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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八章기사분반(氣思分斑) (69/254)

第八章기사분반(氣思分斑)

검마, 무곡의 행적은 이의채에게 조사를 맡겨 뒀다.

찾는데 그리 오랜 시일이 걸리지는 않았다.

검마 이전의 별호, 돈에 미친 검귀신은 그럭저럭 알려져 있어 찾기가 쉬웠다.

정보를 구하는 데 돈만큼 확실한 것도 또 없었다.

무곡은 딸을 위해 치안이 좋은 지역의 저택을 구입했고, 전장에서 만난 실력 좋은 무인들을 고용했다.

그리고 혹시 자신을 노리는 자들이 있을지 몰라 이곳에 대한 정보는 되도록 숨기는 데 힘썼다.

방문하자마자 비밀로 붙이고 있는 집주인의 정체를 말하니 무사들이 경계하는 것도 당연했다.

‘화경인가.’

무곡은 겉으로는 내색하고 있지 않았으나 내심 긴장하고 있었다.

‘초절정이나 절정도 몇 명 섞여 있고……’

눈앞의 어린 괴물 뒤편의 여인과 무사들을 살핀다.

‘그 아이를 인질로 삼을 생각을 한다면 난 끝이다. 지키면서 싸우기에는 힘들어.’

수가 그렇게 많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부담스럽다.

‘화산파에 이런 놈이 있다는 건 못 들었는데……’

고작 약관 정도 되는 자가 화경의 고수다.

주목을 안 받을 수가 없는데, 들어 본 적이 없는 게 신기했다.

“싸우러 온 것이 아닙니다, 전광귀검. 그리 경계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주서천이 싸울 의지가 없다는 듯 양손을 들었다.

무곡이 입을 다문 채 내려다 본다.

주서천은 그를 똑바로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본론만 말하겠습니다. 저 안에, 병에 걸린 그대의 딸이 있을 겁니다.”

“……”

순간 당혜의 소매가 부풀어 올랐다가 잠잠해졌다.

무곡에서 흘러나오는 살기에 무심코 반응할 뻔했다.

“딸아이의 치료를 도와 드리겠습니다.”

“네 이놈……!”

무곡의 목소리가 스산하게 울려 퍼진다.

입구에 서 었던 무사들이 몸을 움찔 떨며 옆으로 물러났다.

칠 척이나 되는 무인이 다가오니 그 위압감이 보통이 아니었다.

피부는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따갑고, 위가 꽉 죄어 오는 것처럼 불편하게 느껴진다.

그 얼굴은 검은 그늘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으나, 매섭게 째진 눈매 만큼은 잘 보였다.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그 눈은 섬뜩한 붉은색으로 빛나는 듯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허튼 짓을 했다간 온전히 살아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당혜 면사포를 거둬 주겠나?”

당혜가 군말 없이 면사포를 걷었다.

허억!

여기저기서 숨이 멈추는 소리가 나왔다.

무곡을 제외하곤 입구를 지키는 무사들이 험악한 분위기에도 그녀의 미색에 빠져 넋을 잃었다.

괜히 사천제일미가 아니다.

“당혜……”

무곡이 중얼거렸다.

동시에 살기도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당가의 독봉.”

“만나서 반가워요. 어중이떠중이는 아니랍니다.”

당혜가 아무렇지 않은 듯 답했다.

그러나 그 눈썹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전광검귀, 라고? 왜 이런 자를 듣지 못했지?’

당혜는 명문세가 출신이다 보니 고수를 보는 기회가 나름 흔했다.

잠깐이지만 상천십좌도 보았다.

그 외에도 임무 수행으로 세가 어르신과 함께 전장에 나가 사파나 마도이세의 고수와도 접점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살 떨리게 만드는 고수들이 있었는데, 무곡은 그들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았다.

“원한다면 무기도 넘기겠습니다. 그러니 대화를 해 주지 않겠습니까?”

주서천이 보란 듯이 검을 풀어 바닥에 놓았다.

이에 무곡이 일행을 한 명씩 한 명씩 훑어봤다.

그 눈은 여전히 사나운 맹수 같았다.

“네놈은 누구나.”

“화산파의 사대제자인 주서천이라고 합니다. 강호에선 봉추라고 부르더군요.”

이에 무곡은 입을 다물고 가만히 서 있었다.

눈은 뜨고 있지만, 생각에 잠긴 표정이다.

지루할 만도 하지만 그 누구도 움직이거나 불평하지 않았고, 순간순간이 긴장되어 다들 흘러가는 시간을 눈치채지 못한 채 무곡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한두 명의 의원이 거쳐 간 게 아니다. 저명하다는 의원조차 힘들다며 고개를 저었다. 한데 의원도 아닌 무인이 무슨 자신감으로 내 딸 아이를 치료하겠다는 거지?”

“치료하는 건 제가 아닙니다. 그녀입니다.”

고개를 돌려 당혜를 슬찍 쳐다본다.

“독인이 병을 치료한다는 것 따윈 들어 본 적 없다.”

“약은 잘못 쓰면 독이고, 독은 잘만 쓰면 약이라는 말을 들어 보셨을 겁니다.”

혀에 기름이라도 바른 듯 매끄럽게 움직였다.

“과연, 일리는 있군.”

무곡의 굳은 표정이 조금은 풀렸다.

“따라와라.”

방 안에는 한눈에 봐도 몸이 성치않은 소녀가 누워 있다.

누군가 들어왔는데도 눈치채지 못한 채 가슴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숨을 들이쉬었다 내뱉는다.

“조금이라도 허튼짓을 할 기세가 보인다면 손목을 자르겠다.”

“딸의 병세가 어떤지 알고 싶으시다면 그 살벌한 시선은 거두어 주셨으면 하는데요. 진맥조차 제대로 할 수 없다고요…”

당혜가 무곡의 위협에 아랑곳하지 않고 받아쳤다.

이에 무곡은 팔짱을 낀 채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주서천은 그 옆에 앉아 당혜의 진찰을 기다렸다.

일다경 뒤.

당혜가 무곡의 딸, 무선화의 손목을 놓으며 묻는다.

“딸아이가 아직 태아였을 때, 산모에게 무슨 일이 있지 않았나요?”

“……오공(飯松)에게 물린 적이 있었다만, 곧장 의원을 데려와 해독하여 무사히 넘겼었는데……”

무곡이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부풀어 오른 배가 제법 됐죠?”

“……그래.”

“산모가 독물을 접한다는 건 상상 이상으로 위험해요.

아마 당시 의원이 산모의 건강을 확인하고 아이도 유산하지 않았다는 것에 넘긴 것 같은데…… 그 탓에 문제가 생긴 것 같네요.”

당혜의 목소리는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무곡의 얼굴에 불안과 희망이 동시에 피어올랐다.

그동안 여러 의원들을 만났지만, 이렇게까지 정확하게 진찰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무엇인지 알겠는가?”

딸의 생사가 걸린 일이라서 그런지 그 목소리는 한층 부드러워졌다.

그만큼 목소리도 불안하게 떨렸다.

“태독인작(胎毒人作)을 알고 계신지요.”

“태독인작?”

불길한 이름이다.

“이름 그대로, 태아일 때부터 독에 대한 내성이나 단전에 독기를 지니게 하는 악랄한 방식을 말해요.

이 이론에 의하면 태어난 아이는 어미의 배 바깥으로 나온 순간부터 백독불침에, 독공에 알맞은 독공지체를 갖게 된답니다.”

눈살이 절로 찌푸려진다.

그야말로 인륜을 벗어난 행동이 아닌가!

“마교에서나 가끔씩 쓰이는데, 그 조차도 산모나 태아가 생존할 가능성이 극히 낮아 폐기되었다고 들었어요.

방법은 어렵지 않아요. 독물에게 물리거나, 독기를 불어 넣은 다음 적절한 치료를 한 뒤, 또 다시 독물에 접하는 걸 반복하는 거죠.”

“설마……”

“네, 아마 독을 지닌 오공에게 물렸을 때 태아에게 전이된 모양이네요. 산 것 자체가 기적이랍니다.”

“허어……”

무곡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설마하니 그 일이 문제가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하였다.

선천적으로 몸이 나빠, 불치병에 걸렸다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운이 나빠 태아에게 독이 전이됐고, 또 거기에서 운이 좋아 무사하게 태어났다.

산모, 무곡의 부인은 불행 중 다행으로 독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다.

의원이 산모의 건강에 집중해준 탓도 있었지만, 잔류한 것이 아이에게 전해져서다.

다만 원래부터 몸이 좋지 않았는지라, 아이를 낳고 쇠약해져 결국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무곡은 그동안 딸, 무선화가 그저 어머니를 닮아 선천적으로 연약한 체질이라 착각하고 있었다.

“딸의 연령은?”

“열네 살이다.”

“독이 정말로 미세한 데다가 태아였을 적부터 들러붙어 육신에 융화되었으니 진맥을 한다 해도 눈치채는 사람은 저 정도 되는 독의 고수나, 화인의원의 신의 정도예요. 일반 의원은 눈치재지 못하는 게 당연하죠.”

독공을 수련했다면 반대로 득이 되었겠지만, 이미 늦었다.

무려 십사 년 동안 독을 내버려 두었다.

그 탓에 혈관에 쌓이는 탁기는 조금씩 독을 품고 있었고, 이내 몸 자체의 약화를 불러냈다.

무선화는 미래의 기억처럼 병 탓에 아픈 것이 아니라, 중독 때문이었다.

“뭐든지 하겠다!”

쿵!

무곡이 머리를 바닥에 찡었다.

“무엇이든 할 테니 부디 딸아이만 살려다오……!”

목소리에서 딸을 생각하는 간절함이 느껴졌다.

“어때?”

주서천이 당혜에게 해독이 가능하냐고 물었다.

“독봉라는 이름은 겉치레가 아니야. 다만……”

“다만?”

“법보(法寶)의 도움이 필요해.”

“법보?”

주서천이 끙, 하고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법보라는 게 흔한 것도 아니고, 또한 대부분이 주인이 있어 손에 넣기도 힘들다.

“어떤 거?”

“기사분반(氣思分斑).”

기사분반은 이름 그대로 기와 사고를 나눌 수 있는 가락지다.

효과만 들으면 감이 안 잡히겠지만, 잘 생각해 보면 굉장히 쓰임새 있게 사용할 수 있었다.

무공을 예를 들어 보자.

검법과 권법을 동시에 써 본다고 치자.

둘은 무기를 쥐고 안 쥐고의 차이도 있을뿐더러, 초식이 다른 데다 기의 운용 자체도 달랐다.

설사 사문과 심법이 같다 할지라도 운용법 자체가 다르니 동시에 펼쳤다간 흐름이 뒤틀려 주화입마다.

하지만 이 기사분반을 착용할 경우, 상식을 깡그리 무시한 채 동시에 펼칠 수 있게 해 준다.

기와 사고를 완벽히 분리할 수 있으니 , 마치 한 몸으로 두 사람이 무공을 펼치는 것과도 같다.

그야말로 상식과 힘을 초월한 신비의 무구!

참고로 기사분반과 동일한 힘을 지닌 무공이 있는대, 그게 바로 무당파의 삼대신공인 양의신공이다.

‘과연. 전생에선 정사대전 때 기사분반이 손실되었다고 했는데, 실상은 암천회에 가 있던 건가. 암천회주가 기사분반을 이용해서 무선화를 치료했구나.’

역사의 진실을 알게 되니 신기한 기분이었다.

“그나저나 하필이면 사도팔문(邪道八門)인가……”

사도천은 무림맹처럼 사파 세력의 연합체다.

당연히 그중에는 구파일방이나 오대세가처럼 문파나 가문이 있는데, 이를 사도팔문이라 칭한다.

기사분반은 그중 한 곳이 소유하고 있다.

“기사분반이 사도팔문에 있어?”

당혜가 깜짝 놀라 물었다.

주서천은 긍정 대신 침묵으로 답했다.

“흠.”

딸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것만 같았던 무곡이 곤란하다는 듯이 침음을 흘렸다.

“나는…… 움직일 수 없다.”

“아까는 딸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한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그렇기에 안 돼.”

당혜의 물움에 무곡 대신 주서천이 답했다.

“최근, 돈을 벌기 위해 특히나 전장을 많이 돌아다녔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까?”

“……그렇다. 상당한 사람들에게 원한을 지었지.”

“그들이 이 집을 알아낸 것입니까?”

주서천의 물음에 무곡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정확한 위치는 모른다. 그러나 강서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게 문제다. 너희가 찾아왔으니 그들이 알아내는 것도 시간문제겠군.”

과연.

당혜가 이해했다.

아픈 딸 탓에 섣불리 움직일 수가 없었고, 그녀를 지키기 위해선 집 근처를 벗어날 수도 없었다.

만약 이런 사정이 아니었더라면 또 전장에 나가 돈을 벌기 위해 검을 휘두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저의 경우에는 돈 좀 써서 알아낸 것이라 다른 이들이 당장 이 집을 알아내는 건 힘들 것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기사분반의 일은 제가 처리해 보죠.”

“기사분반이 왜 사도팔문에 있는지는 모르지만……그곳은 동네 무관같은 곳이 아니야.”

당혜가 경고했다.

“나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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