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一章환골탈태(換骨奪胎)
영마파, 갈거파, 살가파.
라마교의 삼대 종파(宗派)다.
종객파는 그중 영마파(寧馮派)의 승려이다.
영마파는 붉은 법복 차림에 모자를 착용해 홍교(紅敎)라고도 불리며, 동시에 제일 오래된 종파다.
서장에서 제일 널리 알려진 종파이긴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 힘은 타 종파에 비해 크지 못했다.
“본 파는 사제나 부자간에만 단독으로 전해집니다.
그 탓에 불법 내용이 세월이 갈수록 달라지기도 하고, 또 자기들끼리만 어울려서 그런지 세력이 워낙 분산적인지라 안정적이고 강대한 세력을 형성하지는 못했습니다.”
즉 도중에 불법 내용을 잘못 해석하거나 잊어버린다고 해도 그걸 지적할 사람이 딱히 없다는 의미다.
아비나 스승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면 자신의 생각과 말이 곧 불법으로 변했다.
“갈거파나 살가파처럼 정권이나 교권 확장 및 강화에 나선 것도 아니라서 힘이 그다지 강하지 않지요.”
“중원의 불학에 대해서도 그리 관심이 없는데 서장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으니 참으로 감동이군요. 하하.”
“허어, 시주께서 이리도 관심을 가져 주시니…… 이 중은 참으로 기뻐 말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아뇨, 관심 없다는 뜻인데요.”
주서천이 정색했다.
“우습게 보인 건지 이 약하고 늙기만 한 중을 타 종파에서 구박하더군요. 야박하다 생각하지 않습니까?”
“이보시오, 스님. 제 말 듣고 있습니까?”
“홀홀홀!”
종객파가 치매 걸린 노인처럼 웃었다.
“이 중도 슬슬 장난은 그만하고, 조금은 진지해지겠습니다. 시주, 시주의 정체는 대체 무엇입니까?”
친근한 할아버지처럼 선한 눈매가 매섭게 떠졌다.
“두 시진 전, 대설산에서 시주께서 상대한 라마승들은 포달랍궁에서도 손꼽힐 정도는 아니나 그래도 고수에 속하는 무승(武僧)입니다.
그들을 하나도 아니고 여럿을 상대했을 뿐만 아니라, 압도하다니……”
두 눈으로 목격했지만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그러한 무인, 그것도 시주처럼 약관의 고수가 있다는 건 들어보질 못했습니다. 설사 중원의 오룡삼봉이라 할지라도 그와 같은 일은 불가하지요.”
종객파는 추궁하듯이 말을 이어 갔다.
“설사 힘에 미쳐 인륜을 저버리고 마도를 택할지라도 그러한 무위는 불가능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하면 감히 추측해 보건데 시주께서는……”
침을 꿀꺽 삼키며 다음 말을 기다린다.
“혹 반로환동(返老還童)의 고수는 아닌지……?”
노고수가 무공으로 화경을 넘어, 아득한 경지에 이를 경우 나타나는 현상을 의미한다.
주안술처럼 주름이 사라지고 피부가 고와지는 것 뿐만 아니라 신체 구성 요소 자체가 회춘한다.
삭고 닳아 버린 뼈, 힘을 잃어 떨어져 나가는 치아, 쓰면 툭 끊어질 것 같은 근육 등이 전성기 시절을 되찾는다.
다만 정말로 전설 속에서나 나오는 경지였다.
“하하하!”
주서천이 허리를 뒤로 젖히면서 크게 웃었다.
“스님. 그런 말 하고 다니시면 더더욱 미친 늙은이 취급당합니다.”
화경을 넘어 환골탈태를 할 경우 확실히 젊어진다.
하지만 많아 봤자 십오 년이었다.
상천십좌조차도 반로환동을 이루지 못했다.
그만큼 허무맹랑한 경지다.
존재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시대적으로 무공이 신(神)급에 올랐던 괴물들만 도달했던 수준이었다.
“스님. 이제 정말 여기까지입니다.”
라마승을 전멸시키고 대설산에서 내려왔다.
목적이었던 천년설삼은 회수했다.
“그럼 이 이후로 다시는 보지 맙시다.”
‘종객파…… 내려오면서 기억을 더듬어 봤지만 역시나 미래에는 알려지지 않은 이름이야. 이 미친 늙은 중을 구했다고 미래가 크게 바뀐 건 아니겠지?’
중원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고 있지만, 새외 세력은 세세하게 알지는 못했다.
그 탓에 대설산에서 구해 주기 전에 잠시 고민했다.
‘그러기를 빌자.’
이런저런 의문이 남지만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물은 이미 엎질러졌다.
“아 참, 그리고 스님.”
주서천이 떠나려다가 발걸음을 멈췄다.
“중원이건 서장이건 자고로 무림이란 은원(恩怨)을 중시하지 않습니까. 스님께서는 저에게 생명을 빚졌으니, 그 대가로 저에 대해서는 비밀로 해 주셨으면 합니다.”
사문과 성명을 발설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아직 눈에 띄기에는 이르다.
서장 무림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건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다만 두 번이나 이 늙은 중의 얼마 남지 않은 삶을 구해준 시주에게 별다른 보답도 하지 못하고 보내야 하는 것이 신경이 쓰이는군요.”
“한 번은 저에 대해서 숨겨 주는 것이고, 또 한 번은 쟁여 두겠습니다. 훗날 저나 중원 무림이 위험에 빠진다면 그때 도와주십시오.”
괜히 어찌할지 고민이라도 했다간 이 뻔뻔하기 그지없는 늙은 중이 또다른 부탁까지 할 것 같았다.
대설산에서 내려오면서도 계속해서 라마교에 대한 사정 설명을 하면서 도와 달라는 어감을 풍겼다.
당연하지만 어림없다면서 전부 거절했다.
“허어, 시주께선 그야말로 모든 이의 귀감이구려.”
종객파가 짐짓 감탄하면서 말을 이었다.
“사람이라면 응당 사사로운 욕심이 라는 것이 있을진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중원 무림의 평안을 바라시는 점에 이 늙은 중은 탄복하였습니다.”
‘어차피 대수인(大手印) 가르쳐 달라는 건 불가능할 것이 뻔하고, 영약을 가지고 있을 것 같지도 않으니까.
중원 무림의 평안? 바라지도 않는다.’
종객파 스스로가 포달랍궁에서 제일 약세인 영마파의 승려라고 말했다.
도움은커녕 도움을 줘야 한다.
그 사정을 모르는 것이 아니기에 아무렇게나 대충 대답해줬을 뿐이었다.
“알겠습니다. 중원이 위험에 빠진다면 포달랍궁 내에서 불협화음이 나올지라도 시주를 위해서 한걸음에 달려 나가도록 라마 앞에 맹세하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정말로 갈 길 가는 겁니다. 또 누군가에게 괜히 습격받지 말고 조심하십시오.
그리고 제가 장이 안 좋아 빨리 헛간에 가고 싶어서요. 이제 그만 저 좀 놔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스님 앞에서 지려 버릴지도 모릅니다.”
주서천의 협박에 종객파가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럼, 조심히 가시길 바랍니다.”
종객파가 합장(合掌)했다.
* * *
주서천은 중원으로 돌아가기 전, 한적한 곳을 찾아 가부좌를 틀고 천년설삼의 복용 준비를 끝냈다.
주변 동물이나 맹수를 처리하고, 동굴의 입구도 바위로 막아 냈다.
빛 한 줌 들어오지 않아 어두컴컴했으나, 주서천에게 별 장애가 되지는 않았다.
의복도 벗어서 한쪽에 가지런히 정리해 나뒀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이었다.
“이러다가 영약왕이라고 불리겠군.”
천년설삼을 조심스레 들어 흙을 털어 냈다.
정말로 영약이란 영약은 모두 복용하는 것 같았다.
수령신과, 소환단, 만년화리, 칠각사, 천년설삼.
이 다섯 중 하나만 해도 무림인이라면 눈을 벌겋게 뜨고 덤벼들 가치를 가졌다.
그런데 이것들을 전부 복용했다.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새삼 미래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느낄 수 있었다.
주서천은 천년설삼을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이내 입 안에 털어 넣어 잘근잘근 씹어 식도로 넘겼다.
꿀꺽!
‘자, 이제부터다.’
환골탈태는 이론만 알고 있을 뿐, 그도 겪은 적이 없었다.
압도적인 내공이 필요하거나, 혹은 화경에서 그 위의 경지에 오를 때나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두근두근.
두 가지 기운이 밧줄처럼 꼬여 아래로 내려가 단전에 도착했다.
기운은 영기(靈氣)와 음기(陰氣)였다.
‘후웁!’
괜히 천년설삼이 아니다.
복용하자마자 대해(大海)와 같은 내공이 물밀려오듯이 들어왔다.
그래도 크게 당황하지는 않았다.
전에 천년설삼보다 더한 내공을 흡수한 적도 있었다.
바로 만년화리다.
다른 게 있다면 성질이 반대라는 점이다.
빠르게 하되, 서둘러서 일을 그르쳐서는 아니 된다.
‘자칫 잘못했다간 주화입마야.’
조심, 또 조심하면서 영기를 움직인다.
‘환골탈태, 그 첫 번째.’
영기가 단전으로 들어오기 무섭게 전부 내쫓았다.
하단전에 모여 있던 영기가 몇백 줄기로 분산했다.
‘부순다.’
사람이건 동물이건 뼈가 부러지고, 적절한 치료를 한다면 다시 재생된다.
그리고 그 재생 과정에서 뼈는 보다 튼튼해지는데, 환골탈태의 최초 단계는 이것을 중점으로 둔다.
우드드득!
영기가 성난 멧돼지처럼 저돌적으로 움직였다.
자비를 모르는 파괴자와도 같았다.
장애물이 되는 건 전부 박살냈다.
신체를 구성하는 뼈가 그 중심에 있었다.
‘썅!’
경지를 넘지 않고 압도적인 양의 내공만으로 행하는 환골탈태는 이런 부작용이 따른다.
고통이다.
화경을 넘을 때는 깨달음을 얻는 순간 무아지경에 빠져서 환골탈태의 과정 도중 고통을 못 느낀다.
하지만 지금은 스스로의 의지로 영기를 조정해 환골탈태를 해야 하는 탓에 의식이 깨어 있을 수밖에 없다.
그 탓에 끔찍한 고통을 전부 겪어야만 했다.
전두골(前頭骨)부터 설골(舌骨)까지 이십삼, 환추골(環椎骨)부터 미추골(尾椎骨)까지 이십육, 흉골(胸骨)부터 늑골(助骨)까지 이십오, 쇄골(鎖骨)부터 지골(指骨)까지 육십사, 대퇴골(大鹿骨)부터 지골(指骨)까지 육십, 골반(骨盤)이 이(二), 그 외에 소골(小骨) 육을 합하여 총합 이백육 개나 되는 뼈 전부가 박살났다.
‘끄아아아아!’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에 정신이 아득해졌으나, 의식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여기에서 정신이 끊기면 정말로 모든 것이 끝이다.
연체동물처럼 늘어져 아무도 오지 않는 동굴 안에서 죽는다.
파괴는 한곳이 아니라, 곳곳에서 동시에 이루어졌다.
그만큼 고통도 중첩됐다.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서 이보다 더한 고통은 느껴 본 적은 없었다.
‘끄흐윽!’
그 외에도 신체 이곳저곳이 무너져 내린다.
머리카락이 전부 빠져 한 올도 남지 않아 대머리가 됐다.
다른 곳의 털도 전부 떨어진다.
이후 피부도 뱀이 허물을 벗어 던지듯, 얇게 떨어져 나간다.
손톱과 발톱도 덩달아 떨어졌다.
‘
강제로 이루어지는 체질변환(體質變換)이 이렇게 힘들고 고통스러울 줄이야……!’
상천십좌는 경지를 올리면서 한서불침이나 환골탈태를 자연스럽게 이뤘다.
그 노력을 전부 무시하고 강제적으로 변환시키는 편법이니 부작용이 따라도 어쩔 수 없다.
‘두 번째……!’
하단전을 중심으로 줄기처럼 뻗어나가 이백하고도 여섯 개 뼈를 박살낸 영기가 끝에서부터 돌아온다.
그냥 돌아오는 게 아니다.
여전히 폭풍우 같은 기세로 나아가면서 신체 내부를 바꿔 간다.
‘기맥(氣脈)!’
무인, 아니 사람의 기맥은 갓난아이일 적에는 그 통로가 넓고 깨끗하지만, 성장해 가면서 좁아져 간다.
아무리 정순한 심법을 운용한다 할 지라도, 이승이 선계(仙界)가 아닌 이상 탁기(濁氣)가 쌓여 간다.
그 탁기가 통로에 축적되어 결국 좁아지게 된다.
특히 임맥(任脈)과 독맥(督脈)의 경우, 좁혀지는 것을 넘어 아예 막혀 버린다.
주서천은 지금 천년설삼의 영기를 이용하여 이 기맥에 쌓인 탁기를 전부 제거할 생각이었다.
‘없애 버려라!’
콰아아아!
영기가 폭포수처럼 굵은 줄기를 내뿜는다.
그 거센 줄기는 기맥에 들러붙어 있던 탁기를 밀어냈다.
탁기는 원래 있던 곳으로 향하려 했으나, 영기의 압도적인 힘에 밀려 별수 없이 뒤로 물러나야 했다.
기맥에 붙을 수 없으니 나가야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피부의 무수히 많은 땀구멍에서 시커멓고 불길한 땀방울이 흘러나왔다.
탁기가 담긴 검은 땀에선 시체보다 더한 악취가 풍겼다.
세상의 것이 아니라 생각될 정도의 수준이었다.
‘쉬펄!’
속으로 욕을 안 할 수가 없다.
호흡을 하고 있으니 악취가 곧바로 맡아졌다.
구역질이 나오는 걸 참아 낸다.
무아지경에 빠지고 싶어도 빠질 수가 없는 현실에 절망했다.
온갖 불평을 하면서 환골탈태를 진행한다.
기맥에 쌓인 탁기가 빠져나간다.
성장하면서 쌓여 갔던 탁기가 사라지니 기맥 전체가 넓어졌다.
‘벌써 영약의 기운 반이 사라지고 없구나.’
신체를 구성하는 뼈를 전부 부수고, 탁기를 제거하는 것만으로도 천년설삼의 반이 날아갔다.
칠각사의 내단만으로 환골탈태할 수 없었던 게 당연하다.
그만큼 내공의 소모가 극심했다.
‘그리고 세 번째, 완전 재생!’
환골탈태의 최후의 과정이고, 동시에 어떠한 질병이나 상처건 완전히 치유할 수도 있다.
우드드득!
‘끄아아아아악!’
마음속에서 다시 비명이 울려 퍼졌다.
고통이 비명 속에 뒤섞여 있었다.
부러져 위치에서 벗어난 뼈가 원래있던 곳으로 되돌아가고, 끼워 맞춰진다.
동시에 재생도 이루었다.
전처럼 똑같아지는 게 아니다.
보다 튼튼해졌다.
요란한 뼈 소리가 나면서 골격의 위치도 보다 완벽해졌다.
흔히들 말하는 천골지체(天骨股體)다.
피부도 뱀이 허물을 벗듯 얇게 벗겨지고, 하얗고 보드라운 새 살이 돋았다.
전부 빠졌던 머리카락도 새로 자란다.
밤처럼 어둡고 비단처럼 고운 머릿결이 바람에 흔들렸다.
빠졌던 손톱과 발톱도 다시 자란다.
생명이 용솟움친다.
움직일 수 있는 만큼 힘을 냈다.
기운이 유례없는 속도로 빠르게 움직인다.
뇌가 쿵광쿵광 울리고 맥박이 터질 듯이 빠르게 뛴다.
온몸에 열이 올랐다가 차가워졌다.
이상 현상의 반복이 계속된다.
얼마나 시간이 걸렸는지는 모른다.
빛이 들어오지 않으니 낮인지도 밤인지도 확인할 수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우르릉!
우레와 같은 굉음이 터졌다.
이후 동굴 앞에 쌓여 있던 돌무더기가 튕겨 나가며 바닥을 굴렀다.
주변에 있던 소동물들이 깜짝 놀라 도망쳤다.
얼마 뒤, 동굴에서 먼지구름이 걷히면서 사람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군살 하나 없이 날렵한 턱 선, 뚜렷한 이목구비, 새하얀 피부, 균형을 넘어 완벽에 가까운 골격과 근육은 사람이 아니라 조형이 아닌가 싶었다.
“음.”
환골탈태를 끝낸 청년, 주서천이 신기한 듯 몸을 이리저리 둘러보곤 어깨를 빙글 돌렸다.
뻐근함도 없고, 몸은 깃털처럼 가볍다.
정말로 자신의 몸이 맞나 의심이 들 정도의 수준이다.
눈을 감고 집중하여 기의 흐름을 느낀다.
예전보다 흐름이 원활할 뿐만 아니라 빠르고, 거대했다.
“어디 보자……”
예한을 꺼내 햇빛에 반사되는 자신을 살펴본다.
환골탈태를 하면 외모에 변화가 생긴다.
몸에 있던 탁기를 비롯한 노폐물이 빠져나가고, 피부가 재생되고, 군살이 빠지며, 마지막으로 골격과 근육이 완벽하게 맞춰지니 미형이 될 법도 하다.
어릴 적에 수련하면서 생겼던 흉터도 사라졌다.
딱히 신경 쓰인 건 아니었지만 추억이 담겨 있었기에 그 점은 조금 아쉬웠다.
그러나 아쉽게도 환골탈태했다고 절세 미남이 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본판이 받쳐줘야 한다는 건가…… 더러운 현실에 치가 떨리는구나. 그래 이 정도로 만족하자.”
그래도 평균을 조금 상회하는 정도는 됐다.
어차피 외모에 그렇게까지 욕심은 없었다.
“예상은 했으나 내공은 눈곱만큼도 늘지 않았군.”
솔직히 조금은 남을 줄 알았다.
그런데 남기는커녕 전부 깨끗이 사라졌다.
있던 내공을 소모하지 않은 걸 천만다행으로 여길 정도다.
“자, 이제 중원으로 돌아가자.”
* * *
고금(古今)을 통틀어, 절대로 익혀선 안 되는 여섯가지 무공이 있다.
이를 육대마공(六代魔功) 혹은 육대금공(六代禁功)이라 부른다.
하나같이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잔학무도해 무엇이 제일이라 칭하기는 어렵지만, 비교적 최근에 이름을 떨친 것을 꼽자면 단연 흉마(凶魔)의 무공인 나인성공(螺湮城功)이다.
청해(靑海), 곤륜산(鹿尙山)
중원에서 북서 방향으로 곧장 나가면 북극성과 마주한 성산(聖山)이 나온다.
그 봉우리는 하늘에 닿을 정도로 드높고, 중원 오악에 지지않을 정도로 아름다우며 영험함을 지닌 명산(名山)이기도 하다.
목이 아플 정도로 들어야 언뜻 볼 수 있는 산봉우리는 평소 구름이 자욱하고, 산세도 험준해 무인이 아닌 이상 오를 수가 없다.
또한 그 아래에는 무저갱보다 깊은 계곡 사이로 중원인의 원류라는 황하(黃河)가 시작되어 중원의 산동(山東)까지 이어진다.
“흉마의 무덤이라 하였느냐?”
아래는 좁고 뾰족하고, 위는 넓고 평평한 기이한 봉우리 위에 세워진 누각.
눈처럼 새하얀 수염과 눈썹을 길게 기른 노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곤륜파의 장문인, 상명진인(上鳴眞人)의 물음에 노년을 바라보는 중년인 곤륜 장로가 고개를 끄덕 였다.
“허어, 어찌하여 그 흉하기 그지없는 이름이 다시……”
이백 년 전, 흉마는 등장과 동시에 무림 멸망을 꾀하면서 중원을 침공했다.
그 세력과 무력은 중원을 넘어 새외 무림을 넘볼 정도였고, 정파와 사파는 일시적으로 동맹을 맺었다.
이후 몇 년에 이르는 분투 끝에 흉마에게 치명상을 입히는 데 성공하였으나, 그만 놓치고 만다.
불행 중 다행인 건 그 모습이 최후였다는 것이다.
흉마가 사라진 뒤로 은거했다거나 혹은 복수를 위해 힘을 기르고 있다는 등의 소문만 무성할 뿐, 결국 어느 하나 제대로 밝혀진 것은 없었다.
결국 몇십 년이 지난 뒤에서야 흉마가 추격을 피하려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치명상을 회복하려다가 끝내 버티지 못한 재 죽었을 거라 추측할 뿐이었다.
“그 저주받고 흉악하기 그지없는 무공이 다시 강호에 나온다니, 상상만 해도 끔찍하구나. 무슨 일이 있더라도 막아야 한다.”
곤륜파가 소문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겠다며 나섰다.
구파일방의 일파가 나서자 흉마의 무덤에 대한 소문이 더더욱 커졌다.
사람들의 흥미도 늘어만 갔다.
아니, 굳이 곤륜파가 아니더라도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무림 공적이었던 흉마는 홀로 당대 최고수들을 동시에 싸워 승리했을뿐만 아니라 살아남아 도망쳤다.
그 힘에 호기심을 갖고, 또 원하는 자들도 있었다.
설사 무림 공적이 될지라도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압도적인 힘을 얻을 수만 있다면 상관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흉마의 무덤이라고?”
마도이세 중 마교가 특히 관심을 보였다.
힘이라면 온갖 막장 짓을 저지르고, 지적 능력이 심히 떨어지는 마교도 육대금공에는 손대지 않는다.
육대금공을 연공하면 곧장 정파와 사파, 그 외에도 무림 세력들이 이를 명분 삼아 손을 잡고 협공한다.
그들이 관심을 갖는 건 흉마가 생전에 육대금공 외에도 여러 마공들을 수집했다는 사실이다.
물론 워낙 광적인 단체이다 보니 육대금공 자체를 원하는 자도 있었지만,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않도록 입을 다물고 의사를 숨겼다.
“흉마의 무덤이 정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조사할 가치는 충분히 있군.”
마교도 흉마의 무덤 이 잠들어 있다는 중원으로 정예 무인과 부대를 구성해 보냈다.
정파에서는 곤륜파, 마도이세에는 마교.
그리고 사파에서는 당연히 사도천이 나섰다.
“삼안신투의 비고가 발견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번에는 흉마? 정말인가?”
사도천주는 의심했다.
아니, 사도천 뿐만 아니라 다른 무림 세력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채 십 년도 되지 않았는데 한 시대를 풍미하던 자의 비고와 무덤이 연달아 발견됐다.
수상한 냄새가 풍기고 의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나서서 확인할 수밖에 없겠구나.”
암천회가 준비한 떡밥은 보통이 아니었다.
설사 함정이라 할지라도 그걸 알고도 당할 수밖에 없다.
괜히 무시했다가 놓치기라도 하면 배가 아픈 것만으로 안 끝난다.
흉마의 무덤을 조사해서 나인성공을 봉인한다는 건 명분에 불과하다.
흉마가 생전에 모았던 재화나 신병이기, 그 외의 보물들을 노렸다.
“곤륜파만 보낼 수는 없습니다.”
사도천 외에도 마교까지 움직이고 있다.
그 외의 중소 문파나 소속 없는 무인들이야 두말할 것도 없다.
심지어 은거기인까지도 강호로 나온다는 말이 있다.
삼안신투의 비고 때보다도 규모가 컸다.
곤륜파만으로 어찌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통제하기 위해서, 그리고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서 전력을 보강해야만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섣불리 파견할 수는.없다.
이게 정말로 함정일 경우, 피해를 입는 것은 그렇다 쳐도 한곳에 전력이 모여 있는 동안 만약 타지역에서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다면 보통 일로는 안 끝난다.
결국 눈치를 보면서 누가 남아야 할지, 그리고 누가 흉마의 무덤으로 갈지 정해야 한다.
다만 정말로 흉마의 무덤일 경우, 얻을 수 있는 공적이 적지 않다.
“우리가 나서겠소.”
“구파일방은 삼안신투 때 비고에서 공적을 세우고 상당한 재물을 얻지 않았소?”
“또다시 구파일방이 나선다는 것은 이기심에 의한 독점이고 횡포요. 대문파끼리만 살 생각입니까?”
“이번 일은 우리 오악검파가 나서겠소.”
오악검파 중 태산파, 숭산파, 항산파가 출진했다.
“구파일방, 오악검파까지 있는데 오대세가에도 기회를 줘야 하지 않겠소?”
회의 끝에 남궁세가도 흉마의 무덤으로 향했다.
구파일방의 곤륜파!
오악검파의 태산파, 숭산파, 항산파!
오대세가의 남궁세가!
마도이세의 마교!
사파의 사도천까지!
칠검전쟁의 주역이 모였다.
미래에 한차례 일어났던 일이, 다시 한번 암천회의 손에 의해서 벌어지려 하고 있다.
“완전히 똑같은 미래가 벌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산기슭 위, 매화나무의 나뭇가지 위에 선 주서천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 시선 끝에는 아직 암천회 외에는 누구도 오지 못한 흉마의 무덤이 있었다.
‘흉마.’
이백 년 전, 흉마는 황하 인근에서 종적을 감췄다.
그리고 암천회로부터 최후가 밝혀진다.
흉마는 이백 년 전 무림 공적이 된 이후 중원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숨어 지냈다.
그러다 보니 눈에 띄지 않는 은신처가 필요했고, 최후에 도주할 때도 용이하게 사용됐다.
그것이 바로 지금의 무덤이다.
다만 치명상을 치유하지 못하고 끝내 무덤에서 절명했고, 그걸 암천회가 몇십 년 전에 발견한다.
즉, 이미 무덤의 주요 보물은 암천회에게 있었다.
지금 남아 있는 건 일부러 남긴, 어디까지나 떡밥으로 쓸 만한 보물 정도다.
“자아, 이제부터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