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二章칠성사병(七星司兵) (63/254)

第二章칠성사병(七星司兵)

본래 전란의 계기가 됐던 칠검전쟁을 사전에 차단할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그러나 정말로 별수 없이 포기해야만 한 연유가 있었다.

암천회는 애초에 정파, 사파, 마교의 혈투를 작정하고 흉마의 무덤을 공개했다.

그저 단순히 흉마의 무덤만 준비한 게 아니라, 간자를 심어 놓거나 재물을 이용해 포섭했다.

그 둘을 알아내고 저지한다면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닌데, 정체를 전혀 알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암천회가 심혈을 기울여 준비했으니 쉽게 찾을 수 없는 게 당연했지만, 주서천도 이 당시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애송이였던지라 속사정은 잘 몰랐다.

화산오장로의 신분으로 열람했던 기록에서도 간자나 배신자가 침투했다는 사실이 남아 있었으나, 정작 중요한 정체에 대한 단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일단 최대한으로 무덤을 망가뜨리고 피해를 최소화한다. 암천회의 졸개들은 그 덤이지.”

황하 유역 부근.

눈과 코를 제외하곤 전부 흑의로 모습을 감춘 자들이 모여 있다.

다들 풍기는 분위기가 매서웠다.

“얼마나 이러고 있어야 하지?”

덩치가 산만 한 흑의인이 지루한 듯 중얼거렸다.

“정파나 사파, 혹은 마도이세 등의 중심 세력이 근처에 오기 전까지다. 그리고 임무에 집중해.”

“이 임무의 중요성에 대해선 나 역시 똑똑히 알고 있다. 나홀 만에 첫 마디 한 거니 봐주면 좋겠군.”

“계속된 실패로 도감부가 어떤 분위기인지 잊었나?”

“으음.”

“그렇지 않아도 칠성사(七星司)가……”

푸욱!

한 소리 하려던 흑의인이 눈을 부릅떴다.

목소리를 내려 했지만 목에 화살이 꽂혀 끓는 소리만 나왔다.

 ……

방금 전까지 이야기하던 동료가 어디에서 날아온 것인지도 모를 화살에 죽었다.

하지만 그 흑의인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검을 빼들어 곧장 대응했다.

“적습이다!”

흑의인의 외침에 주변에 분산되어있던 다른 흑의인도 움직였다.

그 숫자가 이십이었다.

사방(四方)에 각각 위치해 있던 흑의인 네 명이 기다렸다는 듯이 품 안에서 죽통을 꺼냈다.

그들은 재빠르게 아랫바닥에 매달려 있는 실로 손을 옮겼다.

쐐애액!

“……!”

하지만 그것도 잠시, 화살이 유성과 같이 기다란 궤적을 그려 내면서 날아와 죽통을 정확히 꿰뚫었다.

“활잡이부터 찾아라!”

“도대체 이러한 자들이 어디에서……!”

황급히 주변을 둘러봤지만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적어도 시야 밖에서 쐈다는 건데, 그 거리가 결코 가깝지 않다.

그 정도 거리에서 사람도 아니라 죽통을 쏴서 맞췄다는 건 믿기지 않는 사실이었다.

하나 이들은 그 솜씨에 한가히 토론이나 할 생각은 없었다.

그렇게까지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지 않았다.

일단 수준급의 궁술을 지닌 자가 최소 네 명 이상 있을 것이라고 상정하면서 주변으로 뛰쳐나갔다.

상환 판단력 움직임을 보면 결코 보통이 아니다.

최소 일류 수준은 됐다.

“미래에서 왔다.”

백 장(丈) 바깥, 가파른 계곡 사이 바위 틈에 숨은 주서천이 중얼거리면서 화살을 시위에 걸었다.

파앗!

공력을 주입한 채로 시위를 놓는다.

매서운 파공성과 함께 화살이 곧게 뻗어 나가 흑의인을 덮친다.

채앵!

“저기인가!”

 흑의인이 화살이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휙 돌리면서 화살을 쳐냈다.

“괜히 암천회가 아니지. 암습이 아니라면 활로는 호락호락 당하지 않는다는 건가. 별수 없군.”

주서천이 황하로 뛰어들어 몸을 숨겼다.

그리고 급류를 타고 우회해, 무덤의 북쪽으로 이동했다.

‘연락용인 폭죽 통은 한 사람당 둘.

원래 있던 네 개를 전부 파괴했으니 , 남은 건 비상용이다.

그걸 잃으면 비상 연락용 수단이 사라지니 함부로 꺼낼 수 없겠지. 그 틈을 노려 한 명씩 처리한다.’

주서천은 흙탕물에서 빠져나오자마자 몸을 던졌다.

뒤를 바라보고 있는 흑의인, 칠성사병(七星司兵)에게 순식간에 접근해 등 뒤에 검을 꽂았다.

“커헉!”

칠성사병이 눈을 부릅뜨며 피를 울컥 토한다.

‘기척도 느끼지 못하다니……!’

방심하거나 자만했던 것이 아니다.

반대로 감각을 예민하게 키워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상대의 무위가 강했던 것뿐이었다.

“쯧.”

주서천이 혀를 차면서 이맛살을 찌푸렸다.

“귀가 좋은 건지, 감이 좋은 건지는 모르겠군. 보통은 눈치채지 못할텐데, 괜히 암천회가 아닌가.”

커헉, 이라는 옅은 비명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걸 듣고 분산되어 있던 칠성사병들이 방향을 꺾었다.

눈부실 정도로 빠른 반응이었다.

사병인데도 이리 강하니 괜히 전란의 시대 최악의 적들이 아니었다.

주서천은 그들이 오기 전에 전력을 냈다.

다리에 힘을 잔뜩 주고, 내공을 폭발하듯이 끌어 올린다.

파앗!

지면을 박차니 그가 있던 자리가 움푹 파이면서 흙먼지가 튀어 올랐다.

주서천이 동쪽을 향해 화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흡!”

동쪽의 칠성사병이 이상을 느끼고 몸을 돌렸다.

서걱!

시야가 빙글 돌아간다.

그 부릅떠진 눈에 비춰지는 건 목과 분리된 몸이었다.

주서천이 앞으로 힘없이 쓰러져 가는 몸을 잡고는 품 안을 뒤져 연락용인 죽통을 꺼내 부셨다.

그다음은 각각 남쪽과 서쪽이었다.

남은 두 명도 어렵지 않게 처리할 수 있었다.

“양동이었나.”

서쪽을 마무리 지은 순간, 주변에 분산되어 있던 칠성사병들이 전부 주서천을 둘러싸고 집결했다.

“누구나.”

정면에 선 칠성사병이 물었다.

그 목소리에는 의문과 살의가 묻어났다.

“우연이긴 하지만 너희 이름에 걸맞게 딱 일곱 명인가. 칠성사병.”

주서천이 검을 세워 옅게 웃었다.

“……”

전방의 칠성사병이 눈에 띄는 동요를 보였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목소리만 내지 않았을 뿐, 경악 어린 눈초리가 언뜻 보였다.

“생포한다.”

정보 단체를 대표하는 개방과 하오문조차 암천회를 모른다.

소속 기관인 칠성사야 두말할 것 없다.

심지어 암천회에 소속된 하류 무사들 몇몇은 조직이 어떤 이름인지도 모르는 자가 수두룩하다.

그만큼 비밀 유지를 엄중히 했거늘 그걸 아는 자가 나타났다.

“팔다리 정도는 상관없다. 들을 수 있는 귀와 말할 수 있는 입. 그리고 목숨 정도만 살려 둬라.”

“명!”

살기가 비처럼 쏟아져 내리더니 이윽고 폭풍이 불었다.

이런 기에 짓눌린다면 웬만한 무인들은 꼼짝하지도 못할 것이다.

하지만 주서천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몸을 옮아맨 살기를 뿌리치곤 검에 기를 주입했다.

“지금이라도 얌전히 항복하고 아는 것을 전부 내뱉으면 최후에는 고통스럽지 않게 죽여 주겠다.”

“네가 무슨 권한으로 그런 걸 결정하냐. 네 위에 천추(天樞)나 천선(天族) 같은 일곱 대가리 있잖아. 멋대로 그렇게 결정하면 걔들한데 혼난다?”

“어떻게 그 이름을……!”

칠성사병이 여태껏 감정 하나 들어있지 않은 목소리를 내다가 처음으로 감정을 드러냈다.

“네놈, 도대체 뭐하는 놈이냐.”

“지나가던 무사올시다.”

팟!

주서천의 몸이 앞으로 쏘아진다.

그대로 팔을 앞으로 쭉 뻗어 검을 힘껏 내질렀다.

예한에 실린 검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면서 그 예기를 한충 더 매섭게 빛냈다.

“어딜!”

칠성사병이 어림없다는 듯이 검을 아래에서 위로 쳐올렸다.

검과 검이 부딪치면서 불꽃이 튄다.

그러나 주서천의 검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튕기기는커녕 칠성사병의 검을 꾹 짓눌러 막아 냈다.

근력도 근력이지만 공력의 차이다.

나름 전력을 다했지만, 이겨 내지 못했다.

어떻게서든 밀어내려 했지만, 결국 검의 이만 나가고 이겨내지 못했다.

카가가강!

마찰음을 토해내며 불꽃이 튀었다.

주서천의 검이 칠성사병의 검을 무시하고 쭉 나아가 흉부를 찔렀다.

“컥!”

칠성사병이 고통에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그는 눈동자를 굴려 자신의 흉부를 확인하더니, 이내 손에 쥔 검을 떨어뜨리고 그 대신 주서천의 검을 꽉 잡았다.

손바닥이 검날에 파여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시대가 언제든 간에 그 지독함은 여전하구나.”

주서천이 혀를 내두르면서 허리를 숙였다.

손에 쥔 검은 깔끔하게 놓았다.

쐐액!

그 위로 또 다른 칠성사병의 검이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간다.

그외의 방향에서도 검이 느껴졌다.

주서천은 오른발을 중심으로 삼아 앉은 채 회전한 뒤, 좌수(左手)로 수직선을 그려 후방의 적을 노렸다.

손바닥이 바람을 가르고 용이 승천하듯 올라가 턱을 강하게 후려치며, 시원스러운 격타움을 냈다.

칠성사병은 머리가 흔들릴 정도의 충격에 조금 놀랐으나, 이내 속으로 주서천을 비웃었다.

자신은 절정 고수다.

수공(手功)인 이상에야 그냥 손바닥으로 공격한 게 치명상을 줄 리가 없었다.

그래서 곧장 좌측에서 우측으로 지나간 검을 틀어, 자신만만해하고 있는 놈에게 일격을 날리려 했다.

“……”

칠성사병이 복면을 쓰고 있지 않았더라면 당혹감으로 일그러진 표정이 드러나고도 남았을 것이다.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걸 넘어, 내장이 불타오르듯이 뜨거웠다.

그게 무엇인지 알아챘다.

“독장(毒掌)이니 조심…… 커허억!”

칠성사병이 말을 잇지 못하고 검은 피를 토했다.

벌써 두 명이 순식간에 당했다.

주서천은 중독시킨 칠성사병의 손목을 쳐내 검을 빼앗은 다음, 옷자락을 잡아 옆으로 내던졌다.

그러자 다가오던 칠성사병들은 중독된 동료를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검으로 베었다.

가망이 없다고 빠르게 판단, 그리고 괜히 받아 냈다가 중독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검수가 자신의 검을 놓다니, 적어도 정파의 무인은 아니로구나.”

“독까지 쓴 것을 보아하니 사파인이 틀림없군.”

칠성사병들이 주서천의 전법(戰法)을 보고 추측했다.

“나는 화산파의 주서천이다!”

주서천이 검을 들고 당당히 외쳤다.

“흥, 그걸 믿으라고 하는 소리냐?”

“머리가 나쁜 놈이로군. 화산파에 뒤집어씌우려고 하는 것 같은데, 그러려면 다른 방법을 찾아봐라.”

다섯 명밖에 남지 않은 칠성사병들이 믿지 않았다.

코웃음 치면서도 그들은 주서천을 잔뜩 경계했다.

“너희가 믿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니 걱정 마라.”

주서천이 검을 쥐지 않은 손을 쥐락펴락했다.

‘녹안만독공 삼성인가. 그럭저럭 쓸 만하군.’

서장에서 중원으로 최대한 빠르게 귀환하려고 달리기만 했지만, 무공 수련을 게을리한 건 아니다.

그래도 매일 꼬박 수련했고, 그중 녹안만독공을 이성에서 삼성으로 올릴 수 있었다.

삼성의 효능은 간단했다.

신체의 일부나 병장기에 독기를 주입해서 공격할 수 있었다.

“너희를 보니 정말로 감회가 새로워.”

주서천이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눈을 슬며시 감았다.

‘아아아악!’

‘살려 줘, 살려 줘!’

‘끄아아악!’

‘암천회의 칠성사병이다!’

암천회에는 도감부 외에도 여러 조직이 있다.

그중에서도 칠성사에 소속된 인원이 제일 많다.

도감부가 탐색과 채집, 그리고 수렵이라면 칠성사는 무력에 관련된 일에 전면적으로 나서고 있다.

일곱 명의 간부가 제일 위에 있고, 그 아래에는 무수한 병사들이 존재한다.

병(兵)이지만 결코 우습게 볼 수 없는 그들이 칠성사병이다.

소속된 무인들 하나하나가 최소 일류의 괴물들밖에 없었다.

흉마의 무덤같이 각별한 장소를 지키는 호위를 맡고 있고, 그 외에도 여러 임무를 맡고 있다.

관부의 육부(六部) 중 병부(兵部)와 같다.

주서천 본인도 암천회 중 이 칠성사병들과 정말 질리도록 싸우고, 뒤섞여서 살아남았다.

“그때를 생각하면 상상조차 못 할 상황인데……”

칠성사병 중 일류만 찾아서 맡아야 했다.

같은 절정의 고수라도 자신보다 강한 자가 수두룩했다.

대부분 전장에 나간다면 칠성사병 한 명 정도만 겨우 맡고 이겼다.

몇 번 싸우면 금방 지쳐서 후퇴했다.

그랬던 자신이 방금 전에 벌써 여섯 명을 힘 하나 들이지 않고 죽였다.

과거를 생각하면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너희는 나의 과거이고.”

감았던 눈을 뜨면서 주변을 둘러본다.

“현재이고.”

검에 기가 실린다.

“미래로구나.”

확연하게 보이지 않던 기가 점차 눈에 들어온다.

물처럼 일렁이던 기는 곧이어 얼음처럼 굳었다.

칠성사병의 복면 너머에 있는 얼굴도 딱딱하게 굳었다.

“도대체 네놈의 정체가 무엇이냐.”

눈앞의 현상을 이해할 수 없었다.

두 눈으로 보고 있지만 믿을 수가 없었다.

“화경, 이라고……?”

칠성사병이 침음을 흘렸다.

그 눈에는 주서천의 검에 맺힌 강기가 비춰졌다.

틀림없는 화경의 경지다.

“방금 전의 독장을 보고 분명 독인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검수였다니…… 아니, 애초에 그 정도 독공을 펼칠 수 있는 화경이라니 들어본 적도……”

“이봐.”

주서천이 칠성사병의 중얼거림을 뚝 끊었다.

“그대들을 보면, 정말 방심할 수 없다고 생각하네.”

평소의 조금 어리기만 했던 어투가 바뀌었다.

분위기도 마찬가지다.

전혀 다른 사람을 보는 듯했다.

눈앞에 청년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동자를 고요하게 빛내며, 위엄 어린 목소리를 내뱉었다.

“그렇기에 전 무림을 상대할 수 있었던 거겠지.”

팟!

주서천의 뒤로 인영(人影)이 뛰어 올랐다.

발가락만을 움직여 소리 없이 이동한 칠성사병이다.

방금 전 대화가 오가던 순간, 그 틈을 노려 근접해 왔다.

정말로 대단할 정도의 냉정함이다.

“전과는 다를 걸세.”

칠성사병이 주서천의 머리를 쪼갤 기세로 검을 내리그었다.

쐐액, 하고 매서운 바람 소리가 났다.

검이 머리카락에 닿으려는 순간, 주서천의 몸이 흐릿해졌다.

“……”

칠성사병이 눈을 부릅떴다.

놀람도 잠시, 곧장 그 흔적을 쫓으려고 몸을 곧추세우고 허리를 돌린다.

“그대들은 이렇게 느리지 않았네.”

목소리와 함께 뒤쪽에서 검이 수평선을 그었다.

선이 지나간 곳은 칠성사병의 배꼽이었다.

흑의가 뎅겅 잘렸다.

잘려 나간 옷자락 사이로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오면서 피 안개를 만들었다.

몸을 지탱하고 있는 척추까지 잘려 나갔다.

하체와 분리된 상체가 버티지 못하고 바닥으로 미끄러져 쓰러졌다.

“노부가 빨라진 건가.”

바람이 불었다.

피 안개가 바람에 흩날려 사라졌다.

그 대신 노인이 나타났다.

세 명의 칠성사병이 양측과 뒤에서 덤벼들었다.

전방에 있던 칠성사병이 그걸 보고 눈을 껌뻑였다.

‘노인……?’

눈앞에 있는 건 약관의 고수가 맞다.

그래서 아까 전에 저 정도의 무위를 가진 걸 보고 경악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지금의 머리는 청년을 노인으로 인식했다.

파바밧!

칠성사병이 눈을 한 번 껌뻑였을 때 , 노인이 검을 펼쳤다.

그 움직임은 빛과 같이 빨랐다.

검이 잔상을 남기면서 허공에서 춤을 췄다.

“커헉!”

다시 한번 눈을 감았다가 떴을 때, 세 명의 칠성사병들이 비명 소리를 내면서 나가떨어졌다.

그 광경을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 불현듯 매화 향이 난다는 걸 떠올리게 됐다.

“더더욱 모르겠군.”

최후로 남은 칠성사병의 눈썹 부근이 깊게 파였다.

복면이 파인 걸 보니 이맛살을 찌푸린 게 틀림없다.

그, 혹은 그녀는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검을 펼칠 때 매화 향이 난다면 분명 이십사수매화검법이 틀림없겠지. 그렇다면 화산파의 고수라는 건데, 그건 약관에 대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 독공까지 쓰다니, 그런 건 더더욱 들어 본 적이 없다.”

“네놈들은 위에서 가르쳐 주는 것이나 명령으로 알아보라는 것 외에는 모른다는 거지. 아무리 머리를굴려 봐도 나에 대해선 모를 거다. 관심이 없으니까.”

“우리에 대해서 도대체 얼마나 알고 있나.”

“임무 수행 도중인 칠성사병은 만약의 일을 대비해 고문에 정체를 밝히지 않도록 어금니 아래에 극독을 숨겨 둔 것 이상으로 알고 있다.”

“단순히 알고 있는 수준이 아니로군. 설마하니 내부에 이렇게 깊이 내통자가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보고를 올리지 못하는 게 원통하구나.”

으득!

칠성사병이 어금니를 꽉 깨물어 독약을 씹었다.

그 말을 끝으로 쓰러지며 바닥에 얼굴을 처박았다.

주서천은 칠성사병에게 다가가 검 끝으로 뒤통수를 찌르고 생사를 확인했다.

“예전이었더라면 도사가 부관참시와 다름없는 행동이라면서 천벌 받을 거라고 생각했겠지……”

전란의 시대 때, 죽은 줄 알았던 칠성사병이 벌떡 일어나 덤벼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 탓에 목숨을 잃은 무인들이 수두룩했다.

주서천을 검에 묻은 피를 툭툭 털어 낸 뒤, 허리춤에 회수하곤 시체를 들어 양 옆구리에 꼈다.

“자, 슬슬 들어가 볼까.”

* * *

이십사수매화검법은 유명하다.

그 역사가 짧은 것도 아닌지라, 이 검법에 당하면 어떤 검상이 남는지 알아보는 자들은 적지 않았다.

그래서 누군가 발견하지 못하도록 시체를 전부 무덤 안으로 옮겨 와서 처리했다.

걷다보니 입구에서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닥이 열리는 함정에 걸렸고, 그 아래로 시체들을 전부 던졌다.

마침 아래에 창살이 백여 개 정도 설치되어 있어 검상을 덮기에는 충분했다.

그에 모자라 입구에서 챙겨온 횃불을 던져 화장까지 했다.

“음, 승계를 데려올 걸 그랬나.”

목적은 함정이나 기관의 파괴다.

굳이 제갈승계와 함께할 필요는 없어서 혼자서 왔다.

그런데 혼자서 오니 뭔가 조금 심심하다.

“일단 닥치는 대로 확인해 봐야겠군.”

껑충 뛰어서 열린 바닥을 넘어 착지했다.

그리고 검을 허리춤에 단단히 고정시킨 다음, 무릎을 굽혀서 다리 근육에 힘을 잔뜩 주고 준비했다.

“간다.”

어째 혼잣말만 늘어난다.

머릿속에 준비, 출발이라는 글자가 지나가자마자 멧돼지처럼 저돌적으로 달려 나갔다.

쿵, 쿵!

한 걸음 나아갈 때마다 발이 지면에 닿으면서 소리가 났다.

일부러 체중을 실어서 밟았다.

함정을 비롯한 여러 기관의 발동을 위해서였다.

파바밧!

양 벽에서 무수히 많은 구멍이 열리면서 화살이 쏘아졌다.

그냥 화살도 아니고 극독이 발라져 있었지만, 함정을 밟고 지나간 주서천이 워낙 빨라 맞추지 못하고 전부 반대편 벽에 부딪쳐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외에도 갖가지 기관이 발동되며 반응을 보였다.

독으로 된 안개가 통로를 가득 채우기도 했다.

이 구간에서는 호흡까지 해 가며 맛있게 삼켰다.

중간부터는 통로가 위를 향했는데, 갑자기 큰 바위가 굴러오기도 했다.

검강으로 조각조각 냈다.

쿵 콰지직!

서걱!

콰르르르!

흉마, 혹은 암천회가 고생해서 설치한 기관이나 함정이 동시에 발동해 덮쳐 왔다.

그러나 어떠한 피해도 없었다.

원래 화경의 고수만 돼도 물리적인 기관 장치는 잘 걸리지 않는다.

독 정도는 통할 만한데, 현재 천독불침이다 보니 이 또한 예외다.

물론 천독불침을 넘어서는 독이라면 가능하나 보통 귀한 게 아니니 기관 장치의 함정으로 써먹지는 않는다.

주서천은 주변의 기관이란 기관은 전부 건드리며 앞으로 나아갔다.

끝을 알 수 없는 어둠 속, 칠성사의 일곱 수장 중 천기(天磯)가 팔짱을 풀면서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 얼굴은 어둠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지만, 분위기가 좋지 않은 쪽으로 바뀐 건 알 수 있었다.

“무덤.”

그 목소리는 쇠를 긁는 것처럼 끔찍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분간도 가지 않는다.

“무슨 문제라도 있나?”

또 다른 목소리가 천기에게 묻는다.

이번에는 그 목소리가 남자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정기적으로 와야 할 연락이 오지 않는다. 무언가의 이변을 포함해 계산해도 너무 늦는다. 모종의 연유로 연락용인 죽통이 전부 파괴됐거나, 전부 죽었다.”

천기의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그런가. 그럼 내가 가지.”

요광(稀光) 이 일어났다.

흉마의 무덤은 삼안신투의 비고처럼 지하의 몇 계층으로 되어 있다.

진행하면 진행할수록 아래 깊숙한 곳까지 내려가게 됐다.

“응?”

내려가던 중, 그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이 근처는 황하가 흐르고 있었지……”

벽을 문지르니 손바닥에 축축했다.

아까부터 공기에서 묻어나는 습기가 적지 않았다.

“이거, 잘만 하면 이용할 수 있겠는걸.”

주서천이 눈을 가늘게 뜨고 중얼거렸다.

“일단은 최하층까지 내려가 보자.”

여태껏 진행했던 것처럼 흉마의 무덤 곳곳을 들쑤시면서 내려갔다.

굉음과 소음이 뒤섞여 떠든다.

가끔씩 천장이 무너지기도 하고, 땅이 전부 꺼지거나, 혹은 불이나 독으로 통로를 가득 메우기도 했다.

삼안신투의 비고처럼 목인이나 강시 같은 건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몇 시진이 지났을까, 정신을 차리고 보니 무덤 안을 엉망으로 만들면서 최하층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내가 너무 강하다.”

주서천이 본인의 무력에 취했다.

“자하신공도 그렇고, 이십사수매화검법을 대성할 때부터 전생과 비교할 건 아니지.”

화경도 그냥 화경이 아니다.

대성한 무공들의 숫자도 그렇지만, 정말로 다양한 무공을 사용할 수 있다.

지닌 내공조차 웬만한 중년 고수들 뺨을 후려치고 남는 데다가 환골탈태와 천독불침도 얻었다.

“흉마의 무덤이 왜 이렇게 허술한지 의문이었는데, 그게 아니라 내가 강한 거였구나.”

생전의 무위를 넘는 힘을 이십도 되지 않아 얻었다.

무림 전체를 봐도 자신보다 강자가 많이 없다.

공개적이지는 않지만, 순위를 따져 보면 천하백대고수 안에는 무조건 든다.

“하긴, 검강을 개나 소나 쓸 수 있는 건 아니지.”

주서천이 걸음을 멈췄다.

“미로인가. 길을 잃었네.”

이 주변의 풍경이 벌써 세 번째다.

두 번째는 기분 탓이라 쳐도 세 번째는 아니다.

미아가 됐다.

“그렇다면 개척하면 그만이지.”

주서천이 검을 휘둘렀다.

날에 실린 강기가 두꺼운 벽을 두부 가르듯이 베었다.

“하하. 화산파의 영웅님이 나가신다.”

주서천이 폭군처럼 웃으면서 전진했다.

최하층을 돌아다니기를 반 시진.

미로의 고안자가 보면 뒷목 잡고 쓰러질 방법으로 벽을 베면서 전진한 끝에 수백 명 정도를 수용할 공동이 나타났다.

발목까지 파일 푹신푹신한 양탄자가 입구에서부터 공동의 끝자락까지 반듯하게 깔려 있다.

중간중간에는 사람의 두개골 모양으로 깎은 야명주가 창대에 꽂혀 서 있어 음침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머리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보면 종유석이 즐비하게 매달려 있어 마치 지옥의 천장을 연상케 한다.

좌측에는 찬란하게 빛나는 황금이 산처럼 수북하게 쌓여 었고, 우측에는 병장기가 보기 좋게 나열되어 있다.

주서천은 주저하지 않고 우측으로 향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