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第十二章포달랍궁(布達拉宮) (61/254)

第十二章포달랍궁(布達拉宮)

햇빛을 반사해 빛나는 머리, 얼굴에 자글자글한 주름, 초승달처럼 흰 눈썹은 무척이나 깔끔했다.

처음에 봤을 때는 얼굴도 보지 않고 그냥 등에 업었다.

언제 죽을지 몰라 급히 하산하는데만 신경을 썼다.

하지만 하산한 다음 그 몸을 바닥에 내려 두었을 때, 범상치 않은 용모에 불길함을 느꼈다.

아니나 다를까 방한의를 벗겨 보니 붉은 법복(法服)을 입고 있었다.

불길함은 현실이 됐다.

“이 못난 중의 목숨을 구해 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시주.”

‘하필이면 포달랍궁(布達拉宮)의 라마승일 줄이야!’

무림이 중원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단연 바깥에도 존재하고, 이들을 새외무림(塞外武林)이라 칭했다.

그중 포달랍궁은 새외무림, 서장을 대표하는 무림 단체인 동시 소림사와 같이 불가 무학의 사찰이었다.

다만 중원의 불교와는 그 성향과 종파가 달랐는데, 이들을 라마교라 통칭했다.

문제는 라마교의 행보가 썩 좋지만은 않았다는 점과 포달랍궁의 라마승이 상당히 포악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몇 차례나 중원 침공을 노렸을 정도이니, 공격성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두말할 것도 없었다.

대해와 같은 마음을 지녔다는 그 소림사조차도 라마승을 이야기하면 눈살부터 찌푸리기 일쑤였다.

“그럼 갈 길 갑시다. 짧지만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주서천은 이 라마승과 연관되고 싶지 않았다.

포달랍궁은 상상 이상으로 귀찮다.

“어허, 시주. 뭘 그리 서두르십니까?”

라마승이 너털웃음을 흘리면서 손을 번개같이 뻗어 주서천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제가 많이 바빠서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이거 놓으시죠, 스님.”

주서천이 웃음기 하나 없는 얼굴로 정색했다.

“시주께서는 저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입니다. 별다른 보답도 해 드리지 못했는데, 어찌 떠나려 하십니까.

이 못난 중의 체면도 좀 봐주시지요.”

“빚은 안 갚으셔도 됩니다. 이름도 밝히지 않고 떠날 생각이니 저 좀 내버려 두십시오, 스님.”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고 합니다. 부디 이 못난 중의 이야기를 들어 주시지 않겠습니까?”

“옷깃만 스치는 인연으로 끝냅시다.”

주서천이 대놓고 싫은 내색을 했다.

“보아하니 시주께서는 이 대설산을 등반하시려는 것 같이 보입니다만, 맞지 않습니까?”

“지나가던 길이었을 뿐이요.”

“잘됐군요. 이것도 인연이라도, 괜찮다면 대설산 정상까지 함께하지 않겠습니까?”

“이보시오, 스님. 내 이야기 듣고 있소?”

처음에는 멀쩡하게 생겼다 싶었는데, 역시 라마승이다.

머리가 이상하다.

“중원에서 오신 시주께서는 이곳 대설산이 초행이지 않습니까? 괜찮다면 이 불쌍하고 힘없는 중을 데려가시는 건 어떤지요. 길의 안내를해 드리겠습니다.”

주서천이 뭐라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러곤 어떻게 알았나는 의문이 담긴 눈초리를 보냈다.

라마승이 홀홀, 하고 인자하게 웃었다.

“자고로 세월이란 건 곧 경험이기도 하오. 중원인을 본 건 시주가 처음이 아니외다.”

주서천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머리는 지금 여러 가지를 떠올리면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어쩌지?’

현지인이 동행해 주는 건 좋았다.

적어도 길을 안내할 수 있다는 건 거짓말이 아닌 듯했다.

길의 안내를 받는다면야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고생을 덜할 수 있으니 나쁘지는 않았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역시 이 라마승에 대한 신뢰도다.

‘나보다 하수인 건 확실한데……’

경지를 대충 가늠해 보면 초절정을 앞에 둔 절정 정도로 추측된다.

기습을 당해도 질 걱정은 없었다.

“제 목적지는 정상 근처입니다. 그곳까지 길의 안내는 불가능하실 텐데요?”

“갈 수 있는 곳까지 안내해 드리고 원하시는 장소를 알려 준다면 길을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스님께서는 정상까지 가 보신 적이 있습니까?”

주서천의 질문에 라마승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그러나 과거에 포달랍궁이 주목랑마를 등반한 적이 있어, 그 기록과 지도가 남아 있습니다.

그것이 머리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믿어 주십시오.”

“만약, 동행한다면 어디까지 데려다주면 되겠습니까?”

“시주께서 정확히 어디가 목적지인지는 모르나, 정상 근처라 했으니 그곳에서 조금 낮은 구역입니다.”

주서천은 섣불리 대답하지 않았다.

신중하고 또 신중했다.

혹시 모를 사태까지 대비해 봤다.

그러고 나서야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좋습니다.”

* * *

원나라 시절, 라마교는 국교(國敎)였다.

그 영향력과 권세에 대해선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문제는 이 탓에 라마교는 힘에 심취하여 온갖 패악을 저지르고 막장을 걷게 됐다는 것이다.

포달랍궁은 그중에서도 선두였고 결국은 안 좋은 쪽으로 변질되어 악명을 떨치게 됐다.

그리고 그 인식은 아직까지 변하지 않았다.

아니, 변할 수 없었다.

“라마교도, 그리고 포달랍궁도 과거의 영광이라는 허영과 어둠에 아직까지도 빠져 있는 탓이지요.”

라마승이 염주를 엄지로 매만졌다.

“처음 봤을 때 느꼈지만 스님은 참 특이한 것 같습니다.”

또라이라는 걸 돌려 말해 줬다.

주서천은 라마승과 함께 대설산을 다시 올랐다.

길을 알고 있다는 건 거짓이 아닌 듯 했다.

라마승을 따라가니 본 적 있던 곳에 보다 빨리 도착했다.

“무릇 잘못된 것이 있다면, 똑바로 마주 보고 이를 인정해야 하지요.

그러지 않는다면 우치(愚擬 :어리석음)에 잠겨 현상과 사물을 바로 알지 못하고, 이해할 수도 없게 될 것 입니다.”

말하는 것이 범상치 않았다.

‘이 노친네가 포달랍궁에 불만이 있는 것 같은데, 또라이 같은 성격 탓에 따돌림을 당한 게 분명하다.’

척 보면 척이다.

‘일행도 없이 혼자 온 걸 보면 포달랍궁에서도 그렇게까지 신분이 높은 자는 아닐 거다.’

괜히 관여되고 싶지 않은 입장에서는 최적이었다.

“한데, 시주께서는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스님, 저희가 통성명할 정도로 친분 있는 사이는 아닌 것 싶습니다.

그냥 스쳐 가는 사이로 끝냅시다.”

“허어, 시주께서는 북풍한설처럼 차가우시구려.”

차가운 남자가 되는 게 꿈이었습니다.

사문 한정으로는 따듯하다.

“이 또한 라마가 이어 준 연. 부디 자비를 베풀어 저에게도 따스함을 가르쳐 주시지 않으렵니까?”

“라마승은 묵언 수행 하지 않습니까? 있다면 지금부터 시작하시는 걸 추천드리겠습니다.”

해가 진다.

빛이 사라지고 어둠의 장막이 꼈다.

밤하늘에 휘황찬란한 보름달이 나타났으나 애석하게도 운해(雲海)에 가려 볼 수 없었다.

주서천도 밤이 되자 멈춰야만 했다.

라마승 탓이었다.

“후욱, 후욱. 여기에서 이십여 장만 가면 동굴이 나옵니다. 그곳에서 밤을 보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스님께서는 이거나 입고 기다리십시오.”

주서천은 방한의를 벗어서 라마승에게 건냈다.

“시주께서는 혹시 추운 나머지 정신이 나가신 겁니까?”

라마승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 추위 속에서 방한의를 벗는 건 미친 짓이다.

“됐으니까 얼어 죽지 않도록 정신이나 바짝 차리십시오.”

주서천은 설명하기 귀찮다는 듯, 동굴 바깥으로 나갔다.

눈보라가 쳤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동굴 근처에 쌓인 눈을 한꺼번에 모았다.

그리고 검을 휘둘러 적당한 크기의 벽돌 모양으로 자른 다음, 엇갈리게 쌓아 올렸다.

눈을 소재로 한 벽이 입구를 채웠다.

빈틈은 동굴 안에 쌓인 눈으로 막았다.

“허어, 내 오랫동안 살아왔지만 그런 건 처음 봅니다.”

라마승이 신기한 듯이 눈을 껌뻑였다.

즉석에서 세운 눈 벽이 차가운 공기와 칼날보다 매서운 바람을 차단했다.

마치 남만의 주술 같았다.

“북해의 건축법이라 하더군요. 원래는 원형으로 쌓아 올려 집을 만듭니다.”

전란의 시대에서 싸우다가 이것저것 배운 것 중 하나였다.

“시주께서는 나이가 많아 보이지 않은데, 무공도 보통이 아닌 데다가 지닌 지식 또한 대단하군요.”

라마승의 가늘게 뜬 눈 사이로 동공이 고요하게 빛났다.

그 눈에 묻어나는 감정은 호기심이었다.

“중원의 지나가는 행인들은 원래 그 정도 합니다.”

주서천이 소맷자락 안쪽의 매화가 보여지지 않도록 신경 썼다.

“자, 슬슬 잡시다.”

배낭을 베개 삼아 누웠다.

모포는 필요 없었다.

“그나저나, 스님께서는 무슨 일로대설산에 오르시는 겁니까?”

엮이기 싫어 신경 쓰지 않으려 했지만, 결국 궁금중을 참지 못하고 물어봤다.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을 보기 위함입니다.”

“하?”

“아무리 이 중이 못났다고는 하지만, 저만 질문에 답하는 것은 조금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시지 않습니까?”

“잠이나 잡시다.”

“……”

* * *

암천회주는 턱을 괸 채 말없이 내려다봤다.

“도감부.”

“예, 옛!”

도감부장과 그를 따르는 수하들이 답했다.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왜 없나.”

암천회주가 묻는다.

그 목소리에는 어떠한 감정도 들어 있지 않았다.

그렇기에 더더욱 두려웠다.

“왜, 만년화리가 없나.”

꿀꺽.

도감부장이 침을 삼켰다.

동공이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거세게 흔들렸다.

방금 전 만년화리에 대해서 보고는 올렸다.

아니, 암천회주라면 그 전부터 분명 알았을 것이다.

“칠각사도 없군그래.”

일곱 개의 뿔도, 품고 있던 내단도 사라졌다.

도감부장은 칠각사가 육각사가 된 이후 곧바로 독혈곡을 찾아가 이 잡듯이 뒤져 봤다.

하지만 결국 발견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독혈곡에 서식하는 독물과 맹수에게 흡수된 것 같았다.

“그 뿔이라면 능히 명검 일곱을 제작했을 것이고, 내단이면 구파일방의 장로도 꾀어낼 수 있었겠지.”

암천회주가 중얼거렸다.

도감부장의 떨림이 심해졌다.

“본좌는 관대한 지도자이니, 그리 두려움에 떨 필요는 없다.”

암천회주가 다리를 꼬았다.

실제로 그에게서 분노나 살의는 뿜어져 나오지 않았다.

“도감부장은 그동안 내 밑에서 오랫동안 일해 오지 않았나. 그 공을 헤아리지 못할 정도로 그릇이 작은 지도자는 아니리라.”

도감부장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머리를 바닥에 찧었다.

쿵 소리가 나며 지면에 금이 갔다.

이마가 찢어져 피가 철철 넘쳤다.

“죄송합니다!”

“그래. 그거면 됐네.”

암천회주가 검지를 까딱였다.

푸슈슛.

“끅!”

도감부장 뒤편에 서 있던 수하 십여 명이 외마디 비명과 함께 절명했다.

그 몸이 소리 없이 절단됐다.

“도감부장, 그대는 공을 세운 것도 있고 능력이 뛰어나 쓸모가 있지만 그 뒤의 놈들은 아니다. 아무것도 없는, 구더기보다 못한 존재였지. 안 그런가?”

“……그렇습니다.”

“자네는 부디 실망시키지 않았으면 좋겠군.”

이튿날, 날이 밝았다.

바람이 없었고 구름도 적어 대설산에서도 보기 드물 정도로 좋은 날씨였다.

주목랑마가 얼마 남지 않을 때였다.

육안으로 들어올 때쯤, 발걸음이 멈췄다.

“시주, 여기까지 데려와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쉴 새 없이 떠들던 라마승이 드디어 멈췄다.

대각선으로 우뚝 솟은 바위 근처였다.

이 근방에도 시체 몇 구가 얼어붙어 자리 잡고 있었다.

“이건……”

정상이라서 그런지 시체는 얼어붙어 조금도 부패하지 않았다.

대머리인 데다가 눈에 익은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그 색은 붉지 않고 흰 눈과 같았지만, 법복이 틀림없었다.

덮인 눈을 감안해도 알아볼 수 있었다.

“라마교에는 통렌이라는 자비명상법이 있습니다. 직역하자면 말을 주고받는다는 뜻입니다.”

라마승이 바위의 끝, 수평을 긋고있는 넓적한 부분에 앉았다.

아슬아슬 했으나 떨어지지 않았다.

“좋은 기운을 들숨으로 빨아들이고, 나쁜 기운을 날숨으로 내뱉는 중원의 호흡법과는 반대이지요.”

라마승이 실눈을 슬쩍 떴다.

“통렌은 타인의 고통, 곧 나쁜 기운을 빨아들이고 자신의 좋은 기운, 기쁨을 내보냅니다.”

라마승이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쉰다.

“남을 건강하게 하는 것이, 곧 내게 하는 것이리라.”

나는 너요, 너는 나이다.

본인과 타인 사이의 분별을 없애고 자비를 보여야 한다.

그것이 곧 보리심(菩提心)이다.

다른 존재를 이롭게 해야 하는 것이 라마, 곧 부처의 보리심이다.

“설마……”

주서천이 주변에 널린 시체를 힐끗 살펴봤다.

다들 하나같이 가부좌거나 비슷한 자세를 하고 있었다.

“대설산은 동시에 죽음의 산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수많은 고통과 원한, 미련으로 가득하지요.”

라마승이 머리를 뒤로 천천히 돌렸다.

“그걸 느끼고 싶어 올랐습니다. 전의 질문에 대한 해답이 됐으면 합니다만.”

노승의 입가에 주름 가득한 미소가 번졌다.

“전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터이니 시주께서는 볼일을 보고 오시지요. 이리로 쪽 올라가면 나올 것입니다.”

라마승, 아니 노승이 검지로 한 곳을 가리켰다.

주서천은 그 라마승을 말없이 쳐다보다가, 목례로 인사한 다음 보다 위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대설산, 중턱.

일련의 무리가 대설산의 눈밭을 밟는다.

전부 손목에는 염주를 찼다.

걸을 때마다 염주 알을 굴리고, 염불을 외웠다.

이들은 전부 법복을 입었으나, 그 색은 둘이었다.

홍(紅)과 백(白)이었다.

그래도 차림새를 보면 라마승이 분명했다.

“앙동홍암협(雵東紅巖峽) 올탱립상(兀撲立象) 분산일찬(貴山一躍) 측소봉(側小峰) ……”

십여 명의 라마승이 염불을 외면서 대설산을 오르는 모습은 신성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예주출태장(現走出態遠).”

대설산의 끝자락, 대각선으로 솟은 바위 위에 오른 노승이 실눈을 한 채 불경을 따라 외웠다.

자글자글한 주름 사이에 묻혀 제대로 보이지 않던 그 눈은 지금 만큼은 확연하고 강렬했다.

“홀홀홀 벌써 오신 겁니까.”

노승이 느긋하게 웃으면서 주변의 동사한 라마승처럼 가만히 앉아 있었다.

눈썹에 서리가 붙고, 한차례 바람이 불어도 몸 하나 떨지 않았다.

마치 불상이라도 된 듯 미동도 하지 않고 바위 위에 홀로 앉아서 아래를 굽이 살폈다.

그리고 라마승들은 그런 노승을 위로 올려다보고,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그래서인지 천천히 거닐던 걸음에 힘을 가해, 속력을 올려서 금방 노승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종객파(宗略巴)!

눈처럼 흰 법복을 입은 자가 노승의 이름을 불렀다.

“산세가 험준하고, 공기는 얼음처럼 찬데 이 늙은이를 찾으러 이곳까지 오르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마음 같아선 차라도 대접해 드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부디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노승, 종객파는 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예를 갖춰 라마승들을 반겼다.

“그 입만 산 것은 여전하구나!”

라마승이 대설산의 차가운 공기를 식힐 정도로의 열을 냈다.

얼굴이 홍시처럼 벌갛게 달아올랐다.

하나 종객파는 라마승의 불호령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인자하게 웃으면서 대화를 이어 갔다.

“보아하니 갈거파(喝擧派)와 살가파(薩迎派)인 것 같습니다만, 어인 일로 이 늙은 중을 찾습니까?”

“어인 일? 하!”

라마승이 기가 막힌듯이 웃었다.

“종객파. 한파에 머리라도 맛이 간 겐가, 아니면 부처의 가르침을 다 이해하지 못하고 입적(入寂)해야 한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껴 미친 겐가?”

“허, 아직 멀쩡한 사람을 멋대로 입적시키려 하시지 마십시오. 중이 늙긴 했어도 아직 펄펄합니다.”

   

종객파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 굽은 허리를 꼿꼿이 세우자 뼈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아니. 이곳은 그대의 무덤이 될 걸세.”

라마승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 동공에 조금씩 묻어나는 건 명백한 살의(殺意)였다.

승려가 승려에게 살의를 갖다니, 이 무슨 일인가!

“그러기에 왜 교의(敎義)를 부정하였나.

몇 번이나 자네에게 따가운 눈총이 쏟아졌을 때, 그걸 받아들이고 회개하였다면 이런 일까지는 되지 않았을 걸세.”

바람도 불지 않는데 라마승의 소맷자락이 펄럭였다.

보이지는 않지만 공력이 조금씩 흘러나왔다.

종객파는 잘못을 뉘우치라는 그 말을 듣자마자 몹시 탄식하였다.

“포달랍궁, 아니 라마교는 지금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어 있습니다.

삼독(三毒)에 빠져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고, 보이지 않는 어둠에 잠겨 있거늘 어찌하여 그 교의를 따르란 말이십니까.”

불교에서 깨달음에 장애가 되는 대표적인 세 가지 번뇌가 있는데 , 탐욕(貧悠)과 진에(眞患), 우치(愚擬)로 이를 삼독이라 칭한다.

“살가파는 오대 교주, 팔사파(八思巴)가 원나라의 대보법왕(大寶法王)으로 봉해진 순간부터 썩기 시작한 것을, 어찌하여 모르십니까?”

살가파의 승려는 특이하게도 혼인도 가능하고, 핏줄도 둘 수 있었다.

다만 자식이 생긴 뒤로는 여자를 가까이할 수 없고, 멀리해야만 했다.

다르게 말한다면 혼인하지 않고, 자식만 두지 않는다면 얼마든지 여자를 안을 수 있다는 소리다.

이후 팔사파가 교파가 실권을 갖게 되는 정교합일(政敎合一) 정권을 수립하게 되면서 절정을 이루게 되는데, 이는 라마교의 패악과 방탕함의 원인이 된다.

“인세의 번뇌를 벗어버리고 일체지(一切智)를 얻기 위해 노력하여야 열반의 경지에 들 수 있다 하는 도과법(道果法)이 살가파의 교의이지 않습니까.

현세의 아름다운 생활을 누리려는 생각을 버리게 하는 것일진대, 어찌하여 그 반대의 길을 걷고 있는지요.”

“입 다물게.”

라마승의 목소리가 용암처럼 들끓었다.

“대수인법(大手印法)은 또 어떠합니까.”

불도의 수행자가 마음을 어느 한곳에 쏠리게 하여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게 하는 수련법을 뜻한다.

천축(天笠)의 중관론(中觀論)을 바탕에 둔 탓인지, 천축 무학에 영향을 받아 곧 무공으로 탄생하였다.

그것이 포달랍궁의 절기무공, 대수인(大手印)이다.

“그 공부가 원이 망할 때 극에 달해 결국 살가파의 방탕함과 독주를 막았거늘, 어찌하여 그걸 없애기는커녕 이어받으려 하십니까. 그건 분명 잘못됐습니다.”

문제는 교의가.일찍이 썩어 문드러져서, 결국 잘못된 방향으로 꺾였다는 것이다.

무공 수련에 마음이 쏠리고, 이를 열심히 한다면 자연히 열반에 오르니 다른 건 상관없다는 해석으로.

서장 무림의 최고봉, 라마교의 무력 사찰이기도 한 포달랍궁은 권세에 힘입어, 서장의 돈을 쓸어 담고 이익을 추구하기까지 했을 뿐만 아니라 전 정권이었던 살가파와 합세해 방탕함을 지속시켰다.

“닥치라고 하지 않았나! 종객파!”

라마승이 손바닥에 공력을 최대로 실었다.

소맷자락이 폭풍에 휘말린 것처럼 거세게 펄럭였다.

밟고 있던 눈밭이 순식간에 증발했다.

대단할 정도의 열기였다.

“서장의 승려 역시, 중원의 승려처럼 계율을 엄격히 지키고 불경을 착실하게 공부해야 합니다!”

라마승이 눈을 벌갛게 뜨면서 몸을 날렸다.

목표는 두말할 것도 없이, 종객파였다.

불가의 정순한, 아니 이제는 어찌된 건지 알 수 없는 성질의 힘이 담긴 손을 크게 부풀렸다.

포달랍궁의 대수인이었다.

“때로는 강경책이 필요한 법, 그렇지 않으면 라마교는 후세에 좋지 않게 기록될 것이오!”

종객파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반대로 눈을 부릅뜨고, 똑똑히 들으라는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그 목소리가 어찌나 쩌렁쩌렁 했던지 오랫동안 미동도 하지 않았던 대설산의 봉우리가 움찔 떨었다.

“죽어라!”

라마승의 손바닥이 종객파를 덮친다.

“쉬펄! 거참, 혼자 사는 동네도 아닌데 조용히 좀 합시다!”

그 순간, 짜증 가득한 제삼자의 목소리가 개입하면서 검이 들어왔다.

“……!”

라마승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종객파를 덮치려던 손바닥은 갑자기 끼어든 검격에 놀라 급히 멈췄다.

“누구냐!”

라마승이 급히 뒤로 물러나며 외쳤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결의에 가득찬 얼굴이었던 종객파는, 입가에 다시 인자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지나가던 도사다! 땡중 새끼야!”

주서천이 물러난 라마승을 기습했다.

번개 같은 몸놀림으로 거리를 좁힌 뒤, 라마승이 반격을 하기도 전에 검을 뻗어 가슴 정중앙에 꽂았다.

“커헉!”

실컷 화만 내던 라마승이 눈을 부릅떴다.

지금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 듯, 눈에는 불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니, 시주. 위에 볼일이 있다 하시지 않았습니까? 혹시 잃어버린 물건이라도 있으셨는지요?”

종객파가 과장스레 반응했다.

“그보다 시주께서는 도사셨습니까? 어쩐지, 제 말에 계속 토를 다시더군요. 하지만 너무 그러지 마십시오.

비록 도학과 불학이 다르다고 할지라도, 서로 이해할 수 있지 않습니까.”

“방금 전 내가 검을 꽂은 라마승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스님을 이렇게까지 때리고 싶었던 적은 정말로 처음이네.”

진심이었다.

“중원인?”

라마승들이 주서천의 어감을 듣고 알아챘다.

“중원 무림인!”

그리고 순식간에 안색이 변했다.

중원인에, 방금 전 보였던 건 무공이 틀림없다.

“종객파! 라마교의 교의를 전부 부정하더니만, 이제는 중원인까지 끌어들였나!”

“배신자 놈!”

라마승들이 분노하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주서천이 귀를 새끼손가락으로 후볐다.

“귀청 떨어지겠다. 목소리 좀 줄이자. 산사태를 일으켜서 전부 죽일 생각이냐?”

“큭!”

라마승들이 뭐라 말하려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주서천은 한숨을 푹 내쉬곤, 고개를 돌려 등 뒤의 종객파에게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말했다.

“스님의 성격이 괴상하고 지랄 맞은 것을 보고 예상은 했으나, 설마하니 같은 승려에게 목숨까지 노려질 줄이야.”

“껄껄껄!”

종객파가 기분 좋게 웃었다.

“도와줍니까?”

주서천이 종객파에게 등을 보인 채물었다.

“옷깃만 스치는 연 아니었습니까?”

종객파가 짓궂게 웃으면서 물었다.

“스님 .”

앞을 바라보며 다시 한번 묻는다.

“도와줍니까?”

종객파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입가에 맺혔던 웃음을 지우고 고개를 천천히 주억거렸다.

“도와주십시오.”

“예.”

즉답과 함께 몸을 튕겼다.

눈이 굳어 있는 땅이라 할지라도, 괜히 힘줬다가 밑이 파일지도 모른다.

눈앞의 라마승은 아홉, 붉은 법복이 다섯, 하얀 법복이 넷이었다.

“감히!”

홍법복(紅法服)의 라마승이 손바닥을 부풀리며 일장을 뻗었다.

한 일(一) 자처럼 곧은 직선을 그린다.

앞으로 곧장 날아갔던 주서천은 공중에서 몸을 화려하게 돌려 방향을 꺾으면서 검을 휘둘렀다.

서걱!

라마승의 목이 허무하게 베였다.

그 머리가 공중을 빙글빙글 회전하면서 산 아래를 향해 모습을 감췄다.

“네 이노옴!”

“감히 승려를 살해하다니!”

라마승 넷이 분노하면서 사방위로 덤벼들었다.

“땡중 맞네.”

방금 전에 종객파를 죽이려 한 주제에, 승려를 살해했다고 진심으로 화를 내고 있다.

어이가 없었다.

무엇보다 온 감각을 찌르는 살기의 농도가 결코 약하지 않았다.

전란의 시대에서 몇 번 느낀 적 있었다.

게다가 한 치의 망설임 하나 없는 살초.

딱봐도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괜히 중원에서 라마승을 파계승 취급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죽어랏!”

좌우로 손바닥이 날아왔다.

전후도 마찬가지다.

다만 속도는 제각각이었는데, 앞이 제일이고 그다음이 좌우.

가장 늦어진 것이 후방이었다.

주서천은 좌로 일 보 이동하면서 전방의 경로에서 벗어났다.

그다음에 라마승의 옆구리로 파고들었다.

앞의 라마승이 홈칫 놀라면서 뒤로 물러나려 했으나, 이미 주서천이 파고들어 멱살을 휘어잡았다.

“컥!”

라마승이 놀란 목소리를 냈다.

‘무슨 힘이……!’

몸이 우측을 향해서 쏠렸다.

저항해 보려고 내공을 전부 끌어 올렸으나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결국 그 몸은 손아귀에 이끌려, 우측에서 날아오던 대수인이 주서천 대신 후려 맞았다.

“케엑!”

라마승이 피를 울컥 토해 냈다.

“이런!”

우측의 라마승이 당황했다.

좌측과 후방에서도 순간적으로 동요가 일어났다.

주서천은 동요를 놓치지 않고, 지면을 살포시 차곤 라마승들의 머리 위로 올랐다.

화려하게 제비를 돌아 착지한 곳은 후방에 있던 라마승의 뒤였다.

‘실력자지만, 그렇게까지 대단한 건 아니다.’

전부 절정의 고수라서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그뿐이었다.

화경의 고수 앞에서는 무력했다.

라마승들이 아차, 하는 사이에 검을 재빠르게 휘둘렀다.

그들의 눈에는 잔상밖에 보이지 않았다.

”끄아아악!”

파바박!

검이 법복을 가르고, 그 안에 있는 동맥을 잘랐다.

재빠르면서도 섬세한 무시무시한 검술이었다.

순결로 가득했던 새하얀 눈밭이 라마승의 피로 젖었다.

그들의 몸에서 피가 안개처럼 뿜어져 나왔다.

네 명의 라마승이 순식간에 절명했다.

“고수!”

네 명밖에 남지 않은 라마승들이 바짝 긴장했다.

그들은 주서천에게 섣불리 접근하지 않고, 거리를 벌렸다.

긴장으로 땀방울이 뺨을 타고 주르륵 흘렀지만, 떨어지기도 전에 얼어붙었다.

“허어!”

종객파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무공이 보통이 아니라고는 짐작했지만, 설마하니 이 정도일 줄이야!’

대설산의 한파를 아무렇지 않게 여기고, 방한의를 넘기고도 춥다는 소리 한 번 안했다.

어린 나이에 벌써 최소 절정의 고수라는 걸 깨닫고 놀랐었는데, 아무래도 추측이 틀린 듯했다.

라마승들이 수적으로 우위에 있었고 주서천을 어리다고 얕봤으나, 아무리 그래도 이건 과한 감이 있었다.

방금 목숨을 잃은 자들 모두 절정의 경지인데 제대로 된 반항조차 하지 못하고 순살이라니!

최소 초절정이라는 뜻!

“누구냐.”

라마승이 경계하는 눈초리로 주서천을 쳐다봤다.

“중원의 무학은 그 수준이 다르다고는 들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정도로 압도적일 수는 없다. 약관 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 정도의 강함이라고?”

방금 전 보인 움직임은 결코 사술이 아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경계했다.

“누구냐고?”

주서천이 검에 묻은 피를 툭툭 털고는 허리를 꼿꼿이 폈다.

고개는 살짝 오연하게 들고 가슴은 당당하게 보이도록 짝 폈다.

“화산의 주서천이다.”

답답했던 무엇인가가 뻥 뚫린 기분이 들었다.

“헉, 미친.”

아차, 싶었다.

“화산? 구파일방의 화산파?”

“화산파가 왜 서장의 일에 개입하는 것이오!”

화산파라는 이름이 나오자마자 어조가 바뀌었다.

“이 간악한 파계승 놈들!”

주서천이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내가 그동안 숨겨 왔던 걸 간교한 그 혀 놀림으로 밝히게 하다니, 그야말로 마라나 다름없구나!”

검에 기를 잔뜩 주입했다.

라마승들이 그 양이 범상치 않은 것을 보고 기겁했다.

“이, 이보게, 대협. 진정하게나. 일단 대화를 하세.”

“자네는 지금 저 뒤의 파계승의 간계에 속고 있음이 분명하네.”

“무엇인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검을 거두고……”

라마승들이 필사적으로 말하면서도 눈에 띄지 않게 조금씩 주서천에게 다가갔다.

속셈이 뻔히 보였다.

“너희는 알아서는 안 될 것을 알았다! 비밀을 위해서라도 여기에서 죽어 줘야겠다!”

주서천이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말을 읊으면서 라마승들에게 뛰어들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놈을 쳐 죽여라!”

누군가의 외침을 시작으로, 남아있는 라마승 전부가 살의를 뿜어내면서 날아왔다.

역시나 했지만 대화할 생각은 없었다.

주의를 끌기 위해서 진정하느니 마느니 한 것뿐이었다.

주서천과 라마승들이 충돌했다.

중년의 라마승이 손바닥을 날렸다.

아까 전 라마승들보다 손 크기가 배는 큰데 담긴 공력도 컸다.

주서천도 검을 앞으로 쭉 뻗었다.

라마승의 손바닥 정중앙을 노렸다.

‘멍청한 놈!’

라마승이 속으로 그런 주서천을 비웃었다.

확실히 눈앞의 화산의 애송이가 고수인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 봤자 약관이다.

내공의 차이가 난다.

자신의 손바닥이 검에 닿는 순간, 기와 기가 충돌할 것이다.

그럼 장력(掌力)이 놈의 내장을 박살 낸다.

“내공 대결?”

피식.

주서천이야말로 라마승을 비웃었다.

“어?”

라마승이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화끈한 통중에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눈에 들어온 것은 손바닥을 꿰뚫고 날아오는 검 끝이었다.

푸우욱!

주서천의 검이 손바닥에 구멍을 내고, 나아가 이마 정중앙을 꿰뚫어 뒤통수 바깥으로 나왔다.

“안 돼에!”

옆에서 비통한 외침이 들렸다.

목소리에서 슬픔과 분노, 나아가 살의와 증오심이 확 느껴졌다.

보아하니 방금 전 라마승이 단순히 동문은 아니었던 모양.

분노로 가득찬 손바닥이 얼굴을 노려 온다.

휙!

필살의 일격이었으나, 맞지는 않았다.

주서천이 그 전에 검과 함께 뒤로 빠져 피해 버렸다.

그리고 주저함이나 미안함 하나 없이, 검에 힘을 담아 수직선을 그려냈다.

서걱!

분노한 라마승의 팔이 잘렸다.

어찌나 깨끗한지 절단면에서 피 한 방울 흘러나오지 않았다.

라마승이 바닥에 떨어지는 팔을 보고 비명을 토해 낼 무렵, 주서천이 재차 검을 휘둘러 목을 베었다.

“네놈은 필시 지옥에 갈 것이다!”

뒤쪽에서 분노에 찬 목소리가 들렸다.

몸을 황급히 돌려 보니 홍법복 중 마지막 남은 라마승이었다.

손바닥이 하나가 아니라 둘이었는데 두 사람이 아니라, 쌍장(雙掌)이었다.

거리가 제법 가깝다.

‘음.’

조금 놀라웠지만, 당황하지는 않는다.

휘두를 시간은 없었기에 검을 수평으로 들었다.

"끝이다!’

라마승이 콧방귀를 꼈다.

방금 전 일격은 내상을 감안하면서 최대 공력을 담았다.

게다가 쌍격까지 펼쳤다.

그런 상황에서 검을 휘둘러 막기는커녕, 수평으로 들었다.

어찌 될지는 뻔했다.

서걱!

“……?”

라마승이 두 눈을 의심했다.

지금 벌어지는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포달랍궁의 무공 수련은 손부터 단단하게 만드는 걸로 시작한다.

그리고 기를 운용하면 맨손으로 검까지 쳐 낼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검을 상대할 수 없다.

검수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하면, 보통은 내공의 차이로 결과가 난다.

서로 내력을 소모하다가 검수 쪽이 먼저 떨어진다면 검과 함께 밀어 버려 타격했다.

그런데 그 상식이 방금 무너졌다.

내공끼리 부딪치면서 대결한 것도 아니었다.

검에 닿는 순간, 약간의 저항도 없이 손바닥이 반으로 잘려 나갔다.

손가락 째로 잘린 반이 둥실 떠오른다.

‘설마……’

그러나 이 상식을 무너뜨릴 수 있는 법칙이 있다.

기가 실린 것 자체도 자를 수 있는 것!

무인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그 경지에 올라야 얻는 힘!

‘저 나이에 검강이라니, 그럴 리 없……’

서걱!

라마승은 다음 생각을 이을 수 없었다.

몸이 앞으로 무너지면서, 머리까지 베였기 때문이었다.

“……”

최후의 라마승도, 종객파도 말을 잇지 못했다.

둘은 방금 전 일이 워낙 순식간에 일어나서 보지 못했다.

주서천도 강기를 둘렀다가 금방 풀었다.

그들이 놀란 건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살아있던 아홉 명의 포달랍궁 고수가 전부 죽은 것 때문이었다.

딱딱딱!

뼈가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라마승이 턱을 부딪치면서 덜덜 떨고 있었다.

“히, 히이익!”

라마승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렇지 않아도 주변이 흰 눈으로 뒤덮여 있어 잘 어울렸다.

주서천이 라마승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사박사박’ 하고 눈 밟는 소리가 고요하게 울렸다.

“부처님의……”

“원시천존이시여!”

서걱!

주서천이 라마승의 말과 함께 목을 잘랐다.

“끄응.”

종객파도 완전히 괴팍한 땡중은 아니었다.

눈앞에서 승려가 살해당하는 것이 불편한 듯,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렸다.

조금 괴로워 보였다.

“자비다 뭐다 그런 소리 하지 마십시오.”

주서천이 검을 갈무리했다.

“아까 전, 놈들은 저에게 대화를 요청하는 척하면서 호기를 노렸습니다. 살생은 불가피 했습니다.”

전장에서 배운 것 중 하나다.

자비를 베풀 것이라면 적어도 상대를 잘 봐야한다.

“시주께서는……”

종객파가 다시 눈을 떴다.

실눈이 가늘게 열렸다.

늙은 승려는 젊은 도사의 눈을 바라보았다.

“기이하십니다.”

겉모습은 분명 약관이었지만, 눈에 품은 것은 결코 소년이나 청년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산전수전 다 겪은 노장의 것이었다.

“마치, 활불환생(活佛還生)을 보는 것 같구려……”

무심코, 그리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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