하다.

지금 최전선의 본대에는 고수가 없다.

정예 대부분이 별동대에 편성되어 죽은 묘진배를 따랐던 탓이 다.

그에 비해 상대 진영에서는 얼마 전 폭섬사견도 등장했으며, 설상가상으로 묘진배를 비롯한 별동대가 전멸했다.

아마 그 소식에 사기는 나락으로 곤두박질쳤을 터.

이후의 일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다.

묘진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지도가 올라온 탁자를 지나쳐, 막사 밖으로 나가 명령을 내리려 했다.

“지금 당장 퇴각하고 명……령을……?”

“……?”

문주가 말꼬리를 흐리자 장로들이 의아해했다.

이내 장로들도 묘진각을 따라 나왔다가 경악했다.

“커억!”

도대체 저기서 무슨 일이……?

분명 일다경 전만 해도 정상은커녕 중턱 언저리에서 나아가지 못하고 격렬하게 싸우고 있었다.

한데 이게 무슨 일인가.

분명 사기를 잃고 지지부진해야 할 본대가 어느덧 정상에 도착해 있었다.

* * *

묘가검문의 본대는 파죽지세로 진격했다.

“와아아아!”

“쳐라!”

금적금왕!

적을 칠 때는 대장부터 잡아라!

네 명의 고수가 죽자 폭섬도문은 혼란에 빠졌다.

전력이라 할 수 있는 무사들은 대부분 정상의 진지에 가 있었다.

그 탓에 전선의 수비가 형편없었다.

지휘관이자 고수였던 폭섬사견이 사라지자, 남은 건 삼류나 이류 정도의 하수들뿐이었다.

안 그래도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아진 묘가검문의 본대는 이를 눈치채고 신나서 돌격했다.

그 결과 구종이 묘진배의 잘린 머리를 들고 적군에게 알리려 했을 때는 그들이 코앞까지 와 있었다.

“주서천! 주서천! 주서천!”

구종은 적잖이 당황했다.

원래라면 절망해야 할 적군이 그러기는커녕 신나서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이름을 외치는 게 아닌가?

“문주님! 적들이 주변을 포위했습니다!”

저 멀리서 정찰 무사가 다급한 목소리로 외쳤다.

“뭐? 포위?”

방금 전과 반대되는 상황에 구종이 황당해했다.

“주서천은 대체 누구고, 내 자식들은 도대체 어디서 뭘 하는데 저놈들이 여기까지 오게 만든 거야?”

“큭, 아들들 말이오? 여기에 있소!”

콰앙!

누군가의 외침에 문이 박살 났다.

산산조각 난 파편이 먼지구름과 함께 바닥을 구른다.

그 탓에 문 바깥에 누가 있는지 잘 안 보였다.

“웬 놈이냐!”

구종이 미간을 찌푸리면서 도를 크게 휘둘러 바람을 날렸다.

그러자 먼지가 걷히면서 모습이 나타났다.

“반갑소! 화산파의 주서천이라고 하오!”

주서천이 어깨에 시체를 매단 채로 답했다.

“네 이노옴!”

구종이 시체를 보자마자 분노했다.

그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지면서 주변을 휩쓸었다.

내공이 약한 자들은 버티지 못하고 고막이 찢어져 괴로워했다.

“그렇게 너무 나쁘게 생각하지 마시오. 댁 아드님께서 날 죽이려 하여 정당방위로 대항한 것뿐이오.”

주서천이 일견과 이견을 바닥에 내려 두었다.

“끄흐으윽!”

구종이 일견과 이견을 보고 비통에 잠겼다.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이 어느 정도인지는 감히 재 볼 수 없다.

하지만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찾았다.’

주서천의 눈이 구종의 왼손 중지로 향했다.

‘틀림없다!’

무림법보, 기사분반!

무당파의 삼대신공 중 양의신공과 동일한 효능을 지녔다는 보물이 눈 앞에 있었다.

‘수고를 덜었네.’

문파까지 쳐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대신 폭섬도문주를 쓰러뜨려야만 했다.

‘성가신 상대를 만났어.’

거도, 구종.

현생뿐만 아니라 전생에서도 들었던 이름이다.

‘그나저나 나의 개입으로 인해 역사가 또 바뀌었다.’

시선을 힐끗 돌려 구종 발 밑에 떨어진 머리를 봤다.

얼굴을 보니 묘진배가 틀림없다.

‘내 기억이 맞다면, 묘진배는 여기서 죽지 않는다.’

이 시기에 일어난 묘가검문과 폭섬도문의 분쟁은 원래의 역사에서도 상당히 유명해 잘 알고 있었다.

칠검전쟁 때도 두 문파는 참가는커녕 관심도 주지 않았다.

그건 정사대전 직전까지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서로 간에 지겨운 소모전만 하다가 정사대전이 일어났고, 사도천주의 명령에 결국 휴전한다.

‘그리고 정사대전을 통해서 화해하게 되지.’

사파끼리 싸울 때가 아니었다.

서로를 죽이지 못해 안달이었던 두 문파는 결국 공통의 적을 두고 함께 싸우다가 정 이들어 화해한다.

하지만 자신의 활약으로 역사가 바뀌었다.

원래라면 서로 기회만 엿보며 소모전을 이어 갔어야 했지만, 주서천의 등장으로 묘진배가 생각을 바꾼다.

공에 눈이 먼 그는 음호사궁이란 신진 고수를 미끼로 삼아서 본대로 내보낸 다음 별동대를 구성했다.

그리고 우회해 습격하려 했지만, 구종에게 수를 읽혀 보기 좋게 당하게 된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친동생을 잃었으니, 설사 정사대전에 함께 싸울 일이 생긴다 할지라도 그 한은 결코 잊혀지지 않은 채 영원히 남을 것이다.

구종 역시 직접적인 원수는 주서천이지만, 묘가검문과의 분쟁으로 자식을 잃었으니 오늘의 일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앞으로의 일을 위해서라도 구종을 기필코 죽여야 한다.’

마도팔문 중 일문의 원수가 됐다.

무림은 은원 관계로 돌아가는 세상이다.

문주의 혈육을 죽였으니 앞날이 훤히 보였다.

도망치면 쫓아올 것이고, 숨는다면 찾아낼 것이다.

그 원한은 주변 사람에게도 갈 것이 뻔했다.

그것만큼은 그냥 둘 수 없었다.

“주서천? 주서천! 주서처어언!”

자식들을 잃은 아비가 원수의 이름을 부르짖는다.

“편안하게 죽지는 못할 것이다!”

구종의 눈에는 주서천만 들어왔다.

주변에 누가 있는지는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크아아아!”

정파의 내공심법은 느리지만 안전하다.

사파의 내공심법은 빠르지만 불안하다.

그 좋지 않은 단점이 자식의 죽음으로 나타났다.

고수라고 주화입마나 내상에 자유로운 건 아니다.

감정의 포화를 조절하지 못한 구종은 눈이 벌게진 채로 포효했다.

실핏줄이 터져 피눈물을 흘린다.

크나큰 정신적 충격에 결국 주화입마를 피하지 못했다.

아들을 전부 잃은 건 악몽이었다.

콰앙!

구종이 서 있던 자리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굉음에 흡, 하고 몸이 긴장된 순간 구종이 몸을 날려 말 그대로 날아와 도를 휘둘렀다.

“이런!”

주서천이 몸을 옆으로 날려 바닥을 굴렀다.

방금 전까지 서 있던 자리에 도가 처박힌다.

쿠앙!

도가 이제껏 본 적 없던 위력을 자랑했다.

분명 베는 것이 중점일텐데 철퇴를 휘두른 모양새였다.

바닥은 반구형으로 움푹 파이고, 거미줄처럼 금이 쩌적 갔다.

사람이란 틀을 벗어난 힘에 주서천이 혀를 내둘렀다.

“이게 정녕 도법이냐?”

폭섬도법을 대성한 화경이 이리 무서울 줄이야!

“쳐라!”

“문주님께선 이제 도왕(刀王)이시다!”

폭섬도문이 목소리를 높였다.

“도, 도강?”

화경이잖아!

반면 묘가검문 측은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모처럼 올라간 사기가 다시 떨어졌다.

화경의 이름은 가볍지 않다.

아군에겐 든든하지만 적군에게는 그야말로 공포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상천십좌를 만나도 물러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기세는 온데간데없고 주춤거렸다.

“갈!”

주서천이 내공을 실어 힘껏 외쳤다.

도가 무학 특유의 정순한 기가 사파인들의 머 릿속을 파고들었다.

마도이세라면 상반되는 성질 탓에 반대로 독이었겠지만, 사파인에게는 그런 나쁜 영향은 없었다.

“거도는 내가 맡겠다!”

검으로 구종을 가리킨다.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아군이 술렁였다.

“으, 음호사궁?”

“그래! 움호사궁이다!”

주서천이 검을 든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거도는 주화입마에 빠져 있으니 제대로 된 힘을 낼 수 없다!”

그 외침은 아군 모두에게 전해졌다.

“승리가 눈앞에 있다! 싸워라!”

“와아아!”

제일 먼저 반응한 건 그를 따르던 백인대였다.

두 눈으로 직접 무위를 보았기에 믿을 수 있었다.

화경에게 통할지는 의문이었으나, 묘한 흥분이 머리를 가득 채워 생각을 잇지 못했다.

“크아악!”

“커헉!”

의기양양하던 폭섬도문이 비명을 토했다.

“죽어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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