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七章화산봉추(華山鳳聲) (68/254)

第七章화산봉추(華山鳳聲)

또 또다.

되도록 버티기를 바랐다.

하지만 이런 걸 기대한 건 아니었다.

입 안에 머금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삼키고 곧바로 해독을 하려는 다급한 표정을 보고 싶었다.

그래야 그 치욕을 되갚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검남춘(劍南春)!”

분노로 가득 찬 목소리가 뾰족하게 울려 퍼진다.

대기하고 있던 무사가 깜짝 놀란다.

그는 배치된 술병을 들고 당혜를 위해서 한걸음에 달려왔다.

“사천성이 자랑하는 이대백주를 전부 대접받다니! 좋구만!”

주서천이 ‘하하’ 웃으면서 좋아했다.

이대백주라 하면 오량주와 검남춘을 말한다.

“그 잘난 웃음을 언제까지 짓나 볼까……!”

당혜가 눈을 무섭게 떴다.

목소리에선 살의까지 느껴진다.

고수, 그것도 정도의 무인일 경우 보통 분노가 치밀어 오르면 심법을 통해 금세 안정을 찾는다.

당혜 정도 되면 그건 어렵지 않다.

하지만 지금 그러지 않는다는 건 그만큼 화가 올라 참을 수 없다는 의미였다.

술병의 입구를 열고, 빈 잔에 술을 채운다.

이성을 잃은 듯해도 그 손놀림은 조심스럽고 정확했다.

아무리 화가 났다 해도 두 잔 때부터는 더더욱 실수를 용납할 수 없었다.

그녀 자신도 위험했다.

“흐음.”

주서천이 당혜가 건네준 술잔을 받았다.

‘어쩌지……’

두 잔째부터 고민되는 게 있었다.

‘정말 아무렇지 않은데 어쩌지……’

엿 바꿔 먹은 게 아닌 걸 증명하는 천독불침!

괜히 영약의 기를 과소비한 게 아니다.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선택이었다.

천독불침 덕에 금선사건 뭐건 간에 전혀 통하지가 않는다.

해독은커녕, 몸 안에 들어오다가 사라져 버렸다가 정말 우습게도 내기로 전환되어 단전으로 고스란히 저장됐다.

독인에게 독은 곧 약이기도 한데 , 녹안만독공을 연공해서 그런지 독기를 내공 취급했다.

“화독련(火毒蓮)을 맛보게 된 걸 후회할 거야!”

화독련!

대경했던 당염이 눈을 번쩍 떴다.

“……과하지 않은가.”

당유기가 눈썹을 좁혔다.

화독련은 화기를 극성으로 키워 낸 인공독이다.

사천당가에서도 귀한 편에 속할 정도로 숫자가 적다.

값도 상당해서 정말로 웬만해선 쓰지 않고, 적통이 아니라면 마음대로 꺼낼 수도 없다.

독봉 정도 된다면 화독련을 쓸 수 있기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생사결도 아닌데 너무 과하다.

주서천이 무슨 수를 써서 금선사를 아무렇지 않게 버텨 낸 건지는 모르겠지만, 화독련은 정말로 예외다.

저건 웬만한 절정이나 초절정 고수에게도 치명적이다.

게다가 독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해독도 까다로웠다.

“화독련이라면 힘 좀 써야겠군요. 가주께선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서 언제든지 나올 준비를 해 주십시오. 홀홀홀.”

당염이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퉁퉁친다.

‘금선사를 아무렇지 않게 넘긴 것만으로도 대단했지. 어릴 적에 기연으로 영약을 얻었다 하니, 분명 내공이 받쳐 준 게 분명하겠구나. 그러나 화독련은 내공만으로는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독인도 아닌데 금선사로 된 첫 잔을 넘긴 것만 해도 놀라운 일, 이젠 쓰러질 일만 남았다.

“어디, 맛 좀 볼까.”

벌컥!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곧장 술잔을 꺾는다.

가신들도 그걸 보고 기겁했다.

배짱만큼은 정말 칭찬할 만했다.

“저런!”

그러나 저건 만용이다.

조금이라도 대비를 하고 마셨어야 한다.

해독이 생각 이상으로 고달파질 것 같다며 혀를 찼다.

“죽고 싶어 환장했군!”

“미친놈!”

이번에야말로 끝났다.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고, 의심하지 않았다.

천하백대고수인 당유기의 눈에도 그리 비췄다.

하나……

“꺼억!”

주서천의 트름에 모두가 경직됐다.

눈앞에 의기양양하던 당혜도, 급히 달려오던 당염도, 주점을 가득 메운 사천당가 사람들도 굳었다.

사람들뿐만 아니라 공기가, 바람이, 시간 자체가 얼어붙은 것처럼 멈춘다.

당혹 의심, 경악, 불신, 대경, 혼란……

온갖 감정들이 소용돌이치면서 한곳으로 모인다.

“무, 무, 무슨……!”

당혜가 처음으로 말을 더듬었다.

“으음!”

주서천이 묘한 표정으로 소감을 내뱉는다.

“이건 혀가 조금 얼얼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같은 기분이 든다니!

‘이, 이럴 수가!’

당염이 멈춰서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두 눈으로 목격했는데도 머리가 따라가지 않는다.

다른 독도 아니고, 독 중에서도 상급에 속하는 극독을 처먹었는데 저런 얼빠진 소리를 한다고?

물론 화독련이 절세의 독인 건 아니다.

해독 또한 초절정 정도 되면 타인의 방해가 없을 경우 어떻게든 해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눈앞의 남자는 한낱 애송이에 불과하지 않은가.

출신이 좋다할지라도 무명인 일반 제자다.

내공이 많다 할지라도 기의 운용능력 자체가 떨어진다면 저리 빨리 해독하는 건 불가능한데!

‘아니, 애초에 해독을 한 것인가?’

“빨라도 너무 빨라……”

당혜가 당염과 같은 생각을 했다.

상식이 통하지 않자 의심이 갔고, 머리가 뒤편에 서 있는 무사에게로 홱 돌아갔다.

‘제대로 가져온 게 맞느냐!”

“무, 물론입니다! 어찌하여 제가 착각하겠습니까!”

무사가 부복한 재 답했다.

이런 자리에서 실수라도 했다간 봉급이 깎이는 것만으로 안 끝난다.

이에 당염도 혹시 모를 상황을 생각했는지, 풀쩍 뛰어 당혜 앞에 섰다.

“혜 아가씨, 괜찮으시다면 술병을 확인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하세요.”

당염이 술병을 건네받아 술 냄새를.맡아 확인한다.

‘킁킁, 검남춘 특유의 상쾌한 향에 화독련도 섞여 있구나.’

향 다음은 미(味)였다.

술병을 살짝 기울여 몇 방울을 손가락 위에 떨어뜨리고 핥아 봤다.

“당 장로, 어떤가?”

당유기도 궁금한 건지 제일 먼저 물었다.

“화독련을 섞은 독주가 틀림 없습니다.”

웅성웅성.

당염은 세가 내에서도 가주 다음으로 가는 독공의 고수다.

그 판단이 틀릴 리가 없으니 더 혼란이었다.

‘이 청년, 아니 주서천이 설마 화경이나 그걸 넘어서는 절대고수일 리는 없고…… 그렇다면!’

확신에 가까운 추측이 섰다.

당염이 머리를 들어 주서천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낯빛에 변화가 없고, 호흡도 일정하다.

동공 역시 떨림이 없으니, 중독된 기미가 전혀 없구나.

해독 자체가 진행되지 않았다면……!’

입에서 아악, 하고 비명이 터져 나왔다.

“천독불침! 천독불침이로구나!”

“뭣이!”

당유기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석 잔째는 아직이요?”

주서천이 껄껄 웃어 댔다.

* * *

만독불침은 전설에서나 나오는 체질이지만 천독불침은 가끔씩 볼 수 있다.

하나 그 천독불침조차도 보기 드문 편으로, 백 년은 고사하고 몇 백 년 만에 한 번 찾아볼 수 있다.

사실 찾아보면 더 있겠지만, 무림인이거나 의원 등이 아닌 이상 평생 모르고 지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천독불침은 무림인 , 특히 독공을 수련하는 사람들 입장에선 하늘이 내린 체질인데, 이는 독공 수련에 누구보다 유리해서 그렇다.

독공은 정파건 사파건 간에 처음부터 중독되어 내성을 키우는데, 이 과정이 상당히 길다.

천독불침이면 이 과정을 전부 생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보다 더더욱 독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도 가능해 기의 운용 능력과 내공 변환에 큰 도움이 된다.

주서천 자신이야 중도만공 탓에 여러 제약이 있어 그 이점이 사라지긴 했지만, 사천당가 입장에선 출신 성분에 상관없이 데릴사위로 데려올 체질이었다.

어쨌거나 사천당가의 주점에서 화독련 다음으로는 좀 더 상위의 극독인 칠보쇄혼독(七步粹魂毒)을 석 잔 째로 대접 받았으나 당연히 통하지 않았다.

어디가 아파져 오기는커녕 귀한 독을 흡수해서 녹안만독공이 삼성에서 사성으로 오르는 쾌거를 이루었다.

“나이만 아니었다면 데릴사위로 데려왔을 터인데!”

당유기가 실로 안타까워했다.

열여덟 살, 그것도 화산파의 무공을 수련한 사람을 제자로 들이기에는 너무나도 늦었다.

체질은 하늘이 내린 독공지체인데 문제는 조금 있으면 약관이라는 것과 사문이 있다는 점이다.

“아직 완전히 늦은 것은 아닙니다, 가주.”

“천독불침이라면 애뇌산, 독혈곡을 자유자재로 돌아다닐 수 있으니 독초의 수집에 도움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주 소협은 아직 화산파에서 중직을 맡지 않았으니, 얼른 데릴사위로 받아들입시다.”

무림의 도사가 혼례를 못 올리는 건 아니다.

도가적인 성향이 강한 무당파조차도 혼례를 올린다.

다만 핏줄에게 사문의 무공을 가르칠 수 없으며, 또한 중직에 오르지 않아야 하는 조건이 있었다.

주서천이 당서천이 되면 확보할 수 있는 독초도 많아지고, 세가에도 큰 도움이 된다.

“이보게, 주 공자. 괜찮다면 좀 더 머무르지 않겠는가.”

내기가 끝난 직후 당유기가 주서천을 찾아갔다.

“저도 그러고 싶은데 좀 바쁩니다. 독왕께선 부디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끄응.”

당유기가 상당히 아쉬워했다.

참고로 당가 주점의 일은 세가 내외, 곧 사천 전체까지 퍼졌다가 곧 일파만파로 전 천하에 알려졌다.

독봉이 또 패배했다!

“그것도 사천당가의 주점에서 졌다는데?”

“허어, 이쯤 되면 우연이라고 보기는 힘들군.”

“내 친척 중에 당가의 무사가 있어서 들어 봤는데, 듣기로는 주서천이 독이 안 받는 체질이라 하더군.”

“헉, 설마하니 그 유명한 만독불침?”

“에끼, 이 사람아! 만독불침은 무슨 만독불침이야? 아마 백독불침 정도는 되겠지.”

사천당가는 주서천의 천독불침을 비밀리에 붙였다.

혹시라도 사도천이나 마교도 중 주서천을 납치해 인체 실험 대상으로 입맛을 다실 것 같아서였다.

비밀에 영원이라는 것은 없으니, 결국 나중에는 밝혀지겠지만 그래도 되도록 비밀로 하는 게 좋다.

참고로 독봉이 같은 사람에게 두 번이나 패하게 되면서, 주서천에게도 드디어 별호가 붙게 됐다.

봉추(鳳雛)!

“봉추? 똘추 같은 이름이군!”

장본인도 싫어했다.

한편, 그 별호의 봉황이고 설욕전을 실패하고 또 다른 패배의 쓴맛을 경험한 당혜는 상당히 우울했다.

“……하필이면……”

원래라면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설욕전에 당당히 성공하고, 떨어진 자존심을 회복하려 했다.

한데 그게 화근이 되어 회복은커녕 반대로 자존심을 나락 끝까지 떨어뜨리게 됐다.

이번에는 세가 식구들이 전부 모인 곳에서 보기 좋게 패배하는 경험을 맛보게 됐다.

“내 듣기론 그가 내기의 조건으로 누군가를 해독하기 위해 동행을 요구했다던데, 그것이 맞느냐?”

당유기가 절망한 당혜를 찾아가 물었다.

“……네, 아버님.”

“그런가. 슬슬 강호에 다시 나갈 때도 되었으니 잘됐구나.”

보통 당혜 정도 되는 딸이 있다면 금지옥엽으로 아끼겠지만, 당유기에게 그런 것은 없었다.

당유기는 언제나처럼 조금 피곤하면서도 생각을 읽을 수 없는 눈으로 딸을 쳐다봤다.

“호위로 세가의 무사를 몇 붙여 줄테니 그를 따라 다녀오거라. 네가 좋다면 그를 사위로 데려와도 나쁘지는 않겠지. 볼일을 보고 세가로 돌아올 때는 오라비에게 들러 일이나 도와주거라.”

무정해도 이리 무정한 아버지가 있을까.

그 눈빛에도 목소리에도 자식을 걱정하는 건 조금도 없었다.

그렇게 당혜의 강호행이 결정됐다.

과거, 그리고 앞으로 벌어질 시대에서 검마는 무림 천하에서도 특히나 눈에 띄는 인물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에 대한 정보나 일화에 대해서는 딱히 화산오장로가 아니어도 대강 알고 있었다.

검마에게는 목숨보다 소중히하는 딸이 있었는데, 불행하게도 그 딸은 알 수 없는 불치병 환자였다.

당시 검마는 의원을 수소문하며 중원을 돌아다녔지만, 치유하기는커녕 병명도 알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최후에는 신의가 있는 화인의원(華仁醫院)을 찾아가 문을 두들겼으나, 당시의 신의는 신약의 개발로 만나 볼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하나 그렇다고 그대로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몇 날 며칠을 기다리면서 어떻게든 만나 달라고 요청했지만, 화인의원은 원래 은거하여 무명이었던 검마를 우습게 보고 문전박대 하고 내쫓았다.

신의가 어디 그냥 만날 수 있는 사람인가?

신의를 찾는 사람이 하루에도 수십, 아니 백에서 이백 명 이상이다.

어쩔 때는 그보다 더 된다.

검마 같은 사람은 지천에 널려 있고, 신의가 신약 개발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방문자들을 전부 거절했다.

그러나 가끔씩 대문파 출신이라거나, 신분이 귀한 사람 혹은 상당한 돈을 가져오면 진료를 잡아 주었다.

비록 신의가 아닌 화인의원이 돈 욕심에 제멋대로 한 것이었으나, 이일 탓에 검마가 원한을 갖게 된다.

검마 입장에서 불행 중 다행이었던 것은 딸이 죽어 가고 있을 때 암천회가 접근한 것이었고, 무림 입장에서 그 일은 최악의 일로 거론되는 재앙이었다.

참고로 화인의원은 암천회의 무림침공이 시작되기도 전에 검마에게 멸문지화를 맞이한다.

신의 역시 그 손에 목숨을 잃었다.

합천회주는 그 딸을 대신 완치해주는 걸로 검마의 충의를 얻었다.

‘그걸 내가 가로챈다.’

그래서 당혜를 도발해 내기를 했다.

당혜가 신의와 견주는 의술을 지녀서가 아니다.

검마의 딸은 원인 불명의 불치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정확히는 희귀한 독에 중독된 것으로 판명됐었다.

아비인 검마 스스로가 화원의원을 멸문시키며 말했으니 확실했다.

‘녹안만독공으로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어디까지나 독을 다루고 운용할 수 있는 것뿐이지, 딱히 독에 대한 지식이 있는 건 아니었다.

정상적인 경로로 수련했으면 또 모를까, 천독불침을 이용한 사도의 방법인지라 이런 단점이 있었다.

그래서 독공을 잘 아는 고수의 손이 필요했고, 지금의 자신이 도움을 구할 수 있는 건 독봉 정도였다.

‘기다려라, 검마.’

덜컹

네 마리의 말을 이끄는 마차가 크게 덜컹거렸다.

그 탓에 엉덩이에 충격이 고스란히 전해져 아팠다.

무림 고수라고 마차의 이 승차감이 불편하지 않은 게 아니다.

허공에 떠올라 있지 않은 이상 충격을 받는다.

그저 익숙해져 참을 뿐이었다.

“천독불침, 천독불침……”

당혜에게 아는 사람의 딸이 원인불명의 독에 중독되었으니 도움이 필요하다고 대충이나마 설명했다.

“도사인데도 어쩜 그리 비겁한지 모르겠네.”

마주 앉은 당혜가 날이 선 목소리로 말했다.

“뭐가?”

“천독불침인데도 그리 뻔뻔하게……”

당혜가 독기 어린 눈으로 이를 빠드득 같았다.

“속이 얼마나 작은 건지!”

주서천이 지지 않고 욕했다.

“뭐? 지금 부탁하는 입장인 사람이 누구인지 잊었어?”

“허어어, 설마하니 명문으로 이름높은 사천당가의 독봉 아가씨께서 자신이 한 말을 번복하는 건 아니겠지요. 아니, 그럴 리가 없습니다. 그런 거짓말쟁이에 명예란 눈곱만큼도 없는 쓰레기일 리가 없습니다.”

“으드득!”

당혜가 스스로 한 약속을 어기는걸 죽는 것만큼 싫어하는 걸 알기에 아무렇지 않게 말할 수 있었다.

비위를 맞출 생각도 없었지만, 어쨌거나 그러지 않아서 무척 편했다.

“해독이 끝나면 반드시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

“그러든지. 하하.”

주서천이 귀를 파면서 웃었다.

섬서, 화산.

“……봉추?”

낙소월이 주서천의 별호를 듣곤 어이없어 했다.

“도대체 사형은 강호 바깥에서 뭐하는 거야……?”

주서천이 하산한 지 반년이 지났다.

낙소월은 주서천의 활약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전에 그가 화산에 복귀한 이후로 틈만 나면 대련을 부탁했었으나, 전력을 다했는데도 이기지 못했다.

자랑은 아니지만, 나름 동년배 중에선 무공에 자신이 있었다.

실제로 싸워 보고 진 적이 몇 없었다.

그리고 그 몇 없는 게 전부 주서천이었다.

내심 사형이 강호에 활약해 사람들이 놀라는 걸 기대하면서 속으로 웃고 있었는데, 이게 뭔 일인가.

활약이라면 활약인데, 웃을 수가 없었다.

알려진 것이라곤 독봉과의 내기 승부에 이긴 것뿐이고, 그 자체도 속임수가 아니냐는 말이 있다.

“……치.”

낙소월이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아가. 뭘 그리 뾰로통한 얼굴을 하고 있느냐.”

그녀의 사조, 심옥련이 다가와 물었다.

“사형이요.”

“주서천, 또 그 아이 말이냐……”

심옥련은 전처럼 얼굴부터 찌푸리지는 않았다.

전에 연화검회의 일로 주서천을 나름 인정하게 됐다.

다만 그렇다고 완전히 좋아하는 건 아니다. 싫어하지는 않을 뿐.

“네. 누구는 매화검수를 향해 뼈빠지게 수련하고 있는데, 강호에 나가 여자에게 희희낙락하곤……!”

낙소월이 짜증이 난다는 듯 중얼거렸다.

연화검회 이후, 낙소월은 매화검수의 예검수(豫劍手)로 뽑혀 열심히 수련 중이다.

말만 매화검수가 아니지, 매화검수 몇몇이 가끔씩 이십사수매화검법을 지도해 주니 확정이나 다름없다.

무공이나 절제력 인성 , 예법 등은 이미 통과했고 수선행에 나가 경험을 쌓고 공만 세우면 된다.

“사형은 교류 능력도 현저히 부족하고, 제가 없으면 밥도 혼자 먹을 게 분명해요. 그래도 사문의 사형인데 그러면 너무 불쌍하잖아요. 하루라도 빨리 수련해서 수선행에 나가, 사형을 챙겨 줘야겠어요.”

낙소월이 흥, 하고 콧방귀를 끼곤 검을 휘둘렀다.

강서(江西), 남창(南昌).

검마는 그 누구보다 많은 돈이 필요했다.

저명한 의원들을 불러 딸을 치료하기 위함이었다.

한 명의 의원만 해도 돈이 적지 않게 드는데, 여러 명을 데려와야 하니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갔다.

그래서 돈을 벌 수 있는 것이라면 뭐든지 했고, 보통 그런 일은 깨끗하다기보다는 더러운 편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사도천의 세력권인 남부에서 활동했다.

“네 이놈, 아가씨를 강서에 데려오다니 무슨 생각이냐?”

당혜의 호위 무사, 절정 고수 원대식이 으르롱거렸다.

강서는 북으로는 호북과 안휘가 있고, 동으로는 절강과 복건이, 서로는 호남 남으로는 광동이 있었다.

귀주와 다르게 강서는 완전히 사도천의 세력권이다.

“대식아. 사도천의 세력권이라고 시체가 산을 이루고 피가 바다를 형성하는 건 아니란다.”

강서도 사람 사는 동네고, 엄연히 관리가 있다.

마도이세의 본거지인 신강이라면 또 모를까, 현세에 강림한 지옥 같은 곳은 아니었다.

정파 세력권에도 엄연히 사파인이 활동하는 것처럼, 사파 세력권에도 정파인이 활동한다.

다만 치안이 우수하다고는 할 수 없고, 정파 세력권에 비해 지원을 받기가 힘들다는 건 있다.

“누가 대식이냐! 이 건방진 놈!”

원대식이 불같이 화를 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당장이라도 독이 묻은 검을 휘두를 것 같은 기세다.

“나는 주서천이다! 이 건방진 놈!”

주서천이 지지 않고 답했다.

“이런 개……”

“그만.”

당혜가 손을 들어 원대식을 제지했다.

“정말이지 대화 수준이 유치해서 따라갈 수 없네.

내가 다 부끄러워서 네 탓에 접시 물에 코를 박고 죽어야 할지 고민되니까 좀 자중해주지 않을래?”

당혜가 주서천에게 독설을 퍼부었다.

“그렇다면 사전에 나에게 시비 걸지 않도록 주의 좀 줘라.”

“어머, 그들은 가신으로서 충의를 다하는 것뿐이야. 그걸 무시한다면 주군으로서 자질을 의심받아야 해.”

“응, 아니야.”

“네 입에서 황천을 떠도는 아귀(峨鬼)가 내뿜는 냄새가 나니까 입을 그만 닫아 줬으면 좋겠어.”

“……”

마교도나 사파인도 한 수 접는 신랄한 성격!

밤늦게 남창에 도착한 일행은 객잔을 잡고 여장을 풀었다.

참고로 당혜는 면사포로 얼굴을 가렸다.

꽃에는 벌이 꼬이는 법.

특히 그 미색이 보통이 아니니 괜히 소란을 불러들이고 싶지 않았다.

이튿날.

“이십 명 씩이나 데리고 다닌다면 여기 봐달라고 떠드는 꼴이야. 세 명 정도만 따라오고 나머지 인원은 저잣거리라도 나가 정보를 얻어 오도록 해.”

“예, 아가씨.”

당혜는 강호에 나온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잘 판단하고 있었다.

성격이 영 좋지는 않아도 감정에 이끌려 공과 사를 구분 못 하는 건 아니었다.

적어도 쓸데없이 자존심만 높고,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룰 데리고 다니며 일일이 알려 주는 것보단 나았다.

일행은 남창의 외곽 부근의 기와집을 찾았다.

나름 잘사는 집인 듯 규모가 제법 크다.

“작네.”

당혜가 문 앞에 서서 읊조렸다.

크다고 해도 오대세가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었다.

“어떻게 생각하건 상관없는데, 지금부터 만날 사람 앞에선 웬만하면 자존심을 세우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당혜는 평소처럼 독설로 되갚으려다가, 주서천의 분위기가 평소답지 않게 무거운 걸 보고 입을 다물었다.

‘누구를 만나기에……?’

천하의 독왕, 사천당가의 가주 앞에서도 긴장하지 않고 당당했던 주서천이다.

그런 그가 각별하게 주의를 주니 호기심이 솟아올랐다.

끼이익

“무슨 일이오?”

대문이 열리자마자 험상궂은 무사들이 보였다.

“전광검귀(錢狂劍鬼)를 만나고 싶어 왔소.”

스릉.

무사들의 허리춤에서 검이 매끄럽게 빠져나왔다.

“그분께 원한을 품고 온 것이라면 순순히 나갈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다.”

“그 사실을 아는 자는 별로 없을 텐데……”

“웬 놈들이냐. 정체를 밝혀라.”

분위기가 순식간에 돌변했다.

주서천 측의 당가의 무사들도 언제든지 암기를 던질 준비를 했다.

일촉즉발의 순간!

“비켜라.”

안뜰에서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아……”

주서천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찾았다, 라고.

검마를 본 적이 없던 건 아니다.

하지만 그때는 정말 멀리서 봐서 얼굴도 제대로 알아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서천은 그를 한눈에 알아봤다.

쭉 찢어진 눈매에 그 안에 담긴 눈동자는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악귀처럼 독기로 가득 찼다.

눈매처럼 턱 선 역시 매섭고, 묶지 않은 머리카락은 등허리까지 길게 늘어졌다.

연령대는 사십 대 중반 정도, 나름 잘생겼으나 오른쪽 눈썹 위부터 일 자로 새겨진 흉터가 무섭다.

무엇보다 단연 돋보이는 것은 무려 칠 척(尺)에 가까운 신장이었다.

‘개양성(開陽星) 검마, 무곡(武曲)!’

상천십좌.

칠성사.

암천회주의 오른팔.

그야말로 검의 마귀.

암천회의 또 다른 괴물!

“하.”

무심코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경지를 알아볼 수가 없다……’

하수는 고수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리고……

“소매 안의 매화…… 화산파에서 괴물을 길러 냈군.”

고수는 하수를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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