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九章움호사궁(音皓死弓)
정파는 문파끼리 싸우려면 명분이 필요하다.
그만큼 체면을 중시하고 눈치를 보는 탓에 잘 안 싸운다.
하지만 사파는 다르다.
마교처럼 매일 싸우지는 않지만, 그래도 정파보다는 싸움이 빈번하다.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는 공적을 두고 경쟁하거나 개개인의 비무로 싸움을 마무리하여 끝나지만, 사도팔문은 심하면 전쟁으로까지 치닫는 경우도 있었다.
그 탓에 통제가 쉽지 않아 사도천주도 이리저리 골머리를 앓고 있는 상태였다.
흔히들 말하는 사파의 자유분방함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리고 그 분쟁은 지금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그들은 이 탓에 흉마의 무덤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묘가검문(苗家劍門)과 폭섬도문(i暴閃刀門)이었다.
언제는 한 번, 폭섬도문이 이렇게 말했다.
“무공이라면 역시 도(刀)지! 검 같은 건 정파의 위선자들이나 쓰는 것이다!”
“사파인이라면 응당 도를 써야 해. 검이나 쓰는 것들은 죄다 약자거나 겁쟁이다!”
사파의 무공은 패도적인 것이 많다.
그렇다 보니 대부분이 도를 썼다.
하지만 검이 없는 건 아니다.
검공 중에서도 패도적인 초식은 얼마든지 있다.
“뭐?”
묘가검문이 제일 먼저 반응했다.
“백일창, 천일도, 만일검이라고 못들었나?
검이 만병지왕이라는 건 코흘리개라도 아는 것을!”
계기라는 건, 의외로 단순하다.
아이가 아닌 어른들도 유치한 이유만으로 싸우고, 그게 곧 단체와 단체가 다투는 전쟁으로 번진다.
그동안은 묘가검문과 폭섬도문도 입장이 있고, 함부로 움직일 수 없는 세력인지라 기 싸움만 했다.
그러나 결국 주먹 다툼이 벌어졌다가,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을 시작으로 분쟁이 터졌다.
복건(福建) 묘가검문.
묘가검문의 서기관이 물었다.
“이름.”
“주서천.”
“사문.”
“화산파.”
서기관이 고개를 들었다.
주서천은 평소의 도복이 아닌 흑의무복이었다.
“화산파의 속가계자 출신이 먹고 살기 힘들어 사파의 분쟁에 끼어들다니, 웃기기도 하지.”
속가제자는 보통 사문의 규율에 자유롭다.
통제도 가하지 않는다.
화산의 무공을 허락 없이 가르치지만 않는다면 사파의 분쟁에 끼건 뭘하건 간에 상관하지 않는다.
다만 보통 정파 중소 문파에 고용되거나, 표국의 무사가 되어 싸우지 사파 분쟁에 껴들지 않는 편이었다.
“오늘 휴전 전까지 살아남으면 은화로 두 냥이다.
사망 시에는 가족에게 가고, 폭섬도문 중진의 수급을 가져오면 추가 보상이 있으니 참조해라. 보아하니 버티지 못하고 금세 시체가 될 것 같지만 말이야.”
기사분반은 폭섬도문에 있다.
마침 묘가검문과 분쟁하고 있어 얼른 지원했다.
아무리 화경의 고수라고 해도 사도팔문 중 일문에 단신으로 쳐들어가서 기사분반을 훔쳐올 수는 없다.
“목숨을 거는 데 겨우 은화 두냥? 날도둑놈들!”
주서천이 어이가 없어 욕부터 했다.
“싫으면 관두든가.”
서기관이 흥, 하고 콧방귀를 꼈다.
“다음!”
서기관이 명부에 적고 다음 사람을 불렀고, 주서천이 멀어지는 걸 확인한 다음 명부를 고쳐 썼다.
“이 많은 무사들이 사망한 다음에 어떻게 가족을 찾아서 사례금을 보내줘? 부문주께서 뒈질 놈들을 눈여겨보고 이름을 빼라 했으니, 지워 둬야겠네.”
* * *
복건에는 주서천 혼자만 왔다.
당혜는 해독의 준비를 할 수 있도록 남창에 남았다.
자연히 호위 무사들도 남았다.
“그래. 차라리 오지 않는 게 좋지. 그놈들이 ‘네가 감히 아가씨를 부려 먹어!’ 라면서 내가 싸우던 도중 뒤통수에 암기를 던질지도 몰라.”
사천당가에 대한 신뢰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어쨌거나 주서천은 복건까지 한 걸음에 달려와 묘가검문부터 들러 분쟁에 참여한다는 의사를 표했다.
이후 적절한 절차를 밟아 이름을 등록한 다음, 주녕에 도착했다.
주녕은 복안과 병남 사이에 있는 지방인데, 묘가검문과 폭섬도문의 중간에 위치한 지점이기도 했다.
“찻잎이 많군.”
도착한 뒤의 첫 감상이었다.
근방은 경사가 심한 구릉 지대였는데, 언젠가 본 적 있던 찻잎 밭이 가득했다.
하나 원래라면 은은한 차향으로 가득해야 할 장소는 혈 향과 악취뿐이었다.
사람이 지나간 흔적이 있는 장소에 드문드문 피가 묻은 반파된 무기가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게 보였다.
그 외에도 찻잎 사이로 지독한 악취를 내는 팔이나 다리 같은 게 눈에 들어왔다.
“오리(里 : 1리 = 400미터) 정도 곧장 전진하면 구릉 위에 세워진 폭섬도문의 두 번째 진지가 나온다.
여길 점령하고 다음 진지까지 나오면 우리의 승리다. 열 명씩 짝을 지어 십인대를 결성해 싸워라.”
도착하자마자 묘가검문의 고수가 명령을 내렸다.
주서천은 근처에 있는 아홉 명과 짝을 지었다.
“반갑다. 철삼이라 한다.”
얼굴에 무수한 흉터가 난 중년인이 앞으로 나왔다.
일단 얼굴은 무수한 전장을 넘나든 역전의 용사다.
“보아하니 이 중에서 내가 제일 강한 것 같군.
십인장은 내가 맡을 테니, 내 명령을 따르도록. 그렇다면 너희는 살 수 있을 것이다. 날 믿어라.”
범상치 않은 분위기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한 사람만 제외하고.
“반갑다. 주서천이라 한다.”
“……?”
철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가, 이내 얼굴을 찡그렸다.
안 그래도 험악한 얼굴이 악귀처럼 변했다.
“애송이, 말이 짧군. 경어를 붙이도록 해라.”
주서천은 한 귀로 흘려듣고 철삼 앞에 섰다.
그리고 머리를 들어 그를 멀뚱멀뚱 올려다봤다.
“건방진 놈. 선후배 간의 예의를 알려 줘야겠군!”
사파인들 사이에선 시비를 거는 게 일상이다.
혈기 넘치는 애송이들이 종종 뭣 모르고 덤벼든다.
나머지 여덟 명은 주서천이 엉엉 울면서 잘못했다고 사죄하기를 기다렸다.
쐐액!
철삼의 검이 주서천의 목을 노렸다.
살기는 없었다.
이제 곧 싸울 터인데 바보같이 동료를 잃을 수 없다.
목 바로 앞에서 멈출 생각이었다.
챙그랑.
“응?”
철삼은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이해가 안 갔다.
무언가 맞은 것 같더니만, 손에 쥐고 있던 검이 튕겨져 나가 지면을 데굴데굴 굴렀다.
“이게 뭔……”
짜악!
“꾸엑!”
철삼이 뺨을 후려 맞고 쓰러졌다.
주서천이 몸을 돌린 다음 여덟 명에게 말했다.
“이젠 내가 제일 강하니 내 명령을 따라라. 그러면 너희는 살 수 있을 것이다. 날 믿어라.”
“거절한다면?”
“뺨을 때릴 것이다.”
“잘 부탁합니다, 십인장.”
정파는 사파보다 사람이 적지만, 고수가 많다.
반대로 사파는 정파보다 사람이 많지만 하수가 많았다.
십인대의 아홉 명은 거의 전부 삼류였고 철삼만 이류였다.
십인장을 자처한 게 허세만은 아니다.
“후우.”
“십인장. 얼굴에 근심이 많소. 십인장을 따르면 산다고 했는데 그게 정말이오?”
“너희 실력을 보니 그게 정말 가능한 것인가 고민하고 있었으니까 걱정하지마.”
‘으음.’
철삼이 도망칠까 고민했다.
“생판 모르는 놈들 신경 써 주면서 싸우는 것보단 혼자가 낫지만, 그렇다고 사파 소굴에 나 혼자 있을 수는 없지.
적어도 날 믿고 따를 사람은 필요하니까.”
전쟁이란 건 결코 혼자 할 수 없다.
전란의 시대를 경험하고 깨달은.것이었다.
아무리 화경의 고수이고, 여러 무공을 지녔다고 한들 그러면 뭐하나.
믿고 함께할 수 없는 동료가 없는데.
출신 역시 정파의 사람이란 것이 알려진다면, 도와준 묘가검문조차 막바지에 자신을 몰아낼 수 있다.
세운 공에 눈이 멀어, 그걸 빼앗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으니까.
말(言)이라는 건 곧 힘이다.
그리고 그 말이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일 경우는 큰 힘이 된다.
굳이 무공이 강하지 않다고 해도, 사파인들이 손을 들어 주고 신뢰를 준다면 최악의 결말은 면한다.
그리고 그 신뢰는 목숨을 빚지는 걸로 쉽게 쌓을 수 있다.
‘단숨에 폭섬도문에 쳐들어간다고 해도 기사분반을 찾을 시간도 필요하고, 같은 화경의 고수와 싸운 뒤에는 다쳐서 빠져나올 수 없을지도 몰라. 혼자라는 건 지긋지긋해.’
주서천은 등에 매단 화살통에서 화살을 꺼내 시위에 걸었다.
“지원은 내가 한다. 옆과 뒤는 신경 쓰지 말고 앞을 향해 달려.”
“십인장. 설마 그 활을 쓰겠다는 겁니까?”
활의 취급은 관부 정도가 아니라면 좋지 않았다.
특히 무림에서의 인식은 아랫바닥이었다.
“또 맞고 싶지 않으면 상관하지 말고 전진해라.”
주서천이 턱 끝으로 앞을 가리켰다.
아홉 명은 서로를 마주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기회가 있을 때 저놈에게서 도망치자.’
‘아무래도 살기는 글러 먹은 것 같다.’
‘우리를 적당히 이용하다 바릴 생각이야.’
정파에서 의리나 신뢰라는 것은 보기 힘들다.
전장에서의 신뢰는 더더욱 그렇다.
사파야 두말할 것도 없었다.
그들은 뒤의 압박 탓에 처음에만 싸우다가 혼란스러움을 틈타 도망칠 것을 속으로 맹세했다.
와아아아!
구릉에서 무인과 무인이 충돌했다.
묘가검문과 폭섬도문이었다.
폭섬도문 역시 낭인들을 대거 고용 한듯했다.
“흐랴압!”
철삼이 앞장서서 검을 휘둘렀다.
그의 검에 폭섬도문 측의 낭인이 컥 하고 신름을 흘리며 쓰러졌다.
“어딜!”
그 뒤로 곧장 낭인이 철삼에게 덤벼들었다.
그 숫자가 무려 셋이었다.
휙!
“끅!”
달려오던 낭인의 목이 뒤로 확 꺾였다.
그 이마에는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이 박혀 있었다.
“…… 허어?”
철삼 뒤에 있던 낭인이 놀란 듯 입을 떡 벌렸다.
“봐, 봤어?”
“보이지도 않았다.”
“화살이란 게 저리도 빨랐나……?”
눈을 껌뻑이면 이마에 화살이 꽂혔다.
속도도 속도지만 단 하나도 빗나가지 않았다.
무림인에게 화살이란 건 숫자만 많지 않으면 충분히 피하거나 쳐낼 수 있는 것이다.
괜히 활이 안 좋은 취급받는 게 아니다.
아무리 혼란스러운 전장이라 할지라도 충분히 피하거나 막는다.
그런데 주서천의 화살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대부분이 어떻게 죽은 건지도 모르고 바닥에 고꾸라졌다.
파바밧!
“컥!”
화살이 바람을 가르면서 날아갈 때마다 비명이 터졌다.
그 화살에 빗나감이라는 것은 결코 없었다.
“대단하군!”
“이렇게 도와만 준다면……!”
철삼을 비롯한 십인대가 생각을 고쳐먹었다.
처음에는 기회만 엿보고 있었지만, 근처에 위험이 생길 때마다 제지해주는 걸 보니 마음이 움직였다.
“으하하하!”
“와라! 네 이놈들!”
“내 뒤엔 궁신이 계시다!”
십인대가 의기양양하게 외치며 주변의 적들을 몰아붙였다.
근처에 있던 다른 낭인이나 사파의 무사들도 이를 눈치채고 주서천의 십인대 측으로 모였다.
무림에서 활은 원체 쓰이지 않다 보니 눈에 뛸 수밖에 없다.
“도대체 이 화살들은 뭐…… 컥!”
“어디서 날아오는 거냐!”
“궁수부터 찾아!”
눈을 껌뻑이면 옆에 있던 동료가 화살에 맞아 쓰러진다.
보이면 모를까 그것도 아니니 소름이 끼쳤다.
“저기다!”
높아 봤자 무릎 정도의 풀이나 꽃 밖에 없는 구릉이고, 아군에게 눈에 띈다면 적군에게도 마찬가지다.
문도나 고용된 낭인들은 핏대가 서도록 소리를 지르고, 주서천을 삿대질하며 척살 명령을 내렸다.
“거기, 활잡이! 앞으로 나오지 마라!”
낭인들을 이끄는 묘가검문의 고수도 주서천을 발견하고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 호위까지 붙여 줬다.
‘오! 무공을 수련할 좋은 기회군!’
검법이야 과거의 경험이 있으니 상대가 없어도 상관없다.
하지만 궁술은 처음이니 실전 경험이 필요했다.
주서천은 이 기회를 수련에 이용하기로 마음먹고 미리 준비해 둔 화살통을 바닥에 두고 한자리에서 일월신궁을 운용했다.
전쟁이란 건 하루 종일 계속되지 않는다.
보통 해가 지게 되면 양측 다 지쳐 퇴각해 재정비한다.
보통 공격 측이 먼저 물러나는 것으로 휴전을 알린다.
“그만!”
묘가검문주의 명령으로 퇴각했다.
그 목소리는 기분 좋은 듯, 무척 들떠 있었다.
오늘 아군의 피해는 다른 날보다 적었고, 적군의 피해는 반대로 많았다.
전투가 끝나자마자 주서천은 환대를 받았다.
“십인장! 아니, 형님!”
“따르겠습니다! 대장!”
“저희를 거두어 주십시오!”
사파인이나 낭인들은 자존심을 그렇게까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특히 하수들은 더더욱 그렇다.
그들은 약삭빠르게도 주서천에게 달려가 다른 날의 싸움을 위해서 고개를 숙여 댔다.
“알았다. 일단 일당이나 받으러 가자.”
은자 두 냥을 받을 때, 누군가가 자신을 찾아왔다.
“반갑다. 묘진배라 한다.”
“묘가좌검 (苗家左劍).”
“그래.”
이름을 대자마자 주서천이 자신을 알아봐 주자 묘진배가 기분 좋은 듯 웃었다.
묘가검법을 좌수로 펼치는 검수로, 사파에서도 나름 보기 힘들다는 초절정 고수로서 천하백대고수다.
동시에 묘가검문주의 친동생으로 선두에서 최전선의 지휘를 맡고 있다.
“무슨 일이오?”
“아까 전에 보았는데 그 궁술이나 지휘가 범상치 않더군.
괜찮다면 내일부터는 백인장이 되어 지휘를 맡아 주지 않겠나? 물론 그에 합당한 보수도 내주겠네.”
“좋소.”
“무공뿐만 아니라 성격도 시원시원해서 좋군. 그럼 잘 부탁하지, 음호사궁(音皓死弓).”
묘진배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었다.
“음호사궁?”
“아직 듣지 못했나? 오늘 전투에서 자네에게 붙은 별호일세. 소리가 들리면 죽는 활이라고 말일세.”
“난 검수요.”
“하하. 농담도 잘하는군. 더더욱 마음에 들어.”
묘진배가 주서천의 어깨를 두들기곤 떠났다.
얼마 걷지도 않은 묘진배에게 부관이 다가와 뭐라 말했다.
청각을 집중해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봤다.
“저자는 누구입니까?”
“음호사궁 주 머시기란 놈이다. 어차피 내일 죽을 놈이니 신경 쓰지 마라. 놈을 앞에 내세워 주목시킨 다음, 따로 본대를 움직이도록 하게. 어차피 활이나 쓰는 놈이니까.”
“알겠습니다.”
목소리도 줄였고, 주변이 시끄러워서 잘 안 들릴거라 생각한 모양이다.
“과연, 그런가.”
활로 실전에서 공을 세웠다고 한들, 오랫동안 쌓인 인식이 쉽게 사라질 리 없다.
처음부터 자신을 치켜세우기에 성격 좋은 놈인가 했는데 단순히 이용하려고 그리한 듯했다.
“묘가좌검이 아닙니까!”
“대단합니다, 형님!”
처음에 지휘를 맡았던 십인대 수하들이 다가왔다.
그 뒤로도 몇십 명이 잇따랐다.
오늘 함께한 백 명이 주서천을 따르고 있었다.
“너 같은 동생 둔 적 없다.”
“꾸엑!”
주서천의 손바닥이 철삼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쪽팔리게!’
철삼이 순간 화가 나 눈을 부릅떴다.
아랫것들이 있는데 망신을 준 것에 화가 났다.
“팍! 씨.”
주서천이 손을 들자 철삼이 얼른 눈을 내리깔았다.
“내일, 아니 오늘부터 내가 백인장이다. 아마 오늘 함께한 너희는 내일 나와 또 함께할 것이다.”
“오오오!”
무사들이 좋아했다.
반은 낭인 출신이고, 반은 문도가 열도 되지 않는 사파의 약소 문파였다.
일류가 둘, 이류가 여덟, 삼류가 구십이었다.
한숨이 나오는 전력이었다.
“너희 이름은 이제 철일과 철이다.”
주서천은 일류의 무인 둘을 한 명씩 가리켰다.
“미친놈!”
새로이 철일이 된 사파의 무사가 기가 막힌 듯 코웃음을 쳤다.
그 눈에 살기가 감돌았다.
“내일 네놈이 죽으면 이 백인대를
내가 고스란히 흡수하려고 가만히 있었지만, 그럴 필요가 없겠구나.”
“아까부터 네 눈깔을 봤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더니……”
급조된 백 명이 곧장 신뢰를 보이며 따를 리 없다.
특히나 사파에서 욕심에 눈이 멀어 뒤통수치는 건 흔한 광경이었다.
“고작 활 쓰는 놈의 말을 따르라고?”
철일이 검을 뽑는다.
일류의 무인답게 그 기세가 보통이 아니었다.
“나는 화산파의 검수다.”
“흥! 네놈이 활잡이라 말하면 고용되지 않을까 봐 거짓을 고한 건 알고 있다. 그것도 장식이겠지!”
“진짜다. 난 정파인이라니까.”
“헛소리! 본때를 보여 주마!”
철일이 덤벼들었다.
전장을 돌아다니 며 무기나 군량을 파는 이들을 ‘전쟁상인’이라 칭한다.
그리고 그 부류에서 최근 이름을 떨치는 자들이 있었는데, 바로 금의상단이었다.
금의상단은 애초에 귀주에서부터 활동한 만큼 이쪽 분야로는 잘 알려져 있었다.
상단이 커진 이후로도 여전히 전장을 찾아다니면서 장사를 했다.
다만 정파와 사파, 적아의 구분 없이 파는 것이 눈엣가시였다.
그 탓에 좋아하지 않는 자들도 많았다.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의상단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르고 끝없이 애용되었는데 이는 금의상단이 필요한 상황에 알맞은 물품을 원하는 품질로 확실히 보급해 주는 점 때문이었다.
가끔 전쟁상인들 중에는 일부러 하급품을 가져와 터무니없는 가격에 팔아치우는 악질이 종종 있다.
“싫으면 사지 마!”
괜히 전쟁 물자가 값비싼 게 아니다.
공급은 적은데 수요는 많은 상황에서 안 사면 당장 전멸할지도 모르는 일이니 살 수밖에 없었다.
대부분은 보복이 두려워서 하지는 않지만, 가끔은 그들이 전멸할 것을 생각하거나 혹은 큰돈을 벌고 잠적할 것을 계산하고 저지르는 자들도 제법 있었다.
사람들은 그 운 나쁜 경우를 피하고 싶어 영 달갑지는 않지만 신뢰는 확실한 금의상단과 거래했다.
“그러니까 너희도 살 게 있다면 무조건 금의상단에서 사라. 다른 놈들은 전부 사기꾼이야.”
“……예.”
철일이 음울한 목소리로 답했다.
뺨은 벌겅게 부어 있었고, 어째서인지 손에 쥔 검은 반 토막이 났다.
그리고 그 뒤로 백인대원들이 서 있었는데, 그들의 낯빛 역시 썩 좋지 않았다.
다들 우울해 보였다.
“보수를 받으면 술이나 기녀에게 전부 날린다니, 그야말로 하루살이가 아닌가. 우선 무기나 약 같은 것에 투자해라.”
“고수는 무기를 따지지 않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너희가 고수냐?”
“아니요.”
“그렇지?”
“……”
무언가 속는 느낌이었다.
“백인장. 난 여기에 오기 전에 검을 장만했소만.”
삼십 대 중반쯤 된 사내가 물었다.
주서천의 시선이 옮겨졌다.
“어디서?”
“복안에서……”
“누구에게 구입했나?”
“복안에 실력 좋은 대장간이 있다고 하여……”
“누구에게 소개를 받았지?”
주서천이 집요하게 묻자 사내가 목을 자라처럼 움츠리면서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말을 흐렸다.
“묘가검문의 무사에게……”
“흠.”
주서천은 주변을 슥 둘러보곤, 묘가검문의 문도가 없다는 걸 확인한 다음에 속삭이듯이 중얼거렸다.
“그거야 동네 상권과 짜고 친 것이 아니겠는가? 품질이 의심되니 새로 장만하도록.”
“백인장. 난 방금 전 싸움에서 노획했소. 이도 나가지 않았고, 몇 번 쓰지 않은 것 같은데……”
“시체를 뒤져서 가져왔나?”
“그렇소”
“분명 무기가 좋지 않으니 패배한 게 틀림없군.
버리고 새로 장만하는 게 좋아. 품질이야 두말할 것 없이 금의상단이 최고지.”
궤변도 이런 궤변이 없다.
너무 이상하니 의심하는 자도 나왔다.
“정말…… 이오?”
“너 나보다 고수야?”
“……그건…… 아니지만……”
“그럼 말을 말아! 콱!”
백인대가 돈을 탈탈 털어 무기를 장만했다.
그래도 정말 나쁜 건 아니다.
실제로 하수들이 괜히 하루가 멀다 하고 죽는 게 아니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하루살이 인생이기에, 대부분 보수를 쾌락을 위해 사용했다.
그것을 제외하고 무기나 약 등에 쓴다면 생존률은 몰라보게 상승한다.
“자, 이제 내일을 위해 쉰다. 자자.”
* * *
날이 밝았다.
구릉 위로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든다.
“흠.”
묘진배는 눈을 매섭게 뜨고 구릉 위에 세워진 진지를 노려봤다.
저 진지를 보는 것도 오늘로 끝이 다.
“가자!”
와아아아!
묘진배의 외침에 아군이 답한다.
그들은 각자 결사의 심정으로 무언가를 위해서 검을 휘둘렀다.
구릉 위로 피바람이 불었다.
시체가 썩어 가는 악취와 비릿한 피 냄새가 바람에 뒤섞여 있었다.
“음호사궁부터 처리해라!”
어제의 활약이 적군에게도 알려져서 그런지 주서천부터 경계하는 외침이 튀어나왔다.
“백인장을 지켜라!”
“와아!”
백인대가 주서천을 호위하듯 서서 검을 들었다.
백 명과 백 명이 부딪쳐 뒤섞였다.
손에 쥔 무기 덕에 적아를 쉽게 구분할 수 있었다.
“화살 따위를 두려워하다니, 어리석은 놈들!”
“너희가 그러고도 사내대장부라 말할 수 있느냐!”
“꺼져라, 이 겁쟁이들!”
폭섬도문 측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사형제가 커다란 도를 휘두르면서 전진했다.
그들이 도를 휘두를 때마다 묘가검문 소속 무인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진다.
“폭섬사견(澤閃四犬)!”
묘가검문 측이 술렁이며 뒤로 물러났다.
폭섬도문에는 실력은 뛰어나지만 성격이 지랄 맞기로 소문난 사형제가 있는데, 그들이 폭섬사견이다.
첫째와 둘째는 절정이고 셋째와 넷째는 일류에서도 최상승에 속한다.
그들이 나섰다는 건 곧 어제의 피해가 적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는 것이기도 했다.
“전부 쳐 죽여라!”
와아아아!
일견으로 추정되는 무인의 외침에, 폭섬도문도와 낭인들이 잔뜩 올라간 사기를 내뿜으며 전진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묘가검문이 밀고 있던 상황이 뒤집히면서, 전장이 비명과 피로 난무했다.
“으랴아압!”
폭섬사견이 소리를 힘껏 내지르면서 달려온다.
넷 다 덩치가 크다 보니 마치 멧돼지와 같았다.
“으아악!”
주서천의 앞을 호위하고 있던 백인대원들이 길게 버티지도 못하고 힘없이 날아가 쓰러졌다.
“하나!”
팟!
시위를 놓자 걸려 있던 화살이 날아간다.
바람의 기류를 타고 빙글빙글 회전하면서 일직선을 그렸다.
그 화살은 재일 앞에 서 있던 폭삼사견 중, 제일 어려 보이는 자의 이마를 노렸다.
“어딜!”
사견이 코웃음 쳤다.
도는 거의 본능적으로 세운 채로 얼굴을 가렸다.
째앵!
화살촉이 도를 후려쳤다.
그 충격이 고스란히 도 전체를 감싸 안아 흔들었다가 팔로 전달됐다.
“……”
그의 얼굴이 당혹으로 일그러졌다.
도에서 전해져 오는 힘의 여파가 작지 않은 것에 놀랐다.
‘이게 궁술이라고?’
화살에 내기를 주입한 게 틀림없다.
그렇다면 무공이 확실한데, 이 정도로 위력적인 궁술은 들어 본 적도, 겪어 본 적도 없었다.
‘게다가 공력도 보통이 아니다!’
사견이 바싹 긴장했다.
활잡이라고 우습게 볼 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바보 같은 놈! 뭘 멍하니 있느냐!”
삼견이 사견을 스치고 지나갔다.
“조심하십시오! 형님!”
“활잡이 따위, 어차피 거리만 좁히면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